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풀이 정리
一(한 일) ; [ 하나, 천지의 시작 ]
一은 갑골문에서부터 가로획을 하나 그려 ‘하나’ 의 개념을 나타냈다.
一이 둘 모이면 二(두 이)요, 셋 모이면 三(석 삼)이 된다.
一은 숫자의 시작이다. 하지만 한자에서의 一은 영어에서의 ‘원(one)’과는 달리 단순한 숫자의 개념을 넘어서 오묘한 철학적 개념을 가진다. 예컨대 기원 100년에 완성된 최초의 자원 사전인 ‘說文解字(설문해자)’에서는 ‘태초에 태극이 있었으니 道(도)는 하나(一)에서 세워져 하늘과 땅으로 나누어졌고 다시 만물로 변했다’고 하여 一을 만물 생성의 근원이라고 했으며, 그 책에서 설정한 540부수의 첫째 부수로, 그 책에서 해설한 9353자의 첫 째 글자로 배치했다.
하나를 나타내는 숫자 一이 숫자의 개념을 넘어서 만물을 잉태하는 시작이자 道로 인식된 것은 老子(노자)가 말했던 ‘道는 1을 낳고 1은 2를 낳고 2는 3을 낳고 3은 만물을 낳는다’는 우주 만물의 생성원리와도 일치한다. 그래서 一은 하나이자 모두를 뜻하고, 만물을 낳는 道이자, 만물 전체를 의미하며, 劃一(획일)에서처럼 통일됨도 의미하는 숭고한 개념을 가진 한자이다.
丁(넷째 천간 정)은 원래 ●으로 그려 못의 머리를 그린 상형자였으나, 지금의 옥편에서는 一부수에 귀속시켜 놓았다. 지금 쓰는 丁은 못의 옆모습을 그린 글자이다. 하지만 이후 丁이 간지자로 가차되어 쓰이자 ‘못’을 나타낼 때에는 다시 金(쇠 금)을 더한 釘(못 정)으로 구분했다. 못은 물체를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丁에는 ‘단단하다’나 ‘건장하다’는 뜻이 생겼고, 이후 壯丁(장정)에서처럼 건장한 성년 남자를 뜻하기도 했다.
儿(사람 인) ; [ 사람, 높고 귀한 존재 ]
儿은 원래 사람의 측면을 그린 人(사람 인)과 같은 글자였으나 이후의 합성자에서 주로 글자의 아래쪽에 쓰여 형체를 조금 바꾸어 분화된 글자이다. 그래서 儿은 人과 같은 뜻을 가지고 모두 ‘사람’과 의미적 관련을 맺는다.
예컨대 元(으뜸 원)은 갑골문에서 사람의 측면 모습에 머리를 크게 키워 그렸고, 머리가 사람의 가장 위쪽에 위치함으로 해서 ‘으뜸’이나 ‘처음’의 뜻이 생겼다. 이와 같은 자원을 가진 兀 (우뚝할 올)도 같은 이치에서 ‘우뚝하다’는 뜻을 가졌다. 또 兄(맏 형)은 입(口 구)을 벌리고 꿇어앉은 사람으로, 제단에서 축원하는 모습을 그렸다. 제사를 드려 축원하는 사람은 장자의 몫이었기에 ‘형’이라는 뜻이 생겼다. 그러자 원래 뜻은 示(제사 시)를 더한 祝(빌 축)으로 분화 했다.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兌(기쁠 태)는 입을 벌린 사람과 퍼져 나가는 웃음을 형상적으로 그렸으며, 이후 心(마음 심)을 더한 悅(기쁠 열)로 발전했다. 그런가 하면 允(진실로 윤)은 머리를 앞으로 숙인 모습에서 공손함과 진실됨을 그렸으며, 充(찰 충)은 ‘설해문자’에서 儿과 育(낳을 육)의 생략된 모습이 결합된 구조로 사람이 태어나 ‘자라고’’充滿(충만)해 가는’모습을 그렸다고 했다.
이에 비해 先(먼저 선)은 갑골문에서 발(止:지)과 사람을 그려 발(止)이 사람(人)의 앞(先)으로 나아감으로부터 ‘앞’의 의미가, 다시 ‘이전’의 의미가 생겼는데, 시간개념이 공간개념으로부터 확장되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글자다.
이외에도 光(빛 광)은 불(火:화)을 들고 곁에서 시중드는 사람을 그린 글자이며, 兒(아이 아)는 두개골이 아직 완전히 봉합되지 않은 아이의 모습을 그렸다. 또 免(면할 면)은 금문에서투구를쓴사람의모습인데, 투구는 전장에서 위험을 면하게 해 주는 도구이기에 ‘모면하다’라는 뜻이 생겼다.
克(이길 극)도 갑골문에서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손에는 창을 쥔 사람의 모습을 그렸으며 완전하게 무장한 병사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뜻에 ‘이기다’라는 의미가 생겼다.
丶(점 주) ; [ 심지,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존재 ]
丶는 ‘설문해자’의 말처럼 ‘등잔 속의 불꽃 심지’를 그대로 그렸다. 하지만 이후 의미를 명확히 하고자 아랫부분에다 등잔대와 등잔받침을 그려 넣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主(주인 주)이다. 등잔은 어둠을 밝히기 위한 존재이며 어둠을 밝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불빛을 내는 심지이다. 그래서 主에는 주위를 밝히는 중심이라는 뜻이, 다시 중심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主人(주인)의 의미가 생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라는 말처럼 主人에는 모름지기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불꽃 심지처럼 언제나 주위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정신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主가 主人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더 자주 쓰이자 원래의 심지라는 뜻은 火(불 화)를 더한 炷(심지 주)로 구분해 표현 했다. 이후 점(丶)은 의미가 확대되면서 무엇인가 있음을 나타내는 자사부호로, 또 아주 작은 원이라는 의미까지 갖게 되었다.
예컨대 丹(붉을 단)은 금문에서 난간을 가진 우물(井:정)에 점(丶)이 더해진 모습인데, 井은 광물을 캐내는 鑛井(광정)을, 점(丶)은 그 곳에 무엇인가 있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丹은 원래 붉은 색을 내는 광석인 丹砂(단사)를 지칭했다. 한나라 때의 도사들은 장생불로를 위해 단사를 많이 복용했으며 단사를 藥(약)으로 보았기에 丹藥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이후 丹은 가장 대표적인 약의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지금도 ‘活絡丹(활약단)’처럼 정교하게 만든 알약이나 가루약을 부를 때 쓰인다.
또 丸(알 환)의 경우 원래는 丶와는 관련이 없었으나 해서체로 오면서 점(丶)의 의미가 더해진 글자로 보인다. 丸은 소전체에서부터 나타나는데, ‘설해문자’에서는 ‘기울어진 채 빙빙 돌아가는 것을 말하며, 둥글다는 뜻이다’고 했는데, 사람이 손으로 무언가를 돌리는 모습이다. 둥근 것은 빙빙 돌아가며 바로 서지 못한다. 그래서 丸에 둥글다는 뜻이 생겼고, 다시 알약과 같이 둥글게 만든 것을 丸藥(환약)이라 부르게 되었다.
冫 (얼음 빙) ; [ 얼음, 물에서 만들어지지만 물보다 더 차다 ]
冫은 갑골문에서는 두 개의 얼음덩어리를, 금문에서는 얼음이 될 때 부피가 불어나 위로 부풀어 오른 모습을 형상적으로 그렸다. 이후 얼음이 물에서 만들어짐을 강조하기 위해 水(물 수)를 더한 冰(얼음 빙)이 되었고, 다시 줄어 氷이 되었다.
물이 얼어 얼음이 되는 것, 즉 액체가 고체로 변하는 현상은 대단히 신비한 발견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반응을 표현한 글자가 필요했는데, 凝固(응고)에서의 凝(엉길 응)이 그것이다.
凝은 冫이 의미부이고 疑(의심할 의)로 구성되었는데, 疑는 갑골문에서 머리를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으로부터 疑心(의심)의 의미를 담아 낸 글자다. 그래서 凝은 물인지 얼음(冫)인지 아직 의심(疑)이 가는 結氷(결빙)의 진행 단계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얼음은 물에서 만들어지지만 물보다 더 차다(氷水爲之 而寒於水 빙수위지 이한어수)’는 말은 ‘순자’에 나온 것으로, ‘푸른색은 쪽색에서 나왔지만 쪽색보다 더 푸르다’는 말과 대칭되는, 배움의 과정에서 언제나 견지해야 할 멋진 경구다.
이 밖에도 冫부수에 귀속된 冬(겨울 동), 冶(불릴 야), 冷(찰 랭), 凉(서늘할 량)등은 모두 얼음과 관련되어 있다. 冬은 갑골문에서 실 끝에 매달린 베틀 북을 그려 베 짜는 계절이 바로 ‘겨울’임을 그렸는데, 이후 이유를 명확하게 하고자 冫을 더해 지금처럼 되었다.
冶는 금문에서는 사람(人:인)이 쇠 조각을 다듬는 모습으로부터 제련의 의미를 그렸으나, 소 전체에서 冫과 台(별 태)의 결합으로 변해 쇠를 녹여 금속을 분리해 내는 작업을 형상화했다. 필요한 금속을 광석에서 분리하기 위해서는 원석을 물처럼 액체로 녹여야 하고, 분리된 금속은 다시 얼음처럼 고체로 변하는 데서 冫이 의미부가 되었다.
凉과 冷은 각각 의미부인 冫과 소리부인 令(영 령)과 京(서울 경)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우두머리가 내리는 명령(令 령)이 얼음(冫)처럼 차게(冷) 들렸기에, 높은 집(京 경)에 올라서면 바람이 얼음(冫)처럼 서늘하게(凉) 느껴졌기에 그렇게 표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入 (들 입) ; [ 집안, 인간의 안식처 ]
入의 자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땅 속에 박아 놓은 막대나 뾰족한 물건을 그렸다고들 하지만 동굴 집으로 들어가는 굴의 입구라는 것이 자형과 실제 상황에 가장 근접해 보인다. 동굴 집은 초기 중국인들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였기에 入에 出入(출입)에서처럼 동굴 집으로 ‘들어가다’는 뜻이 생겼다.
內(안 내)는 지금의 자형에서 冖(덮을 멱)과 入으로 이루어져 덮개(冖)속에 든(入)어떤 물건을 형성화하였지만, 옛날 글자에는 宀(집 면)과 入으로 구성되어 집으로 (宀) 들어가는(入) 것이 바로 안쪽(內) 임을 더욱 직접 표현하기도 했다. 이후 內는 內心(내심)에서처럼 모든 것의 ‘안쪽’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예컨대 納(바칠 납)은 주머니(糸:면) 안으로 넣는(內) 것을, 訥(말 더듬을 눌)은 넣어둔(內) 채 말(言:언)을 잘하지 않음을 말한다.
고대 사회에서 집 ‘안’은 특히 사람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중요한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全(완전할 전)은 소전체에서 入과 玉(옥 옥)으로 구성되어, 집안으로 들여놓는(入) 玉이라는 의미를 그린 글자이다. 고대 중국인들이 더없이 귀중하게 여겼던 옥, 그 옥은 집안으로 들여놓았을 때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기에 完全(완전)이라는 단어에는 保存(보존)의 의미가 생겼다.
지금의 옥편에는 入부수에 兩(두 짝 량)과 兪(점점 유)가 들어 있지만, 이들은 사실은 入과 의미적 관련이 없으며 해서체의 유사성 때문에 귀속된 글자들이다. 兩은 원래 입이 위로 쑥 들어간 종처럼 생긴 옛날 돈(錢:전)을 두 개 나란히 그린 모습으로 추정 된다. 이로부터 兩側(양측)에서처럼 ‘둘’이나 ‘나란히’의 뜻이 생겼다. 그런가 하면 兩은 두 개(兩)의 錢에 해당하는 무게단위 즉24銖(수)를 말하기도 했다
또 兪는 원래 亼(모일 집)과 舟(배 주)와 巜(큰 도량 괴)로 구성되어 배(舟)들이 모여(亼) 강(巜)을 운항하는 모습에서 배가 나아가다 라는 의미를 그렸는데, 舟가 예서 이후로 月(달 월)로 변해 지금처럼 되었다.
刀 (칼 도) ; [ 칼, 무기와 기록의 상징 ]
刀는 칼의 그림을 그렸다. 칼은 적을 찌르는 무기이자 물건을 자르고 약속부호를 새기던 도구이기도 했다.
刃(칼날 인)은 칼(刀)에 ‘날’이 있는 쪽을 가리키는 부호(丶)가 다해진 글자로, 忍(참을 인)은 칼날(刃)의 아픔을 견디는 마음(心:심)을, 認(알 인)은 말(言:언)이 칼날(刃)처럼 마음 속(心)에 각인되는 것을 말한다.
初(처음 초)는 칼(刀)로 옷감(衣:의)을 마름질하는 모습으로부터 ‘처음’의 의미를, 制(마를 제)는 원래 칼(刀)로 나뭇가지(末)를 정리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에 비해 則(법칙 칙)의 刀는 칼을 직접 지칭한다. 則은 원래 鼎(솥 정)과 刀로 이루어져 청동기물의 대표인 鼎과 무기의 대표인 刀를 만들 때 그 용도의 따라 엄격히 지켜져야 할 합금 비율을 말한 데서 ‘법칙’의 뜻이 생겼고, 이후 鼎이 貝(조개 패)로 바뀌어 지금처럼 되었다.
그런가 하면 別(나눌 별)은 원래(骨의 원래 글자)와 刀로 이루어져 칼(刀)로 뼈(骨의 원래 글자)를 발라내는 모습으로부터 구별의 의미를 그려냈다.
그리고 列(벌일 열)은 불로 지져 점을 칠 때 잘 갈라질 수 있도록 뼈(歹:알)에다 칼(刀)로 나란히 줄을 지어 홈을 파던 모습을 형상했는데, 이로부터 ‘행렬’의 의미가 생겼다. 이렇게 가공된 뼈를 거북점처럼 불(火:화)로 지지면 쩍쩍 하면서 세차게(烈:열) 갈라 지게 되고, 그 모양에 근거해 길흉을 점쳤다.
또 卷(문서 권)은 소전체에서 두 손(廾:공)으로 자세히 분별해가며(釆:변) 칼로 새기는 모습을, 契(맺을 계)는 두 손(廾)으로 칼로 새긴 부호(丰:봉)를, 刊(책 펴낼 간)은 나무(干:간)에 칼로 새겨 판각하던 모습을 그린 글자들이다.
하지만 劇(심할 극)과 刑(형벌 형)등은 刀와 관련이 없던 글자들이다. 劇의 刀는 원래 力(힘 력)으로 되어, 호랑이(虎:호)와 멧돼지(豕:시)가 죽을 힘(力)을 다해 싸우는 모습에서 ‘극렬’의 의미를 그려냈다. 또 刑은 사람(人:인)이 네모꼴의 감옥(井:정)에 갇힌 모습에서 형벌의 의미를 그렸으나, 人이 刀로 잘못 변해 지금처럼 되었다.
力( 힘 력 ) ;〔 쟁기 질, 힘과 노동의 상징 〕
力은 갑골문에서 쟁기를 그렸다. 동물이 쟁기를 끌기 전에는 사람이 직접 끌었기에 力에는 ‘體力(체력)’이나 ‘힘’의 뜻이, 다시 능력이나 위력, 나아가 강제하다는 의미가 생겼다.
밭(田:전)에 나가 쟁기(力)를 끄는 것은 전통적으로 남자(男:남)의 몫이었고, 그런 힘은 남성의 상징이었다. 이후 男은 남성의 존칭으로 쓰여, 고대 중국에서는 公(공) 侯(후) 伯(백) 子(자)와 함께 주요 지배계급의 하나를 뜻하기도 했다.
원시 공동체 생활을 하던 시절, 쟁기는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끌었을 것이다. 쟁기(力)가 여럿 모인 모습이 劦(힘 합할 협)이다. 여럿이 함께 쟁기질을 하려면 구령이나 노래가 필요했을 것이다. 바로 劦의 아래쪽에 口(입 구)가 더해진 글자가 協(맞을 협)의 옛 형태인데, 구령이나 노래의 맞추어 함께 일하던 모습이다.
하지만 쟁기를 끌 수 있는 성인 남성(男)에 비해 어린 아이는 힘(力)이 약하고 작을(幺:요) 수밖에 없으며, 여기서 만들어진 글자가 幼(어릴 유)이다. 이처럼 힘(力)이 적은(少 소) 것은 남의 뒤지는 열악한(劣:렬) 존재였다. 이에 비해 무거운 청동 종(甬:용)을 들 수 있는 힘(力)은 용기(勇:용)의 상징이었다.
功(공 공)을 구성하는 工은 중원지역에서 황토를 다져 성과 담을 쌓던 절굿공이를 그렸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도구였기에 ‘도구’의 대표가 되었다. 그래서 功은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울이나 성을 절굿공이(工)로 힘껏(力) 다져 만드는 모습이며, 이로부터 ‘일’이나 ‘작업’의 뜻이 생겼다.
努(힘쓸 노)를 구성하고 있는 奴(종 노)는 여자(女:여)에게 일을 시키는(又:우) 모습에서 그런 존재가 바로 ‘奴婢(노비)’라는 의미를 그린 글자이며, 노비(奴)처럼 힘껏(力)일하는 것이 바로 努이다. 하지만 남이 강제하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이 될 수 없다. 아니 불쾌를 넘어서 화나거나 분노할(怒:노) 일이다.
劫은 억지 힘(力)으로 가도록 하는(去:거) 것을 말하며, 이에서 위협이나 劫奪(겁탈)의 의미가 생겼다.
卜 (점 복) ; 〔 거북 점, 신의 힘을 통한 통치 수단 〕
상나라 때에는 거북딱지에 홈을 파고 이를 불로 지져 갈라지는 모습으로 길흉을 점치던 거북점이 유행했는데 卜은 그 갈라진 모습이다. 그래서 卜에 ‘점치다’는 뜻이 생겼고 그 흔적은 단단한 거북딱지의 특성 때문에 직선으로 곧게 나타나기에 ‘곧다’는 의미도 생겼다.
하필이면 거북딱지로 점을 쳤는가에 대한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거북은 1000년을 산다는 장수의 동물이자 몇 년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동물이기에 어느 동물보다 신의 뜻을 잘 전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을 것이다. 또 亞 (버금 아)자 형을 한 거북의 배가 상나라 사람들이 생각했던 땅의 모습이어서 땅 위에 모든 일을 계시해 줄 수 있다는 생각도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점은 신의 힘을 빌려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백성들을 통치하는 주술적 행위이자 수단이었을 것이다. 일의 결정을 위해 일정한 점복의식을 거행한 후 갈라진 흔적(卜)을 보고 그에 대한 신의 계시를 말(口:구)로 풀이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占(점칠 점)이다.
이외에 外(밖 외)와 貞(곧을 정)도 卜과 더 밀접한 의미적 관계를 가지지만 현행 옥편에서 각각 夕 (저녁 석)과 貝(조개 패)부수에 귀속시켜 놓았다.
사실 外는 밤(夕)에 출타할 때 치렀던 점(卜)에서 연유한 글자다. 인간의 활동이 밤까지 확대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며, 옛날에는 해가 뜨면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가 잠을 잤다. 그래서 밤은 인간의 활동이 정지 되던 시간대였다. 하지만 긴급한 일로 부득이 하게 출타해야 할 때에는 그 여부를 점으로 묻곤 했는데 그것이 外이다.
또 貞은 원래 卜과 鼎(솥 정)으로 구성되었는데 鼎은 불을 때 음식을 익히던 대표적인 조리 기구다. 그래서 鼎은 거북점에서 흔적(卜)이 갈라지도록 지지는 불을 뜻하는 의미부 겸 소리부이다. 이후 형체가 비슷한 貝로 변해 貞이 되었지만, ‘곧다’는 의미는 여전히 卜에서 결정된다. 그렇다면 貞은 卜부수에 귀속되어야 더욱 합리적이다.
卩 (병부 절 ) ; [ 무릎 꿇고 앉은 사람의 모습 ]
卩은 갑골문에서 꿇어앉은 모습이다. 예컨대 印(도장 인)은 손(爪:조)으로 꿇어앉은 사람을 눌러 굴복시키는 모습을 그렸다. 도장은 손으로 눌러 찍기도 하고 그 자체가 사람을 복종시키는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印에 도장의 뜻이, 초기의 印刷(인쇄)가 도장처럼 눌러 이루어졌기에 ‘찍다’는 뜻도 생겼다.
卽(곧 즉)은 음식 그릇(艮:간)앞에 앉은 사람을 그려 ‘곧’ 식사하려는 모습을 나타냈다. 여기에 식사를 ‘끝내고’ 머리를 뒤로 홱 돌린 모습이 旣(이미 기)이며, 식기를 중앙에 두고 마주 앉은 모습이 卿(벼슬 경)이다. 겸상은 손님이 왔을 때 차리기에 卿에는 ‘손님’이라는 뜻이 생겼고, 다시 상대를 높여 부르는 글자로, 급기야 卿大夫(경대부)에서처럼 ‘벼슬’의 뜻까지 갖게 되었다.
사실 卿과 鄕(시골 향)은 같은 데서 분화한 글자다. 겸상을 차려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鄕이었는데, 이후 ‘시골’이라는 뜻으로 가차되자 다시 食(밥:식)을 더해 饗(잔치 향)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卬(나 앙)은 선 사람(人)을 앉은 사람이 ‘올려다’ 보는 모습이다. 이후 卬이 1인칭 대명사로 가차되자 다시 人을 더해 仰(우러를 앙)이 되었다.
또 卻(却:물리칠 각)은 谷(웃음 각)이 소리부이고 卩이 의미부인데, ‘다리’를 사용해 꿇어앉는다는 뜻에서 ‘다리’가 다시‘물러나다’는 의미가 생겼다. 그러자 의미를 분명하게 하고자 去(갈 거)를 더한 却을 만들었고, 다리는 肉(고기 육)을 더한 脚(다리 각)으로 구분했다.
그 외에도 令(영 령)은 모자를 쓰고 앉은 사람의 모습인데 지금은 人부수에 귀속되었다. 邑(고을 읍)도 성을 그린 囗(나라 국)과 앉은 사람의 卩로 구성되어, 사람이 살 수 있는 성, 그곳이 바로 고을임을 그린 글자이다.
하지만 卯 (넷째 지지 묘)와 卵(알 란)은 卩과 관계없는 글자다. 卯는 희생물의 몸을 두 쪽으로 대칭되게 갈라 제사 지내던 방법을 말했는데 간지자로 차용되었고, 卵은 수초의 붙어 있는 물고기의 알을 그렸다.
厂 (기슭 엄) ; [ 깎아지른 바위 언덕 ]
厂 은 갑골문에서 깎아지른 바위의 언덕을 그렸다. 금문에서는 소리부인 干(방패 간)을 더해 岸; 山을 뺀 아랫부분(굴바위집 엄)으로 쓰기도 했는데, 山(뫼 산)을 더한 岸(언덕 안)으로 분화했다. 북경 원인이 살던 周口店(주구점)을 보면, 바위언덕에 만들어진 동굴이 초기의 훌륭한 거주지였음을 알 수 있다. ‘설해문자에서 厂을 사람이 살 수 있는 바위 언덕’이라 풀이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厂은 바위(돌), 깎아지른 절벽, 집 등을 뜻한다.
예컨대 厓(언덕 애)는 厂과 圭(홀 규)의 결합인데, 圭는 높이 쌓인 흙(土:토)과 그 그림자를 그려 ‘높다’는 뜻을 그려낸 글자다. 그래서 厓는 ‘높은 언덕’을 말하며, 그 뒤 산에 생긴 언덕은 崖(벼랑 애)로, 강이나 물가에 생긴 언덕은 涯(물가 애)로 구분해 표현했다.
原은 깎아지른 언덕에서 언덕(厂)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모습 泉(샘 천)을 그려 샘물의 ‘근원’을 말했다. 原이 평원이라는 뜻으로 쓰이자 다시 水(물 수)를 더하여 源(근원 원)으로 분화했다.
또 厚(두터울 후)는 厂과 후; (두터울 후에서 厂을 뺀 나머지)로 구성 되었다. 厚에서 厂울 뺀 나머지 글자는 갑골문에서 술 같은 것들을 쉽게 담도록 한 큰 아가리, 주정이나 향기가 잘 증발하지 않도록 한 잘록한 목, 많은 양을 저장하도록 한 두툼하고 큰 배, 모래나 황토 등에 꽂아 세울 수 있도록 한 뾰족한 바닥을 가진 토기를 그렸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것을 청동을 제련하던 용광로로 보기도 하지만, 술을 저장하기 위한 대형 독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술을 대량으로 저장할 커다란 독이라면 기물의 두께를 두툼하게 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厚에서 厂을 뺀 나머지 글자에서 ‘두텁다’는 뜻이 나왔다.
厚는 산이 두터운 것을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 보지 않으면 하늘의 높음을 알 수 없고, 깊은 계곡에 가 보지 않으면 땅의 두터움을 알 수 없고, 선현의 말씀을 들어보지 않으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 수 없다’고 했던 순자의 말처럼, 땅의 두터움을 아는 데는 계곡의 깎아지른 절벽만한 것이 없었기에 ‘산의 두터움’에 厂 이 의미부로 채택 되었을 것이다.
又 (또 우) ; [ 오른손, 도움의 상징 ]
又는 갑골문에서 오른손을 그렸는데, 다섯 손가락이 셋으로 줄었을 뿐 팔목까지 그대로 표현 되었다. 그래서 又는 取(취할 취)나 受(받을 수)와 같이 주로 손의 동작을 나타낸다. 형체가 조금 변했지만 秉(잡을 병)이나 筆(붓 필)에도 又의 변형된 모습이 들어있다. 又는 이후 ‘또’라는 의미로 가차되어 지금은 이 뜻으로 더 자주 쓰인다.
叉(깍지 낄 차)는 손가락(又) 사이로 무엇인가 끼워져 있는 모습을 그렸다. 또 及(미칠 급)은 사람(人)의 뒤쪽을 손(又)으로 잡은 모습에서 ‘잡다’의 뜻이, 다시 어떤 목표에 ‘이르다’의 뜻이 생겼다. 요즘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미쳐야 미친다’는 ‘不狂不及(불광불급: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을 우리말로 멋지게 풀어 낸 이름이다.
그런가 하면 友(벗 우)는 오른손(又)두 개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놓인 모습이다. 오른손은 도움을 상징하며, 어려울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가 友라는 의미를 형상화했다. ‘주례’에서 ‘같은 스승을 모시는 관계가 朋(벗 붕)이요, 뜻을 같이 하는 관계가 友’라고 한 것을 보면, 도움엔 뜻을 같이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受는 손(爪:손톱 조)과 손(又)사이에 어떤 물건이 놓여, 물건을 주고 받는다는 의미를 그렸다. 그래서 受에는 ‘주다’와 ‘받다’는 뜻이 같이 들어 있었으나, 이후 ‘주다’는 手(손 수)를 더한 授(줄 수)로 구분했다.
그리고 叔(아재비 숙)은 콩 넝쿨;(叔에서 又를 뺀 나머지 글자) 숙을 손(又)으로 잡고 콩을 따는 모습을 그려 ‘콩’이 원래 뜻이었으나, 叔父(숙부)에서처럼 항렬에서 셋째를 뜻하는 의미로 가차되었다. 그러나 원래 뜻은 艹(풀 초)를 더한 菽(콩 숙)으로 분화했다.
叟(늙은이 수)도 자원을 살피면 원래 갓머리(宀☞집, 집 안)에서 횃불(火)을 손(又)에 들고 무엇인가를 찾는 모습을 그렸는데, 이후 지금의 형체로 변했다. 그래서 叟는 ‘찾다’가 원래 뜻인데, 다시 노인이라는 뜻으로 가차되었다. 그러자 원래 의미는 手를 더한 授(찾을 수)로 분화했다.
口 (입 구) ; [ 입, 명령과 권위의 상징 ]
口는 벌린 입을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口는 먹고 말하는 인간과 동물의 신체기관은 물론 집의 入口(입구)나 기물의 아가리까지 지칭하는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었다.
첫째, ‘먹다’는 행위에 관련된 글자로, 味(맛 미)는 입(口)속에 느껴지는 갖가지 맛(未:미)을, 呑(삼킬 탄)은 입(口)으로 삼킴을 말한다.
