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학

ria530 2013. 10. 30. 13:08

英祖大王 御製序[아래 글은 『대학』에 붙인 조선시대 영조임금의 글이다. 『대학』이 어떤 책인지를 영조 임금의 글에 의거해서 살필 있고 아울러 영조임금이 얼마나 글을 했는지 있는 기회이기에 소개한다. 대산 김석진 선생의 『대산대학강의』(한길사, 2000)에서 발췌했다. - 家苑 ]夫三代盛時에 設庠序學校而敎人하니 此正禮記所云家有塾하며 黨有庠하며 州有序하며 國有學者也ㅣ라 故로 人生八歲어든 皆入小學하고 於大學則天子之元子衆子로 以至公卿大夫元士之適子와 與凡民之俊秀者히 及其成童하야 皆入焉하니 可不重歟아무릇 삼대( 시대를 말하는데, 당시는 정치와 교육이 이루어지는 때여서 政敎가 완비되었다고 한다) 성할 때에 () () () 베풀어서 사람을 가르치니, 이는 바로 『예기(禮記)』에 이른바 ()에는 서당() 있으며, 마을( : 500)에는 ()이라는 학교가 있으며, 고을( : 2500)에는 ()라는 학교가 있으며, 나라에는 ( : 태학)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서 여덟 살이 되면 모두 소학에 들어가고 태학은 천자의 맏아들과 여러 아들로부터 공경대부와 원사(元士 : 관직명. 周代의 上士 中士 下士를 통칭하여 이름) 맏아들과 보통 백성 중에서 여大學之書에 有특별히 재주 있는 사람과 성동(成童 : 자란 아이) 이르기까지 들어가니 가히 중대하지 않은가. : 어조三綱焉하니 曰明明德 曰新民 曰止於至善也ㅣ오 有八條焉하니 曰格物 曰致知 曰誠意 曰正心 曰修身 曰齊家 曰治國 曰平天下也ㅣ라 次序井井하고 條理方方하야 其學問之道는 紫陽朱夫子序文에 詳備하니 以予蔑學으로 何敢加一辭리오마는 然이나 是書ㅣ 與中庸으로 相爲表裏하야 次序條理ㅣ 若是暸然而學者 其猶書自書我自我면 可勝歎哉아대학의 글에 가지 강령이 있으니 가로되 밝은 덕을 밝히는 것과 가로되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과 가로되 지극히 선한 그치는 것이요, 여덟 가지 조목이 있으니 가로되 사물에 이르는 것과 가로되 앎을 이루는 것과 가로되 뜻을 성실히 하는 것과 가로되 마음을 바로하는 것과 가로되 몸을 닦는 것과 가로되 집을 가지런히 하는 것과 가로되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가로되 천하를 평치하는 것이다. 차서가 정연(井然)하고 조리가 반듯하여 학문의 도는 자양 땅에 사는 주부자(주희) 서문에 자세히 갖추었으니 내가 배움이 없으면서 어찌 감히 말씀을 덧붙이리요마는, 그러나 글이 『중용』과 더불어 서로 표리가 되어서 차서와 조리가 이같이 밝은데 만약 배우는 자가 오히려 글은 글대로이고 나는 나대로이면 가히 어기어 탄식하랴(가히 탄식을 이겨낼 있으랴)! : 없을 : 밝을 噫라 明德이 在何ㅣ오 卽在我一心이며 明明德之工이 在何ㅣ오 亦在我一心이니 若能實下工夫면 正若顔子所云舜何人이며 予何人者也ㅣ라아! 밝은 덕이 어디에 있는가? 한마음에 있으며, 밝은 덕을 밝히는 공부가 어디 있는가? 또한 한마음 속에 있으니 만약 능히 실지로 공부를 해나갈 같으면 정히 안자가 이르신 바와 같이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와 같을 것이다. : 탄식할 희而三代以後로 師道在下하고 學校不興하야 莫能行灑掃之敎故로 筋骸已强하고 利欲이 交中하야 在我之明德을 不能自明하니 旣不能格致요 又何以誠意며 旣不能正心이오 又何以修身이며 不能格致요 不能誠正이면 家齊國治를 其何望哉리 삼대 이후로 스승의 도가 아래에 있고 학교가 일어나지 못하여 능히 쇄소( 뿌리고 비로 ) 가르침을 행하지 못한 까닭에 힘줄과 뼈가 이미 굳어지고 이로움과 욕심이 마음 속에 사귀어서 내게 있는 밝은 덕을 능히 스스로 밝히지 못하니, 이미 능히 격물치지(사물에 이르러서 속의 모든 이치를 알아냄) 하지 못하고서 어찌 뜻을 성실히 있으며, 이미 능히 마음을 바루지 못하고 어찌 몸을 닦으며, 능히 격물치지도 못하고 능히 성의정심도 못하면서 집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 다스림을 어찌 바라리요. : 뿌릴 : : 힘줄 : [강의] 삼대 이후로는 위에 높이 있어야 스승의 도가 아래에 떨어져 버렸으므로 학교교육이 아주 부진했다. 예전에는 여덟 살이 되면 『소학』을 공부하여 처음에 쓸고 뿌리는 것부터 가르쳤는데 삼대 이후엔 어린 아이들에게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뿌리고 쓰는 하찮은 것이지만 거기서부터 인성교육을 시작해야 어린 아이가 크면서 사람다워지고 어른을 알고 행동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초에 뿌리고 쓰는 가르침을 하지 못했으니, 어린 아이가 커가면서 힘줄과 뼈가 이미 굳어지고 억세졌다. 그러다 보니 利欲이 마음 속에 잔뜩 사귀어서 내게 있는 밝은 덕이 본래 하늘에서 타고난 것인데도 자신의 밝은 덕이 어디 있는 모르고 잊어버려 능히 스스로 밝히지를 못하게 된다. 이렇게 밝은 덕을 밝히지 못하는데 팔조목의 이른바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가 제대로 이루어질 있겠는가.予於十九歲에 始讀大學하고 二十九歲에 入學也하야 又講此書而自顧其行컨대 其亦書自我自라 心常恧焉이러니 六十三에 視學明倫堂也할새 先讀序文하고 仍令侍講官及儒生으로 次第以講하니 其日은 則甲子也ㅣ라與朱夫子作序文之日로 偶然相符하니 日雖相符나 功效愈邈이라내가 열아홉 살에 비로소 『대학』을 읽고 스물아홉 살에 성균관에 들어가서 글을 ()하고 스스로 행실을 돌아보건대 또한 글은 글이고 나는 나였다. 마음에 항상 부끄럽더니 예순세 살에 명륜당에서 적에 먼저 서문을 읽고, 인하여 시강관과 유생으로 하여금 차례대로 강하게 하니 그날은 갑자일이었다. 주부자가 서문 지은 날로 더불어 우연히 서로 일진이 갑자(甲子) 맞아 떨어졌으나 공과 효력은 더욱더 멀었다. : 부끄러울 : 인할 : 나을 , 더욱 : 又切靦然이러니 望七之年에 因追慕하야 行三講而欲取反約하야 以中庸으로 循環以講하고 因經筵官之請하야 繼講此書하니 自此以後로 庸學을 將輪回以講이라 少時講此에 未見其效어든 暮年重講에 其何望效리오더욱 간절히 부끄럽더니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69) 인하여 추모해서 강함을 행하고 도리어 간략함을 취하고자 해서 『중용』으로 순환하면서 강하고 경연관의 청함을 인하여 이어서 글을, 이로부터 뒤로 『중용』과 『대학』을 장차 돌려가며 강하였다. 젊을 때에 『대학』을 강했는데도 효력을 보지 못하였는데, 늙은 나이에 거듭 강함에 어찌 효력을 바라리요.: 부끄러울 : 자리 연尤爲慨然者는 紫陽序文에 豈不云乎아 一有能盡其性者면 天必命之하사 以爲億兆之君師라 하시니 以予晩學凉德으로 旣無誠正之工하고 亦無修齊之效하야 而白首衰耗에 三講此書하니 豈不自恧乎아더욱 슬퍼지는 것은 자양 주자 서문에 어찌 이르지 아니했는가! “하나라도 능히 성품을 다하는 자가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명하사 억조창생의 인군과 스승을 삼는다” 하시니 나의 늦은 배움과 박한 덕으로써 이미 성의정심의 공부도 없고 또한 수신제가의 효력도 없어서 흰머리 쇠한 터럭에 글을 강하니 어찌 스스로 부끄럽지 아니하랴! : 더욱 : 슬플 : 쇠할 모然이나 孔聖이 溫故而知新이라 하시니 若能因此而知新이면 於予에 豈不大有益也哉리오 仍作序文하야 自勉靈臺하노라歲戊寅十月甲寅에 하노라그러나 공자 성인이 이르시기를 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안다고 하시니, 만약 이로 인해서 새로운 알게 되면 나에게 어찌 크게 유익함이 있지 아니하리요! 그러므로 인하여 서문을 지어서 스스로 영대를 밝히려 하노라.歲戊寅十月甲寅 序하노라해는 무인년이요 시월 갑인일에 글을 서하노라.

朱子의 讀大學法[다음 글은 『대학』을 읽을 유념해야 부분에 대해 주자가 말씀한 내용을 수록한 것으로 대산 김석진 선생의 『대산대학강의』(한길사, 2000)에서 발췌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는 二程子(정명도, 정이천) 학설을 존숭하고 『대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이것이 유학의 핵심 경전이 되는 반석같은 역할을 하였다. 주자는 끊임없이 『대학』에 수정을 가하여 주석서인『대학장구』와 의심나는 구절과 선유의 학설을 대비하여 문답식으로 풀이한 『대학혹문』을 지었다. 작고하기 사흘 병든 몸으로 『대학』의 성의장을 개정 주해하고 세상을 떠날 정도로 주자는 여기에다 혼신을 기울였다고 한다. - 家苑 ]朱子曰 語孟은 隨事問答이니 難見要領이로대 惟大學은 是曾子述孔子說古人爲學之大方이오 而門人이 又傳述以明其旨라 前後相因하고 體統都具하니 翫味次序하야 知得古人爲學所向하고 却讀語孟이면 便易入이니 後面工夫雖多나 而大體已立矣리라주자가 말씀하시기를, 『논어』와 『맹자』는 일에 따라 문답한 것이니 요령을 보기 어려우나, 오직 『대학』은 증자가 공자께서 사람이 학문을 방법을 기술한 것이요. 증자의 문인이 전술하여 요지를 설명하신 것이다. 앞뒤가 서로 인하고 체통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므로 글을 완미(翫味 : 구경하고 맛봄)하고 사람이 학문할 때의 방향을 알아 『논어』와 『맹자』를 읽으면 쉽게 들어가게 되니, 뒤의 공부가 비록 많기는 하나 체는 이미 서게 것이다.() : 구경 : 문득 : 문득 看這一書ㅣ 又自與看語孟으로 不同하니 語孟中엔 只一項事 是一箇道理라 如孟子說仁義處엔 只就仁義上說道理요 孔子答顔淵以克己復禮엔 只就克己復禮上說道理어니와 若大學은 却只統說하니 論其功用之極인댄 至於平天下라 然이나 天下所以平은 却先須治國이오 國之所以治는 却先須齊家ㅣ오 家之所以齊는 却先須修身이오 身之所以修는 却先須正心이오 心之所以正은 却先須誠意요 意之所以誠은 却先須致知요 知之所以至는 却先須格物이니라『대학』을 보는 것이 『논어』와 『맹자』를 보는 것과는 같지 않으니, 『논어』『맹자』 중에는 가지 일에 가지 도리일 뿐이다. 예를 들어 맹자가 인의(仁義) 설명한 곳에는 다만 인의상에 나아가 도리를 설명했을 뿐이고 공자가 안연(顔淵)에게 극기복례로써 답을 하신 데에는 극기복례에 나아가 도리를 설명했을 뿐이나,『대학』은 모두를 통합해서 설명했으니 공용(功用) 지극함을 논하자면 평천하에 이른다.그러나 천하가 평치(平治)되려면 먼저 치국(治國) 해야 하고 나라를 다스리려면 제가(齊家) 해야 하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려면 수신(修身) 해야 하고, 몸을 닦으려면 정심(正心) 해야 하고, 마음을 바로하려면 성의(誠意) 해야 하고, 뜻을 성실히 하려면 먼저 치지(致知) 해야 하고, 앎에 이르려면 격물(格物) 해야 한다. : 저기 : 개大學은 是爲學綱目이니 先讀大學하야 立定綱領이면 他書는 皆雜說在裏許니라 通得大學了하고 去看他經이라야 方見得此是格物致知事며 此是誠意正心事며 此是修身事며 此是齊家治國平天下事니라『대학』은 학문을 하는 강목(綱目) 되니, 먼저 『대학』을 읽고 강령(綱領) 세워서 정하면 다른 글들은 섞인 말들로 속에 들어 있다. 『대학』을 통득(通得)하고 다른 글을 봐야 비로소 격물 치지의 일이며, 성의 정심의 일이며, 수신의 일이며, 제가 치국 평천하의 일을 보게 것이다. : 그물눈 : 리今且熟讀大學하야 作間架하고 却以他書로 塡補去하라 大學은 是通言學之初終이오 中庸은 是指本原極致處니라 問欲專看一書 以何爲先이니잇고 曰先讀大學이면 可見古人爲學首末次第니 不比他書라 他書는 非一時所言이며 非一人所記니라 又曰 看大學에 固是着逐句看去니 也須先通讀傳文敎熟이라야 方好從頭仔細看이니 若專不識傳文大意면 便看前頭도 亦難이니라이제 『대학』을 숙독해서 공간을 만들어놓고 다른 글로 메워 보충해 나아가라. 『대학』은 학문의 처음과 마침을 통틀어 말한 것이고, 『중용』은 본원의 극치처를 가리킨 것이다. 묻기를, 가지 책을 전문적으로 보고자 하는데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말씀하시기를, 먼저 『대학』을 읽으면 사람이 학문을 하는 수말(首末 : 시작과 ) 차례를 있으니, 다른 책들과는 비교가 된다. 다른 글은 한때에 말한 바가 아니며 사람이 기록한 것이 아니다. 말씀하시기를, 『대학』을 진실로 글귀를 따라 보아가야 하나 모름지기 먼저 전문을 통독하고 가르침에 익숙해져야 비로소 처음부터 자세히 보기가 좋으니, 만약 전문(傳文) 뜻을 알지 못하면 부분을 보는 데도 어렵다. : 메울 전又曰嘗欲作一說敎人하노니 只將大學하야 一日에 去讀一遍하고 看他如何是大人之學이며 如何是小學이며 如何是明明德이며 如何是新民이며 如何是止於至善고 하야 日日如是讀이면 月來日去에 自見所謂溫故而知新이라 須是知新이어든 日日看得新이라야 方得이니 却不是道理解新이오 但自家這箇意思長長地新이니라또 말씀하였다. 일찍이 말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니, 다만 『대학』을 가지고 하루에 번씩 읽어 나가서 어느 것이 대인의 학문이며, 어느 것이 소학이며, 어느 것이 명명덕이며, 어느 것이 신민이며, 어느 것이 지어지선인가 하는 것을 보아 날마다 이같이 읽어 나가면, 세월이 흘러감에 스스로 이른바 온고지신(溫故知新 : 것을 익히어 새로운 것을 )함을 보게 것이다.모름지기 새로움을 알게 되면 계속해서 보아 다시 새로운 것을 얻게 것이니, 이도리가 저절로 풀려서 새롭게 됨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의사가 자라나서 새롭게 되는 것이다. : 일찍이 : 익힐 (所也) : 예비할지讀大學은 初間에 也只如此讀하며 後來에도 也只如此讀하야 只是初間讀得이 似不與自家相關이라도 後來看熟이면 見許多說話를 須看如此做로대 不如此做면 自不得이니라 讀書는 不可貪多니 當且以大學으로 爲先하야 逐段熟讀精思하고 須令了了分明이라야 方可改讀後段이니 看第二段에 却思量前段하야 令文意로 連續이면 却不妨이니라『대학』을 읽는 처음에 이와 같이 읽고 뒤에도 이와 같이 읽어 처음 읽은 것이 자신과 서로 관계치 않더라도, 뒤에 올수록 숙독해 나아가면 많은 설명이 모름지기 닿아서 이와같이 공부가 됨을 것이니 이같이 공부해 나아가지 않으면 스스로 얻지 못할 것이다. 독서는 많은 것을 탐해서는 되니, 마땅히 『대학』으로 먼저 하여 단락 단락을 따라 숙독하여 정미롭게 생각하고 모름지기 분명하게 해놓고서야, 바야흐로 뒤의 단락을 바꾸어 읽어야 하니, 제이단(第二段) 보는 데에 앞의 단락을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해서 글의 뜻과 연결시키면 해롭지 않으리라. : 지을 : 해로울 방問大學稍通에 方要讀論語잇가 且未可하니 大學稍通이어든 正好着心精讀이니라前日讀時엔 見得前하고 未見得後面하며 見得後하고 未見得前面이러니 今識得大綱體統하니 正好熟看하야 讀此書功深이면 則用博이니라 昔에 尹和靖은 見伊川半年에 方得大學西銘看이러니 今人은 半年에 要讀多少書로다 某此要人讀此는 是如何오 緣此書却不多而規模周備일새니라 凡讀書를 初一項에 須看十分工夫了면 第二項엔 只費得八九分工夫ㅣ오 第三項엔 便只費得六七分工夫니 少間에 讀漸多하면 自通貫이니 他書는 自著不得多工夫니라묻기를, 『대학』을 조금 통함에 바야흐로 『논어』를 읽으려고 합니다만. 이르기를, 가하지 않으니, 『대학』을 조금 통했으면 마음을 붙여 정독함이 좋다.전일에 읽을 때에는 앞만 알고 뒤를 보지 못했거나 뒤만 보고 앞을 보지 못하더니, 이제 대강과 체통을 알았으니 정히 숙독함을 좋아해서 글을 읽는 공이 깊어지면 씀이 넓어질 것이다. 옛적 윤화정(尹和靖, 1071~1142, 이름은 , 字는 彦明, 정자의 학문을 이어 敬을 함양하려면 '其心收斂 不容一物'이어야 한다고 제시)) 이천(伊川)에게 배운 반년에야 비로소 『대학』과 『서명(西銘)(張橫渠가 書齋 서쪽벽에 붙인 글로 윤화정이 '서명' 논하고 주자가 해설을 붙이면서 널리 알려짐. 내용은 다음과 같다. "乾稱父요 坤稱母라 予茲藐焉은 乃混然中處라 故로 天地之塞은 吾其體요 天地之帥은 吾其性이니 民吾同胞이오 物吾與也라 大君者는 吾父母宗子요 其大臣은 宗子之家相也ㅣ라 尊高年은所以長其長이오 慈孤弱은 所以幼其幼라 聖其合德이오 賢其秀也ㅣ라 凡天下疲癃殘疾煢獨鰥寡는 皆吾兄弟之顚連而無告者也라 于時保之는 子之翼也요 樂且不憂는 純乎孝者也ㅣ니 違曰悖德이오 害仁曰賊이라 濟惡者는 不才요 其踐形은 唯肖者也라 知化則善述其事요 窮神則善繼其志라 不愧屋漏는 爲無忝이오 存心養性은 爲匪懈라 惡旨酒는 崇伯子之顧養이오 育英才는 穎封人之賜類라 不弛勞而底豫는 舜其功也요 無所逃而待烹은 申生其恭也요 體其受而歸全者는 參乎요 勇于從而順令者는 伯奇也라 富貴福澤은 將厚吾之生也요 貧賤憂戚은 庸玉汝于成也니 存에 吾順事요 沒에 吾寧也ㅣ라") 보더니 지금 사람은 많은 글을 읽기를 요하는구나! 내가 사람들이 책을 읽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글이 양이 많지 않고 규모가 두루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무릇 글을 읽는 것은 처음 줄에 공부를 부치면 다음 둘째 줄에서는 팔구 공부를 소비하고 다음 줄에는 육칠 공부만 소비하면 되니, 얼마 동안을 점점 많이 읽어 나가면 스스로 관통할 것이니 다른 글은 많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 조금 초看大學에 俟見大指하고 乃及他書로대 但看時에 須是更將大段하야 分作小段하고 字字句句를 不可容易放過니 常時暗誦思하고 反覆硏究하야 未上口時엔 須敎上口하고 未通透시엔 須敎通透하고 已通透後엔 便要純熟이니 直待不思索時에도 此意常在心胸之間하야 驅遣不去라야 方是此一段了하고 又換一段看이니 令如此數段之後엔 心安理熟하야 覺工夫省力時에도 便漸得力也ㅣ리라『대학』을 봄에 대지(大指) 보기를 기다리고 다른 글에 미치되, 때에 모름지기 대단을 가지고 소단을 지어 나누고 자구와 자구를 쉽게 놓거나 지나쳐서는 된다. 평소에 암송하면서 묵묵히 생각하고 연구를 반복해서 입에 오르지 않을 때엔 입에 오르도록 익히고, 뚫어서 통하지 않았을 때에는 통투(通透 : 통하여 꿰뚫음) 때까지 기다리고, 통투한 후에는 순전히 익혀야 하니, 사색하지 않을 때에도 뜻이 항상 마음 속에 있어서 내쫓아도 떠나가지 않아야만 일단락을 마치고 다음 일단락을 바꾸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단락을 후에 마음이 편안하고 이치가 익어서 공부가 힘들다고 생각될 때에도 점점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 통할 : 又曰 大學은 是一箇腔子니 而今에 却要塡敎他實이니 如他說格物은 自家須是去格物後에 塡敎他實이오 著誠意도 亦然하니 若只讀得空殼子면 亦無益也ㅣ니라 讀大學이 豈在看他言語리오 正欲驗之於心如何니 如好好色과 惡惡臭를 試驗之吾心하야 果能好善惡惡이 如此乎아 하며 閒居에 爲不善이 是果有此乎아 하야 一有不至어든 則勇猛奮躍不已라야 必有長進이니라 今不知如此하면 則書自書我自我리니 何益之有리오또 말씀하시기를, 『대학』은 한낱 빈칸인데 지금 실제를 메워 나가야 것이다. 예컨대 격물은 스스로 모름지기 격물에 나아간 뒤에 실제를 메워 나갈 것이고, 성의를 붙이는 것도 그러하니, 만약 껍데기만 읽어 얻으면 유익함이 없다. 대학을 읽음이 어찌 언어에만 있겠는가, 마음에 어떠한가 함을 징험하여야 것이니, 좋은 색을 좋아하고 악한 냄새를 싫어함을 마음에 시험해서, 과연 “능히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이 이와 같은가” 하며 “한가로이 거처함에 불선을 함이 과연 이러함이 있는가” 하여, 하나라도 이르지 못함이 있으면 용감하고 맹렬히 떨치고 뛰어서 그치지 않아야만 반드시 길게 나아감이 있게 된다. 이제 이와 같음을 모르면 책은 책대로이고 나는 나대로이리니 어찌 유익함이 있겠는가. : 빈속 : 붙을 : 껍질 : 미워할 : 나쁠 악又曰 某一生에 只看得這文字透하고 見得前賢所未到處로라 溫公이 作通鑑하고 言平生精力이 盡在此書라 하더니 某於大學에 亦然하노니 先須通此라야 方可讀他書니라 又曰 伊川이 舊日敎人에 先看大學하실새 那時엔 未解說이러니 而今에 有註解하야 覺大段分曉了하니 只在仔細看이니라 又曰 看大學에 且逐章理會니 先將本文念得하고 次將章句來解本文하고 又將或問來參章句하야 須逐一令記得이니 反覆尋究하야 待他浹洽이어든 旣逐段曉得하야 却統看溫尋過니라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일생 동안 문자를 보고 전현들이 미치지 못한 곳을 발견했다. 사마온공(司馬溫公) 『통감(通鑑)』을 지어 놓고 평생의 정력을 책에 다했다 했는데, 나는 『대학』에 또한 그러하니 먼저 『대학』을 통해야만 비로소 다른 글을 읽는 것이 가능하다. 말씀하시기를 이천 선생이 옛날 사람을 가르칠 먼저 『대학』을 보게 하였다. 당시엔 해설이 없었으나 지금은 주해가 있어 대단(大段) 깨닫는 밝아지니 다만 자세히 봄에 달려 있을 뿐이다. 말씀하시기를, 『대학』을 봄에 문장을 따라 이해해야 하니, 먼저 본문을 가지고 생각해 얻어야 하고 다음에 장구를 가지고 본문을 해석하고, 혹문(或問) 가지고 장구를 참고하여 모름지기 일념을 따라서 기억해 얻어낼 것이니, 반복하고 찾아 구해서 무젖어 흐뭇함을 기다려야 한다. 이미 단락을 따라 깨우쳐 얻었으면 통합해 보아 익혀 나아가야 것이다. : 저것 : 밝을 : 무젖을 : 흡족할 흡又曰 大學一書에 有正經하고 有章句하고 有或文하니 看來看去면 不用或問하고 只看章句便了ㅣ오 久之면 又只看正經便了ㅣ오 又久之면 自有一部大學이 在我胸中하야 而正經도 亦不用矣리라 然이나 不用某許多工夫면 亦看某底不出이오 不用聖賢許多工夫면 亦看聖賢底不出이니라또 말씀하시기를, 『대학』 글에 정경(正經) 있고 장구가 있고 혹문이 있으니, 계속 보아 나가면 혹문을 쓰지 않고 다만 장구만을 보아 마치고, 오래 되면 다만 정경만을 보아 마칠 것이다. 오래 되면 스스로 부의 『대학』이 가슴 속에 있어 정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허다한 공부를 쓰지 않으면 또한 나의 뜻이 나오지 않음을 것이고, 성현의 허다한 공부를 쓰지 않으면 역시 성현이 나오지 않음을 것이다.又曰 大學解本文未詳者를 於或問中에 詳之하니 且從頭逐句理會라가 到不通處어든 却看하라 或問은 乃註脚之註脚이니라 某解書에 不合太多ㅣ오 又先准備學者하야 爲他設疑說了하니 所以致得學者看得容易了니라 人只說某說大學等不略說하야 使人自致思라 하니 此事大不然이로다 人之爲學은 只爭箇肯與不肯耳니 他若不肯向這裏면 略이라도 亦不解致思ㅣ오 他若肯向此一邊이면 自然有味하야 愈詳愈有味하리라또 이르기를 『대학』본문을 해석하는데 상세하지 못한 것을 혹문 중에 상세히 해놓았으니, 또한 머릿부분을 따라 글귀마다 이해해 나가다 통하지 못하는 곳에 이르거든 보아라. 혹문은 주각(註脚) 주각이다. 내가 『대학』을 해석함에 간략히 해놓고 먼저 배우는 자를 대비해서 달리 의문나는 바를 가설해 놓았으니 배우는 자에게 보여 얻는데 용이하게 것이다. 사람들이 다만 내가 『대학』을 간략히 설명하여 공부하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지 못하였다고 하나, 일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다만 즐겨 하느냐 즐겨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다툴 뿐이니, 저들이 만약 속으로 향함을 즐겨하지 않는다면 간략할지라도 역시 풀어서 생각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저들이 만약 한쪽만 향해서 즐겨 한다면 자연 맛이 있어 더욱 상세하고 더욱 맛이 있을 것이다. : 즐길 : 더욱

