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頌 四之五 契爲舜司徒하야 而封於商이러니 傳十四世而湯有天下하시니라 其後에 三宗迭興이러니 及紂無道하야 爲武王所滅하고 封其庶兄微子啓於宋하야 修其禮樂하야 以奉商後하니 其地ㅣ 在禹貢徐州泗濱하야 西及豫州盟猪之野하니라 其後에 政衰하야 商之禮樂이 日以放失이라 七世至戴公時하야 大夫正考甫가 得商頌十二篇於周大師하야 歸以祀其先王이러니 至孔子編詩하야 而又亡其七篇이라 然이나 其存者ㅣ 亦多闕文疑義하니 今不敢强通也ㅣ로라 商都亳하고 宋都商丘하니 皆在今應天府亳州界하니라 설이 순임금의 사도가 되어 상나라에 봉해졌더니 14대를 전하고 탕임금이 천하를 두셨느니라. 그 후에 삼종(中宗 太戊, 武丁 高宗, 祖甲을 말함. 安成劉氏曰湯後九世至太戊하야 而商道興하야 廟號中宗이라 하고 太戊後十三世至武丁하야 商道復興하야 廟號高宗이라하고 武丁再傳而至祖甲하니 所謂三宗迭興也ㅣ라 蓋商人宗之는 皆爲百世不遷之廟라 故로 周公이 作無逸歷擧言之라 但祖甲親盡之際러니 適以國亡이라 故로 未有宗號也歟인저 : 안성유씨가 말하기를 탕임금의 9세 후손인 태무에 이르러 상나라 도가 일어나 묘호를 중종이라 하고, 태무의 10세 후손인 무정에 이르러 상도가 다시 부흥하여 묘호를 고종이라 하고, 무정의 2대 후손인 조갑에 이르렀으니 이른바 삼종이 차례로 일어났다는 것이라. 대개 상나라 사람들의 종이라는 것은 모두 백세동안 사당에서 옮기지 않는 不遷位廟로 삼았느니라. 그러므로 주공이 제사를 빠뜨리지 않도록 일렀음이라. 다만 조갑으로 제사지내는 대의 수가 다 되었는데 곧 나라가 망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종호, 곧 묘호가 있지 않도다. * 親盡 : 제사 지내는 代의 수가 다 됨. 代盡이라고도 함)이 차례로 일어나더니 걸이 무도함에 이르러 무왕이 멸하는 바가 되었고 그 성형인 미자 계를 송나라에 봉하여 그 예악을 닦아서 상나라의 뒤를 받들게 하니 그 땅이 (『서경』) 우공편 서주 사빈에 있어 서쪽으로는 예주 맹저의 들판에 미쳐 있느니라. 그 후에 정치가 쇠하여 상나라의 예악이 날로 없어졌음이라. 7세인 대공 때에 이르러 대부인 정고보가 상송 12편을 주나라 태사에게서 얻어 돌아와 그 선왕에게 제사하였는데 공자가 시를 엮음에 이르러 또 그 7편을 잃어버렸음이라. 그러나 그 보존된 것도 또한 빠진 문장과 의심스러운 뜻이 많으니 이제 감히 억지로 통하게 할 수 없노라. 상나라는 박땅에 도읍하고 송나라는 상구에 도읍하였으니 모두가 지금의 응천부 박주의 경계에 있느니라.
