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스크랩] 제2권 夏書 제3편 五子之歌 1장~5장 해설

ria530 2012. 6. 18. 10:02

第二卷 夏書

第三篇 五子之歌

五子는 太康之弟也요 歌는 與帝舜作歌之歌로 同義하니 今文無古文有하니라
오자(五子)는 태강의 아우이고, 가(歌)는 요임금의 노래를 지었다는 가(歌)와 더불어 뜻이 같으니 금문에는 없고 고문에는 있느니라.

<五子之歌1章>
太康尸位하야 以逸豫로 滅厥德한대 黎民이 咸貳커늘 乃盤遊無度하야 畋于有洛之表하야 十旬을 弗反하니라
태강이 지위만 차지하여 편안히 놀기만 함으로써 그 덕을 없애니 백성들이 다 두 마음을 두었거늘 마침내 노는데 법도가 없이 돌아서 낙수의 바깥으로 사냥을 나가 100을 돌아오지 아니하니라.

太康은 啓之子라 尸는 如祭祀之尸니 謂居其位而不爲其事니 如古人所謂尸祿尸官者也니라 豫는 樂也라 夏諺에 曰吾王不遊면 吾何以休며 吾王不豫면 吾何以助리오 一遊一豫爲諸侯度라하니 夏之先王이 非不遊豫나 蓋有其節하니 皆所以爲民이오 非若太康以逸豫而滅其德也라 民咸貳心이나 而太康猶不知悔하고 乃安於遊畋之無度하니 言其遠則至于洛水之南하고 言其久則十旬而弗反하니 是則太康自棄其國矣라

태강의 계의 아들이라. 시는 제사의 시동과 같으니 그 자리에 거처하면서 그 일을 하지 않음을 이르니 옛 사람들이 시록과 시관이라고 이른 것과 같으니라. 예(豫)는 즐거움이라. 하나라 속담에 가로대 우리 왕이 놀지 아니하면 내 어찌 쉴 것이며, 우리 왕이 즐겁지 아니하면 내 어찌 도움리오. 한 번 놀고 한 번 즐거움은 제후의 법도가 된다(『맹자』양혜왕 하편 제4장에 나오는 말로 여기서 遊는 王者의 순행, 곧 遊觀으로 주역 風地觀괘의 省方觀民을 말함)하니, 하나라의 선왕이 놀고 즐기지 아니한 것은 아니나 대개 그 절도가 있으니, 모두 백성을 위한 바이고, 태강처럼 편안히 즐겨서 그 덕을 멸실시키지는 아니했음이라. 백성들이 모두 두 마음을 품었으나 태강은 오히려 뉘우칠 줄을 알지 못하고, 이에 놀고 사냥하는 데에 편안하여 법도가 없으니 그 먼 곳을 말한다면 낙수의 남쪽까지 이르고, 그 오래함을 말한다면 백일이 되어도 돌아오지를 아니하니 이는 곧 태강이 스스로 그 나라를 버림이라.

<五子之歌2章>
有窮后羿ㅣ 因民弗忍하야 距于河하니라
유궁의 임금인 예가 백성들의 참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수에서 막았으니라.

窮은 國名이오 羿는 窮國君之名也라 或이 曰羿는 善射者之名이라 賈逵說文에 羿는 帝嚳射官이라 故로 其後善射者를 皆謂之羿하니 有窮之君도 亦善射라 故로 以羿目之也라 羿는 因民不堪命하여 距太康于河北하여 使不得返하고 遂廢之하니라

궁(窮)은 나라 이름이고, 예(羿)는 궁나라의 임금 이름이라. 혹자는 예는 활을 잘 쏘는 자를 이름 한다고 함이라. 가규(174年~228年,字는 梁道,本名은 衢,河東郡襄陵縣人으로 지금의 山西省 출신. 漢末과 魏나라 때 조조의 신하. 제방과 저수지를 만들고 운하를 건설하여 賈侯渠라고도 일컬음)의 말과 『설문』에 예는 제곡의 활 쏘는 관원이므로 그 뒤에 활을 잘 쏘는 자를 모두 예라고 이른다 하니, 유궁의 임금도 또한 활을 잘 쏘았으므로 예라고 지목한 것이라. 예는 백성들이 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하여 태강을 하수의 북쪽에서 막고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고 마침내 폐하였느니라.

<五子之歌3章>
厥弟五人이 御其母以從하야 徯于洛之汭하더니 五子ㅣ 咸怨하야 述大禹之戒하야 以作歌하니라
그 아우 다섯 사람이 그 어머니를 모시고 따라가서 낙수의 물굽이에서 기다렸더니, 다섯 자식이 모두 원망하여 대우의 경계를 풀어서 노래를 지었느니라.

御는 侍也라 怨은 如孟子所謂小弁之怨은 親親也니라 小弁之詩는 父子之怨이오 五子之歌는 兄弟之怨이니 親之過가 大而不怨이면 是逾疎也라 五子가 知宗廟社稷危亡之不可救하고 母子兄弟離散之不可保하여 憂愁鬱悒慷慨感厲하여 情不自已하니 發爲詩歌하여 推其亡國敗家之由가 皆原於荒棄皇祖之訓하니라 雖其五章之間에 非盡述皇祖之戒라 然이나 其先後終始가 互相發明이라 史臣이 以其作歌之意로 序於五章之首하니 後世序詩者가 每篇에 皆有小序하여 以言其作詩之義하니 其原이 蓋出諸此하니라

