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스크랩] 중용 제10장 해설

ria530 2012. 6. 14. 09:46
子路ㅣ 問强한대
자로가 강을 묻자오니

[본문 해설]
자로(BC543~BC481)는 공자의 제자로,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이다. 子路는 자(字)이며, 계로(季路)라고도 한다. 노(魯)나라 변(卞, 지금의 산동성) 출신으로, 공자의 훌륭한 10명의 제자인 공문십철(孔門十哲) 가운데 하나이다. 무용(武勇)에 뛰어났으며 인품이 호방하고 성실하였다. 무술로써 항상 공자를 수행하였는데 공자는 가끔 그의 만용과 과단한 성격에 대해 꾸지람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의 솔직한 성격으로 공자와 가장 마음이 통했던 제자로 꼽혀지기도 한다. 공자와 자로의 이러한 관계는 논어에 자주 언급된다.
공야장(公冶長)편에 보면, 공자가 “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갈까 하는데 나를 따를 자는 유일 것이다(道不行이라 乘桴
하야 浮于海하리니 從我者는 其由與인저)” 하자 자로가 기뻐했다. 그러자 공자는 다시 “유는 용맹하기를 좋아하는데 나보다 더하니 재량 분별할 줄을 모른다(由也는 好勇過我하나 無所取材니라)”고 하였다. 이 말은 공자가 난세에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한탄하며 차라리 세상을 피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얘기인데 정작 뗏목을 타고 바다에 떠다닐 때의 위험은 생각지 않고 그저 스승이 자신을 택해 함께 한다는 사실에만 기뻐할 뿐 깊이 사려하지 못하는 자로를 깨우치고자 하신 말씀이다.
또 한 예를 선진(先進)편에서 들어보자. 하루는 공자의 네 명의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약간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려워하지 말라. 그대들은 노상 ‘나를 몰라준다’고 말하지만 만약 그대들을 알아서 써 준다면 어찌 하겠느냐?(以吾一日長乎爾나 毋吾以也하라 居則曰 不吾知也라 하나니 如或知爾면 則何以哉오)”고 하시자 자로가 불쑥 나서서 대답하기를 “병차 천승을 낼 수 있는 나라가 큰 나라 사이에 끼여 곤란을 당하고 더욱 또한 전란과 기근으로 허덕인다 하더라도 제가 나서서 다스리면 삼년 안으로 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또 백성들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겠습니다.”라 하였다. 공자는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모두의 얘기를 듣고 세 사람의 제자가 나간 뒤 증자의 아버지인 증석(曾晳)이 남아 웃은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나라는 예로써 다스려야 하는데, 그는 말하는 데도 겸양할 줄을 모르니 웃었노라(爲國以禮어늘 其言不讓이라 是故로 哂之호라)” 하였다.
자로는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였으나 위나라 괴외(蕢聵)
의 내란 때 전사했다. 이때 그의 시체가 소금에 절여진 것을 안 공자는 매우 슬퍼했다고 했다.

[참조]
공문십철(孔門十哲)에 관하여
춘추시대 때 공자의 문하생 중 뛰어난 제자 열 명을 말한다. 논어 선진편(先進篇)에 “덕행에는 안연(顔淵),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 언어에는 재아(宰我), 자공(子貢), 정사(政事)에는 염유(冉有), 계로(季路), 문학에는 자유(子游), 자하(子夏)라 하여 72 제자 중 중심을 이룬 제자 10명을 그 장점에 따라 4분류하고 있다. 이것을 후세에 사과십철(四科十哲)이라 하였다. 덕행이란 모든 행위가 바른 것, 언어란 제후간의 응대 수사(修辭)에 뛰어난 것, 정사란 치국에 재능이 있는 것, 문학이란 고전에 정통한 것이다. 이것을 四科라 한 것은 후한 때의 『논형(論衡)』문공편(問孔篇)과 『後漢書』정현전(鄭玄傳)에서부터이고, 十哲이란 명칭을 부여한 것은 당나라 때 『史通』암혹편(暗惑篇)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子路는 孔子弟子仲由也ㅣ라 子路는 好勇이라 故로 問强이라
자로는 공자 제자로 (이름은) 중유이라. 자로는 용맹을 좋아하여 ‘강’에 대해 여쭘이라.

