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스크랩] 離婁章句上 제16장~제18장 해설

ria530 2012. 6. 8. 17:22
<제16장>

孟子ㅣ 曰恭者는 不侮人하고 儉者는 不奪人하나니 侮奪人之君은 惟恐不順焉이어니 惡得爲恭儉이리오 恭儉은 豈加以聲音笑貌爲哉리오

맹자 가라사대, 공순하는 자는 사람을 업수 여기지 아니하고, 검소하는 자는 사람을 빼앗지 아니하고, 남을 업수 여기고 빼앗는 인군은 오직 순하지 아니할까 두려워하나니, 어찌 얻어 공순하고 검소하리오. 공순함과 검소함은 어찌 가히 소리와 음성과 웃음과 모양으로써 하리오.

惟恐不順은 言恐人之不順己오 聲音笑貌는 僞爲於外也ㅣ니라

오직 순하지 않을까 두려워함은 남이 나에게 순하지 않을까 두려워함이오, 성음소모는 밖에 거짓으로 함을 말함이라.

<제17장>

淳于髡이 曰男女ㅣ 授受不親이 禮與잇가 孟子ㅣ 曰禮也ㅣ니라 曰嫂溺則援之以手乎잇가 曰嫂溺不援이면 是는 豺狼也ㅣ니 男女ㅣ 授受不親은 禮也ㅣ오 嫂溺이어든 援之以手者는 權也ㅣ니라

순우곤이 가로대 남녀가 주고 받으며 친히 아니함이 예입니까? 맹자 가라사대 예니라. 가로대 아주머니가 물에 빠진 즉 구원하되 손으로써 하니잇가? 가라사대 아주머니가 물에 빠졌는데 구원하지 아니하면 이는 시랑이니, 남녀가 주고받으며 친히 아니함은 예이고 아주머니가 빠지거든 구원을 하되 손으로써 함은 권도이니라.

髡 : 머리깍을 곤 嫂 : 아주머니 수, 형수 수 豺 : 승냥이 시 狼 : 이리 랑

淳于는 姓이오 髡은 名이니 齊之辯士라 授는 與也ㅣ오 受는 取也ㅣ라 古禮에 男女ㅣ 不親授受하니 以遠別也ㅣ니라 援은 救之也ㅣ라 權은 稱錘也ㅣ니 稱物輕重而往來하야 以取中者也ㅣ라 權而得中이면 是乃禮也ㅣ니라

순우는 성이고, 곤은 이름이니 제나라의 변사라. 수는 줌이오 수는 취함이라. 고례에 남녀가 친히 주고받지 아니했으니 멀리 분별해서 함이라. 원은 구원함이라. 권은 저울추니 물건의 가볍고 무거움을 저울질하여 가고 옴에 써 중을 취함이라. 저울질하여 중을 얻으면 이것이 이에 예이니라.

曰今天下ㅣ 溺矣어늘 夫子之不援은 何也잇고

가로대 이제 천하가 빠졌거늘 부자가 구원하지 않음은 어째서니잇고?

言今天下大亂하여 民遭陷溺하니 亦當從權以援之요 不可守先王之正道也ㅣ니라

이제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 백성이 함닉을 만났으니(도탄에 빠졌으니) 또 마땅히 권도를 좇아서 써 구원해야 할 것이오, 가히 선왕의 정도를 지키지 아니함을 말함이라.

曰天下ㅣ 溺이어든 援之以道ㅣ오 嫂溺이어든 援之以手ㅣ니 子欲手援天下乎아

가라사대 천하가 빠지거든 구원하되 도로써 하고, 아주머니가 빠지거든 구원하되 손으로써 할지니 자네가 손으로 천하를 구원하고자 하는가?

言天下溺에는 惟道ㅣ 可以捄之니 非若嫂溺에 可手援也ㅣ니라 今子ㅣ 欲援天下호대 乃欲使我로 枉道求合이면 則先失其所以援之之具矣리니 是는 欲使我로 以手援天下乎저 ○此章은 言直己守道는 所以濟時요 枉道徇人은 徒爲失己니라.

천하가 빠짐에는 오직 도로 가히 써 구원할지니 아주머니가 빠짐에 가히 손으로 구원함과는 같지 않음을 말씀하심이라. 이제 그대가 천하를 구원하고자 하되 이에 나로 하여금 도를 굽혀 합함을 구하게 하고자 하면, 곧 먼저 그 써 구원하는 바의 기구를 잃음이니, 이는 나로 하여금 손으로써 천하를 구원하게 하고자 함인저. ○이 장은 몸을 곧게 하여 도를 지킴은 곧 써 때를 구제하는 바이오, 도를 굽혀 사람을 따름은 한갓 제 몸을 잃게 됨(실추함)을 말함이라.

