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스크랩] 도덕경-29 제10장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2

ria530 2013. 5. 6. 09:10

도덕경-29 제10장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2
뜻 풀이:
누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을 일러 '힘들다'하며 이 화창한 봄날 꽃이 피고 나비가 날고 산들바람에 온세상이 다시 눈부신 초록의 물결로 춤을 추는 것을 두고 '어렵다'하는가? 누가 공중에 나는 새를 보고 '힘들다'하며 물속에 사는 고기를 보고 '어렵다'하는가? 또한 마찬가지로 우리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자고 싶으면 잠을 자며. 순간 순간 이렇게 숨을 쉬며 호흡하는 것을 두고 누가 '어렵다' 느니 '힘들다'느니 하는가? 그냥 그러할 뿐[自然]이 아닌가? 그러한 모든 것이 바로 도인 것을! 森羅萬象 悉皆成佛! 삼라만상이 모두 다 이미 성불(成佛)해 있구나!

載營魄抱一 能無離乎(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를 껴안아 능히 그것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는가?)
여기에서 '載營魄'에 관한 풀이는 분분하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인간이 혼(魂)과 백(魄)으로 이루어졌다고 믿어왔음을 들어 "영(營)은 옛 주석에 따르면 혼(魂)이다.따라서 영백이란 곧 혼백을 말하며 '載營魄'이란 그러므로 '혼백을 몸에 싣고서'라는 뜻이다."라고 풀이하는 경우도 있고, 또한 "경영하고 보호하는 것이 營이고 육체와 정신이 魄이다. 따라서 '載營魄'이란 '육체와 정신을 경영하고 보호해서 그것을 언제나 존재하게 한다'라는뜻"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그러나 이를 좀더 단순하게 말하면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이순간 여기에서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는 모두가 이미 혼백을 싣고 따라서 '재영백'이란 다음 아닌 지금 이대로의 우리 자신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즉"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를 껴안아 능히 그것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노자는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는 일반적으로 도를 가리킨다. 따라서 '하나'를 껴안아(抱一)라는 것을 곧 도를 껴안아'라고 풀이한다. '하나'인 도를 껴안아 능히 그것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묻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 말도 맞다. 그러나 어떻게 도를 껴안을까? 그리고 무었보다도 道란 무었일가?

일반적인 이해에 의하면 도는 우리의 감각과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그래서 그것은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취할 수도, 얻을 수도 없다고 한다. 또한 그말도 맞다. 그러나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도는 놀랍게도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있는 가장 구체적인 <사실>일 수 있으며, 우리가 언제나 그 속에서 뒹굴며 사는 '현재'요 실재'일 수 있다.어쩌면 아아, 어쩌면 우리는 언제나 도 곧 진리속에서 살고 있어 단한 순간도 그것을 떠난 적이 없는 지도 모른다! 정녕 그러하다면?!

가만히 그리고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 보면 우리의 삶은 언제나 단선적(單線的)임을 알 수 있다.아무리 복잡한 생각과 감정과 사건들이 우리의 삶을 에워쌀지라도 그 순간 순간의 우리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각각의 매 순간 순간에는 언제나 하나의 생각과 하나의 감정과 하나의 느낌만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두 개의 감정과 두 개의 생각과 두 개의 느낌이 어느 한 순간에 <동시에>그리고 <함깨>있을 수는 없다.아무리 짧은 순간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언제나 시간적 터울을 두고 '하나씩'이어져 올 뿐이라는 말이다.그렇듯 우리의 삶의 매 순간 순간에는 언제나 오직'하나'만이 존재한다.

미움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는 오직 미움만이 있으며, 짜증이 일어날 땐 또한 마찬가지로 그 순간 오직 짜증만이 있다. 분노가 일어날 땐 그 순간 오직 분노만이 있으며, 어떤 생각이 일어날 땐 또한 그 순간 오직 그 어떤  생각만이 존재한다.그렇지 않은 가? 우리의 내면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이렇듯 언제나 매 순간 순간에는 오직 '하나'만이 존재한다. 보라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이미 '하나'를 살고 있다. "하나를 껴안고(抱一]" 어쩌고 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하나'를 살고 있는 것이다.! 아아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이미 '하나' 곧 도를 살고 있다! 우리가 도를 찾거나 추구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그 도를 살고 있는 것이다! 도란 얼마나 우리 가까이 있는가? 아니 가까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만큼 우리 자신이 이미 도요, 삶이 곧 도인 것이다! 그러니 따로이 무엇을 구한단 말인가? 보라 구하려는 그 한 마음만 내려 놓으면 그 자리가 바로 도가 아닌가!

아아 그러나 안타깝게도 참으로 안타깝게도 우리는 바로 다음 순간 그 '하나'를 떠난다.그냥 있는그대로의 '하나'를 살지 못한 채 그것을 못견뎌 하며, 우리는 기어코 바로그 다음 순간, 그 '하나'를 떠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보라 미움을 떠나 사랑을 찾으며, 분노를 떠나 자애롭기를 구한다. 짜증을 떠나 온유하기를 바라며, 불안을 떠나 당당해지려 한다. 아아 그와 같이 '부족'을 떠나 '완전'을 구하고, 번뇌(煩惱)를 떠나 '보리(菩提)를 찾으며, 중생을 떠나 부처(覺者)가 되려한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지금 여기있는 그대로의 현재--곧 하나'==를 그처럼 황망히 떠나 버린 것이다. "能無離乎"! 노자는 우리에게 애틋하게 말한다.  '능히 그 하나'를 떠나지 않을 수 있는 가?" 라고 .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 매 순간 순간의 그 '하나'가 바로 주객미분(主客未分)의, 언어이전(言語以前)의 분별이전(分別以前)의 道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章에서 노자가 하고저 하는 얘기는 이 한 문장으로 서 이미 족하다. 이 한 줄 글의 진의(眞義)가 그대로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진다면, 그것으로 도덕경(道德經)은 이미 족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노자는 차마 그치지 를 못한다. 그러기에는 그의 사람이 너무 크다!

출처 : 전주향교(全州鄕校)
글쓴이 : 鶴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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