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사랑] 陽曆과 陰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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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배포를 “정삭(正朔)을 반포한다”고 했다.
정삭은 1월 1일의 뜻이지만 달력의 뜻도 있다.
세 가지 정삭이 삼통(三統), 즉 인통(人統) 지통(地統) 천통(天統)이다. 인통은 인월(寅月·1월)을
세수(歲首)로 삼은 중국고대 하(夏)나라의 정삭이며, 지통은 축월(丑月·12월)이 세수인 상(商)나라,
천통은 자월(子月·11월)이 세수인 주(周)나라의 정삭이다.
세종 24년(1442) 완성한 달력이 칠정산(七政算) 내외편이다.
달력을 칠정(七政)이라고 부른 이유는 나라의 정사(政事)도 해·달과
화·수·목·금·토성 일곱 별의 절도 있는 운행처럼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에는 북경의 예수회 선교사이자 청나라 흠천감정(欽天監正·기상청장)
이었던 아담 샬(Adam Schall)이 만든 시헌력(時憲曆)을 사용했는데,
태양력(太陽曆)의 원리를 차용했으나 역시 음력이었다.
음력 전통을 양력(陽曆)으로 바꾸려 한 임금이 고종이다. ‘승정원일기’ 고종 32년(1895) 9월 9일조에 따르면 “정삭을 고치고 태양력을 사용하여 개국 504년(1895) 11월 17일을 505년 1월 1일로 삼으라”는 조칙을 내린다. 이듬해에는 건양(建陽)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도 사용했다. 그러나 황현이 ‘매천야록(梅泉野錄)’ 건양 원년(元年)조에서 “양력 일자를 사용하라고 했지만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습관이 갑자기 변하기는 매우 어려웠다”고 쓴 대로, 관습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광무(光武) 원년(1897) 양력 12월 중추원 이등의관(二等醫官) 지석영(池錫永)의 “양력을 없애고 음력만을 사용하자”는 상소도 이런 실정을 말해준다.
옛 역관(譯官)들의 중국어 교재 ‘노걸대(老乞大)’에는 연경(燕京·북경)의
유명한 오호(五虎)선생이 고려 상인들에게 “금년은 대운(大運)이 병술(丙戌)”이란 점괘를 주는 장면이 나온다. 병술년은 앞으로 대운(大運), 즉 10년간의 운세가
좋다는 뜻이다. 새해 병술년의 10년간 운세가 좋다니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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