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스크랩] 離婁章句下 제3장 해설

ria530 2012. 6. 7. 10:15
<제3장>

孟子ㅣ 告齊宣王曰君之視臣이 如手足則臣視君을 如腹心하고 君之視臣이 如犬馬則臣視君을 如國人하고 君之視臣이 如土芥則臣視君을 如寇讎ㅣ니이다

맹자 제선왕에게 고하여 가라사대 인군의 신하 봄이 수족 같은 즉 신하가 인군 봄을 복심같이 하고, 인군의 신하 봄이 견마 같은 즉 신하가 인군 봄을 나라사람처럼 하고, 인군의 신하 봄이 흙먼지 같은 즉 신하가 인군 봄을 원수처럼 하니이다.

芥 : 겨자 개, 티끌 개 讎 : 원수 수

孔氏 曰宣王之遇臣下에 恩禮衰薄하야 至於昔者所進을 今日不知其亡하니 則其於群臣에 可謂邈然無敬矣라 故로 孟子ㅣ 告之以此하시니라 手足腹心은 相待一體니 恩義之至也ㅣ라 如犬馬則輕賤之나 然이나 猶有豢養之恩焉이라 國人은 猶言路人이니 言無怨無德也ㅣ라 土芥則踐踏之而已矣요 斬艾之而已矣니 其賤惡之ㅣ 又甚矣라 寇讎之報ㅣ 不亦宜乎아

공씨 가로대 선왕의 신하 대함에 은혜와 예가 쇠하고 박하여 옛날에 등용한 바가 오늘에 그 도망함을 아지 못함에 이르니 곧 그 군신들에게 가히 막연하고 공경함이 없다고 이름이라. 그러므로 맹자가 이로써 고하시니라. 수족복심은 서로 한 몸으로 대하니 은의의 지극함이라. 견마같은 즉 가볍고 천히 여기는 것이나 그러나 오히려 기르는 은혜가 있음이라. 국인은 길거리의 사람과 같은 말이니 원망도 없고 덕도 없음을 말함이라. 흙먼지 같은 즉 밟고 밟을 뿐이오,

豢 : 기를 환 艾 : 쑥 애, 여기서는 벨 예

王曰禮에 爲舊君有服하니 何如ㅣ라아 斯可爲服矣니잇고

왕이 가라사대 예기에 옛 인군을 위하여 복이 있으니 어찌하여야 이에 가히 위하여 복하리잇고?

[본문 해설]
위에서 맹자가 임금의 행동 여하에 따라 신하가 임금을 원수같이 본다고 하니, 제선왕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묻는 내용이다. 곧 임금을 섬기다가 다른 나라로 간 신하가 전에 섬겼던 임금이 죽으면 복을 입어준다는 예를 들어 이런 경우는 임금이 어떻게 해서 그러하느냐는 질문이다.

儀禮에 曰以道去君이나 而未絶者는 服齊衰三月이라 하니 王이 疑孟子之言을 太甚故로 以此禮로 爲問이라

의례(喪服篇)에 이르기를 도로써 군주를 떠났으나 아직 끊지 않은 자는 재최 삼월을 입는다 하니, 왕이 맹자의 말을 너무 심하다고 의심한 고로 이 예로써 질문함이라.

[참고]
옛날에는 상복의 재질과 봉제 방법에 따라 다섯 가지 服을 입었고 입는 기간에 따라서는 아홉 가지 복으로 나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삼년상은 부모상으로 신분귀천을 막론하고 자식이 나서 어렸을 때 부모 품 안에서 3년 동안 있었으니 최소한 그 기간은 돌아가신 부모를 받든다는 뜻으로 복중에는 가장 오래 입는 상복이다. 조선시대 때 예송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기년(朞年)의 달 수 계산을 살펴보면, 햇수로 3년을 달로 치면 만 24개월인데 반으로 줄여 12개월로 하니 1년이 된다. 즉 춘하추동 4계절인 것이다. 한 계절이 3개월이기 때문에 초수 원근에 따라 한 계절(3개월)씩 줄여 복을 입는다. 대공은 기년복(1년 즉 12개월)에서 석 달을 줄인 9개월이고, 시복(緦服)은 3개월이니 유복지친(有服之親 : 복을 입는 가까운 친척)이라고 했을 때 최소한 한 계절인 석 달은 입어주어야 한다. 간략하게 복제(服制)를 살펴보자.

