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 孟子 將朝王이러시니 王이 使人來曰 寡人이 如就見者也라니 有寒疾이라 不可以風일새 朝將視朝호리니 不識게이다 可使寡人으로 得見乎잇가 對曰 不幸而有疾이라 不能造朝로소이다
맹자가 장차 왕을 뵈려 하는데 왕이 사람을 보내와 가로대 “과인이 나아가 마땅히 보려 하였으나 찬병(감기)이 있어 (가히 써) 바람을 쐬지 못하기에 아침에 장차 조회를 보려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과인으로 (하여금) (얻어) 그대를 볼 수 있겠습니까?” 하니, (이에 맹자) 대답하여 가로대 “불행히도 병이 있어 능히 조회에 나가지 못하니이다.” 하니라.
如 : 여기서는 마땅히(宜, 當)의 뜻 |
▲ 王은 齊王也라. 孟子 本將朝王이러시니 王이 不知而託疾하야 以召孟子라. 故로 孟子 亦以疾辭也시니라.
왕은 제나라 임금이라. 맹자가 본래 장차 왕을 뵈려 하였으나 왕이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병을 핑계해서 (써) 맹자를 부르느니라. 이에 맹자 또한 병으로써 사양하시니라.
○ 明日에 出弔於東郭氏러시니 公孫丑曰 昔者에 辭以病하시고 今日弔 或者不可乎인뎌 曰昔者疾이 今日愈어니 如之何不弔리오
이튿날에 (맹자가) 나가서는 동곽씨에게 조문하시니, 공손추 가로대 “ 어제에 병으로써 사양하시고 오늘 조문하심이 혹 옳지 않은신 것이 아닙니까?” 하니, (맹자) 가로대 “ 어제 병이 오늘은 나았으니 어찌 조문하지 않겠는가?” 하니라. |
▲ 東郭氏는 齊大夫家也라. 昔者는 昨日也라. 或者는 疑辭라 辭疾而出弔는 與孔子不見孺悲하시고 取瑟而歌로 同意라.
동곽씨는 제나라 대부집이라. 석(昔)은 어제이라. 혹(惑)은 의아해하는 말이라. 병을 핑계로 사양하고는 나가서 조문함은 공자가 유비를 보지 않으시되 거문고를 취해서 노래하심과 (더불어) 뜻이 같음이라.
<해설>
‘孔子不見孺悲하시고 取瑟而歌’는『논어』「陽貨」에 나오는 내용이다. “孺悲欲見孔子어늘 孔子辭以疾하시고 將命者出戶어늘 取瑟而歌하사 使之聞之하시니라(유비가 공자를 뵈려고 하였거늘 공자 병으로써 사양하시고 장차 명을 받든 자가 문밖으로 나가거늘 거문고를 취해서 노래하사 유비로 하여금 듣게 하시니라).”
孺悲는 공자에게 士喪禮를 한때 배운 제자이나 정치는 못하면서 개인적 야심이 강했던 노나라 哀公의 신하이다. 이에 공자는 그를 매우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런데 어느날 유비가 공자를 만나 뵈려 찾아왔으나 공자는 병이 있다는 핑계로 만나기를 거절하였다. 심부름하는 이가 그 말을 유비에게 전달하려 나가자 이때 공자가 유비가 들으라는 듯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이는 공자가 실제로 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비를 만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맹자 역시 공자를 본받아 병을 핑계로 제나라 왕을 만나지 않은 것이다. |
○ 王이 使人問疾하시고 醫來어늘 孟仲子 對曰 昔者애 有王命이어시늘 有采薪之憂라 不能造朝러시니 今病少愈어시늘 趨造於朝하더시니 我는 不識게라 能至否乎아 하고 使數人으로 要於路曰 請必無歸而造於朝하소서
왕이 사람을 시켜 병을 물으시고 의원이 오거늘 맹중자가 대답하여 가로대 “어제 왕명이 있었지만 채신(采薪)의 병이 있음이라. (이에) 조회를 나갈 수 없었으나 이제 병이 조금 나으셔 달려가 조회에 나아 가셨으니 능히 이르셨는지 아닌지는 알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리고는) 몇 사람으로 하여금 길목에서 지키고 있다가 (맹자를 만나면) ‘돌아오지 마시고 반드시 조정에 나가시도록 청하라’고 하니라. |
<해설>
왕은 정말 맹자가 병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의원을 보냈으나 집안에 맹자는 없고 맹중자만 있었다. 맹중자는 맹자를 위해 采薪之憂란 말로 변명하였다. 采薪之憂란 겨우 나뭇가지 하나 꺾을 만한 근력도 없을 만큼의 근심으로 병자가 자신의 병을 겸손해하는 의미로 쓰인다.
