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스크랩] 離婁章句下 제14장~제17장 해설

ria530 2012. 6. 7. 10:17
<제14장>

孟子ㅣ 曰君子ㅣ 深造之以道는 欲其自得之也ㅣ니 自得之則居之安하고 居之安則資之深하고 資之深則取之左右에 逢其原이니 故로 君子는 欲其自得之也ㅣ니라

맹자 가라사대 군자가 깊이 나아감을 도로써 함은 그 스스로 얻고자 함이니 스스로 얻고자 하면 곧 거처함이 편안하고 거처함이 편안하면 곧 자뢰함(스스로 힘입음, 바탕함)이 깊어지고 자뢰함이 깊어지면 곧 좌우에서 취함에 그 근원을 만나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스스로 얻고자 함이니라.

造는 詣也ㅣ니 深造之者는 進而不已之意라 道則其進爲之方也ㅣ라 資는 猶藉也ㅣ라 左右는 身之兩旁이니 言至近而非一處也ㅣ라 逢은 猶値也ㅣ라 原은 本也ㅣ니 水之來處也ㅣ라 言君子ㅣ 務於深造하야 而必以其道者ㅣ 欲其有所持循하야 以俟夫黙識心通하야 自然而得之於己也ㅣ라 自得於己則所以處之者는 安固而不搖하고 處之安固이면 則所藉者는 深遠而無盡하고 所藉者深則日用之間에 取之至近하여 無所往而不値其所資之本也ㅣ니라 ○程子ㅣ 曰學不言而自得者ㅣ 乃自得也ㅣ니 有安排布置者는 皆非自得也ㅣ라 然이나 必潛心積慮하야 優遊厭飫於其間然後에 可以有得이니 若急迫求之면 則是私己而已라 終不足以得之也ㅣ니라

조는 나아감이니 깊이 나아간다는 것은 나아가고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라. 도는 곧 그 나아가는 방법이라. 자는 자뢰함과 같음이라. 좌우는 몸의 양 곁이니 지극히 가까우면서도 한 곳이 아님을 말함이라. 봉은 만남과 같음이라. 원은 근본이니 물이 나오는 곳이라. 말하건대 군자가 깊이 나아감에 힘써서 반드시 그 도로써 하는 것은, 그 잡고 따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서 써 묵묵히 알고 마음으로 통함을 기다려 스스로 그러해서 몸에 얻어짐이라. 스스로 몸에 얻어진다면 곧 써 처하는 바가 편안하고 견고하여 흔들리지 아니하고, 처함이 편안하고 견고하면 곧 자뢰하는 바가 깊고 멀어 다함이 없고, 자뢰한 바가 깊으면 곧 날마다 쓰는 사이에 취함이 지극히 가까워져 가는 곳마다 그 자뢰하는 근본을 만나지 않음이 없느니라. ○ 정자 가라사대 배움은 말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얻는 것이 이에 자득함이니 안배하고 베풀어 둠이 있는 것은 다 자득이 아니니라. 그러나 반드시 마음을 담그고 생각을 쌓아서 그 사이에 우유(한가로운 모양)하고 염어(흡족함)한 뒤에야 가히 써 득함이 있으니, 만약에 급박하게 구한다면 곧 이는 私己일 뿐이라. 마침내 족히 써 얻지 못할 것이니라.

詣 : (학예가 깊은 경지에) 이를 예 優遊 : ①한가로운 모양 ②과단성이 없는 모양, 고식적(姑息的)인 모양, 여기서는 ①의 뜻 厭飫 : ①흡족함 ②싫증이 남, 여기서는 ①의 뜻. 곧 음식을 배불리 먹는다는 뜻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부하여 풍부한 지식과 실천적 경험을 쌓는다는 의미이다. 私己 : 私는 私通, 陰私, 私生 등의 쓰임에서 볼 수 있듯이 몰래 혼자 한다는 의미로, 자신을 속인다는 詐와 같은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제15장>

孟子ㅣ 曰博學而詳說之는 將以反說約也ㅣ니라

맹자 가라사대 넓게 배우고 자세히 말함은 장차 써 돌이켜 간략히 말하려 함이니라.

