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스크랩] 대학-24 <대학> 大學章句序

ria530 2014. 7. 28. 19:30
대학-24 <대학> 大學章句序

     (9)
  나는 비록 명민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또한 다행히 사숙하여 이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정리한 책을 돌이켜보면 오히려 잘못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이에 나의 고루함을 잊고서 여러 학설을 모아 편집하고, 그  사이에 또한 조심스레 나의 의견을 덧붙여 빠지거나 생략된 문장을 보완하고 후세의 군자를 기다리는 바이다.

 

이는 지극히 참람하고 주제넘은 일이어서 그 죄를 피할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국가에서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려는 뜻과 학자들이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에 있어서는 작은 보탬이나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순희(효종연호) 기유(1189) 2월 갑자일에 신안 주희 서문을 씀.

  雖 以 熹 之 不 敏 으로도    亦 幸 私 淑 而 與 有 聞 焉 이로되   顧 其 爲 書
  
  猶 頗 放 失 일세    是 以 忘 其 固 陋 하고     采 而 輯 之 하며   間 亦 竊 附
  
  己 意 하야    補 其 闕 略 하고     以 俟 後 之 君 子 하노니     極 知 僭 踰 無
  
  所 逃 罪 나   然 於 國 家 化 民 成 俗 之 意 와   學 者 修 已 治 人 之 方 엔
  
  則 未 必 無 小 補 云 이라.
  
                  淳 熙  己 酉   二 月  甲 子 에    新 安   朱 熹 는  序 하노라.

   [여설]

  이는 주자가 정자의 뒤를 이어 <章句>를 저작하게 된 본의를 서술하고 있다 주자는 직접 二程을 사사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四傳 제자로서 사숙(程이-->楊時-->羅從彦-->李통-->朱熹)을 통해서 이를 얻어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二程이 <예기>속에 묻혀 있던 이 책을 뽑아낸 그 공로는 지대하다, 하지만 그 가 정리한 <대학>에는 잘못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이 때문에 주자는 많은 학설을 채집하여 이를 편집하기에 이르렀고 또한 <格物致知>장이 누락되어 있어 그 사이에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덧붙혀 傳文 제5장을 보완하고 후일 보다 나은 군자가 나오기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이 같은 일은 지극히 주제 넘는 일로서 聖經賢傳을 모독한 죄, 피할 수 없다는 점도 알고 있으나 이의 정리가 국가 백성의 교화와 풍속의 순화, 학자의 修己治人의 방법에는 도움이 되는 바 없지 않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한 修己治人 네 글자는 <대학>의 體用(명덕, 신민)과 綱目(삼강령.  팔조목)을 모두 포괄한 말이다.

  이 서문은 주희가 세상을 떠나기 11년전 순희 16년(1189), 당시 60세에 쓴 글이다. 다시 말하면 주희는 乾道 3년(1167년 당시38세)에 <대학장구>의 저술에 착수하여 순희元年(1175, 당시 45세)에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의 초고를 완성했으나, 그 후에도 끊임 없이 고쳐 오다가 순희 16년 耳順의 나이에 이르러 이 서문을 쓰게 된것이다.

 

그러나 그 후로도 이에 대한 訂正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것은 黃幹의 <朱子行狀>에 보이듯이 慶元 6년(1200) 3월 6일 병상에 몸져 누어서 까지도  <대학. 성의장>의 주해 가운데 세 글자를 고친후 絶筆하였고 3일 뒤인 3 월 9일 에 他界하였다. 이렇듯 "평생의 정력을 모두 이 책에 쏟았다." 라는 주자 자신의 말처럼 그는 죽음과 동시에 이 책과 영원히 떠난것이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 까지 <대학>의 책갈피 위에서 그의 정신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한다.


출처 : 전주향교(全州鄕校)
글쓴이 : 운영자 원글보기
메모 :

'대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대학-37 <대학> 大學讀法  (0) 2014.07.28
[스크랩] 대학-31 <대학> 大學讀法  (0) 2014.07.28
[스크랩] 대학-15 <대학> 해설  (0) 2014.07.28
대학  (0) 2013.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