也山大學錯簡攷正敍記 / 해설[다음 해설은 대산 김석진 선생의 『대산대학강의』(한길사, 2000)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 家苑 ]‘착()’은 어긋남을 말하고 ‘간()’은 책을 말한다. 옛날에는 대나무를 쪼개서 거기에다 글씨를 썼기 때문에 책을 일러 簡이라 했는데, 『대학』이라는 책이 이제 이리저리 섞이고 뒤바뀌어서 순서가 어긋났으므로 지금까지도 ‘착간대학(錯簡大學), 대학의 순서가 착간되어 있다고 학자들은 얘기한다. ‘대학착간고정서기’는 착간된 『대학』을 고정하는 대한 서문을 펴서 기록하였다는 뜻이다.주자가 『대학』의 착간을 고정했지만 서문에 “후세의 군자를 기다린다(俟後之君子)”라고 하여, 당신이 완전하게 해놓지 못한 것을 바로잡을 후세의 군자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이후로 중국에서는 『대학』의 착간을 바로잡으려는 분들이 많았고 우리나라에서도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을 비롯하여 여러 분이 착간대학을 연구하였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최종판이라 있는 야산 선생의 『대학착간고정』을 보면 이상은 누가 손댈 없을 정도로 완벽한데, 선생은 서문에서 스스로의 업적을 겸손이 사양하시고 공을 정자와 주자 선유분들께 돌리셨다. 야산 선생의 착간고정본에는 주자의 장구본 전문에 있는 본말장(4) 보궐장(격물치지장을 보궐한 5)이라는 것이 없다. 원래의 본문 속에서 격물치지에 대한 내용을 찾아내어 각각 격물장과 치지장으로 분류해 놓았다. 원문을 살펴보면 착간고정본은 차례가 바뀌었을 뿐이지 『대학』원문의 글과 내용은 똑같다. 특기할 점은 대학의 도인 삼강령에서 정자와 주자는 親民을 新民으로 고쳐야 한다고 보았지만 야산 선생께서는 글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그대로 의미가 부여되는데 뭣하러 바꾸느냐, 사실은 친하여야 新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親而新이라’, 백성들과 친하고 보면 백성들을 새롭게 깨우쳐줄 있다, 친하지 않고 백성을 멀리하면서 어떻게 백성을 새롭게 있느냐는 얘기이다. 그래서 신민을 그대로 친민이라고 읽어야 하고 전문 2장의 명칭을 신민장이라 하지 않고 친민장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대학』의 착간을 고정하면서 지은 머리글(서문) 다음과 같다.夫大學之書는 先儒之說이 明白且盡하니 何敢加疊이리오마는 然而有曰 錯簡云이라 故로 寓格所致에 有此攷正之道하니 雖於道統之傳에 不敢妄議나 其於孔門傳受之法과 先儒俟後之方엔 不可閉라 故로 略記如左하노라 무릇 대학의 글은 이전 유학자들의 설명이 명백하고 또한 극진한데 어찌 감히 덧붙이겠는가? 그러나 착간되었다는 말이 있기에 생각해보고 깨우친 있어 이러한 고정을 하게 되었으니, 비록 도통의 전함에 대해 감히 망녕되이 의논할 없으나 공문에 전수된 법도와 선유가 후인을 기다린 뜻을 생각하면 가히 침묵할 수만은 없어서 간략히 다음과 같이 글을 적는다. : 쌓을 : 부칠 : 이를 : 상고할 (考의 古字)[강의]착간(錯簡) 원래 내용과 다르게 순서가 뒤섞인 글을 말하고 고정(攷正) 고찰하여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우격소치(寓格所致) 『대학』의 글에다가 ( : 뜻과 마음) 부치고 앎에 이른 바로서, 사물에 대해 궁리하여 이치를 깨달음, 格物하고 致知함을 가리킨다.孔門의 전수는 공자 이후 유학의 道統을 말한다. 본래 유학의 연원도통은 孔으로 전승되어 내려왔는데, 공자는 멀리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를 祖宗으로 삼아 전술하고 가까이로는 문왕과 무왕의 도를 본받아서 儒道를 완성하였다. 이후 공자의 도통은 문하의 증자와 그의 제자이며 공자의 손자인 자사로 계승되어 유학의 체계가 수립되었다. 유학 경전의 최고봉은 공자가 말년에 십익(十翼) 달아 찬술한 『주역』인데, 『주역』의 작은 날개가 되는 글이 바로 증자의 『대학』과 자사의 『중용』이라고 있다. 『주역』의 핵심 사상과 근본 요체는 大同中正인데 이를 표방하여 증자와 자사가 서명을 『대학』이라 이름 짓고, 자사가 『중용』으로 이름지은 것이다. 공자의 도가 증자와 자사에게로 전승되는 근거를 이러한 데에서도 찾을 있다. 공자의 수제자인 증자에게서 공부한 자사의 도는 자사의 문인을 통해서 사숙(私淑) 맹자로 이어진다. 이후로 孔門의 도맥이 천여 년간 끊기었다가 송대(宋代) 주렴계(周濂溪), 장횡거(張橫渠), 소강절(邵康節),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주회암(周晦庵) 등의 유학자들에 의해 다시 중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정이천 선생은 주역에 『전()』을 붙여 역도(易道) 義理를 세우고 『예기(禮記) 속에 들어 있던 대학과 중용편을 독립시켜 유학 경전의 철학적 기초를 바로 세워서 성인의 도를 후학에 연결해주는 다리를 닦아놓았다. 정자를 사숙한 주자 또한 『주역』에다 복서(卜筮) 바탕한 『본의(本義)』를 달아 역리(易理) 상수(象數) 밝히고 『대학』과 『중용』의 장구(章句) 지어 성리학(性理學) 토대로 이른바 정주학(程朱學) 시대를 열어 놓았다.『대학』은 글의 순서가 뒤섞인 상태였기에 정자가 이를 처음 착간이 있다 하여 글의 순서를 나름대로 고정하였으며, 주자 또한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지어 『대학』의 착간을 고정하였다. 주자의 『대학장구』 서문 말미에는 ‘사후지군자(俟後之君子)’라 하였는데 사람이 못한 일의 마무리를 뒷사람이 나와서 해주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或問曰 大學之書는 於宋朝에 先儒頗多正錯이로대 猶有補闕이어늘 而今吾子ㅣ 訂定이 極詳하니 然則吾子ㅣ 過程朱ㅣ 遠矣샷다 曰惡ㅣ라 是何言也ㅣ오 不揣本而齊末이면 寸木이 可使高於岑樓라 譬之藏物於十階梯之上컨댄 程朱子는 已造九階段而予ㅣ 賴此着力하야 僅得一階하니 則惡得有其一하야 以慢其九在리오 是皆推之於先儒末餘之力也ㅣ니라혹자(어떤 ) 묻기를 “대학의 글은 송나라 때에 선유가 많이 착간을 바로잡았는데도 오히려 보충하고 빼야 것이 남아 있거늘, 이제 우리 선생께서 정정하신 글이 지극히 자세하니 우리 선생께서 정자와 주자보다도 훨씬 앞서셨습니다.”말하기를 “아니다. 무슨 말인가? 근본을 헤아리지 못하고서 끝만을 견주면 나무를 가지고 묏부리보다도 높다고 있으니, 물건을 계단의 사닥다리 위에 숨겨둔 비유한다면, 정자와 주자께서 이미 아홉 계단을 만드시고 내가 이에 힘입어 겨우 계단을 얻은 불과하니 어찌 하나를 얻었다고 해서 아홉을 무시하랴! 착간고정은 선유께서 끝까지 행하신 여력에 의해 추진된 것이다. : 자못 : 어긋날 : 빠질 : 바로잡을 : 그릇될 : : 묏부리 : 다락 : 섬돌 : 사다리 : 어찌 [강의]대학에 대해 어떤 사람이 묻자, 이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서문이 이루어지고 있다. 번째 질문이 “『대학』의 글은 송나라의 정명도 정이천 주회암 선생을 비롯한 많은 선유들이 착간을 바로잡았는데도 오히려 보궐(빠진 것을 보충함, 주자의 補闕章)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선생이 『대학』을 정정한 착간고정본이 지극히 상세한 것을 보면 정자와 주자의 공보다도 야산 선생의 공이 훨씬 나은 것이 아닌가?”하고 여쭙자 야산 선생이 『맹자』에 나오는 글을 인용(告子章句 하편에 “不揣其本而齊其末이면 方寸之木을 可使高於岑樓니라”란 구절이다.)하여 그렇지 않은 연유에 대해 답하시를 “한 마디의 나무 막대기가 높아 보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나무가 산보다 높을 있겠는가? 근본을 잃어버리고서 결과(끄트머리) 가지고 따진다면, 마치 산꼭대기에 마디의 나무막대기를 올려놓고 그것이 (岑樓 : 묏봉우리와 높직한 다락)보다 높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물건을 사닥다리 위에 감추었다고 비유해보면 정자와 주자는 이미 아홉 층의 단계를 만드신 것이고, 나는 이것(정자와 주자가 이미 만들어놓은 아홉 계단) 힘입어서 겨우 위에다 계단을 올려 놓았을 뿐이다. 어찌 계단을 얻었다고 해서 감히 아홉 계단에 대하여 자만할 있겠는가? 내가 착간고정을 것은 모두 선유가 끝까지 노력한 바탕에 힘입어서 겨우 이룬 것일 뿐이다”고 하셨다. 又問 格物章內에 以本爲主는 何也ㅣ오 曰夫物은 自外來者也ㅣ니 格而至於知者는 在吾心意誠正如何而修身然後에 可以立本이라 故로 壹是皆以修身爲本이라 하니 若非修身이면 則心意无所主而家國天下도 亦无所由也ㅣ니라또 묻기를 “격물장 안에 本으로써 주장을 삼음은 어째서입니까? 답하시되 “무릇 物은 밖으로부터 것이요 格하여 앎에 이르는 것은 마음과 뜻이 정성하고 바른가의 여하에 달려 있으니, 몸을 닦은 뒤에라야 근본을 세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결같이 모두 몸을 닦음으로써 근본을 삼는다’고 하였으니 만일 몸을 닦지 아니한다면 마음과 뜻이 주장할 바가 없어서 집안과 나라 그리고 천하도 연유할 바가 없게 된다.[강의] “격물장 안에 근본으로써 주장을 삼는(以本爲主) 것은 어째서입니까?”하고 여쭙자, 다음과 같이 답하셨다.“무릇 물건이라는 것은 밖으로부터 내게 온다. 내가 물건에 格해서 물건이 나에게 앎에 이르게 되는 것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히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성의정심으로써 몸을 완전히 닦은 뒤에야 근본을 세웠다고 있으니, 이른바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수신으로써 근본을 삼는다’고 것이다. 수신이 되지 아니하면 안으로는 마음과 뜻이 주장할 곳이 없게 되고, 밖으로는 집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치하는, 말미암을 곳이 없게 된다. 이는 근본이 서야만 가지가 생기는 이치이다. (격물) (치지) 근본이고, (치지) (성의) 근본이 되는데, 근본이 완전히 세워지는 것은 몸에 이르러서이다. 이렇게 몸에 이르러서야 근본이 세워지기에 身外无物, 밖에 물건이 없는 것이다.”주자의 장구본에서는 전문 4장을 본말장으로 놓고 5장의 격물치지의 빠진 글을 보충해설하기 위해서 보궐장을 두었는데, 야산 선생의 대학착간고정본에서는 이와 달리 전문 4장을 격물장으로 놓고 5장을 치지장으로 두었다. 그런데 착간고정의 격물장에는 절목의 문장 속에 本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고 ‘수신위본(修身僞本)’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의 내용은 연유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다. 대개 物은 밖에 존재한다. 그런데 물을 올바로 인식하고 내재된 이치를 완전히 깨우쳐서 알려면(致知), 밖에 있는 물건에 자신이 나아가서(格物) 물건의 궁극적인 이치를 캐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물건의 이치를 알게 되면 이것은 밖의 물건이 찾아와서 앎이 내게 이르는 것인데(物格以后致知), 그러려면 먼저 뜻과 마음을 성실히 하고 바르게 해서 몸을 닦지 않으면 된다. 성실한 뜻이 없고 바른 마음이 없는 못난 사람이 어떻게 사물을 제대로 관찰하여 깊은 이치를 터득하겠는가? 그것은 오직 자신의 정성과 바름 여하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해서 몸을 닦은 뒤에야 진실로 근본이 확립되어 물건이 내게 이르고 앎에 통달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身者는 萬事之本也ㅣ오 物者는 致知於吾身之本也ㅣ라 故로 本立而道生이라 하니라 蓋格은 爲致之之本이요 致는 爲誠之之本이니 至於身而本立이라 故로 身外에 无物也ㅣ니라몸은 만사의 근본이고 物은 몸에 근본하여 앎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이 서야 길이 생기니, 대개 格은 致의 근본이요 致는 誠의 근본이 된다. 몸에 이르러서야 근본이 세워지는 까닭에 밖에 물건이 없는 것이다.[강의]몸이 없으면 안으로 뜻과 마음을 담는 그릇이 없는 것이고 밖으로 집과 나라와 천하도 연유할 근본이 없어지므로, 身이 만사의 근본이 된다. 한편 物은 몸에 근본해서 물건에 대한 앎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건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것은 몸이 있기 때문인데, 만일 몸이 없다면 모든 물건을 인식하고 판단할 있는 근본 주체가 없으므로 物의 존재 자체가 애당초 무의미해진다. 그러므로 『논어』에 말하기를 “근본이 섬에 도가 생한다(本立而道生)”고 하였다.대개 (물건에 이른다는 格物) 앎을 이루는 치지의 근본이 되는 것이고 (앎을 이룬다는 致知) 뜻을 성실히 하는 성의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誠은 나아가 마음을 바로하는 정심의 근본이고 正은 몸을 닦는 수신의 근본이 되는데, 몸에 이르러서야 근본이 완전히 세워지므로 身外无物, 밖에는 물건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몸이 만물의 주인공이 되고, 몸이 있고 다음에 물건의 존재를 인식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만물 중에 가장 신성한 존재로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인 몸에 이르러서야 물건 자체의 근본이 성립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몸은 만사의 근본이 된다. 물론 모든 물건이 밖에 있기 때문에 내가 물건을 상대해서 앎을 이루고 격물치지를 하는 것인데, 근본을 따지고 보면 몸이 바로 근본이 되는 것이다. 만물의 근본이자 만사의 근본이 몸이므로 내가 있고 물건이 있는 것이다.又問 經에 曰親民而傳에 作新하고 經條一節에 曰致知而二節에 作知至라 하야늘 今子釋註中에 舊本新民은 依經作親民하고 而致知則依舊는 何也ㅣ오또한 묻기를 “경문에는 親民이라고 하였는데 전문에는 (新民)으로 되어 있고, 경문의 팔조목 1절에는 致知라고 하였는데 2절에는 知至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 선생께서 풀이한 (착간고정본) 가운데 (주자의 장구본) 新民은 경문에 의거하여 親民이라 지었고 致知는 그대로 본에 의거하였으니 어째서입니까?[강의]삼강령을 말씀한 『대학』경문에서는 (백성을 친한다는) 친민을 말한 반면에 전문에서는 신민에 대한 문장들로 되어 있으며, 팔조목에 대한 경문의 1절목에는 앎을 이룬다는 치지(致知)로써 말하고 2절목에는 知至라고 하였다. 그런데 경문의 親民을 新民으로 풀이한 구본(장구본) 입장과 달리 야산 선생의 착간고정본에서는 본래의 경문과 같이 친민 그대로 풀이하고, 致知와 知至에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장구본에서 풀이한 내용대로 풀이하고 있다. 정자가 親을 “當作新이라”한 내용을 인용해서 친민을 마땅히 신민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자의 장구본과는 다르게, 야산 선생께서 풀이한 착간고정본의 주에는 경문 내용 그대로 親民이라고 해놓았다(右는 傳之二章이니 釋親民하다). 팔조목의 치지에 대해서는 장구본의 풀이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연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다.曰我之明德이 自親親而及於仁民則經之親民이 非誤也ㅣ며 蓋我之親愛而民이 見化於仁則當自新矣리니 傳에 作新도 可也ㅣ며 註之釋親은 依經也ㅣ니라말하기를 “나의 밝은 덕이 친한 이를 친애함으로부터 백성을 사랑하는 데에 미치므로 경문의 親民이 그릇되지 않고, 대개 내가 친애하여 백성이 어진 데로 변화한다면 의당 자연히 새롭게 되니 전문에 新이라 지은 것도 맞다. 내가 주에 親으로 풀이한 것은 경문에 의지한 것이다.[강의]먼저 나의 밝은 덕으로 백성을 친한 뒤에야 백성이 덕화에 힘입어 자연 새롭게 되므로 경문에는 선본(先本) 친민, 전문에는 후말(後末) 신민을 놓은 것이다. 친한 (친척, 부모와 일가친척) 친함으로부터 점차 나아가 백성을 사랑하는 데까지 미치게 되니 경문에 백성을 친한다고 親民이 잘못된 것이 아니며, 밝은 덕을 밝히어 백성을 친하고 사랑하면 윗사람의 친애하는 것을 백성들이 보고 자연 모두 교화를 받아 어질게 화하게 되어서 스스로 새로워지게 되니 전문에 새로운 백성이 되게 하라는 新民도 맞다. 親도 옳고 新도 옳다는 말이다. 이렇게 기왕에 맞는 표현이라면 경문에 있는 그대로 풀이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야산 선생께서는 경문에 의해서 친민으로 풀이한 것이다. 其曰致知而反曰知至者는 蓋我欲知之則謂致요 旣知則知自至矣리니 彼一節은 則知在格物之前이라 故로 曰先致요 二節은 則之在物格之後라 故로 曰至而註之釋致는 依舊ㅣ 可也니라그 1절에 致知라 말하고 2절에 뒤집어 知至라고 말한 것은 대개 내가 알고자 하면 이를 致라 하고 이미 알면 앎이 자연히 이르리니(), 앞의 1절은 知가 격물 앞에 있는 까닭에 ‘先致’(先致其知 致知在格物)라고 하였고 2절은 知가 물격 뒤에 있는 까닭에 ‘至’(物格而后 知至)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착간고정본)에서 致를 풀이한 것은 (장구본) 의지함이 옳다.[강의]착간고정본의 경문은 삼강령 1절과 팔조목 2절로 되어 3절이다. 팔조목의 1절인 古之欲明 절목에는 “致知는 在格物이라”는 문구로 끝맺고 있고 2절인 “物格而后에 知至하고”라는 문구로 시작하고 있다.대개 내가 알고자 노력해서 이루는 것이 致이고 스스로 이르는 것이 至가 된다. 致는 ‘이룰 치’로서 노력하여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의미하고 至는 ‘이를 지’로서 이미 정점에 이른 상태를 의미한다. 절의 ‘致知在格物’은 앎을 이룸이 物을 (궁구)함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서 格物하기 이전이므로 致知로써 표현한 것이고 절의 物格而后知至는 物이 (도래)하여 이미 앎이 자신에게 이른다는 뜻으로서 物格한 이후이므로 知至로써 표현한 것이다.竊惟此書中에 曰親而新하고 曰致而知者는 最有意味字處也ㅣ니라 若不親則民何以新이며 不致則知何以至리오 學者ㅣ 當深察其文理之所在하고 明辨其字義之所分然後에 漸見自得之智矣리라 余ㅣ 故로 曰大學之要는 在於新民而新民之要는 在於知之一智字而已라 하노라그윽히 유념해보건대, 『대학』글 속에서 “친하여 새롭게 한다”와 “이르러 안다”고 것은 가장 의미가 담긴 곳이다. 친하지 않으면 백성이 어떻게 새로워지며 이루지() 아니하면 앎이 어떻게 이르겠는가. 배우는 자가 마땅히 문리가 있는 바를 깊이 살피고 글자가 나뉜 바를 밝게 가린 뒤에야 점차 스스로 얻는 지혜가 있게 됨을 것이다. 나는 그러기에 『대학』의 긴요함은 新民에 있고 신민의 긴요함은 知라는 지혜로운 글자에 있을 뿐이라고 본다. : 그윽할 : 생각 , 오직 [강의]야산 선생은 대학에서 가장 의미 깊은 곳이 삼강령의 親而新(친민으로 인해 신민을 이룸. 경문의 親民은 앞서는 본체, 전문의 新民은 뒤따르는 말용) 팔조목의 致而知(致知로 인해 知至가 . 사물의 궁극적인 이치에 다다름에 따라 앎이 이름) 대한 내용이라고 하였다.백성을 친애하면 백성이 따르고 그러다 보면 백성이 모두 개화되고 새로워져서 저절로 새로운 백성이 되니, 親해서 新하는 것이다. 내가 물건을 알고자 하면 앎에 이르도록 노력하여야 하고 그렇게 해서 앎을 이루게 되면 마침내 知를 체득하게 되니, 致해서 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을 배우는 자는 마땅히 깊이 문리의 있는 바를 살피고 글자 뜻의 나뉜 바를 밝게 분별한 뒤에야, 점점 스스로 지혜가 밝아지게 된다고 말씀하였다. 이르기를 “대학의 요점은 백성을 새롭게 하는 新民에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신민의 요처는 知라고 지혜로운() 글자에 들어 있다”. 내가 致知를 못하면(알지 못하면) 백성을 가르칠 없고 백성을 가르치지 못하면 新民(새로운 백성) 없다는 말씀이다.글자상으로도 ‘친할 ()’에 바탕해서 ‘새 ()’이 나오고 ‘알 ()’에 바탕해서 ‘지혜 ()’가 나온다. 親하지 않고서는 新하지 못하고, 知를 얻지 못하고서는 智가 열리지 않는다. 결국 『대학』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新民인데, 신민이 이루어지려면 知를 체득하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春秋麟筆 二千四百三十八年 丁酉元旦에 後學易子 李達은 復하노라춘추린필 2438 음력 정유년 새아침() 후학역자 이달은 기록하노라麟 : 기린 : 사뢸 [강의]공자(기원전 551, 庚戌年~기원전 479, 壬戌年) 『춘추』는 ()나라 은공(隱公)으로부터 애공(哀公)까지의 242년간(기원전 722, 己未年~기원전 481, 庚申年) 역사를 기술한 글이다. 말년에 공자가 노나라 서쪽 들에서 기린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천명이 다했음을 탄식하시며 ‘서수획린(西狩獲麟)’이라는 글귀로 『춘추』를 마친 데에서 ‘춘추절필(春秋絶筆) 또는 ‘춘추린필(春秋麟筆)’이라는 말이 전해온다.공자께서 『춘추』를 절필한 해인 경신년(庚申年 : 기원전 481) 춘추린필의 원년으로 삼는데, 『대학착간고정』이 완성된 춘추린필 2438년은 서기 1957 정유년(丁酉年)으로서 선사께서 작고하시기 전이다.야산 선생(1889~1958)께서 『대학착간고정』을 지은 후에 감회를 읊은 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乾坤開闔從方便이오妙在其神甲在庚이라綱領德之止於善이오條目物乃及於平이라건곤의 문을 여닫음은 방편을 따름이고묘함은 신에 있고 () () 있음이라강령은 명명덕으로부터 지어지선에 머물고조목은 격물로부터 평천하까지 미침이라.