맹중자는 采薪之憂란 말로 둘러대면서 맹자가 이제 겨우 조금 나아서 조회에 나가셨는데 조정에 도착하셨는지 아직 도착하지 못하셨는지는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입을 맞추기 위해 얼른 몰래 두어 사람을 시켜 맹자에게 보냈다. 맹자에게 집으로 오지 말고 조회에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 孟仲子는 趙氏 以爲孟子之從昆弟니 學於孟子者也라. 采薪之憂는 言病不能采薪이니 謙辭也라. 仲子 權辭以對하고 又使人으로 要孟子호대 令勿歸而造朝하야 以實己言이라.
맹중자는 조씨가 이르기를 ‘맹자의 사촌형제간로 맹자에게서 배웠음이라’하니라. 채신지우(采薪之憂)는 병이 능히 나무를 꺾지 못할 정도임을 말함이니 겸손의 말이라. 맹중자가 임의의(편법) 말로 (써) 대답하고 또 사람을 시켜서 맹자에게 요청하되 돌아오지 말고 조회에 나가서 자기의 말을 실증하게 함이라.
○ 不得已而之景丑氏하야 宿焉이러시니 景子曰 內則父子오 外則君臣이 人之大倫也니 父子는 主恩하고 君臣은 主敬하니 丑이 見王之敬子也오 未見所以敬王也케이다 曰 惡라 是何言也오 齊人이 無以仁義與王言者는 豈以仁義로 爲不美也리오 其心에 曰 是何足與言仁義也云爾則不敬이 莫大乎是하니 我는 非堯舜之道어든 不敢以陳於王前하노니 故로 齊人이 莫如我敬王也니라
부득이해서 경추씨에게 가서 주무시더니 경자 가로대 “안에서는 부자간의 도리요 밖에서인즉 군신간의 도리가 사람의 큰 윤리이니, 부자는 은혜를 주로 하고 군신은 공경을 주로 하니, 제(추)가 왕께서 선생님을 공경함은 보았으나 (선생께서) (써) 왕을 공경하는 바는 보지 못했습니다.” 하니,
(맹자) 가로대 “아니라, 이 무슨 말인고, 제나라 신하가 仁義로써 왕과 더불어 말하는 이가 없는데 (이것이) 어찌 (제나라 신하가) 인의로써 아름답지 못하다고 여겨서이겠는가? (다만) 그 (신하) 마음에 이르기를 ‘이 어찌 족히 왕과 더불어 仁義를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여겨서 일터인데 그렇다면 공경치 못함이 이보다 더 큼이 없음이라. 나는 요순의 도가 아니거든 감히 (써) 왕 앞에 진언을 하지 않으니 따라서 제나라 신하가 내가 왕을 공경하는 것만 같지 못함이라.” 하니라. |
<해설>
맹자가 경추씨 집에서 주무시고 난 다음날 경추씨가 임금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 맹자를 보고 “왕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을 보았지만 선생님은 왕을 공경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라며 은근히 맹자를 꼬집었다. 그러자 맹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왕이 맹자가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칭병을 핑계로 맹자가 먼저 오기를 바랬다. 이를 안 맹자 또한 칭병을 핑계로 왕을 알현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제나라 신하 누구 한 사람도 칭병을 한 왕에 대해 인의로써 정치를 하도록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는 제나라 신하들이 인의를 나쁘게 여겨서가 아니라, 왕에게 그러한 말을 해보았자 소용이 없다고 여기고는 아예 간언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맹자가 자신은 요순의 도로써만 왕에게 진언하는데 반해, 제나라 신하는 인의로써 간언하지 않으니 이것이 오히려 더 불경한 행위임을 말하고 있다. |
▲ 景丑氏는 齊大夫家也라. 景子는 景丑也라 惡는 歎辭也라. 景丑所言은 敬之小者也오. 孟子所言은 敬之大者也라.
경추씨는 제나라 대부집이라. 경자는 경추라. 오(惡)는 탄식하는 말이라. 경추가 말한 바는 공경의 적은 것이오, 맹자가 말한 바는 공경의 큰 것임이라.
○ 景子曰 否라 非此之謂也라 禮에 曰 父召어시든 無諾하며 君이 命召어시든 不使駕라 하니 固將朝也라가 聞王命而遂不果하시니 宜與夫禮로 若不相似然하이다
경자 가로대 “아닙니다. 그것을 말함이 아닙니다. 『예기』에 이르기를 ‘아비가 부르시거든 머뭇거리지 말며, 인군이 명으로 부르거시든 말에 멍에를 달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하였으니, (선생님께서) 진실로 장차 (왕께)조회를 하려다가 임금의 명을 듣고서 드디어는 조회를 하지 않으시니 마땅히 (무릇) 예와 (더불어) 서로 같지 않은 듯하여이다.” 하니라. |
▲ 禮에 曰父 命呼어시든 唯而不諾이라 하고 又曰君이 命召어시든 在官에 不俟屨하고 在外에 不俟車라 하니 言孟子 本欲朝王이라가 而聞命中止하시니 似與此禮之意로 不同也라 하니라.
