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아야기

[스크랩] 민요 속의 해학

ria530 2012. 2. 28. 17:23

<민요 속의 해학>


민요는 말 그대로 민초들의 노래다.

살아가면서 겪는 갖가지 슬프고 아픈 애환을 타령조에 얹어

흥얼거리던 가락으로 크게 긴소리(長歌)와 짧은 소리(短歌)로 구분된다.
경기민요나 방아타령같이 사설이 길고 정형화된 가락을 긴소리라 하고

노동요(勞動謠). 정요(情謠). 속요(俗謠) 따위가 짧은 가락에 속하며

그 두 가지를 뭉뚱그리면 장단가락이 되는 것이다.
그중에 짧은 가락 대부분은 여성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불리워진 여성 전유물의 성격이 짙다.

나라 구석구석 남존여비사상이 두툼하게 깔렸던 봉건시대,

여성의 애환과 탄식이 남성의 그것보다 크고 많았던 탓이다.

부엌에 들면 부뚜막이 한탄이고
우물에 가면 물동이가 한탄이고
마루 밑에는 개새끼가 한탄이고
시엄씨 등쌀에 며느리가 한탄이고
시누년 성화에 올캐년이 한탄이고
서방놈 오입질 피눈물이 한탄이고
뒷간에 앉으면 똥구멍이 한탄이고
가랭이 벌리니 신세한탄 절로난다 <한타령>

어린 나이에 정든 가족을 떠나 호된 시집살이를 살아가노라니

흐르는 건 눈물이요 나오는건 탄식이다.

믿을 것은 서방이고 나눌 것은 정분밖에 없는데 서방이 시원찮고

정분 또한 미지근하면 희망이 절벽이고

절벽 아래 굴러떨어진 바위보다 캄캄한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 캄캄했던 신세타령을 들어보자

뒷산에 딱다구리는 생구먹도 파는데
우리집 서방놈은 뚫린 구먹도 못파네 <구멍타령>

우수경칩 개구리는 펄쩍펄쩍 뛰는데
요놈의 서방X은 일어설 줄 모른다 <개만?막?

남새밭에 두더지는 땅굴만 파고요
건드렁 서방님은 기생굴만 파누나 <두더지타령>

이놈의 명태 맞아봐라
안개같은 네 껍질로 우리서방 눈을 가려
내 구멍은 피해가고 갈보 구멍에 빠졌으니
방망이로 두드릴까 몽둥이로 두드릴까

싹싹빌면 고삿날 떡시루 옆에 올려주고

흘낏대면 찢어발겨 국솥에나 집어넣고 <명태타령>

죄없는 명태나 두드리고 강아지한테 헛발질을 해대는 것으로

부아를 삭이며 평생을 사는 밖에 없었던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서방이 건둥하여 부부금슬 좋으면

시엄씨와 시누이의 배앓이를 당할 수가 없다.

온갖 흉허물을 조립하여 화냥년 불쌍년으로 돌리기 바쁘고

거기에 맞서다가는 머리끄댕이 성할 날이 없는 신세다.

안방에서 붙으면 시에미가 소문내고
뒷방에서 붙으면 시누이가 소문내고
정지에서 붙으면 물동이가 소문내고
부뚜막에 붙으면 솥뚜껑이 소문내고
마루밑에 붙으면 개새끼가 소문내고
고방에서 붙으면 쥐새끼가 소문내고
뒷깐에서 붙으면 똥바가지 소문내고
장독에서 붙으면 간장종지 소문내고
다락에서 붙으면 꿀단지가 소문내고
보리밭에 붙으면 깜부기가 소문내고
이불속에 붙으면 구둘장이 소문내고
치마속에 들라니 냄새나서 못든나네 <며느리타령>

 

사정이 이러하니 여자로 태어난 신세가 저주스럽고 세상이 저주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원망과 한탄이 저주로 변하는 과정을 겪는 것이다.

기생년이 죽으면 목구멍부터 썩어라
갈보년이 죽으면 밑구멍부터 썩어라
시누년이 죽으면 코구멍부터 썩어라
시엄씨가 죽으면 눈구멍부터 썩어라
서방놈이 죽으면 똥구멍부터 썩어라
이내몸이 죽으면 귓구멍부터 썩어라 <구멍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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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자리 조자리 돗자리 시엄씨 누우면 등창나고
요자리 조자리 개자리 시누년 누우면 똥창나고
요자리 조자리 내자리 서방님 누우면 맞창나고 <자리타령>


고부간이나 시누이 올캐간 갈등은 염라대왕도 못말린다 했으니

그에 대한 증오심도 만만치가 않았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대입시킨 가락마다 증오가 격한 나머지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준다.

익살과 해학이 부족함으로 민요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신명까지 반감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을 그리워하거나

성행위를 묘사한 정요는 위에 소개된 속요에 비해

익살과 해학이 넘치고 신명 또한 따라 넘친다.

산에올라 산전방아
물에빠져 수전방아
여주이천 연자방아
진천통천 디딜방아
우리서방 가죽방아
쿵덕쿵덕 힘도좋다 <방아타령>

정이월 X은 얼얼하고
삼사월 X은 삼삼하고
오뉴월 X은 밍밍하고
칠팔월 X은 시큼하고
구시월 X은 구릿하고
동짓섣달 X은 매콤하고 <김치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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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헤라 대헤라 에야디요

무슨 X을 꽂아볼까
굵고굵은 등태X

헐렁헐렁 홀태X
첫날밤에 사발X

기운좋은 청태X
멀리왔다 강남X

알콩달콩 땅콩X
둥글둥글 넙적X

오동통통 자루X
어서빨리 꼽으소

늦기전에 꼽으소 <콩타령>

방아를 찧으며 김치를 담그며 논두렁에 콩을 심으며

흥얼거리는 익살스런 가락들,
이렇게 해서라도 억지웃음을 날리며 일생을 살아야했던

우리들의 어머니와 할머니
그 한서린 흥어리가 눈물겹기만 한 것이다.

출처 : 불구명리 불구영
글쓴이 : 수미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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