朱子의 大學章句序[다음 글은 주자가 『대학』에 주를 달아 『大學章句』를 펴내면서 머리말을 붙인 것이다. 서문은 참으로 훌륭한 名文이라고 해서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이 별도로 글을 외웠을 정도라고 한다. 대산 김석진 선생의 『대산대학강의』에서 발췌했다. - 家苑 ]大學之書는 古之大學에 所以敎人之法也ㅣ라 蓋自天降生民으로 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언마는 然이나 其氣質之稟이 或不能齊 是以로 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ㅣ라대학의 글은 옛적 태학(大學) 써한 사람을 가르친 법이다. 대개 하늘이 생민을 내려주심으로부터 이미 인의예지의 성품으로써 주지 않음이 없건마는, 그러나 기질의 품부(稟賦 : 천생으로 타고 )함이 능히 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써 능히 성품의 있는 바를 알아서 온전함이 있지 아니하다. : 품부할 [강의]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을 인의예지라고 것은 원래 『주역』건괘(乾卦) 元亨利貞에 바탕을 것이다. 元은 봄의 덕으로서 , 亨은 여름의 덕으로서 , 利는 가을의 덕으로서 , 貞은 겨울의 덕으로서 智에 해당하는데, 방위상으로 보면 동은 ( : )이고 서는 ( : )이고 남은 ( : )이고 북은 ( : ) 속한다.해가 동쪽에서 떠서 남쪽으로 서쪽으로 북쪽으로 나아가고 시계바늘로 따져도 동남서북이므로 마땅히 인예의지로 표현해야 하는데, 굳이 인의예지로 표현한 것은 서로 상대가 되는 덕을 같이 붙여 일컬은 것이다. 서로 마주보는 방위인 동서와 남북을 합쳐 동서남북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참조]대학은 성인교육기관인 태학을 가리키는 한편 태학에서 가르치는 교과내용으로서, 초등교육기관인 소학에서 가르치는 교과내용인 『소학』과 대비된다. 또한 『소학』이 小子의 修學 과정인 비해 『대학』은 大人의 덕을 닦는 학문이라고 있다. 주자의 「소학제사(小學題辭)」머리글에서 “元亨利貞은 天道之常이요, 仁禮義智는 人性之綱이라(원형이정은 천도의 떳떳함이요, 인예의지는 인성의 벼리이다)”고 하였는데, 사람의 본연성품은 하늘에서 부여받은 그대로 眞實無妄하나 기질과 인욕에 의해 흔들리고 가려 天賦之性의 純全함을 잃게 된다.一有聰明叡智能盡其性者ㅣ 出於其間이면 則天必命之하사 以爲億兆之君師하사 使之治而敎之하야 以復其性케 하시니 此伏羲神農黃帝堯舜所以繼天立極하야 而司徒之職과 典樂之官을 所由設也ㅣ시니라총명하고 착하고 지혜로워서 능히 성품을 다하는 자가 있어 사이에 나오면 하늘이 반드시 사람에게 명하사 억조의 임금과 스승을 삼으셔서 그로 하여금 다스리고 가르치게 해서 성품을 회복케 하시니, 복희 신농 황제 임금이 써한 하늘을 잇고 ( : 『서경』洪範九疇에 이른 五皇極으로 만백성을 다스리는 중심으로서의 표준 법도를 말한다) 세워서 학도를 맡은 직책과 법과 풍류를 맡은 벼슬을 말미암아 베푸시는 바이다. : 착할 , 밝을 [강의]人性을 잃은 사람들 가운데 총명예지하여 인성을 극진히 하는 聖人이 나오면 하늘이 반드시 성인에게 억조창생을 이끄는 君師로 삼아 푯대(표준) 되게 명하시니, 복희씨와 황제 그리고 요와 같은 이가 예이다. 그러므로 『중용』머릿장 경문에도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를 말하여, 하늘의 명에 말미암은 것이 사람의 성품이고, 본연성품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이며, 길을 닦아 놓은 것이 성인의 가르침임을 밝히고 있다.『서경』홍범에 하늘이 명을 내려 제왕(성인) 세움을 “皇이 建其有極(하늘이 유극을 세움)”이라 하고 황극(皇極 : 上帝) 명을 좇아 제왕(성인) 펼치는 지공무사한 법도를 ‘황극부(皇極敷)’라고 하였는데, 이는 성인이 繼天立極하고 司徒 典樂의 벼슬을 베풀어 백성을 다스리고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참조]『서경』순전(舜典) 司徒와 典樂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帝曰 契아 百姓이 不親하며 五品이 不遜일새 汝作司徒ㅣ니 敬敷五敎호대 在寬하라”순임금이 이르시기를, 설아! 백성이 친애하지 못하며 서로간에 공순하지 못하니 네가 사도가 되어 공경하여 다섯 가지 가르침을 펼치되 너그러움이 있게 하라.“帝曰 夔아 命汝하야 典樂하노니 子호대 直而溫하며 寬而栗하며 剛而無虐하며 簡而無傲케 호리니 詩는 言志오 歌는 永言이요 聲은 依永이오 律은 和聲하나니 八音이 克諧하야 無相奪倫이라사 神人以和하리라”순임금이 이르시기를, 기야! 네게 전악을 명하노니 장자(長子 : 경대부의 適者)들을 가르치되 곧으면서도 온화하며 너그러우면서도 엄하며 굳세면서도 사납지 아니하며 간략하면서도 거만하지 않도록 하라. 詩는 뜻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고, 歌는 말을 늘임(장단) 이르고, 聲은 늘임에 의지하는 것이고( 고저청탁), 律은 소리를 화합함을 이르니, 여덟 가지 음이 능히 어울리어 서로 해치거나 질서를 잃음이 없게 해야만 신명과 사람이 화합하리라.三代之隆에 其法이 寖備然後에 王宮國都로 以及閭巷히 莫不有學하야 人生八世어든 則自王公以下로 至於庶人之子弟히 皆入小學하야 而敎之以灑掃應對進退之節과 禮樂射御書數之文하고 及其十有五年이어든 則自天子之元子衆子로 以至公卿大夫元士之適子와 與凡民之俊秀히 皆入大學하야 而敎之以窮理正心脩己治人之道하니 此又學校之敎 大小之節이 所以分也ㅣ라삼대의 융성할 적에 법이 점점 갖추어진 연후에 왕궁과 국도로써 마을과 고을에 미치기까지 학교가 있지 않음이 없어서 사람이 나서 여덟 살이 되거든 왕공으로부터 아래로 서인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소학에 들어가서 뿌리고 쓸고 응하고 대답하고 나아감과 물러남의 절차(灑掃應對進退之節) 예절과 음악과 쏘고 타고 글씨 쓰고 수놓는 것의 (禮樂射御書數之文)로써 가르치고, 15세에 이르거든 천자의 맏아들과 여러 아들로부터 공과 경과 대부와 원사의 맏아들과 백성들의 준수한 이에 이르기까지 태학에 들어가서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로 하고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도로써 가르치니 또한 학교의 가르침이 크고 작은 절차가 나뉜 바이다. : 높을 : 점점 : 마을문 : 시골거리 : 뿌릴 [강의]小學之敎와 大學之敎가 다르다. 소학에서 가르치는 교과는 쇄소응대진퇴(灑掃應對進退) 節과 그리고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 文이지만, 태학에서 가르치는 교과는 궁리정심(窮理正心) 수기치인(脩己治人) 道이므로 節文과 道의 크고 작음이 차이난다.[참조]옛날 성인의 政事와 가르침이 융성하였던 삼대에는 소학과 태학으로써 교육기관과 교육단계를 나누어, 소학에서는 쇄소응대진퇴의 절도와 예악사어서수의 글을 배우고 태학에서는 궁리정심과 수기치인의 도를 닦게 하였다. , 여덟 살이 되면 소학에 들어가 6節과 6文을 공부하는데,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어릴 적에 절도 있고 올바른 습관을 익히지 않으면 나중에 고치기 힘들므로 먼저 자잘한 기본 행동부터 익히는 것이다. 배움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지 않으면 심원광대한 공부로 들어갈 없으므로 기초학문부터 쌓는 것이다. 應은 어른이 부르면 ‘예’하고 대답하는 것이고 對는 어른이 묻는 말에 구체적으로 답변함을 가리킨다.그리고 소학 과정을 마친 뒤에 열다섯 살부터는 태학에 들어가서 마음을 수양하고 학문의 도리를 닦게 된다. 사물의 궁극적인 이치에까지 도달하는 것이 窮理이고 사물의 이치를 터득함으로써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正心인데, 궁리로 인해 정심이 이루어지므로 궁리는 體가 되고 정심은 用이 된다.궁리정심은 수기치인의 선결요체로서 대학 본문의 八條目 가운데 내적인 格物 致知 誠意 正心에 해당하고, 수기치인은 자신의 몸을 닦아 타인의 사표가 되어 남을 다스리는 것으로 팔조목 가운데 외적인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에 해당한다. 소학과 태학에서 쌓는 학문의 高下를 『주역』의 괘로써 견주면 소축(風天 小畜) 대축(山天 大畜)이라 있다.小畜괘 大象傳을 보면 “風行天上이 小畜이니 君子ㅣ 以하야 懿文德하나니라(바람이 하늘위에 부는 것이 소축이니 군자가 이로써 문덕을 아름답게 하나니라) 하였고, 大畜괘 대상전을 보면 “天在山中이 大畜이니 君子ㅣ 以하야 多識前言往行하야 以畜其德하니니라(하늘이 속에 있는 것이 대축이니 군자가 이로써 전대성현의 말씀과 지난 성인들의 행실을 많이 알아서 덕을 쌓느니라) 하였다.夫以學校之設이 其廣이 如此하고 敎之之術이 其次第節目之詳이 又如此하니 而其所以爲敎는 則又皆本之人君躬行心得之餘ㅣ오 不待求之民生日用彝倫之外라무릇 학교의 베풂이 넓이가 이와 같고 가르치는 방법이 차제(순서) 절목의 자세함이 또한 이와 같으니 가르침을 하는 바는 또한 본래 인군이 몸소 행하고 마음에 얻은 나머지를 근본으로 것이요, 민생이 날로 쓰는 떳떳한 윤리 밖에서 구함을 기다리지 않았다. : , 몸소의 : 떳떳할 이是以로 當世之人이 無不學하고 其學焉者는 無不有以知其性分之所固有와 職分之所當爲 而各俛焉하야 以盡其力하니 此는 古昔盛時에 所以治隆於上하고 俗美於下하야 而非後世之所能及也ㅣ러니 及周之衰하야 賢聖之君이 不作하고 學校之政이 不脩하야 敎化ㅣ 陵夷하고 風俗이 頹敗하니 時則有若孔子之聖이사도 而不得君師之位하사 以行其政敎실새 於是에 獨取先王之法하사 誦而傳之하야 以詔後世하시니 若曲禮少儀內則弟子職諸篇은 固小學之支流餘裔요 而此篇者는 則因小學只成功하야 以著大學之明法하니 外有以極其規模之大하며 而內有以盡其節目之詳者也ㅣ라 三千之徒ㅣ 蓋莫不聞其說이언마는 而曾氏之傳이 獨得其宗일새 於是에 作爲傳議하사 以發其意러시니 及孟子沒而其傳이 泯焉하니 則其書雖存이나 而知者ㅣ 鮮矣라이로써 당세의 사람이 배우지 아니함이 없고 배우는 자가 성분의 진실로 있는 (, ) 직분의 마땅히 하여야 (, ) 알아서 각각 힘써서 힘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는 옛적 성할 때에 써한 다스림은 위에 높고 풍속은 아래에 아름다워서 후세에 능히 미칠 바가 아니었다. 그러더니 주나라의 쇠함에 미쳐서는 어질고 착한 인군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학교의 政事를 닦지 못하여 교화가 점점 쇠퇴해 가고 풍속이 퇴패해지게 되었다. 이때에 공자 같은 성인이 계시기는 하였으나 君師의 位를 얻어서 정사와 가르침을 행하지 못하시므로 이에 홀로 선왕의 법을 취하시고, 외워서 전하여 후세에 가르치시니, 곡례(曲禮), 소의(少儀), 내칙(內則), 제자직(弟子職) 같은 모든 편들은 진실로 『소학』에서 갈려 나와 흐른 나머지 끝이요, 편은 『소학』이 이룬 공으로써 인하여 『대학』의 밝은 법을 나타내었으니, 밖으로는 규모의 큼을 다하고 안으로는 절목의 자세함을 다하였다. 삼천의 무리가 대개 말씀을 듣지 않음이 없었건마는 중에도 증씨의 전함이 홀로 ( : 정통) 얻었기 때문에 이에 傳과 義를 만드시어 뜻을 발하시더니, 맹자가 죽음에 미쳐서는 전함이 없어지니 글이 비록 전하나, 아는 자가 적었다. : 힘쓸 : 무너질 : 상할 : 무너질 : 가르칠 : : 망할 , 빠질 [강의]증자 이후로 맹자가 도를 이어받았다. 증자가 『대학』을 지어서 도를 전하였고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증자한테서 배워 『중용』을 지어 도를 전하였는데, 후에 맹자가 나와서 자사를 私淑하여 도를 이은 것이다.自是以來로 俗儒記誦詞章之習이 其功이 倍於小學而無用하고 異端虛無寂滅之敎ㅣ 其高ㅣ 過於大學而無實하고 其他權謀術數 一切以就功名之說과 與夫百家衆技之流ㅣ 所以惑世誣民하고 充塞仁義者ㅣ 又紛然雜出乎其間하야 使其君子로 不幸而不得聞大道之要하고 其小人으로 不幸而不得蒙至治之澤하야 晦盲否塞하고 反覆沈痼하야 以及五季之衰而壞亂이 極矣라이로부터 속된 선비가 기록하고 외우고 짓고 문장 지음을 익힘이 공이 소학보다 배가 되어도 쓸데없고, 이단(異端) 허무(虛無 : 노자) 적멸(寂滅 : 불교) 가르침이 높이가 대학보다 지나쳐도 실상이 없고, 기타 권모술수의 일체 공명의 말씀에 나아가는 것과 무릇 백가 무리의 기술적인 흐름들이 써한 혹세무민하고 인의를 막는 자가 어지러이 사이에 섞여 나와서, 군자(정치하는 ) 하여금 불행히도 大道의 중요한 것을 얻어 듣지 못하게 하고 소인(백성)으로 하여금 지극히 다스리는 덕택을 얻어 힘입지 못하게 해서 그믐같이 캄캄하고 봉사같이 어둡고 막히고 막혀서 반복하고 고질이 되어 오계(五季 :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 쇠함에 미쳐서는 무너지고 이그러짐이 극도에 달하였다. : 지을 : 문장 : 속일 : 막을 : 막힐 : 고질 : 무너질 괴天運이 循環하사 無往不復일새 宋德이 隆盛하사 治敎ㅣ 休明하시니 於是에 河南程氏兩夫子出하사 而有以接乎孟氏之傳하사 實始尊信此篇而表章之하시며 旣又爲之次其簡編하야 發其歸趣然後에 古者大學敎人之法과 聖經賢傳之指ㅣ 燦然復明於世하니 須以熹之不敏으로도 亦幸私淑而與有聞焉이라하늘의 운이 순환하여 가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게 되어 송나라 덕이 융성하사 다스리고 가르침이 아름답고 밝으시니. 이에 하남 정씨 부자(정명도, 정이천) 나오셔서 맹씨의 전함을 접함이 있으시어 실로 비로소 책을 높이고 믿어서 표장하시고 이미 또한 이를 위하여 차례로 간략히 엮어서 돌아가는 취지를 발한 뒤에야 옛적에 태학에서 사람 가르치는 법과 성경현전의 가르침이 찬연히 다시 세상에 밝게 되었으니, 비록 (朱子) 민첩하지 못함으로써도 다행히 사숙해서 참여하여 들음이 있게 되었다.顧其爲書ㅣ 猶頗放失일새 是以로 忘其固陋하고 采而輯之하며 間亦竊附己意하야 補其闕略하야 以俟後之君子하노니 極知僭踰無所逃罪나 然이나 於國家化民成俗之意와 學者脩己治人之方엔 則未必無小補云이라그 글됨을 돌아보건대 오히려 자못 내쳐 흩어지고 잃어버렸기에 이에 고루함을 망각하고 캐서 모으며 사이에 또한 자신의 뜻을 붙여서 빠지고 간략함을 보충하여 뒤에 오는 군자를 기다리노니, 지극히 참람하고 넘어서 죄를 피할 바가 없음을 알지만 그러나 국가가 백성을 모두 교화시키고 풍속을 아름답게 이루는 뜻과 배우는 자가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에는 반드시 조금 도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 모을 : 그윽할 : 참람할 : 넘을 유淳熙己酉二月甲子에 新安朱熹는 序하노라순희(南宋 孝宗의 연호) 기유년 이월 갑자일에 신안의 주희는 서하노라.