子ㅣ曰 南方之强與아 北方之强與아 抑而强與아
공자 가라사대 “남방의 강인가? 북방의 강인가? 아니, 너의 강인가”

抑은 語辭ㅣ오 而는 汝也ㅣ라
억은 어조사요, 이는 너라

寬柔以敎ㅣ오 不報無道는 南方之强也ㅣ니 君子ㅣ居之니라
너그러우며 부드러움으로 써 가르치고 무도한 이를 보복하지 않는 것은 남방의 강이니 군자가 거하느니라.

[본문 해설]
주역 설괘전 제5장에 “離也者는 明也ㅣ니 萬物이 皆相見할새니 南方之卦也ㅣ니 聖人이 南面而聽天下하야 嚮明而治하니 蓋取諸此也ㅣ라(‘離’라는 것은 밝음이니, 만물이 다 서로 봄이니, 남방의 괘이니 성인이 남쪽을 향해 천하를 들어서(천하의 의견을 들어서) 밝은 데를 향하여 다스리니, 다 여기(離卦 : )에서 취함이라)”이라 하였다.
離虛中( ) 불괘는 불이고 해가 되니까 밝다. 사람에게는 눈이기도 하다. 만물은 모두 이괘에서 보기 때문에 남방에 속한 괘가 이괘이다. 모두 만나고 모이고 부딪치는 때이며 가장 밝은 때이므로 모두 다 보인다. 성인이 밝은 남쪽을 향해 앉아서 천하의 소리를 듣고 밝게 정치를 한 것이 대개 이 이괘에서 취한 것이다. 성인이 남쪽을 향해서 천하를 듣는다는 것은 귀를 크게 열어서 백성의 소리를 잘 듣는 것이다. 수렴청정(垂簾聽政)이라고도 한다. 정치는 눈으로만 보고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이 부당한 경우를 당했다든지 요구사항이나 불만스러운 게 있으면 다 들어서 충족시켜 주고, 잘못된 것은 잘 생각해서 올바로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공자가 용맹을 좋아한 자로의 물음에 먼저 남방지강에 대해 말한 것은, 자로와 같은 용맹한 군자가 취해야 할 ‘寬柔以敎’와 ‘不報無道’의 자세가 중요함을 역설코자 한 뜻도 있을 것이고 북방의 過한 강에 대해 不及한 강을 비유코자 한 뜻도 있을 것이다.

寬柔以敎는 謂含容巽順하야 以誨人之不及也ㅣ오 不報無道는 謂橫逆之來에 直受之而不報也ㅣ라 南方은 風氣柔弱이라 故로 以含忍之力으로 勝人爲强이니 君子之道也ㅣ라
'관유이교’는 이르되 관용을 베풀고 손순해서 남의 불급함을 가르침이오, ‘불보무도’는 비끼고 거스려 오는 것에 그대로 받아주고 보복하지 않는 것이니라. 남방은 바람 기운이 부드럽고 약함이라. 그러므로 함인(포용하고 인내)의 힘으로써 남을 이겨 강으로 삼으니 군자의 도이라

誨 : 가르칠 회 橫 :비낄 횡

衽金革하야 死而不厭은 北方之强也ㅣ니 而强者ㅣ居之니라
병기와 갑옷을 깔고서 죽어도 싫지 아니함은 북방의 강이니 강한 자가 이에 거하느니라.