<제18장>

公孫丑ㅣ 曰君子之不敎子는 何也ㅣ잇고

공손추 말하기를 군자가 자식을 가르치지 아니함은 어찌잇고?

不親敎也ㅣ라
친히 가르치지 않음이라.


孟子ㅣ 曰勢不行也ㅣ니라 敎者는 必以正이니 以正不行이어든 繼之以怒하고 繼之以怒則反夷矣니 夫子ㅣ 敎我以正하샤대 夫子도 未出於正也ㅣ라 하면 則是父子相夷也ㅣ니 父子相夷則惡矣니라

맹자 가라사대 형세가 행하지 못함이니라. 가르치는 것은 반드시 바름으로써 함이니 바름으로써 행하지 못하거든 잇되 성냄으로써 하고 잇기를 성냄으로써 한즉 오히려 상하니, 아버지가 나를 바름으로써 가르치시되 아버지도 바른 데에 나가지 못한다면 곧 이 부자가 서로 상함이니 부자가 서로 상한즉 미워하니라.

[본문 해석]
바름을 가르치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가르치면서 화내게 되고, 화냄은 도리어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자식을 바르라고 가르치고 그 아들이 바르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아버지가 화를 내면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가 바르지 않다고 책망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미워하게 만드는 일이다.

夷는 傷也ㅣ라 敎子者는 本爲愛其子也어늘 繼之以怒이면 則反傷其子矣라 父旣傷其子하면 子之心도 又責其父曰夫子ㅣ 敎我以正道하사대 而夫子之身도 未必自行正道라 하면 則是子又傷其父也ㅣ라

이는 상함이라. 자식을 가르친다는 것은 본래 그 자식을 사랑함이거늘 잇되 성냄으로써 하면 곧 도리어 그 자식을 상함이니라. 아비가 이미 그 자식을 상하게 하면 자식의 마음도 또한 그 아비를 책망하여 말하기를 아버지가 나를 정도로써 가르치시되 아버지의 몸도 반드시 스스로 정도를 행하지 못한다 하면 이 자식 또한 그 아비를 상함이라.

古者에 易子而敎之하니라

옛날에 자식을 바꿔서 가르쳤느니라.

易子而敎는 所以全父子之恩하야 而亦不失其爲敎라

자식을 바꿔서 가르침은 써한 바 부자의 은혜를 온전히 하고 또한 그 가르침을 잃지 아니함이라.

父子之間은 不責善이라 責善則離하나니 離則不祥이 莫大焉이니라

부자의 사이는 선을 책하지 아니하니라. 선을 책한즉 떠나나니 떠난즉 상서롭지 못함이 (이보다 더) 큼이 없느니라.

責善은 朋友之道也ㅣ라 ○王氏 曰父有爭子는 何也ㅣ오 所謂爭者는 非責善也ㅣ라 當不義이면 則爭之而已矣라 父之於子也에 如何오 曰當不義면 則亦戒之而已矣라

선을 책함은 붕우의 도이니라. ○왕씨 가로대 아비가 간하는 자식을 둠은 어째서인고. 이른바 간한다는 것은 선을 책함이 아니니라. (아비가) 마땅히 의롭지 못하면 곧 간할 따름이라. 아비가 자식에게 어떠한고? 가로대 (자식이) 마땅히 불의하면 곧 또한 경계할 따름이니라.

爭 : 여기서는 ‘간할 쟁’

[앞주 해설]
소학을 보면 부모가 잘못하였을 때 자식의 도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內則에 曰父母ㅣ 有過ㅣ어시든 下氣怡色柔聲以諫이니 諫若不入이어든 起敬起孝하야 說則復諫이니라 不悅이사도 與其得罪於鄕黨州閭론 寧熟諫이니 父母ㅣ 怒不悅而撻之流血이라도 不敢疾怨이요 起敬起孝니라 曲禮에 曰子之事親也에 三諫而不聽則號泣而隨之니라”
(내칙에 가로대 부모가 허물이 있거든 기운을 낮추고 낯빛을 기쁘게 하며 음성을 부드럽게 해서 써 간할 것이니 간해서 만약 듣지 아니하거든 더욱 공경하고 더욱 효도하여 기뻐하시거든 다시 간하니라. 기뻐하지 아니하시더라도 그 향당과 마을에 죄를 얻는 것보다는 차라리 정성으로 간해야 할지니, 부모가 화내어 즐기지 아니하고 때려서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미워하고 원망하지 아니함이오, 더욱 공경하며 더욱 효도할지니라. 곡례에 말하기를 자식이 어버이 섬김에 세 번 간해서 듣지 아니하면 부르짖고 울면서 따를지니라.)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家苑 이윤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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