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解釋 ( 해석 )
휘종황제가 말하기를, 배운 사람은 낱알 같고 벼 같고, 배우지 않으면 사람은 쑥 같고 풀 같도다. 아아 낱알 같고 벼 같음이여 나라의 좋은 양식이요 온 세상의 보배로다. 그러나, 쑥 같고 풀 같음이여 밭을 가는 자가 보기 싫어 미워하고 밭을 매는 자가 수고롭고 더욱 힘이 드느니라. 다음 날에서도 만날 때에 뉘우친들 이미 그때는 늙었도다.
▣ 原文 ( 원문 ) 徽宗皇帝 曰( 휘종황제 왈 )
學者는 如禾如稻하고 不學者는 如蒿如草로다 학자 여화여도 불학자 여호여초
如禾如稻兮여 國之精糧이요 世之大寶로다 여화여도혜 국지정량 세지대보
如蒿如草兮여 耕者憎嫌하고 ?者煩惱니라 여호여초혜 경자증혐 서자번뇌
他日面墻에 悔之已老로다. 타일면장 회지이노
▣ 參考事項 ( 참고사항 )
☞ 徽宗皇帝 (휘종황제)
휘종(徽宗1082~1035) 이름 조길(趙佶). 신종(神宗)의 아들. 형인 제7대 황제 철종(哲宗)의 병사(病死)에 따라 즉위하였다.
처음에는 신종의 황후였던 향태후(向太后)의 섭정하에 신구양법(新舊兩法)을 절충한 정치가 시행되었다. 즉위 이듬해에 태후가 죽고 친정(親政)을 시작하자, 신종이 단행하였던 신법(新法)을 채용하였다.
그러나 정치는 채경(蔡京) 등 총신(寵臣)들에게 떠맡기고, 휘종(徽宗) 자신은 태평시대에 궁정 ·정원 등을 조영(造營)하여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다.
한편, 문화재를 수집 ·보호하고 서화원(書畵院)을 설치해서 궁정 서화가를 양성하여, 문화사상 선화시대(宣和時代)라는 한 시기를 현출(現出)하였다.
그 자신이 시문(詩文)과 서화에 뛰어났고, 특히 그림은 전문가의 경지에 달하여 풍류천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1115년 북만주(北滿洲)에서 여진족(女眞族)이 요(遼)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금(金)나라를 세웠을 때, 동관(童貫)의 진언(進言)을 받아들여 금나라와 동맹하여 요나라를 협공하고, 국초(國初) 이래의 염원이던 연운십육주(燕雲十六州)를 수복하려고 꾀하였으나, 1125년 금나라 군사의 진입(進入)을 초래하였다.
휘종은 흠종(欽宗)에게 양위(讓位)하고 도군황제(道君皇帝)가 되어 책임을 모면하려고 하였으나, 재차 침공한 금나라 군사에 의해 국도 카이펑[開封]이 함락되고, 흠종 기타의 황족 ·후비(后妃) 등과 함께 금나라 군대에 잡힘으로써 북송의 멸망을 가져오고(靖康의 變), 북만주의 오국성(五國城:黑龍江省 依蘭縣)의 배소(配所)에서 병사하였다.
▣ 出典 (출전)
◑ 增廣賢文(증광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