衽 : 깔 임

[본문 해설]
여기서 북방은 주역으로 볼 때 서북건방(西北乾方)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주역 설괘전 제5장에 “戰乎乾”이라 하였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사이에 음기운이 극성해져 戰乎乾으로 싸움이 붙는다. 乾은 방위상으로 戌亥方으로 서북쪽이다. 서북쪽은 험준한 데다 일기도 좋지 않아서 늘 음양의 기운이 싸우는(陰陽相搏) 곳이다. 하루 온종일 강했던 양이 저녁이 되면서 음이 극성해지니까 서로 싸움이 붙는다는 뜻이다. 결국은 음이 이기고 어두워지는데 늦저녁의 양은 늙어서(乾三連 老陽: ) 쇠한 때이고 음은 한창 파릇파릇한 때인데, 한낮의 양에 한밤의 음이 오느라 음양이 싸우는 것이다. 그렇게 싸우다 죽을지언정 싸우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니 그것은 (서)북방의 강함이고 강한 자가 이에 거하는 것이다. 남방의 강에 비해 過한 강의 예를 든 것이다.

衽은 席也ㅣ오 金은 戈兵之屬이오 革은 甲胄之屬이라 北方은 風氣剛勁이라 故로 以果敢之力으로 勝人爲强이니 强者之事也ㅣ라
임은 자리요 금은 창과 병기에 속한 것이오 혁은 갑옷과 투구에 속한 것이라. 북방은 풍기가 강하고 굳셈이라 그러므로 과감의 힘으로 남을 이겨 강으로 삼으니 강자의 일이라.

故로 君子는 和而不流하나니 强哉矯여 中立而不倚하나니 强哉矯여 國有道애 不變塞焉하나니 强哉矯여 國無道애 至死不變하나니 强哉矯여
그러므로 군자는 화하되 흐르지 아니하나니, 강하다! 꿋꿋함이여! 중립하여 치우치지 아니 하나니, 강하다! 꿋꿋함이여! 나라의 도가 있음에 막혔을 때 (의지를) 변하지 아니하나니, 강하다! 꿋꿋함이여! 나라에 도가 없음에 죽음에 이르러도 변하지 아니하니, 강하다! 꿋꿋함이여!

矯 : 굳셀 교 塞 : 막힐 색

[본문 해설]
남방은 풍기가 유약하여 중으로 말하면 불급한 점이 있고, 북방은 풍기가 강하여 지나친 점이 있다. 그런데 군자라는 것은 모든 사람과 잘 화합하되 어느 한쪽으로 흐르지 않아야 한다(和而不流). 주역 38번째 괘인 화택규(火澤睽)괘 대상전에 “象曰 上火下澤이 睽ㅣ니 君子ㅣ 以하야 同而異하나니라(상전에 이르길 위에는 불 아래에는 못이 규니, 군자가 이로써 같되 다르게 하나니라)” 하였다. 위에는 火動而上의 불(上火)이고, 아래에는 澤動而下의 못(下澤)으로 어긋났다는 것이다. 군자가 이 규괘를 보고 본받아 먼저 어긋난 걸 같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긋난 것을 그냥 보고만 있으면 안 되고, 같이 하나 되도록 하고(同) 그러면서도 달리한다(而異)는 것이 和而不流이다. 사람을 和하게 대해서 이 사람도 좋고 저 사람도 좋고 이 사람 의견도 받아들이고 저 사람 의견도 받아들이되(和而), 나쁜 일을 하자고 하거나 도둑질하자고 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즉 화하되 의리가 아니고 예가 아닌 곳에는 절대로 흐르지 말아야 하니 참으로 강한 것이다.
늘 중도에 서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니, 이 또한 참으로 강하고 꿋꿋한 것이다. 또한 나라에 도가 있어 평화로운 세상이라 하더라도 방심하지 않고 예전에 도가 없어 곤궁했을 적에도 흔들리지 않던 내 의지를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이 또한 강하고 꿋꿋한 것이다. 나라에 도가 없어 무도하고 포악하며, 혼란한 세상이 되었다 해도 또한 평소에 지키던 지조를 변하지 않으니, 이것 역시 참으로 강하고 꿋꿋한 것이다.

