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립묘지(國立墓地)
동작구 동작동 화장산 동쪽 기슭을 따라 위치한 국립묘지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순국한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민족의 성역이다. 국립묘지는 관악산 기슭에 자리잡은 동작의 능선이 병풍 치듯 감싸고 있으며, 앞쪽으로는 한강이 굽이쳐 흐르는 43만평의 포근한 땅에 마련되어 있다.
지형적으로는 관(冠)을 쓴 듯 봉우리가 솟았다 하여 관악산이며, 붓끝과 같이 뽀족한 형세라 하여 문필봉(文筆峰)이라 일컫는 산세로 감싸여 있다. 이들 산세 속의 펑퍼짐한 지형을 공작포란형이라 하는데, 마치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듯 상서로운 기맥이 흐르는 곳이다. 또한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국립묘지는 산수의 명당에 자리잡고 있다.
일찍이 국군 창설 이래 조국을 수호하다가 죽은 이들을 서울 장충단공원 내에 있는 장충사에서 모셔 왔었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사한 이들을 부산에 있는 범어사·금정사 등 주요 사찰에 임시로 봉안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사자 수가 증가하자,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국군장병들의 넋을 한 곳에 안장하기 위하여 1955년 7월 15일 현재 위치하고 있는 동작동에 국군묘지를 설립하게 되었다.
1954년 3월 1일 국군묘지라는 이름으로 공사에 착공하여 1955년 7월 15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관악산 줄기인 이 곳 공작봉 43만여평(142만㎡)의 대지에 국군묘지가 창설되었다. 3년에 걸친 공사로 1957년에는 총면적 37만 4천여평의 묘지가 준공되었다. 그 중 무덤터는 9만여평이고 나머지 땅에는 숲과 길, 광장과 여러 시설물이 자리잡고 있다.
처음 이 국군묘지의 안치대상은 전몰한 군인에 한하였으며, 1965년 국립묘지로 그 격을 높이고, 안장대상 범위도 국가에 공이 있는 민간인에까지 확대하였다. 또 1970년 이 일대를 성역으로 지정하여 한층 미화 단장하였다. 현재 국립묘지에는 박정희 대통령 등 국가원수를 비롯하여 애국지사·국가유공자·군인·군무원·경찰·무명용사 등 17만이 넘는 영령들을 안장하거나 위패로 봉안하고 있다.
묘역은 현충탑을 중심으로 동·서쪽에 위치해 있다. 이 묘역은 다시 국가유공자 묘역, 애국지사 묘역, 장군 묘역, 장교사병 묘역, 경찰관 묘역 등 각 신분별로 나뉘어져 있다. 이외 시설물로는 충성분수대·현충문·현충탑·무후선열제단·경찰충혼탑·유격부대 전적위령비·육탄10용사현충비·재일학도의용군 전몰용사위령비·육사7기 특별동기생 추모탑·현지 임관 전사자 추념비·포병장교충혼비·충열대·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호국종·현충선양관·학도의용병현충비 등이 조성되어 있다.
2) 효사정(孝思亭)
화장산 동쪽 지맥의 끝인 동작구 흑석동 141-2번지 한강변 남쪽 언덕에는 조선 초기에 있던 효사정이 1993년에 복원되어 자리하고 있다. 이 정자는 조선 세종 때 한성부윤과 우의정을 지낸 노한(盧 )의 별장이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0 금천현 누정조에 효사정에 관한 강희맹(姜希孟)의 기문(記文)이 전한다. 노한이 이곳에서 모친의 묘살이를 극진히 하여 마치고 그대로 눌러 살았다. 그러면서 정자를 짓고 때때로 올라 풍광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정을 품었다. 노한과 동서간이던 강희맹의 아버지 강석덕(姜碩德)이 정자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청을 받고, 주변의 뛰어난 경치에서 이름짓기 보다 그 효성을 생각해서 ‘효사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3) 사육신묘(死六臣墓)
화장산 북쪽 기슭 끝자락인 동작구 노량진동 185-2번지에 사육신 묘역이 있다. 이는 조선 세조 2년(1456)에 단종복위운동을 하다가 순절한 성삼문·박팽년·유응부·이개·하위지·유성원 등 6신의 묘로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자리에는 일찍부터 朴氏之墓·柳氏之墓·成氏之墓·李氏之墓라 새긴 표석이 있는 묘 4개가 있었고, 그 뒤편으로 또 하나의 묘가 있었다. 이를 사육신묘라 일컫고, 뒤편에 있는 묘는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의 묘라고 전하여 왔다.
이렇게 민간에서만 인정되어 오던 육신묘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은 숙종 때로 그 5년(1679)에 왕이 노량에 열무(閱武) 갔다가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육신묘를 봉하였다. 이어 1681년에는 사육신묘역에 민절서원(愍節書院)이 세워졌다. 1691년에는 왕이 김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관원을 보내어 사육신묘에 제사지내게 하였다. 이후 사육신묘는 공식화되어 사람들의 존숭을 받게 되었다.
원래는 박팽년·유응부·이개·성삼문의 묘만 있었고, 하위지와 유성원의 묘는 없었는데, 1977∼1978년에 서울시에서 사육신묘역 정화공사를 하면서 하위지와 유성원의 가묘를 추봉(追封)함으로써 사육신의 묘를 모두 갖추게 되었다. 또한 이때 김문기(金文起)를 사육신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사육신묘역에는 7신의 묘가 모셔져 있다. 묘역은 성역화되어 면적 9,370평의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4) 창빈 안씨 신도비 부묘소(昌嬪安氏神道碑 附墓所)
화장산 동쪽 기슭 국립묘지 경내 이승만 대통령 묘역 남쪽에 조선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조모인 창빈 안씨의 묘비와 묘소가 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묘는 동작릉(銅雀陵)이라 불리웠으며, 그 배치와 규모를 통하여 조선 왕실 후궁의 묘 제도를 알아볼 수 있다. 후궁 원묘에는 보기 드문 신도비를 갖추고 있다.
