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스크랩] 대학-15 <대학> 해설

ria530 2014. 7. 28. 16:49
대학-15 <대학> 해설
    7, 본 국역의 체제와 의의.

  (3) <大學講語>

  이는 倭亂期에 來援한 明軍官 經略 宋應昌의 咨文에 의해 그의 軍門에 招致된 春坊學士 月沙 李廷龜, 秋浦 黃愼, 於于 柳夢寅과 明軍官들과의 講論을 통해 엮어진  책으로 주자학과 양명학의 상이한 입장에서  쓰인 진귀한 대조 저작물이다.

  명군관들은 대체로 강남 사람의 활돌이 많았고 그 중에는 양명학자가 많았던 것도 두드러진 사실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송응창과 王君榮이다 , 송응창(1536~1606)은 자는 時祥, 호는 桐岡, 으로 浙江 仁和 사람이다. 그는 倭患을 예견한 先見之明이 인정되어 兵部右侍郞, 經略으로 우리나라에 부임하였다가 곧 兵部尙書 石星의 封貢撤兵議와 그의 留兵協守議가 맞지 않아서 퇴임하여 귀국한 인물로서 부임 중에 춘방학사를 불러들인 장본인 이며, 황군영은 山西 太原사람으로 송응창 휘하 통판으로 부임한 인물로서 월사와 <대학>을 강론한뒤 조목조목 강어를 붙인 자이다. 그들은 모두가 완고한 王學人 들이었고, 이에 반대 월사 이하 우리나라의 춘방학사 또한 확고부동한 朱學人 이었다.

  송응창이 <대학>의 경1장에서부터 전10장에 이르기까지 장마다 주를 써서 <대학연의>와 같이 지어 달라는 요청에 대하여 춘방학사들은 여전히 "程朱 兩夫子의 講定에는  모든 것이 밝혀져 餘蘊이 없고 先儒 諸說이 모두 망라되었으니, 이 밖에 한 마디도 더할 것이 없다," 라는 입장을 고수하자 송응창은 "그대들이 배웠던 바를 따라 강론하되 宋儒의 陳言腐言은 답습하지 말고 흉중에서 유출된 참신한 말로써 따로 이책을 완성하도록 하자." 라고 하였다.

  전란의 경황중에서 '춘방학사가 경문 제1장의 講語를 지어서 보내자 송응창도 스스로 장어를 지어서 막료인 通判 王君榮에게 이를 기록하여 전하도록 하였다. 그후 柳夢寅은 持平으로 陞進하여 먼저 귀한한 뒤에 黃愼과 이정구는 송응창의 막하에서 3월에서 9월까지 머물렀으나 송응창의 귀환에 따라 중단 되었던 것 같다.

  한편 송응창은 귀국 후에 이 <대학가어>를 刊刻하여 일부는 行在所, 일부는 춘방학사에게 보냈지만 정유재란으로 散佚되었다. 다만 <月沙集> 19권에 그 원초본과 강어의 전말이 책머리에 실려 있을 뿐이다.

  경1장에서 전10장에 걸쳐 월사의 강론에 뒤이어 붙인 왕통판의 강어는 修己.治人에 두고 用力의 방법을 知行竝進에 둔 데 대하여 왕통판 또한 用力을 致知 力行에 두되 知行과 治人 修己를 하나로 보얐으며, 傳首章의 통판의 강어에서는 "마음이 곧 이치이다. 천하에 또한 마음 밖의 일과 마음 밖의 이치가 있을 수 있겠는가(心卽理也, 天下又有心外之事 心外之理乎)" 라고 하여, 양명의 心卽理說을 따랐다. 그리고 월사가 주자의 의견을 따라 本原 工夫 功效 3등분으로 분리하여 이를 해석한 데 대하여 통관은 克明德과 天之明命을 들어 一德一明 밖에는 他賦와 二功이 없다 하여 三聖의 性이 동일함을 강조하였다.

  하늘이 제앙을 내심에 일덕의 밖에 그 어느 다른 것을 부여한바 없고, 학문은 제왕에게 있으매 하나의 밝음 밖에 또 다른 공부(二功)가 있을 수 없다. 세대에는 고금의 차이가 있지만 이 덕과 이 밝음은 고금의 차이가 있을 수 없고, 덕에는 性之者와 反之者의 차이가 있다지만 이 덕과 이 맑음에는 성지자와 반지자에 의해 달라질 수 없다. 세 인용서가 다르다 하지만 세 성인이 동일하지 않은 바 없었노라.

  전2장 親(新)民에 관해서도 월사는 일신의 공부를 <중용>에 연계지어 신민에 대한 自警의 공부로 보았던 데 대하여 통판은 이를 新. 民. 天命에 연결지어 재위자는 자신에게 근본하고 백성에게 체험하여 천명에까지 이르는 것이므로 一毫의 私欲이 없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제5장 補亡章에 대해서 월사는 心을 理와 物을 연결시키고 理를 體와 用으로 분리하여 心의 작용을 강조한 주자를 두둔한 데 대하여 통판은 心과 理를 하나로 묶어 보았다.

  이상의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보더라도 朱學과 王學의 뚜렸한 상이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朱. 王의 전혀 다른 입장에서 한 권이 책으로 묶여 있는 , 더욱이 상이한 의견을 고집한 朝 明의 학자, 즉 국제적인 학술토론의 장을 마련하여 이를 간행했다는 것은 宋明 羅麗 이후 수 많읁 문헌 가운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문헌이라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는 明宣間의 양명학의 대두와 강화학파의 형성이라는 중간지표의 매개에 그치지 않고 조선조 주자학의 이해와 양명학의 대조라는 데에서 앞으로의 보다 깊이 있는 연구가 기대되는 바이다.

출처 : 전주향교(全州鄕校)
글쓴이 : 운영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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