滌際玄覽 能無疵乎(마음의거울을 닦아 깨끗이 하여 능히 티하나 없게 할 수 있는가?) 이런 류(類)의 문장을 대할 때마다 나는 괜스레 흥분한다. 왜냐하면 대분분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거울을 닦아 깨끗이 한다'라고 할 때 과연 어떻게 하는것이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일까? 어떤 것이 정년 '청정(청정)한' 마음일까? 그리고 닦아 내고 제거해야 할 '마음의 때' 혹은 '티'라는 것은 뭘까"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렇게 알고 있는것처럼 미워하는 마음이나 짜증 분노 게으름 혹은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의 온갖 욕망과 번뇌 망상일까?
그러한 것들이 정녕 닦아내고 제거해야 할 우리의 마음의 때 혹은 티일까? 그리하여'滌際玄覽 能無疵乎'를 "그와 같은 모든 더러운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어내고 닦아내어 능히 티 하나 없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읽어야 할까? 오 아니다! 이 글은 그런 뜻이 아니다. 만약 이 글을 그렇게 교훈적으로 읽으면 바로 그런 모양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짐지우게 된다. 진리는 결탄코 우리를 힘겹게 하는 무엇이 아니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한다!
그렇다 이 글은 그런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滌際玄覽 能無疵乎'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보라 우리가 '마음의 때'혹은 '티'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 그리하여 우리 형혼의 진정한 정화(정화)를 방해하는 걸림돌이라고 생각하여 끊임없이 닦아내고 제거하려 하는 바로 그 번뇌와 망상이 사실은 가만히 보면 노자가 앞에서 말한 매 순간 순가의 '하나'요, 어린아이의 분별치 않는 전일한 '현재'가 아닌가?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그것을 번뇌니, 망상이니, 부족이니 하고, 불별하고 규정해 버리고는 황망히 그 자리를 떠나 지만, 사실은 우리가 떠나온 그 자리가 바로 주객미분(主客未分)의 분별이전의 이름하여' 보리(菩提)요 자성(自性)이며 진리요 진아(眞我)가 아닌가?[煩惱卽菩提] 아아 그것은 <본래부터 청정(淸淨)하며 <본래부터>가 깨끗하다! 우리에게는 닦아내고 제거해야 할 '마음의 때' 혹은 '티'라는 것이 <본래 부터>아예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때로 미워하고 때로 짜증내며 때로 분노하며 살아가는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 이미 '완전'하다고 앞 장(章)들에서도 누누히 말해왔던 것이다. 그러니 그냥 살면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그냥 살면 되는 것이다. 또다시 무엇을 찾아 두리번거리는가?
됐다. 이것으로 족하다. 이 장(章)에 대한 풀이는 이 것으로 족하다. 이후에 나오는 문장들 또한 결국은 같은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그냥 간단하게만 언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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