둘째, ‘말’과 관련된 글자로, 名(이름 명)은 캄캄한 밤(夕:저녁 석)에 입(口)으로 부르는 ‘이름’을 告(알릴 고)는 희생 소(牛:우)를 바치고 기도하는(口) 모습에서 ‘알리다’의 뜻을, 否(아닐 부)는 아니다(不:불)고 말함(口)을, 占(점칠 점)은 점괘(卜:점 복)를 해석함(口)을 말한다. 또 吝(아낄 린)에는, 아름다운(文:문) 말(口)이란 ‘아껴야’ 한다는 고대 중국인들의 음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들어 있다.
셋째, ‘함성’과 관련된 것으로, 咸(다 함)은 무기(戌:술)를 들고 입(口)으로 ‘함성’을 지르는 모습을 그렸는데, 喊聲(함성)은 ‘모두’함께 질러야 했다. 그래서 다시 口를 더한 喊으로 ‘함성’을 나타냈다. 感(느낄 감)은 함께(咸) 느끼는 감정(心:심)이며, 얼음(冫:빙)이 어는 추위에는 함성(咸)이 줄어들기(减:덜 감)마련이다.
넷째, 말은 명령과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命(목숨 명)은 우두머리(令:령)의 말(口)로부터 '명령'을 나타냈다. 君(임금 군)은 붓을 쥔 모습(尹:윤)과 입(口)으로 구성되었는데 붓은 문서를, 口는 명령을 뜻하고 그로부터 ‘임금’의 의미가 나왔다.
다섯째, 집에 입구나 아가리를 말하는데, 各(각각 각)은 집의 입구(口)와 거꾸로 된 발(夂:치)을 그려 집으로 ‘들어감’을 말했고, 向(향할 향)은 집에 난 창문으로 창을 낸 방향을 뜻했다. 또 吹(불 취)는 입을 크게 벌린 사람 (欠:흠)과 아가리(口)로서 피리나 질 나팔(塤 훈)을 부는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呂(등뼈, 음률 려)나 史(역사 사)등은 口부수에 귀속되었지만 ‘입’과 관련 없는 글자들이다. 呂는 등뼈를 두 개 그렸고, 史는 장식 달린 붓을 손으로 잡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囗(나라 국, 에워쌀 위) ; [ 성, 주위를 둘러싸 경계를 짓기 ]
囗은 갑골문에서 대부분 네모반듯하게 쌓은 城(성)을 그렸다. 하지만 성 주위를 발로 에워싼 모습을 그려 넣어 성을 만든 목적이 공격이 아닌 수비에 있음을 명확히 하기도 했다. 그래서 囗에는 ‘성’과 ‘에워싸다’는 뜻이 생겼고, 나아가 성처럼 주위를 둘러싸 경계 깃는 것도 이것으로 표현했다.
중국은 성을 중심으로 나라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囗은 國(나라 국)의 생략된 글자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國은 원래 或(혹 혹)으로서 무기(戈:과)를 들고 성(口)을 지키는 모습이며, 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戈가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그것은 지금과 달리 고대사회에서 국가의 경계가 유동적이었음을, 지킬 수 없을 때에는 곧바로 사라질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날이 여럿인 창(戈)을 그린 我(나 아)로 ‘우리’를 나타냈던 것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我가 지금은 ‘나’를 뜻하지만 옛날에는 ‘우리’라는 집단을 의미했다.
이렇게 볼 때, 或 은 ‘혹시’있을지도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방어를 굳건히 해야 하는 것이 ‘나라’라는 의미일 터, 바로 이것이 或이 단순한 가치를 넘어서 그 이면에 숨겨진 맥락이요, 상황일 것이다. 그 후 或이 ‘혹시’로 널리 쓰이자 다시 口를 더한 國으로 분화했다.
圖(그림 도)는 원래 圖에서 口를 뺀 나머지 글자로 썼는데 圖에서 口를 뺀 나머지 글자는 높은 기단 위에 지어진 곡식창고를 에워싼 담(口)을 말하며, 囿(동산 유)는 담(口) 안쪽에 무엇인가 있는(有:유)것을, 園은 둥근(袁:원) 담(口)으로 에워싼 ‘동산’을, 圜(두를 환)은 담(口)을 동그랗게 두른 것을 말한다.
또 困(괴로울 곤)은 빈 방(口)에 나무(木:목)를 그려 가재도구도 없이 선반만 같은 나무만 덩그러니 남은 ‘窮乏(궁핍)한’ 모습을 담았다.
이처럼 口는 외부로부터 안을 지키는 보호 장치였지만 그 뒤 자유를 구속하는 ‘옥’을 뜻하기도 했다. 예컨대, 囹(옥 령)과 圄(옥 어) 등은 사방을 담으로 둘러싼 ‘감옥’을 뜻하며, 囚(가둘 수)는 人이 감옥(口)에 갇힌 모습이다.
土 (흙 토) ; [ 흙, 만물을 성장하게 하는 존재 ]
土는 갑골문에서 땅(一)위에 뭉쳐 세워 놓은 흙의 모습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 주위로 점을 그려 술을 뿌리며 숭배하던 토지 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황토 대지 위에서 정착농경을 일찍부터 시작했던 고대 중국인들이었기에 흙(土)은 중요한 숭배 대상이자 다양한 상징을 담게 되었다.
먼저, 흙(土)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만물을 낳고 자라게 하는 생산성의 상징이었다. 예컨대, 地(땅 지)는 흙과 여성의 음부(也:야)가 더해져 흙의 생산성을, 坤(땅 곤)은 흙(土)과 번개 (申:신)더해져 흙의 무한한 에너지를 그렸다. 여기에 在(있을 재)는 풀이 자라는 모습(才:재)에 土가 더해져, 생명의 존재를 구체화했다. 작물을 잘 기르기 위해서는 흙을 북돋우고 고르게 해 주어야 하는데, 培(북돋을 배)와 均(고를 균)은 바로 이러한 모습을 반영했다.
이렇듯 강력한 에너지를 갖고 만물을 생장케 하는 흙은 숭배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坐(앉을 좌)는 쌓은 흙을 중심으로 사람(人)이 앉아 제사를 드리는 모습이요, 社(토지 신 사)는 흙(土)을 숭배하는(示:시) 토지 신을 그렸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돌이 없는 황토 지대에 살았기에 흙을 다져 기단을 만들고 성과 담을 쌓고 집을 지었다. 城 (성 성), 垣(담 원), 堡(작은 성 보), 塞(변방 새, 막힐 색) 등은 모두 흙으로 쌓은 담과 관련 되어 있다. 또 域(지경 역)과 境(지경 경)도 그러한 성에 의한 경계와 영약을 말한다.
基(터 기)나 壇(단 단), 堂(집 당)이나 塔(탑 탑) 등도 이런 생활환경을 반영했다. 나아가 壑(골 학)은 흙이 파인 곳이 바로 계곡임을, 그러한 계곡에서 흙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壞(무너질 괴)로 표현했다.
그 뿐만 아니라 황토는 생활 도구를 만드는 유용한 재료였다. 각종 토기는 물론 최고급의 정교한 청동기를 만드는 거푸집의 재료가 되어 型(거푸집 형)이라는 글자를 탄생 시켰으며, 거푸집에 의한 청동 제조는 서양의 失蠟法(실랍법)과는 구별이 되는 중국의 특징적 기술이 되었다.
士 (선비 사) ; [ 남성, 생명의 원천 ]
士의 자형을 두고 어떤 사람은 도구를, 어떤 사람은 단정히 앉은 법관의 모습을 그렸다고도 한다. 하지만 牛 (소 우)와 士 가 결합된 牡(수컷 모)가 소와 생식기를 그린 것을 보면 士는 남성의 생식기임에 분명하며, 이로부터 남성을, 나아가 지식인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壯(씩씩할 장)은 강인한 ‘남성’을, 壻(사위 서)는 ‘사위’를 뜻하며, 吉(길할 길)은 집 입구(口)에 설치한 남성 숭배물(土)로부터 ‘길하다’는 뜻을 그렸다.
하지만 壺(병 호)와 壹(한 일)은 사실 士와는 관계없는 글자다. 壺와 壹의 士는 원래 호리병의 뚜껑을 그린 것인데 예서로 오면서 잘못 변했다. 壺는 잘록한 목과 볼록한 배와 두루마리 발에 뚜껑을 가진 호리병을 그린 상형자이며, 호리병은 호리병박을 본떠 만들었다. 壹은 소 전체에서 壺와 吉로 구성되었는데, 壹은 단순한 숫자 ‘하나’를 넘어서 만물 창조의 근원인 元氣(원기)는 물론 최고의 개념인 道(도)까지 뜻하는 심오한 글자이다.
壺가 어떤 상징이기에 壹의 의미부가 되었을까? 호리병박은 한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신화에서 인류가 탄생하는 대상물이자 대홍수 시절 여와와 복희 남매를 살아남게 만든 매개물이기도 하다. 나중에 여와와 복희가 결합하여 중국 민족이 시작된다. 그래서 호리병박은 생명탄생의 상징이며, 그 때문에 중국 서남부의 이족, 라후족 등 소수민족들은 아직도 호리병박을 숭배대상으로, 자신들의 표지로 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앙소 문화유적지에서는 호리병의 아가리에다 사람 얼굴을 빚어 놓은 특이한 형태의 人面壺(인면호)들이 발견되는데, 이는 호리병박에서 인류가 탄생했다는 신화적 사유를 형상적으로 그려낸 조형물이다.
그렇다면 호리병박의 속은 음양이 아직 구분되지 않은 혼돈의 상태를 상징하며, 그것이 둘로 나뉘어 만물을 낳는다는 만물의 생성 이론과도 통한다. 특히 吉이 남성 숭배를 뜻한다면 이러한 설명은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이것이 최고의 상징을 가지는 一 (한 일)의 다른 모습인 壹을 만들면서 壺를 의미부로 吉을 소리부로 선택하게 한 이유이다.
大 (큰 대) ; [ 사람, 위대한 존재 ]
大는 人(사람 인)과는 달리 크고 위대한 사람을 말한다. 人이 사람의 측면을 그린 것이라면 大는 팔과 다리를 벌린 사람의 정면을 그려 크고 위대함을 묘사했다. 하지만 大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팔과 다리를 크게 펼친 모습 그 자체가 아니라 고대인들이 ‘크다’ 혹은 ‘위대함’을 어떻게 상상했는가에 있다.
大로 구성된 글자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위대한 인간’이 그 첫째이다. 天(하늘 천)은 원래 사람의 머리를 크게 그려, 머리끝에 맞닿는 것이 ‘하늘’임을 나타냈다. 하지만 여기서의 大는 단순한 덩치가 커서 위대함을 뜻하기도 했겠지만, 힘이 센 사람이 고대 부족사회를 지배했음을 생각할 때 이는 지배자가 하늘에 맞닿을 수 있는 존재요 그만큼 지배자의 권위가 기대해졌음을 상징하기도 했다. 太(클 태)는 단순이 큰‘사람’이 아니라 ‘고상하다’고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해 大에다 구별을 위한 지사 부호인(丶)을 더해 만든 글자이다.
두 번째는 크고 다 자랐다는 뜻에서 성인을 지칭한다. 夫(지아비 부)는 비녀 꽂은 ‘성인’ 남성을, 夭(어릴 요)는 사람의 머리가 젖혀진 모습으로부터 ‘夭折(요절)’의 의미를, 夾(낄 협)은 양쪽에서 두 사람을 끼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央(가운데 앙)은 목의 칼을 쓴 사람의 모습을, 奚(어찌 여자종 해)는 줄(幺:요)에 메인 사람을 손(爪:조)으로 당기는 모습에서 ‘종’을 그렸다.
세 번째는 물건이나 대상이 ‘큼’을 말한다. 夷(오랑캐 이)는 큰(大) 활(弓:궁)을 가진 동쪽 이민족을, 奄(가릴 엄)은 사람(人) 위로 번개(申:신)가 치는 모습으로부터는 ‘덮다’는 뜻을, 套(덮을 투)는 크고(大) 긴(長:장)덮개나 外套(외투)를 말한다.
또 奢(사치할 사)는 물건을 많이(大) 사는(者:자) 것으로부터 奢侈(사치)의 의미를 그려냈다. 하지만 契(맺을 계), 奠(제사 지낼 전), 奪(빼앗을 탈), 裝(권면할 장) 등은 원래 손이나 개를 그려 大와 의미적 관련이 없는 데도 옥편에서 大부수에 포함된 글자이다.
女 (계집 녀) ; [ 위대한 존재와 계집, 멀고도 가까운 거리 ]
女는 두 손을 앞으로 모우고 점잖게 앉은 여인의 모습이다. 한자에서 女의 상징은 시대를 따라 변해왔다. 처음에는 인류의 기원이자 무한한 생산성을 가진 위대한 존재로 인식 되었다. 여성이 아이를 낳는 모습인 后(임금 후)는 아이를 낳은 여인이 최고임을, 여성이 무기(戌:술)를 든 모습인 威(위엄 위)는 마을의 우두머리가 여성임을 보여준다. 여자가 낳았다(生)는 뜻의 姓(성 성)은 혈통이 모계중심으로 이어졌음을, 始(처음 시)는 인류의 시작이 여자임을 말해준다.
또 好(좋을 호)역시 아이(子:자)를 생산하는 여자에 대한 선호를 표현했다. 이는 女에다 유방을 뜻하는 두 점을 찍어 만든 母(어미 모), 비녀를 꽂은 어미(母)를 그린 每(매양 매)등 어미를 아이를 양육하고 문화를 전승하고 창조해 가는 주체로 인식했던 예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그래서 위대한 존재, 여인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女가 들어간 姸(고을 연), 妖(아리따울 요), 媚(아름다울 미), 姣(예쁠 교)등은 모두 여인을 통해 ‘아름다움’을 그린 글자들이다. 하지만 이후 인류사회가 부권중심으로 옮아가면서 여자는 나약하고 조용한, 힘없는 존재로 인식 되었다. 예컨대 명령(口:구)대로 따르는 여성이라는 의미의 如(같을 여), 이삭을 늘어뜨린 벼(禾:화)와 순한 여성의 의미를 합쳐 委(맡길 위)등은 이의 반영이다. 하지만 모권사회에서 여성은 생산 활동의 대부분을 책임질 만큼 강인하고 활동적인 존재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회의 약자로 지위가 변하면서 여성은 간사하고 투기 잘하는 비천한 존재로 그려진다. 姦(간사할 간), 奸(범할 간) 등은 여성을 간사한 존재로, 嫉(시기할 질), 妬(시샘할 투), 婪(탐할 람) 등은 투기를 일삼는 존재로, 婢(여자 종 비), 妓(기생 기)는 비천한 사회적 지위를 반영한다. 심지어 원래로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媚(미), 妖(요), 姣(교) 등까지도 ‘아첨하다’나 ‘요염하다’나 ‘음란하다’는 뜻으로 변했다.
子 (아들 자) ; [ 아들, 가문의 계승자 ]
子는 갑골문에서 머리칼이 달린 큰머리와 몸체를 그려 갓 태어난 ‘아이’를 형상화했다. 금문의 들면서 머리와 두 팔을 벌린 모습으로 변했지만, 머리를 몸체보다 크게 그려 어린아이의 특징을 잘 나타냈다. 이로부터 子는 ‘아이’, ‘자식’이라는 뜻을, 나아가 種子(종자)에서처럼 동식물의 ‘씨’라는 의미까지 갖게 되었다. 그리고 부계사회가 확립되면서 ‘남자’아이라는 의미가 되었고, 다시 '孔씨 집안의 대단한 자손’이라는 뜻의 孔子(공자)에서처럼 남성에 대한 극존칭이 되었다. 이는 개인보다는 집안과 공동체가 훨씬 중시 되었던 시절 그 가문에서 태어나 그 가문을 대표하는 사람의 지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子는 ‘성인’이 아닌 ‘아이’ 가 원래 뜻이다.
예컨대 孔은 아이가 젖을 빠는 모습을 그렸고, 여기에다 손(爪:조)이 더해지면 乳(젖 유)가 된다. 孕(아이 밸 잉)은 뱃속에 아이가든 모습인데 머리와 두 팔이 이미 다 자란 모습이다.
또 字(글자 자)는 집(宀:면)에서 아이를 낳아 자손을 불려가듯 점점 ‘늘어나다’는 뜻인데, 文(글월 문)이 더 이상 분리 되지 않은 기초자를 말하는데 비해 字는 이들이 둘 이상 결합하여 만들어진 글자를 지칭하였고, 지금은 이를 합쳐 文字(문자)라는 단어로 쓰인다.
아이의 탄생은 인간의 존재를 확인 시켜 주는 실존적 체험이자 아이는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상징이기에 충분했다. 存(있을 존)은 새싹이 딱딱한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모습을 그린 才(재주 재)와 子가 결합되어, 아이가 처음 태어남으로써 存在(존재)의 의미를 그린 글자다. 孫(손자 손)은 원래 子와 糸(가는 실 멱)으로 구성되어 실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子孫(자손)의 의미를 그렸는데, 糸을 系(이을 계)로 바꾸어 의미를 더욱 명확히 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사회의 정식 구성원이 되고 주체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게 된다. 學(배울 학)은 집 안(宀)에서 두 손으로 새끼 매듭 지우는 법을 아이가 배우는 모습이며, 敎는 아이가 그런 것을 잘 배우도록 회초리로 때리는(攵:복) 모습이다.
宀 (집 면 ) ; [ 집, 인간의 안식처 ]
宀은 고대가옥의 형상을 따서 만든 글자로, 포괄적인 의미의 집을 뜻하지만, 첫째 집이 가져다주는 안락함, 둘째 집을 중심으로 가족과 가문이 형성되었기에 조상님의 위패를 모시는 ‘종묘’, 셋째 그곳이 인간이 생활하는 거주 ‘공간’이라는 의미도 뜻한다.
갑골문에서의 宀은 선이 부드럽게 처리되어 황토지대의 지어진 동굴집의 입구를 그렸다. 하지만 금문은 지금처럼 담을 쌓고 그 위로 지붕을 걸쳐 처마를 남긴 구조가 보편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家(집 가)는 반 지하에는 돼지 등 가축이, 위층에는 사람이 사는 특이한 구조를, 宮(집 궁)은 집의 창문이 아래위로 난 높은 지상 가옥을 그렸다.
집은 무엇보다 자신을 지켜주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安(편안할 안)은 여성(女)이 집에 있을 때 ‘안전함’을 그렸다. 寧(편안할 녕)은 원래 집안에 그릇(皿:명)이 놓인 모습으로부터 ‘먹을 것이 있음’을 그렸는데, 이후 금문에서 心(마음 심)이 더해져 심리적 편안함을 강조했고, 이후 소리부인 丁(넷째 천간 정)이 다시 더해졌다. 灾(災 재앙 재)는 이러한 안식처가 불에 타버리는 것이 ‘재앙’임을 그렸다.
宀은 종묘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宋(송나라 송)은 나무(木:목)위패가 모셔진 종묘를, 宗(마루 종)은 제단(示:시)이 설치된 종묘를, 完(완전할 완)은 성장을 차린 사람(元:원)이 종묘 앞에 선 모습을, 寇(도둑 구)는 적을 종묘로 끌고 와 매로 다스리는 (攴:복)모습을, 寬(너그러울 관)은 화장한 제사장(완;寬에서 宀을 뺀 나머지)이 종묘에서 천천히 춤추는 모습을 그린 글자다.
그런가 하면 宀은 공간의 상징이기도 하다. 容(얼굴 용)은 집(宀)과 계곡(谷:곡)이 모든 것을 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에서 ‘받아들임’을 그렸다.
宇(집 우)는 ‘처마’를, 宙(집 주)는 ‘대들보’를 뜻하였는데, 고대 중국인들은 대들보와 처마 사이의 빈 곳으로써 확장 가능한 공간을, 철학자들은 더 나아가 宇를 무한히 늘어나는 공간으로, 宙를 극한을 향해 끝없이 뻗어가는 시간으로 인식하였다.
小 (작을 소 ) ; [ 모래알, 작음의 상징 ]
小는 갑골문에서 작은 점을 셋 그렸다. 셋은 많음의 상징이고, 작은 점은 모래알로 보인다. ‘설해문자’에서는 갈라짐을 뜻하는 八(여덟 팔)과 이를 구분 지어 주는 세로획(丨:곤)으로 구성되었다고 했으나, 이는 소전체에 근거한 해석이며 갑골문에 의하면 작은 모래알을 여럿 그렸다.
이후 小 가 ‘작다’는 보편적 개념을 나타내자, ‘모래알’은 水(물 수)를 더한 沙(모래 사)로 구분해 표현했다. 少(적을 소)는 小에서 분화한 글자로, 양의 ‘적음’을 나타내기 위해 지사부호를 더해 특별히 만들었으며 춘추시대 이후에야 나타난다. 그 전의 갑골문이나 서주 때의 금문에서는 小로 구분 없이 사용했다.
尖(뾰족할 첨)은 비교적 늦게 출현하며 한나라 때쯤 만들어진 글자로, 小가 위에 大(큰 대) 아래 놓여, 아래쪽이 크고 위쪽이 작은 尖塔(첨탑)의 이미지를 그렸다. 이로부터 尖에는 ‘뾰족하다’는 뜻과 ‘예리하다’는 뜻이 나오게 되었고, 다시 尖端(첨단)에서처럼 그 뾰족한 첨탑의 제일 끝에 위치한 ‘최고’라는 의미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尠(尟:적을 선)은 대단히(甚:심) 적다(少)는 의미를 그려낸 글자로, 鮮(고을 선)과 같이 쓰인다.
鮮은 魚(물고기 어)와 羊(양 양)으로 이루어져 물고기(生鮮:생선)와 양고기는 신선해야 한다는 의미를 그렸으며, 이로부터 ‘신선하다’는 뜻이 나왔다. 신선하려면 깨끗하고 빛깔이 고와야 하며 신선한 고기는 드물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곱다’와 ‘드물다’는 뜻이 鮮에 함께 담기게 되었다.
하지만 尙(오히려 상)은 小와 의미적 관련이 없는데도 小부수에 들어 있다. 尙은 금문에서 八과 向(향할 향)으로 구성되었는데 向 은 소리부도 겸한다. 八은 ‘갈라짐’을 뜻하고 向은 집에 창을 그려 창이 난 ‘방향’을 말하여, 창을 통해 위로 퍼져나가는 연기 등을 형상화 했다. 그래서 向 의 원래 뜻은 ‘위’이며 옛날에는 上(위 상)과도 통용했다. ‘위’는 높은 지위를 뜻하기에 崇尙(숭상)이나 尙賢(상현; 어진 사람을 섬김) 등과 같이 ‘받들다’는 뜻도 나왔다.
尸 ( 주검 시 ) ; [ 다리를 굽힌 시체, 굴장의 반영 ]
尸를 ‘설해문자’에서는 누운 사람의 모습이라 했지만, 갑골문은 사람의 다리를 구부린 모습이 분명하다. 혹자는 이를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것이라고도 하지만, 우리나라 남부의 돌무덤에서 자주 발견되는 매장법의 하나인 ‘굽혀 묻기(屈葬 굴장)’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며, ‘굽혀 묻기’는 시신을 태어날 때의 모습으로 되돌림으로써 내세에서의 환생을 기원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尸는 ‘시체'의 원래 뜻이며, 그 뒤 ‘주례’에서의 설명처럼 제사에서 신위 대신 앉히는 사람을 말했으며, 여기서 ‘진열하다’의 뜻이, 다시 진열하는 장소인 ‘집’을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尸는 산사람 보다는 죽은 사람을, 현재보다는 조상대대로 살아온 ‘집’을 뜻한다.
해서체 이후로는 人(사람 인)과 尸가 혼용된 경우도 보인다. 예컨대 屈(굽을 굴), 屍(주검 시) 등은 모두 ‘시체’와 관련되어 있다. 屈은 굽혀 묻기와 직접 관련되어 있고, 屍는 尸에 死(죽을 사)를 더해 의미를 더욱 구체화했다.
또 層(층 층)은 시루(曾:증)처럼 층층이 포개진 집(尸)을, 居(있을 거)는 옛(古:고)부터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尸)을 말한다. 屋(집 옥)은 사람이 이르는(至:지) 집(尸)을 말하는데, 이는 至와 宀(집 면)으로 이루어진 室(집 실)과 같은 구조지만 의미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展(펼 전)에서 尸가 의미부로 가능한 것은 시체를 대신 할 사람을 진열한 데서 기인한다.
그 외에도 尼(중 니), 尾(꼬리 미), 尿(오줌 뇨) 등은 사람(人)과 관련된 글자들이다. 尼는 사람이 사람을 업고 있는 모습에서 친밀감을 그렸는데, 그 뒤 불교의 유입으로 ‘중’을 뜻하게 되었다. 하지만 泥(진흙 니)에는 물(水:수)이 섞여 끈적끈적한(尼) 흙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尾는 엉덩이에 꼬리 장식(毛 모)을 단 모습이며, 尿는 사람이 오줌(水)을 누는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尹(다스릴 윤)은 손으로 붓을 잡은 모습으로부터 행정 사무의 관리자를 그려, 尸와는 의미적 관련이 없는 데도 尸부수에 귀속된 글자다.
川 ( 내 천 ) ; [ 강, 소통의 통로이자 재앙의 원천 ]
강은 인간 문명의 시원이자 재앙의 원천이다. 세계의 고대 문명이 모두 강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강은 인간에게 먹고 씻을 수 있는 물과 주변의 비옥한 토지를 제공했다. 하지만 주변의 비옥한 토지는 거의 매년 발생하는 홍수의 결과이기도 하다. 홍수는 생활의 터전을 죄다 앗아가는 대재앙인 동시에 비옥한 토지를 제공하는 생명의 원천이기도 했다.
川은 갑골문에서 양쪽 강 언덕 사이로 흐르는 물(水:수)을 그려 ‘강’을 형상화 했다. 川은 원래 ‘강’이라는 기본 개념 이외에도, 강 주위로 넓게 펼쳐진 ‘평야’를 뜻하며, 강은 문화권을 경계 짓는 지리적 요소이기도 하지만 다른 문화와의 교류와 교통이 ‘강’을 다라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소통’의 의미까지 가진다.
災(재앙 재)는 갑골문에서 火를 뺀 나머지는 강물이 넘치는 모습을 그렸는데, 이후 가뭄이나 화재를 뜻하는 火(불 화)가 더해져 지금의 災가 되었다. 단위 면적당 최고의 토사량과 대단히 완만한 경사 때문에 홍수가 잦았던 황하 주위의 고대 중국인들에게 홍수는 최대의 재앙이었다.
완만한 경사를 갖고 천천히 흐르는 물길은 뱀처럼 구부러지고, 그곳에는 모래톱이 만들어진다. 州(고을 주)는 굽이쳐 흐르는 강(川) 사이로 형성된 모래톱을 그렸다. 이전에는 큰 강을 경계로 행정구획이 확정되었기에 九州(구주)에서처럼 州가 행정단위로 쓰였고, 그러자 원래의 뜻은 다시 水를 더한 洲(섬 주)로 나타냈다.
동시에 ‘물길’은 고대인들의 이동 통로이자 소통의 상징이다. 巡(돌 순)은 시찰이나 경계를 위해 강의 물길(川)을 따라 가는(辶:착) 것을 말하며, 訓(가르칠 훈)은 말(言:언)을 강물처럼 잘 소통될 수 있도록 풀이 하는 것을, 그것이 가르침의 본질임을 웅변해 준다.
그러나 巢(집 소)는 원래 ‘나무 위의 둥지’를 그려 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글자였다. 하지만 소전체로 들면서 아랫부분은 나무(木:목)를, 중간은 둥지를, 윗부분은 둥지 위로 머리를 내민 새 세 마리를 그려 둥지를 더욱 형상적으로 그렸다.
弓 ( 활 궁 ) ; [ 활, 사냥 도구이자 방어 무기 ]
弓은 갑골문에서 활을 그렸는데, 활시위가 얹힌 경우도 있고 풀린 경우도 보인다. 활은 고대사회에서 식량으로 쓸 짐승을 잡는 도구로 쓰였으며, 야수나 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유용한 무기이기도 하다. 弓으로 구성된 한자는 활을 지칭하거나, 활과 관련된 여러 기능 및 특성과 의미적 관련을 가진다.
예컨대 弔(조문할 조)는 원래 人(사람 인)과 弓으로 구성되어 사람들이 활을 들고 가 ‘조문’하던 모습을 그렸다. 그것은 당시의 장례 습관이 시신을 숲에다 내다 버렸고, 그 때문에 야수들이 시신을 훼손하는 것을 활로써 막아주던 것이 바로 ‘조문’이었기 때문이다.
