伯夷(백이)와 叔齊(숙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두 사람(형제)은 義(의)를 저버린 周(주)나라 곡식은 먹을 수 없다 하여 西山(서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 죽었다. 지금도 이들은 義人(의인)으로 추앙받는다. 나는 이 이야기 끝에 朴彭年(박팽년)의 시 한 수를 적어 주었다.
題寒雲曉月圖
紛紛衆卉覺芳辰, 나부끼는 풀잎도 봄을 아는데 봄철 꽃,풀이 나부끼는데
誰向窮陰風雪親 뉘라서 눈바람을 좋다 하겠나. 한겨울 눈보라를 향하겠느냐
植物無知猶爾許, 아니지, 풀잎이야 몰라 그렇지. 생각없는 식물이 멋대로 흔들리고
西山獨有採薇人. 고사리로 연명하던 그 사람 알지. 서산에 홀로 고사리 뜯는 사람있어
고사리로 연명하던 그 사람, 바로 伯夷와 叔齊가 義를 저린 周나라를 모르는 체만 했어도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不義와 타협할 수 없었던 그들.
자, 이번에는 우리 歷史의 現場으로 한번 가 보자.
世祖가 노하여 소리쳤다.
“이미 臣(신)이라 稱(칭)하고 祿(녹)까지 먹고서 背信(배신)인가?”
朴彭年(박팽년)이 대답했다.
“臣이라 稱한 일도 祿을 먹은 일도 나는 없소”
朴彭年이 忠淸監司(충청감사)가 되어 狀啓(장계, 임금에게 올리는 일종의 보고)한 것을 보니 단 한군데에도 臣이라 稱한 데가 없었다. 世祖가 준 祿은 그대로 倉庫(창고) 안에 봉해져 있었다. 世祖는 朴彭年의 인물이 아까웠다. 핑계만 있으면 살리고 싶었다.
그러나 朴彭年은 죽음의 길을 택했다. 정말이지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도 있다는 것인가? 그저 눈바람을 견뎌 내는 정도가 아니라 당장 죽임을 당하는데도 그래도 지켜야 할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상상도 하기 어렵구나, 死六臣(사육신). 그는 王位(왕위)를 찬탈한 世祖와 타협할 수가 없었다. 義를 지켜야 했다. 義가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나는 義를 지킬 것인가, 버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은 맞아 본 일이 없다. 그러나 만일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될까? 누가 슬그머니 돈 한다발 찔러 준다면, 높은 자리 하나 마련해 놓고 와 앉으라면, 힘센 사람이 눈 한번 딱 부릅뜨고 노려본다면, 그럴 때 나는 어떻게 될까?
아직까지 나에게 그런 상황이 닥치지 않았다는 것이(물론 내가 못나서 그렇겠지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朴彭年(1417∼1456) : 조선 世宗 때의 문신, 학자. 호는 醉琴軒(취금헌). 死六臣의 한분 글씨로 『醉琴軒千字文(취금헌천자문)』이 있다.
芳辰(방신) : 꽃다운, 봄철 窮陰(궁음) : 마지막 겨울철, 즉 섣달 採薇人(채미인) : 고사리 캐는 사람, 즉 伯夷와 叔齊 卉 풀 훼, 초목 芳 꽃다울 방, 이름 빛내다. 향내.辰 지지 진, 별 진, 때 진
猶 오히려 유,움직일 유. 爾 너 이,같이,그러하다,너, 어조사 .薇 고비 미(양치식물),백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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