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스크랩] 도덕경-30 제10장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3

ria530 2013. 5. 6. 09:10

도덕경-30 제10장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3
專氣致柔 能영兒乎(기운을 오로지 하고 부드러움을 이루어 능히 어린아이와 같을 수 있는가?)
'기운을 오로지하다(專氣)'라는 것은 곧 기운을 전일(專一)하게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오직 '하나'만 있게  된 상태를 말한다. 무엇이든 둘로 나누어져 버리면 우리는 결코 전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 내면의 삶의 매 순간 순간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오직 '하나'만이 존재하고 따라서 우리에게는 이미 그리고 언제나 전일함 --'불이(不二)' 혹은 '무분별(無分別)'--만이 있는데 이때 '致柔(부드러움을 이루다)'라는 것은 곧 '무위(無爲)를 한다.

다시 말하면 매 순간 순간의 '하나'를 떠나 무언가 보다 더 나은 어떤 것을 <이루려>하거나 <얻으려>하는 일체의 마음의  작용이 정지해 버리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곧 그 '하나'를 떠나지 않아(能無離乎) 다만 있는 그대로의'현재'를 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결국 '載營魄抱一 能無離乎'와 같은 말임을 알 수 있는데, 이 대목에서 잠시 <달마어록(達磨語錄)>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도 주목해 보자.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에게 맏기지 않고 사물--내 안의 사물, 곧 미움,짜증, 본노, 게으름, 망상(妄想) 등등의 매순간 순간의 하나'--에 맡기기 때문에 취함과 버림이 없으며, 거스름과 순응함도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물에 맡기지 않고, 자신에게 맡기기 때문에 취함과 버림이 있으며, 거스름과 순응함도 있다.

만약 마음을 열고 사물에 맡길 수만 있다면 이것이 곧 이행(易行)이며 그것에 저항하여 사물을 변화시키려 함이 난행(難行)이다. 사물이 오면 오는 대로 그에 맡겨 거스르지 말며 떠나가면 떠나가는 대로 내버려 두고 좇지 말라. 이를 두고 도를 행한다 한다" 달마도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는가? "천하 인간에 구원(救援)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사도행전 4:12)

'능히 어린아이와 같을 수 있는가? (能영兒乎)'라는부분에 있어서도 우리는 곧잘 '어린아이'를 교훈적인 이미지와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다.그리하여 이 구절을 "능히 어린아이처럼 부드러울 수 있는가?" 혹은 "능회 어린아이처럼 욕심이 없을 수 있는가?"라고 풀이하는데 그러나 그것은 대개 어른 들의 관념의 투영일 경우가 많다. 스스로를 짐지우는!

내게도 딸 아이가 하나 있는데, 다섯살이 되면서부터 부쩍 많아진 녀석의 짜증을 계기로 그 아이를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다.그러면서 내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아이에게는 다만 '현재'만 있더라는 것이다. 그 아이에게는 다만 현재의'순간 순간의 삶' 밖에 없었다. 금방 짜증을 부리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에 어떤 다른 일이 자신의 관심을 사로잡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르르 웃어 댄다.

또 그러다가 문득 조용하다 싶어 돌아보몀 어느새 놀던 모습 그대로 폭 엎어져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그에게는 미래의 '완전한 자아상(自我像)'이라는 것도 없었고. 부족이니 '완전'이니 하는 분별도 없었으며, 보다 더 나은 자신을 위하여 현재의 자신을 조절하거나 억압하거나 통제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자신의 순간 순간의 삶--무분별(無分別)의 하나'--을 살 뿐이었다.

아아 그렇게 그에게는 오직 전일한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삶만이 있었다! "能영我乎!" 노자는 다시 우리에게 말한다. "능히 어린아이와 같을 수 있는가? 능히 어린아이와 같은 '미분(未分)의 현재'를 살 수 있는가? 정녕 그러할 수 있을 때, 그대가 그토록 원하는 자유니, 행복이니, 사랑이니, 하는것들은 <저절로> 그대의 삶 속에서 주렁주렁 열매맺게 되나니! 진리(眞理)라는 것은 그토록 가까이 '저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가득히 있나니!" 예수도 말한다,'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전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다."(마태복음 18:3) 아멘!


출처 : 전주향교(全州鄕校)
글쓴이 : 鶴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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