弦(시위 현)은 실(玄 현)로 만든 활의 ‘시위’를, 弩 (쇠뇌 노)는 화살을 여럿 연속으로 쏘도록 고안된 활을 말한다. 彈(탄알 탄)은 갑골문에서 활에 돌구슬이 장착된 모습으로, 여기서 ‘탄알’과 ‘튕기다’의 뜻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引(끌 인)은 ‘설문해자’에서 활의 시위가 직선(丨:곤)으로 팽팽하게 조율된 활시위는 곧 당겨지게 될 터, 이로부터 ‘당기다’나 ‘끌다’의 뜻이 나왔다. 여기서 파생된 蚓(지렁이 인)은 몸을 당겨(引) 굽혔다 폈다 하면서 움직이는 벌레(虫:충)를 말한다.
弘(넓을 홍)은 갑골문에서 활(弓)에 자사호를 더하여, 화살이 시위를 떠날 때 내는 큰 소리를 형상화하였으며, 이로부터 ‘크다’, ‘강력하다’의 뜻이 나왔다. 여기서 파생된 强(굳셀 강)은 생명력이 대단히 강한(弘) 벌레(虫:충), 즉 쌀벌레(蚚:기)를 지칭했다.
한편, 弗(아니 불)은 제대로 굽지 않은 활을 실로 동여 매여 바로 잡는 모습이다. 이로부터 ‘바르지 않은’ 것을 ‘바로잡다’는 뜻이 나왔고, 다시 부정사로 쓰였다. 그래서 佛(부처 불)은 사람(人)이 아닌(弗) 신의 경지에 오른 존재를, 沸(끓을 비)는 물이 물(水)이 아닌(弗) 기체의 상태로 변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리고 彎(굽을 만)은 활처럼 굽은 것을, 灣(물굽이 만)은 굽어 들어간(彎) 해안을 말한다.
彡 (터럭 삼) ; [ 터럭, 무늬와 장식의 상징 ]
‘설문해자’에서는 彡을 ‘터럭, 장식, 필획, 무늬’ 등을 말한다고 했지만 彡의 원래 의미는 ‘털’로 보인다. 인간이나 동물의 ‘터럭’으로부터 시작하여, 동물의 덥수룩한 털이나 인간의 머리칼과 수염 등이 개인의 특성을 표현한다는 뜻에서 ‘장식’의 의미를 새겼고, 다시 무늬라는 뜻까지 생겼다. 그래서 彡은 화려한 무늬나 장식을 뜻하며, 彡이 들어가면 무성한 털이나 빛나는 문체나 힘차게 뻗어나가는 악기 소리 등의 뜻을 가진다.
예컨대 尨(삽살개 방)은 삽살개처럼 털이 수북한 개(犬:견)를, 須(모름지기 수)는 얼굴(頁:혈)에 난 털, 즉 수염을 말한다. 須가 이후 ‘반듯이’ 라는 뜻으로 쓰이자 다시 髟(머리털 드리워질 표)를 더한 鬚(수염 수)를 만들었는데, 髟 역시 털이 길고(長:장) 수북함(彡)을 말한다. 이들은 모두 ‘터럭’과 관련된 글자들이다.
둘째, 문채를 뜻하는 경우로, 彣(채색 문)은 몸에 새긴 문신을 형상한 文(무늬 문)에 彡을 더하여 알록달록한 화려한 무늬를, 彫(새길 조)는 조밀하고(周:주) 화려하게(彡) 새긴 무늬를, 彤(붉을 동)은 화려한 붉은 색(丹:단)을, 彪(무늬 표)는 얼룩덜룩한 호랑이(虎:호)의 멋진 무늬를 말한다.
또 彦(선비 언)은 인문적(文) 자질이 크게 (厂:엄) 빛나는(彡) 사람을 말한다. 彬(빛날 빈)은 문채(彡)가 숲(林:임)처럼 무성함을 말하며, 文과 武(굳셀 무)를 겸비해야 한다는 의미의 斌(빛날 빈)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셋째, 햇살이나 소리 등이 강하게 퍼져나감을 나타낸 글자들로, 彩(무늬 채)는 손(爪:조)으로 과실을 따는 형상을 그린 采(캘:채)에 彡이 더해져, 화사하게 비치는 햇살 아래 이루어진 채집 행위를 그렸다. 彭(성 팽)은 원래 강하게 퍼져나가는(彡) 북(壴:주)소리를 형상화했는데, 이후 성씨나 지명으로 가차되었다.
彭에 水(물 수)를 더한 膨(부풀 팽)은 창자 같은 내장이 팽팽하게 부풀러 있음을 연상시킨다.
心 (마음 심 ) ; [ 심장, 생각의 원천 ]
心은 갑골문에서 심장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그렸는데, 안쪽은 심장의 판막을, 바깥쪽은 대동맥을 그렸다. 소전체까지는 심장의 모습을 잘 유지 했으나 예서 이후로 잘 알아 볼 수 없게 변해 버렸다. 편방으로 쓰일 때에는 忄(㣺)으로 써 글자의 균형을 고려했다.
‘설해문자’에서는 심장(心)을 음양오행 중 土(토)에 해당하는 장기라고 했다. 우리 몸의 五臟(오장) 중 肝(간)을 金(금), 脾(비)를 木(목), 腎(신)을 水(수), 肺(폐)를 火(화), 心을 土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思(생각할 사)나 想(생각할 상)에서처럼 사람의 생각이 머리가 아닌 심장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心으로 구성된 한자들은 대부분 사상 감정이나 심리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 그 때문에 사람의 성품도 마음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情(뜻 정)에서처럼 사람의 심리 활동을 뜻하는 한자를 보면 志(뜻 지)는 선비(士:사)와 같은 마음(心)에서 강한 의지를, 怒(성낼 노)는 종(奴:노)의 마음(心)에서 분함을, 恩(은혜 은)은 의지(因:인)할 수 있는 마음(心)에서 은혜를, 悶(번민할 민)은 門(문)이 닫힌 것처럼 답답한 마음(心)을, 意는 마음(心)의 소리(音:음)라는 의미를 그렸다. 그리고 怨(원망할 원), 恨(한할 한), 恐(두려울 공), 悲(슬플 비), 悔(뉘우칠 회), 患(근심 환), 憤(성낼 분), 急(급할 급) 등도 모두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또 心은 사람의 성품(性:성)과 관련되어 사람의 덕성과 인품을 뜻하는데, 忠(충성할 충), 恭(공손할 공), 懦(나약할 나), 怠(게으를 태), 愚(어리석을 우) 등이 모두 그러하다.
그런가 하면 心은 몸의 한가운데 있고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기에 中心이나 核心(핵심)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고, 다른 생물체에서의 핵심이라는 의미도 갖게 되었다. 예컨대 蕊(꽃술 예)는 식물의 심장을 가능케 하는 가장 핵심적 존재 즉 ‘꽃술’을 뜻하게 되었다.
戈 (창 과) ; [ 창, 무기이자 내부 결속을 위한 의장용 칼 ]
戈는 갑골문에서 긴 손잡이가 달린 낫 모양의 창을 그렸다. 이는 찌르기 좋도록 만들어진 矛(창 모)와는 달리 적을 베거나 찍기에 편리하도록 고안 되었다. 戈는 고대 중국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무기였고, 그래서 戈로 구성된 한자는 대부분 무기나 전쟁과 관련되어 있다.
예컨대, 戒(경계할 계)는 두 손으로(廾:공) 창(戈)을 들고 지키는 모습을, 戟(창 극)은 낫 창인 戈와 뾰족 창인 矛의 기능을 하나로 합친 다기능 창을, 或(혹시 혹)은 國(나라 국)자의 원래 글자로 창(戈)을 들고 성곽(囗:국)을 지키는 모습을 그렸다.
또 戍(지킬 수)는 창(戈)을 들고 지키는 사람(人)을 그렸는데, 이후 필획을 변화시켜 戌(개 술)로 분화 했다. 그리고 戰(싸울 전)은 창(戈)과 사냥 도구(單:단)가 결합되어 고대사회에서 전쟁과 사냥이 한 데서 출발하였음을 말해 준다.
그런가 하면, 戉(도끼 월)은 날이 둥글고 큰 도끼 모양의 무기를 말하며, 이후 金(쇠 금)을 더한 鉞(도끼 월)로 의미를 더욱 구체화했는데, 여기에 이르면 戈의 의미가 일반적인 무기까지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我(나 아)는 원래 날이 여럿 달린 특수한 창을 그렸는데, 갑골문 당시 이미 ‘우리’라는 집체적 의미로만 쓰였다. 我가 ‘우리’를 뜻하게 된 것을 보통 가차로 보지만, 我에 羊(양) 장식물이 더해진 의장용인 칼인 義(옳을 의)가 공동체 속에서 지켜야 할 ‘의리’를 그렸음을 고려해 볼 때, 我는 적을 치기 위한 대외용 무기가 아니라 내부의 적을 처단하고 이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대내용 무기로 보인다. 그렇다면 我가 ‘우리’의 의미로 쓰인 것은 뜻의 파생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추정은 羲(숨 희)에서도 증명된다. 羲는 갑골문에서 義와 머리가 잘린 돼지의 모습을 그려, 조상신에게 공동체의 안녕을 빌고 단결을 도모하고자 치렀던 제사 때 쓰던 희생물을 말한다. 이후 희생물이 兮(어조사 혜)로 변하고 뜻도 ‘숨’으로 가차되자, 원래의 ‘희생’은 牛(소 우)를 더한 犧(희생 희)로 분화하였다.
戶 (지게 호) ; [ 외짝 문, 보통 사람의 거처의 상징 ]
戶는 갑골문에서 ‘외짝 문’을 그렸고 여기에서 ‘집’의 뜻이 나왔다. 하지만 戶는 창이 아래위로 난 규모 있는 집을 그린 宮(집 궁)이나 가축과 사람이 아래위 층으로 살도록 고안된 家(집 가)와는 달리 극히 서민적인 ‘방’에 가까운 집을 뜻한다. 그래서 扇(부채 선)은 깃털(羽:우)로 여닫이 문(戶)처럼 만든 ‘부채’ 말하며, 啓(열 계)는 원래 손(又:우)으로 문(戶)을 열어젖히는 모습에서 ‘열다’의 뜻을 그렸다.
扁은 문(戶) 위에 거는 가로로 된 글(冊:책), 즉 扁額(편액)을 말했는데, 이후 편액처럼 가로로 길고 납작한 것을 뜻하게 되었다. 扁으로 구성된 다른 글자들 중 編(엮을 편)은 납작한 조각에 쓴 글(扁)을 실(糸:멱)로 ‘엮는’ 것을, 篇(책 편)은 납작한 조각(竹 죽)에 쓴 글을 묶어 만든 ‘책’을 말한다.
偏(치우칠 편)은 내걸린 편액(扁)처럼 ‘두드러진’ 사람(人)을 말하는데, 이는 개성이 뚜렷하거나 일반적 표준과 차이를 보이는 존재를 ‘치우친 인간’으로 보아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고대 중국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遍은 사거리(彳:척)에 내걸린 글(扁)을 말했는데, 이후 彳이 같은 뜻의 辵(쉬엄쉬엄 갈 착)으로 변하고 의미도 ‘두루 퍼지다’, ‘보편’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사거리에 내걸린 글이 온 사방으로 퍼져 나가 일반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한편, 房(방 방)은 곁(方:방)에 위치한 방(戶)을 말하는데, 종묘의 문이나 큰 대문은 門을 쓰고 곁으로 배치된 방들은 戶를 사용했다는 ‘주례’의 말은 이를 두고 한 것이다. 그래서 房은 집의 중앙에 놓인 正室(정실) 곁으로 배치된 側室(측실)을 말하며, 이후 이처럼 격자형으로 분할된 ‘방’을 뜻하게 되었다.
所(바 소)는 고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도구의 하나인 도끼(斤:근)가 놓인 그 방(戶)이 바로 사람이 ‘거처하는 곳’ 즉 처소(處所)라는 의미를 그려 내었으며, 이후 ‘ ....하는 곳(것, 사람, 바)’을 뜻하게 되었다.
工 (장인 공) ; [ 돌 절굿공이, 황토지대의 유용한 공구 ]
工을 놓고 도끼를 그렸다는 둥 자를 그렸다는 둥 의견이 분분하지만 갑골문을 보면 땅을 다질 때 쓰던 돌 절굿공이를 그렸음이 분명하다. 윗부분은 손잡이고 아랫부분이 돌 절굿공인데, 딱딱한 거북딱지에 칼로 새기는 과정에서 아랫부분이 네모꼴로 변했을 뿐이다. 지금도 황하 유역을 가면 집터를 만들거나 담을 쌓아 올릴 때 진흙을 다져 만드는 것(版築法 판축법)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때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도구가 바로 돌 절굿공이이다.
그래서 工은 이 지역의 가장 대표적 도구라는 뜻에서 工具(공구)의 뜻이 나왔고, 공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을 工匠(공장), 공구를 사용한 작업을 工程(공정)이나 工作(공작)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 집터나 담이나 성은 정교하고 튼튼하게 다지고 쌓아야만 무너지지 않는 법이니, 이로부터 巧(공교할 교)가 만들어졌다.
功(공 공)은 온 힘(力:력)을 다해 돌 절굿공이(工)로 흙을 쌓는 모습이다. 이것은 고대 사회에서 功은 전쟁에서 세운 공(戰功 전공)보다 토목 등 구성원의 안정된 생활을 위한 것이 더욱 근원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巨(클 거)는 갑골문에서 성인 남성(夫:부)이 톱이나 자 같은 공구를 쥐고 있는 모습이며, 이후 힘이 세고 몸집이 큰 성인 남성이라는 뜻에서 ‘크다’의 의미를, 공구로 하는 토목공사 등은 규정된 법칙을 지켜야 한다는 뜻에서 ‘규칙’을 의미하게 되었다. 다만 전자는 공구를 그린 부분만 남아 巨로 쓰이게 되었고, 후자는 성인 남성(夫)을 그린 부분이 矢(화살 시)로 잘못 변해 矩(榘:곱자 구)가 되어 분화했을 뿐이다.
渠(도량 거)는 바로 이러한 공구(矩)로 공사를 벌여 만든 물길을 말한다.
式(법 식)또한 공구(工)를 사용할 때 의 법칙을 말하지만, 현행 옥편에서는 소리부인 弋(주살 익)부수에 편입되었다.
이외에도 左(왼 좌)는 왼손으로 공구(工)를 든 모습을, 差(어긋날 차)는 왼손(左)으로 꼰 새끼로부터 정확하지도 굵기가 가지런하지도 못하여 짚이 삐죽삐죽 나온 모습을 그렸다.
巾 (수건 건) ; [ 비단, 필사 재료이자 화폐의 대용 ]
巾은 허리에 차는 수건을 그렸는데, 자락이 아래로 드리워진 모습이다. 수건은 베로 만들기에 ‘베’라는 뜻이, 비단은 고대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베였기에 ‘비단’의 뜻이, 다시 그 용도에 근거해 옷감은 물론 깃발이나 휘장, 혹은 필사 재료나 화폐의 의미로까지 쓰이게 되었다.
먼저 옷감으로 쓰인 용례를 보면 帶(띠 대)는 허리띠 아래로 술 같은 장식물이 드리운 모습으로 ‘허리띠’를 그렸고, 帀(두를 잡)은 이를 더욱 간단하게 한 글자다.
常(항상 상)은 ‘치마’가 원래 뜻인데, 고대사회에서 ‘치마’는 언제나 사용되는 일상품 이었기에 日常(일상)의 뜻이 나왔다. 그러자 원래 뜻은 衣(옷 의)로 대체한 裳(치마 상)으로 표현했다. 布(베 포)는 금문에서 소리부인 父(아비 부)와 巾으로 되어 ‘베’를 나타냈다. 希(바랄 희)는 올을 성기게 짠 베(爻:효)를 말하며 이로부터 ‘드문드문하다’의 뜻이 나왔고, 이후 希望(희망, 드문 바람)이라는 의미까지 생겼다.
둘째, 베는 깃발이나 휘장, 장막, 돛 등의 재료로 쓰인다. 그래서 帳幕(장막)의 帳은 베를 길게(長:장) 덮어 만든 것이요, 幕은 속으로 들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설치물(莫:막)이라는 뜻이 담겼다. 帆(돛 범)은 돛을 그린 凡(무릇 범)에 다시 巾을 더한 글자이며, 幟(기 치)는 자신의 부족을 상징하는 토템을 그려 넣은 베(戠:시)로 만든 ‘깃발’을 말한다. 市 (저자 시)는 시장이 서는 곳에 깃발을 세운 데서 유래했다.
셋째, 비단은 귀한 베였기에 화폐의 대용으로, 종이가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최고급의 필사 재료로 쓰였다. 帛(비단 백)은 아무 무늬를 넣지 않은(白:백) 글쓰기에 좋은 비단을 말하며, 幅(폭 폭)은 비단에 축복하는(偪:복) 글을 쓴 ‘족자’를 말한다. 또 幣(비단 폐)는 새로운(敝:폐) 옷감(巾)이라는 의미로, 幣帛에서처럼 예물로 보내는 비단을 말하며 이로부터 예물이나 화폐의 뜻까지 생겨났다. 幫(幇:도울 방)은 돈(帛)을 주고 북돋아 주며(封:봉) 서로를 격려하는 것을 말한다.
手 (손 수) ; [ 손, 인류의 문명을 꾸려 낸 도구 ]
手는 금문에서부터 등장하며, 손의 모습을 특이하게 그렸다. 어찌 보면 나뭇잎의 잎맥이나 나뭇가지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글자는 사실 손의 뼈대를 형상화하여, 가운데 손가락을 중심으로 네 손가락이 대칭으로 균등하게 펼쳐진 모습이다.
인류가 직립 보행을 하게 되면서 해방된 손은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문명을 발달시켜 나가는 가장 중요한 부위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手는 도구 사용의 상징이 되었고, 高手(고수)나 鼓手(고수)처럼 도구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사람’ 그 자체를 말하기도 했다.
掌(손바닥 장)은 ‘손바닥’을 말하는데, 위로(尙:상) 향한 손(手)라는 의미다. 손바닥은 발바닥과 마찬가지로 아래로 향해 있기에, 이를 뒤집어 위로 향하게 할 때 분명하게 드러나고 그것이 특징적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또 손은 그 자체로도 도구였지만 도구를 사용하는 대표적 신체기관이다. 예컨대 打(칠 타)는 못(丁:정)을 치는 손동작을 그렸는데, 현대 중국어에서 거의 모든 동작을 다 대표할 수 있는 동사로 발전했다. 扛(들 강)은 땅을 다질 때 쓰는 달구(工:공)같은 도구를 손으로 든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손’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에게 존중을 표하는 부위이기도 했다. 拜(절 배)는 원래 새로 수확한 곡식을 조상신에게 두 손으로 바치는 모습이었으나, 소전체에서 두 손(手)과 下(아래 하)로 구성되어 두 손을 모아 자신을 낮추며 ‘공경’을 표시하는 의미를 그려냈다. 承(받들 승)은 갑골문에서 앉은 사람(㔾:절)을 두 손으로 받드는(廾:공) 모습이었으나 소전체 이후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로부터 ‘받들다’의 의미가 나왔고, 繼承(계승)에서처럼 이전의 경험을 존중하며 이어간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折(꺾을 절)은 도끼(斤:근)로 잘라놓은 풀이나 나뭇가지를 그렸는데 소전체에 들어 지금의 자형으로 변했고, 才(재주 재)는 싹이 땅(一)을 비집고 올라오는 모습으로부터 그 위대한 ‘재주’를 형상화 한 글자로, 원래는 모두 手부수와 관계없는 글자들이었다.
攴 (칠 복) ; [ 매, 강제와 가르침의 수단 ]
攴(攵)은 갑골문에서 손에 막대나 연장을 들고 무엇인가를 치는 모습이다. ‘설해문자’에서는 攴을 ‘가볍게 치는’것이라고 했지만, 攴의 실제의 의미는 훨씬 다양하다. 때로는 악기나 대상물을 치는 것을, 때로는 회초리로 상대를 굴복시킴을, 때로는 가르침의 수단을 뜻하기도 했다.
먼저, ‘치다’는 攴의 기본 의미인데, 鼓(북 고)는 북채로 북(壴:주)을 치는 모습을, 敲(두드릴 고)는 높게 지은 집(高:고)의 문을 두드리는 모습을 그렸다. 散(흩을 산)은 길쌈을 위해 삼(麻 마)을 막대로 쳐 속과 껍질을 ‘분리해’ 내는 모습을 그렸다.
둘째, 대상물을 깨뜨리는 것을 말하는데, 敗(깨뜨릴 패)는 조개(貝:패)를 막대로 쳐 깨뜨림을 그렸다. 조개는 화폐로 쓰였기에 재산을 뜻했고 조개의 파괴는 파산의 상징이었다. 그전 갑골문에서는 敗가 鼎(솥 정)과 攵으로 구성되어, 당시 가장 중요한 가재 도구였던 솥의 파괴로써 파산을 그려냈다. 나아가 鼎은 크게는 九鼎(구정)의 전설에서 보듯 한 국가의 정통성을, 작게는 한 종족이나 가족의 상징이기도 했다.
셋째, 매는 대상물을 강제하고 다스리는 수단이기도 했다. 예컨대, 改(고칠 개)는 아이(巳:사)를 매로 ‘바로잡음’을 말했는데 巳가 己(몸 기)로 바뀌었고, 政(정사 정)은 매로 쳐 바르게(正:정)하는 것을 말한다. 牧(칠 목)역시 소 (牛:우)를 회초리로 치며 기르는 것을 말하였으나, 이후 牧民(목민)에서처럼 백성(民)으로까지 대상이 확장되었다.
그런가 하면, 매는 교육의 수단이기도 했다. 敎(가르칠 교)는 아이(子:자)에게 새끼매듭 지우는 법(爻:효)을 회초리로 치며 가르치는 모습을 그렸는데, 새끼매듭(結繩 결승)은 문자가 출현하기 전 기억을 보조하던 주요 수단이었다. 斅(가르칠 효)나 學(배울 학)도 모두 같은 모습에서 나온 글자들이다.
또 敏(재바를 민)은 비녀를 꽂은 여인(每:매), 즉 어머니(母:모)의 회초리(攵)라는 뜻으로, 어머니에게 매를 맞아 가며 지혜와 지식을 전수 받던 옛날의 교육 모습이 반영 되어 있다.
斗 (말 두) ; [ 말, 용기의 대표이자 과학의 출발 ]
斗는 술을 뜰 때 쓰던 손잡이 달린 국자 모양의 容器(용기)를 말했는데, 이후 곡식을 나눌 때 쓰던 용기 즉 ‘말’을 지칭하여 용기의 대표가 되었고, 다시 北斗七星(북두칠성)이나 南斗星(남두성)처럼 국자같이 생긴 것을 통칭하게 되었다. 따라서 斗로 구성된 한자는 모두 이러한 용기와 의미적 관련을 가진다.
예컨대, 斟(짐작할 짐)은 斗와 甚(심할 심)으로 구성되었는데, 甚은 소리부도 겸한다. 甚은 葚(오디 심) 椹(오디 심) 黮(오디 담)등과 관련 지어 볼 때 ‘오디’로 만든 술을 말하며, ‘술(甚)을 국자(斗)로 나누어 담음’이 斟의 원래 뜻이라 할 수 있다. 斟과 자주 어울리는 酌(따를 작)도 斟과 같이 국자(勺:작)로 술(酉:유)을 뜨는 모습에서 그 의미를 가져왔다.
그런가 하면 科(과정 과)는 말(斗)로 곡식(禾:화)의 양을 재는 것을 말한다. 곡식의 양을 재기 위해서는 분류가 이루어질 것이고, 분류된 곡식은 그 질에 따라 等級(등급)이 매겨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科에 ‘等級’과 ‘분류’의 뜻이 함께 생겼다. 科學(과학)은 곡식(禾)을 용기(斗)로 잴 때처럼 ‘정확한’ 학문(學)이라는 뜻으로,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척도가 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科學의 정신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지식이라는 어원을 가지는 ‘사이언스(science)’보다 더욱더 현대적 의미의 科學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에 비해 斜(비낄 사)는 나(余:여)의 말(斗)이라는 뜻으로, 자신이 재는 용기는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치우치게 마련이기에 斜에 ‘치우치다’는 뜻이 나왔다.
料(되질할 료)는 쌀(米:미)을 용기(斗)로 재는 모습이다. 쌀을 말로 되면서 그 양을 ‘헤아리게’ 되고, 그래서 ‘추측하다’는 뜻까지 나왔다. 料理(요리)는 음식을 만들 때 재료의 양을 정확하게 헤아려(料) 갈무리(理)함을 말한다. 훌륭한 料理란 배합 될 재료의 양을 정확하게 斟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보여 주고 있다.
方 (모 방) ; [ 쟁기, 선진 농업의 상징 ]
方의 자원은 확실치 않다. ‘설해문자’ 는 배(舟:주)를 둘 합쳐 놓은 것이 라고 했지만, 갑골문을 보면 쟁기가 분명하다 위는 손잡이를, 중간은 발판을, 아래는 갈라진 날을 그린 碎土(쇄토)형 쟁기이다. 쟁기는 흙을 갈아 엎는 유용한 농기구로, 중국의 쟁기는 세계의 다른 지역보다 수백 년이나 앞서 발명되고 응용될 정도로 선진 농업의 상징이기도 했다. 쟁기로 밭을 갈면 보습에 의해 각진 흙덩이가 올라오게 되는데, 이로부터 여러 뜻이 생겨났다.
흙은 땅의 상징이며, 농경을 주로 했던 중국에서 땅은 ‘나라’ 그 자체였다. 게다가 땅이 네모졌다고 생각했기에 ‘네모’ 나 땅의 ‘가장자리’까지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方 에는 나라는 물론 地方에서처럼 땅, 方向(방향), 다시 方正에서처럼 ‘각 짐’과 ‘정직함’, 네모꼴로 된 종이에 처방(處方)을 내린다고 해서 ‘방법’ 등의 뜻까지 생겼다.
따라서 放 (놓을 방)은 변방(方)으로 강제로 ‘내침(攵:복)’을, 防(둑 방)은 강가나 성 주위(方)에 흙으로(阜:부) 쌓은 둑을 말한다. 訪(찾을 방)은 좋은 의견을 구하려고 주위(方)의 다른 나라로 찾아가 묻는(言:언) 것을 말한다. 하지만 진나라에 이르면 ‘설문해자’의 해석처럼 方이 ‘나란하다’는 의미로 쓰이는데, 이는 ‘배를 합친’ 것에서 나온 뜻이 아니라, 쟁기질로 일으킨 흙을 줄지어 나란히 뒤엎은 모습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쟁기는 이쯤 되면 보습의 볏이 더해짐으로써 보습으로 일군 흙을 볏이 한쪽으로 조용히 뒤엎어 말끔한 이랑을 만들 수 있도록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旁(곁 방)은 바로 方에 볏이 더해진 모습이다. 또 仿(비슷할 방)은 사람(人:인)이 나란한 모습에서 ‘비슷함’을, 妨(방해할 방)은 여자(女:여)가 줄지어 있음에서 ‘방해’를, 坊(동네 방)은 나란히 낸 길을 뜻한다.
하지만 旅(군사 려), 旗(기 기), 旋(돌 선), 族(겨레 족), 施(베풀 시) 등은 나부끼는 깃발을 그린 언(方+人;깃발 날릴)으로 구성되어 사실 方과 관계없는 글자들이다.
日 (날 일) ; [ 태양, 시간의 척도 ]
日은 태양을 그렸는데, 중간의 점이 특징적이다. 이를 태양의 흑점으로도 보지만 중국의 신화에서 태양에 산다고 하는 삼족오의 상징으로도 풀이한다. 태양은 일류가 볼 수 있는 가장 강한 빛과 만물을 생장케 하는 무한한 에너지를 가졌다. 이의 위치로 시간대를 확정하고, 뜨고 지는 주기로 ‘하루’를 나타냈으며, 이 때문에 시간의 총칭이자 달력(曆:력)의 의미까지 갖게 되었다.
