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頌 閔予小子之什四之三 [송(頌)-주송(周頌)/민여소자지십(閔予小子之什) 제1편 민여소자1장(閔予小子一章)] 閔予小子ㅣ 遭家不造하야 嬛嬛在疚호니 於乎皇考ㅣ여 永世克孝ㅣ샷다 (민여소자ㅣ 조가부조(주)하야 경경재구호니 오호황고(구)ㅣ여 영세극효(후)ㅣ샷다) 가련한 나 소자가 집이 이뤄지지 못함을 만나 외롭고 외로워 병들었으니, 아, 황고여. 영세토록 능히 효도하셨다. ○賦也ㅣ라 成王免喪하고 始朝于先王之廟而作此詩也ㅣ라 閔은 病也ㅣ라 予小子는 成王自稱也ㅣ라 造는 成也ㅣ라 嬛은 與煢으로 同이니 無所依怙之意라 疚는 哀病也ㅣ라 匡衡曰煢煢在疚는 言成王이 喪畢思慕에 意氣未能平也ㅣ니 蓋所以就文武之業하야 崇大化之本也ㅣ라 皇考는 武王也ㅣ니 歎武王之終身能孝也ㅣ라 ○부라. 성왕이 상을 벗고, 처음으로 선왕의 사당에서 조회하면서 이 시를 지음이라. 민은 병듦이라. 나 소자는 성왕이 스스로를 일컬음이라. 조는 이룸이라. 경은 ‘외로울 경’과 더불어 같으니 의지하고 믿을 바가 없다는 뜻이라. 구는 슬퍼서 병듦이라. 광형이 가로대(『漢書』匡張孔馬傳) 외롭고 외로워 병들었다는 것은 성왕이 상을 다하고 그리워하는 생각에 의기가 능히 평안하지 못함을 말함이니, 대개 문무의 업에 나아가서 대화의 근본을 높이려는 까닭이라. 황고는 무왕이니 무왕이 종신토록 능히 효도하였음을 감탄함이라. 念茲皇祖ㅣ 陟降庭止하시니 維予小子ㅣ 夙夜敬止엇다 (염자황조ㅣ 척강정지하시니 유여소자ㅣ 숙야경지엇다) 생각함에 이 황조께서 뜰을 오르내리다가 그친 듯하시니 나 소자가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경하였도다.
* 여기서 止는 어조사로 보아 굳이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문맥상 ‘그치다’라는 뜻을 담아 엄숙하고 경건한 사당의 모습을 담아냈기에 적절히 해석을 붙여도 무방할 듯하다. ○皇祖는 文王也ㅣ라 承上文하야 言武王之孝라 思念文王에 常若見其陟降於庭이니 猶所謂見堯於牆하고 見堯於羹也ㅣ라 楚詞에 云三公이 揖讓登降堂只라하니 與此文勢로 正相似하고 而匡衡이 引此句어늘 顔註에 亦云若神明臨其朝廷이라하니 是也ㅣ라 ○황조는 문왕이라. 위 문장을 이어서 무왕의 효도를 말함이라. 문왕을 생각함에 항상 그 뜰에서 오르내림을 보는 듯하니 이른바 요임금을 담장에서 보고 국에서 보았다는 것(『後漢書』李杜列傳에서 李固가 말하기를 “昔堯殂之後에 舜仰慕三年이러니 坐則見堯於墻이오 食則見堯於羹이라 : 옛날에 요임금이 돌아가신 후에 순임금이 우러러 삼년을 그리워하시더니 앉으면 요임금이 담에서 나타나시고 밥을 먹으면 요임금이 국에서도 나타나셨다 하니라)과 같음이라. 『초사(楚辭)』(大招편)에 삼공이 읍양하고 당에 오르내린다 하였으니 이 문세와 더불어 바로 서로 같고, 광형이 이 구절을 인용하였거늘 안사고(顔師古, 581~645, 唐나라 때 학자. 師古는 字. 이름은 籒(주). 陝西省 萬年縣 출생. 『漢書』에 주석을 달았는데 가장 탁월한 해석으로 꼽힘)의 주에 또한 신명이 그 조정에 임한 것과 같다 하니 이것이라. 於乎皇王이여 繼序思不忘이로다 (오호황왕이여 계서사불망이로다 賦也 ㅣ라) 아, 황왕이여. 차례를 이을 것을 생각하여 잊지 못하리로다. ○皇王은 兼指文武也ㅣ라 承上文하야 言我之所以夙夜敬止者는 思繼此序而不忘耳라 ○황왕은 문왕과 무왕을 아울러 가리킴이라. 위의 문장을 이어서 내가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경하는 것은 이 순서(대)를 이을 것을 생각하여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함이라.
閔予小子一章 十一句 此는 成王이 除喪하고 朝廟所作이니 疑後世에 遂以爲嗣王朝廟之樂이라 後三篇도 放此하니라 이는 성왕이 상을 벗고 사당에 조회하면서 지은 것이니, 아마도 후세에 마침내 뒤를 이은 왕이 사당에 조회하는 음악으로 삼은 듯하니라. 뒤의 세 편도 이와 같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