들어가는 말착간고정은 원래 고본대학(古本大學) 편차가 바뀌고 빠진 부분이 있다는 정자(程子) 말씀에 근거하여 편차를 다시 정리하고 새로 글을 지어 빠진 부분을 보충한 주자(朱子)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 비롯되었는데, 주자는 서문에 착간을 바로 잡는 경위를 설명하는 한편, 책을 더욱 정확하게 고정할 있는 ‘군자를 기다린다’(俟後之君子) 했다. 대산 선생의 스승인 야산(也山) 이달(李達) 선생은 『대학장구』를 통해 주자의 착간(錯簡)이니 보궐(補闕)이니 후인을 기다리느니 하는 말에 의거하여 더욱 『대학』을 깊이 연구하게 되고 결국 『대학착간고정』을 편차하였다.『대학』은 大人之學, 대인이 배운다, 사람이 배운다는 뜻이다. 옛날 태학(大學)이라는 학교에서 가르친 글인『대학』은 孔子의 수제자 曾子가 공자의 도를 전하고자 지은 글로서 원래는 禮記에 들어 있었다. 송나라 들어서 이것을 表章하여 독립된 책인『대학』으로 편집되고 程子형제의 손을 거쳐 朱子에 이르러 비로소『대학장구』가 완성되고 『中庸』『孟子』『論語』와 더불어 四書로 인정받게 되었다. 가운데 『대학』과 『중용』은 서로 表裏를 이룬다. 『대학』이 겉이라면 『중용』은 속이고, 『중용』이 겉이라면 『대학』은 속이 된다. 사서삼경을 글자로 압축해 말한다면 『대학』은 ‘착할 善’, 『중용』은 ‘정성 誠’, 『맹자』는 ‘옳을 義’, 『논어』는 ‘어질 仁’으로 말할 있고, 『시경』은 사무사(思無邪 : 생각에 간사함이 없음)로서 ‘바를 正’, 『서경』은 백성을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공경 敬’, 『주역』은 음양불측(陰陽不測 :음과 양으로 헤아리지 못함) ‘귀신 神’이다.『대학』은 () ()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經은 曾子가 孔子의 말씀을 기술한 것이고 傳은 曾子의 견해를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대학』의 핵심은 經에 있고, 진수는 경문 속의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 있다. 강령이 뿌리라면 조목은 가지가 된다.사서 가운데 다른 책들은 때와 장소, 일에 따라 대화나 산문으로 말이 달라지기도 하고 서로 연관이 없는 말이 이어지기도 하지만,『대학』은 삼강령 팔조목을 기본으로 하여 질서정연하게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 경을 體로 하고 전을 用으로 하여 유교 사상의 기본 구조를 밝힘과 동시에 修己治人하는 방법을 합리적으로 가르쳐주는, 사서 가운데 가장 이론적인 책이다. 체계적이고 현실적으로 선후본말을 분명히 하여 설명한『대학』은 시대를 뛰어넘어 모든 이의 필독서인 것이다.『대학착간고정』은 『대학장구』같이 경문 1장과 전문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 체계를 易의 측면에서 본다면 綱目(綱領과 條目) 3절로 이루어진 경문 1장이 본체인 太極(1) 해당하고 전문 10(64) 태극의 조화작용을 갖춘 河圖의 10수에 상응한다.경문의 체계는 하나가 둘을 낳는 법칙, 一生二法의 이치를 따라 삼강령 1절에 이어 先後하는 2절로써 팔조목을 두고 있고, 전문의 1장에서 3장까지는 삼강령의 순서 그대로 明明德, 親民, 至於至善을 차례로 설명한 내용이다.착간고정본 전문은 기본적으로 四時의 운행법도를 따라 4절씩 하나의 문단을 이루는 것이 특색이다. 전문 1장에서 8장까지는 모두 4절로 되어 있으며, 전문 9장은 8절로써 문단을 이루고, 전문 10장은 24절로써 여섯 문단을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문단을 4절씩 놓아 春夏秋冬 四時 法度를 좇은 것이다. 문단에 나타나는 문맥의 전개와 흐름 또한 起承轉結의 가지 형태를 갖추고 있어서, 1절로써 글머리를 삼아 뜻을 흥기시키고(), 2절로써 이어나가 뜻을 모으고(), 3절로써 글을 전환하여 뜻을 수렴하고(), 4절로써 말하려는 긴요한 뜻을 결론짓는()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대학고본의 글자수는 1,753자로서, 주자는 고본 앞부분의 순서를 따라 그대로 장구본의 경문 1장을 삼고 나머지 글의 순서를 고쳐 전문 10장을 구성했다. 장구본의 경문 1장은 205자이고, 전문 10장은 1,548자로서 傳의 글자수는 고본과 같다.착간고정본은 경문 1장이 123자이고, 전문 10장이 1,640자로서 장구본보다 10자가 많은 1,763자이다. 착간고정본 전문 4 格物장의 세번째 절에 “故 自天子以至於庶人”의 ‘故’ 글자와 전문 10 治國平天下장의 마지막 문단 네번째 절에 “此謂平天下在治其國”의 아홉 글자를 보궐하여 덧붙인 결과이다.

經文>정자께서『대학』을 ‘初學入德의 門’으로 말씀하신데 대해 也山 선사께서는 易을 배우는 , ‘學易의 關門’에 해당한다고 하셨다. 七書(四書三經)에서 앞에 자리한 글이『대학』이고, 마지막에 놓인 글이 『주역』으로서,『대학』이 학문의 始條理라면 『주역』은 학문의 終條理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학』의 삼강령과 팔조목의 체계가 易의 원리에 의거한 데에서 나타난다.00-01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는데 있으며 백성을 친애함에(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히 선한 그침에 있느니라右는 三綱領 一節이니라[해설]대학의 도는 대학을 공부하는 방법과 도리를 말한다. 대학으로써 사람이 마땅히 가야 길을 가지로 나누어 말했다. 대학의 도는 첫번째는 하느님께서 주신 밝은 德을 사람이 받고 태어났는데 살다보니 그릇된 욕심과 편벽된 기질에 가려서 밝은 덕이 흐려졌으므로, 흐려진 거울을 닦아 본래의 깨끗한 상태를 되찾듯이 본래의 밝은 덕을 회복하도록 다시 깨끗이 밝히라는 明明德이다.(德은 得也라. 몸으로 체득함을 의미한다. 하늘이 부여한 사람의 성품이란 하늘의 밝음을 받아 본래 밝으므로 明德이다. 明明德의 앞에 놓인 明은 동사로서 밝히다는 뜻인데, 사람이 욕심과 기질에 의해 明德이 가려진 것을 걷어내라는 것이다. 德의 古字가 悳이므로 直心, 마음을 올곧게 하여 나아가는 것이 德이다. 서경 홍범구주의 여섯번째 절목인 三德은 임금이 갖추어야 가지 덕목(正直 剛克 柔克) 말하는데, 여기에서도 정직함이 덕목의 머리가 된다.)이것이 대학의 삼강령, ‘벼리 綱’, ‘옷깃 領’, 그물로 말하면 가장 중요한 벼리가 되는 것이고 옷으로 말하면 가장 중요한 옷깃이 된다고 해서 강령이라고 표현했다. 대학은 大人之學으로서 완성된 인격체인 대인의 경지로 나아가는 공부이다.(옛날 당시에는 小學에서 어린 小子를 가르친 태학에서 나이든 成人(大人) 교육하였으며, 태학에서 가르치던 글이 大學이었다.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대학을 배울 있었으며, 소인일지라도 본성의 착한 성품이 있으므로 누구라도 大學을 통해서 덕에 나아가고 힘써 행하여 大業을 닦을 있기에, 程子는 초학자가 德에 들어가는 문이 대학이라고 하였다. 이에 비해 주자는 대학을 대인지학이라고 정의하는 한편 대인은 成人이므로 어른이 배우는 글이라고 말씀하였는데, 王陽明은 대인지학의 대인을 천지만물로 일체를 삼는 자라 하며 소인과 반대되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일설에는 “大學은 學大인데, 大는 하늘을 가리키므로 하늘의 도를 배우는(學天) 天書가 대학이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대학 경문 머리글의 대학지도는 대인의 학문을 닦는 길을 뜻하며, 문구 안에 들어 있는 道學은 대학이 다름아닌 道學書임을 보여준다. 대인은 天人合德의 지극한 경지에 달한 자로서, 공자께서 대인에 대해 “천지와 덕을 합하며 일월과 밝음을 합하며 사시와 차례를 합하며 귀신과 길흉을 합한다”(夫大人者는 與天地合其德하며 與日月合其明하며 與四時合其序하며 與鬼神合其吉凶이라) 하였다. 학문에 나아가는 방법을 제시한 『대학』의 가지 강령은 자신의 명덕을 밝히고 나아가 인민을 교화하여 모두가 지선한 세상을 이루는 명명덕 신민 지어지선인데, 강령의 순서에 따라 선후본말의 차례와 나아가는 길이 각기 나뉜다. 경문의 三在(在명명덕 在친민 在지어지선) 三才(天才 地才 人才) 비교하여 재명명덕은 天才, 신민은 地才, 지어지선은 人才에 해당한다고 말할 있다. 삼강령의 내용에서 天地人 三才의 도가 삼강령의 바탕임을 미루어 있다. 00-02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는 先治其國하고 欲治其國者는 先齊其家하고 欲齊其家者는 先修其身하고 欲修其身者는 先正其心하고 欲正其心者는 先誠其意하고 欲誠其意者는 先致其知하니 致知는 在格物하니라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이는 먼저 나라를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는 자는 먼저 집을 가지런히 하고, 집을 가지런히 하려는 자는 먼저 몸을 닦고, 몸을 닦으려는 자는 먼저 마음을 바로하고, 마음을 바로하려는 자는 먼저 뜻을 정성스러이 하고, 뜻을 정성스러이 하려는 자는 먼저 앎을 지극히 하였으니, 앎을 지극히 하는 것은 物을 格하는 데에 있느리라格 : ①가지 이를 품격 바로잡을 [해설]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는 옛날 요순 임금이나 문왕, 무왕같이 자신의 밝은 덕을 밝히고 이를 세상에 펼쳐서 새롭게 하였던 성인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명명덕에 바탕하여 신민(新民, 親民)하였던 사례들이다. 이같이 명명덕과 신민이 이루어져서 나와 세상이 같이 밝아지면 가운데 止於至善이 이루어지게 되는 과정을 팔조목으로 설명하였다. 자신의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는 平天下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를 다스리는 治國, 치국을 하려면 먼저 마음을 바로하는 正心, 정심을 하려면 먼저 뜻을 성실히 두는 誠意, 성의를 하려면 앎을 이루는 致知, 치지를 하려면 먼저 사물에 이르는 格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팔조목이라고 하는데,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의 순서로 팔조목의 선후순서가 분명하다. 物로써 本末을 설명하면 天下는 國이 근본이 되고, 國은 家가 근본이 되고, 家는 身이 근본이 되고, 身은 心이 근본이 되고, 心은 意가 근본이 되고, 意는 知가 근본이 되고, 知는 物이 근본이 된다.事로써 始終을 설명한다면 천하를 平하는 시초는 나라를 다스리는 治이고, 治의 시초는 집을 가지런히 하는 齊이고, 齊의 시초는 몸을 닦는 修이고, 몸을 닦는 시초는 마음을 바로하는 正이고, 正의 시초는 뜻을 성실히 하는 誠이고, 誠의 시초는 앎을 이루는 致이고, 致의 시초는 사물에 이르는 格이 된다. 순서대로 언급하면 格은 致의 시초가 되고, 致는 誠의 시초가 되고, 誠은 正의 시초가 되고, 正은 修의 시초가 되고, 修는 齊의 시초가 되고, 齊는 治의 시초가 되고, 治는 平의 시초가 되는 것이다.終則有始의 측면으로 본다면, 正의 점진적 단계를 밟음으로써 내적 과정인 명명덕을 마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외적 과정인 친민(신민) 平이 비롯된다고도 있다.00-03 物格而后에 知至하고 知至而后에 意誠하고 意誠而后에 心正하고 心正而后에 身修하고 身修而后에 家齊하고 家齊而后에 國治하고 國治而后에 天下平이니라物이 格한(와서 이른) 뒤에 앎이 (나에게) 이르고, 앎이 이른 뒤에 뜻이 성실해지고, 뜻이 성실해진 뒤에 마음이 바루어지고, 마음이 바루어진 뒤에 몸이 닦이고, 몸이 닦인 뒤에 집이 가지런해지고, 집이 가지런해진 뒤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 천하가 平하게 되느니라.]右는 八條目 二節이니라右는 經一章이라

傳文>1. 明明德01-01 康誥에 曰克明德이라 하며강고에 가로되 능히 덕을 밝히라 하며康 : 편안할 : 고할 , 알릴 : 능할 , 이길 : 古字는 [해설]康誥는 『서경』의 「周書」에 나오는 편명 하나인데 옛적에 훌륭히 덕을 밝혔던 문왕을 칭송한 글이다. 德은 본래 하늘이 내려주신 성품의 덕을 가리키는데, 선천적인 덕은 “德은 得也라” 자신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고, 후천적인 덕은 “德은 行道而得於心者也라” 도를 행하여 마음에 얻은 것을 이름이다. 글은 武王이 아우인 康叔에게 아버지인 文王의 밝은 덕을 말씀한 글이라 보기도 하고, 어린 임금인 조카 成王에게 周公이 훈계를 하기 위해서 강숙에게 말하는 형식을 빌렸다고 보는 가지 견해가 있다. 글에 “오직 이에 크게 나타나신 아버지 문왕이 능히 덕을 밝히셨으며 형벌 줌을 삼가셨다.(惟乃丕顯考文王이 克明德愼罰하시니라) 하였다.인용된 부분은 원래 『書經』에서 문왕의 史實을 말한 것이지만 여기서는 원전에 구애됨이 없이 引經(경문을 인용함) 입각하여 『大學』 자체로서 通涉(사물에 널리 통한다는 의미)시켜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산 선생의 견해이다.[참조] 德의 한결같음을 一德이라 하고, 三德은 『서경』洪範九疇의 여섯번째 항목으로서 바르고 곧게 하는 正直과 강건하게 다스려 나가는 剛克, 유화적으로 다스려 나가는 柔克을 말하고,五德은 홍범구주의 첫번째 항목인 오행의 덕으로서 水德 火德 木德 金德 土德을 말한다.九德은 『서경』의 고요모(皐陶謨)편에 나오는데, 삼대에 걸쳐 법을 맡았던 賢臣 고요가 사람의 행동에 필요한 덕을 아홉 가지로 예시한 것이다.①너그럽지만 씩씩한 寬而栗부드러워도 주체가 柔而立삼가되 공순한 愿而恭다스리지만 공경하는 亂而敬길들이면서도 굳센 擾而毅곧되 따뜻한 直而溫평탄하지만 모난 절도가 있는 簡而廉강건하면서도 독실한 剛而塞용감하되 의로운 彊而義공자께서 『주역』의「繫辭傳」에 말씀한 九德卦와 관련지어서 구덕을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①예를 굳건히 밟아 和悅한 마음으로 행하는 履의 덕은 덕의 (德之基)②남을 높이고 자신을 가벼이 낮추는 謙의 덕은 덕의 자루(德之柄)③은미하지만 본래의 밝음을 회복하는 復의 덕은 덕의 근본(德之本)④섞여 있지만 천지일월처럼 영구히 짝하는 恒의 덕은 덕의 견고함(德之固)⑤과욕과 허물을 덜어내어 해로움을 멀리하는 損의 덕은 덕의 닦음(德之修)⑥자신에 충실하여 이로움을 일으키는 益의 덕은 덕의 넉넉함(德之裕)⑦곤궁하지만 원망을 적게 해서 난관을 뚫는 困의 덕은 덕의 분별(德之辨)⑧사통팔달하여 맑은 샘물을 두루 옮겨주는 우물() 덕은 덕의 (德之地) ⑨저울눈금을 매기는 저울추처럼 권도를 행하는 巽의 덕은 덕의 지음(德之制)01-02 太甲에 曰顧寔天之明命이라 하며태갑에 가로되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보라 하며顧 : 돌아볼 () : [해설]『書經』의「商書」에 있는 글이다. 『書經』의 편제는 시대적으로 四代의 , 당요(唐堯 : 帝堯의 조정을 陶唐이라 하고, 堯舜兩朝를 唐虞라 ) 우순(虞舜) 역사 기록인 「虞書」, 하우(夏禹) 이래의 하나라의 역사 기록인 「夏書」, 湯임금이 세운 (후에 국호를 殷으로 개명)나라의 역사 기록인 「商書」, 무왕이 세운 주나라의 역사 기록인 「周書」로 되어 있는데, 성군들의 어진 정치가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太甲은 은나라 탕임금을 뒤이은 임금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탕임금을 도와 하나라를 물리치고 상나라를 세웠던 어진 신하 伊尹이 선왕인 탕임금의 훌륭한 덕을 어린 太甲에게 깨우쳐 주고자 지은 글인 『書經』의 편명이다. 태갑편 上에 “선왕(탕임금) 하늘의 밝으신 명을 돌아보시어 천지의 신명을 받드시며, 종묘와 사직을 공경하고 엄숙히 하지 않음이 없으셨습니다.(先王이 顧寔天之明命하사 以承上下神祇하시며 社稷宗廟를 罔不祗肅하신대)라는 이윤의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01-03 帝典에 曰克明峻德이라 하니제전에 이르기를 능히 덕을 밝히라 하니] : [해설]앞의 문구에 뒤이어 요임금의 치적과 덕을 기린 「虞書」의 堯典편에 나오는 인용 문구를 예시하여 덕을 밝혀야 함을 거듭 강조해 말하고 있다. 요전편 머리글에 “옛적 요임금을 상고하건대 덕이 참으로 크게 빛나 온누리에 미친다”(曰若稽古帝堯한대 曰放勳이시니 欽明文思ㅣ 安安하시며 允恭克讓하사 光被四表하시며 格于上下하시니라) 칭송한 다음, 뒤이어 “요임금이 능히 덕을 밝혀 구족을 친화하고 이에 따라 모든 백성들이 빛나고 밝게 되었으며 천하가 고루 화합하게 되었다”(克明峻德하사 以親九族하신대 九族이 旣睦이어늘 平章百姓하신대 百姓이 昭明하며 協和萬邦하신대 黎民이 於變時雍하니라) 하였다.『中庸』에도 “작은 덕은 시내가 끝없이 흘러가는 것과 같고 덕은 두터이 만물을 감화시킨다”(小德은 川流ㅣ오 大德은 敦化라) 하였다. 01-04 皆自明也 ㅣ니라(이『書經』에서 인용한 말들은) 모두 스스로 밝힘이니라.[해설]自는 자신부터 비롯된다는 뜻에서 ‘스스로’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으므로 自明은 밝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뜻과 스스로 밝힌다는 가지 의미를 아울러 지니고 있다. 自明은 『周易』乾卦 大象傳에 공자께서 이른 自彊不息, 스스로 굳건히 해서 쉬지 않고 노력한다는 自彊과 통한다. 끊임없는 하늘의 강건한 운행이 자연 그대로의 이치이듯이 군자 또한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굳건한 의지로써 덕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晉卦 대상전에 “스스로 명덕을 밝힌다”(自昭明德) 自昭와도 같다.덧붙인다면 自明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아서 성인의 도에 나아가고 하늘의 명에 이르고자 함이 人道의 목표이다.『中庸』에 “誠으로 말미암아 밝게 됨을 性이라 이르고 明으로 말미암아 정성스럽게 됨을 敎라 하니, 정성스러우면 밝고 밝히면 정성스럽게 된다”(自誠明을 謂之性이오 自明誠을 謂之敎ㅣ니 誠則明矣요 明則誠矣니라) 하였다.이는 天道의 誠에 의해 밝아진 것이 사람의 , 天命이 되고 성품의 밝음에 바탕하여 하늘의 도를 좇아 정성을 다함이 , 修道가 됨을 말한다. 自誠하여 밝음은 天道이자 성인이 도이고 自明하여 정성을 다함은 수행하는 人道이니, 명덕을 밝히어 天道에 합하면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右는 傳之首章이니 釋明明德하다(四節)(장구본과 착간고정본을 비교해 , 하나의 다른 부분이 없이 완전히 일치하는 유일한 곳이다.)

2. 親民전문 2장을 주자는 新民을 풀이한 것으로 보았지만 야산 선생은 경문의 삼강령에서 말한 親民을 풀이한 내용으로 말하였다.02-01 湯之盤銘에 曰苟日新이어든 日日新하고 又日新이라 하며탕임금의 욕조 새긴 데에 가로되 진실로 날로 새롭거든 나날이 새롭고 날로 새로워라 하며湯 : 사람이름 : 소반 , 대야 : 새길 : 진실로 [해설]은나라를 건국한 탕임금이 스스로 경계하기 위하여 목욕하는 소반(욕조) 새겨놓은 글로서 일종의 自警文이다. 자신부터 모범이 되어야 백성을 올바르게 이끌 있으므로, 목욕을 해서 몸의 더러운 때를 벗기듯이 항시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려고 탕임금이 욕조에 글을 새겨 놓은 것이다.日新은 날로 새롭다는 뜻인데, 日日新 又日新으로 나날이 새로워지면 자연히 덕이 성대하게 된다. 『周易』의 「繫辭傳」에 ‘日新之謂盛德’이라 하고, 크게 쌓음을 나타내는 山天大畜괘의 彖傳에도 날로 덕을 새롭게 하라는 ‘日新其德’을 말하였다. 親民의 근본은 修身인데, 日日新 又日新으로 덕을 꾸준히 쌓아 가야만 수신이 되고 나아가서는 新民도 이루게 된다. 02-02 詩曰 周雖舊邦이나 其命維新이라 하며시경에 이르기를 “주나라가 비록 나라이나 명이 오직 새롭다”하니雖 : 비록 : : 나라 : 오직 [해설]주나라가 비록 오랜 제후국이지만 덕이 면면히 계승된 데다가 문왕의 지극한 덕화에 힘입어, 마침내 하늘의 새로운 명을 얻고 천자의 나라가 되었다는 『詩經』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詩經』「대아」문왕편 : “문왕께서 위에 계시어 하늘에서 빛나시니 주나라가 비록 옛나라이지만 명이 오직 새롭도다. 주나라에 나타나지 않느냐. 상제의 명이 아니랴! 문왕께서 하늘에 오르고 땅으로 내리시는 것은 상제의 좌우에 계시기 때문이니라”(文王在上하사 於所于天하시니 周雖舊邦이나 其命維新이로다 有周不顯가 帝命不時가 文王陟降이 在帝左右시니라) 02-03 康誥에 曰作新民이라 하니강고에 이르기를 “새로운 백성을 일으키라”하니作 : 일으킬 [해설] 구절은 자신의 성한 덕을 백성에게 베풀어 새로운 백성이 되도록 하라는 뜻으로 자신을 새롭게 연후에는 백성을 새롭게 하라는 말이다. 글은 周公이 동생 康叔에게 은나라 유민을 다스리는 중책을 맡기면서 당부한 말로 다음과 같다. “너(강숙) 일은 오직 왕의 덕을 크게 해서 은나라 백성을 화응하고 보전케 하며, 또한 오직 왕을 도와 천명을 편안히 해서 백성을 일으켜 새롭게 할지니라”(乃服은 惟弘王하야 應保殷民하며 亦惟助王하야 宅天命하야 作新民이니라). 폭군이었던 은나라 주왕 밑에서 오염되고 타락한 백성들이 새롭게 되도록 고무진작하라는 말씀이다.야산 선생은 전체적인 문장의 흐름과 기법에서 구절에는 은의 탕임금, 다음에는 주의 문왕, 마지막에는 문왕의 아들인 강숙에 대한 내용을 두어 자연스럽게 배열했다.02-04 是故로 君子는 無所不用其極이니라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극을 쓰지 않는 바가 없느니라.[해설]군자는 자신의 명덕을 밝힌 뒤에 밝은 덕을 극진히 천하 백성에까지 베풀어 밝게 만든다. 그러므로 ‘其極’의 ‘其’는 1장의 명덕을 가리키는 뜻으로 있다. 본성인 명덕이 虛靈不昧(마음에 잡념이 없고 영묘하여 어둡지 않다는 뜻으로 ‘天性의 덕이 밝음’을 이르는 말이다)하여 이치를 갖추고 있으므로 만사에 두루 응하는 것이다.『書經』洪範에 “뭇 서민들이 음탕한 붕당을 두지 않으며, 사람들이 사사로이 더불지 않음은 오직 帝가 극을 세워 극진히 하기 때문이다”(凡厥庶民이 無有淫朋하며 人無有比德은 惟皇이 作極일새니라) 하였으니, 이는 황극의 도에 의한 지극한 작용[作極]이다. 作新民과 不用其極의 作과 極은 홍범의 作極에서 기인한 듯하다. 오행론의 근간인 홍범이『大學』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이 나타난다.右는 傳之二章이니 釋親民하다(四節)