먼저, 易(陽:볕 양), 昆(형 곤)등은 태양을 직접 지칭한다. 易은 제단(示:시)에다 태양이 더해져 태양 숭배사상을 그렸고, 昆은 ‘두 사람(比:비)의 머리 위로 태양이 위치한’ 데서 ‘정오’, ‘하늘의 끝’, ‘정남쪽’ 등의 뜻이 나왔다. 旭(밝을 욱)은 태양이 9개나 되어 더없이 밝음을, 春 (봄 춘)은 햇빛을 받아 풀(艹:초)이 돋아날 때임을 그렸다.
태양의 위치는 하루의 시간대를 파악 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되기도 했다. 예컨대 旦(아침 단)은 해가 지평선 위로 떠오름을, 晨(새벽 신)은 조개(辰:신) 칼로 농사일을 시작하는 이른 시간을, 朝(아침 조)는 해가 수풀(艹:초) 사이로 떠올랐으나 달(月:월)이 아직 지지 않은 아침을, 昏(어두울 혼)은 해가 사람(氏:씨) 아래로 떨어진 시간대를 그렸다. 暮(저물 모)는 원래 풀 숲(茻:망) 사이로 해가 지는 모습인 莫(없을 막)으로 썼으나 이후 다시 日을 더해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晝(낮 주)는 붓(聿:율)과 태양을 그려 붓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낮’ 시간을, 時(때 시)는 원래 日과 之(갈 지)로 구성되어 ‘태양의 운행’으로부터 ‘시간’을 그려냈다. 是(옳을 시)는 원래 日과 正(바를 정)으로 구성되어 해가 한가운데 위치 할 때를 말했고 이로부터 ‘곧 바르다’ ‘옳다’의 뜻이 나왔다. 그리고 昔 (옛 석)은 원래 巛(災 재앙 재)와 日로 구성되어 ‘홍수가 났던 그때’로부터 ‘옛날’의 의미를 그렸다.
하지만 晉(나아갈 진), 旨(맛있을 지), 易(바꿀 역, 쉬울 이), 星(별 성), 晶(밝을 정) 등은 모두 태양과 관련된 글자들은 아니다.
月 (달 월) ; [ 달, 두꺼비와 빛 ]
月은 태양(日:일)과 쉽게 구분하고자 보름달이 아닌 반달을 그렸다. 月도 日과 같이 중간의 들어간 점이 특징적이다. 이를 달 표면의 음영이라고도 하나 중국 신화에서 달에 산다고 하는 蟾蜍(섬여 두꺼비)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옥편의 月부수에는 舟(배 주)나 肉(고기 육)등 모양이 비슷해 잘못 변한 글자들이 함께 들어 있다.
예컨대 有(있을 유)는 손(又:우)으로 고기(肉)를 잡는 모습에서 ‘所有(소유)’를, 服(옷 복)은 배(舟) 앞에 손으로 사람을 꿇어앉히는 모습에서 ‘屈服(굴복)’의 의미를 그렸다. 또 朋(벗 붕)은 한 번에 3000리를 난다는 붕새(鵬:붕)를 그렸는데, 붕새가 고상한 새이고 떼 지어 다닌다고 해서 ‘친구’의 뜻이 생겼다.
하지만 望(바랄 망), 朔(초하루 삭), 朗(밝을 랑) 등은 모두 달과 관련된 글자다. 望은 사람이 뒤꿈치를 들고 보름달(月)을 바라보는 모습이었고 이후 소리부인 亡(없을 망)이 더해져 지금처럼 되었다.
그러자 존재하지 않는(亡) 것을 달(月)을 보며 기원하는 모습이 더 구체화 되었다. 朔은 屰(逆:거스를 역)과 月로 이루어져, 차고 이지러지는 달의 주기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감을 뜻하며, ‘초하루’와 ‘시작’, ‘새벽’, ‘북쪽’ 등의 의미가 나왔다.
朗을 구성하는 良(좋을 양)은 풀이가 다양하다. 하지만 갑골문에서 원형이나 네모꼴로 된 (동굴)집과 그 아래로 길이 난 모습이어서, 집으로 통하는 길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집으로 가는 길은 흡족함의 상징이기에 良에 좋다는 뜻이 생겼고, 원래 뜻은 阜(언덕 부)가 더해져 郞(사나이 랑)이 되었다.
하지만 郞도 궁중의 회랑(郞)에서 일을 보는 최측근을 郎中(낭중)이라 했던 것처럼 ‘훌륭하고 뛰어난’ 신하를 뜻하게 되자, 다시 广(집 엄)을 더한 廊(복도 랑)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朗은 집으로 가는 길(良)을 비추어 주는 달빛(月)이다. 밤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달빛이 얼마나 밝고 유용한 길잡이가 되는지 쉽게 이해할 것이다. 이 때문에 ‘밝다’는 뜻이 나왔다.
曰 (가로 왈) ; [ 입에서 말이 나오는 모습 ]
曰은 입(口:구)에 가로획을 더하여 입에서 ‘말’이 나오는 모습을 그렸다. 曷(어찌 갈)은 입을 쩍 벌린 모습에서 큰 소리로 ‘요구하다’의 뜻이 나왔다. 하지만 曰부수에 귀속된 나머지 글자들은 대부분 ‘말하다’는 뜻과 관계없이, 예서로 들면서 자형이 잘못 변한 글자들이다.
첫째, 그릇이나 용기를 그렸던 것이 曰로 변한 글자로, 書(글 서), 曾(일찍 증), 會(모일 회)등이 있다. 書는 붓(聿:률)과 그릇을 그려 그릇에 담긴 먹을 찍어 ‘글’을 쓰는 모습을, 替(없앨 체)는 용기에 담긴 목 잘린 돼지를 그려 희생 제물로 쓰고 난 후 ‘폐기’하는 모습을 형성화 했다.
또 曾(일찍 증)은 김이 솟아나는 시루를 그렸는데, 시루는 그릇을 포개 놓은 것이 특징임으로 해서 ‘중첩되다’뜻이 나왔고, 다시 瓦(기와 와)를 더한 甑(시루 증)으로 분화했다. 曾으로 이루어진 增(불을 증), 憎(미워할 증), 贈(보낼 증), 繒(비단 증), 등에도 모두 ‘쌓이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會(모일 회)는 저장통과 내용물과 덮개를 갖춘 ‘창고’를 형상화했다. 창고는 온갖 곡식을 한데 ‘모아두는’ 곳이며, 훌륭한 사람들을 두루 모으는 것이 동양사회의 능력이었기에 ‘~~할 수 있다’는 뜻까지 나왔다.
둘째, 모자나 굽은 모습이 曰로 잘못 변한 경우이다. 最(가장 최)는 머리에 상징인 모자를 빼앗음(取:취)에서 ‘최고’의 軍功(군공)을 세우다는 뜻이 나왔다. 또 曲(굽을 곡)은 대나 버드나무로 엮은 광주리의 측면을 그려 ‘굽음’을 나타냈다.
한편 曼(끌 만)은 갑골문에서 아래위의 두 손으로 잠이 와 견딜 수 없는 눈(目:목)을 벌리는 모습으로부터 ‘늘어뜨리다’, ‘끌다’의 뜻이 나왔다.
하지만 이후 위의 손이 모자로 변해 지금처럼 되었다. 그래서 慢(게으를 만)은 마음(心:심)이 늘어짐을, 漫(질펀할 만)은 물(水:수)이 넘쳐 퍼져 흐름을, 幔(막 만)은 베(巾:건)를 늘어뜨린 수레의 ‘막’을, 墁(흙손 만)은 흙(土:토)을 넓게 퍼지도록 하는 미장 도구를 말한다.
木 (나무 목) ; [ 나무, 인류 생활의 중요한 자원 ]
木은 줄기를 중심으로 잘 뻗은 가지와 부리를 그렸으며, 林(수풀 임)과 森(나무 빽빽할 삼)은 木을 중첩해 의미를 강화한 경우로 ‘나무’라는 원래 의미가 그대로 담겨 있다 나무는 인간세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기에 이를 이용해 ‘위치’나 ‘방향’을 표시하기도 했다. 예컨대 末(끝 말), 本(밑 본), 朱(붉을 주)등은 木에 다 위, 아래, 가운데 부위를 표시하는 부호를 붙여 만든 글자들이다. 東(동녁 동)은 해가 나무의 걸린 모습에서 해 뜨는 쪽을, 杲(밝을 고)는 해가 나무 위에 위치한 모습에서 한낮의 밝음을, 杳(어두울 묘)는 해가 나무 아래로 떨어진 어둑해진 때를 말한다.
나무는 인간 생활의 기물을 만드는 더없이 중요한 재료로 쓰였다. 나무는 다양한 목제품은 물론 울타리(樊:번)나 기둥(株:주)이나 악기(樂:악)의 재료로, 염료(染:염)로 심지어 저울추(權:권)나 거푸집(模:모), 술통(樽:준), 쟁반(槃:반) 등을 만드는 데 쓰였다. 그래서 材(재목 재)는 갖가지 재주(才:재)로 기물을 만들어 내는 나무(木)라는 뜻이 담겼다.
여기서의 樊은 원래 아랫부분이 廾(두 손 마주잡을 공)으로, 두 손으로 나무 울타리를 엮는 모습을, 樂은 나무와 실(幺:요)로 만든 악기를, 染은 나무에서 채취한 여러(九:구) 염료를 물에 담가 染色(염색)하는 모습을 그렸다.
한편 柔(부드러울 유)는 창(矛:모)의 자루로 쓰는 나무(木)는 유연성이 있어야 함을 웅변해 준다. 창은 강함의 상징이지만 창이 강함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연한 나무를 써야 한다는 것은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노자의 주장과 일치한다. 여기서 파생된 蹂(밟을:유)는 발(足:족)로 짓뭉갬을, 揉(주무를:유)는 손(手:수)으로 문질러 부드럽게 만드는 것을, 煣(휘어 바로잡을 유)는 불로 나무를 구워서 원래 형으로 바로잡음을 말한다.
이러한 나무가 제대로 자라려면 심을 때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植(심을 식)은 바로 곧게 (直:직) 심어야 한다는 뜻이다.
止 (발 지) ; [ 발, 멈추는 것과 가는 것 ]
止는 사람의 ‘발’을 그렸는데, 이후 발가락을 셋으로 상징화해 지금처럼 되었다. 발은 신체의 일부기도 하지만 가야 할 때와 멈출 때를 결정하기도 하고, 나아가 역사를 일구어 나가는 것 도한 인간의 발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止는 ‘가다’와 ‘그치다’는 물론 인간의 과거 흔적에서부터 다가올 미래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우선 步(걸을 보), 涉(건널 섭), 歲(해 세) 등은 ‘발’의 의미로 쓰였다. 步는 두 발을 그려 걷는 모습을, 涉은 두 발 중 한 발이 이미 물(水:수)을 ‘건넌’ 모습이다. 歲는 날이 크고 둥근 낫(戉:월)으로 걸어가며(步) 수확하는 모습이며, 수확에서 다음 수확 때까지를 ‘1년’이라 했다.
둘째, ‘가다’는 뜻으로 쓰인 경우이다. 正(바를 정)은 성(囗:국)을 정벌하러 가는(止) 모습인데 이후 囗이 가로획으로 변했다. 정벌은 언제나 정당할 때만 가능했기에 ‘정의’의 뜻이 생겼고, 원래 뜻은 征(칠 정)으로 분화했다.
歪(비뚤 왜)는 바르지(正) 않다(不 불)는 뜻이다. 또 武(굳셀 무)는 무기(戈 과)를 메고 가는 (止) ‘씩씩한 모습’을 그렸다. 이를 두고 혹자는 전쟁(戈)을 그치게(止) 하는 것이 바로 ‘무력(武)’이라 풀이하지만 이는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그것은 무력보다 대화가 전쟁을 그치게 하는 더욱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歷(지낼 력), 此(이 차), 企(꾀할 기) 등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시간과 관련되어 있다. 과거란 인간이 걸어온 흔적이며, 현재란 인간이 서 있는 자리이며, 미래란 인간이 바라는 그 무엇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철저히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그렸다. 歷은 원래 곡식(秝:력)이 제대로 자랐는지를 걸어가며(止) 확인하는 모습에서 ‘지나감’을 그렸고, 지나간 과거를 다 모으면 바로 歷史(역사)가 된다. 현재란 此처럼 사람(匕:비)이 발(止)로 밟고 있는 ‘이곳’이며, 바로 이 공간이다. 또 미래란 企에서처럼 사람(人)이 발(止)을 돋운 채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그것이다.
歹 (歺 뼈 부서질 알) ; [ 앙상하게 남은 뼈 ]
歹(歺)은 앙상하게 남은 뼈를 그렸다. 이는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숲에 버리고 썩어 뼈만 남으면 수습해 처리하던 옛 장례법을 반영한다. 그래서 歹에는 ‘뼈’와 ‘죽음’이 뜻이, 다시 죽음 뒤의 새 생명이라는 의미가 생겼다.
먼저 死(죽을 사), 殊(죽일 수) 등은 죽음이나 장례와 관련되어 있다. 死는 앙상한 뼈(歹) 앞에 꿇어앉아 애도하는 사람(人)을 그렸고, 이로부터 ‘죽다’의 뜻이 나왔다. 여기서 파생된 屍(주검 시)는 시선을, 葬(장사 지낼 장)은 시신(死)을 숲(茻:망) 속에 내다버리던 장례 풍습을 반영했다. 薨(죽을 훙)을 夢(꿈 몽)의 생략된 모습과 歹로 이루어져, 왕이나 제후 등의 죽음을 특별히 지칭했다.
그리고 殊를 구성하는 朱(붉을 주)는 그 자체가 ‘붉은’ 피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고대사회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자연사한 사람의 영혼이 피를 타고 육신에서 분리될 수 있도록 칼집을 내거나 붉은 칠을 하던 ‘특이한’ 피 흘림 행위를 상징하기도 하며, 이로부터 ‘特殊(특수)’의 의미가 나왔을 것이다.
둘째, 뼈와 관련된 경우, 列(벌릴 렬)은 칼(刀:도)로 발라낸 뼈(歹)를 말한다. 갈라낸 뼈를 가지런히 배열해 두듯, 사람을 나열해 분류한 것을 例(보기 예), 뼈를 갈라내듯 베(衣:의)를 잘라내는 것을 裂(찢을 렬), 갈라낸 뼈(列)를 태우는 세찬 불(火:화)을 烈(세찰 렬)이라 한다.
셋째, 죽음 뒤에 피어나는 새 생명이라는 뜻으로, 殖(번성할 식)이 여기에 해당 된다. 殖은 ‘시신’ 이외에도 ‘增殖(증식)’의 뜻을 가지는데, ‘설문해자’에서는 ‘오래된 기름진 살’ 이라 했다. 시체가 오래되면 기름진 살이 썩어 없어지고 뼈(歹)만 삐죽삐죽(直:직) 드러나게 되는데 이러한 모습을 반영했다. 살이 썩어 문드러지는 ‘죽음’은 바로 새 생명의 상징이며, 정착농경을 하면서 순환론적 사고에 익숙했던 고대 중국인들에게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의 시작으로 쉽게 이해되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殖에 ‘자라나다’는 뜻이 담기게 되었을 것이다.
殳 (창 수) ; [ 창과 침 ]
殳는 갑골문에서 끝이 뾰족한 창을 손(又:우)으로 든 모습이다. 옛 기록에 의하면 殳는 길이가 1丈(장) 8尺(척)에 모서리가 8각형으로 생겼고 군대가 전진할 때 전차의 양쪽에 꽂거나 보병이 들고 적의 근접을 막는 무기라 했는데, 1974년 진시황의 병마용 갱에서 실물이 발견돼 이를 증명해 주었다. 그래서 殳는 창, ‘때리다’ 창과 유사한 도구 등의 뜻을 가진다.
우선 창을 뜻하는 글자로 役(부릴 역)은 사람(人)의 뒤쪽으로 殳가 놓여 사람을 負役(부역)이나 勞役(노역)에 강제로 몰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殺(죽일 살)은 원래 짐승의 몸체에 죽임을 상징하는 삐침 획을 더해 ‘죽이다’는 듯을 그렸는데 이후 殳를 더해 죽이는 방법을 구체화 했다.
毅(굳셀 의)도 원래는 殳를 뺀 나머지 글자로써 멧돼지(豕:시)의 털을 칼(辛:신)로 깍는 모습을 그렸고 다시 殳가 더해졌는데, ‘멧돼지’는 강인함의 대표이고 그 ‘털’은 뺏뺏함의 상징이기에 ‘굳세다’는 뜻이 생겼다.
둘째, 창과 유사한 도구로 段(구분 단)은 갈고랑이 같은 도구(殳)로 언덕에서 광석을 캐내는 모습인데 캐낸 광물은 불로 녹이고 두드려 필요한 연장을 만든다. 그래서 段은 ‘두드리다’는 뜻과 ‘잘라낸’ 광석이라는 뜻에서 어떤 구분된‘段落(단락)’을 말하게 되었다. 여기서 파생된 鍛 (煅:쇠 불릴 단)은 연장을 만들기 위해 쇠를 불에 녹여 불리는 것을, 碫(숫돌 단)은 잘라 놓은 돌을, 緞(비단 단)은 일정한 길이로 재단해 놓은 비단을 말한다.
셋째, ‘침’을 뜻하는 경우다. 殷(성할 은)은 원래 침을 들고(殳) 불록한 배(身:신)를 치료하는 모습에서 병세가 대단히 ‘심각함’을, 이로부터 ‘크다’와 ‘성대하다’ 는 뜻이 나왔다. 그러자 원래 뜻은 다시 心을 더하여 慇(괴로워할 은)으로 분화했다.
醫(의원 의)는 부상병에게서 뽑아낸 화살촉(矢:시)이 상자(匚 방)에 들어 있고 외과용 수술도구를 손에 든 모습(殳)으로써 ‘의사’를 그렸고, 이후 마취제로 쓸 술(酉:유)이 더해져 지금의 醫가 되었다.
母 ( 어미 모 ) ; [ 근원에서 독까지 ]
여자와 어머니의 차이는 젖이다. 손을 모으고 앉은 여인(女)에 유방을 의미하는 두 점이 더해져 母가 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어머니는 젖으로 아이를 키운다. 아이가 젖을 뗄 무렵이 되면 회초리로 아이를 가르치고 훈육하는데 이것을 어머니의 주된 역할로 보았다. 그래서 태어나면서 체득하는 모든 것에는 母가 들어간다.
예컨대 태어나서 바로 배우는 언어가 母國語(모국어)이고 태어나서 자신이 속한 문화를 체득하는 곳이 母國(모국)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익숙하고 편안한 존재이지 유혹하고 싶은 ‘여자’는 아니다. 每(매양 매)에서 보듯 비녀를 하나 꽂은 어머니는 항상 변하지 않고 꿋꿋한 존재이다. 이로부터 每樣(매양 언제나)의 뜻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誨(가르칠 회), 敏(재빠를 민), 海(바다 해)에는 ‘어머니’라는 원래의 뜻이 담겨 있다. 즉, 誨는 ‘어머니(每)의 말씀(言:언)’을, 敏은 자식을 가르치는 ‘어머니(每)의 회초리(攵:복)’를, 海는 ‘어머니(每)의 존재와 같은 물(水)’을 말한다.
毓(기를 육)도 어머니(每)의 몸에서 머리부터 나오는 아이의 모습을 그렸고, 이로부터 아이를 낳아 ‘기르다’는 뜻이 생겼다. 하지만 어머니(每)가 본연의 의무를 망각하고 쾌락을 누리고자 하면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니라 남자를 유혹하는 음란한 여성이 된다.
글자를 자세히 보라.
毐(음란할 애)는 비녀가 아닌 둘이다. 여기서 비녀의 수가 더 늘어나면 그녀는 이제 사회에서 근절되어야 할 毒(독 독)이 된다. 이들은 每에 비해 비녀 등 장식물을 여럿 꽂아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이며 이로써 평범하고 정숙한 ‘어머니(每)’와는 달리 음란한 여인(毐)과 남자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는 독과 같은 존재(毒)로 그렸다.
이러한 한자의 뿌리로 고대 사회의 여성관을 읽을 때, 여성의 쾌락이 억압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근본(뿌리)이 세워졌고 문명이 건설되었다. 그래서 여성의 금기가 해체될 때 가부장적 문화는 근본이 흔들리고 존립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毛 (털 모) ; [ 털, 작음의 상징이자 모직물 ]
‘설해문자’에서는 毛를 ‘눈썹이나 머리칼 및 짐승의 털’이라고 했는데, 毛髮(모발)은 바로 이런 뜻이다. 毛의 가운데 선의 아랫부분은 털의 뿌리 (毛根 모근)를, 중간은 줄기(毛幹 모간)를, 윗부분은 끝자락(毛梢 모초)을 그렸고, 양쪽으로 갈라진 획은 펼쳐진 털의 모습이다.
머리칼이나 짐승의 털은 대단히 가늘다. 지금은 ‘나노섬유(nanofiber)’처럼 10억분의 1m 두께라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가늘고 섬세한 섬유가 개발되었지만 그 전에는 이런 털이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장 가는 존재였다. 이로부터 毛 에는 ‘털’과 모직물은 물론 대단히 작다는 의미가 담겼다.
먼저 毳(솜털 취)는 毛가 셋 모여 털이 여럿 자라나는 모습을 그렸으며 이로부터 새나 짐승에게서 돋아나는 ‘솜털’의 뜻이 나왔다.
둘째, 毫(가는 털 호)는 高(높을 고)의 생략된 모습과 毛로 이루어져 ‘높게 자란 털’을 말했고, 키가 큰 털일 수록 더 가늘게 보이기 때문에 대단히 작은 물건이나 그런 것을 재는 척도나 단위를 말하게 되었다. 옛 문헌에 의하면 10絲(사)를 1毫(호), 10毫를 1氂(리)라 했다.
또 耗(줄 모)는 원래 소전체에서 禾(벼 화)와 毛로 이루어져 수확한 곡식(禾)이 대단히 적음(毛)을 말했는데 한나라 예서 이후 禾가 耒(쟁기 뢰)로 바뀌었다. 그것은 쟁기질을 적게 할 때 수확이 감소된다는 의미를 담았으며, 이로부터 ‘줄어들다’는 뜻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消費(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살지만 생산이 부족하던 옛날에는 절약이 미덕이었고 써 없애는 소비는 가능한 한 줄여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래서 消耗에는 써서 사라지고(消) 줄어든다(耗)는 경제의 뜻이 담겼다.
셋째, 털로 만든 제품을 뜻하는 경우로 毯(담요 담)은 털(毛)로 만들어 따뜻하게(炎:염) 해 주는 이불을, 氈(모전 전)은 털로 짠 모직물을, 旄(깃대 장식 모)는 깃대(언;모방+사람인)에 단 털 장식물을 말한다.
또 芼는 筆(붓 필)의 간자체인데, 손에 붓을 든 모습 (聿:율)을 붓 봉을 뜻하는 毛로 바꾸어 만든 글자다.
氏 (성씨 씨) ; [ 씨 뿌리는 사람의 모습 ]
氏의 자원의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갑골문을 보면 허리를 숙인 채 물건을 든 모습이라는 해석이 비교적 타당해 보인다. 氏가 ‘씨’, ‘뿌리’, ‘낮다’, ‘들다’ 등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아 손에 든 것은 씨앗으로 추정된다.
먼저, 씨를 뿌리는 모습에서 ‘씨’와 ‘뿌리’의 개념이 나왔는데 氏族(씨족)이나 姓氏(성씨)는 이런 뜻을 반영하였다. 昏(어두울 혼)은 해(日:일)가 씨 뿌리는 사람(氏)의 발 아래로 떨어진 시간대를 말하였으며, 옛날의 결혼은 이 시간대에 이루어졌기에 婚(혼인할 혼)이 만들어졌다.
또, 해가지면 ‘어두워’ 사물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으므로 昏은 ‘불분명함’을 뜻하게 되었는데, 惛(어리석을 혼)이나 涽(물 흐릴 혼), 睧(눈 어두울 혼)등에는 이러한 뜻이 담겼다.
다음, 씨를 뿌리려 허리를 굽힌 데서 ‘낮(추)다’의 뜻이 나왔는데 금문의 자형은 이를 적극 반영하였다. 이후 氏는 ‘씨’를 뿌리는 곳인 땅을 강조한 점(丶:주)을 더해 氐(근본 저)로 분화하
여 ‘낮다’는 의미를 주로 표현했다. 예컨대 底(밑 저)는 집(广:엄)의 아래(氐)인 밑바닥을, 㫝(해 기울 저)는 해(日)가 지평선 아래로 넘어감을, 坻(모래섬 저)는 평지보다 낮은 땅(土)인 모래섬을, 袛(속적삼 저)는 속에 받쳐 입는 속적삼(衣)을 말한다.
하지만 氏와 氐는 지금도 자주 섞여 쓰인다. 예컨대, 紙(종이 지)는 실(糸:멱)과 같은 섬유질을 잘게 분쇄하여 물속에 가라앉혔다가(氏) 발로 떠서 말려 만드는 종이의 제작 방법을 표현했으며, 祉(공경할 지)는 씨(氏)를 제사(示:시) 대상으로 하여 숭배하는 모습을 담았다.
한편 民(백성 민)은 원래 포로나 노예의 반항 능력을 줄이고자 한쪽 눈을 예리한 침으로 해친 모습으로부터 ‘노예’라는 뜻을 그린 글자인데, 이후 ‘백성’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그리고 자형도 지금처럼 변해 氏부수에 편입되었는데, 이는 백성(民)이 임금이나 귀족이 부리는 노예가 아니라 나라의 근본이며 ‘뿌리’로 그 지위가 향상되었음을 반영한다.
水 ( 물 수 ) ; [ 물, 최고의 선 ]
水는 굽이쳐 흐르는 물을 그렸다. 그래서 水는 물이나 물이 모여 만들어진 호수나 강, 또 물과 관련된 동작을 비롯해 모든 액체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먼저, 氷(冰:얼음 빙)은 얼음(冫:빙)이 물(水)에서 만들어짐을, 池(못 지)는 물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는 여성(也:야)과 같은 곳을, 海(바다 해)는 물에서의 어머니(每:매)와 같은 존재를, 源(근원 원)은 대평원(原:원)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근원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洪(큰물 홍)은 모두가 함께(共:공) 손을 맞대어 막아야 하는 ‘큰 물’을, 消(사라질 소)는 물이 수증기처럼 작은(肖:초) 크기의 물방울로 변하여 ‘사라짐’을 말한다.
또, 江(강 강)과 河(강 하)는 원래 각각 長江(장강)과 黃河(황하)를 지칭하는 고유 명사였는데, 이후 ‘강’을 지칭하게 되었다. 사실 江과 河는 각각 남쪽의 남아시아어와 북쪽의 몽골어에서 온 외래어이며, 그 때문에 지금도 남쪽의 長江 유역에 위치한 강들은 ‘江’을, 북쪽의 黃河 유역은 ‘河’를 그 이름으로 쓰고 있다.
다음으로 물과 관련된 동작이나 모습을 말하는 경우이다. 永(길 영)은 원래 사람이 강에서 수영하는 모습이었으나 永遠(영원)의 의미로 가차되자 다시 泳(헤엄칠 영)으로 분화했다. 또 滑(미끄러울 활)은 반들반들한 뼈(骨:골)에 물이 떨어졌을 때 도글도글 구르는 것처럼 ‘미끄러움’을, 沸(끓을 비)는 물이 아닌(非:비) 수증기의 상태로 변하는 ‘끓음’을, 泥(진흙 니)는 물이 섞여 끈적끈적하게(尼:니) 변한 흙을 말한다.
셋째, 汗(땀 한)이나 汁(즙 즙) 등은 물 같은 액체를 말하는데, 油(기름 유), 漆(옻 칠)도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
하지만 ‘물’은 단순히 물리적 존재로서의 물의 의미를 넘어선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상선약수)’고 한 노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治(다스릴 치)나 法(법 법)에서처럼 물은 언제나 남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흐르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이 살아가야 할 도리를 담고 있는 지극히 철리적(哲理的)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火 (灬 불 화 ) ; [ 문명의 이기에서 재앙까지 ]
불은 인류의 문명 생활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도구다. 火는 넘실거리며 훨훨 타오르는 불꽃을 그렸으며, ‘불’과 불에 의한 요리법, 강렬한 열과 빛, 火星(화성), 재앙, 나아가 식사를 함께 하는 군사 단위인 10명을 지칭한다.