[송(頌)-상송(商頌) 제1편 나1장(那一章)] 猗與那與ㅣ라 置我鞉鼓하야 奏鼓簡簡하니 衎我烈祖ㅣ로다 (의여나여ㅣ라 치아도고하야 주고간간하니 간아열조ㅣ로다) 아, 굉장한지라. 내 작은 북과 큰 북을 설치하여 북소리 둥둥 울리니 우리 열조를 즐겁게 하도다. ○賦也ㅣ라 猗는 歎詞라 那는 多요 置는 陳也ㅣ라 簡簡은 和大也ㅣ라 衎은 樂也ㅣ라 烈祖는 湯也ㅣ라 記曰商人이 尙聲하야 臭味未成이어든 滌蕩其聲하야 樂三闋然後에 出迎牲이라하니 卽此是也ㅣ라 舊說에 以此로 爲祀成湯之樂也ㅣ라하니라 ○부라. 의는 탄사라. 나는 많음이고, 치는 진열함이라. 간간은 조화롭고 큼이라. 간은 즐거워함이라. 열조는 탕임금이라(모씨는 ‘有功烈之祖, 공이 있는 선조’라 함). 『예기』에 이르기를 상나라 사람들이 음악을 숭상하여 취미(냄새와 맛, 곧 犧牲을 말함)가 이뤄지지 않았으면 그 소리를 진동시켜(禮記郊特牲에 註曰滌蕩은 猶搖動也ㅣ라 :『예기』교특생 주에 이르기를 척탕은 요동함과 같음이라) 음악을 세 번 연주하여 마친 뒤에 나가서 희생을 맞이했다 하니 곧 이것이라(安成劉氏曰凡聲은 屬陽이라 故로 曰樂은 由陽來라 商人祭祀에 尙聲은 所以先求諸陽者也ㅣ라 : 안성유씨 가로대 무릇 소리는 양에 속하니라. 그러므로 음악은 양에서 말미암아 오는 것이라. 상나라 사람들이 제사를 지냄에 음악을 숭상하는 것은 먼저 저 양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옛말에 이로써 성탕을 제사하는 음악이라 하니라. 湯孫奏假하시니 綏我思成이샷다 鞉鼓淵淵하며 嘒嘒管聲이 旣和且平하야 依我磬聲하니 於赫湯孫이여 穆穆厥聲이샷다 (탕손주가하시니 유아사성이샷다 도고연연하며 혜혜관성이 기화차평하야 의아경성하니 오혁탕손이여 목목궐성이샷다) 탕임금의 후손이 연주하여 조고에게 이르시니 생각함이 이루어져 우리를 편안케 하셨다. 작은 북 큰 북이 그윽이 울리며 부드러운 피리 소리가 이미 화하고 이미 고르게 우리 경쇠 소리를 도우니, 아, 빛나는 탕임금이 후손이여, 아름다운 그 소리셨다. ○湯孫은 主祀之時王也ㅣ라 假은 與格으로 同이니 言奏樂以格于祖考也ㅣ라 綏는 安也ㅣ라 思成은 未詳이라 鄭氏曰安我以所思而成之人이니 謂神明來格也ㅣ라 禮記에 曰齊之日에 思其居處하고 思其笑語하고 思其志意하고 思其所樂하고 思其所嗜하야 齊三日에 乃見其所爲齊者하며 祭之日에 入室하야 僾然必有見乎其位하고 周旋出戶에 肅然必有聞乎其容聲하고 出戶而聽에 愾然必有聞乎其歎息之聲이라하니 此之謂思成이라 蘇氏曰其所見聞은 本非有也ㅣ오 生於思耳라하니 此二說이 近是라 蓋齊而思之하야 祭而如有見聞이면 則成此人矣라 鄭註에 頗有脫誤새 今正之하노라 淵淵은 深遠也ㅣ오 嘒嘒는 淸亮也ㅣ라 磬은 玉磬也ㅣ니 堂上升歌之樂이오 非石磬也ㅣ라 穆穆은 美也ㅣ라 ○탕손은 제사를 주관할 때의 임금이라. 격은 ‘이를 격’과 더불어 같으니 음악을 연주하여 조고에게까지 이름을 말함이라. 유는 편안함이라. 사성은 자세하지 못하니라. 정씨 가로대 우리를 편안히 하되 생각하여 이룬 바의 사람으로써 하니 신명이 와서 이름을 말함이라. 『예기』(祭義편)에 이르기를 재계하는 날에 그 거처하셨음을 생각하고, 그 웃으며 말씀하셨음을 생각하고 그 뜻을 생각하고, 그 좋아하신 바를 생각하고, 그 즐기시던 것을 생각하여 재계 삼일에는 이에 그 위하여 재계하는 바를 보며, 제삿날에 방에 들어가 어렴풋이 꼭 그 자리에서 보이는 것이 있고, 주선하고 방문을 나섬에 숙연하게 꼭 그 너그러운 소리를 들음이 있고, 방문을 나서서 들음에 탄식하듯 반드시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들음이 있다 하니 이것이 생각을 이룸이라. 소씨 가로대 그 보고 들은 것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나왔을 뿐이라 하니 이 두 가지 설이 옳음에 가까우니라. 대개 재계하고 생각하여 제사함에 보이고 들림이 있는 것 같다면 곧 이 사람을 이룸이라. 정주에 자못 빠지고 잘못된 것이 있기에 이제 바로 잡노라. 연연은 깊고 멂이고, 혜혜는 맑고 밝음이라. 경은 옥경이니 당에 올라가 노래하는 음악이고 석경이 아니니라. 목목은 아름다움이라.