言所以博學於文하고 而詳說其理者는 非欲以誇多而鬪靡也ㅣ오 欲其融會貫通하야 有以反而說到至約之地耳라 蓋承上章之意하야 而言學은 非欲其徒博이요 而亦不可以徑約也ㅣ니라

써한 바 글을 넓게 배우고 그 이치를 상세히 말하는 것은 써 자랑을 많이 하고 화려함을 다투고자 함이 아니고 그 융회하고 관통하여 써 돌이켜 지극히 요약한 곳에 이름을 설명하고자 함이라. 대개 윗 장의 뜻을 이어 배움은 그 한갓 넓히고자 함이 아니요, 또한 가히 써 바로 요약함이 아니니라.

靡 : 없을 미, 쓰러질 미, 여기서는 ‘화려할 미’ 融會 : 소상하게 이해함

<제16장>

孟子ㅣ 曰以善服人者는 未有能服人者也ㅣ니 以善養人然後에 能服天下하나니 天下ㅣ 不心服而王者ㅣ 未之有也ㅣ니라

맹자 가라사대 선으로써 사람을 복종케 하는 자는 능히 사람을 복종시킬 자 있지 아니하니, 선으로써 사람을 기른 연후에 능히 천하를 복종시키나니 천하가 마음으로 복종하지 아니하고 왕하는 자 있지 않느니라.

服人者는 欲以取勝於人이요 養人者는 欲其同歸於善이니 蓋心之公私ㅣ 小異하고 而人之向背ㅣ 頓殊하니 學者ㅣ 於此에 不可以不審也ㅣ니라

사람을 복종케 하는 자는 남에게 써 이김을 취하려 함이오, 사람을 기르는 자는 그 선에 함께 돌아가고자 함이니, 대개 마음의 공사가 조금 다르고 사람의 향배가 크게 다르니, 배우는 자 이에 가히 써 살피지 않음이 없느니라.

<제17장>

孟子ㅣ 曰言無實不祥하니 不祥之實은 蔽賢者ㅣ 當之니라

맹자 가라사대 말이 실함이 없으면 상서롭지 아니하니, 상서롭지 아니함의 실지는 어진 이를 가림이 해당하니라.

[본문해설]
‘言無實不祥’에 대한 해석은 아래 주에서 볼 수 있듯이 ‘無有實不祥’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필자의 해석처럼 ‘言而無實者ㅣ 不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뒷 문장의 ‘不祥之實’에서 實은 명사로 쓰였기에 ‘言無實不祥’의 實 또한 명사로 해석함이 더 정확한 뜻이 될 듯하다. 만약에 전자처럼 해석한다면 말이란 본래 모두가 상서롭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 참고로 『주역』「계사상전」7장에서 風澤中孚괘 九二효에 대한 공자의 설명을 통해 말의 善(實)함과 善(實)하지 못함에 따른 파장을 다음과 구분하고 있다.
“子曰 君子居其室하여 出其言에 善이면 則千里之外이 應之하나니 況其邇者乎여 居其室하야 出其言에 不善이면 則千里之外이 違之하나니 況其邇者乎여 言出乎身하여 加乎民하며 行發乎邇하여 見(현)乎遠하나니 言行은 君子之樞機니 樞機之發이 榮辱之主也이라 言行은 君子之所以動天地也이니 加不愼乎아”
(공자 말씀하시길 “군자가 자기 집에 거해서 그 말을 냄에 선하면 천리 밖에서 응하나니 하물며 그 가까운 데서랴! 자기 집에 거해서 그 말을 냄에 불선하면 천리 밖에서 어기나니, 하물며 그 가까운 데서랴! 말이 몸에서 나와 백성에게 더하며, 행실이 가까운 데서 발해 먼 곳에서 나타나니, 언행은 군자의 추기(지도리와 기틀)이니 추기의 발함이 영예와 욕됨의 주가 되느니라. 언행은 군자가 이로써 천지를 움직이는 바니 가히 삼가지 아니하랴!)

或曰天下之言이 無有實不祥者하니 惟蔽賢이 爲不祥之實이라 하고 或曰言而無實者ㅣ 不祥이라 故로 蔽賢이 爲不祥之實이라 하니 二說이 不同하여 未知孰是라 疑或有闕文焉이니라

혹 이르기를 천하의 말이 실지로 상서롭지 아니함이 없으니 오직 어짊을 가림이 상서롭지 아니함의 실지로 된다 하고, 혹 가로대 말함에 실지가 없은 것이 상서롭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어짊을 가림이 상서롭지 아니함의 실지가 된다 하니, 두 가지 설이 같지 아니하여 누가 옳은지 아지 못하니라. 의심컨대 혹 빠진 글이 있는 듯하니라.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家苑 이윤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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