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아야기

[스크랩] 조선왕조(朝鮮王朝)의 경복궁(景福宮)

ria530 2012. 3. 2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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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복원을 기념해 야간 관람도 한다는 뉴스와 광화문 현판이 균열이가 부실공사라는 소식을 듣고 어릴때 다니던 경복궁이 어떤 모습으로 복원되었지 궁금해 가 보기로한다, 광화문 사거리에 들어서니, 오래된 가로수들은 없어지고, 넒은 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옆거리에는 세종문화회관(구.시민회관)이 보이고,교보빌딩 뒤 청진동 해장국집 주변이 재개발로 전부 철거 되어 공사중이다, 무교동낚지와 청진동 해장국 녹두 빈대떡으로 유명해던 열차집,,,모두 없어져 친구들과 소주를 즐겨 먹던 시절도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경복궁 경회루는 어린시절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개장되여, 스케이트을 타던곳이며, 이번에 복원한 `건청궁` 자리에 미술관이

있어 해마다 국전을 단체로 보러 왔던 장소이다, 이 미술관은 건청궁터에 1940년 일제에 의해 지었다,

 

1995년전 이전에는 광화문 뒤에 바로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어, 홍례문, 근정전과 차단되어  지금과 같이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김영삼대통령이 일제 강점기의 잔재인 조선총독부청사 철거를 명령하므로 1996년에 역사에 사라지고 경복궁 복원작업이 시작된다, 이 조선총독부청사는 해방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오랜동안 사용해 왔으며, 일본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몰려와 일제 36년, 강점기를 떠들던 아픔의 장소이기도하다,,

 

 

 

 

 

 

        태원전 일원은 수도경비사령부 30 경비대가 주둔하던곳으로 군이 청와대 외각경호를 담당했다, 이부대는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들과도 인연이 깊은곳 역사적인 장소이다,

 

 

 

 

 

 

     조선(朝鮮)은 1392년부터 1897년까지 한반도와 그부속 도서지역을 통치하였던 왕국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왕조(朝鮮王朝)

    라고하며, 고종 32년(1895년)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군에 시해당하고 이듬해 양력 2월말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파천하면서 경복궁은 왕궁으로서 운명을 다하게된다,

 

    경복궁(景福宮)은 대한민국 서울 세종로에 있는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이다,궁의 넓이는 34만3888m2다, 경복궁은 1395년

   (태조 4년)에 창건하였다, `경복(景福)`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왕과 그 자손, 온 백성들이 태평성대의 큰 복을 누리기를 축원

   한다는 의미이다, 풍수지리적으로 백악산을 뒤로하고 좌우에는 낙산과 인왕산으로 들러싸여 있어 길지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1412년 태종은 경복궁의 연못을 크게 넒히고 섬위에 경희루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외국에

  서 오는 사신을 대접하도록 하였으며, 연못을 크게 파낸 흙으로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은 주로 경복궁에서 지냈는데, 집현전을 두어 학자들을 가까이 하였다, 경회루의 남쪽에는 시각을 알려

  주는 보루각을 세웠으며, 궁의 서북 모퉁이에는 천문 관측시설인 간의대를 마련 해 두었다, 또한 흠경각을 짓고 그 안에 시각과

  4계절을 나타내는 옥루기를 설치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탄이후 그임무를 창덕궁에 넘겨주었다가 1865년(고종 2년)에 흥선 대원군의 명으로 증건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는등 전각들이 훼손되었으나,1990년대부터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등 복원사업을 벌이

  고 있다, 2010년 현재1차 복원사업이 완료된 상태다, 근정전, 경회루,향원정, 아미산 굴뚝 등은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궁의 왼쪽에는 역대 왕들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재사를 지내는 사직단이 자리

  잡고 있다, 건물들의 배치는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거나 왕이 신하들의 조례를 받는 근정전과 왕이 일반 집무를 보는 사정전를

  비롯한 정전과 편전 등이 앞부분에 있으며, 뒷부분에는 왕과 왕비의 거처인 침전과 휴식공간인 후원이 자리 잡고 있다,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격식인데, 이러한 형식은 이궁이 조선의 중심 궁궐이므로 특히 엄격한 유교적 규범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

  으로 풀이된다.