僾 : 어렴풋할 애 慨 : 탄식할 개 庸鼓有斁하며 萬舞有奕하니 我有嘉客이 亦不夷懌아 (용고유역하며 만무유혁하니 아유가객이 역불이역아) 쇠북과 북이 성대히 울리며 만무가 아름다우니 우리 아름다운 손님이 또한 기뻐하지 아니하랴. ○庸은 鏞으로 通이라 斁은 斁然盛也ㅣ라 奕은 奕然有次序也ㅣ라 蓋上文은 言鞉鼓管籥이 作於堂下하니 其聲依堂上之玉磬하야 無相奪倫者ㅣ오 至於此則九獻之後에 鍾鼓交作하고 萬舞陳于庭하야 而祀事畢矣라 嘉客은 先代之後로 來助祭者也ㅣ라 夷는 悅也ㅣ니 亦不夷懌乎는 言 皆悅懌也ㅣ라 ○용은 ‘쇠북 용’으로 통하니라. 역은 섞이듯 무성함이라. 혁은 아름다우면서도 순서가 있음이라. 대개 위 문장은 작은 북과 큰 북과 피리가 당 아래에서 일어나니 그 소리가 당 위의 옥경을 도와 서로 차례를 빼앗음이 없고, 여기에 이르러서는 아홉 번 술잔을 올린 뒤에 쇠북과 북이 서로 일어나고 만무가 뜰에서 베풀어져 제사일이 끝난 것이라. 가객은 선대의 후손으로 와서 제사를 돕는 자들이라. 이는 기뻐함이니 ‘또한 기뻐하지 아니하랴’는 모두가 기뻐함을 말함이라. 自古在昔에 先民有作하니 溫恭朝夕하야 執事有恪하니라 (자고재석에 선민유작하니 온공조석하야 집사유각하니라) 예로부터 옛날에 선민들이 지음이 있으니 아침저녁으로 온화하고 공경하여 일을 함에 정성스러웠느니라. ○恪은 敬也ㅣ니 言恭敬之道는 古人所行이니 不可忘也ㅣ라 閔馬父曰先聖王之傳恭을 猶不敢專하야 稱曰自古라하고 古曰在昔이라하고 昔曰先民이라하니라 ○각은 공경함이니 공경의 도는 옛 사람들이 행한 바이니 가히 잊지 말아야 함을 말함이라. 민마보(國語魯語註에 馬父는 魯大夫라 : 『국어』노어 주에 마보는 노나라 대부라)가 말하기를 옛 성왕이 전하신 공경을 오히려 감히 오로지 하지 못하여 ‘예로부터’라고 일컫고 古를 ‘옛날에’라고 하고 昔을 ‘선민이라’ 하였음이라. 顧予烝嘗인저 湯孫之將이니라 (고여증상인저 탕손지장이니라 賦也ㅣ라) 내 증제와 상제를 돌아볼진저, 탕왕의 후손이 올림이니라. ○將은 奉也ㅣ라 言湯其尙顧我烝嘗哉인저 此湯孫之所奉者ㅣ 致其丁寧之意하니 庶幾其顧之也ㅣ라 ○장은 받들음이라. 탕임금이 그 오히려(바라건대) 나의 증제와 상제를 돌아보실진저. 이 탕왕의 후손이 받드는 것(제사)이 그 정녕한 뜻이 지극하니 거의 그 돌아보리라고 말함이라.
那一章 二十二句 閔馬父曰正考甫가 校商之名頌할새 以那爲首하고 其輯之亂曰云云이 卽此詩也ㅣ라 민마보가 말하기를 정고보가 상나라의 이름난 송을 교정할 때에 그 편집 끝에(亂辭 : 시를 다 정리하고 난 뒤에 끝에 적는 한 편의 大意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운운했다는 것이 곧 이 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