3. 止於至善『周易』의 艮卦에 止를 ‘時止則止’(그쳐야 때는 그침)라고 하였다. 이것은 어떤 하나에만 매달려 고집불통으로 집착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動靜不失其時’ 동정에서 때를 잃지 않고 바르게 대처하고 이에 머무름을 뜻한다. 그러므로 ‘時止則止’하지 못하면 ‘時行則行’(행할 때는 행함) 없는 것이다. 3 지어지선편에서는 지어지선을 일지(一止 : ) 해서 用인 오지(五止) 설명하고 있다. 03-01 詩云 緡蠻黃鳥여 止于丘隅라 하야늘 子ㅣ曰 於止에 知其所止로소니 可以人而不如鳥乎아『詩經』에 이르기를 “지저귀는 꾀꼬리여! 언덕 기슭에 그친다”하거늘,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그침에 그칠 곳을 알고 있으니 가히 사람으로서 새만 같지 못하랴!”緡 : 새소리 . 원문에는 綿( )으로 되어 있다. : 새소리 : 모퉁이 [해설] 구절은 본래 『詩經』의 「小雅」면만편으로, 멀리 사신으로 떠나는 신하에게 전별하는 연회를 베풀자, 꾀꼬리가 처소를 벗어나지 않음에 빗대어 신하로서 맡은 소임과 사명을 다하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시로 읊은 것이다. 꾀꼬리 같은 미물조차 스스로 그쳐야 곳을 알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마땅히 그쳐야 至善이 있음을 몰라서는 된다는 공자의 말씀이다.03-02 詩云 邦畿千里여 惟民所止라 하니라『詩經』에 이르기를 “나라 서울 천리여! 오직 백성이 그칠 바라” 하니라. : 서울 [해설] 구절은 은나라를 중흥하였던 武丁의 덕화를 칭송한『詩經』「商頌」玄鳥편의 시구를 인용한 것이다. 邦畿千里는 천자의 밝은 덕이 직접 미치는 경내[畿內 사방천리] 가리키고, 惟民所止는 천자가 다스리는 경내가 至善하므로 백성들이 떠나지 않고 머물러 살아감을 말한다. 03-03 詩云 穆穆文王이여 於緝熙敬止라 하니 爲人君엔 止於仁하시고 爲人臣엔 止於敬하시고 爲人子엔 止於孝하시고 爲人父엔 止於慈하시고 與國人交엔 止於信이러시다『詩經』에 이르기를, 목목한(심원한 덕을 갖춘) 문왕이시여. ! 계속해서 밝히고 공경해서 그친다 하니, 인군이 되어서는 仁에 그치시고 신하가 되어서는 敬에 그치시고 남의 아비가 되어서는 慈에 그치시고 나라 사람과 더불어 사귀는 데는 信에 그치셨도다. : 깊을 :감탄할 : 이을 [해설] 시는 『詩經』문왕편의 구절로 문왕의 五止 그리고 국민과의 관계에서 止於仁 止於敬 止於孝 止於慈 止於信을 설명한 내용으로 止於至善의 구체적인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周易』의 家人괘 彖傳에 공자가 이른 “父父子子兄兄弟弟夫夫婦婦而家道正”,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형은 형답고 아우는 아우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아내는 아내다워야 집안의 도가 바르게 된다는 내용과 통하는 얘기다. 『중용』에도 천하에 두루 통하는 도를 君臣父子夫婦昆弟朋友의 사귐,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五達道라고 한다. 여기서는 民에 대한 문왕의 至善을 다섯 가지(五止) 설명하고 있다.맹자가 다섯 가지 인륜법도인 五倫,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을 말씀한 것도 止於至善을 강조한 것이다.03-04 詩云 於戱라 前王不忘이라 하니 君子는 賢其賢而親其親하고 小人은 樂其樂而利其利하나니 此以沒世不忘也ㅣ니라『詩經』에 이르기를 “아아! 앞선 가신 임금을 잊을 없구나” 하니, 군자는 어진 바를 어질게 하고 친한 바를 친하게 여기며, 소인은 즐거운 바를 즐겁게 여기고 이로운 바를 이롭게 여기니, 때문에 세상에 없어도 잊을 없는 것이니라. : 감탄사로 쓰일 때는 ‘오’라고 읽는다. : 감탄할 (감탄사) [해설]『詩經』「周頌」烈文편을 인용한 문구는 주나라를 세우고 善政을 행한 문왕과 무왕을 예찬한 글이다. 여기의 군자는 벼슬하는 사람이고 소인은 일반 백성이다. 군자는 어질게 여기고 친애하는 바가 있으므로 賢親으로 말하고 소인은 즐거워하고 이롭게 여기는 바가 있으므로 樂利로써 말하였다. 전왕들이 행하였던 그대로 군자는 賢賢과 親親에 그치고, 소인은 樂樂과 利利에 그치므로 구절이 지어지선에 해당하는 것이다. 右는 傳之三章이니 釋止於至善하다(四節)

4. 格物주자의 경우는 격물장 대신 本末章을 두었다. 무릇 격물의 物은 밖으로부터 나에게 것이고, 物이 格하여 앎에 이르는 이른바 物格知至는 마음과 뜻이 바른가와 정성을 다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을 뿐이다. 身이란 가지 일에 있어서 근본[] 되고, 物이란 몸에 근본해서 알게 되는 []이니, 만약 자신의 몸을 닦지 아니하면 안으로는 마음과 뜻이 주장하는 바가 없게 되고 밖으로는 집이나 나라, 천하도 말미암을 바가 없게 된다.이렇듯 내가 밖으로 인식하는 대상인 物은 外末에 해당하고 이를 인식하는 주체인 자신[] 內本에 해당하는 까닭에, 격물장의 내용이 本末을 위주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대개 格은 致의 근본이고 致는 誠의 근본이 되는데, 몸에 이르러서야 근본이 세워지므로 야산 선생은 身外无物( 밖에 물건이 없음)이라고 말씀하셨다. 04-01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면 則近道矣리라물건에는 본과 말이 있고 일에는 종과 시가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바를 알면 (대학의 , 사람이 지켜야 ) 가까우니라.][해설] 절목은 『論語』의 本立而道生(근본이 세워져야 도가 생김) 상통하는 글이다. 04-02 其本이 亂而末治者ㅣ 否矣며 其所厚者에 薄이오 而其所薄者에 厚하리 未之有也ㅣ니라그 本이 어지럽고서 末이 다스려지는 것은 없으며, 후해야 바에 박하고서 박해야 바에 후하게 이는 있지 않느니라. : 두터울 : 얇을 [해설]“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면 則近道矣리라” 하였듯이 근본 자체가 어지러우면서 끄트머리에 가서 다스릴 사람이 있을 없고, 정작 후덕하게 대하여야 곳에 박정하게 대하는 사람이 정작 박정하게 곳에 가서 후덕하게 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수신이 되지 못하면서 제가를 어찌하며, 나아가 치국과 평천하를 수는 더더욱 없다.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웃 어른들을 공경할 있겠는가!04-03 故로 自天子以至於庶人히 壹是皆以修身爲本이니라그러므로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모두 修身으로 근본을 삼느니라.04-04 此謂物格이니라이 이르되 물이 격함이니라이 절목은 야산 선생이 정자와 주자가 衍文이라고 ‘此謂知本’을 ‘此謂物格’으로 고쳐서 격물장의 끝에다 갖다놓은 것이다.右는 傳之四章이니 釋格物하다(四節)

5. 致知05-01 知止而后에 有定이니 定而后에 能靜하며 靜而后에 能安하며 安而后에 能慮하며 慮而后에 能得이니라그칠 줄을 뒤에 정함(일정함) 있으니 정한 뒤에 능히 고요하며(방황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음),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며, 편안한 뒤에 능히 생각(순수하고 진실한 생각)하며, 생각한 뒤에 능히 얻느니라.[해설]여기서 얻는다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바르게 터득하여 체득하는 得知를 가리킨다. 그칠 줄을 알아야 곳으로 마음이 정해지고, 마음을 일정한 곳에 몰입하면, 자연 고요해져 나아가 편안해진다. 그렇게 되면 자연 사려 깊게 생각할 있어서 마침내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체득하게 된다.이렇게 知止有定能靜能安能慮能得의 여섯 절차를 밟는 가운데, 바른 생각이 것이고 바른 생각 속에는 모든 이치가 들어 있으므로 사람의 행동 규범이 여기에서 얻어지는 것이다.『周易』의 重山艮은 산이 중첩된 괘상으로 후중이 제자리에 그치는 괘이다. 위의 여섯 단계를 艮卦 여섯효의 六止에 비유하면, 知止는 初六의 艮其趾(발꿈치에 그침), 有定은 六二의 艮其腓(장딴지에 그침), 能靜은 九三의 艮其限(허리에 그침), 能安은 六四의 艮其身( 또는 마음에 그침),能慮는 六五의 艮其輔(볼에 그침), 能得은 上九의 敦艮(돈독히 그침) 해당한다.“艮은 止也”, 여섯효가 六止인데 여기에 들어맞는다.이렇게 여섯 가지는 儒家에서 하는 觀공부의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佛家에서 수행하는 禪공부와도 통하는 얘기이다. 발을 대고 앉아(), 거기서 몸을 안정시켜서(), 정신이 고요해지고(), 심신이 편안해지면서(), 맑은 가운데에서 올바르고 참된 생각이 나서(), 마침내 세상의 진리를 깨우치는() 것이다.세상을 經綸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자세가 요구되는데『周易』繫辭下傳 5장에서 공자는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君子ㅣ 安其身而後애아 動하며 易其心而後애아 語하며 定其交而後애아 求하나니 君子ㅣ 脩此三者故로 全也하나니 危以動하면 則民不與也코 懼以語하면 則民不應也코 无交而求하면 則民不與也하나니 莫之與하면 則傷之者ㅣ 至矣나니 易曰 莫益之라 或擊之리니 立心勿恒이니 凶이라 하니라”(군자가 몸을 편안히 뒤에야 움직이며, 마음을 편안하게 뒤에야 말하며, 사귐을 정한 뒤에야 구하나니 군자가 셋을 닦는 까닭에 온전하나니, 위태함으로써 움직이면 백성이 더불지 아니하고, 두려움으로써(두려워하면서) 말하면 백성이 응하지 아니하고, 사귐이 없이 구하면 백성이 주지 않나니, 주는 이가 없으면 상하게 하는 자가 이르나니 역에 말하기를 ‘더하지 마라 치리니 마음을 세워 항상하지 못하니 흉하다’라고 하니라.) 하였다. 05-02 詩云 瞻彼淇澳한대 菉竹猗猗로다 有斐君子여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라 瑟兮僩兮며 赫兮喧兮니 有斐君子여 終不可諠兮라 하니 如切如磋者는 道學也ㅣ오 如琢如磨者는 自修也ㅣ오 瑟兮僩兮者는 恂慄也ㅣ오 赫兮喧兮者는 威儀也ㅣ오 有斐君子終不可諠兮者는 道盛德至善을 民之不能忘也ㅣ니라『詩經』에 이르기를 “저 淇水의 굽이진 곳을 바라보니 푸른 대숲 무성하구나! 문채나는 군자여. 자르는 닦는 듯하며 쪼는 가는 듯하도다. 엄숙하고 꿋꿋하심이여 훤하고 뚜렷하심이여. 문채나는 군자여! 끝내 잊지 못하리라!”하니, 여절여차란 배움을 말한 것이고, 여탁여마란 스스로 닦는 것을 말하고, 슬혜한혜란 조심스러운 것이고, 혁혜훤혜란 위엄 있는 모습이고, 유비군자종불가훤혜란 성덕과 지선을 백성들이 잊을 없음을 말한 것이다. : : 물이름 : 굽이질 : 푸를 : 아름다울 , 성할 : 문채날 : 닦을 : 쪼을 : : 비파 , 엄숙할 : 굳셀 : 빛날 : 성대할 : 두려할 : 두려울 : 잊을 [해설]기수 굽이진 언덕 위에 푸른 대나무가 무성한 정경을 보고 시를 흥기하여, 절차탁마해서 학문을 닦고 위엄있는 덕용을 갖춘 군자의 아름다운 풍모를 기리고 이러한 군자의 盛德과 至善을 백성이 항시 잊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본래 시는 『詩經』위나라 「風」淇澳편에서 인용한 것으로 衛나라 武公이 나이 90 넘어서도 학덕을 닦는데 게을리하지 않았으므로 위나라 사람들이 덕을 칭송하여 읊은 시이다.군자의 학문은 격물에 바탕한 치지의 功效를 나타냄으로써 이루어진다. 본문에서 切磋는 학문을 말하고(道學), 琢磨는 스스로 닦음(自修)라고 하였다. 배우고 익혀서 자신의 덕을 닦는 것이 절차탁마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근본을 아는 것이므로 군자는 스스로의 학문과 덕을 쌓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周易』乾卦 文言傳 九二에 이른 學以聚之(배워서 모음) 問以辨之(물어서 분별함) 학문함을 말하는 것이고, 寬以居之(너그러움으로써 거처함) 仁以行之(어짊으로써 행동함) 自修를 말한 것이다. 『論語』에 공자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하나마나이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하고 思而不學則殆니라) 하였으니, 학문을 쌓고 몸을 닦는데 끊임없이 절차탁마하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절차탁마를 하여 학문과 덕이 쌓이면 내면에는 엄숙하고 근엄한 기상(恂慄) 있고 외면으로는 위엄있는 거동(威儀) 하여, 빛나는 군자로서의 인품과 풍모를 완전히 갖추게 된다. 여기서 말한 군자의 盛德至善은 학문에 근본하여 덕을 쌓은 군자가 덕을 성대히 밝혀서(明明德) 지선한 세상을 이룬 공업(止於至善) 이르며, 이를 백성들이 잊지 않고 추모함은 군자가 백성과 더불어 친하였기 때문이다. 절목에 삼강령에 대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05-03 子ㅣ曰 聽訟이 吾猶人也ㅣ나 必也使無訟乎저하시니 無情者ㅣ 不得盡其辭는 大畏民志니 此謂知本이니라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송사 들음이 내가 남들과 같으나 반드시 하여금 송사가 없게 할진저! 하시니, 실지(實情, 참된 마음) 없는 자가 말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크게 백성의 뜻을 두렵게 때문이니 이것이 이르되 근본을 앎이니라. : 들을 : 송사 : 같을 使 : 하여금 : 말씀 [해설] 글은 『論語』顔淵편에 나오는데, 공자의 제자로서 용감하고 판단력이 강했던 子路를 공자가 칭찬한 뒤에 말씀이다. “片言에 可以折獄者는 其由也與인저!, 죄지은 사람이나 시비하는 사람의말을 반쯤 듣고서도 송사를 판단할 있는 능력은 제자 자로라고 하시며, “나도 송사를 듣고서 판단할 있는 능력은 남과 같지만(聽訟 吾猶人也) 남들은 대개 송사가 벌어진 뒤에 판단하느라고 애쓰지만 나는 아예 송사 자체가 없게 만들겠다”(必也使無訟乎) 하셨다. 애당초부터 근본적인 치유 방법을 알아서 대처하겠다는 말씀이다.송사를 듣는 이는 공정무사하게 시비곡절을 판단하며, 송사의 본말종시를 분명히 하여 선후를 가릴 있는 지혜로운 자라야 한다. 그래서 여기 문장에서도 此謂知本을 언급하고 있다.『論語』季氏편에 공자가 군자의 畏를 말씀하시기를, “군자에게 삼외가 있으니, 천명을 두려워하며 대인을 두려워하며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한다”(君子有三畏하니 畏天命하며 畏大人하며 畏聖人之言이니라) 하였는데, 이것은 사람은 마땅히 두려워할 줄을 알아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여기 본문에 애당초 송사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련다는 공자의 말씀도 근본을 알아서 처음부터 다스려야, 백성이 송사하려는 허탄한 마음을 감히 갖지 않고 쉽게 따르게 된다는 말씀이다.모름지기 송사란 끝까지 나아가면 흉하고 길게 끌지 않으면 길한 법이므로 『周易』訟卦의 初六 象辭에 ‘訟不可長也’(송사는 길게 끌어서는 안된다) 하였고 大象에 ‘作事謀始’(일을 일으킴에 처음을 도모하여 계획을 세움)라고 하여 시작부터 일을 꾀하여야 함을 말하였다.『論語』公冶長편에 공자가 “하는 없구나! 나는 능히 자기의 허물을 보고 안으로 자신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已矣乎인저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케라) 탄식하시며, 사람이 허물이 있으되 허물을 아는 자가 드물고 허물을 알고서 스스로 시비판단을 하는 자가 더욱 보기 어려움을 슬퍼하였는데, 또한 知本의 어려움을 말씀한 것이다.05-04 此謂知之至也ㅣ니라이 이르되 앎이 이르는 것이다.右는 傳之五章이니 釋致知하다(四節)

6. 誠意06-01 所謂誠其意者는 毋自欺也ㅣ니 如惡惡臭하며 如好好色이 此之謂自謙이니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ㅣ니라이른바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 악한 내음을 미워하는 것같이 하며 좋은 빛을 좋아하는 것같이 함이 이르되 스스로 쾌족함이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를 삼가니라. : : 속일 : 미워할 , 악할 : 냄새 : 쾌족할 : 삼갈 [해설]여기서‘毋自欺也’라 이른 것은 정직함을 뜻하므로 내용이 본래는 致知에 관계된다. 공자가 자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함이 바로 아는 것이다”(『論語』爲政편 : 子ㅣ曰 由아 誨女知之乎 知之謂知之오 不知謂不知ㅣ 是知也ㅣ니라) 하셨으니, 사물에 곧바로 나아가서 이치를 왜곡하지 않고 정직하게 임함이 知에 이르는 첩경이다. 치지장 다음인 성의장 머리글에 속임 없음을 말한 것은 정직한 뒤에야 앎에 이르러 성실할 있기 때문이다.홀로 있을 때조차 자신의 뜻을 삼가 부끄러움이 없다면 누구에게나 어느 때이든 성실할 것이므로, 誠意에 愼獨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必愼其獨으로 문장을 끝맺어 강조하였다. 『中庸』에도 “네가 집에 있음을 보건대 은벽한 구석방에서도 부끄러움이 없구나”(33, 詩云相在爾室혼대 尙不愧于屋漏ㅣ라 하니 故로 君子는 不動而敬하며 不言而信이니라)라는 『詩經』구절을 인용하여, 군자가 신독하여 어느 때이든 항시 언동을 조심하고 삼감을 강조하였다.善을 좋아하고 惡을 미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먼저 선악의 분기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격물치지 다음에 성의장이 놓인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致知로 好善하고 오악(惡惡)함을 알게 되면 마땅히 호선에 대하여는 好色같이 하고 오악에 대하여는 악취같이 하며, 남이 보지 못하는 자기 자신의 내부부터 해결할 있는 誠意(謹獨, 愼獨) 가져야 한다. 如惡惡臭 如好好色은 외적이고 愼其獨은 내적이니, 안으로 僞善없는 愼其獨을 하고 밖으로 선악사정(善惡邪正) 호오취사(好惡取捨) 성의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大學』의 성의장 1절과 2절에 신독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中庸』제1장에도 똑같이 신독을 언급하여(道也者는 不可須臾離也ㅣ니 可離면 非道也ㅣ라 是故로 君子는 戒愼乎其所不睹하며 恐懼乎其所不聞이니라. 莫見乎隱이며 莫顯乎微니 故로 君子는 愼其獨也ㅣ니라) 모두 성의를 중시하고 있다.『中庸』과『大學』이 서로 內外表裏를 이루는 것과 자사가 『中庸』을 지어 증자의 학맥을 이은 것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愼獨과 관련된 내용이다.06-02 小人이 閒居에 爲不善호대 無所不至하다가 見君子而后에 厭然其不善하고 而著其善하나니 人之視己ㅣ 如見其肺肝이니 然則何益矣리오 此謂誠於中이면 形於外니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ㅣ니라소인이 한가하게 있을 때에 불선을 행함이 이르지 아니하는 바가 없다가 군자를 보고 뒤에 슬며시 불선을 가리고 선을 드러내지만, 남들이 자기를 알아봄이 마치 나의 폐장과 간장을 보는 듯할 것이니 그렇다면 어찌 유익하겠는가. 이를 일컬어 ‘속마음에 성실하면 밖으로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니, 때문에 군자는 반드시 홀로를 삼가니라. : 한가할 : 숨길 , 싫을 , 빠질 : 가릴 : [해설]앞의 1절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군자의 예이고 2절은 자신을 속이는 소인의 예가 되니, 군자와 소인을 대비하여 愼獨이 성의의 요체임을 강조했다. 군자가 자신의 덕을 닦는 정성을 다하고 나몰래 선을 지극히 행하는 반면, 소인은 자신이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므로 거짓 착한 체하고 온갖 허물을 짓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인이 속이려해도 자연 불선한 속마음의 기미가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어서 마치 남이 자기를 보는 것이 폐와 간을 들여다봄과 같다. 하물며 군자를 속이기는 더욱 불가능한 노릇이므로 조금도 유익할 바가 없다.모름지기 군자는 뜻을 정성스러이 뿐이나 또한 난초의 향기가 퍼지듯 속마음의 성실함이 세상에 알려져 절로 유이함이 있고 소인은 남을 속이고자 하나 거짓된 위선이 훤히 세상에 드러나 반드시 손해봄이 있다. 『中庸』에도 “군자의 도는 어두운 듯하나 나날이 빛나고 소인의 도는 환한 듯하나 나날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中庸』제33 : 詩曰衣錦尙絅(의금상경 혹은 의금경의, 衣錦褧衣 : 화려함을 피하고자 비단옷 위에 홑옷을 걸침. 군자는 미덕이 있어도 이를 내세우지 않음을 비유)이라 하니 惡其文之著也ㅣ라 故로 君子之道는 闇然而日章하고 小人之道는 的然而日亡하나니 君子之道는 淡而不厭하며 簡而文하며 溫而理니 知遠之近하며 知風之自하며 知微之顯이면 可與入德矣리라.) 06-03 康誥에 如保赤子라 하니 心誠求之면 雖不中이나 不遠矣니 未有學養子而后에 嫁者也ㅣ니라강고에 이르기를 “갓난아이를 보살피듯 하라”하니, 마음으로 정성껏 구한다면 비록 ( 들어맞음) 아니더라도 중과 멀지 아니하니, 자식 기르는 것을 배운 뒤에 시집가는 자가 있지 않느니라. : 시집갈 [해설]아기 낳아 기르는 법을 배우고 나서 시집가는 이가 없음을 말한 것은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성심을 다하면 비록 도에 합일하지는 못할지라도 또한 중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강조한 것이다.팔조목에서 “앎이 이른 뒤에 뜻이 성실하게 된다”(知至而后 意誠) 하였으나, 앎이 이른다는 것은 生知安行(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행함) 성인이 아니고서는 참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至誠如神’(『中庸』제24 : 至誠之道는 可以前知니 國家將興에 必有禎祥(정상 : 상서, 길조)하며 國家將亡에 必有妖孼(요얼 : 재앙, 재앙의 조짐)하야 見乎蓍龜(시귀 : 쓰는 시초와 거북껍질로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점을 친다는 의미)하며 動乎四體라 禍福將至에 善을 必先知之하며 不善을 必先知之니 故로 至誠은 如神이니라)이라고 하였듯이 至誠이면 感天이므로, 절목에다 누구나 성심으로 행하면 도가 멀지 않음을 밝혀서 사람들을 쉽게 인도하고자 것이다. 그래서 『中庸』에 “지성에는 미치나 다음은 곡진함에 있다. 곡진하면 정성되고, 정성되면 형상되고 형상되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밝아지고 밝으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고 변하면 화한다”고 하였다.(『中庸』제23 : 其次는 致曲이니 曲能有誠이니 誠則形하고 形則著하고 著則明하고 明則動하고 動則變하고 變則化ㅣ니 唯天下至誠이아 爲能化ㅣ니라.)06-04 富潤屋이오 德潤身이라 心廣體胖하나니 故로 君子는 必誠其意니라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함이라. 마음이 넓고 몸은 살지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뜻을 성실히 하나니라. : 윤택할 : 살질 [해설]집이 윤택하려면 부하여야 하고 몸이 윤택하려면 덕이 있어야 하듯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항시 편안하여 심신이 윤택하게 됨이 誠意 여부에 달려 있음을 설명한 것인데, 이러한 심광체반의 덕을 지극히 체득하면 德業을 함께 이루어 천하를 평치할 있다. 예로 순임금은 지극한 정성으로 비단 자신의 윤택함만이 아니라 나아가 천하를 윤택하게 하였으므로 성인의 덕과 천자의 존귀함과 천하의 부를 함께 누렸다.그래서 『中庸』에도 “대덕은 반드시 지위를 얻으며, 반드시 녹을 얻으며, 반드시 천명을 얻으며, 반드시 수명을 누린다”하고, “하늘이 보우하시고 거듭 명이 이르니, 대덕은 반드시 천명을 받는다”고 하였다.(『中庸』제17 : 子ㅣ曰 舜은 其大孝也與신저 德爲聖人이시고 尊爲天子ㅣ시고 富有四海之內하사 宗廟饗之하시며 子孫保之하시니라. 故로 大德은 必得其位하며 必得其祿하며 必得其名하며 必得其壽니라. / 詩曰 嘉樂君子의 憲憲令德이 宜民宜人이라. 受祿于天이어늘 保佑命之하시고 自天申之라 하니라. 故로 大德者는 必受命이니라.] 右는 傳之六章이니 釋誠意하다(四節)