『예기』에 이르기를 ‘아비가 명하여 부르거시든 빨리 대답하고 머뭇거리지 아니하라’ 하고, 또 가로대 ‘인군이 명으로 부르거시든 관청(조정안)에 있을 시는 신발 신기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밖(궁궐밖)에 있어서는 수레를 기다리지 않는다’ 하니, ‘맹자가 본래 왕께 조회를 하고자 하셨다가 명을 듣고 중지하시니 흡사 이 예의 뜻과는 (더불어) 같지 않음’을 말함이라 하니라. (唯 : 빨리 대답할 유 屨 : 신 구)
○ 曰 豈謂是與리오 曾子曰 晉楚之富는 不可及也나 彼以其富어든 我以吾仁이오 彼以其爵이어든 我以吾義니 吾何慊乎哉리오 하시니 夫豈不義를 而曾子 言之시리오 是或一道也니라 天下에 有達尊이 三이니 爵一齒一德一이니 朝廷엔 莫如爵이오 鄕黨엔 莫如齒오 輔世長民엔 莫如德이니 惡得有其一하야 以慢其二哉리오 (慊 : 부족할 겸, 恨할 겸)
(맹자) 가로대 “어찌 이를 이름이리오. 증자 가로대 ‘(내가) 진나라 초나라의 부(富)에는 가히 미치지 못하나 저들이 (그) 富로써 (나를) (대)하거든 나는 내 仁으로써 하고, 저들이 (그) 벼슬로써 하거든 나는 내 義로써 할지니 내 어찌 부족하다 하리오’ 하시니, (무릇) (이것이) 어찌 의롭지 못함만을 증자께서 말씀하신 것이겠소, 이것도 혹 하나의 도리(방법)임을 말한 것이라. 천하에 존귀함에 달한 것이 셋이니, 벼슬이 하나요, 연치(나이)가 하나요, 덕이 하나이니, 조정엔 벼슬만한 것이 없고, 향당엔 연치만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데는 德만한 것이 없으니, 그 어찌 하나를 (얻어) 두어서 (써) 그 둘을 거만하고 소홀하게 대하리오” 하니라. |
▲ 慊은 恨也며 少也니 或作嗛이니 字書에 以爲口銜物也라 하니 然則慊亦但爲心有所銜之義니 其爲快爲足爲恨爲少는 則因其事하야 而所銜이 有不同耳라 孟子言 我之意는 非如景子之所言者라 하시고 因引曾子之言而云하사대 夫此豈是不義를 而曾子 肯以爲言이시리오. 是或別有一種道理也라 하시니라. 達은 通也니 蓋通天下之所尊이 有此三者하니 曾子之說은 蓋以德言之也라. 今齊王但有爵耳니 安得以此로 慢於齒德乎아
겸(慊)은 한(恨)스러워하는 것이며 적음이니 혹 嗛으로도 쓰니 자서(字典)에 ‘(써) 입에 재갈을 물림이라’ 하니 그런즉 겸(慊)은 (또한) (단지) 마음에 재갈을 먹인 바의 뜻이 있음이니 (그) 쾌(快)도 되고 족(足)도 되고 한(恨)도 되고 적음도 되는 것은 곧 그 일로 인하여 재갈 먹인 바가 같지 않음이 있음이라. 맹자가 “나의 뜻은 경자가 말한 바와 같지 않다” 말씀하시고, 증자의 말씀을 因하여 (이를) 인용하여 이르시되 “무릇 (이) 어찌 의롭지 않음을 증자가 즐기어 (써) 말씀하셨으리오, (이) 혹 별도로 일종의 도리가 있음이라” 하니라. 達은 통함이니 대개 천하에 통하는 존귀한 바가 (이) 셋이 있으나 증자의 말씀은 (대개) 덕으로써 말씀하심이라. 이제 제나라 왕에게는 다만 벼슬만 있으니 어찌 (얻어) 이(벼슬)로써만 연치와 덕을 거만하고 소홀하게 대하는가? 하시니라. (嗛 : 싫어할 겸 銜 : 재갈 먹일 함)
○ 故로 將大有爲之君은 必有所不召之臣이라 欲有謀焉則就之하나니 其尊德樂道 不如是면 不足與有爲也니라
이에 장차 큰 일을 함을 두는 인군은 반드시 (함부로) 부르지 못할 바의 신하가 있음이라. 도모(의논)하고자 함이 있은즉 그에게 나아가나니, (그) 덕을 높이고 도를 즐거워함이 이와 같지 아니하면 족히 (더불어) 큰 일을 함을 두지 못할지니라. |
▲ 大有爲之君은 大有作爲 非常之君也라.