5) 남관왕묘(南關王廟)
남관왕묘는 화장산의 남쪽 기슭 사당3동 181-1에 위치해 있다. 처음에는 중구 도동1가 68번지에 있었다. 1599년에 왕명에 따라 관우의 묘를 세우고 현령소덕무안왕묘(顯靈昭德武安王廟)라 하였다. 1908년 향사 정리 때 이를 폐지한 후에는 신도들이 옛 터를 불하받아 사단법인 남묘유지사(南廟維持社)를 설립하여 관리하였다. 그후 6·25전쟁 때 전소되어 재건축하였으나 지역의 재개발로 인하여 1978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관왕묘우지재단을 설립하여 관리하고 있다.
6) 사당동 정공 신도비(鄭公神道碑)와 이정영(李正英) 신도비
화장산 남쪽 지맥 한 기슭인 동작구 사당동 산 32-2번지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1·62·63호로 지정된 3기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이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인 임당(林唐) 정유길(鄭惟吉), 수죽(水竹) 정창연(鄭昌衍), 제곡(濟谷) 정광성(鄭廣成)의 신도비로 17세기 석비의 전형적인 작품으로 뛰어난 대표작에 속한다.
화장산 남쪽 지맥에서 총신대고개로 이어진 산기슭인 동작구 사당4동 산 44-7번지에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정영의 묘소가 있다. 신도비 1기를 비롯하여 묘를 포함한 1필지의 보호구역 등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정영의 묘는 17세기 말, 18세기 초의 분묘 형식과 제도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묘갈, 상석, 문관석 등이 당시의 석조미술을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7) 용양봉저정
화장산 북쪽 지맥의 끝자락인 한강대교 남쪽 언덕에 있는 용양봉저정은 조선시대 후기의 정자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양봉저정이란 용(龍)이 뛰놀고 봉(鳳)이 높이 난다는 뜻이다.이 정자는 정조 13년(1789)에 공사를 시작하여 2년 후에 완공되었다. 정조가 수원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묘(園墓)인 현륭원(顯隆園)에 참배하러 다닐 때 노들강(한강)에 배다리(舟橋)를 설치하고 건너가 잠시 쉬어 가는 행궁(行宮)이었다.
이곳은 잠시 머물러 쉬며 점심을 하던 곳이라 하여 주정소(晝停所)라고도 칭하였다. 이 정자는 고종 때 유길준(兪吉濬)에게 하사되었다가, 1930년 일본인의 손에 들어가 건물 일부를 철거하고 이름도 ‘용봉정’으로 고쳤었다. 광복 후 본 이름을 찾았다.
8)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
화장산 정상 바로 밑 국립묘지 경내에 있는 이 절은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갈궁사(葛宮寺)라 불렀다. 고려 공민왕 2년(1352) 보인(寶仁)이 중창하고 화장암(華藏庵)이라 하였다. 그 뒤 조선조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 안씨의 묘소를 현재의 국립묘지 내에 모시게 되자 화장암을 원찰로 지정하고 절의 이름도 화장사(華藏寺)라 바꾸어 승격시켰다. 6·25전쟁 이후 국립묘지가 이곳에 들어서면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절의 토지를 국가에 헌납토록 하고, 절은 호국영령을 위해 기도드리는 국가의 사찰로 지정하였다.
이후 불교계에서도 이 절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1983년 절 이름을 현재의 호국지장사로 바꾸고, 호국충령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정부와 불교계가 함께 정비에 힘써 왔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능인보전·삼성각·종각·선실·대방·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에는 보통 석가삼존을 봉안하나 특별히 아미타삼존을 모신 것은 국립묘지에 묻힌 호국영령들의 서방정토 왕생을 기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능인보전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된 고려 초기의 철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4. 실태와 관리
화장산 일대는 동쪽의 거의 대부분은 국립묘지로 조성되어 있어 민족의 성지로 운영되고 있으며, 한강변 언덕에 솟은 봉우리들은 사육신공원과 검은돌공원·용봉정공원 등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화장산 남쪽 기슭 사당동 산 24-17번지 일대의 3·1공원은 시설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3·1운동 당시 여성 참가자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기자였던 최은희(崔恩喜)가 1967년 4월 15일자 동아일보에 '독립공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글을 투고하여 3·1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공원 설립을 주장하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하였다.
곧 이어 정부는 1968년 5월 15일 건설부고시 제305호로 공원으로 지정되고, 1989년부터 1990년까지 공원을 조성, 현재의 3·1공원으로 개원하였다. 3·1공원은 광장과 파고라 4개, 야외탁자 7개, 벤치 50개, 노인정 1개소가 있다. 또 체육시설로 운동장에 성인 운동기구 7종 11개를 설치해 놓았다. 그리고 전시관 1동과 기념비 1개가 시설되어 있으며 연 7만 2천명이 이용하고 있다. 한강제1근린공원인 용봉정공원에는 노인정과 간이운동장이 있으며 기념비 2개가 서 있고, 한강제2근린공원인 검은돌공원에는 간이운동장 2개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