此四者는 汝之所當强也ㅣ라 矯는 强貌니 詩에 曰矯矯虎臣이 是也ㅣ라 倚는 偏著也ㅣ오 塞은 未達也ㅣ라 國有道에 不變未達之所守하고 國無道에 不變平生之所守也ㅣ라 此는 則所謂中庸之不可能者ㅣ니 非有以自勝其人欲之私면 不能擇而守也ㅣ라 君子之强이 孰大於是리오 夫子ㅣ 以是로 告子路者는 所以抑其氣血之强하고 而進之以德義之勇也ㅣ라
이 네 가지는 너의 마땅히 강해야 할 바이니라. 교는 굳센 모양이니 시경에 이르기를 ‘교교호신(굳세고 굳센 범 같은 신하)’이 이것이라. 의는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붙는 것이고, 색은 통하지 못함이라. 나라에 도가 있음에 통하지 못했을 때 지켰던 바를 변하지 아니하고, 나라에 도가 없음에 평소에 지킨 바(지조)를 변하지 아니함이라. 이것은 이른바 중용의 가히 능치 못하는 것이니 써 스스로 그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기는 이가 아니면 능히 가려내서 지키지 못하느니라. 군자의 강함이 무엇이 이보다 크리오. 공자께서 이 네 가지로써 자로에게 고한 것은 기혈의 강함을 누르고 덕의의 용맹으로써 나아가게 하심이라.

[앞주 해설]
군자가 마땅히 강해야 할 바인 네 가지는 和而不流, 中立而不倚, 國有道 不變塞焉, 國無道 至死不變을 말함이다. ‘矯’는 굳센 모양으로 詩經의 노송(魯頌) 반수편(泮水篇)에 나오는 말이다.

明明魯侯여 克明其德이샷다
旣作泮宮하니 淮夷攸服이로다
矯矯虎臣이 在泮獻馘하며
淑問如皐陶이 在泮獻囚로다


밝고 밝으신 노나라 제후여 능히 그 덕을 밝히셨도다
이미 반궁(주나라 제후들의 學宮)을 지으니 회이가 복종하는 바로다
굳세고 굳센 범 같은 신하들이 반궁에서 (죄수의) 머리를 바치며
고요와 같이 신문을 잘하는 자가 반궁에서 죄수를 바치리로다.

공자에게는 삼천 제자가 있었는데 각기 제자들의 성질이나 행동 등을 파악해 각각에 해당하는 것을 가르쳤다. 공자가 성격이 급하고 과단한 자로에게 이 네 가지로 가르치는데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겨야만 능히 중용을 가려서 지킬 수 있다는 뜻이다. 즉 기혈의 강함을 억제하고 덕과 의리의 용맹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孟子』 양혜왕장구하(梁惠王章句下편)에 제나라 선왕(宣王)과 맹자의 문답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王曰 大哉라 言矣여 寡人有疾하니 寡人은 好勇하노이다 對曰 王請無好小勇하소서 夫撫劍疾視曰 彼惡敢當我哉리오 하나니 此는 匹夫之勇이라 敵一人者也니 王請大之하소서(왕이 말하길 ”훌륭합니다. 말씀이여! 과인이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용맹을 좋아합니다. (맹자께서) 가로대 “왕은 청컨대 자근 용맹을 좋아하지 마소서. 칼을 어루만지고 상대방을 노려보며 말하길, ‘네가 어찌 감히 나를 당하겠는가’하나니 이것은 필부의 용맹이라. 한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니, 왕은 청컨대 용맹을 크게 하소서)”
용맹함에는 작은 용맹(小勇)과 큰 용맹(大勇)이 있는데, 血氣의 용맹은 小勇이고, 義理의 용맹은 大勇이다. 군자가 취하여야 할 용맹은 血氣之勇이 아니라 대용인 義理之勇, 浩然之氣여야 한다.
무릇 뜻(志)은 기운의 장수요(夫志는 氣之帥요), 기운은 뜻의 다음(氣는 志之次也라)이다. 즉 뜻이 기운을 이끌고 나가서 기운을 조정할 수 있어야지, 뜻은 없고 기운만 앞서면 중용을 잃고 온갖 폐단만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氣血의 강을 누르고 덕과 의리의 용맹으로써 공부를 해나가도록 한 것이다.

右는 第十章이라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家苑 이윤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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