① 참최복(斬衰服) : 아버지상이나 손자가 아버지를 대신한 할아버지 승중상(承重喪)에 입는다. 가슴을 베는 듯한 슬픔이란 뜻으로(三年喪如斬), 거친 삼베를 잘라 깃을 여미지도 않고 만드는데 앞가슴에 최(衰)를 달고 뒷등에 부판(負板)을 달아서 입으며, 대나무로 만든 상장(喪杖)을 짚고 3년 동안 근신하는 것이다. 남편상이나 시아버지상도 마찬가지다.
② 재최복(齋衰服, 齊衰服) : 어머니상, 할머니 승중상, 시어머니상에 입는다. 참최복과 달리 고운 베로 깃을 여미며 앞가슴에 최를 달고 뒷등에 부판을 단 후 오동나무로 네모나게 만든 상장을 짚고 3년간 근신한다.
③ 장기(杖朞) : 아버지 생존시 어머니상이나 아내상을 당했을 때 재최복을 입고 상장을 짚고 1년간 근신한다.
④ 부장기(不杖朞) : 백숙부(伯叔父) ∙ 형제(兄弟) ∙ 차자(次子) ∙ 장손(長孫)의 상을 당했을 때 재최복을 입고 상장없이 일년간 근신한다. 큰며느리 ∙ 조카 ∙ 친정부모 ∙ 조부모도 같다.
⑤ 대공복(大功服) : 종형제(從兄弟) ∙ 지차며느리 ∙ 시조부모 ∙ 친정백숙부 ∙ 질부(姪婦) ∙ 고모(姑母) ∙ 출가한 자매(姉妹)의 상에는 곱게 다듬어 만든 상복을 입고 상장없이 9개월간 근신한다.
⑥ 소공복(小功服) : 종조부모(從祖父母) ∙ 대고모(大姑母) ∙ 종손(從孫) ∙ 당고모(堂姑母) ∙ 당숙모(堂叔母)의 상일 때는 상장없이 5개월간 근신한다. 상복은 대공과 같다.
⑦ 시마복(緦麻服) : 증조부모(曾祖父母) ∙ 재종조부모(再從祖父母) ∙ 장인(丈人) ∙ 장모(丈母)의 상에 3개월간 입는다. 종수(從嫂) ∙ 종손부(從孫婦) ∙ 재종숙모(再從叔母) ∙ 재종손(再從孫) ∙ 외손(外孫) ∙ 시종조부모(媤從祖父母) ∙ 시사촌(媤四寸) ∙ 시당숙모(媤堂叔母)도 이에 속한다. 상복은 소공과 같다.

曰諫行言聽하야 膏澤이 下於民이오 有故而去則君이 使人導之出疆하고 又先於其所往하며 去三年不反然後에 收其田里하나니 此之謂三有禮焉이니 如此則爲之服矣니이다

가라사대 간함에 행하며 말함에 청하야 고택이 백성에게 내려가고, 연고가 있어 가면 인군이 사람으로 하여금 인도하여 국경을 나가게 하고, 또 가는 바에 먼저하며(먼저 기별하며) 간지 3년에 돌아오지 아니한 연후에 그 전리를 거두나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예가 있다 하니 이와 같은 즉 위하여 복하나이다.