먼저 불(꽃)을 직접 말하는 경우로, 炎(불탈 염)은 火가 둘 모여 불이 강하게 타오름을 그렸으며, 타오르는 불(火)에 물(水)을 끼얹으면 그 기세가 줄어들어 淡(묽을 담)이, 言(말씀 언)을 더하면 이야기로 꽃 피우다는 談(말씀 담)이 된다. 焱(불꽃 염)은 더욱 강하게 타오르는 불을, 炊(불 땔 취)는 입으로 불며(欠:흠) 불을 일으키는 모습을, 焚(사를 분)은 사냥이나 경작을 위해 숲(林:림)을 불태우는 모습을 그렸다. 또, 灰(재 회)는 불(火)을 손(又:우)으로 잡은 모습인데, 이는 불이 꺼져 ‘재’가 되었을 때 가능하다.
滅글자에서 삼수를 뺀 것이 멸망할 멸인데 滅(멸망할 멸)이 원래 글자로 모든 불(火)이 꺼지는 시간대인 戌時(술시 오후 7~9시)를 말했고, 이후 水를 더해 의미가 구체화됐다.
둘째, 불을 이용한 요리법으로, 炙(고기 구울 자)는 고기(肉:육)를 불에 굽는 모습이며, 然(그럴 연)도 개(犬:견)고기(肉)를 불에 굽는 모습이었는데 ‘그렇다’는 뜻으로 가차되자 다시 燃(사를 연)으로 분화했다. 燮(불꽃 섭)은 손(又)으로 대통을 잡고 돌려가며 굽는 모습에서 ‘고루 익히다’의 뜻이 나왔다. 烹(삶을 팽)이나 熟(익을 숙), 煎(달일 전), 烝(찔 증), 煮(삶을 자) 등도 모두 불에 의한 요리법을 반영했다.
셋째, ‘열’과 ‘빛’을 말하는 경우로, 熱(더울 열)은 원래 사람이 횃불을 든 모습을, 煩(괴로워할 번)은 머리(頁:혈)에 열(火)이 난다는 뜻으로부터 가슴이 답답함과 煩悶(번민)을 그렸다.
넷째, 災(재앙 재)는 홍수(개미허리,재)와 가뭄이나 화재(火)가 더해진 것으로, 불의 의한 ‘재앙’을 뜻한다. 하지만 烏(까마귀 오), 焉(어찌 언), 燕(제비 연), 熊(곰 웅), 無(없을 무) 등의 灬는 새, 곰, 사람의 발이 잘못 변한 것들이다.
爪 ( 손톱 조 ) ; [ 수비와 공격의 일차 도구 ]
爪는 손발톱을 그렸는데, 금문의 자형은 대단히 사실적이다. 인간의 손발톱은 퇴화해 기능을 많이 상실했지만, 동물에게서는 아직도 살아남기 위한 필수 도구다. 그래서 爪는 손동작 중에서도 공격, 방어, 명령, 선택 등의 뜻을 가진다.
첫째, 공격의 의미가 든 것으로 爭(다툴 쟁)은 손톱(爪)과 손(又:우)으로 중간의 물건을 서로 빼앗으려 ‘다투는’ 모습이다. 爰(이에 원)도 큰 패옥(瑗玉 원옥)을 차지하려 손톱과 손(又)으로 ‘당기는’ 모습이었는데, 이후 발어사로 쓰이자 다시 手(손 수)를 더한 援(당길 원)으로 분화했다. 여기서 파생된 煖(따뜻할 난)이나 暖(따뜻할 난)은 불(火 화)이나 열(日:일)을 당겨 가까이 하면 따뜻해진다는, 緩(느릴 완)은 실(糸:멱)을 당겨 ‘느슨하게’하다는 뜻이다.
둘째,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는 것을 반영한 것으로 孚(미쁠 부)는 알에서 막 깨어난 새끼(子:자)를 손끝(爪)으로 ‘들어 올리는’ 모습이다. 고대사회에서 자식은 자신의 노후를 담보해 주는 가장 ‘미더운’ 존재였을 것이고, 이로부터 ‘미쁘다’는 뜻이 생기자 원래 뜻은 卵(알 란)을 더해 孵(알 깔 부)로 분화했다. 孚에서 파생된 浮(뜰 부)는 물(水)에 뜨는 것을, 俘(사로잡을 부)는 포로(人)를 손으로 잡아 올리는 모습으로, 원래의 ‘들어 올리다’는 의미소를 보존하고 있다.
셋째, 나를 위해 일을 하도록 강제함을 뜻하는 경우로, 爲(할 위)는 손으로 코끼리(象:상)를 부려 일을 시키는 모습이었는데, 아랫부분이 변해 지금처럼 되었다. 또 奚(어찌 해)는 사람(大:대)을 줄(幺:요)로 묶어 손으로 끌며 일을 시키는 모습으로 ‘여자 노예’를 그렸는데, 이후 의문사로 가차되면서 본래의 뜻은 상실했다.
넷째, 나에게 이로운 것을 취함을 말하는 것으로, 采(캘 채)는 손톱으로 나무(木)의 열매나 잎을 채취하는 모습이다. 受(받을 수)는 어떤 물건을 손톱(爪)과 손(又)으로 서로 주고받음을 그렸는데, 이후 ‘주다’는 의미는 手를 더한 授(줄 수)로 분화했다.
爻 ( 효 효 ) ; [ 당신과 나의 교차 ]
爻는 실이나 새끼를 교차되게 짜거나 매듭짓는 모습이며, 이로부터 그렇게 짠 면직물이나 ‘섞인 것’을 뜻하게 되었다. 예컨대, 敎(가르칠 교)는 아이(子)에게 문자의 전 단계인 매듭(結繩 결승)짓는 법을 매(攵:복)로 가르치는 모습이며, 學(배울 학)은 攵대신 매듭짓는 두 손과 배우 는 장소인 집(冖:멱)이 더해졌다.
또 樊(울타리 번)은 두 손(廾:공)으로 나무(木)를 교차되게(爻) 엮어 ‘울타리’를 만드는 모습이며, 爽(시원할 상)은 사람(大)의 양 겨드랑이에 성글게 짠(爻)베를 그려 ‘시원하게’ 통풍됨을 그렸다.
肴(안주 효)는 고기(肉:육)등 여러 음식을 섞어(爻) 만든 ‘안주’를, 여기서 나온 淆(뒤섞일 효)는 물(水)이 한데 뒤섞임을 말한다.
爾(너 이)는 갑골문부터 등장함에도 자원은 잘 밝혀져 있지 않지만 爾는 누에가 실을 토해 고치를 만드는 모습으로 추정되며, 글자를 구성하는 冖은 어떤 테두리를, 爻는 실이 교차된 모습을, 윗부분은 실을 토해 내는 누에의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다. 누에는 성충이 되면서 몸무게가 태어날 때의 1만 배로 증가하며, 누에 한 마리가 토해 내는 실의 길이가 무려 1500m에 이르는 신비한 존재다. 하지만 누에는 온도를 단계별로 정밀하게 조절해야 하는 환경에 대단히 민감한 벌레이기에 항상 방안에서 곁에 두고 조심스레 관리해야만 했다. 누에가 실을 토해 가득하고 촘촘한 고치를 만들어 간다는 뜻에서 爾에는 ‘가득하다’, ‘성대하다’의 뜻이 담겼고, 언제나 곁에 두고 보살펴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는 뜻이 생겼다.
그래서 爾는 나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인 당신의 뜻으로 쓰였고, 이때에는 人을 더한 儞(너 이)로 구분하기로 했다. 그것은 누에가 실을 토해 고치를 만들지만 내가 그 실을 교차시켜 옷감을 만들고, 2인칭 대명사 ‘당신’은 누에와 같은 남이지만 나의 기술과 얽혀 이렇게 실이 될 때 비로소 나에게 남이 아닌 2인칭이 되며, 그래서 ‘당신’은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牛 ( 소 우 ) ; [ 소, 살아 있는 농경의 시작 ]
牛는 소의 전체 모습으로도 보지만 사실은 머리로 보인다. 갑골문과 금문을 비교해 볼 때 위쪽은 크게 굽은 뿔을, 그 아래의 획은 양 귀를, 세로획은 머리를 간단하게 상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정착 농경을 일찍 시작한 중국에서 소는 농경의 주요 수단이었다. 犁(쟁기 려)는 소를 이용한 경작법을 대단히 일찍부터 응용한 중국의 농업은 생산 혁명을 이룬 쾌거로 기록되고 있다. 物(만물 물)은 牛와 勿(말 물)로 이루어졌는데, 갑골문에서 勿은 쟁기질할 때 갈라지는 흙덩이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物 역시 소를 이용한 쟁기질 모습을 그렸고 쟁기질에 쓸 색깔(色:색) 좋은 소를 ‘고르다’는 뜻이 바로 物色(물색)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는 색깔에 의해 구분되었기에 物에는 ‘여러 색깔의 소’라는 뜻이, 다시 만물은 자신의 색깔을 가진다는 뜻에서 萬物(만물)의 뜻이 나왔다.
둘째, 이 때문에 소는 농사와 조상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사용되었다. 犧(희생 희), 牲(희생 생), 牽(끌 견), 特(수컷 특) 등은 모두 이러한 희생과 관련되어 犧는 희생을, 牲은 산채로(生:생) 바치는 희생을, 牽은 희생으로 바치기 위해 줄(玄:현)로 묶어 ‘끌고 가는’ 모습을 그렸다.
特은 희생에 쓰는 수소를 말했는데, 寺(절 사)는 원래 손(寸:촌)으로 잡고 가는(之:지) 모습이다. 신에게 바칠 희생 소는 단연 가장 질 좋은 소여야 했기에 特에는 ‘特出(특출)’의 뜻이, 주로 ‘3년 생 소’를 썼기에 ‘3년생 짐승’이라는 의미가 나왔다. 그리고 소는 방목하고 가두어 잘 먹이고 키워야 하는데 牧(칠 목)은 회초리를 들고 (攵:복)소를 몰아감을, 牢(우리 뢰)는 소를 우리(宀:면)에 가두어 둔 모습을 그렸다.
牝(암컷 빈)은 암컷(匕:비)소를, 牡(수컷 모)는 소의 울음소리 (口:구)를 말하며, 犀(무소 서)는 소의 유사종인 ‘무소’를 말한다.
犬 ( 개 견 ) ; [ 싸우기 좋아하는 외로운 식용 동물 ]
犬은 개를 그렸는데, 치켜 올라간 꼬리가 특징적이다. 개는 청각과 후각이 뛰어나고 영리해 일찍부터 가축화되어 인간의 곁에서 사랑 받아왔다. 그래서 犬으로 구성된 글자는 개, 개의 속성, 개의 기능 등을 뜻한다.
첫째, 개를 지칭하는 경우다. 猋(개가 달리는 모양 표)는 개가 여럿 모여 달리는 모습을, 獒(개 오)는 큰 개를 말한다. 또 狗 (개 구)는 수입개의 번역어라는 해석도 있지만 ‘예기’의 주석처럼 ‘큰 개를 犬, 작은 개를 拘’라고 한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둘째, 개는 대단히 공격적인데, 氾(범할 범), 狂(미칠 광), 獄(옥 옥) 등은 모두 개의 이러한 특성을 반영한 글자이다. 개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둘만 모여도 으르렁거리며 싸우길 좋아하는데 獨(홀로 독)과 犬犬(물어뜯고 싸울 은)은 바로 이러한 특성을 반영한다.
셋째, 개는 후각이 대단히 뛰어나 사냥에 주로 동원되었는데, 狩(사냥 수), 獵(사냥 렵), 獸(짐승 수), 獲(얻을 획) 등은 이와 관련된 글자들이다.
넷째, 개고기는 대단히 맛있는 고기로 알려져, 獻(바칠 헌)은 바로 세발로 된 솥(鬲:력)에 개고기를 삶아 ‘올림’을, 然(그럴 연)은 개(犬)고기(肉:육)를 불(火)에 ‘구움’을 말한다. 또 厭(싫을 염)은 ‘싫증나다’와 ‘좋다’는 뜻을 함께 가지는데, 厭을 구성하는 猒(물릴 염)은 원래 개(犬)와 고기(肉)와 입(口)으로 이루어져 ‘맛있는’ 개고기를 ‘싫증날’ 정도로 먹음을 말한다.
다섯째, 개는 모양이 비슷하고 종류가 다양한 동물이다. 그래서 ‘개’를 分類(분류)의 대표로 생각했다. 狀(형상 상), 類(무리 류), 猶(같을, 오히려 유)는 이러한 특징을 반영했다.
이 밖에 犬이 인간의 가장 가까운 동물의 대표이므로 다른 부류의 동물까지도 犬으로 표현한 경우가 있는데, 狐(여우 호), 狼(이리 랑), 猿(원숭이 원), 猪(돼지 저), 獅(사자 사), 狟(오소리 훤) 등이 그러하다.
玄 ( 검을 현 ) ; [ 물들인 실타래의 모습 ]
玄을 ‘설문해자’에서는 아직 덜 자란 아이라고 했지만 자형과 그다지 맞아 보이지 않는다. 대신 玄을 실타래를 그린 幺(작을 요)의 변형으로 풀이하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즉 幺는 糸(가는 실 멱)의 아랫부분을 줄인 형태이고, 糸은 絲(실 사)의 반쪽이다. 다시 말해 絲를 절반으로 줄인 것이 糸이요, 糸을 절반으로 줄인 것이 幺이며, 이로부터 幺에 작다는 뜻이 나온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水(물 수)와 玄이 둘 모인 玆(이 자)가 결합된 滋(불을 자)는 갑골문에서 물(水)에 실타래(玄)를 담가 놓은 모습인데, 染色(염색)한 실타래를 물에 씻는 모습으로 추정된다. 염색한 실타래를 냇물에 담그면 색깔이 주위로 퍼져 나가 물이 검고 혼탁해지기에 滋에 ‘불어나다’는 뜻이 생겼다. 그래서 玄과 玄이 둘 모인 玆, 玆에 水가 더해진 滋는 모두 같은 어원을 가지는 글자들이다. 이 때문에 玄은 물들인 실타래의 색깔이 물에 풀리듯 그러한 ‘검푸른 색’을 말하며, 이로부터 깊고 아득함의 뜻이, 다시 심오하고 신비함의 의미가 생기게 되었다.
玆 역시 ‘검다’는 뜻을 가지지만, 이후 ‘이곳’이라는 의미로 가차되자 다시 水를 더해 滋로 분화했으며, 이후 滋는 검푸른 색깔이 물속에서 점점 퍼져 나가듯 ‘불다’의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파생된 孶(불어날 자)는 자식(子:자)이 불어남을, 慈(사랑할 자)는 마음 (心:심) 씀씀이가 한없이 불어나는 ‘사랑’을, 磁(자석 자)는 자기장을 이용해 다른 물체를 붙여 체적을 불어나게 하는 광물질(石:석)을 말한다.
현행 옥편에서 玄부수에 귀속된 率(거느릴 솔, 법률 률)은 실로 꼰 줄(玄) 양편으로 까끄라기가 삐져 나온 모습으로 ‘동아줄’을 그렸고, 동아줄이 배나 거대한 물체를 묶는데 쓰임으로 해서 이끌다, 이끄는 사람, 이끄는 표준 등의 다양한 뜻이 생겼다.
그리고 牽(끌 견)은 희생의 바칠 소(牛:우)를 줄(玄)로 매어 끌고 가는 모습이며, 弦(시위 현)은 활(弓:궁)의 시위를 말한다.
玉 ( 옥 옥 ) ; [ 다섯 가지 덕의 상징 ]
玉은 원래 여러 개의 옥을 실로 꿴 모습이나, 이후 王(왕 왕)과 형체가 비슷해지자 오른쪽에 점을 남겨 구분했다.
‘옥의 아름다움은 다섯 가지 德(덕)을 갖추었으니, 윤기가 흘러 온화한 것은 仁(인)의 덕이요, 무늬가 밖으로 흘러나와 속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義(의)의 덕이요, 소리가 낭랑하여 멀리서도 들을 수 있는 것은 智(지)의 덕이요, 끊길지언정 굽혀지지 않는 것은 勇(용)의 덕이요, 날카로우면서도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은 潔(결)의 덕이다’고 한 설해문자의 말처럼 옥은 중국에서 최고의 덕목을 갖춘 물체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옥은 단순한 보석을 넘어서 더없이 보배로운 吉祥(길상)의 상징이었고, 珍(보배 진), 瑞(상서 서), 寶(보배 보)는 이러한 의미를 담았다. 그것은 옥이 갖고 있는 맑은 소리와 영롱하고 아름다운 무늬 때문일 것이다. 現(나타날 현)은 옥의 무늬가 드러남을, 瑩(밝을 영)은 옥색의 영롱함을, 玲(옥 소리 영)은 옥의 맑은 소리를 말한다. 이 때문에 옥은 몸에 걸치는 장신구는 물론 신분의 상징이자 권위를 대신하는 도장(璽:새)의 재료로 쓰였으며 때로는 놀이개로, 심지어 시신의 구멍을 막는 마개로도 쓰였다. 玦(패옥 결), 珥(귀고리 이), 環(고리 환)은 옥이 장신구임을, 玩(희롱할 완)과 弄(희롱할 농)은 노리개였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옥은 중요사의 예물로도 사용되었다. ‘순자’의 말처럼, 사자를 파견할 때에는 홀(珪:규)을, 나랏일을 자문하러 갈 때에는 둥근 옥(璧:벽)을, 경대부를 招致(초치 불러서 안으로 들임)할 때에는 도리옥(瑗:원)을, 군신관계를 끊을 때에는 패옥(玦:결)을, 유배당한 신하를 다시 부를 때에는 환옥(環:환)을 사용함으로써 각각의 상징을 나타냈다.
하지만 옥은 단단해 다듬기가 쉽지 않고 정교한 공정을 필요로 한다. 원석에서 분리는 무늬 결을 따라 돌에서 분리해 냄을, 班(나눌 반)은 옥을 칼(刀:도)로 쪼갬을, 琢(쪼을 탁)은 옥을 갈라내(豖:축) 다듬음을 말한다.
甘 (달 감 ) ; [ 내 입 속의 단맛 ]
甘은 입(口:구)에 가로획(一)을 더해, 입 속에 무엇인가 ‘맛있는 것’이 들어 있는 모습으로 ‘달다’의 뜻을 그렸다. 그래서 甘에서 파생된 柑(사탕수수 나무 감)은 단맛(甘)을 내는 나무(木)인 ‘사탕수수’를 지칭하며, 甛(달 첨)은 혀(舌:설)로 느끼는 단맛(甘)을 말하고 이로부터
감미로움과 아름다움의 뜻이 생겼다.
甚(심할 심)은 원래 甘과匕(비수 비)로 구성되어 숟가락(匕)으로 맛있는 것(甘)을 떠먹는 모습을 그렸는데, 이후 匕가 匹(짝 필)로 바뀌어 지금처럼 되었다. 甚에서 숟가락으로 떠먹던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斟(술 따를 짐)이 국자(斗:두)로 甚을 떠는 모습이고, 葚(오디 심)과 椹(오디 심)이 직접 오디(뽕나무 열매)를 지칭함을 고려해 볼 때, 이는 오디(桑實 상실)로 담근 술로 추정된다.
甚으로 구성된 한자는 오디 외에도, ‘담그다’ ‘깊다’ ‘중후하다’ 등의 뜻을 가지는데, 모두 오디로 담근 술에서 그 의미가 나왔다. 즉, 오디를 담가 술을 만들고, 오디술은 짙은 검붉은 색과 깊은 맛을 가지기에 ‘깊다’, ‘진하다’, ‘중후하다’의 뜻이 나왔고, 나아가 그러한 맛에 탐닉함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湛(즐길 담)과 酉+甚(탐하고 즐길 심)은 술(水:수, 酉:유)을 탐닉함을, 堪(견딜 감)은 흙(土)으로 만든 성이나 담이 튼튼하여 ‘견뎌 냄’을, 勘(헤아릴 감)도 勘當(감당)에서처럼 힘(力)이 강해 ‘견딜 수 있음’을 말한다. 戡(칠 감)은 창(戈 과)으로 대표되는 무력이 강하여 남을 ‘칠’ 수 있음을, 愖(정성 심)은 마음(心)이 깊은(甚) ‘정성’을, 諶(참 심)은 말(言)이 중후하여야 ‘참됨’을 보여준다.
또 疒+ 甚(배알이 심)은 병(疒:녁)이 오래되어 낫지 않고 계속해(甚) ‘재발하는 뱃 병’을, 揕(찌를 침)은 손(手:수)로 깊게(甚) ‘찌름’을 말한다. 嘗(맛 볼, 일찍이 상)은 맛있는(旨:지) 음식을 맛봄을 말하며, 旨는 甘으로 쓰기도 하는데 뜻은 같다.
用 ( 쓸 용 ) ; [ 점복에 쓰였던 뼈 ]
用의 자형을 두고 해석이 많다. 희생에 쓸 소를 가두어 두던 우리에서 ‘쓰다’의 뜻이, 중요한 일의 시행을 알리는 데 쓰는 ‘종’으로부터 ‘시행’의 뜻이 나왔다고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피면 가운데가 卜(점 복)이고 나머지가 뼈(歹:알)로 구성되어 점복에 쓰던 뼈를 그렸다는 설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점(卜)은 고대 사회에서 중대사를 결정할 때 반듯이 거쳐야 하는 절차였고, 공동체에서 시행되던 거의 모든 일이 점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점을 칠 때 쓰던 뼈로써 시행의 의미를 그렸고, 여기서 使用(사용), 應用(응용), 作用(작용) 등의 뜻이 생겼다. 이후 중요한 일이 결정되어 모든 구성원들에게 이의 시행을 알리는 행위로서 ‘종’이 주로 사용되었기에 다시 ‘종’의 의미가 나왔다.
用에서 파생된 甬(길 용)은 윗부분이 종을 거는 부분으로 매달아 놓은 ‘종’의 모습인데, 고대문언에서 用과 甬이 자주 통용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用과 甬이 들어간 글자는 대부분 ‘종’ 매달린 종처럼 ‘서다’, 속이 빈 ‘종’처럼 ‘통하다’,큰 종소리처럼 ‘강력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예컨대, 庸(쓸 용)은 종(用)을 움직이는(庚:경) 것을, 傭(품팔이 용)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人)을 말하며, 鏞(종 용)은 종을 강조하기 위해 金(쇠 금)을 더한 글자다.
또, 甬에 力(힘 력)이 더해진 勇(날셀 용)은 종(甬)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센 힘(力)을, 여기서 파생된 湧(涌 샘솟을 용)은 물(水)이 힘차게(勇) ‘솟구침’을, 踴(踊 뛸 용)은 힘차게(勇) 뛰어오르는 동작(足)을 말한다.
그리고 桶(통 통)은 나무(木)로 만든 종처럼 생긴 ‘통’을, 筩(대통 용)은 대나무(竹:죽)로 만든 ‘대통’을, 俑(허수아비 용)은 종처럼 세워 놓은 사람을, 埇(길 돋을 용)은 흙으로 돋워 놓은 길을, 墉(담 용)은 높게 쌓을 흙 담을 말한다.
痛(아플 통)은 온몸을 관통하듯 큰(甬) 아픔(疒:녁)을, 通(통할 통)은 종으로 시행하듯 ‘통용되다’의 뜻을 가진다.
田 ( 밭 전 ) ; [ 농사의 사유와 소유의 경계 ]
田은 가로 세로로 경지 정리가 잘 된 농지의 모습이며, 그래서 농사나 농경지와 관련된 의미를 가진다.
思(생각 사)는 넓은 논밭(田)에서 농사를 어떻게 지을것인가를 마음(心:심)속으로 ‘그려보는’ 모습이다. 서양의 데카르타는 사유를 인간의 조건으로 보았지만, 思는 행위와 사유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또, 男(사내 남)은 논밭에서 쟁기(力:력)를 부리는 남자를, 里(마을 리)는 농사지을 농경지(田)가 있는 땅(土), 논밭을 일굴 수 없는 불모지는 마을이 형성될 수 없음을 뜻한다. 따라서 마을(里)은 세금을 낼 수 있는 넓은 농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田은 동시에 소유 개념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界(경계 계), 甸(경기 전), 疆(지경 강) 등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담았다.
界는 논밭 사이에 끼인(介:개) 둑으로 만들어진 경계를 표상하며, 甸은 그러한 경계가 일정한 길이와 넓이로 이루어진, 왕경 500리 이내의 땅을 뜻한다. 또, 疆은 원래 田이 둘 모여 밭의 경계를 말했으나, 이후 길이를 뜻하는 가로획이 더해져 畺(지경 강), 다시 활(弓)이 더해져 彊(굳셀 강)이 되었는데, 그것은 활(弓)이 당시 대표적 휴대품이었고 이로 땅의 길이를 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彊이 활의 시위처럼 ‘굳셈’을 뜻하게 되자 다시 土(흙 토)를 더해 疆이 되었다. 이처럼 田은 경계이자 측량의 대상 이었다.
논밭의 원래 속성이 경작을 통한 식량의 생산에 있기에, 田에는 개인과 공동체의 소유를 측량하고 그 경계를 획정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기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사적 소유와 연결되는 한 아무리 정확한 척도를 도입하려 해도 언제나 권력에 휘둘릴 여지를 남기게 된다.
略(빼앗을 략)은 바로 남의 농경지(田)에 들어가서 (各 각)제 것인 양 측정하고 경영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래서 침략자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은 것은 모조리 생략하고 대략으로 처리해 버린다. 이 때문에 略에는 생략과 침략의 뜻이 같이 들어있다.
欠 (하픔 흠) ; [ 입을 벌리고 갈구하는 모습 ]
欠은 갑골문에서 입을 크게 벌린 형상이며, 입에서 나오는 무엇인가를 강조하기 위해 점이 더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欠은 ‘말하기’를 제외한 마시고, 노래하고, 호흡을 가다듬는 등 입과 관련된 수많은 행위를 나타내며, 나아가 欠缺(흠결)처럼 ‘부족함’까지 뜻하기도 한다. 다만 말과 관련된 행위는 주로 口(입 구)나 言(말씀 언)으로 표현된다.
먼저 飮(마실 음)등은 欠이 먹는 행위의 표상으로 그려진 경우이다. 飮은 원래 술독(酉:유)과 혀를 쭉 내민 입(今:금)과 欠으로 구성되어, 혀를 내밀어 ‘술 마시는 모습’이었는데 이후 食(밥 식)과 欠의 구조로 바뀌었고 뜻도 일반적인 ‘마시기’로 확장되었다. 歆(받을 흠)은 제사에서 사용 되는 음악(音:음)을 신이 입을 벌리고(欠) 마음껏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歆饗(흠향 받아들이다)’의 뜻이 나왔다. 이처럼 欠은 일상생활에서의 식생활이 아닌, 술이나 음악과 같은 특별한 행위를 표현했다.
둘째, 입을 벌린 欠의 모습에서 부러워함과 아무리 많아도 모자란다는 뜻이 나온 경우다. 欲(하고자할 욕)은 입을 크게 벌리고 텅 빈 계곡(谷:곡)처럼 끝없이 바라는 것이 바로 ‘욕심’임을 그렸으며, 이로부터 ‘하고자 하다’는 뜻이 나왔다. 이후 慾望(욕망)이나 慾心(욕심)은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心을 더하여 慾(욕심 욕)으로 분화했다. 그리고 欽(공경할 흠)은 값비싼 청동기물(金:금)을 보면서 침을 흘리며(欠) ‘부러워하는 모습’을 다시 欽慕(흠모)의 뜻이 담겼다.
셋째, 노래를 읊조리거나 탄식하거나 기뻐함을 뜻하는 경우로, 欣(기뻐할 흔), 歌(노래 가), 歡(기뻐할 환), 歎(읊을 탄) 등은 모두 입을 벌리고 기뻐하거나 탄식하는 모습을 그렸다.
넷째, 欠은 바람을 불거나 재채기나 기침 등 입을 벌리고 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吹(불 취)는 입으로 바람을 부는 모습을, 欬(기침 해)는 입을 벌리고 재채기하는 모습을, 歇(쉴 헐)은 입을 크게 벌리고(曷:갈) 숨을 가다듬으며(欠) 쉬는 것을 말한다.
