“한 인간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입니다.”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1969년 7월 21일(한국 시간)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으며 남긴 이 말은
희망을 향한 끊임없는 전진을 뜻했다. 전 세계인들은 텔레비전 생중계를 지켜보며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이 사건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꼈다.
우주 기술에 있어 인류의 진보를 이끈 주역은 당시만 해도 미국과 구소련이었다.
구소련의 발달된 우주 기술에 자극 받은 미국이 인적, 물적 자원을 고도로 집중해
달 착륙에 나서지 않았다면 닐 암스트롱의 이 명언은 훨씬 늦게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아폴로 계획 이후 방치되다시피한
달이 주목받는 이유는 핵융합의 원료가 될 ‘헬륨3’ 이라는 물질 때문이다.
소량으로도 큰 에너지를 낼 수 있어 석유를 대체할 만한 유력한 대안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 우주개발 후발국으로 틈새 전략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덩치 큰 발사체 없이 달 착륙을 실현하고 NASA의 절반 비용으로 착륙선을 개발하는가 하면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달 궤도에서 자기장을 관측하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인류에게 달은 낭만의 대상이었다. 예술의 소재로 달이 자주 활용되는 이유다.
그 배경에는 가깝지만 갈 수 없는 곳이라는 감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인류는 불과 10여 년 뒤 달에 우주기지를 세울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온 달에 한국도 태극기를 꽂을 날을 기다려 본다." 1969년 7월 21일 오전 5시 17분 40초(한국시각) 달에 착륙해 21시간 31분 20초간 머물며
2시간 36분 40초에 걸쳐 월면 활동을 하고 21.55kg의 달 암석을 수집한 아폴로 11호.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 선장이 남긴 최초의 발자국은 온 인류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1969년 달에 착륙한 버즈 올드린. 아폴로 11호 조종사인 그는 닐 암스트롱 선장과 함께
임무를 수행했다. 사진을 찍은 암스트롱의 모습이 헬멧의 선바이저에 비쳐 보인다. 닐 암스트롱을 포함해 위험한 비행에 나선 21명의 우주인을 탄생시키기 위해
40만 명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10여 년간 온갖 기술적 난제를 극복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발사체를 만들기 위한 로켓과학부터 월면을 누빌
우주복을 제작하기 위한 섬세한 바느질 기술까지, 당시 아폴로 계획에 기울인 노력은
가히 20세기 과학기술의 집약체였다. 놀라운 아폴로 기술의 면면과
이제는 생활 속에서 매일 접하고 있는 그 기술의 산물을 살펴보자. 아폴로 11호 쏜 새턴 로켓, 차세대 로켓에도 재사용 최초의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린 지 불과 2년, 사람이 우주 구경을 한 지 겨우 18일도
되지 않은 1961년 5월 25일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당시로선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유인 달 착륙’ 계획을 발표했다. 아폴로 우주선을 쏘아 올린 새턴V. 당시 최고 수준의 기술이 동원된
이 로켓은 보고서 수준에서 논의되던 모델 중 가장 덩치가 컸다.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호를 발사하고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탄생시킨
구소련에 대항해 국가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게 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달에 착륙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달까지 보내는 로켓을 개발해야 했다.
1년여 격론을 거친 뒤 로켓 한 대로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면서 달 주위를 돌아
착륙하는 방법인 ‘달궤도 랑데부’가 최종 채택됐고, 임무의 명칭은 ‘아폴로’로 정해졌다. 그리고 달착륙선을 실을 우주 발사체로는 보고서 상에서 논의되던 로켓 중 가장 규모가
큰 C-5가 선택됐고, 이름은 ‘새턴V’로 붙여졌다. 3단으로 구성된 이 로켓은 높이 110.6m,
지름 10.1m, 무게 3000t의 ‘거인’이었다. 새턴V 개발은 유인 달 탐사계획의 중심 인물이었던 폰 브라운 박사를 중심으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마셜우주센터에서 민간 기업과 함께 진행됐다.
3명의 우주인과 이들을 태운 우주선이 중력을 뿌리치기 위해 초속 11km로 솟구치고,
지구와 달의 왕복 거리인 76만km를 안전하게 비행하려면
당시 최고의 기술을 한데 모아 새로운 로켓을 개발해야 했다. 달 로켓 새턴V를 개발하는 데 있어 문제는 1단 로켓인 S-IC의 엔진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1단 엔진은 로켓다인사가 만든 F-1이었는데, 1초에 산화제인 액체산소 1789kg과 연료인 RP-1(고도로 정제된 등유인 케로신) 788kg을 연소실에서 태워 680t의 추진력을 내는,
길이 5.8m에 직경이 3.7m나 되는 거대 엔진이었다. 당시 많이 쓰던 RP-1과 액체산소를
추진제(연료와 산화제)사용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개발에 따르는 기술적 난관이 많았다. 새턴V의 1단 엔진인 F-1의 연소실. 연소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험 시설이
수차례 파괴되는 어려움을 겪으며 7년 만에 엔진을 완성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초당 2.5t이나 되는 추진제를 연소실에서 안정적으로 연소시킬 수 없었다는 점이다.