7. 正心修身07-01 所謂修身이 在正其心者는 身이 有所忿則不得其正하고 有所恐懼則不得其正하고 有所好樂則不得其正하고 有所憂患則不得其正이니라이른바 몸을 닦는 것이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고 하는 것은, 몸이 분하고 노여워하는 바가 있으면 ( 마음의) 바른 것을 얻지 못하고, 몸이 두려워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바른 것을 얻지 못하고, 몸에 좋아하고 즐겨하는 바가 있으면 바른 것을 얻지 못하고, 몸에 근심하고 걱정하는 바가 있으면 바른 것을 얻지 못하게 되느니라.忿 : 성낼 : 성낼 : 두려울 : 두려울 : 좋아할 [해설]몸을 닦았는가의 여부는 마음의 작용이 밖으로 표현된 바를 보면 있다. 절에 언급된 忿 恐懼 好樂 憂患은 본래 마음의 작용을 말씀한 것인데, 누구나 마음의 작용이 없을 없으나 스스로 삼가 살피지 않으면 마음이 평정을 잃고 사사로움에 치우쳐서 바름을 잃게 된다.공자께서 九德卦를 설명한『周易』繫辭傳에“덜어냄은 덕의 닦음이다”(損은 德之修也ㅣ라) 하고 損卦 大象에도‘懲忿窒欲’(분노를 참고 욕심을 막음)이라 말씀하신대로, 절도에 맞게 항시 마음을 발현하면 도를 벗어나지 않아서 바른 길로 나아가게 된다. 마음을 바루어 몸을 닦는 것이다.『中庸』首長에 “희노애락이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때를 中이라 하고 이를 발표하되 모두 절도에 맞음을 和라고 이르니 中은 천하의 근본이고 和는 천하에 통용되는 길이다”(喜怒哀樂之未發을 謂之中이오 發而皆中節을 謂之和니 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ㅣ오 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ㅣ니라) 하였으니, 절의 正心修身에 대한 내용이 『中庸』의 和에 상응한다고 있다.07-02 曾子ㅣ 十目所視며 十手所指니 其嚴乎인저증자 이르시기를 “열 눈이 보는 바이며 손이 가리키는 바이니 엄하구나”라고 하셨다. 절목은 『大學』에서 증자의 말씀을 인용한 유일한 구절로서, 『大學』이 증자에 의한 소작임을 믿게 하는 곳이다. 자신이 행하는 바를 주변의 모든 이들이 주목하고 지적하는 바가 준엄하여 속일 없기에, 마땅히 마음가짐을 바로해서 몸을 닦아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論語』에도 증자가 “내가 매일 가지로 몸을 살피니, 남을 위해 도모함에 마음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을 사귐에 미덥지 못한가? 전하신 가르침을 익히지 않았는가?(學而편 : 曾子ㅣ 曰吾日三省吾身하노니 爲人謀而不忠乎아 與朋友交而不信乎아 傳不習乎아니라)라고 말씀하셨다.07-03 心不在焉이면 視而不見하며 聽而不聞하며 食而不知其味니라마음에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며, 먹어도 맛을 알지 못하느니라.[해설] 절목은 一身의 주인이 마음이며 마음의 안주할 바가 몸임을 강조하였다. 사람이 五根인 身에 의한 五感(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함) 작용으로 살아가나 항시 마음으로 살피지 않으면 몸을 주재할 바가 없게 되어, 도에 밝지 못하고 또한 도를 행할 없게 되는 것이다.그러므로 『中庸』에도 “사람들이 음식을 먹지 않음이 없건마는 능히 맛을 아는 이가 드물다”(4 : 人莫不飮食也ㅣ언마는 鮮能知味也ㅣ니라) 하였으며, 『陰符經』에도 “마음이 물건에서 생겨나서 물건에서 죽으니 기틀이 눈에 있다”(하편 : 心生于物하고 死于物하나니 機在於目이니라) 하였다.07-04 此謂修身이 在正其心이니라이는 이르되 몸을 닦음이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음이니라.]마지막 절의 앞머리에 있는 ‘此謂’는 앞의 문장을 이끌어 결론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도출 문구로서, 1 앞머리의 ‘所謂’가 문장을 일으켜 세우는 도입 문구인 것과 서로 반대된다.右는 傳之七章이니 釋正心修身하다(四節)

8. 修身齊家08-01 所謂齊其家ㅣ在修其身者는 人이 之其所親愛而辟焉하며 之其所賤惡而辟焉하며 之其所畏敬而辟焉하며 之其所哀矜而辟焉하며 之其所敖惰而辟焉하나니 故로 好而知其惡하며 惡而知其美者ㅣ 天下에 鮮矣니라이른바 집을 가지런히 함이 몸을 닦는데 있다는 것은, 사람이 친애하는 바에 치우치며, 천히 여기고 미워하는 바에 치우치며,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바에 치우치며,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바에 치우치며, 거만하고 게으른 바에 치우치나니, 그러므로 좋아해도 악함을 알며, 미워해도 아름다움을 아는 자가 천하에 드무니라. : 치우칠 : 불쌍히 여길 : 거만할 : 게으를 [해설]본문에 나오는 之자를 鄭玄은 ‘갈 지’로 보고 辟자를 ‘비유할 ()’로 보아 ‘비유할 ()’와 같다 하였는데, 孔潁達도 이에 동의하였다. 주자는 之자를 ‘늘 ()’로 보고 辟자를 ‘편벽 ()’으로 해석하였다. 분의 견해차가 크다고 있다. 그러나 親愛賤惡畏敬哀矜敖惰에서 한쪽으로 치우치면 된다는 말을 따름이 옳다고 본다.전체적으로 구절은 인군이 정치하는 데에 대한 내용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누구를 좋아하도라도 사람의 악한 점도 알아야 하고 누구를 미워하더라도 속에 아름다운 면이 잇음을 알아야만 정치가 제대로 되는데, 대개는 좋아하는 욕심과 삿된 마음에 가려서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군된 자로서 전혀 수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좋아하되 가운데 악함이 있음을 알고 미워하되 가운데 아름다움이 있음을 아는 것은 중용의 지혜를 갖춘 이가 아니면 달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천하에 보기 드물다고 하였다. 이렇게 好而知其惡하고 惡而知其美한 성인의 예로는 순임금을 있다. 『中庸』에 공자가 大知한 성인으로서 순임금을 칭송하면서, “순임금은 크게 지혜로우시다. 순임금은 묻기를 좋아하시면서도 주변의 가까운 말을 살피시되 악한 허물을 덮고 선한 일을 널리 알려서 양끝을 잡아 中道를 백성에게 베푸셨으니, 이로써 순임금이 되신 것이다”(6 : 子ㅣ曰 舜은 其大知也與신저 舜이 好問而好察邇言하사대 隱惡而揚善하시며 執其兩端하사 用其中於民 하시니 其斯以爲舜乎신저) 하였다.08-02 故로 諺에 有之하니 人이 莫知其子之惡하며 莫知其苗之碩이라 하니라 그러므로 속담에 말하기를 “모든 사람이 자식의 악함을 알지 못하며 싹의 큼을 알지 못한다”고 하니라. : 속담 : : [해설] 구절에서 사람들이 편중된 감정에 의해 好惡의 中을 잃고 선악과 미추를 바르게 알아 대처하지 못함을 설명하고, 뒤이어 여기서는 세속에 전해지는 말로써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지나치게 자식을 사랑하면 좋아하는 마음에 치우쳐서 자식의 허물을 보지 못하고, 욕심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의 밭에 자라는 곡식의 싹은 빨리 자라고 자기 밭에 자라는 싹은 더디게 보이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08-03 好人之所惡하며 惡人之所好ㅣ 是謂拂人之性이라 菑必逮夫身이니라남이 미워하는 바를 좋아하며 남이 좋아하는 바를 미워하는 , 이를 일러 ‘사람의 성품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하니, 재앙이 반드시 몸에 미치게 되느니라. : 재앙 : 미칠 [해설]여러 사람이 한결같이 좋아하는 것은 선이요, 여러 사람이 한결같이 미워하는 것이 악이라면 이것이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이고 타당한 본성이요 絜矩之道의 거점인데, 본성을 역행하여 악을 좋아하고 선을 미워한다면 모든 이의 노여움을 사서 반드시 스스로 재앙이 몸에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治國平天下장의 秦誓 절목에 말한 “人之有技를 媢疾以惡之하며 人之彦聖을 而違之하는” 사람이다. 08-04 此謂身不修면 不可以齊其家니라이 이르되 몸을 닦지 못하면 가히 집을 가지런히 하느니라.{해설]전체적으로 수신제가장에는 사람이 好惡의 감정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中을 덛음이 수신임을 밝히고, 나아가 행동하고 말하는 바가 신망을 얻어 여러 사람을 따르게 하므로 자연 집을 가지런히 있음을 설명하였다.『中庸』에서 공자는 “도가 사람에게서 멀지 않다. 사람이 도를 하면서 사람을 멀리한다면 가히 도를 함이 아니다”(13 : 道不遠人하니 人之爲道而遠人이면 不可以爲道니라) 하였고, 또한 “忠과 恕가 도에 나아감이 멀지 않으니 자기 몸에 베풀기를 원치 않으면 또한 남에게 베풀지 말라”(忠恕ㅣ 違道不遠하니 施諸己而不願을 亦勿施於人이니라) 말씀이 있다.修身齊家장의 경우는 대학장구서에 이른 修己治人의 道와 직접 관련된 곳으로서 문장 가운데 人을 위주로 표현하고 있다. 齊家治國장의 경우는 나라와 연관되므로 民으로써 주로 표현하고 있다.右는 傳之八章이니 釋修身齊家하다(四節)

9. 齊家治國09-01 所謂治國이 必先齊其家者는 其家를 不可敎ㅣ오 而能敎人者ㅣ 無之하니 故로 君子는 不出家而成敎於國하나니 孝者는 所以事君也ㅣ오 弟者는 所以事長也ㅣ오 慈者는 所以使衆也ㅣ니라이른바 “나라를 다스림이 반드시 먼저 집을 가지런해 해야 한다”는 것은 가족을 가르치지 못하고서 남을 가르칠 있는 자가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집에서 나가지 아니하고도 가르침을 나라에 이루나니, 孝는 인군을 섬기는 방법이고, 弟는 어른을 모시는 방법이 되며, 慈는 무리를 이끄는 방법이 되느니라. : 섬길 : 공순 : 사랑 使 : 부릴 [해설]여기는 제가를 바탕으로 해서 치국하는 내용을 담았다. 머리절인 孝弟慈 절목은 제가의 기본 덕목인 효도함과 공순함, 사랑함을 들어 군자가 제가뿐만 아니라 나아가 치국의 가르침으로 삼는 것을 말하였는데, 부모께 효도함() 나라의 인군을 섬기는 근본이고, 형에게 공순함() 어른을 섬기는 근본이며, 자식을 사랑함() 아랫사람을 부리는 근본이다.孝弟는 인륜도덕의 바탕이다. 효도하는 이로서 인군을 충성으로 섬기지 않을 사람이 없고 형에게 공순한 이로서 어른을 공경치 않을 사람이 없으므로, 『論語』에도 공자가 제자에게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경하라”(子ㅣ曰 弟子 入則孝하고 出則弟) 말씀하였고, 또한 공자의 문하인 有子가 “그 사람됨이 효도하고 공순한데 윗사람에게 대드는 이가 적으니, 윗사람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亂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가 없다”(有子曰 其爲人也ㅣ 孝弟요 而好犯上者ㅣ 鮮矣니 不好犯上이오 而好作亂者ㅣ 未之有也ㅣ니라) 하였다.慈는 부모가 자식에게 자애로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랫사람을 사랑한다면 순종하지 않을 사람이 없으므로 인군을 民之父母라 표현하기도 했다.군자는 덕목을 먼저 집사람들에게 가르침으로써 타인의 모범이 된다. 그러므로 밖으로 벗어나지 않더라도 자연 이웃과 나라 사람이 이를 본받아 배우고 아름다운 풍속이 일어나게 된다.09-02 一家ㅣ 仁이면 一國이 興仁하고 一家ㅣ 讓이면 一國이 興讓하고 一人이 貪戾면 一國이 作亂하나니 其機如此하나니 此謂一言이 事ㅣ며 一人이 定國이니라한 집이 어질면 나라가 어진 일어나고, 집이 사양하면 나라가 사양하는 일어나고, 사람이 탐하고 거스르면 나라가 혼란을 일으키나니, 기틀이 이와 같으니 이를 일러 한마디 말이 일을 엎어 놓으며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킨다고 하는 것이다. : 사양할 : 거스를 : : 엎칠 [해설]앞의 절에 이어 집안의 어짊과 사양하는 기풍이 나라에 어질고 사양하는 미풍양속을 일으키는 반면 사람의 그릇된 욕심과 패륜에 의해 나라의 혼란이 야기됨을 말하고 이로써 한마디 말이 일을 엎어뜨리며 사람이 나라를 안정케 하는 기틀이 됨을 지적하고 있다. 一家仁에 一國興仁, 一家讓에 一國興讓의 예로는 문왕이 어진 덕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국경 문제로 싸우던 소국의 제후가 이를 해결하고자 주나라를 같이 방문하였으나 가던 사람끼리 예로써 길을 양보하고 밭두둑을 사양함을 보고 부끄러이 여겨 문왕을 만나지도 않고 서로 화해한 돌아갔다는 일화가 있다.『論語』에도 공자께서 “능히 예와 사양으로써 하면 나라를 다스림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며, 능히 예와 사양으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 예문을 갖추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里仁편 : 子曰 能以禮讓이면 爲國乎에 何有며 不能以禮讓爲國이면 如禮에 何리오)라고 하였다.요임금이 만조백관을 모아 놓고 “내 나이 70이니 이제 혼미해서 정치를 못하겠구나. 제왕의 자리를 넘기려 하니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추천해보라”하자, 放齊라는 신하가 “아드님인 丹朱가 있으니 제위를 전하면 되지 않습니까?”하고 추천하였다. 그러자 “내 자식은 모질고 사나워서 된다”하고 다른 이를 추천하도록 하였다. 백성은 모두가 인군 사람에게 달렸는데 욕심으로 악하고 불선한 자식한테 맡겼다가 백성이 못살게 되어서는 된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마침내 모든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추천한 이가 바로 舜이었는데, 천하백성을 다스리는 일이 참으로 중차대하므로 요임금은 자신의 딸인 娥皇과 女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시집을 보내 舜을 두루 관찰케 하고 시험해본 뒤에 비로소 제위를 선양했다고 한다.09-03 詩云 樂只君子여 民之父母라 하니 民之所好를 好之하며 民之所惡를 惡之이 此之謂民之父母니라『詩經』에 이르기를 “즐거우신 군자여! 백성의 부모로다”하니,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니, 이를 일러 ‘백성의 부모’라고 하니라. : 다만 [해설]옛날 성군인 문왕을 가리켜서 말이다. 여기서 樂只君子는 백성의 부모로서 군자가 與民同樂하여 백성과 더불어 즐거워함을 말한 것인데, 이렇게 백성이 좋아하는 바를 같이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바를 같이 싫어하여 同苦同樂한다면 백성의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는 인군이다.『周易』에 聖人은 “길하고 흉한 일을 백성과 더물어 즐거워하고 근심한다”(吉凶 與民同患) 하였고 “사람들과 같이함에 모든 것들이 반드시 돌아온다”(與人同者 物必歸焉) 하였다. 『中庸』에도 “아름답고 즐거운 군자의 빛나는 덕이 백성을 마땅하게(선하게) 하고 사람들을 마땅하게 한다”(詩曰 嘉樂君子의 憲憲令德이 宜民宜人이라) 하였으니, 인군이 백성을 자기 자식과 같이 귀중히 여기고 동고동락함에 따라서 백성도 부모와 같이 극진히 섬기며 덕을 기리는 것이다.09-04 故로 治國이 在齊其家니라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림이 집을 가지런히 하는 있느니라.