疒 (병들어 기댈 녁 ) ; [ 병들어 누운 모습 ]
疒은 갑골문에 의하면 병상(爿:장)에 사람(人:인)이 아파 누워 있는 모습인데, 때로는 흐르는 피나 땀을 더하여 사실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후 소전체에 들면서 사람과 병상이 하나로 합쳐져 지금의 疒이 되었으며, 주로 질병과 관련된 의미를 나타낸다. 예컨대, 疒은 疫(돌림병 역), 瘧(학질 학), 疥(옴 개)등과 같이 구체적인 병명이나, 痛(아플 통), 痒(앓을 양)등과 같이 질병의 정황을 나타내기도 한다.
疾(병 질)과 病(병 병)은 모두 병에 대한 통칭이지만, 옛날에는 일반적인 병을 疾, 질병 중에서도 중증인 경우를 病이라 구분해 썼다. 疾은 갑골문에서 사람의 몸(大)에 화살(矢:시)이 박힌 모습을 그렸는데, 소전체에 들면서 사람(大)이 병상(爿)으로 변해 지금처럼 되었다. 화살에 맞으면 재빨리 치료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었기에 疾에는 疾走(질주)와 같이 ‘빠르다’, ‘민첩하다’의 뜻도 생겼다.
病은 병들어 누운 사람(疒)을 옮기는(丙:병) 모습으로 중환자의 의미를 그려냈다. 또 瘦(파리할 수)는 疒과 叟(늙은이 수)로 이루어져, 노인(叟)처럼 ‘수척해짐’을 뜻한다. 노인이 되면 몸이 야위고 오그라들기에 ‘야위다’의 뜻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본다면 현대 한국 여성들의 절대미라 할 수 있는 야윔(瘦)이 고대 사회에서는 ‘질병’의 일종이었던 셈이다. 叟는 원래 손(又:우)에 횃불(火:화)을 잡고 집안(宀:면)을 ‘뒤지는’ 모습이었는데, ‘늙은이’라는 의미로 가차되자 다시 手(손 수)를 더하여 搜(찾을 수)로 분화한 글자이다.
그런가 하면 疲(지칠 피)는 지나치면(皮:피)가 병든(疒)것처럼 꺼칠꺼칠해짐을, 痲(저릴 마)는 삼(麻:마) 즉, 대마를 피운 듯 모든 신경이 마비됨을 말한다.
癡(어리석을 치)는 의심스러운(疑 의) 병(疒), 즉 병명이 의심스러워 확실히 알지 못해 治癒(치유)하기 어려운 병을 말했으며, 이후 疑가 知(알 지)로 대체되어 痴로 변했다. 이는 智力(지력 知)에 병(疒)이 있는 상태, 즉 지적 능력이 모자라는 병을 지칭한다.
癶 ( 등질 발 ) ; [ 반대로 놓인 발 ]
발(止:지)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놓인 모습이 癶이며, 이 때문에 ‘등지다’, ‘떨어지다,’ ‘멀어지다’ 등의 뜻이 생겼다. 癶로 구성된 登(오를 등)은 원래는 두 발(癶), 굽 높은 그릇(豆:두), 두 손(廾:공)으로 이루어져, 그릇(豆:두)에 담긴 음식이나 곡식을 신전으로 나아가(癶) ‘드리는’ 모습을 그렸으며, 이로부터 登에 ‘오르다’는 뜻이 생겼다. 豆에 주로 콩 같은 곡식을 담아 두었던 때문인지 豆는 이후 大豆(대두)처럼 ‘콩’이라는 뜻으로 주로 쓰였고, 그러자 원래 의미는 木(나무 목)을 더한 梪(나무그릇 두)로 분화했다. 그래서 登에서 파생된 글자들은 모두 ‘오르다’의 뜻을 가진다.
예컨대 嶝(비탈길)등은 山으로 오르는 ‘비탈길’을, 燈(등잔 등)은 불(火:화)을 올리는 ‘등잔’을, 凳(걸상 등)은 몸이나 다리를 올려 걸터앉을 수 있도록 고안된 의자(几:궤)를, 鐙(등자 등)은 말에 오를 때 발을 디딜 수 있는 쇠(金:금)로 만든 ‘등자’를, 澄(맑을 징)은 물속에 포함된 물질은 가라앉게 하고 물(水)은 위로 ‘올라가게’ 하여 ‘맑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發(쏠 발)은 弓(활 궁)과 癹(짓밟을 발)로 이루어졌는데, 癹은 갑골문에서 癶과 攴(칠 복)으로 구성되어, 막대로 풀숲을 헤치며(攴) 앞으로 ‘나아가는(癶)’모습을 그렸다. 그래서 發은 활(弓)을 쏘아 멀리 나아가게(癹) 함을 뜻하며, 이로부터 發射(발사)나 出發(출발)의 뜻이 나왔다. 여기에 手(손 수)가 더해진 撥(튀길 발)은 시위를 튀겨 화살을 나아가게 하는 동작을 더욱 강조했고, 潑(뿌릴 발)은 물(水)을 흩뿌림을, 廢(폐할 폐)는 ‘쏠’ 수 있는 활을 창고(广:엄) 속에 넣어 두어 사장시킴을 말한다.
하지만 癸(열째 천간 계)는 갑골문에서는 나무 막대를 X자로 교차시킨 모습이다. 이는 癸에서 파생된 揆(헤아릴 규)와 관계 지어 볼 때, 지금도 중국의 농촌에서 사용되고 있는 컴퍼스처럼 생긴 거리를 재는 도구로 보이며, 癸가 간지자로 쓰이자 手를 더해 揆로 분화한 것으로 보인다.
白 (흰 백) ; [ 엄지손가락의 형상 ]
白의 자원도 의견이 분분하여, 이것이 껍질을 벗긴 쌀, 태양(日:일)이 뜰 때 비치는 햇빛, 엄지손가락 그림 등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으나, 마지막 견해가 가장 통용되고 있다. 엄지손가락은 손가락 중에서 가장 큰 ‘첫 번째’ 손가락이다. 그래서 白 의 원래 의미는 ‘첫째’나 ‘맏이’로 추정되며, ‘맏이’의 상징에서 ‘가깝다’의 뜻이 나왔을 것이다. 이후 白은 告白(고백)처럼 속에 있는 것을 숨김없이 ‘말하다’는 뜻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는데, 그것은 祝(빌 축)에서처럼 ‘맏이(兄:형)’가 천지신명께 드리는 제사를 주관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白은 속의 것을 숨기지 않고 죄다 밝힌다는 뜻에서 ‘潔白(결백)’과 ‘희다’의 뜻이 나왔고, 그러자 원래 뜻은 人을 더한 伯(맏 백)으로 분화했다.
먼저, ‘가깝다’는 뜻으로 쓰인 경우로, 泊(배 댈 박)은 물(水:수)에서 배를 육지 ‘가까이(白)’ 대도록 하는 것을, 迫(다그칠 박)은 가까이(白) 가도록(辵:착) 다그침을 말한다.
둘째, ‘말하다’의 뜻으로 쓰인 경우로, 皐(부르는 소리 고)는 수확한 곡물을 신에게 바치면서 (夲:도) ‘축원하는(白)’ 것을, 拍(칠 박)은 ‘소리가 나도록(白)’ 손(手)으로 치는 동작을 말한다.
셋째, ‘희다’의 뜻으로 쓰인 경우로, 帛(비단 백)은 무늬가 색깔을 넣지 않은 ‘흰(白)’ 비단을, 怕(두려울 파)는 얼굴이 창백해질(白) 정도로 ‘두려운’ 심리상태(心)를, 帕(머리띠 파)는 색깔이 들지 않은(白) 수건(巾:건)을, 粕(지게미 박)은 껍질을 벗겨낸 쌀(米:미)의 ‘흰(白) 속살’을 말한다.
또 栢(나무이름 백)은 속이 흰색을 띠는 나무(木:목)를, 鉑(금박 박)은 쇠(金:금)의 표면이 빛나도록 백금이나 은으로 덧씌움을 말한다. 하지만 習(익힐 습)은 오랜 세월(日) 동안 끝없이 날갯짓(羽:우)을 반복함을, 皆(다 개)는 코(自:자)를 나란히 하여(比:비) 함께 숨 쉼을, 皇(임금 황)은 관의 화려한 장식을 그린 것으로, 모두 白과는 관계없는 글자들이었다.
皿 ( 그릇 명 ) ; [ 의례용 그릇 ]
皿은 아가리가 크고 두루마리 발을 가진 그릇을 그렸는데, 금문에서는 金(쇠 금)을 더하여 그것이 질그릇이 아닌 청동기임을 강조했다. 청동으로 만든 그릇은 대단히 값 비싸고 귀하여 주로 제사 등에서 쓰였다.
먼저 皿은 일반적인 그릇을 지칭하는데, 盂(바리 우)는 우승컵처럼 생긴 커다란 사발을, 盆(동이 분)은 대야를, 盒(합 합)은 뚜껑을 가진 찬합 같은 그릇을 말한다. 盛(담을 성)은 그릇(皿)에 가득 담음을, 盈(찰 영)은 그릇(皿)에 가득 참을 말한다. 益(더할 익)은 물(水:수)이 그릇(皿)에서 ‘넘치는’ 모습을 그렸고, 여기에서 ‘더하다’는 뜻이 나오자 원래 뜻은 다시 水를 더한 溢(넘칠 일)로 분화했다.
둘째, 청동 그릇은 제사를 드릴 때, 특히 맹약을 맺을 때 희생의 피를 받아 나누어 마시는 용도로 쓰였다. 그래서 血(피 혈)은 그릇에 피가 담긴 모습이며, 盟(맹세할 맹)도 그릇에 피가 담긴 모습을 그렸으나 이후 피가 소리부인 明(밝을 명)으로 바뀐 글자이다.
셋째, 거울의 대용으로 쓰였는데, 큰 대야에 물을 담아 놓고 수면에 얼굴을 비추어 보곤 했다. 監(볼 감)이 바로 그 글자인데, 갑골문에서 사람의 얼굴을 그릇(皿)에 비추는 모습이며, 여기서 ‘거울’의 뜻이 나왔다. 이후 ‘보다’라는 뜻으로 자주 쓰이자 거울은 金을 더한 鑑(鑒 거울 감)으로 분화했다.
넷째, 청동기물은 고대 중국에서 신분의 상징이 될 정도로 귀하고 비싼 것이었다. 盜(훔칠 도)는 입을 벌린 채 침을 흘리는 모습(涎:침 연)과 皿으로 이루어져 그릇을 탐함을 그렸다. 이렇게 귀한 기물은 보통 안쪽에다 기물을 만들게 된 연유를 기록해 가보로 삼게 하였다. 이 글들을 청동기(金)에 주조한 글(文:문)이라는 뜻에서 金文이라 한다. 금문은 보통 음각으로 되어 음식을 삼거나 사용 후에는 그곳에 찌꺼기가 끼기 마련이었고, 이 부분은 솔로 깨끗하게 청소해야 했다. 盡(다할 진)은 바로 붓(聿:률)으로 그릇(皿) 속의 찌꺼기까지 깨끗하게 청소하는 모습이며, 이로부터 ‘끝까지’ 라는 뜻이 나왔다.
目 ( 눈 목 ) ; [ 눈동자가 또렷한 눈 ]
目은 눈동자가 또렷하게 그려진 눈의 모습인데, 소전에 들면서 자형이 세로로 변하고 눈동자도 가로 획으로 바뀌었다. 먼저, 目이 눈을 직접 가리키는 경우인데, 冒(무릅쓸 모)는 눈 위로 모자를 덮어쓴(冒에서 目을 뺀 나머지 글자 인 모) 모습에서 ‘모자’ 와 ‘덮다’의 뜻을 그렸고, 冒가 冒險(모험)에서처럼 위험(險)을 덮어버리다(冒), 즉 ‘무릅쓰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자 다시 巾(수건 건)을 더한 帽(모자 모)로 분화했다.
또 盲(소경 맹)은 눈(目)을 못 쓰거나 없어(亡:망) 보지 못하는 사람을, 眇(애꾸는 묘)는 눈(目)이 하나 적은(少:소)것을 말한다. 나아가 眉(눈썹 미)는 눈(目)과 위에 있는 눈썹을 그렸고, 盼(눈 예쁠 반)은 눈(目)의 검은자위와 흰자위가 분명하여(分:분) ‘예쁜’ 모습을 그렸다. 그런가 하면, 瞽(소경 고)를 구성하는 鼓(북 고)는 음악을, 目은 소경을 상징한다.
그래서 瞽는 음악을 연주하는 눈먼 사람을 말하는데, 옛날 瞽史(고사)라는 관직이 있었다. 瞽는 시를 외우거나 간언을 주로 했고 史는 천문을 주로 살폈다. 瞽가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은 눈이 먼 대신 청각이 대단히 발달하여 남다른 음악성을 가졌고, 또 눈이 멀어 사물을 볼 수 없었기에 도리어 아무런 욕심이 없어 대단히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사고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눈은 面(낮 면)이 얼굴이 눈(目)을 하나 그렸듯이 얼굴의 상징이므로 ‘얼굴’이나 ‘머리’를 뜻하기도 하는데, 盾(방패 순)은 방패로 눈 즉, ‘얼굴’을 가린 모습을, 縣(매달 현)은 눈이 달린 ‘머리’를 끈으로 매단(系:계) 모습을 그렸다.
셋째, 눈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보기’에 관한 글자들로, 看(볼 간)은 손(手)으로 눈(目) 위를 가리고 보는 것을, 見(볼 견)은 사람(儿:인)에 눈을 크게 그려 넣어 ‘보는’ 동작을, 相(서로 상)은 눈(目)으로 나무(木:목)를 상세히 살핌을, 또 直(곧을 직)은 눈(目)의 시선이 ‘곧게’ 나가는 모습을, 省(살필 성, 덜 성)은 눈의 시선을 좌우로 돌려 두리번거리며 ‘살핌’을 말한다.
矢 ( 화살 시 ) ; [화살, 길이를 재는 도구 ]
矢는 갑골문에서 화살의 촉과 대와 꼬리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화살은 대표적인 사냥 도구이자 무기였으며, 때로는 화살의 곧음처럼 ‘정확함’을, 때로는 길이를 재는 척도를 나타내기도 했다.
먼저 원래 뜻인 ‘화살’의 의미로 쓰인 경우인데, 雉(꿩 치)는 화살(矢)을 쏘아 잡는 새(隹:추)인 ‘꿩’을 나타냈다. ‘설해문자’에만 나열된 꿩(雉)의 종류가 14가지나 될 정도로 꿩은 대표적인 사냥감이었다. 矯(바로잡을 교)는 화살(矢)이 곧바르게(喬 교) 펴질 수 있도록 바로잡는 도구를 말한다. 그런가 하면 矣(어조사 의)는 원래 以(써 이)와 矢로 이루어져 화살이 날아가 버린 것처럼(矢) 이미 말이 종결된 것을 나타내는 조사로 쓰였는데, 以는 독음을 나타낸다.
다음은 화살의 속성에서 파생된 의미로 쓰인 경우인데 知(알 지)는 화살(矢)이 과녁을 꿰뚫듯 상황을 날카롭게 판단하고 의중을 정확하게 꿰뚫어 말(口:구) 할 수 있는 능력이 ‘지식’에서 나옴을 그렸다. 여기서 파생된 智(슬기 지)는 그러한 지식(知)이 세월(日:일)을 경과해야만 진정한 ‘지혜’로 변함을 웅변해 준다.
셋째, 활은 고대사회에서 언제나 휴대하는 물품이었기에 사물의 길이를 재는 잣대로 쓰였다. 예컨대 短(짧을 단)은 굽 높은 제기의 일종인 豆(제기. 콩 두)가 矢보다 키가 ‘작음’을 그렸고, 이로부터 ‘짧다’ ‘모자라다’ ‘단점’ 등의 뜻이 나왔다.
또한 矩(곱자 구)는 矢와 巨(클 거)로 이루어져 직각이나 네모꼴을 그리는 곱자(曲尺 곡척)를 말한다. 矩는 원래 사람(大:대)이 큰 곱자(巨)를 손에 든 모습이었으나, 이후 大가 자형이 비슷하고 ‘잣대’를 뜻하는 矢로 변했다. 여기서 파생된 榘(곱자 구)는 곱자를 나무(木:목)로 만든다는 의미를 더욱 강조한 글자이다.
한자에서 ‘화살’의 의미로 矢와 비슷한 뜻을 지니는 글자로 箭(화살 전), 鏃(살촉 족), 鏑(살촉 적) 등이 있는데, 箭은 화살을 만드는 대(竹:죽)에, 鏃과 鏑은 쇠(金:금)로 만든 화살의 ‘촉’에 초점이 놓였다.
石 (돌 석) ; [ 침에서 악기까지 ]
石은 갑골문에서 오른쪽은 암벽을, 왼쪽은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돌덩이를 그렸다. 돌은 인류가 최초로 사용했던 도구였고, 이후 갖가지 중요한 도구로 응용되었다. 그래서 돌은 침, 비석, 숫돌, 악기, 용량단위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먼저, 硯(벼루 연), 砥(숫돌 지), 碑(돌기둥 비)등은 돌 자체를 응용한 경우인데, 硯은 눈에 보이도록(見:견) 글씨를 쓰게 먹을 가는 도구를, 砥는 돌을 밑받침(氐:저)으로 삼아 칼을 가는 도구를, 碑는 하관할 때 관을 줄에 매어 내리도록 도와주는(卑:비) 돌(石)을 말한다. 또한 砭(돌 침 폄)은 돌로 만든 침을, 砮(돌살촉 노)는 돌화살 촉을, 砲(대포 포)는 돌을 쏘아 적을 공격하는 무기를 말했다. 지금의 大砲(대포)는 이미 돌이 아닌 화약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글자는 아직도 사용하던 옛 모습을 담고 있다.
둘째, 돌이 ‘8가지 악기 재료’의 하나이듯 악기를 만드는 데 쓰였다. 磬(경쇠 경)은 石과 聲(소리 성)의 생략 된 모습으로 구성되어, 石磬처럼 돌(石)을 쳐서 소리(聲)를 내는 악기를 말한다.
셋째, 단단함은 돌의 상징이며, 단단한 돌을 가공하는 데는 여러 공정이 필요하다. 硬(굳을 경)은 돌의 ‘단단함’을 뜻하는데, 지금은 '소프트(soft)'의 대역어인 軟(연할 연)과 대칭하여 ‘하드(hard)’의 대역어로도 쓰인다. 硏(갈 연), 磨(갈 마), 碾(맷돌 년)은 각각 돌을 문질러 갈거나 돌에 마찰시켜 가는 것을 말한다. 또 破(깨뜨릴 파)는 돌의 표피(皮:피)가 몸체에서 분리되는 것으로써 ‘깨어짐’을, 碎(부술 쇄)는 돌을 부수어 돌의 최후의 단계(卒:졸)까지 가도록 만드는 공정을 형상화했다.
넷째, ‘크다’는 돌의 또 다른 상징이다. 그래서 磐(너럭바위 반)은 쟁반(盤:반)처럼 편평하게 생긴, 여럿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바위를, 碩(클 석)은 머리통이 크면 두뇌가 발달하여 여러 지식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되었는지 碩에는 碩士(석사)에서처럼 박식함의 뜻이 담겼다.
示 (보일 시 ) ; [ 제단과 제사 ]
示는 갑골문에서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단을 그렸으며 이후 제물을 뜻하는 가로획이 위에 추가 되었고, 다시 ‘설해문자’의 해석처럼 하늘이 내리는 화복을 상징하기 위해 글자의 아랫부분 양편으로 획이 더해져 지금처럼 되었다. 이를 따라 글자의 뜻도 제단에서 신이 길흉을 내려준다는 의미에서 ‘나타내다’와 ‘보여 주다’ 등으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示로 구성된 한자는 제사와 관련된 의미를 가진다.
먼저, 신을 나타내는 경우인데, 神(귀신 신)은 원래 번개(申:신, 電의 원래 글자)신을, 社(토지 신 사)는 토지(土:토)신을, 祖(조상 조)는 할아비(且:차)로 대표되는 조상신을 말한다.
둘째, 제사와 관련된 경우로, 祭(제사 제)는 고기(月:육)를 손(又:우)에 들고 제단(示)에 올리는 모습을, 祀(제사 사)는 제사를 드리는 자손(巳:사)을, 祝(빌 축)은 제단 앞에 입을 벌린 채 꿇어앉아(兄:형) 축원하는 모습을, 祈(빌 기)는 도끼(斤:근)를 놓고 사냥의 성공을 비는 모습을 비는 모습을, 禱(빌 도)는 장수(壽:수)를 비는 모습을 그렸다.
또 禪(봉선 선)은 땅을 편평하게 하여(單:단) 산천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禘(종묘 제사 이름 체)는 5년마다 지내는 크고 성대한(帝:제) 제사를 말한다. 禮(예도 예)는 귀한 옥과 음악(豊:예)을 동원해 신에게 드리는 제사 행위로부터 ‘예도’의 의미를 그렸다.
셋째, 사당과 관련된 것으로, 宗(마루 종)은 조상의 위패를 머신 집(宀:면), 즉 종묘를, 禰(아비사당 녜)는 가장 가까운(爾:이) 아버지를 모신 사당을, 祏(위패 석)은 위패를 모신 돌(石:석)로 만든 감실을 말한다.
넷째, 신이 내리는 복과 재앙에 관한 글자들인데, 禍(불행 화)는 앙상한 뼈와 제단을 그려 ‘재앙’을, 福(복 복)은 술통과 제단을 그려 ‘복’을, 祥(상서로울 상)은 길상의 상징인 양(羊 양)과 제단을 그려 ‘상서로움’을 나타냈다. 祚(복 조)는 신이 만들어 주는(乍:사, 作의 원래 글자) ‘복’을, 祟(빌미 수)는 신이 내리는(出:출) ‘재앙’을 말한다.
禾 ( 벼 화 ) ; [ 익어 고개 숙인 곡식 ]
禾는 익어 고개를 숙인 곡식의 모습인데, 이를 주로 ‘벼’로 풀이 하지만 벼가 남방에서 수입된 것임을 고려하면 야생 ‘조’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벼가 수입되면서 오랜 주식이던 조를 대신해 모든 곡물의 대표로 자리하게 된다.
먼저, 禾가 벼와 관련된 것을 말하는 경우로, 秒(까끄라기 묘)는 벼의 잔잔한(少, 小:소) ‘까끄라기’를, 稊(돌피 제)는 벼의 동생(弟:제) 격인 ‘돌피’를, 種(씨 종)은 곡물(禾)의 파종을 위해 남겨 둔 중요한(重:중) ‘씨’를 말한다.
둘째, 곡식의 수확은 농경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했는데, 年(秊:해 년)은 사람(人:인)이 곡식(禾)을 수확하는 모습이고, 수확에서 수확까지의 주기를 ‘1년’으로 본 글자이다. 그리고 季(끝 계)는 수확에 어린 아이(子:자)라는 ‘마지막’ 수단까지 동원하였음을, 委(맡길 위)는 볏단을 진 여자(女:여)의 모습에서 ‘연약함’을, 秉(잡을 병)은 손(又:우)으로 볏단을 ‘쥔’ 모습을, 秀(빼어날 수)는 원래 익은 곡식(禾)의 이삭을 칼(刀:도)로 베는 모습을 그렸다.
셋째, 곡물은 중요한 재산이자 세금 장수의 대상이었다. 私(사사로울 사)는 곡물(禾)을 자신(厶:사)의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며, 稟(곳집 름, 받을 품)은 곡물을 저장한 창고(稟에서 禾를 뺀 나머지)를, 科(품등 과)는 말(斗 두)로 곡물을 계량하는 모습을, 秤(稱 저울 칭)은 곡물을 저울(平:평)이나 손으로 (偁에서 亻뺀나머지 칭)다는 모습을 그렸다. 稅는 기쁜 마음으로(兌:태) 낼 수 있는 곡물(禾)이 세금임을, 租(구실 조)는 조상(且:차)에게 바칠 구실로 받는 세금을 말한다.
나머지, 稚(어릴 치)는 새(隹:추)가 뜯어먹기 좋아하는 곡물의 ‘어린’ 싹을 그렸고, 稽(헤아릴 계)는 원래 곡식(禾)이 손상을 입어(尤:우) 일정 단계에서 머문 채 더 자라지 않는 모습으로 머리 숙여 원인을 ‘살피고’ ‘따지는’ 의미를 그려 냈는데, 이후 소리부인 旨(맛있을 지)가 더해졌다.
穴 ( 구멍 혈 ) ; [동굴 집, 천혜의 거주 공간 ]
穴은 입구 양쪽으로 받침목이 갖추어진 동굴 집은 지상 건축물이 만들어지기 전의 초기 주거 형식이다. 특히 질 좋은 황토 지역에서 쉽게 만들 수 있었던 동굴 집은 온도나 습도까지 적당히 조절되는 훌륭한 주거지였다. 따라서 穴의 원래 뜻은 동굴 집이고, 여기서 ‘굴’과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의 뜻이 나왔고, 이후 인체나 땅의 ‘혈’까지 지칭하게 되었다.
먼저, 穴이 굴을 뜻하는 경우인데, 突(갑자기 돌)은 개(犬:견)가 굴(穴)에서 ‘갑자기’ 뛰어나오는 모습을, 窟(굴 굴)은 몸을 굽혀야(屈: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굴’을, 窖(움 교)는 제사에 쓸(告:고) 술 등을 저장하던 땅속으로 파고 들어간 ‘굴’을, 穽(허방다리 정)은 아래로 우물(井:정)모양의 구덩이를 판 ‘함정’을 말한다. 竄(숨을 찬)은 쥐(鼠:서)가 구멍 속으로 ‘숨은’ 모습을, 竊(훔칠 절)은 원래 전갈처럼 생긴 벌레(萬:만)가 구멍(穴)으로 곡식(米:미)을 몰래 ‘훔쳐’ 먹는 것을 그렸다.
둘째, 공간을 뜻하는 경우다. 空(빌 공)은 공구(工:공)로 황토 언덕에 구멍(穴)을 파 만든 ‘공간’을 뜻하며, 그 후 큰 공간인 ‘하늘’과 ‘텅 빔’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穹(하늘 궁)도 활(弓:궁)을 쓸 수 있는 공간, 즉 ‘하늘’을 뜻한다. 또 窗(窓 창 창)은 원래 悤(心을 뺀 나머지, 총)으로 서 나무로 살을 만든 동굴 집의 창을 그렸는데, 이후 穴이 더해졌고 창은 통풍과 조명을 위한 핵심 구조물이라는 뜻에서 心(마음 심)이 추가 되었다.
셋째, ‘끝’을 뜻하는데, 窮(다할 궁)과 窒(막힐 질)이 그렇다. 窮은 원래 穴과 躳(躬 몸 궁)으로 이루어졌고, 躳은 身(몸 신)과 呂(등뼈 려)의 결합으로 ‘몸’을 나타냈으나, 이후 呂가 소리부인 弓(활 궁)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窮은 ‘설해문자’의 해설처럼 동굴(穴) ‘끝까지’ 몸소(躬) 들어가 본다는 의미를 그렸고, 여기서 끝이나 窮極(궁극)의 뜻이 나왔다. 窒도 굴(穴)의 끝에 이른다(至:지)는 의미로부터 ‘막힘’의 뜻을 그려냈다.
立 ( 설 립 ) ; [ 팔을 벌리고 땅에 선 모습 ]
立은 갑골문에서 팔을 벌리고 땅(一)에 ‘선’ 사람을 그렸으며, 立을 둘 합친 竝(幷 나란히 병)으로 나란하다는 의미를 그렸다. 또 位(자리 위)는 사람(人:인)이 서 있는(立) 자리라는 뜻이다. 이처럼 立은 ‘서다’가 원래 뜻이다. 그래서 站(우두커니 설 참)은 자리를 차지하고(占 점) 서 있음(立)을 말한다. 하지만 원나라 이후 몽골어 ‘잠(jam 역)’의 번역어로서 말을 갈아 탈 수 있는 곳(驛站 역참)을, 지금은 기차역이나 정류소까지 뜻하게 되었다.
竭(다할 갈)은 목이 말라 입을 크게 벌리고(曷:갈) 선 사람(立)으로부터 기력이 소진한 상태를 그렸다. 端(바를 단)은 몸을 곧게 편 모습을 말하는데, 耑(시초 단)은 원래 돋아나는 싹과 뿌리를 그려 ‘시초’ 나 ‘發端(발단)’이라는 뜻을 그렸다. 이후 곧게 자라나는 식물의 싹으로부터 ‘곧다’는 의미가 나왔다. 그래서 端은 꼿꼿하게(耑) 선 사람(立)처럼 端正(단정)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竟(다할 경), 章(글 장), 童(아이 동) 등은 사실 立과 관계없는 글자들이다. 竟은 악기(音:음)를 부는 사람(儿:인)의 모습이고, 악기의 연주가 끝났다는 뜻에서 ‘끝’의 의미가 나왔다. 여기서 파생된 競(겨를 경)은 竟이 둘 합쳐져, 두 사람간의 연주 경쟁을 나타냈으며 이로부터 ‘다투다’의 뜻이 나왔다.