膏 : 기름 고, 기름질 고, 은혜 고 膏澤 : 은택(恩澤)을 베풂, 또는 은택

導之出疆은 防剽掠也라 先於其所往은 稱道其賢하야 欲其收用之也ㅣ라 三年而後에 收其田祿里居하니 前此에 猶望其歸也ㅣ라

인도하여 국경을 나게 함은 노략질의 위협을 막음이라. 그 가는 곳에 먼저 함은 그 어짊을 칭찬하여 그 거두어 쓰기를 바람이라. 삼년이 된 후에 그 전록과 거주하는 마을을 거두니 이에 앞서 오히려 그 돌아옴을 바램이라.

剽 : 표독할 표, 겁박할 표 掠 노략질할 략

今也앤 爲臣이라 諫則不行하며 言則不聽하야 膏澤이 不下於民이오 有故而去則君이 搏執之하고 又極之於其所往하며 去之日에 遂收其田里하나니 此之謂寇讎ㅣ니 寇讎에 何服之有ㅣ리오

이제엔 신하가 됨이라. 간한즉 행하지 아니하며 말한즉 듣지 아니하여 은택이 백성에게 내려가지 않고, 연고가 있어 간즉 인군이 포박하고 또 그 가는 곳에 궁하게 하며 가는 날에 마침내 그 전리를 거두나니, 이를 일러 원수라 하니 원수에 무슨 복이 있으리오.

搏 : 칠 박, 잡을 박

極은 窮也ㅣ니 窮之於其所往之國이니 如晉錮欒盈也ㅣ라 ○潘興嗣ㅣ 曰孟子ㅣ 告齊王之言은 猶孔子ㅣ 對定公之意也ㅣ로대 而其言有迹하여 不若孔子之渾然也하니 蓋聖賢之別이 如此하니라 楊氏 曰君臣은 以義合者也ㅣ라 故로 孟子ㅣ 爲齊王하여 深言報施之道하사 使知爲君者ㅣ 不可不以禮遇其臣耳라 若君子之自處則豈處其薄乎아 孟子ㅣ 曰王庶幾改之를 予日望之라 하시니 君子之言이 蓋如此니라

극은 궁함이니 그 가는 곳의 나라에 궁함이니 진나라가 난영을 가둠과 같으니라. ○ 반흥사가 가로대 맹자가 제왕에게 고하신 말씀은 공자가 정공에게 대답한 뜻과 같되 그 말씀이 자취가 있어 공자의 혼연함만 같지 못하니 대개 성현의 다름이 이와 같으니라. 양씨 가로대 군신은 의로써 합하니라. 그러므로 맹자가 제왕을 위하여 보시의 도를 깊이 말씀하셔서 인군된 자가 예로써 그 신하를 대우하지 아니하면 아니됨을 알게 하셨음이라. 만약에 군자가 스스로 처한다면 곧 어찌 그 얇음에 처하겠는가. 맹자 가라사대 왕이 거의 고침을 나는 날로 바라니라 하시니 군자의 말이 대개 이와 같으니라.

錮 : 땜질 고, 가둘 고 欒 : 나무이름 란

[앞주 해설]
‘晉錮欒盈’은『춘추좌씨전』양공(襄公) 21년에 나오는 내용으로, 晉나라 육경(六卿)의 하나인 欒盈이 세력을 잃고 楚나라로 망명하자, 晉나라에서는 ‘난영의 망명을 받아들이는 나라는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여 난영으로 하여금 여러 나라를 떠돌게 했다.
‘孔子對定公之意’는『논어』八佾篇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43살부터 57살까지 노나라 定公을 섬겼으나 三桓氏의 전횡이 심해지고 군신의 명분이 흐려졌다. 이때 정공이 군주가 신하를 쓰고 신하가 군주를 섬기는 방법을 묻자(定公이 問使臣하며 臣事君호대 如之何잇고) 공자가 군자는 신하를 쓰되 예를 지키고, 신하가 군주를 섬기되 충성을 다하면 된다(孔子 對曰君使臣以禮하며 臣事君以忠이니라)고 하였다.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家苑 이윤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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