09-05 詩云 桃之夭夭여 其葉蓁蓁이로다 之子于歸여 宜其家人이라 하니 宜其家人而后에 可以敎國人이니라『詩經』에 이르기를 “복숭아의 곱고 고움이여! 잎사귀가 무성하도다! 아가씨가 시집감이여! 집안 사람들을 선하게 하리라”하니 집안 사람을 선하게 뒤에라야 나라 사람들을 가르칠 있느니라. : 복숭아 : 예쁠 : 무성할 : 시집갈 : 마땅 [해설] 절목은 『詩經』周南 桃夭편을 인용한 것으로, 복사꽃 피는 봄을 맞아 시집가는 새색시의 앳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복사꽃의 고움과 잎사귀의 성함에 견주어 흥기하고 婦道를 다하여 집안 사람을 화목하게 하고 착하게 함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제가치국에서 먼저 부녀자의 덕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다음 절목에 의형의제를 말함으로써 家人의 도를 바로함이 나라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됨을 밝힌 것이다.참고로『詩經』에는 興과 賦와 比가 있는데, 興은 말을 하기 위해 말부터 끌어들여서 자연스럽게 흥기시키는 것을 말한다. “桃之夭夭여 其葉蓁蓁이로다”는 “之子于歸여 宜其家人이로다”라는 말을 흥기시키려고 말이다. 다시 말하면 복숭아꽃이 활짝 펴서 참으로 아름답고 성하다는 말을 인용해서, 마음씨 착한 젊고 예쁜 여자가 시집가서 시집 식구들을 착하게 만들 것이라는 말을 흥기한 것이다.賦는 감상을 그대로 적는 한시체이고, 比는 저쪽의 다른 사물로써 이쪽의 사물을 직접 견주어 비교하는 한시체이다. 09-06 詩云 宜兄宜弟라 하니 宜兄宜弟而后에 可以敎國人이니라 『詩經』에 이르기를 “형을 선하게 하고 아우를 선하게 한다”하니, 형을 선하게 하고 아우를 선하게 뒤에라야 나라 사람을 가르칠 있느니라.[해설] 절에서 가정의 근본인 부인의 도리를 먼저 말하고 다음 절에서 형제의 도리를 말하여 나라사람을 가르치는 근본이 집안의 화목과 우애에 있음을 강조하고 똑같이 ‘可以敎國人’으로 문장을 맺고 있다.09-07 詩云 其儀不忒이라 正是四國이라 하니 其爲父子兄弟ㅣ 足法而后에 民이 法之也ㅣ니라『詩經』에 이르기를 “그 거동이 어긋나지 않으니 사방의 나라를 바룬다”하니, 부자형제가 족히 본받은 뒤에 백성들이 본받느니라. : 거동 : 어긋날 [해설]앞의 桃之절과 宜兄절을 통하여 부녀와 형제의 착함을 말하였으므로 절에서는 부자형제를 한데 묶어서 말하였다. 군자의 거동이 어긋남이 없어 사방의 나라를 바로한다는『詩經』曹風 (시구 : 뻐꾸기와 비둘기)편을 인용하여 먼저 부자형제가 이를 본받고 나아가 모든 백성이 본받는 데에서 치국이 됨을 설명한 것이다.09-08 此謂治國이 在齊其家니라이를 일러 “나라를 다스림이 집을 가지런히 하는 데에 있다”고 하니라.[해설]전반부는 집안을 가르치는 孝弟慈로써 나라의 가르침을 이룸을 말하고, 후반부는 시경의 시구를 인용하여 집안 식구들을 바로 가르쳐야 家道가 바로 서고 백성의 사표가 됨을 설명하였다.주자는 제가치국장에 대해 의미가 深長하다고 하며 무엇보다 潛心과 玩索할 것을 강조했다. 잠심과 완색은 이치 가운데 잠기어 즐기는 것으로 내가 대상인지 대상이 나인지 모르는 혼연한 생명적 통합체를 경험하는 공부를 말한다. 이것이 동양적 공부 방시이며 추구하는 경계이다. 동양에서는 되도록 대상 세계와 혼연일체가 되고 추상적인 논리보다는 가슴에 와닿는 심정적인 깨침을 추구하는 것을 공부하는 주된 방법으로 삼아왔다.右는 傳之九章이니 釋齊家治國하다(8)

10. 治國平天下10-01 所謂平天下ㅣ 在治其國者는 上이 老老而民이 興孝하며 上이 長長而民이 興弟하며 上이 恤孤而民이 不倍하나니 是以로 君子는 有絜矩之道也ㅣ니라이른바 “천하를 平함이 나라를 다스리는 있다”는 것은, 위에서 늙은이를 늙은이로 섬기면 백성들이 孝에 일어나고, 위에서 어른을 어른으로 모시면 백성들이 弟에 일어나며, 위에서 외로운 이를 불쌍히 여기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아니하니, 때문에 군자는 혈구의 도가 있느니라. : 아낄 : 거스를 : 헤아릴 : [해설]여기서부터는 전문 10장으로서 천하를 평치하려면 먼저 나라를 다스려야 함을 설명한 내용이다. 절목에서 언급한 孝弟慈를 다시 언급한 까닭은 제가와 치국과 평천하가 모두 한결같이 가지 덕목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老老는 노인을 노인으로 섬기는 것으로 孝를 흥기하는 구체적인 방법이고, 長長은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는 것으로 弟를 흥기하는 구체적인 방법이고, 恤孤는 외로운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으로 慈를 흥기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다.이렇게 천하백성들의 孝弟慈가 흥기되고 천하 국가를 평치할 있는 방법을 絜矩之道라고 한다. 구체적인 예가 천하의 인군()으로서 王家를 老老長長恤孤하는 것이다. 여기서 혈구의 矩는 曲尺, 직각선을 그리는 곱자를 말한다. 그리고 사방을 재서 방정하게 제도하는 것을 絜矩라고 한다. 이와 같이 자로 재듯 정확히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서 민심을 다스린다면, 상하사방의 어느 곳에도 기울지 않는 도로써 천하국가를 다스릴 있게 된다.10-02 所惡於上으로 毋以使下하며 所惡於下로 毋以事上하며 所惡於前으로 毋以先後하며 所惡於後로 毋以從前하며 所惡於右로 毋以而交於左하며 所惡於左로 毋以而交於右ㅣ 此之謂絜矩之道니라위에서 싫은 바로 아래를 부리지 말며, 아래에서 싫은 바로 위를 섬기지 말며, 앞에서 싫은 바로 뒤를 앞서지 말며, 뒤에서 싫은 바로 앞을 따르지 말며, 오른쪽에서 싫은 바로 왼쪽을 사귀지 말며, 왼쪽에서 싫은 바로 오른쪽을 사귀지 아니하는 , 이것을 일컬어 ‘혈구의 도’라고 하니라.[해설] 절목에서는 혈구의 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데, 자신을 中을 놓고서 상하간의 섬김과 부림, 전후간의 앞장섬과 뒤따름, 좌우간의 사귐으로써 풀이하고 있다. 상하좌우 전후는 六合 공간을 의미한다.혈구의 도는 “己所不欲을 勿施於人하라” 내가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도 상대적인 상하전후좌우의 관계에서 자신의 싫어하는 바를 상대에게 베풀지 말라고 하였다.또한 絜矩之道는 『論語』公冶長편에 자공이 공자께 “남이 내게 가하는 것을 원치 않으면 나도 역시 남에게 가하고 싶지 않습니다”(我不欲人之加諸我也를 我亦欲無加諸人하노이다)하고, 『中庸』에 “자기에게 베풀어짐을 원치 않는 것은 역시 내가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施諸己而不願을 亦勿施於人하라) 내용과 같다.상하사방의 中을 잡아 均齊方正하게 다스리는 혈구의 도는 『書經』洪範편의 왕자(王者 : 皇極) 도는 편당이 없어야 한다는 蕩平正直에 뿌리를 둔다고 여겨진다. 五皇極條를 보면 다음과 같다.“無偏無陂하야 遵王之義하며 無有作好하야 遵王之道하며 無有作惡하야 遵王之路하라. 無偏無黨하면 王道ㅣ 蕩蕩하고 無黨無偏하면 王道ㅣ 平平하며 無反無側하면 王道ㅣ 正直하리니 會其有極하야 歸其有極하리라”(한쪽짐(不中) 없고 언덕짐(不平) 없어서, 왕의 의리를 따르며, (사사로이) 좋아함을 짓지 아니하여 왕의 도를 따르며, (사사로이) 싫어함을 짓지 아니하여 왕의 路를 따르라. 편도 없고 당도 없으면 왕도가 넓고 크며, 당도 없고 편도 없으면 왕도가 편편하며, 배반함도 없고 기울어짐도 없으면 왕도가 정직하리니 극에 모여서 극에 돌아가리라)『中庸』에 공자께서 “군자의 도가 가지인데 내가 하나도 능하지 못하다. 자식에게 구하는 만큼 부모 섬김에 능치 못하며, 신하에게 구하는 만큼 인군 섬김에 능치 못하며, 아우에게 구하는 만큼 섬김에 능치 못하며, 붕우에게 구하는 만큼 먼저 베풀지를 못한다”(13 : 君子之道ㅣ 四에 丘未能一焉이로니 所求乎子로 以事父를 未能也하며 所求乎臣으로 以事君을 未能也하며 所求乎弟로 以事兄을 未能也하며 所求乎朋友로 先施之를 未能也ㅣ로라) 사양하신 말씀도 절의 내용과 부합한다고 있다.10-03 堯舜이 帥天下以仁하신데 而民이 從之하고 桀紂ㅣ 帥天下以暴한대 而民이 從之하니 其所令이 反其所好ㅣ면 而民이 不從하니라요순이 천하를 仁으로 거느리시고 백성들이 그를 따르고, 걸주가 천하를 포악함으로 거느리니 백성들이 그를 따르니 명령하는 바가 좋아하는 것과 상반되면 백성들은 따르지 않느니라. : 장수 , 거느릴 [해설]요순과 걸주는 같이 천하백성을 다스린 천자인데, 여기서는 어진 정치를 하였던 요순과 포악한 정치를 하였던 걸주의 상반된 예를 들어서, (천자) 요순과 같은 성인이 되었든 걸주와 같은 폭군이 되었든 상관없이 천자가 내리는 명이 천하백성들이 좋아하는 바에 합하면 따르고 이와 반대되면 복종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10-04 是故로 君子는 有諸己而後에 求諸人하며 無諸己而後에 非諸人하나니 所藏乎身이 不恕ㅣ오 而能喩諸人者ㅣ 未之有也ㅣ니라이 때문에 군자는 자기에게 (善이) 있은 뒤에 남에게 그것을 요구하며, 자기에게 (不善이) 없은 뒤에 남에게 그르다고 하는 것이니, 자기 몸에 간직한 것이 恕가 아니고서 다른 사람을 깨우칠 있는 사람은 있지 않느니라. : 깨우칠 [해설]이것은 천하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법의 요체가 백성의 좋아하는 바를 같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바를 같이 싫어하는 絜矩之道에 달려 있음을 밝힌 것이다. 참고로 본래 忠이란 ‘가운데 中’과 ‘마음 心’을 합친 글자로 마음 속에 있는 충심 그대로를 바치는 것이고, 恕는 ‘같을 如’에 ‘마음 心’을 합친 글자로 나와 남을 같이 여기는 마음, 모든 사람들을 용서해줄 있는 아량과 도량을 말한다. 忠恕는 유학의 핵심 사상이다

10-05 詩云 節彼南山이여 維石巖巖이로다 赫赫師尹이여 民具爾瞻이라 하니 有國者ㅣ 不可以不愼이니 辟則爲天下矣니라『詩經』에 이르되 “깍아지른 듯한 남산이여! 돌이 뾰족뾰족하도다. 으스대는 사윤이여, 백성이 모두 너를 쳐다본다‘하니,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삼가지 않을 없으니, 편벽되면 천하의 죽임이 되느니라. : 끊어질 : 바위 : 함께 : 벼리(그물) : : : 죽일 [해설] 절목은 주나라 태사인 윤씨를 경계한 시구(「小雅」節南山편) 인용하여, 나라의 막중한 책임을 대신인 자가 직분을 망각하고 편벽된 好惡의 감정을 삼가지 못하면 비록 당대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더라도 반드시 천하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다고 하였다.『周易』에도 “성인이 일어나시매 만물이 우러러 바라본다”(聖人이 作而萬物이 覩하나니) 반면, 亢龍有悔(높은 용이니 뉘우침이 있게 ) 경계하여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은 알지 못하며, 존할 줄만 알고 망할 줄은 알지 못하며, 얻을 줄만 알고 잃을 줄은 알지 못하여 너무 亢極(지나치게 높음)하였으니, 오직 성인이 진퇴존망을 알아 바름을 잃지 않는다”(乾文言傳 上九 : 亢之爲言也는 知進而不知退하고 知存而不知亡하며 知得而不知喪이니 其唯聖人乎아. 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ㅣ 其唯聖人乎) 하였다. 10-06 詩云 殷之未喪師에 克配上帝러니 儀監于殷이어다 峻命不易라 하니 道得衆則得國하고 失衆則失國이니라『詩經』에 이르기를 “은나라가 백성을 잃지 않았을 때는 능히 上帝에 대할 있었으니 마땅히 은나라를 거울 삼을지어다. 명은 쉽지 않다” 하니, 무리를 얻으면 나라를 얻고 무리를 잃으면 나라를 잃음을 말한 것이니라. : 무리 : 능히 : : : 말할 [해설]앞의 절목에서는 개인의 존망을 말하였고, 여기서는 나라의 득실을 말하였다. 은나라가 혈구의 도를 행한 선대에는 천하를 얻고 능히 상제께 대할 만하였으나 혈구의 도가 무너진 폭군 紂에 이르러서는 백성의 마음이 떠나 마침내 천명을 보존치 못하고 천하를 잃게 되었으니, 이런 사례를 거울로 삼아서 명을 지키기가 쉽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의 근본인 백성의 마음을 얻고 잃음에 따라 천명이 바뀌며 나라의 존망과 득실이 정해지므로, 『周易』에도 “위태로이 여기는 자를 평안하게 하고 쉽게 여기는 자를 기울게 한다”(危者使平 易者使傾) 하였다. 克配上帝, 상제에 대한다는 것은 천자의 位에 올라 홀로 하늘의 상제를 마주 대하고 명을 받아 천하만민을 대신 治敎(다스리고 가르침)하는 것이다. 『書經』洪範편에 “황극의 펴는 말씀이 떳떳한 인륜의 가르침이니, 이는 상제께서 가르치는 것이다”(皇極之敷言이 是彛是訓이니 于帝其訓이시라) 하였다. 『周易』에 “선왕이 성대히 상제께 제향을 올리고 祖考(조상의 신위)로써 나란히 배향하였다”(豫卦 大象 : 象曰 雷出地奮이 豫니 先王이 以하야 作樂崇德하야 殷薦之上帝하야 以配祖考하니라) 바도 극배상제에 상응하는 말이다.10-07 康誥에 曰惟命은 不于常이라 하니 道善則得之하고 不善則失之矣니라강고에 이르기를 “명은 항상하지 아니하다”하니, 선하면 얻고 선하지 아니하면 잃음을 말한 것이니라.[해설]본래 天命이란 떳떳함이 있는 常道이다. 그러나 여기의 내용은 천명이 어느 사람이나 특정한 곳에 머물지 아니한다는 뜻에서 不于常이라 하였으니 유념해야 한다. 선하게 정치를 잘하면 나라를 얻게 마련이고 불선하게 정치를 하면 나라를 잃게 마련이다.10-08 是故로 君子ㅣ 有大道하니 必忠信以得之하고 驕泰以失之니라이런 까닭에 군자에게는 도가 있으니, 반드시 忠과 信으로써 얻고 교만과 나태함으로써 잃게 되느니라.][해설]역시 人性의 공통성을 바탕으로 혈구지도를 체득하고 하는 것을 忠信과 驕泰로 말하고 있다. 본래 忠과 信은 中에 말미암은 것으로 덕에 나아가는 방법을 말한다. 『周易』에도 忠信이 進德하는 방법임을 밝히고 있다.(乾文言傳 九三 : 子曰 君子 進德修業하나니 忠信이 所以進德也ㅣ오 修辭立其誠이 所以居業也ㅣ라)忠은 혼신의 힘을 바쳐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고, 信은 자기가 말에 대해 그대로 실행해서 남들에게 미더움이 있는 것이며, 驕는 안하무인격으로 홀로 높은 체하는 것이고, 泰는 지나치게 여유를 부려 나태한 것을 말한다. 驕泰와는 조금 다른 의미이지만 『論語』子路편에 공자께서 “군자는 태연하되 교만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교만하되 태연하지 못하다.(君子는 泰而不驕하고 小人은 驕而不泰니라) 말씀하였다.

10-09 德者는 本也ㅣ오 財者는 末也ㅣ라덕은 근본이고 재물은 끝이니라][해설]천하국가를 평치하는 근본은 덕에 있을 뿐이지 끝인 재물에 있지 아니함을 밝히고 있다.『論語』에 공자께서 “부귀를 누구나 바라지만 도로써 아니하여 (부귀를) 얻었거든 거처하지 않고, 빈천을 누구나 싫어하지만 도로써 (빈천을) 얻지 않았을지라도 버리지 아니한다”(里仁편 : 子曰 富與貴ㅣ 是人之所欲也ㅣ나 不以其道로 得之어든 不處也하며 貧與賤이 是人之所惡也ㅣ나 不以其道로 得之라도 不去也ㅣ니라) 하신 바도 이와 같은 德本財末의 도를 말씀하신 것이다.10-10 外本內末이면 爭民施奪이니라근본을 밖으로 하고 끝을 안으로 하면 백성을 다투게 해서 빼앗음을 베푸는 것이니라.[해설]德本財末로서 德은 內本이고 財는 外末인데 이를 바꾸어 德末財本 안에 있어야 덕을 바깥으로 멀리 두고 밖에 있어야 (재물) 안으로 놓아 주장을 삼으면, 백성이 모두 끝인 재물을 안으로 주장하기 때문에 그것을 서로 가지려고 다투어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인군이 외본내말의 정책을 베풀게 되면 나라는 결국 (재물) 숭상하기 때문에 덕이 없는 나라가 되어서 망하는 것이다.『孟子』에도 보면 맹자가 양혜왕을 찾아가니 양혜왕이 맹자에게 “노인네가 천릿길을 멀다 않고 찾아오셨으니 앞으로 나라를 이롭게 해주시렵니까?”하니까, 맹자가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만약 왕의 말씀과 같이 利를 주장하고 보면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상하가 서로 이끗만 다투게 되어 나라가 위태롭게 됩니다”(孟子ㅣ 見梁惠王하신대 王曰 叟ㅣ 不遠千里而來하시니 亦將有以利吾國乎잇가? 孟子ㅣ 對曰 王何必曰利잇고? 亦有仁義而已矣니이다.…上下ㅣ 交征利면 而國이 危矣리이다.)라고 말씀하셨다.10-11 仁者는 以財發身하고 不仁者는 以身發財니라仁한 자는 재물로써 몸을 일으키고 仁하지 못한 자는 몸으로써 재물을 모으니라.[해설]仁과 不仁을 대비하여, 어진 사람은 재물을 나눠주어 사람을 얻는 반해 어질지 못한 자는 몸을 망쳐 가면서까지 재물을 늘리는 집착함을 설명하고 있다.재물로써 몸의 덕을 발하는 것이 以財發身인데, 어진 덕을 베풀어 재물을 모두 남들에게 흩어 주면 자연 자신의 덕이 밖으로 발현되고 출세도 하게 된다. 물론 출세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재물을 모두 흩어 주고 하니가 남들이 있는 사람으로 추앙을 하고 나한테 모여들게 되므로 자연 몸이 유명해지고 높은 사람이 되어서 發身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맹자』에서는 “부자가 되려면 어질지 못하고, 어짊을 이루려면 부자가 되지 못한다”(滕文公 상편 : 爲富면 不仁也ㅣ오 爲仁이면 不富라) 하였다.하지만 어질지 못한 자는 以身發財, 그저 굴욕적인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뜻에서 염치불구하고 몸을 망쳐 가면서 체통 없이 마구 재물만 추구한다. 10-12 是故로 君子는 先愼乎德이니 有德이면 此有人이오 有人이면 此有土ㅣ오 有土면 此有財ㅣ오 有財면 此有用이니라이런 까닭에 군자는 먼저 덕에 삼가야 하니, 덕이 있으면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으면 이에 토지가 있고, 토지가 있으면 이에 재물이 있고, 재물이 있으면 이에 쓰임이 있게 되느니라.[해설]탕임금이 처음 사방 70리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천하를 다스렸으며, 周의 왕업이 사방 리에서 비롯된 것도 이같이 先愼乎德하였기 때문이다. 먼저 덕을 삼가서 나라를 덕으로 다스린다면 자연 사람이 따르게 마련이고 사람이 있으면 국토도 있게 마련이고 토지가 있게 되면 거기에서 생산을 해서 재물이 있게 되고 재물이 있게 되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10-13 生財ㅣ 有大道하니 生之者ㅣ 衆하고 食之者ㅣ 寡하며 爲之者ㅣ 疾하고 用之者ㅣ 舒하면 則財恒足矣리라재물을 생산하는 데에는 도가 있으니, 생산하는 사람이 많고 먹는 사람이 적으며 일하는 사람이 빠르고 쓰는 사람이 더디면 재물이 항상 풍족할 것이니라. : 적을 : 빠를 : 느릴 [해설]이는 소박한 고대 경제론이라고도 있는데, 노동력과 능률성에 대해 논한 것으로 經世濟民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周易』에도 “부유한 것을 대업이라 이르고 날로 새로워짐을 성덕이라”(繫辭上傳 5 : 富有之謂 大業이오 日新之謂 盛德이라)하여 경세제민을 강조하고 있다.『周易』계사하전 끝머리에 “천지의 덕은 生이오 성인의 보배는 位이다. 그런데 자리를 보존하려면 어질어야 하고 사람을 얻으려면 재물이 있어야 하니, 재물을 다스리며 말을 바로 세우며 백성으로 하여금 비리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려면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1 : 天地之大業 曰生이오 聖人之大寶 曰位니 何以守位요 曰仁이오. 何以聚人고 曰財니 理財하며 正辭하며 禁民爲非ㅣ 曰義라) 재물을 언급하여 경제 얘기를 하였는데 『大學』의 끝머리에도 경제 얘기를 하고 있다.10-14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ㅣ니 未有好義ㅣ오 其事不終者也ㅣ며 未有府庫財ㅣ 非其財者也ㅣ니라위에서 仁을 좋아하는데 아래에서 義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있지 아니하니, 의를 좋아하고도 일이 마쳐지지 않는 것은 있지 아니하며, 부고의 재물이 재물이 아닌 것은 있지 아니하니라. : 곳집 : 곳집 [해설> 절에서는 生財의 도를 논하고, 여기서는 理財의 방법을 상하의 仁義로써 밝히고 있다. 위의 임금이 어짊을 좋아한다면 자연 아래 백성들이 의를 좋아하지 않을 자가 없어서 열심히 나라와 임금을 위해 일을 한다. 그렇게 되면 일의 끝마무리가 지어지지 못할 없다. 의리로써 나라의 일에 앞장서서 모두 애를 쓰고 노력한다면 일의 결과가 좋아서 생산을 많이 하고 재물이 풍족하게 된다. 이렇게 나라의 창고가 차서 국고에 재물이 넉넉해지면, 나라와 백성이 모두 부강해진다.10-15 長國家而務財用者는 必自小人矣니 彼爲善之小人之使爲國家면 菑害幷至라 雖有善者나 亦無如之何矣니 此謂國은 不以利爲利요 以義爲利也ㅣ니라국가의 어른이 되어 재용에 힘쓰는 것은 반드시 소인으로부터 비롯되니, 그것을 잘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소인으로 하여금 국가를 다스리게 하면 天災와 人災가 아울러 이를 것이다. 비록 훌륭한 자가 있어도 어찌할 없으리니, 이를 일러 “나라는 利를 利로 여기지 않고 義를 利로 여긴다”고 하느니라. : 재앙 : 아우를 [해설]『大學』장구본에서는 마지막 절목으로 두고 있다. 여기에서도 국가의 어른이 되어 국고를 탕진하는 소인의 병폐를 말하고 나라를 다스리려면 이익을 이롭게 여기기보다 먼저 의로움을 의롭게 여겨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論語』에 공자께서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利에 밝다”(君子는 喩於義하고 小人은 喩於利니라) 하신 말씀도 있다. 하늘의 元亨利貞 가지 가운데 가을에 해당하는 것이 利인데, 이것은 하늘의 公利이다(利者 義之和也). 이러한 利를 취함에 반드시 의로써 이로움을 삼아야지 재물을 위하는 것으로 이로움을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10-16 是故로 財聚則民散하고 財散則民聚니라이런 까닭에 재물을 모으면 백성이 흩어지고 재물을 흩으면 백성이 모이게 되느니라.[해설]여기는 인군이 바깥의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재물을 모으면 백성이 흩어져 떠나버리고 재물을 흩어서 백성에게 베풀면 백성이 모이게 되므로, 인군이 혼자 욕심을 부리지 말고 민심을 얻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10-17 楚書에 楚國은 無以爲寶요 惟善을 以爲寶라 하니라『楚書』에 이르기를 “초나라는 보배로 삼을 것이 없고 오직 善人을 보배로 삼는다”고 하니라.[해설] 절목은 초나라의 격언을 인용하여 善이 보배임을 강조하고 있다. 선의 중요함은 삼강령의 마지막 궁극 목표가 至於至善인 데에서도 있으며, 『中庸』에 선에 밝아야 몸을 정성스럽게 하고 나아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붕우에게 미덥고 윗사람의 마음을 얻어 마침내 천하국가를 다스릴 있다(20 : 在下位하야 不獲乎上이면 民不可得而治矣리라 獲乎上이 有道하니 不信乎朋友ㅣ면 不獲乎上矣리라 信乎朋友ㅣ 有道하니 不順乎親이면 不信乎朋友矣리라. 順乎親이 有道하니 反諸身不誠이면 不順乎親矣리라. 誠身이 有道하니 不明乎善이면 不誠乎身矣리라) 하였으니 선보다 보배는 없는 것이다.『楚書』에 인용된 내용은 역사적 유래가 있다. 秦나라가 초나라를 정벌할 심산으로 사자를 보내어 초나라의 보배가 무엇인지 살피게 하였는데, 초나라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기를 초나라의 보배는 금은보화가 아니라 선한 사람을 보배로 삼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재물보다는 덕을 숭상하고 중시함을 말한다. 이에 진나라 사자가 돌아가서 “초나라는 어진 신하가 많아 정벌하지 못하겠다”고 하였다는 역사적 사례에서 글을 인용하여 明德과 至善을 강조했다.10-18 舅犯이 亡人은 無以爲寶요 仁親을 以爲寶라 하니라외삼촌 범이 이르기를 “망명한 사람은 보배로 삼을 것이 없고 어버이 사랑함을 보배로 삼는다”하니라. : 외삼촌 : 범할 , 여기서는 이름으로 쓰임.[해설] 절목은 『禮記』檀弓편의 기록을 인용한 글이다. 晋나라 文公(重耳) 태자였을 적에 아버지 獻公의 부인이었던 驪姬의 참소로 인하여 헌공의 미움을 받게 되자 외국()으로 망명해 갔는데, 헌공이 죽은 뒤에 秦나라 穆公이 사람을 중이에게 보내서 헌공의 후사로서 뒤를 이르라고 했다. 중이가 외삼촌인 犯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자, 본문과 같이 “네가 본국에 돌아가서 나라의 얻음을 보배로 삼지 말고 마땅히 부왕의 상을 당한 사람으로서 애통함을 보배로 삼아라”하고 생질인 중이에게 마음의 경계를 삼도록 훈계한 것이다. 역시 孝와 德이 근본임을 강조한 말이다.아비의 상을 당한 자로서 愛親의 도리를 다해서 애통함을 가져야 하는데, 임금이 욕심에 자식된 도리를 저버리고 자리만을 노린다면 어떻게 백성들의 마음을 감복하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지위를 얻을 있겠는가.여기서 보배란 근본인 덕을 말한다.밝은 덕을 갖춘 군자가 근본으로 삼는 지극한 보배는 다름 아니 善과 仁親으로서, 이것이야말로 혈구의 도라고 있다. 10-19 孟獻子ㅣ曰 畜馬乘은 不察於鷄豚하고 伐氷之家는 不畜牛羊하고 百乘之家는 不畜聚斂之臣하나니 與其有聚斂之臣으론 寧有盜臣이라 하니 此謂國은 不以利爲利요 以義爲利也ㅣ니라맹헌자 이르기를 “네 마리 말을 기르는 사람은 닭과 돼지를 보살피지 않고, 얼음을 켜는 집에서는 소와 양을 기르지 않고, 百乘의 집은 聚斂하는 신하를 키우지 아니하나니, 취렴하는 신하를 두느니 차라리 도적질하는 신하를 두는 낫다”고 하니, 이를 일러 ‘나라는 利를 利로 여기지 않고 義를 利로 여긴다’고 하니라. : 기를 : 수레 , : 거둘 : 차라리 [해설] 절에서는 노나라의 어진 대부였던 맹헌자 仲孫蔑의 말을 인용하여 재화를 생산함에서 서로 경제적 영역을 설정함으로써 상하간의 의리를 지키고 중간에서 가혹히 세금을 거두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민생을 돈독히 안정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孟子』梁惠王 상편에도 양혜왕이 어떻게 자기 나라를 이롭게 것인지를 묻자, “왕은 하필 利를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만이 있을 뿐입니다. 왕이 나라를 어떻게 이롭게 할까 하시면 대부는 어떻게 집을 이롭게 할까 하며, 선비와 백성은 어떻게 몸을 이롭게 할까 하여, 상하가 다투어 이익만을 취하게 되어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萬乘의 천자를 죽이는 자는 반드시 천승의 제후요, 천승의 천자를 죽이는 자는 반드시 백승의 집안입니다. 만에서 천을 취하고 천에서 백을 취함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진실로 義를 뒤로 하고 利를 앞세우면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어질고서 부모를 버리는 없으며, 의롭고서 인군을 뒤로 하는 없습니다”(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王曰何以利吾國 大夫曰何以利吾家 士庶人曰何以利吾身 上下交征利 而國危矣 萬乘之國 弑其君者 必千乘之家 千乘之國 弑其君者 必百乘之家 萬取千焉 千取百焉 不爲不多의 苟爲後義而先利 不奪不饜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라고 답하였다. 畜馬乘은 대의 수레를 끄는데 마리가 필요하므로 마리 말을 기르며 수레를 탄다는 뜻인데, 선비가 처음 과거에 응시해서 대부 벼슬을 하게 되면 말들을 기를 있도록 나라에서 허용해주므로 여기서는 대부의 벼슬아치를 가리킨다.伐氷之家는 옛날에 초상 치르거나 제사 지낼 얼음을 쓰는 특수계층으로서 휵마승의 대부보다 높은 윗벼슬, 卿大夫 이상을 말하고 百乘之家는 수레 대가 따르는 집으로서 萬乘의 천자 아래에 있는 소제후를 가리킨다.옛날에 휵마승의 대부는 아래 백성들의 기르고 돼지 기르는 축산에 대해서 아예 눈을 감아버리고 살피지 아니해서 백성들과 이익을 다투지 않고, 이상의 높은 지위인 벌빙하는 경대부들은 소와 양을 아예 기르지 아니하고, 백승의 제후는 아래 가신을 두지만 취렴하는 신하, 세금을 거둬들이는 신하를 두지 않았다. 각기 그보다 아래 계층의 경제적 수단에 대해서 간섭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구분 통제함으로써 國利民福을 이룰 있게 하기위한 정책인데, 이것이 바로 義로써 나라의 이로움을 삼는 것이다(以義爲利).만일 상하계층에 따른 경제적 구분을 설정하지 않으면 서로 이끗만을 다투게 되어서 이로움으로써 이로움을 삼는 정책을 베푸는 것이 된다(以利爲利). 이렇게 되면 모든 이들이 서로의 재물을 빼앗는 데에 혈안이 되어서 마침내 나라 전체가 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여기서 맹헌자의 뜻은 국록을 먹는 신하가 鷄豚牛羊으로 利를 삼는 백성의 영역을 침해하지 말라는 것이지만 중요한 뜻은 취렴하는 신하를 기르지 말라는 데에 있다. “취렴하는 신하를 바에는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것이다”라고까지 것은 취렴지신은 직접 下民에게 해를 끼치지만 盜臣은 하민과는 무관하고 주인의 물건만을 축낼 뿐이기 때문이다.『論語』에 보면 공자께서 노나라 대부 계환자 밑에서 벼슬하는 제자 염구(冉求) 계씨의 취렴을 막지 못하고 도리어 협조한 것을 알고 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求는 우리 무리가 아니니, 너희들은 북을 울리며 그의 죄를 성토하라” 하셨다. 10-20 是故로 言悖而出者는 亦悖而入하고 貨悖而入者는 亦悖而出이니라이러한 까닭으로 말이 거슬러 나간 것은 역시 거슬러 들어오고, 재물이 거슬러 들어온 것은 또한 거슬러 나가느니라. : 거스를