F-1 엔진의 개발자들은 연소 불안정을 해소하는 데 무려 7년이나 걸렸다.
당시 연소 불안정은 이론적으로 미지의 과제였기 때문에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었다.
무려 4000개나 되는 연소실이 불타고 결국 엔진 시험장이 폭파되는 실패까지
거듭된 끝에 연소실의 분사기 부근에 ‘배플’이란 특별한 모양의 장치를 설치해
연소 불안정을 잡을 수 있었다. 5개의 F-1 엔진을 1단으로 사용하는 새턴V는
달 착륙을 불과 2년 앞둔 1967년에야 최초로 시험 발사할 수 있었다. NASA는 로켓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전에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최고의 추진제 조합법을 내놓았다. 바로 액체수소와 액체산소를 섞는 것.
NASA는 액체수소와 액체산소를 사용한 J-2 엔진을 새턴V 2단에 5개, 3단에 1개 장착했다. 이 추진제의 성능은 당시 최고의 추진제 조합으로 RP-1과 액체산소보다 40%나 높았다. 이는 극저온 엔진 기술이 만든 혁신이었다. 최고 영하 250℃에 이르는 극저온 추진제는
폭발 위험 같은 취급상 어려움 때문에 탱크, 배관, 밸브 등에 고도의 기술이 적용됐다.
이 기술은 제2의 달 비행을 겸한 차세대 로켓인 아레스1의 2단에 재사용될 정도로
고성능을 자랑한다. 제안부터 첫 발사까지 불과 5년 만에 무려 1만 2000개에 이르는
공장이 동원돼 완성한 새턴V는 14번의 실전 발사에 모두 성공했다.
이 로켓은 달을 향한 인류의 꿈을 완성시켜 준 20세기 공학기술의 집결체로 평가받고 있다. 머큐리→아폴로→오리온으로 진화 차세대 로켓인 ‘아레스1’ 발사 상상도. 새턴V에 쓰인 기술이 아레스1의 2단 로켓에 적용된다. 우주선과 착륙선의 개발 방향은 달 비행 방법이 달궤도 랑데부 방식으로 결정되자
윤곽이 드러났다. 달궤도 랑데부 방식은 우주선과 달착륙선이 별도로 운영되는,
제안 당시에는 매우 무모한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우주선이 달 궤도를 돌다가
지구로 귀환하는 임무를 맡고 착륙선은 달에서의 착륙과 이륙만 책임지는,
독창적이며 효율적인 방안이기도 했다. 아폴로 계획이 진행되던 당시 대표적인 우주선이었던 1인승 ‘머큐리’는
우주체류시간이 1일을 넘지 못했다. 머큐리를 3인용으로 만들어 우주인을
12일 이상 생존케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우주선은 조종실, 실험실, 부엌, 침실, 욕실 등을 겸하면서 물과 산소를 공급하는
생명 유지 장치가 있는 사령 모듈과 추진 장치, 전력 장치, 환경 조절 장치 등을
지원하는 서비스 모듈로 구성됐다. 새턴V의 2단과 3단 로켓에 사용된 J-2 엔진. 극저온 상태로 보관해야 하는
액체수소와 액체산소를 추진제로 사용했기 때문에 당시로선 기술적 모험이었다. 사령 모듈의 경우 최대 310℃(양지면 140°C, 음지면 -170°C)까지 벌어지는
극심한 온도 차이에서도 우주인들이 셔츠 차림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실내 온도를 21~24°C로 유지했을 뿐 아니라 미소 운석과의 충돌에 대비해
보온병처럼 이중 구조로 제작됐다. 내벽은 벌집 모양의 알루미늄/
외벽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알루미늄 포일처럼 생긴 마일라 필름을
열 보호막용으로 코팅했다. 특히 귀환하기 위해 초속 11km로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는 동안
2800°C까지 온도가 오르는 사령 모듈의 아랫면에는 벌집 모양의
플라스틱 셀 40만 개를 수작업으로 붙여 마찰열에서 우주인을 보호하도록 했다. 달 착륙선의 개발은 더욱 난제였다. 착륙선의 외형은 중량을 줄이기 위해
고심을 거듭할 때마다 바뀌었다. 결국 착륙선에는 낮은 중력에서 별 필요 없는
실내 좌석은 장착하지 않은 채 가볍고 작은 삼각창과 안정성을 높이는
4개의 외부 다리를 설치했다. 동체는 상승단과 하강단의 2단 구조로 나뉘어
기이한 모습이 됐다. 중량 다이어트에만 집중하다 보니
달에 착륙한 2명의 우주인들은 쪼그려 앉아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들은 착륙선을 못난이라 놀렸지만 공학자들은 목적에 맞는 지적인 설계로 평가했다. 제작을 위해 수천 가지의 시험을 진행하는 동안 많은 문제가 드러났고, 총 중량 14.6t의
최초 유인 시험기는 아폴로 시스템 중에서 가장 늦은 1969년 3월에야 비행할 수 있었다. 아폴로의 캡슐형 우주선과 착륙선 기술은 미국이 최근 개발 중인 ‘오리온’ 우주선과