境(지경 경)은 영토(土:토)의 끝(竟)이 바로 경계이자 국경이라는 의미이다. 章은 ‘설문해자’에서는 악기(音)와 숫자의 끝(十:십)이 더해져, 음악이 끝나는 樂章(악장)을 말한다고 했다. 하지만 금문에 의하면 문신 새기는 칼(辛:신)과 옥을 그려 옥에 새긴 무늬를 말했다. 이로부터 ‘무늬’, ‘도장’, ‘글’의 뜻에다가 글이 끝나는 '장(chapter)'의 뜻까지 나왔고, 그러자 彰(뚜렸할 창)으로 원래의 ‘무늬’를 표현했다.
童은 문신 칼(辛)과 눈(目:목)과 소리부인 東(동녁 동)으로 구성되어, 반항력을 줄이고자 한쪽 눈을 칼로 도려낸 남자 노예 ‘아이’를 그렸는데, 지금처럼 줄었다.
竹 ( 대 죽 ) ; [ 생활용기에서 문화용품까지 ]
竹은 곧게 뻗은 대와 양 옆으로 난 잔가지를 그렸다. 갑골문이 쓰였던 기원전 13세기쯤의 황하유역은 야생 코끼리가 살 정도로 기후가 따뜻해 대나무도 많았다. 대는 지금도 생활의 유용한 재료이듯, 당시에도 생필품은 물론 다양한 악기, 나아가 서사의 재료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곧게 자라는 대는 貞節(정절)의 상징이기도 했고, 대로 만든 말을 타며 함께 놀던 옛 친구(竹馬故友 죽마고우)를 연상케 하는 篤(도타울 독)처럼 깊고 ‘도타운’ 정을 뜻하기도 한다.
먼저, 대는 생활용품의 대표적 재료였다. 그래서 笊(조리 조)는 쌀을 이는 데 쓰는 조리를, 筌(통발 전)은 물고기를 잡는 통발을, 笈(책상자 급)은 책상자를, 簞(대광주리 단)은 대로 만든 밥그릇을, 箭(화살 전)은 화살대를, 筵(대자리 연)은 대로 만든 깔개를, 笠 (삿갓 립)은 삿갓을, 箱(상자 상)과 篋(상자 협)은 상자를 말한다.
가늘게 쪼갠 대는 점치는 도구로 쓰이기도 했는데 筮(점대 서)와 笘(대조각 점)은 이를 반영하며, 箸(젓가락 저)와 筷(젓가락 쾌)는 동양의 음식 문화의 상징인 ‘젓가락’을 말한다.
둘째, 絲竹(사죽)으로써 음악을 상징할 정도로 악기의 주요 재료가 되었는데, 竺(대나무 축), 竽(피리 우), 笙(생황 생), 笛(피리 적), 笳(호드기 가), 箜(공후 공), 簫(퉁소 소), 筑(악기 이름 축) 등은 모두 대로 만든 악기를 말한다.
셋째, 종이 이전의 대표적인 필사 재료로 쓰였다. 대를 쪼개 푸른 겉면을 불에 구우면 훌륭한 서사 재료가 되는데 이를 竹簡(죽간)이라 했으며, 冊(책 책)은 竹簡을 실로 엮어놓은 모습이다. 篇(책 편)은 납작한 대 조각(扁:편)에 쓴 글을, 纂(모을 찬)은 여러 글을 계산해 가며(算:산) 한데 모아 실(糸:멱)로 ‘엮음’을 말한다.
策(채찍 책)은 가시(朿:자)처럼 자극할 수 있는 대 침에서 對策(대책)의 뜻이 나왔고, 箋(찌지 전)은 책 속에 꽂아 두는 작은(戔:전) 대 쪽지로부터 글에 다는 주석이나 註疏(주소)의 의미가 나왔다.
米 ( 쌀 미 ) ; [ 쌀, 동양인의 주식 ]
갑골문에서의 米가 무엇을 그렸는지는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아래 위의 세 점이 벼인지 벼를 찧은 쌀인지 분명하지 않고, 중간의 가로획도 벼의 줄기인지 쌀을 골라내기 위한 체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작은 점들이 벼라면 중간의 획은 이삭 줄기일 테고 벼를 찧은 쌀이라면 체일 테지만, 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쌀은 전 세계 인구의 40%정도가 주식으로 삼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인들에게는 가장 대표적인 식량이다. 벼가 중국에 들어간 이후 쌀은 가장 중요한 식량이 되면서 米는 쌀은 물론 기장이나 조 등 일반 곡식까지 지칭하게 되었다. 예컨대 粉(가루 분)은 쌀(米)을 나누어(分:분) 만든 ‘가루’를, 粒(알 립)은 쌀(米)의 독립된(立:립) 단위인 ‘낱알’을, 粃(쭉정이 비)는 쌀에 비견되지만(比:비) 껍질만 있고 알이 들지 않은 ‘쭉정이’를, 粕(지게미 박)은 벼(米)의 흰 속살(白:백)까지 나오게 벗겨낸 상태를, 粢(기장 자)는 쌀(米)에 버금가는(次:차) 곡식인 ‘기장’ 을 말한다.
粮(糧 양식 량)은 식량으로 쓸 양질(良:량)의 곡식을, 粟(조 속)은 다음해에 씨앗으로 쓰고자 광주리(西:서)에 담아 놓은 곡식을 말한다. 粲(정미 찬)은 손(又:우)으로 뼈(歺:알)를 갈듯, 쌀을 찧어 白米로 만드는 것을 말했는데, 찧은 쌀은 하얗고 깨끗한 색깔을 내비친다는 뜻에서 ‘찬란함’의 뜻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파생된 璨(빛날 찬)은 옥(玉:옥)이 빛남을, 燦(빛날 찬)은 불꽃(火:화)이 번쩍임을 말하며, 澯(맑을 찬)은 티 없이 맑은 물결(水:수)이 잔잔하게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糴(쌀 사들일 적)과 糶(쌀 내어 팔 조)는 각각 쌀(米)을 사들이고(入:입) 내다(出:출) 파는 것을 말하는데, 이후 소리부인 翟(꿩 적)이 더해졌다. 粥(鬻 죽 죽)은 솥(鬲:력)에 쌀(米)을 넣고 ‘죽’을 끊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며, 양쪽에 더해진 弓(활 궁)은 원래 피어 오르는 김을 그린 것인데 잘못 변했다.
糸 (가는 실 멱 ) ; [ 비단실 타래 ]
糸의 중간은 꼰 실타래를, 아래위는 첫머리와 끝머리를 그렸는데, 지금은 실타래와 끝머리만 남았다. 그래서 糸은 비단실이 원래 뜻이며, 糸이 둘 모인 絲(실 사)와 대비해 ‘가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파생된 系(이을 계)는 삶은 고치에서 손(爪:조)으로 뽑아낼 때 실(糸)의 ‘연이어진’ 모습을, 幺(작을 요)는 아래 위의 머리가 없는 실타래만 그려 ‘작음’을 나타냈다. ‘실크(silk)'가 絲의 대역어임에서도 볼 수 있듯, 비단은 중국의 대표적 물산이었고 갑골문이 쓰였던 상나라 때 이미 이의 제조 공정과 관련 글자들이 여럿 등장할 정도로 일찍부터 중요하고 다양한 기능을 담당해왔다.
먼저, 經(巠:날 경)은 원래 巠으로써 간단한 베틀을 그렸는데 이후 糸을 더했으며, 비단실로 베를 짜듯 經營(경영)하다는 뜻을 그렸다. 綢(명주 주), 緞(비단 단) 등은 비단을, 素(흴 소)물을 들이지 않은 생명주를, 紡(자을 방)은 비단실을 고치로부터 자아냄을, 織(짤 직)은 비단실로 베를 짜는 것을 말한다.
둘째, 비단에 든 다양한 색깔과 무늬 때문에 이들의 상징이 되었다. 예컨대 紋(무늬 문)은 비단에 아로새긴 무늬(文:문)를, 繡(수 수)는 비단에 정교하게 새겨 넣은 수(肅 숙)를 말하며 紫(자주빛 자), 綠(초록빛 록), 紅(붉을 홍), 紺(감색 감) 등은 비단에 넣은 색깔과 관련된 글자들이다.
셋째, 줄과 관련된 여러 뜻을 가진다. 繩(줄 승), 索(동아줄 삭), 縷(실 루), 紀(벼리 기), 綸(낚싯줄 륜) 등은 다양한 용도의 실을 말한다. 斷(끊을 단)은 원래 실타래(幺) 넷과 칼(刀:도)로 이루어져 칼로 실을 끊음을 말했는데 이후 斤(도끼 근)이 더해졌고, 斷에서 斤을 뺀 나머지를 뒤집어 반대 의미를 그려 낸 것이 繼(이을 계)이다. 絶(끊을 절)도 원래는 앉은 사람(卩:절)이 칼(刀)로 실(糸)을 끊는 모습을 그렸다.
그런가 하면, 실은 紙(종이 지)에서와 같이 실을 솜(絮:서)처럼 잘게 부숴 종이를 만드는 재료로, 絃(악기줄 현)에서와 같이 악기의 줄로 쓰기도 했다.
网( 罒 그물 망 ) ; [ 그물의 안과 밖 ]
网은 손잡이와 그물망을 갖춘 물고기나 새를 잡는 그물을 그렸는데, 이후 소리부인 亡(망할 망)이 더해져 罔(그물 망)이 되었고, 다시 糸(가는실 멱)이 더해져 網(그물 망)이 되었으나, 중국의 간체자에서는 网으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网은 ‘그물’이 기본 뜻인데, 罕(그물 한)은 장대(干:간)처럼 긴 손잡이가 달린 그물을, 罩(보쌈 조)는 높다란(卓:탁) 키의 그물을, 羅(새그물 라)는 가는 실(糸)로 짠 새(隹:추)잡이 그물(网)을 말한다.
署(관청 서)도 그물(网)과 포획물을 삶을(者:자, 煮(삶을 자)의 본래 글자)도구를 ‘배치함’으로부터 나누어 배치한 기관(部署 부서)의 뜻이 나왔다. 또 岡(산등성이 강)은 그물망(网)처럼 이어진 산맥(山:산)의 ‘산등성이’를 말하며, 돌을 드러낸 산등성이처럼 ‘강함’을 뜻하게 되었다. 여기서 파생된 崗(언덕 강)은 그런 산(山)언덕을, 剛(단단할 강)은 산등성이와 칼(刀:도)처럼 ‘단단함’을, 綱(벼리 강)은 그물을 버티는 강한 줄(糸)을, 鋼(강철 강)은 강한 쇠(金:금)를 말한다.
그물은 대상물을 잡아 가두는 도구이기에 제한과 강제, 나아가 죄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罷(그만둘 파)는 재주꾼인 곰(能 능, 태 熊(곰 웅)의 본래 글자)을 그물에 가두어 제 능력을 쓰지 못하게 함을 말한다. 罪(辠 허물 죄)는 원래 형벌 칼(辛:신)로 코(自:자)를 자르는 형벌을 그렸으나, 이후 잘못된(非:비) 자를 그물(网)에 가둔다는 의미로 변했다.
또 罹(근심 리)는 그물에 잡힌 새의 마음(心:심)을 통해 근심과 우환의 의미를 그려 냈다. 羈(굴레 기)는 마소(馬:마)를 얽어 매는 가죽(革:혁) 줄로부터 ‘얽어 매다’의 뜻을, 罶(통발 류)는 가두어 머물게(留:류)하는 그물(网)이라는 뜻을 그렸다. 그리고 詈(꾸짖을 리)는 죄를 말(言 언)로 꾸짖음을, 여기서 파생되어 벌금형을 뜻하는 罰(죄:벌)은 꾸짖음(詈)과 칼 모양의 돈(刀錢 도전)이 결합된 글자이며, 罵(욕할 매)는 詈의 생략된 모습과 소리부인 馬(말 마)로 구성된 글자이다.
羊 (양 양 ) ; [ 정의롭고 상서로운 동물 ]
羊은 갑골문에서 양의 굽은 뿔과 몸통과 꼬리를 그렸다. 양은 온순한 성질, 뛰어난 고기 맛, 유용한 털 때문에, 고대 중국인들에게는 단순한 가축을 넘어서 상서로움과 선과 미와 정의의 표상이며 신께 바치는 대표적 희생이었다.
먼저, 양을 직접 지칭하는 경우로, 群(무리 군)은 군집생활을 하는 양의 특징을, 羌(姜 종족 이름 강)은 원래 양(羊)을 치며 토템으로 삼아 살던 중국 서북쪽 사람(儿:인)들을, 養(기를 양)은 양(羊)을 먹여(食:사) ‘기르는’ 모습을 그렸다.
둘째, 양고기는 뛰어난 맛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羔(새끼 양 고)는 구이(火:화)에 쓸 ‘어린 양’을, 羹(국 갱)은 양(羔)으로 고운 맛있는(美:미) ‘수프’를, 羨(부러워 할 선)은 양고기에 군침 흘림을 그렸다. 羞(바칠 수)는 양고기(羊)를 들고(又우) ‘바치는’ 모습인데, 맛난 음식을 드릴 때 하는 겸양치레에서 ‘부끄러움’의 뜻이 나왔다.
셋째, 아름다움과 정의의 상징이다. 美는 양(羊)의 가죽을 덮어쓴 사람(大:대)에서 양을 잡을 재주를 가진 ‘뛰어난’ 사람을 그렸는데, 큰(大) 양(羊)일수록 유용하며, 유용한 것을 ‘아름다움’이라 풀이하기도 한다. 義(옳을 의)는 날이 여럿 달린 창(我:아)에 양 장식이 더해진 ‘의장용 창’으로부터, 종속 내부의 결속을 도모하고 배반을 응징하는 정의로움의 뜻이 나왔다.
이런 상징의 양은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祥(상서로울 상)은 羊을 숭배(示:시) 대상으로 삼았음을 보여주며, 정의를 판별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善(착할 선)은 원래 말다툼(誩:경)을 양(羊)의 신비한 능력으로 판정해 준다는 神判(신판)의 의미를 그렸고, 詳(자세할 상)도 羊이 審議(심의)하여 판단할 수 있도록 ‘상세히’ 말하다(言:언)는 뜻이다.
넷째, 희생양으로 보듯 양은 희생물의 대표였다. 犧(희생 희)는 원래 羲(숨 희)로써, 의장용 칼(義)에 목 잘린 돼지가 더해져 제사에 쓸 희생을 그렸는데, 이후 소(牛:우)가 더해졌다.
羽 ( 깃 우 ) ; [ 날갯짓과 연습 ]
羽는 깃촉(羽莖 우경)과 털이 갖추어진 깃털을 그렸다. ‘날짐승의 털을 羽, 길짐승의 털을 毛(모)라 한다는 말처럼, 새의 깃털은 날 수 있는 날개이자 자신을 뽐내는 수컷의 상징물이었으며, 활이나 붓을 만드는 재료이기도 했다.
먼저, 깃털의 의미로 쓰인 경우로, 翟(꿩 적)은 멋진 깃털(羽)을 가진 새(隹:추)라는 의미를 담았고, 여기서 파생된 耀(빛날 요)는 ‘화려한’ 꿩(翟)의 깃털처럼 빛남(光:광)을 말한다. 翁(늙은이 옹)의 羽도 수컷을 상징하여 원래는 ‘아버지’를 뜻하던 것이 남자에 대한 존칭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둘째, 깃으로 만든 각종 물품을 말하는데, 중국의 전설에서 활쏘기의 명수였던 后羿(후예)를 말하는 羿(사람 이름 예)는 두 손(廾:공)으로 활(羽)을 쏘는 모습이고, 翳(일산 예)는 깃(羽)을 모아 만든 햇빛 가리개를 말한다. 翰(깃 한)은 소리부인 倝(해 처음 빛날 간)과 의미부인 羽로 이루어져 새의 깃털(羽)로 만든 붓을, 붓은 글의 상징이었기에 다시 翰林(한림)처럼 학자라는 뜻이 나왔다.
셋째, 깃은 날개이자 나는 것의 상징이다. 習(익힐 습)은 원래 羽와 日(날 일)로 구성되어, 어린 새가 오랜 세월(日) 동안 반복해 날갯짓(羽)을 ‘배우는’ 모습을 그렸다. 나머지 翔(빙빙 돌아 날 상), 翶(날 고), 翥(날아오를 저) 등도 모두 ‘날다’는 뜻을 가졌다. 翼(날개 익)은 양쪽 날개(羽)라는 의미에서, 翊(도울 익)은 날려고 날개(羽)를 세우다(立:입)는 의미에서 ‘돕다’의 뜻을 그렸다. 翌(다음날 익)은 원래 日과 羽가 상하로 결합되어, 날(日)이 밝아 새들이 깃(羽)을 세우고(立) 날갯짓을 시작한다는 뜻에서 ‘다음 날(翌日)’의 의미를 그렸다.
그런가 하면 翻(飜:날 번)도 날갯짓을 하며 ‘나는’ 새를 그렸고,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하고자 羽 대신 比(날 비)를 더하기도 했다. 날던 새가 먹이를 잡기 위해 갑자기 몸을 뒤집는 모습에서 翻에는 ‘뒤집다’ 는 뜻이, 다시 飜譯(번역)에서처럼 다른 언어로 바꾼다는 뜻이 담기게 되었다.
老 (늙을 로 ) ; [ 노인과 효도 ]
老는 갑골문에서 긴 머리칼과 굽은 몸, 내민 손에 지팡이를 든 모습이 상세히 그려졌다. 금문부터는 지팡이가 匕(비수 비)로 변했는데, 이는 化(될 화)의 생략된 모습이며 머리칼이 하얗게 변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풀이하기도 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현대 후기 산업사회에서 노인은 생산력을 상실한, 그래서 사회의 구성에 부담을 주는 존재로 전락했지만, 정착 농경사회를 살았던 고대 중국에서 노인은 지혜의 원천이었다. 축적된 경험이 곧 지식이던 그 사회에서는 풍부한 경험을 확보한 노인은 그 사회의 지도자였고 대소사를 판단하는 준거를 제공했다. 그래서 노인은 존중의 대상이었으며, 그 때문에 노인에 대한 구분도 상세하게 이루어졌다.
노인(老)을 몇 살부터 규정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쉰 이상을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 쉰이 되면 신체가 쇠로해지며, 예순이 되면 노역도 반환해야 했으며, 일흔이 되면 모든 일에서 은퇴하는 고대 중국의 관습을 반영하여, 예순 노인을 耆(늙은이 기), 일흔 노인을 耄(늙은이 모), 여든과 아흔 노인을 耋(늙은이 질), 백 살 되는 노인을 期(기약할 기)라 구분해 불렀다. 耆는 세월(日:일)이 흘러 나이가 든 노인을, 耄는 털(毛:모)도 늙어버린 노인을, 耋은 늙음이 극(至:지)에 이른 노인이라는 뜻이며, 期는 100년의 주기를 한 바퀴 돌았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볼 때, 老는 이를 모두 포함하는 통칭으로 보인다.
‘설문해자’에서 老와 같은 뜻이라고 한 考(상고할 고)는 老에 소리부인 丂(巧 정교할 교)가 더해졌는데, ‘효’와 ‘교’의 고대 한자음은 같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노인들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에서도 모시고 봉양해야만 하는 대상이었으며, 孝(효도 효)를 국가를 지탱하는 중심 이데올로기로 설정하기도 했다. 孝는 老의 생략된 모습과 子(아들 자)로 구성되어, 자식(子)이 늙은이(老)를 등에 업은 모습이다. 노인을 봉양하고 부모를 모시는 孝가 어떤 것인지를 구상적으로 보여 준다.
而 (말 이을 이) ; [ 수염, 남자다움과 권위의 상징 ]
而의 위쪽 가로획(一)은 코를, 그 아래 세로획은 人中(인중)을 상징하며, 나머지 늘어진 획의 바깥은 콧수염을, 안쪽은 턱수염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수염은 남자다움과 힘의 권력의 상징이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아슈토레스 여신처럼 턱수염을 가진 여신은 이중의 性(성)을 가진 것을 상징하며, 한자에서도 여자(女:여)의 수염(而)이라는 뜻을 그린 耍(희롱할 사)로써 ‘놀림’ ‘희롱’의 뜻을 담았다.
而의 원래 뜻은 ‘수염’이다. 하지만 而가 가차되어 접속사로 쓰이게 되면서 원래 뜻을 나타낼 때에는 彡(터럭 삼)을 더하여 耏(구레나룻 이)로 분화했다. 또 耏에서의 而가 이미 ‘수염’의 뜻을 상실했기에 의미를 더 분명하게 하고자 頁(머리 혈)로 대신한 須(모름지기 수)로 얼굴(頁)에 난 털(彡)이라는 의미를 그렸다. 하지만 須도 남성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必須(필수)의 뜻을 가지게 되자 다시 髟(머리털 드리워질 표)를 더하여 鬚(수염 수)로 분화했다.
수염은 권위의 상징이었기에 수염이 잘린다는 것은 권위의 훼손이요, 힘의 상징인 남성성의 파괴였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형벌 중에서 신체의 일부를 도려내는 형벌보다는 가벼웠지만 머리칼을 자르는 髡(머리 깎을 곤)과 함께 수염을 자르는 형벌도 있었다. 이 형벌을 耐(견딜 내)라 했는데, 다른 사람의 손(又:우)에 의해 수염(而)이 잘리는 모습이며, 수염을 잘리는 모욕을 참고 견뎌내야 하는 모습에서 ‘견디다’는 뜻이 나왔다.
길게 자란 수염은 부드러움 그 자체이다. 그래서 耎(약할 연)은 길게 자란 성인(大:대)의 수염(而)을 형상화했으며, 이로부터 ‘부드러움’의 뜻이 나왔다. 여기서 파생된 輭(연할 연)은 원래 바퀴를 풀로 감싸 덜컹거리지 않게 고안한 시신 운반용 수레(車:거)를 말했는데, 이후 軟(연할 연)으로 변했다.
하지만 耑(시초 단)은 원래 돋아나는 싹과 뿌리를 그려 ‘시초’나 ‘發端(발단)’의 의미를 그렸으나, 아랫부분의 뿌리가 수염과 닮아 而로 변한 글자이다.
耒 (쟁기 뢰 ) ; [ 쟁기, 첨단 농기구 ]
耒는 갑골문에서 손잡이와 보습이 달린 쟁기를 그렸는데, 금문에서는 손(又:우)을 더하기도 했으며, 소전체에서는 아래가 나무(木:목), 위가 가름대 모양으로 변해 나무로 만든 쟁기를 상징했다.
쟁기는 논밭의 흙을 파 일으키는 농기구를 말하는데, 정착 농경을 일찍부터 시작한 중국에서 쟁기의 발명은 농업 혁명에 비견될 정도로 생산력 향상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으며, 중국문명을 선도한 신기술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쟁기는 농기구를 대표했다. 예컨대 耙(써레 파)는 흙덩이를 부수어 흙을 고르게 ‘써레’를, 耜(보습 사)는 쟁깃술 끝에 맞추는 ‘보습’을, 耞(도리깨 가)는 곡식을 두드려 터는 ‘도리깨’를, 耡(鋤 호미 서)는 긴 손잡이가 달린 ‘호미’를, 耰(곰방메 우)는 씨앗을 덮거나 흙을 고르는 ‘곰방메’를 말한다.
그런가 하면, 耔(북돋을 자)는 농기구로 자식(子:자)을 격려하듯 흙을 북돋움을, 耕(밭갈 경)은 쟁기로 경지 정리된(井:정) 논밭을 경작함을, 耨(괭이, 김 맬 누)는 호미로 김 맴(辱 욕)을, 耦(나란히 갈 우)는 짝(禺:우)을 이루어 하는 쟁기질을 말한다. 이처럼 耒가 단순한 ‘쟁기’에서 농기구의 상징이 되자, 원래의 뜻은 犁(쟁기 려)로 표현했는데 곡식(禾:화)밭을 소(牛:우)의 힘으로 갈아엎는 칼(刀:도)처럼 생긴 도구라는 의미를 담았다. 쟁기의 생명인 보습과 牛耕에서 그 주요 의미를 찾은 것으로 추정된다.
耤(갈, 빌릴 적)은 금문에서 두 손으로 쟁기질하는 모습과 일어나는 흙덩이가 더해진 모습으로부터 흙을 ‘갈다’는 뜻을 그렸으며, 고대문헌에서는 帝王(제왕)이 직접 논밭을 가는 행위(耤田 적전)를 말한다고 했다. 耤田 때에는 토지신과 농사신에게 먼저 풍성한 수확을 위한 제사를 올려야 했을 것이며, 藉(깔개 자)는 그때 쓰던 풀(艸:초)로 만든 ‘거적’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籍(장부 적)은 세금 부과를 위해 땅을 갈아(耤) 먹고 사는 농민에 관한 정보를 죽간(竹:죽)에 적은 ‘장부’ 를 말하며, 이로부터 ‘서적’은 물론 戶籍(호적)의 뜻까지 나왔다.
耳 (귀 이 ) ; [ 귀, 생명과 총명의 상징 ]
耳는 귓바퀴와 귓불이 갖추어진 귀를 그렸으며, 이후 木耳(목이)버섯처럼 귀 모양의 물체나 솥의 귀(鼎耳 정이)처럼 물체의 양쪽에 붙은 것을 지칭하기도 했다. 또 소용돌이 모양의 귀는 여성의 성기와 닮아 생명과 연계되기도 했으며, 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총명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먼저, 귀를 직접 지칭한다. 聞(들을 문)은 문(門:문) 틈으로 귀를 대고 ‘들음’을, 聲(소리 성)은 악기 연주(殸:성)를 귀로 듣는 모습이다. 聯(잇닿을 련)은 원래 耳와 絲(실 사)로 구성되어, 얼굴의 양 끝에 실(絲)처럼 ‘연결된’ 귀라는 이미지를 그렸다.
둘째, 귀는 총명함의 상징이다. 원시 시절, 적이나 야수의 접근을 남보다 먼저 감지할 수 있는 남다른 청각을 가진 자는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聖(성스러울 성)은 원래 발돋움을 하고 선 사람(壬:임)의 귀(耳)를 그려 ‘뛰어난 청각을 가진 사람’이 지도자임을 그렸고, 이후 口(입 구)가 더해져 남의 말(口)을 귀담아들어야 하는 존재가 지도자임을 형상화했다.
聰(귀 밟을 총)은 훤히 뚫린 밝은(悤:총) 귀(耳)로 ‘聰明(총명)함’을 그렸다. 聽(들을 청)은 곧은 마음(㥁:덕)으로 발돋움한 채(壬) 귀(耳) 기울여 듣고 청을 들어 줌을, 여기서 파생된 廳(관청 청)은 그런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广:엄)를 말한다. 또 職(벼슬 직)도 남의 말을 귀에 새기는(戠:식) 직책을 말해 언제나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직무의 원뜻 임을 보여준다.
셋째, 신체의 중요 부위로서의 귀, 특히 축 늘어진 귀는 제왕의 권위나 위대함, 吉祥(길상)을 상징하였는데 耽(즐길 탐)은 귓불(耳)이 아래로 늘어진(冘:유) 모습으로 ‘좋아함’과 ‘즐김’의 의미를 그렸다.
반면 恥(부끄러워할 치)에서처럼 귀는 수치의 상징이었다. 수치심이 생기면 귓불이 붉어진다고 하며, 귀를 가리키는 손짓은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取(취할 취)는 전공을 세우려 적의 귀(耳)를 베어 손(又:우)에 쥔 모습이다.
聿 (붓 률 ) ; [ 붓 최고의 필기구 ]
聿은 손에 잡은 붓을 그렸다. 이후 붓대는 주로 대(竹:죽)로 만들어졌기에 筆(붓 필)이 생겨났고, 간화자에서는대(竹)로 된 붓대와 털(毛:모)로 된 붓 봉을 상징화한 筆로 변했다.