10-21 秦誓에 若有一臣이 斷斷兮요 無他技나 其心이 休休焉한지 其如有容焉이라 人之有技를 若技有之하며 人之彦聖을 其心好之ㅣ 不啻若自其口出이면 寔能容之라 以能保我子孫黎民이니 尙亦有利哉 人之有技를 媢疾以惡之하며 人之彦聖을 而違之하야 俾不通이면 寔不能容이라 以不能保我子孫黎民이니 亦曰殆哉인저진서에 이르기를,“만약 신하가 있어서 성실하고 별다른 재주는 없으나 마음은 너그러워서 남을 용납함이 있는 듯하여, 남이 가지고 있는 재주를 자기가 가진 것같이 하며, 남의 아름답고 어짊을 마음에 기뻐함이 입으로부터 칭찬함에만 그치지 않는다면, 이는 능히 (남을) 용납할 있는 사람으로서 능히 나의 자손과 백성을 보전할 있으리니 오히려 또한 이로움이 있으리라. 남이 가진 재주를 시기하고 미워하며 남의 아름답고 어짊을 어기어 통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능히 (남을) 용납할 없는 사람으로서 능히 나의 자손과 백성을 보전할 없을지니 또한 위태하리라. : : 한결같을 : 아름다울 : 용납할 : 착한 선비 : : , 진실로 : 검을 : 투기할 : 미워할 : 하여금 : 위태로울 [해설]여기에 인용된 글은 秦의 穆公이 자기 신하와 백성에게 맹서한 말인데, 진나라 목공이 鄭나라와 싸우려 때에 백리해(百里奚) 건숙(蹇叔)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맹명(孟明), 서걸(西乞) 등을 보내어 정나라를 치게 했다가 ()라는 곳에서 양공(襄公) 습격을 받아 참패한 백리해와 건숙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지극히 후회하면서 여러 신하와 백성들에게 고한 『書經』秦誓편에 나오는 글이다.천하국가를 평치함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바로 인재등용이다. 설령 재주가 없더라도 진실로 어질고 훌륭한 인재를 포용할 있는 잇는 신하가 있어야만 천하백성에 이롭게 되고, 반대로 남의 재주와 능력을 시기 질투하여 경륜과 포부를 펴지 못하게 하는 소인배를 신하로 두면 나라의 종묘사직과 천하백성의 안녕을 이루는데 해악이 뿐이다.10-22 唯仁人이야 放流之하야 迸諸四夷하야 不與同中國하나니 此謂唯仁人이야 爲能愛人하며 能惡人이니라오직 仁한 사람이라야 惡한 사람을 추방하여 사방의 오랑캐 나라로 내쫓아 나라 안에 함께 살지 못하도록 하나니, 이를 일러 “오직 仁한 사람이라야 사람을 사랑할 있고 사람을 미워할 있다”고 하니라. : 추방할 : 물리칠 [해설]앞의 秦誓 절목의 속에 어진 자의 好惡를 언급하고 여기서는 ‘能愛’ ‘能惡’를 말한 데에서 절의 내용이 서로 연계된다.어진 자가 좋아함은 사람의 어진 일이며, 어진 자가 미워함은 사람의 불인한 짓이다. 『孟子』에 나오는 仁者無敵이라는 말처럼, 좋아하고 미워하는 바가 사람의 본연성품에 합하면 천하백성이 더불어 즐거이 좇아서 지선한 사회를 이루게 된다.10-23 見賢而不能擧하며 擧而不能先이 命也ㅣ오 見不善而不能退하며 退而不能遠이 過也ㅣ니라현인을 보고도 천거하지 못하며 천거하고도 먼저 쓰이도록 하지 못함은 게으름이고, 불선함을 보고도 물러나지 못하며 물러나고도 멀리하지 못하는 것은 허물이니라. : , 천거할 [해설] 절목을 보다 적극적으로 부연하여, 현인을 천거함에 게을리하지 말고 소인을 물리침에 단호히 대처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論語』에도 공자께서 “대저 어진 자는 자기가 서고자 남을 세우고 자기가 달하고자 남을 달하게 한다”(雍也편 : 夫仁者는 己欲立而立人하고 己欲達而達人이니라) 했는데, 현인을 천거함에 자신보다 재주와 능력이 앞서면 그를 앞에 내세울 있어야 진정 어진 군자임을 설명한 것이다.순임금이 고요(皐陶) 들어올려 기용하고 탕임금이 이윤(伊尹) 들어올려 등용함에 따라 어질지 못한 자가 모두 멀어져 천하국가를 평치할 있었다. 『論語』에 공자께서 “곧은 이를 들어서 굽은 이의 위에 두면 능히 굽은 이로 하여금 곧아지게 있다”(顔淵편 : 擧直錯諸枉이면 能使枉者直이니라)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10-24 此謂平天下ㅣ 在治其國이라이를 일러 천하를 평함이니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음이라.[해설]전문의 마지막 장인 10장은 소성팔괘 24괘와 일년 24절기에 합하는 24절로 각기 4절목씩 여섯 문단을 이루고 있으며, 문단의 끝에 是故 절목을 두어 중간 결론을 맺고 있다. 다만 여섯 번째 문단의 끝인 넷째 (64) 此謂 절목으로 하여 고본과 장구본에 빠져 있던 ‘此謂平天下 在治其國’으로 마치고 있는 점이 다르다.본래 장구본에는 전체 경문이 62절로 되어 있으나, 착간고정본에는 앞에서 언급한 10 마지막을 此謂 절목으로 보궐하고 장구본 9장에 있는 요순 절목 후반부의 是故 이하를 분리하여 독립된 절로 삼았으므로 64절의 구성 체계를 이루고 있다. 10장의 경우 장구본과 비교할 절목과 차례가 매우 많이 차이난다.右는 傳之十章이니 釋治國平天下하다(24)

經文>00-01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00-02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는 先治其國하고 欲治其國者는 先齊其家하고 欲齊其家者는 先修其身하고 欲修其身者는 先正其心하고 欲正其心者는 先誠其意하고 欲誠其意者는 先致其知하니 致知는 在格物하니라 00-03 物格而后에 知至하고 知至而后에 意誠하고 意誠而后에 心正하고 心正而后에 身修하고 身修而后에 家齊하고 家齊而后에 國治하고 國治而后에 天下平이니라<傳文>1. 明明德01-01 康誥에 曰克明德이라 하며01-02 太甲에 曰顧寔天之明命이라 하며01-03 帝典에 曰克明峻德이라 하니01-04 皆自明也 ㅣ니라2. 親民02-01 湯之盤銘에 曰苟日新이어든 日日新하고 又日新이라 하며02-02 詩曰 周雖舊邦이나 其命維新이라 하며02-03 康誥에 曰作新民이라 하니02-04 是故로 君子는 無所不用其極이니라3. 止於至善03-01 詩云 緡蠻黃鳥여 止于丘隅라 하야늘 子ㅣ曰 於止에 知其所止로소니 可以人而不如鳥乎아03-02 詩云 邦畿千里여 惟民所止라 하니라03-03 詩云 穆穆文王이여 於緝熙敬止라 하니 爲人君엔 止於仁하시고 爲人臣엔 止於敬하시고 爲人子엔 止於孝하시고 爲人父엔 止於慈하시고 與國人交엔 止於信이러시다03-04 詩云 於戱라 前王不忘이라 하니 君子는 賢其賢而親其親하고 小人은 樂其樂而利其利하나니 此以沒世不忘也ㅣ니라4. 格物04-01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면 則近道矣리라04-02 其本이 亂而末治者ㅣ 否矣며 其所厚者에 薄이오 而其所薄者에 厚하리 未之有也ㅣ니라04-03 故로 自天子以至於庶人히 壹是皆以修身爲本이니라04-04 此謂物格이니라5. 致知05-01 知止而后에 有定이니 定而后에 能靜하며 靜而后에 能安하며 安而后에 能慮하며 慮而后에 能得이니라05-02 詩云 瞻彼淇澳한대 菉竹猗猗로다 有斐君子여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라 瑟兮僩兮며 赫兮喧兮니 有斐君子여 終不可諠兮라 하니 如切如磋者는 道學也ㅣ오 如琢如磨者는 自修也ㅣ오 瑟兮僩兮者는 恂慄也ㅣ오 赫兮喧兮者는 威儀也ㅣ오 有斐君子終不可諠兮者는 道盛德至善을 民之不能忘也ㅣ니라05-03 子曰 聽訟이 吾猶人也ㅣ나 必也使無訟乎저하시니 無情者ㅣ 不得盡其辭는 大畏民志니 此謂知本이니라05-04 此謂知之至也ㅣ니라6. 誠意06-01 所謂誠其意者는 毋自欺也ㅣ니 如惡惡臭하며 如好好色이 此之謂自謙이니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ㅣ니라06-02 小人이 閒居에 爲不善호대 無所不至하다가 見君子而后에 厭然揜其不善하고 而著其善하나니 人之視己ㅣ 如見其肺肝이니 然則何益矣리오 此謂誠於中이면 形於外니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ㅣ니라06-03 康誥에 如保赤子라 하니 心誠求之면 雖不中이나 不遠矣니 未有學養子而后에 嫁者也ㅣ니라06-04 富潤屋이오 德潤身이라 心廣體胖하나니 故로 君子는 必誠其意니라7. 正心修身07-01 所謂修身이 在正其心者는 身이 有所忿懥則不得其正하고 有所恐懼則不得其正하고 有所好樂則不得其正하고 有所憂患則不得其正이니라07-02 曾子ㅣ 十目所視며 十手所指니 其嚴乎07-03 心不在焉이면 視而不見하며 聽而不聞하며 食而不知其味니라07-04 此謂修身이 在正其心이니라8. 修身齊家08-01 所謂齊其家ㅣ在修其身者는 人이 之其所親愛而辟焉하며 之其所賤惡而辟焉하며 之其所畏敬而辟焉하며 之其所哀矜而辟焉하며 之其所敖惰而辟焉하나니 故로 好而知其惡하며 惡而知其美者ㅣ 天下에 鮮矣니라08-02 故로 諺에 有之하니 人이 莫知其子之惡하며 莫知其苗之碩이라 하니라 08-03 好人之所惡하며 惡人之所好ㅣ 是謂拂人之性이라 菑必逮夫身이니라08-04 此謂身不修면 不可以齊其家니라9. 齊家治國09-01 所謂治國이 必先齊其家者는 其家를 不可敎ㅣ오 而能敎人者ㅣ 無之하니 故로 君子는 不出家而成敎於國하나니 孝者는 所以事君也ㅣ오 弟者는 所以事長也ㅣ오 慈者는 所以使衆也ㅣ니라09-02 一家ㅣ 仁이면 一國이 興仁하고 一家ㅣ 讓이면 一國이 興讓하고 一人이 貪戾면 一國이 作亂하나니 其機如此하나니 此謂一言이 僨事ㅣ며 一人이 定國이니라09-03 詩云 樂只君子여 民之父母라 하니 民之所好를 好之하며 民之所惡를 惡之이 此之謂民之父母니라09-04 故로 治國이 在齊其家니라09-05 詩云 桃之夭夭여 其葉蓁蓁이로다 之子于歸여 宜其家人이라 하니 宜其家人而后에 可以敎國人이니라09-06 詩云 宜兄宜弟라 하니 宜兄宜弟而后에 可以敎國人이니라 09-07 詩云 其儀不忒이라 正是四國이라 하니 其爲父子兄弟ㅣ 足法而后에 民이 法之也ㅣ니라09-08 此謂治國이 在齊其家니라10. 治國平天下10-01 所謂平天下ㅣ 在治其國者는 上이 老老而民이 興孝하며 上이 長長而民이 興弟하며 上이 恤孤而民이 不倍하나니 是以로 君子는 有絜矩之道也ㅣ니라10-02 所惡於上으로 毋以使下하며 所惡於下로 毋以事上하며 所惡於前으로 毋以先後하며 所惡於後로 毋以從前하며 所惡於右로 毋以交於左하며 所惡於左로 毋以交於右ㅣ 此之謂絜矩之道니라10-03 堯舜이 帥天下以仁하신데 而民이 從之하고 桀紂ㅣ 帥天下以暴한대 而民이 從之하니 其所令이 反其所好ㅣ면 而民이 不從하니라10-04 是故로 君子는 有諸己而後에 求諸人하며 無諸己而後에 非諸人하나니 所藏乎身이 不恕ㅣ오 而能喩諸人者ㅣ 未之有也ㅣ니라10-05 詩云 節彼南山이여 維石巖巖이로다 赫赫師尹이여 民具爾瞻이라 하니 有國者ㅣ 不可以不愼이니 辟則爲天下僇矣니라10-06 詩云 殷之未喪師에 克配上帝러니 儀監于殷이어다 峻命不易라 하니 道得衆則得國하고 失衆則失國이니라10-07 康誥에 曰惟命은 不于常이라 하니 道善則得之하고 不善則失之矣니라10-08 是故로 君子ㅣ 有大道하니 必忠信以得之하고 驕泰以失之니라10-09 德者는 本也ㅣ오 財者는 末也ㅣ라10-10 外本內末이면 爭民施奪이니라10-11 仁者는 以財發身하고 不仁者는 以身發財니라10-12 是故로 君子는 先愼乎德이니 有德이면 此有人이오 有人이면 此有土ㅣ오 有土면 此有財ㅣ오 有財면 此有用이니라10-13 生財ㅣ 有大道하니 生之者ㅣ 衆하고 食之者ㅣ 寡하며 爲之者ㅣ 疾하고 用之者ㅣ 舒하면 則財恒足矣리라10-14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ㅣ니 未有好義ㅣ오 其事不終者也ㅣ며 未有府庫財ㅣ 非其財者也ㅣ니라10-15 長國家而務財用者는 必自小人矣니 彼爲善之小人之使爲國家면 菑害幷至라 雖有善者나 亦無如之何矣니 此謂國은 不以利爲利요 以義爲利也ㅣ니라10-16 是故로 財聚則民散하고 財散則民聚니라10-17 楚書에 楚國은 無以爲寶요 惟善을 以爲寶라 하니라10-18 舅犯이 亡人은 無以爲寶요 仁親을 以爲寶라 하니라10-19 孟獻子ㅣ曰 畜馬乘은 不察於鷄豚하고 伐氷之家는 不畜牛羊하고 百乘之家는 不畜聚斂之臣하나니 與其有聚斂之臣으론 寧有盜臣이라 하니 此謂國은 不以利爲利요 以義爲利也ㅣ니라10-20 是故로 言悖而出者는 亦悖而入하고 貨悖而入者는 亦悖而出이니라10-21 秦誓에 若有一个臣이 斷斷兮요 無他技나 其心이 休休焉한지 其如有容焉이라 人之有技를 若技有之하며 人之彦聖을 其心好之ㅣ 不啻若自其口出이면 寔能容之라 以能保我子孫黎民이니 尙亦有利哉 人之有技를 媢疾以惡之하며 人之彦聖을 而違之하야 俾不通이면 寔不能容이라 以不能保我子孫黎民이니 亦曰殆哉10-22 唯仁人이야 放流之하야 迸諸四夷하야 不與同中國하나니 此謂唯仁人이야 爲能愛人하며 能惡人이니라10-23 見賢而不能擧하며 擧而不能先이 命也ㅣ오 見不善而不能退하며 退而不能遠이 過也ㅣ니라10-24 此謂平天下ㅣ 在治其國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