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

[스크랩] 『詩經』 해설을 마치며

ria530 2012. 6. 30. 17:53

작년 10월 20일에 시작하여 오늘 8월 31일자로 詩三百篇, 정확히는 3백11편을 열 달 열 흘(314일) 만에 마쳤습니다. 날짜를 세어보니 기타 관련 글 3편을 제외하면 詩 311편의 숫자와 대략 합치됩니다.

 

나(我)를 알고 다른 사람(他)을 알고 나아가 우리(共)를 알아 이 시대를 헤쳐 가는 지혜를 얻고자 시작한 고전공부가 『시경』해설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고전공부는 四書三經이 바탕이지만 그 바탕의 바탕은 易인데 마침 易의 이치를 올바로 공부할 수 있어 易의 이치를 토대로 사서삼경의 경전을 궁리진성(窮理盡誠)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易을 토대로 한 궁리진성의 결과물이 『시경』해설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시경』은 동양 경전과 그 이후의 지식인들의 저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글일 정도로 동북아 사회의 문화와 의식을 지배하는 서구사회의 성경과 같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경전입니다.

 

기독교 성경(Bible)이 문학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기독교 사회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듯이, 동북아 유교문화권에서는 『詩經』『易經』『書經』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나 근대사회로 진입하면서 서구문명이 동북아 사회를 압도하고 지배하게 됨에 따라 經學의 학맥이 막히고 끊어진 지 오래되어 경전 공부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시중에는 제대로 된 『詩經』『易經』『書經』해설 번역서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易經』은 점술서로 전락한지 오래되었고,『書經』은 사마천의 『사기』가 대체해 버렸으며 『詩經』은 어려운 글로 치부되어 외면 받는 책이 되었습니다. 이러다보니 배우려고 해도 가르칠만한 선생을 찾기가 힘듭니다.

 

출판된 번역서 자체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시경 강의』번역서는 올해 상반기에 출간되었고, 그 외 참고할 만한 책자라고 하면 명문당 김학주 번역판과 전통문화연구회의 성백효 번역판 정도입니다.

 

문제는 이들 책이 번역에만 치우치다보니 하나는 원문을 바탕으로 의역이 심하여 글(한문)공부에 별 도움이 안 되고, 또하나는 주자의 해석과 언해본에 충실하여 나름대로 글(한문)공부에는 도움이 되지만 의심될만한 점에 대한 충분한 해설이 부족하고 깊은 글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제가 직접 해설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淺學非才하여 詩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은 없지만 易에 대한 이치를 알고 있기에 궁리진성(窮理盡誠)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갖고 시작했습니다.


마침 동북아 유교문화권에서 易에 가장 정통하다는 也山 이달 선생의 수제자인 大山 김석진 선생님이 강의하신 『詩經』녹음 테이프와 보경출판사판의 영인본인 詩傳 (명나라 영종본), 명문당판 『시전』 (주자해설본) , 기타 번역서를 참고하여 거칠게나마 번역하고 해설해 나갔습니다.

 

다행인 점은 강희자전을 비롯해 웬만한 經學자료가 모두 인터넷상의 중국사이트나 국내 사이트에 올라와 있어 일일이 도서관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구글 검색 또한 희귀 자료를 찾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은 동식물명에 대한 정확한 우리말 번역과 협운(

韻)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좀더 공부한 후에 보완하기로 하겠으며, 전반적인 시론 또한 잠시 미루고자 합니다.

 

한편 이번 시경해설 과정에서  만났던 (九龍齋) 白鳳來 (1717~1799)  선생의 『九龍齋文集』을 통해 易의 이치가 모든 경전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또다른 큰 결실입니다.


 평생을 고향(경상도 고성군)에서 학문에 정진한 조선시대 숙종 때의 학자인 九龍齋 선생에 대해 『九龍齋文集』행장에

“공의 학문이 周易으로 주종을 삼은 까닭에 모든 경서를 총괄하여 주역에 절충했다. 고금을 통하여 태극에 맞추고 시경 서경 중용 대학 등을 말하는 데는 다 주역을 중심으로 삼고, 춘추강목을 이야기하는데도 모두가 주역에 근본을 두었다”라고 하여  九龍齋 선생이 易의 이치로 모든 경전을 해설할 만큼 周易에 남다른 조예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에 九龍齋 선생은 공자께서 『논어』에 “詩三百에 一言以蔽之하니 曰 思無邪니라(시 삼 백편을 한 말로 덮는다면 가로대 생각함에 삿됨이 없느니라) 고 한 것에 대해서도 이를 易과 관련시켜 해설하고 있습니다. 