큰 일을 하옴을 두는 인군은 크게 할 일을 만드는 비상한 인군이라.
▲ 程子曰 古之人은 所以必待人君이 致敬盡禮而後에 往者는 非欲自爲尊大也오 爲是故耳라.
정자 가로대 “옛적의 사람이 (써한 바) 반드시 인군이 공경을 이루고 예를 다하기를 기다린 뒤에 감은 스스로 존대하고자 함이 아니오 다만 이 尊德樂道 때문이니라.” 하니라.
○ 故로 湯之於伊尹에 學焉而後에 臣之 故로 不勞而王하시고 桓公之於管仲에 學焉而後에 臣之故로 不勞而覇하니라
이런 까닭으로 탕임금이 이윤에게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은 고로 수고롭지 아니하고 왕노릇하시고, 환공이 관중에게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은 고로 수고롭지 아니하고 패자가 되었느니라. |
▲ 先從受學은 師之也오. 後以爲臣은 任之也라.
먼저 좇아서 배움을 받은 것은 그를 스승으로 받든 것이고, 뒤에 (써) 신하로 삼음은 책임(중책)을 맡김이라.
○ 今天下 地醜德齊하야 莫能相尙은 無他라 好臣其所敎而不好臣其所受敎니라
이제 천하가 토지가 같고 덕이 가지런해서(비슷해서) 능히 서로 뛰어남이 없음에 다르지 않음이라. 그 (왕이) 가르치는 바의 신하는 좋아하고, 그 (왕이) 가르침을 받아야 할 바의 신하는 좋아하지 않음이라. |
<해설>
지금 천하가 곧 맹자 당시의 전국시대의 나라들이 땅도 비슷하고 정치하는 것도 비슷하여 뛰어남이 없고 발전적인 나라가 없는 것은, 임금이 신하를 가르치려만 들고 신하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
▲ 醜는 類也라. 尙은 過也라. 所敎는 謂聽從於己하야 可役使者也오. 所 受敎는 謂己之所從學者也라.
추(醜)는 같음이라. 상(尙)은 넘어섬이라. 가르치는 바(所敎)는 자기 말을 듣고 쫒기에 사역시킬 수 있는 것을 이름이오, 가르침을 받는 바(所受敎)는 자기가 좇아서 배워야 할 바가 있는 것을 이름이라.
○ 湯之於伊尹과 桓公之於管仲에 則不敢召하니 管仲도 且猶不可召온 而況不爲管仲者乎아
탕임금이 이윤에게 그리고 환공이 관중에 대하여 (곧) 감히(함부로) 부르지 못했으니 관중에 대해서도 (또한) 오히려 부르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관중을 하지(본받을 인물로 여기지) 않는 자(내게)에 있어서야 오직 하겠는가? |
<해설>
왕도정치를 폈던 탕임금에게 이윤은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였으며, 제환공이 패도정치를 이룩하도록 도운 관중 역시 제환공에게는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였다. 그런데 맹자는 패도정치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며 패도정치를 주도한 관중을 의도적으로 경원시했다. 이에 자신이 경원시하는 관중같은 자도 부르지 못하는 신하였거늘, 하물며 왕도정치를 부르짖는 나(맹자)야말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라며 경추를 공박하고 있다. |
▲ 不爲管仲은 孟子 自謂也라. 范氏曰 孟子之於齊에 處賓師之位하야 非當仕有官職者라. 故로 其言이 如此하시니라.
‘관중을 삼지 않았다’는 맹자가 스스로를 이르심이라. 범씨 가로대 “맹자가 제나라에서 국빈과 스승의 지위에 처해서 벼슬을 담당하거나 관직에 있음이 아니기에 그 말씀이 이와 같으시니라.”하니라.
▲ 此章은 見賓師 不以趨走承順爲恭하고 而以責難陳善爲敬하며 人君은 不以崇高富貴爲重하고 而以貴德尊士爲賢이니 則上下交而德業成矣라
이 장은 빈사(賓師)가 달려가 명을 잇고 순종하는 것으로써 공손함을 삼지 아니하고, 어려움을 책망하고 선을 베푸는 것으로써 공경을 삼으며, 인군은 숭고(崇高)와 富貴로써 중하게 여기지 않고 德을 귀히 여기고 선비를 높이는 것으로써 어짊으로 삼으니 그런즉 위 아래가 사귀고 덕업을 이룸을 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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