먼저, 필기구로서의 붓이다. 書(글 서)는 그릇에 담긴 먹을 찍어 ‘글’을 쓰는, 晝(낮 주)는 햇빛(日:일)이 있는 ‘낮’에 글을 쓰는, 畵(畫 그림 화)는 붓으로 그림이나 도형을 그리는 모습이다. 畵에서 파생된 劃(그을 획)은 도형이나 획을 칼(刀:도)로 새김을 말한다. 肅(엄숙할 숙)은 수놓을 밑그림을 붓으로 그리는 모습이며, 수는 주위를 집중해 놓아야 하므로 이에 ‘엄숙’의 뜻이 생겼고, 그러자 다시 繡(수놓을 수)가 나왔다. 律(법 률)은 길(彳:척)에서 법령을 써 붙이고 있는 모습이며, 建(세울 건)은 길(廴:인)에서 설계도를 그리는 모습이다.
둘째, 신화적 상징으로서의 붓이다. 肇(비롯할 조) ‘붓(聿)으로 쓴 글을 열다(啓:계)’는 의미를 담았는데, 이는 자신의 몸으로써 武王(무왕)의 병을 대신하고자 신께 기도 드렸던 周公(주공)의 祝辭(축사)가 담긴 궤짝을 연다는 金縢神話(금등신화)를 상상케 한다. 이 궤짝을 엶으로써 주공의 저주 때문에 무왕이 죽었다는 오해가 ‘처음’ 풀리게 되었다는 뜻에서 ‘비롯하다’의 뜻이 생겼을 것이다.
셋째, 隶(미칠 이)와 혼용된 경우이다. 隶는 짐승(의 꼬리)을 손으로 잡은 모습에서 ‘미치다’의 뜻이 생겼고, 이런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 逮(미칠 체)가 만들어졌다. 肄(익힐 이)는 원래 짐승(彖:단)에 隶가 더해진 구조였으나 彖이 彑(짐승머리 계)와 矢(화살 시)로 변해 肄가 되었고, 제사에 쓰려고 잡은 짐승을 ‘손질하는’ 모습에서 그런 절차를 ‘익히고’ ‘배우다’는 뜻이 생겼다.
肆(방자할 사)는 잡은 짐승(隶)을 길게(長:장) ‘늘어놓은’모습에서 ‘가게’의 뜻이 생겼다. 隸(隸 붙을 예)는 짐승을 ‘잡았다’는 뜻에서 ‘예속’의 의미가 나왔는데, 柰(奈 능금나무 내)는 나무(木:목)를 태워 하늘에 지내는 제사(示:시)라는 의미다.
臣 ( 신하 신) ; [ 굴복과 감시 ]
臣은 가로로 된 자연스러운 눈과 달리 세워진 모습인데, 이는 머리를 숙인 채 위를 쳐다보는 눈으로 노예를 상징화했다. 갑골문에서 臣은 항복했거나 포로로 잡힌 남자 노예를 뜻하며, 왕실의 노예를 감독하는 노예의 우두머리를 지칭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臣에 신하의 뜻이 담겼고 군주제 시절 임금에게 자신을 낮추어 부르던 호칭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 臣은 目(눈 목)이나 見(볼 견)과 같이 눈을 그렸지만 ‘보다’는 의미보다는 굴복과 감시의 이미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먼저 굴복의 의미가 담긴 글자로 臣, 宦(벼슬 환), 臧(착할 장)등이 있다. 宦은 집(宀:면) 속에 갇힌 눈(臣)을 그려 궁실의 제한된 공간 속에 갇혀 일하는 말단 관리, 즉 宦官(환관)을 말했다. 臧은 한쪽 눈(臣)이 창(戈:과)에 찔린 모습에 독음을 나타내는 爿(나무 조각 장)이 더해진 구조로, 반항 능력을 줄이기 위해 한쪽 눈을 뺀 남자 노예를 말했으며 고분고분한 노예라는 의미에서 ‘착하다’의 뜻이 나왔다.
둘째, 감시의 뜻을 가진 글자로 臨(임할 임), 監(볼 감), 覽(볼 람), 등이 있다. 臨은 원래 臣과 人(사람 인)과 品(물건 품)으로 이루어져 눈으로 물건을 ‘살피는’ 모습을 그렸고 이로부터 높은 곳에서 아래를 살피는, 監視(감시)와 다스림의 뜻이 나왔다.
監 은 臨에서 品대신 皿(그릇 명)이 들어갔다. 皿은 청동으로 만든 기물의 총칭인데 큰 그릇에 물을 담아 놓고 얼굴을 비추어 보던 모습에서 ‘보다’와 監視의 듯이 나왔다. 여기서 파생된 鑑(鑒 거울 감)은 청동기를 뜻하는 金(쇠 금)을 더했고 覽은 원래 뜻을 강조하기 위해 見을 더해 분화한 글자들이다. 覽도 ‘보다’로 풀이되지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거나 감시의 의미가 들어 視와는 차이를 보인다.
나머지 臥(엎드릴 와)는 책상에 엎드려 머리를 숙인 사람(人)의 눈(臣)을 그려 ‘눕다’와 ‘자다’는 의미를 그렸다. 그래서 옛날에는 침대에 누워 자는 것을 寢(잠잘 침), 책상(几:궤)에 엎드려 자는 것을 臥로 구분했다.
自 (스스로 자 ) ; [나와 코 ]
自는 코를 그렸는데, 앞에서 본 모습이다. 서양인들은 코를 그릴 때 주로 측면의 모습을 그리지만 동양인들은 정면의 모습을 그린다. 그것은 서양인들의 코가 높음 반면 동양인들은 납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코는 후각기관이자 숨을 내쉬는 기관이기에 自는 ‘냄새’나 ‘호흡’과 관련되어 있다. 코는 얼굴에서 개인적 차이가 가장 심한 부위이기에 개인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여기에서 自己(자기). 自身(자신)이라는 뜻이, 自由(자유)는 물론 自然(자연 스스로 그러함)의 뜻까지 생겼다. 그러자 원래의 ‘코’는 소리부인 畀(줄 비)를 더해 鼻(코 비)로 분화했다. 중국인들이 자신을 가리킬 대 우리와는 달리 코에다 손가락을 갖다 대는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는 듯 보인다.
먼저, 코를 지칭한 경우이다. 罪(辠:허물 죄)는 코(自)를 형벌 칼(辛:신)로 자르던 형벌을 말한다. 臬(말뚝 얼)은 사람의 코(自) 높이로 세운 나무(木:목)말뚝을 말했는데, 옛날 해시계나 과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둘째, 후각기관을 뜻하는 경우이다. 臭(냄새 취)는 글자 그대로 후각이 가장 발달해 있다는 개(犬:견)의 코(自)에서 이미지를 가져왔다. 臭는 원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모든 냄새를 부르는 통칭이었으나, 한나라 이후 나쁜 냄새만을 뜻하게 되면서 香(향기 향)과 대칭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자 원래의 동사적 의미는 口(입 구)를 더한 嗅(냄새 맡을 후)로 분화했는데, 口는 냄새를 구분하기 위해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을 보는 이미지를 반영해 주고 있다.
셋째, 호흡기관을 뜻하는 경우이다. 息(숨 쉴 식)은 自와 心(마음 심)으로 이루어졌다. 폐와 코가 가장 주요한 호흡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심장(心)이 펄떡펄떡 뛰면서 거친 숨을 코(自)로 내몰아 쉬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내몰아 쉬는 숨(息)을 가라앉혀 쉬게(休:휴)하는 것이 休息(휴식)이다. 또 皆(다 개)는 원래 比(견줄 비)와 自로 구성되어 숨(自)을 나란히(比)함께 쉼을 말하며, 그렇게 하며 함께 사는 것을 偕(함께 해)라 한다.
至 (이를 지) ; [ 이름과 지극 ]
至를 설해문자에서는 새가 땅에 내려앉는 모습이며, 아래쪽의 가로획(一)은 땅이라고 풀이했지만, 갑골문을 보면 화살(矢 시)이 날아와 땅(一)에 꽂힌 모습이라는 해설이 더 합당해 보인다. 한나라 때의 예서에 이르러 화살의 촉과 꼬리 부분이 가로획으로 변해 지금처럼 되었다. 그래서 至는 ‘이르다’가 원래 뜻이다. 하지만 이후 어던 목표점에 도달했다는 의미에서 ‘끝’이나 ‘지극’의 뜻이 생겼고, ‘최고’의 뜻까지 생겼다. 그러자 원래의 의미는 발음을 나타내는 刀(칼 도)를 더해 到(이를 도)로 분화했다. 또 손에 막대를 든 모습으로 ‘강제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攵(攴:칠 복)을 더하여 어떤 곳에 이르게 하다는 의미의 致(보낼 치)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至로 구성된 글자들은 대부분 ‘이르다’는 원래의 뜻을 담고 있다.
예컨대 室(집 실)은 宀(집 면)과 至로 이루어져 사람들이 도착하여(至) 머무는 곳(宀)을 말하며, 屋(집 옥)은 尸(주검 시)와 至로 구성되어 시신(尸)으로 대표되는 조상의 영혼이 이르는(至) 곳을 말한다. 그래서 屋은 사람이 사는 室과는 달리 주로 시신을 안치했던 곳을 말하며, 그곳은 주로 지붕 없이 선반처럼 만들어졌고 위를 장막으로 둘러쳤다 그래서 屋에 ‘덮개’라는 뜻이 생겼고, 여기에 巾(수건 건)을 더해 幄(휘장 악)을 만들었다.
臺(돈대 대)는 원래 지붕에 장식물이 달린 높게 지은 건축물의 모습에다 至가 더해진 구조인데, 사람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至) 사방을 살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樓臺(누대)를 말한다. 여기서 파생된 擡(들 대)는 손(手:수)으로 높이(臺) ‘들어 올리다’는 뜻이다. 그리고 臻(이를 진)도 至가 의미부이고 秦(벼 이름 진)이 소리부로 ‘이르다’는 뜻을 담았다.
하지만 窒(막을 질)과 桎(차꼬 질)은 이르다라는 의미보다는 ‘지극’이라는 파생 의미를 담고 있다. 즉 窒은 동굴(穴:혈)의 끝(至)이라는 의미에서 막다른 곳이라는 뜻을 그렸고, 桎은 큰(至) 지를 지었을 때 밭에 채우는 나무(木)로 만든 형틀을 말한다.
臼 ( 절구 구 ) ; [ 절구 와 삽 ]
臼는 곡식을 찧는 절구의 단면을 그렸는데, 좌우로 표시된 돌출된 획을 설해문자 에서는 쌀이라고 했지만 찧기 좋도록 만들어진 돌기로 보인다. ‘나무를 잘라 절굿공이를 만들고, 땅을 파 절구로 썼다’고 한 ‘주역’의 말로 보아 옛날에는 땅을 파 절구로 쓰다가 점차 나무나 돌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臼에서 파생된 舀(퍼낼 요)는 절구(臼)에 찧은 곡식을 손(爪:조)으로 긁어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는 비슷한 형체의 臽(함정 함)과 주의해 구별해야 하는데, 臽은 사람의 발이 구덩이에 바진 모습으로 ‘함정’ 의 의미를 그렸으며, 이후 ‘흙(阝, 阜:부)’ 구덩이라는 뜻에서 陷(빠질 함)으로 발전했다.
현행 옥편의 臼부수에 든 글자들 중, 舂(찧을 용)과 臿(가래 삽)은 절구(臼)와 관계된 글자들이다. 舂은 갑골문에서 두 손으로 절굿공이를 들고 절구질을 하는 모습이며, 소전체에 들면서 두 손과 절굿공이가 舂의 윗부분으로 변해 지금처럼 되었다. 臿은 원래 큰 나무줄기를 그린 干(방패 간)과 臼로 이루어져 나무(干)로 만든 절굿공이가 절구(臼) 속에 든 모습에서부터 ‘넣다’ 와 ‘꽂다’의 뜻이 나왔고, 흙을 뜨는 농기구인 ‘삽’까지 뜻하게 되었다. 이후 의미를 더욱 구체화하기 위해 手(손 수)를 더해 揷(꽂을 삽)을, 金(쇠 금)을 더해 鍤(가래 삽)을 만들어 분화했다.
그러나 舁(마주들 여), 與(줄 여), 興(일어날 흥)등은 모두 절구가 아닌 ‘손’과 관계된 글자들이다. 예컨대, 舁는 윗부분과 아랫부분(廾:공)이 모두 두 손을 마주한 모습으로, 두 사람이 서로 힘을 합해 무거운 물건을 마주든 모습을 형상화했다. 여기서 함께 하다는 의미의 同(함께 동)을 더한 글자가 興이요, 독음을 나타내는 与(어조사 여)가 더해진 글자가 與이며, 與에 다시 손동작을 강조하기 위해 手를 더해 분화한 글자가 擧(들 거)이다.
나머지 舅(외삼촌 구)와 舊(옛 구)에서의 臼는 소리부로 쓰여, 舅는 남성(男:남)인 외삼촌이나 시아버지를 지칭하고, 舊는 부엉이처럼 솟은 눈썹을 가진 새(萑:환)를 말한다.
舛 ( 어그러질 천 ) ; [ 반대로 놓인 두 발 ]
舛은 반대 방향으로 놓인 두 발을 그렸는데, ‘설해문자’에 이르러서야 부수로 독립되었고, 그전에는 다른 형상과 결합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두 발은 동작성을, 반대 방향은 배치되어 ‘어그러짐’을 뜻한다. 桀(뛰어날 걸)은 두 발(舛)이 나무(木:목) 위에 올려진 모습으로부터 ‘높다’의 뜻이, 다시 ‘뛰어나다’의 뜻이 나왔다. 이후 닭이 올라서도록 만들어진 ‘홰’까지 뜻하게 되었다. 그러자 뛰어난(桀) 사람(人:인)을 전문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傑(뛰어날 걸)이, ‘홰’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榤(홰 걸)이 만들어졌다.
舞(춤출 무)도 두 발(舛)과 장식물을 들고 춤추는 모습(無:무)이 합쳐진 모습이다. 無가 원래 ‘춤추는 모습’을 그렸으나, 부정사로 사용되자 동작성을 강조한 舛을 더해 舞로 분화했다. 舜(순임금 순)을 설해문자에서는 메꽃(葍:복, 藑:경)이라 했지만 자형과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소전체에서 아랫부분은 두 발(舛)을, 윗부분은 匚(상자 방) 속에 사람의 정면 모습(大:대) 사이로 여러 점이 그려졌다. 여기서 匚만 없다면 몸에 번쩍이는 발광체를 바르고 춤추는 모습을 그린 粦(도깨비불 인)과 같은 꼴이며, 匚은 가면의 상징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舜은 몸에 발광체를 칠한 채 춤을 추는 제사장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이로부터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舜임금’을 지칭하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대는 제사장이 부족장이거나 지도자였던 제정일치 사회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粦은 원시축제 때 자신을 드러내고자 발광물질을 발라 번쩍거리게 한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발광체로 ‘인’이 주로 쓰였다. 이후 의미를 구체화하고자 火(불 화)를 더한 燐이, 石(돌 석)을 더한 磷(인 린)이 만들어졌다.
麟(기린 린)은 ‘번쩍거리는(粦) 화려한 모습을 한 사슴(鹿:록)’처럼 생긴 상상의 동물인 ‘기린’을, 鱗(비늘 린)은 ‘물고기(魚)의 번쩍거리는(粦)’ ‘비늘’을, 蹸(짓밟을 린)은 춤을 추며 쿵쿵 발(足:족)로 밟는 행위를 지칭한다.
舌 (혀 설) ; [ 피리의 혀 ]
舌의 아랫부분은 입(口:구)을, 윗부분은 길게 뻗어 두 갈래로 갈라진 어떤 것을 그렸다. 이는 ‘말을 하고 맛을 구분하는 기관’이라고 풀이한 ‘설해문자’ 의 해석을 참고하면 ‘혀’로 보인다. 하지만 혀라면 끝이 둘로 갈라진 모습이 차라리 사람의 혀보다는 뱀의 혀를 닮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말을 하는 기관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뱀의 혀라면 가능하면 사람과 관계 지어 구체적 형태를 본뜨고 이미지를 그려내던 초기 한자의 보편적 형상 특징에도 위배된다.
한자에서 舌과 音(소리 음)과 言(말씀 언)은 형태나 의미에서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즉 갑골문에서 舌에 가로획을 더하면 音이 되고, 音에 다시 가로획을 더하면 言이 된다. 音은 舌에다 거기서 나오는 ‘소리’를 상징하고자 가로획을 더했고, 그래서 音은 사람이 아닌 ‘악기의 소리’를 지칭한다. 또 音에다 다시 가로획을 더해 言을 만든 것은 악기의 소리와 사람의 ‘말’을
구분하고자 분화한 것이지만, 言의 옛날 용법에는 여전히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라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舌은 위쪽이 대나무 줄기 (干:간 杆의 본래 글자)를, 아래는 대로 만든 악기의 혀(reed)를 그린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舌은 피리처럼 생긴 관악기의 소리를 내는 ‘혀’가 원래 뜻이며, 이후 사람의 혀로까지 의미가 확대되었고, 다시 音을 만들어 악기 소리와 인간의 말을 구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행 옥편의 舌부수에 귀속된 글자들은 대부분 ‘혀’의 동작이나 기능과 관련되어 있다. 예컨대 舐(핥을 지), 掭(핥을 첨), 舚(혀 내밀 담)등이 그렇고, 話(말할 화)는 ‘혀(舌)를 잘 놀리는 말(言)’을 뜻한다. 하지만 颳(바람 불 괄)에는 바람(風:풍)이 불다(舌)는 뜻으로, 악기를 불던 舌의 원래 의미가 희미하나마 남아 있다.
그러나 舍(집 사)는 길가다 머물도록 임시로 지은 집을 말했는데도 형체의 유사함 때문에 舌부수에 들게 되었으며, 館(舘 객사 관), 舖(펼 포), 舒(펼 서) 등은 모두 舍와 관련된 글자들이다.
舟 ( 배 주 ) ; [ 최고의 운송 수단 ]
‘중국의 배는 매우 독특하다. 바닥은 평평하거나 원형이고, 용골(keel)도 없이 단지 튼튼한 노만 하나 있을 뿐이다. 이물(船頭 선두)과 고물(船尾 선미)은 직선을 이루고, 약간 위쪽을 향해 치켜들었다. 뱃전(舷 현)의 위쪽 가장자리부터 배의 바닥까지는 배의 다른 부분을 갈라주는 견실한 방수벽으로 돼 있다. 이런 구조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자왕국’의 저자 링크비스트의 말처럼, 갑골문에서의 舟는 독특한 구조의 중국 배를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러한 배는 아직도 중국 전역에서 강과 강을 오가며 물자를 실어 나르고 있는데, 受(받을 수)는 원래 배(舟) 위에서 두 손으로 물건을 ‘주고받는’ 모습을 그렸고, 다시 手(손 수)를 더해 授(줄 수)로 분화했다.
般(돌 반)은 상앗대를 손으로 잡고(攴:복) 배를 ‘돌리는’ 모습이었는데, 攴이 殳(창 수)로 변해 지금의 자형이 되었고, 航(배 항)은 물의 부력을 견딜(亢:항) 수 있도록 배(舟)를 나란히 잇대어 만든 다리를 말했으며, 이로부터 물 위를 ‘건너다’는 뜻이 나왔다.
하지만 朕(나 짐)은 두 손에 불을 들고(灷:불씨 선) 배(舟)를 고치는 모습을, 服(옷 복)은 사람을 ‘屈服(굴복)’시켜 배(舟)에 태우는 모습이었는데, 모두 舟가 月(달 월)로 잘못 변해 지금의 자형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兪(점점 유)는 배가 물살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모습을 그렸고, 이로부터 ‘변화’와‘긍정’의 의미를 담았다. 여기서 파생된 逾(건널 유)와 踰(넘을 유)는 辵(쉬엄쉬엄 갈 착)과 足(발 족)을 더해 그런 동작을 표현했고, 輸(나를 수)는 車(수레 거)를 더해 수레에 의한 수송 수단을 더했고, 愈(나을 유)와 愉(즐거울 유)는 心(마음 심)을 더해 심리적 치유를 강조했다.
나머지는 배의 부위나 종류에 관한 것으로, 舷은 ‘뱃전’을, 舵(키 다)는 배의 방향 ‘키’를,
軸(고물 축)은 ‘배의 꽁지’를, 舠(거룻배 도)는 돛이 없는 ‘작은 배’를, 艦(싸움배 함)은 ‘군함’을 말한다.
艮 ( 어긋날 간 ) ; [ 머리를 돌려 노려보는 모습 ]
艮의 자원은 명확하지 않다. ‘설문해자’에서는 匕(비수 비)와 目(눈 목)으로 구성되어 ‘복종하지 않다. 서로가 노려보며 양보하지 않음을 말 한다’고 했다. 갑골문에서는 크게 뜬 눈으로 뒤돌아보는 모습을 그렸고, 금문에서는 눈을 사람과 분리해 뒤쪽에 배치하여 의미를 더 구체화했다. 이들 자형을 종합해 보면, 艮는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돌려 노려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艮의 원래 뜻은 부라리며 노려보는 ‘눈’이다, 하지만 艮이 싸움하듯 ‘노려보다’는 의미로 확장되자, 원래의 뜻은 目을 더한 眼(눈 안)으로 분화했는데, 眼이 그냥 눈이 아니라 眼球(안구)라는 뜻을 가지는 것도 이의 반영일 것이다.
먼저, 艮에서 파생된 글자들 중 ‘노려보다’는 뜻을 가진 경우로, 恨(한할 한)은 서로를 노려보며(艮) 원망하는 마음(心:심)을, 狠(개 싸우는 소리 한)은 개(犭:견)가 서로 싸우는 (艮) 것을 말하는데, 개는 두 마리만 모여도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동물로 이름이 나 있다. 限(한계 한)은 머리를 돌려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는 시선(艮) 앞에 높다란 언덕(阜:부)이 가로막혀 있음으로부터, 장벽에 부딪힘과 限界(한계)의 뜻을 그렸다.
很(패려궂을 흔)은 큰 길(彳:척)에서 눈을 부라리며 반항하는 모습에서 공개된 장소에서조차 반항할 정도로 흉악하고 정도가 ‘심함’을 그렸고, 根(뿌리 근)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생존경쟁을 벌이는 나무의 뒤엉킨 ‘뿌리’의 이미지를 잘 나타냈다. 그런가 하면, 跟(발꿈치 근)은 뒤의 이미지를 가져, 발(足:발)의 뒤쪽(艮)을 말하며, 이로부터 발꿈치를 보며 ‘뒤따라가다’는 뜻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서로 양보하지 않아 일어나는 싸움과 ‘곤란’의 뜻을 담은 것으로, 艱(어려울 간)이 있다. 艱을 구성하는 菫(노란 진흙 근)은 원래 기우제를 지낼 때 제물로 쓸 사람을 두 손을 묶고 목에 칼을 씌운 채 불에 태우는 모습을 그린 글자인데, 이후 艮을 더해 그런 ‘어려움(艱苦 간고)’을 더욱 강조했다.
色 ( 빛 색 ) ; [ 흥분된 얼굴색 ]
色은 소전체에서부터 등장하는데, ‘설문해자’에서는 人(사람 인)과 卩(㔾:병부 절)로 구성되었고 ‘顔色(안색)’을 말한다고 했다. 하지만 무릎 끊은 사람(卩), 위로 선 사람(人)이 더해진 모습에서 어떻게 ‘낯빛’의 뜻이 나오게 되었는지는 달리 설명이 없다. 그래서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설이 생겨났다. ‘설문해자’에 있어 최고 해석가인 청대의 단옥재는 ‘마음(心 심)이 氣(기)로 전달되며, 氣는 眉間(미간:顔)에 전달되는데, 이 때문에 色이라 한다’고 풀이했고, 어떤 이는 몸을 편 기쁨과 무릎을 꿇은 비애가 얼굴에 나타나므로‘ 顔色’의 뜻이 생겼다고도 풀이한다. 하지만 色에 ‘빛’이나 ‘안색’은 물론, ‘여자’ 특히 好色(호색)이나 色骨(색골)등에서와 같이 ‘성(sex)’의 의미가 강함을 볼 때, 이러한 해석은 쉬 긍정하기 힘들다.
이보다는 色을 後背位(후배위)의 성애 장면을 그린 것으로 보는 것이 자형에 근접한 해석이 아닌가 싶다. ‘설문해자’에서 제시했던 頁(머리 혈)과 彡(터럭 삼)과 疑(의심할 의)로 구성된 色의 이체자도 머리(頁)를 돌려 뒤돌아보는(疑)모습에 강렬하게 나타난 얼굴빛(彡)을 강조한 글자다. 그래서 色의 원래 뜻은 성애 과정에서 나타나는 흥분된 ‘얼굴색’이며, 이로부터 ‘성욕’ 과 성애의 대상인 ‘여자’, 나아가 정신의 혼미함 등의 뜻하게 되었다.
예건대, 曾+色(마음 어지러 울 승), 瞢+色;(정신 어지러울 맹) 등은 혼미한 정신을, 冥+色(검푸를 명)은 어둡고 컴컴한(冥:명) 색을, 赩(붉을 혁)은 붉은(赤:적) 색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艶(고을 염)은 풍만한(豊:풍) 여성(色)이 곧 곱고 ‘요염함’을 말해준다. 지금이야 야윈 것을 아름다움으로 생각하여 누구나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지만 이러한 야윔(瘦:수)은 옛날 병(疒:녁)으로 여겨진 반면 풍만함을 요염함으로 보았다.
한편 絶(끊을 절)은 사실 色과는 관계없는 글자로, 糸(가는 실 멱)과 刀(칼 도)와 㔾로 구성되어 刀(칼)로 실(糸)을 자르는 모습에서 ‘끊다’의 뜻을 나타냈고, 여기에 소리부인 㔾(절)이 더해졌다.
艸 ( 艹 풀 초 ) ; [ 싹과 잡풀 ]
艸는 갑골문에서 屮(싹 날 철)이 둘 모인 모습인데, 屮은 떡잎을 피운 ‘싹’의 모습이다. 屮이 셋 모이면 卉(풀 훼)가 되고 넷 모이면 茻(잡풀 우거질 망)이 되어, 屮의 수가 많을수록 정도가 강화되었다. 艸의 경우, 금문부터는 소리부인 早(새벽 조)를 더하여 草(풀 초)로 분화해, 단독으로 쓰일 때에는 艸(艹)로 썼다. 풀은 식물의 대표이기 때문에, 艸는 풀의 총칭은 물론 풀의 구체적 명칭, 나아가 식물의 특정 부위를 지칭한다.
먼저 芻(꼴 추), 葬(장사 지낼 장), 莽(우거질 망), 莫(없을 막, 幕의 원래 글자) 등은 풀이 그대로 자형에 든 모습인데, 芻는 손(又:우)으로 풀(艸)을 뜯는 모습을, 葬은 풀숲(茻)에 시신(死:사)이 놓인 모습을, 莫은 풀숲(茻) 사이로 해(日:일)가 넘어가는 모습을, 莽은 풀숲(茻) 사이로 사냥개(犬:견)가 짐승을 잡으러 분주히 다니는 모습을 그렸다. 다만 芻를 제외한 나머지 글자들에서는 아랫부분의 艸가 廾(두 손으로 받들 공)으로 변했다.
다음으로, 식물의 특정 부위를 지칭한 경우로, 花(꽃 화)는 씨를 맺어 새로운 생명으로 변화시키는(化:화) ‘꽃’을, 英(꽃부리 영)은 식물의 핵심부(央:앙)를, 葉(잎 엽)은 식물에 달린 잎(枼:엽)을 말한다.
셋째, 일반적인 식물을 뜻하는 것으로, 苗(모 묘)는 논(田:전)에서 자라나는 어린 싹을, 藝(심을 예)는 두 손으로 묘목을 심는 모습(蓺예)이었는데, 이후 云(이를 운, 雲의 원래 글자)이 더해졌다. 藥(약 약)은 병을 치료해 즐거움(樂:락)을 주는 식물을, 荒(거칠 황)은 풀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巟:황) 모습을 말한다.
하지만 萬(일만 만), 若(같을 약), 苟(진실로 구) 등은 艸와 관계없는 글자들이다. 萬의 윗부분은 전갈(蠆:채)의 집게발을, 若은 원래 여인이 산발한 머리칼을 두 손으로 다듬고 있는 모습을 그렸고, 苟는 양을 토템으로 삼던 중국 서북쪽의 羌族(강족)들이 굴복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모두 잘못 변해 지금처럼 된 글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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