“아, 시경과 서경의 글이 易을 근본으로 하지 않음이 없으니 詩의 思無邪가 곧 易의 時中(때에 맞춤)과 書經의 흠지(欽止 : 공경하여 그침)와 같으니라.

易의 때를 체로 하니 가히 생각에 삿됨이 있을 것인가? 서경의 흠지를 체로 하였으니 그 또한 생각에 삿됨이 있을 것인가? 생각에 삿됨이 없다는 것(思无邪)은 誠을 말하는 것인즉 곧 (易의) 자강불식하는 것이 때를 잘 맞춤이며, (중용의) 至誠不息이라는 것이 (서경의) 欽止를 말하듯이 그러한즉 思无邪가 어찌 (시경) 삼백편의 큰 뜻이 아니겠는가?


(吁, 詩書無非體易則詩之思無邪 如易之時中 書之欽止也 體易之時而其可有思有邪耶 軆書之欽止而其亦有思有邪耶 思无邪者誠則自彊不息者時中 至誠不息者欽止也 然則思无邪 曷不爲三百篇之大旨乎 /『九龍齋文集』중 三經通義 詩傳에서)" 라며 『시경』을 관통하는 사상인 思无邪가 易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자라는 뜻글자 창제가 易의 음양과 괘(卦)에 담긴 상수리(象.數.理)를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문의 구성과 문자형성 | 千字文 易解 참고) 易의 이치를 모르고서는 경전은 물론 동북아 한자문화 자체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고 봅니다.

 

물론 주자와 정자의『周易傳義大全』이  易의 이치를 해설함에  있어 독보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주자와 정자가  정통적으로 경전 학맥을 잇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주자의 사서삼경 집주가 워낙 상세하여 일차적으로 경전을 해득하는데 있어선 참고하지 않을 수 없음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정자의 『周易傳義大全』은  易 이 본래 추구하는 '陰陽相勝 (황제음부경)과 陰陽相推(주역 십익전)라는 음양조화를 드러내기 보다는  숭양천음(崇陽賤陰) 사상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예를 들어 陽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숭상하여 君子와 남자, 善으로 규정하고, 陰에 대해서는 천시하여 小人과 여자, 惡이라는 등의 이분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 점에서『周易傳義大全』을 토대로 하고 있는 정주학(또는 성리학)은 편협되고 편향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또하나 지적할 점은 주자의 경전해설이 내적인 수신(修身)을 강조하다보니 心學으로 치우치거나 사변(思辯)적인 데로 흘러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라는 것입니다. 애초에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성리학이 우리 민족의 독특한 기질인 폐쇄성.배타성과 결합하면서 조선의 성리학은 더욱 심하게 경직되고 만 것입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공자의 본 뜻은 제처두고 오로지 주자만을 숭상하면서  경학의 학맥이 오로지 주자만을 통해서 이어졌고 이에 주자가 마치 봉건사회체제를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이로 인한 폐단과  반작용은 너무 많이 거론되어왔기에 다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다고 주자를 무시해서는 기본적인 경학공부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이것을 걷어낼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는 易이 본래 담고 있는 陰陽조화의 이치를 올바로 드러낼 때 가능합니다. 이러한  易의 이치를 바탕으로 하여 경전을 제대로 해설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마침 구룡재 선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易의 이치를 토대로 모든 경전을 해설한 구룡재 선생의 문집을 바탕으로 추후 ‘詩經易解’작업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다른 한편으로 정주학, 곧 성리학의 핵심이랄 수 있는 『周易傳義大全』의 관점과 해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작업을 하겠습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공자사상을 가장 정통적으로 계승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자사상을 왜곡시킨 주자를 극복하고 공자 사상을 다시 복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현재 서구의 물질문명이 압도하는 가운데 동북아의 정신철학은 멸실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문명이 극(極)성을 부리면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그로인한 폐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2005년이래 세계최고가 된 반면에 출산율은 세계 최저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노인자살율은 지난 10년 사이에 3배로 뛰어 올랐습니다.  현대인의 정신적 피로와 심적 불안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서구학문이나 서양철학이 현대사회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은 이미 모두 공유하고 있는 바입니다.  

 

따라서 이 시대와 향후 조화로운 사회를 위한 사상적 토대는 동북아 사상에서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전 해설작업은 그 기초를 닦는 일입니다.

이에 제현들의 많은 참여와 질정을 바랍니다.

 

2009년 8월 31일(陰曆 申月 戊申日 正午에)
경연학당 家苑 올림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溫故知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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