 

 

 

                    1897년 덕수궁으로 황궁한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 함으로서 1392년 태조 이성계의해 개창한 

                   조선(朝鮮)500년의 역사와 함께 사라진다,

 

 

 

 

 

 

 

수도 서울을 지키 위해 쌓은 조선시대 성곽이다, 서울을 둘러싼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잇는 성곽의 총길이는 18.9km에 이르며, 성곽을 따라 서울을 한 바퀴를 도는 탐방로가 있다,

 

 

 

 

                  조선(朝鮮)의 창업공신이며 유교의 대학자인 정도전, 국사 지위도 마다하신 무학대사

 

          한양, 주산인 북악산, 우백호(인왕산), 좌청룡(낙산), 아래족 안산(남산) 명당수는 청계천이고 명당을 보호하는

        객수는 한강이다,

 

        정도전과 무학대사 간에 관악산을 두고 궁의 방향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는 설이 있는데,,,,

 

        정도전은 옛부터 일국의 국왕은 남쪽으로 향을 잡아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천하의 통법이기 때문에 이를 무시

        할 수 없다고 하며 관악산(火山, 火氣, 火性)이 정면에 있지만, 한강이 가로막고 있어 화가 미치지 않을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무학대사는 관악산 화기을 피해 주산을 인왕산로,,, 정도전은 주산을 북악산으로,,,

 

        결국 태조 이성계는 정도전의 의견을 받아 들여 주산을 북악산으로 정했고, 정도전도 관악산의 화성(火性)을 우려

        해 방향을 동쪽으로 조금 변경한 입좌방향으로 궁터를 정했다고 한다,

 

        후세에 흥선 대원군은 불에 탄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 돌로 해태를 만들어 광화문

        앞에 배치했다, 이번 찾아보니, 두마리 해태가 관악산을 노려 보고 있다,

 

 

         정 도 전(鄭道傳, 1342~ 1398),  고려말 조선초의 정치가, 학자

           본관은 봉화(奉化),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

 

        조선 개국의 핵심 주역으로서 고려 말기의 사회 모순을 해결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새로운 

        왕조를 개청했다, 각종 제도의 개혁과 정비를 통해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져놓았다,

 

       

 

           선조님들의 광범위한 지식과 심오한 식격과 안목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경복궁 터,,,

 

     북악산의 남쪽 산기슭의 자리잡은 경복궁은 북으로 북악산을 주산으로 삼고, 남족에는 남산을 안산과 관악산(火山)을

     조산으로 삼고, 서쪽에는 인왕산이 백호가되며, 동으론 낙산이 구릉을 이루면서 청룡이된다, 또한 산 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성곽을 이루고 있다,

 

      외수인 한강은 멀리 북동방에서 흘러와 남산의 남쪽을 감아돌아 남쪽으로 흘러가며 그 사라짐을 볼 수 없다, 또 내수인

     청계천은 북악산과 인왕산의 사이인 서쪽에서 발원하여 도성의 중앙을 가로 지르고, 남산의 여러 계곡의 물을 받아들인

     후 서쪽의 중량천을 거쳐 한강에 합류한다, 즉 청계천이 궁궐의 앞쪽을 북서방에서 동남방으로 돌아 명당수가 되고, 한강

     은 북동방에 서동방 서남방으로 돌아 흘러 도성을 포응하고 있다, 청계천은 금(襟)과 같고, 한강은 대(帶)와 같아 그야말

     로 산하금대(山河襟帶)의 현상을 갖추고 있다,

 

 

 

                                 경회루 연못,,, 겨울철이 되면 스케이팅장이 개장되어 어린시절 스케이트을 타던곳이다

 

 

 

 

 노화백과 부인

 

 

 

 

 

 

 

 

 

 

 

 

 

 

 

 

 

 

                             고정  32년(1895년)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군에 시해 당한 장소이다, 이번에 복원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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