‘알타이르’ 착륙선으로 진화하고 있다. 아폴로의 2배인 6명이 탈 수 있는 새로운 우주선과
착륙선으로 미국은 2020년 다시 달 탐사에 나설 방침이다. 항법, 생명유지, 귀환 등을
위한 기술이 업그레이드되겠지만, 21세기 우주기술자들은 오로지 꿈만으로 시작해
완성한 20세기의 낡은 아폴로 기술을 재조명해 부활시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 살리는 아폴로 기술 달에 착륙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이 우주센터 박물관의 녹슨 우주선이나 로켓에만
갇혀 있지는 않다. 38만km나 떨어져 있는 달에 버려진 착륙선, 월면차, 각종 채집 도구에
쓰이고 끝난 것도 아니다. 당시 기술은 일상 속으로 파고들어와 있다. 아폴로 우주복에 사용된 천을 보고 싶다면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에 가면 된다. 아폴로 우주인이 입었던 우주복은 테플론, 캡톤, 마일라와 같은 첨단 섬유 20~22겹을 덧댄 일종의 방어막처럼 디자인됐으며, 브래지어를 만드는 회사인 ‘ILC 도버’사의 일류 직공들이 섬세하게 바느질해 만들어냈다.
부산아시아드 경기장은 독특하게 하얀색 천으로 지붕이 덮여 있는데, 이 천의 소재가 바로 우주복의 겉감에 쓰인 테플론으로 코팅한 유리 섬유다. 이 천은 1967년 아폴로 1호에서 비극적인 화재 사고가 발생한 뒤 화염에 강한 우주복을 만들기 위해 개발한 신소재다. 아폴로 계획 이후에는 대형 건축물에 텐트형 지붕을 설치할 때 많이 사용되고 있다.
월면에서 암석과 토양을 채취 중인 아폴로 우주인. 우주인들은 기계식 장비를 주로 썼지만 월면을 굴착할 때에는 무선 드릴을 썼다. 무선 기술은 가전제품에 적용돼 현재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철골에 비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제작이 가능하며 햇빛을 투과하기 때문에 에너지 절약에 도움이 된다. 화염에 강하다는 특성 때문에 이 소재는 방화복, 군복, 모터스포츠 의류 등에도 쓰인다.
월면에서 활동하는 우주인의 체열을 식히려고 개발한 냉각 속옷은 원자력 설비기술자, 자동차 레이서, 선박 건조 기술자처럼 고열에 노출되는 일이 많은 사람에게 안락한 온도를 제공하는 ‘쿨 슈트’(Cool Suit)로 응용, 제작돼 보급되고 있다. 냉각 속옷은 달 표면을 돌아다니는 동안 올라가는 체열을 물로 식히기 위해 가느다란 PVC 튜브를 감아 만들었다.
특수한 분야 외에 흔히 사용하는 전자제품에도 아폴로 기술이 적용된 것이 많다. 월면에서 사용한 장비들은 대부분 기계적으로 움직였지만 월면을 파야 하는 드릴처럼 모터가 있는 장비는 무선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했다. 이 같은 기술로 개발된 제품이 무선 드릴, 무선 다리미 등이다.
또 많은 기술이 스포츠·레저 용품에도 응용되고 있다. 달에서 우주인이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제작된 신발은 현재 충격 흡수 기능이 있는 고가의 스포츠화로 재탄생했다. 우주복 헬멧의 전면을 가리는 선바이저에 흠집이 나지 않게 하는 기술은 선글라스에서 만날 수 있다.
아폴로 기술이 수많은 인명을 구하기도 한다. 선박용 구명 고무보트에는 아폴로 우주선이 바다로 귀환한 뒤 전복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기술이 적용됐으며,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달 사진의 선명도를 높이던 기술은 병원의 자기공명영상(MRI) 장비로 활용됐다. 우주인의 맥박수와 체온 등을 원거리에서 모니터하는 기술은 환자감시장치로 응용돼 우주인이 아닌 지구인의 생명을 지키고 있다. 병실에 누워 있는 환자 곁을 보호자가 지키고 있지 않아도 응급 상황 때 의료진이 달려올 수 있게 된 것도 아폴로 기술의 덕이 컸다.
이 밖에도 정수기, 화재감시기, 진공청소기, 운동기구, 컴퓨터, 시계, 조이스틱, 냉동 건조 식품, 자동차 타이어, 골프채, 연료전지 등에도 아폴로 기술이 숨어 있다. 이처럼 1969년 7월 아폴로 11호의 달 탐험을 가능케 한 기술은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곁에서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돕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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