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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焚書坑儒(분서갱유)

ria530 2012. 2. 9. 10:18

焚書坑儒(분서갱유)
불사를분,  글서,  구덩이갱,  선비유


出典:史記(사기)
文意:책을 불사르고 유생들을 구덩이에 묻다.
解義:서적과 학자들을 탄압하는 행위.

 

진시황은 6국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한 업적에 만족해하며 함양궁(咸陽宮)에 신하들을 모아 놓고 주연을 베풀었다.(BC 221년 통일) (BC 215 만리장성)
이 자리에서 박사 순우월(淳于越)이 8년동안 실시해 온 군현제를 봉건제로 바꿀 것을 건의하였다.

그 이유는 군현제로는 황실의 무궁한 안녕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황제가 신하들에게 이에 관해 묻자, 승상 이사(李斯)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천하는 통일되어 법령은 한곳에서 나왔고,

이것을 범하는 자가 없으며 백성들은 농업과 공업에 전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儒生(유생)이라는 자들은 정부가 세운 법령을 비판하고 다른 의견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만일 이 때문에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럽혀진다면,

위로는 황실의 세력이 약해질 것이고,

아래로는 당파가 생겨나 국가가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에 관한 논의를 금지시켜야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의약, 卜筮(복서:), 농업에 관한 책과 역사 서를 제외한 유교 경전과 정치적 색채가 있는 서적들을 모두 몰수하여 불태워야 합니다."

 

시황제는 이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관청에 비치하고 있는 희귀본은 물론이고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문학 서적을 비롯하여 모든 책을 거둬들여 불태워 버렸다. 이것이 이른바 '焚書(분서)'사건이다.

(BC 213년 분서)


그 이듬해 아방궁이 완성되자,

시황제는 불로장생을 꿈꾸며 神仙術(신선술)에 깊이 빠졌고,

신선술을 닦는 方士(방사)들을 후대하였다.
그런데 방사로 총애를 받던 盧生(노생)과 侯生(후생)이 시황제의 부도덕함을 비난하고 달아나는가 하면, 또 다른 방사와 유생들이 분서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에 진시황은 이들을 잡아들여 문초하고는 모두 땅속에 매장시켰다.

그 수는 46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 일을 坑儒(갱유)라고 한다.(BC212년 갱유)  (BC 210년 逝去)

출처 : 한국전례원 - 韓國典禮院 - ( jeonyewon )
글쓴이 : 根熙 김창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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