어(御)는 모심이라. 원(怨)은 맹자가 이른바 소반의 원망함은 어버이를 친함과 같으니라. 소반의 시는 부자의 원망이고, 오자의 노래는 형제간의 원망이니, 어버이의 허물이 크면서도 원망하지 아니하면 이는 더욱 소원해짐이라(『맹자』고자하편 제3장). 오자가 종묘사직이 위태로워 망하려 함에도 가히 구하지 못하고 어머니와 자식과 형제들이 흩어져도 가히 보존하지 못함을 알고서, 우수에 젖어 답답하고 근심하면서 개탄하고 괴롭게 여기면서도 정을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였으니, 발하여 시가를 지어서 그 망국과 패가의 이유가 다 황조의 가르침을 거칠게 버려둔 데에서 근원함을 추론했느니라. 모름지기 그 다섯 문장의 사이에 황조의 가르침을 다 기술한 것은 아니나 그 선후종시가 서로서로 발명함이라. 사관이 그 노래를 지은 뜻으로써 다섯 문장의 머리에 서술하니, 후세에 시를 서술하는 자가 편마다 모두 작은 머리말을 두어 그 시를 지은 뜻을 말하였으니 그 근원이 대개 여기에서 나왔음이라.

悒 근심할 읍

<五子之歌4章>
其一曰皇祖ㅣ 有訓하시니 民可近이언정 不可下ㅣ니라 民惟邦本이니 本固ㅣ라사 邦寧하나니라
그 하나는 가로대 황조가 가르침을 두셨으니, 백성을 가히 가까이 할지언정 가히 낮추지 말지니라. 백성은 오직 나라의 뿌리이니 뿌리가 단단하여야 나라가 편안하나니라.

此는 禹之訓也라 皇은 大也라 君之與民은 以勢而言이면 則尊卑之分이 如霄壤之不侔로되 以情而言이면 則相須以安이 猶身體之相資以生也라 故로 勢疎則離하고 情親則合하니 以其親이라 故로 謂之近이오 以其疎라 故로 謂之下니 言其可親而不可疎之也라 且民者는 國之本이니 本固而後에 國安하나니 本旣不固면 則雖强如秦하고 富如隋라도 終亦滅亡而已矣라 其一其二는 或長幼之序이거나 或作歌之序니 不可知也라

이것은 우임금의 가르침이라. 황(皇)은 큼이라. 임금의 백성과 더불음은 세로써 말한다면 높고 낮음의 나뉨이 마치 하늘과 땅처럼 같지 않지만, 정으로써 말한다면 서로를 기다려서 편안함이 마치 신체가 서로 힘입어서 사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세가 소원해지면 떠나가고, 정이 친하면 합하니, 그 친함으로써 하므로 가깝다 이르고, 그 소원함으로써 하므로 낮춘다고 일렀으니, 그 가히 친할지언정 가히 소원해져서는 아니 됨을 말함이라. 또한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단단한 뒤에 나라가 편안하니 근본이 이미 단단하지 못하면 비록 진나라처럼 강하고 수나라처럼 부하더라도 마침내 또한 멸망할 뿐이라. 기일, 기이는 혹 장유(형과 동생)의 순서이거나 혹 노래를 지은 순서니 알 수 없음이라.

<五子之歌5章>
予視天下한대 愚夫愚婦ㅣ 一能勝予라하노니 一人이 三失이어니 怨豈在明이리오 不見에 是圖ㅣ니라 予臨兆民호대 凜乎若朽索之馭六馬하노니 爲人上者는 奈何不敬고
내가 천하를 보건대 어리석은 지아비와 어리석은 지어미 한 사람이 능히 나를 이길 것이라 하노니, 한 사람이 잃은 것이 세 가지이니, 원망함이 어찌 밝음에 있으리오. 나타나지 아니했을 때에 이에 도모해야 하니라. 내가 백성들에게 임하는데 두렵기가 마치 썩은 새끼줄로 여섯 말을 어거하는 것과 같으니, 사람들의 위가 된 자가 어찌 공경하지 아니하는고!

予는 五子自稱也라 君失人心이면 則爲獨夫니 獨夫則愚夫愚婦 一能勝我矣라 三失者는 言所失衆也라 民心怨背가 豈待其彰著而後에 知之리오 當於事幾未形之時에 而圖之也라 朽는 腐也라 朽索은 易絶하고 六馬는 易驚이라 朽索은 固非可以馭馬也니 以喩其危懼可畏之甚이니 爲人上者가 奈何而不敬乎아 前旣引禹之訓하고 言此則以己之不足恃와 民之可畏者로 申結其義也라

여(予)는 오자가 스스로를 일컬음이라. 임금이 인심을 잃으면 외로운 지아비가 되니, 외로운 지아비라면 어리석은 지아비와 어리석은 지어미 한 사람이 능히 나를 이기니라. 잃은 것이 세 가지라 것은 잃은 것이 많음을 말함이라. 민심이 원망하고 등짐이 어찌 그 밝게 나타나기를 기다린 뒤에 알게 되리오. 마땅히 일의 기미가 형성되지 아니하였을 때에 도모해야 하니라. 후(朽)는 썩음이라. 썩은 새끼줄은 쉽게 끊어지고, 육마는 쉽게 놀람이라. 썩은 새끼줄은 진실로 가히 말을 어거할 수 없으니 그 위태롭고 두려움이 가히 두려워할 만큼 심함을 비유함이니, 사람의 위가 된 자, 어찌하여 공경하지 아니하랴! 앞에서 이미 우임금의 가르침을 인용하고, 여기에서는 곧 자기의 부족한 믿음과 백성들을 가히 두려워할 만한 것으로써 거듭 그 뜻을 맺음이라.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溫故知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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