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해설] 이 글은 주역 계사하전 제2장의 “역이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하니라(易이 窮則變하고 變則通하고 通則久ㅣ라)”라는 이치에서 연유한 글임을 알 수 있다. 윗 글은 천도에 해당하는 ‘自誠明’ ‘天下至誠’이 첫째가 되는데, 지성으로 다할 수 없으면 그 다음에는 곡진함으로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열심히 노력하고 차근차근 다져나가는 곡진함이 있으면 능히 성실해져 밖으로 드러난다. 『대학』성의장에 “誠於中이면 形於外라(속마음에 성실하면 밖으로 드러나니라)”는 귀절과 같은 의미이다. 또한 지극한 정성이면 하늘을 감동시킨다(至誠感天)는 말처럼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어야 능히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주역 풍택중부(風澤中孚)괘의 어미학과 새끼 학의 믿음이 바로 이를 말한다.
其次는 通大賢以下凡誠有未至者而言也ㅣ라 致는 推致也ㅣ오 曲은 一偏也ㅣ라 形者는 積中而發外오 著則又加顯矣오 明則又有光輝發越之盛也ㅣ라 動者는 誠能動物이오 變者는 物從而變이오 化則有不知其所以然者라 蓋人之性이 無不同이나 而氣則有異라 故로 惟聖人이아 能擧其性之全體而盡之하고 其次則必自其善端發見之偏而悉推致之하야 以各造其極也ㅣ라 曲無不致則德無不實하야 而形著動變之功이 自不能已이니 積而至於能化하면 則其至誠之妙ㅣ 亦不異於聖人矣리라 ‘그 다음’이란 것은 대현 이하로(써 아래로) 통틀어 무릇 성실하고도 지극하지 못함이 있는 자를 말함이라. ‘치’는 미루어 이룸이오 ‘곡’은 한 편이라. ‘형’이라는 것은 중에 쌓아서 밖으로 나타남이오, ‘저’는 곧 또한 더욱 나타남이라, 밝으면 또한 광휘발월(빛남이 드러나 넘침)의 성함이 있음이라. 동하는 것은 성실함이 능히 물건을 움직임이오, 변한다는 것은 물건 따라 변하는 것이오, 화하면 그 소이연(연유)을 알지 못함이 있느니라. 대개 사람의 성품은 같지 않음이 없으나 기운이 곧 다름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오직 성인이라야 그 성품을 온전히 들어서 다하고, 그 다음은 곧 반드시 그 착한 단서가 발현되는 한쪽에서부터 모두 미루어 이루어 각각 그 극진함에 나아가느니라. 곡진함으로 이루지 않음이 없으면 덕이 실하지 않음이 없어 형체로 나타나 움직여 변하는 공이 스스로 능히 끝나지 못할 것이니, 쌓여서 능히 화하는 데까지 이르면 그 지극한 정성의 신묘함이 또한 성인과 다르지 않으리라.
右는 第二十三章이라
言人道也ㅣ라 사람의 도를 말함이라.
至誠之道는 可以前知니 國家將興에 必有禎祥하며 國家將亡에 必有妖孽하야 見乎蓍龜하며 動乎四體라 禍福將至에 善을 必先知之하며 不善을 必先知之니 故로 至誠은 如神이니라 지극한 정성의 도는 가히 써 앞일을 알 수 있으니, 국가가 장차 흥함에 반드시 상서로움이 있으며, 국가가 장차 망함에 반드시 재앙이 있어서 시초와 거북에 나타나며 사지(四肢)에 움직이느니라. 화와 복이 장차 이름에 선함을 반드시 먼저 알려 선하지 못함을 반드시 먼저 아느니, 그러므로 지극한 정성은 신과 같으니라.
禎祥者는 福之兆오 妖孼者는 禍之萌이라 蓍는 所以筮오 龜는 所以卜이라 四體는 謂動作威儀之間이니 如執玉高卑에 其容俯仰之類라 凡此는 蓋理之先見者也ㅣ라 然이나 唯誠之至極而無一毫私僞ㅣ 留於心目之間者라야 乃能有以察其幾焉이라 神은 謂鬼神이라 상서롭다는 것은 복의 징조요, 요얼이라는 것은 화의 싹이라. 시초는 서점(댓가지점, 주역점)이오, 거북은 거북점이라. 사체는 동작과 위의의 사이를 이르니, 옥을 잡는데 높고 낮게 함에 그 용모가 구부리고 우러르고 하는 종류와 같음이라. 대저 이것은 이치가 먼저 나타나는 것이라. 그러나 오직 정성이 지극하여 한 터럭 사사롭고 거짓됨이 마음과 눈 속에 머무름이 없는 자라야 이에 능히 그 기미를 살핌이 있느니라. 신은 귀신을 이름이라.
[앞주 해설] 시초라는 것은 주역에서 말하는 댓가지 50개로 점을 치는 것을 말하고 거북점은 거북의 등껍질을 불에 달궈 갈라지는 모습으로 점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사람은 늘 움직이는 동작을 하게 마련인데 그 움직임 속에서 그 사람의 모습을 알 수 있다. ‘執玉高卑에 其容俯仰之類’는 동작의 예를 든 것으로 『춘추좌씨전』定公 15년조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주(邾)나라 은공이 노(魯)나라로 조회를 왔는데 자공(공자 제자인 자사)이 이를 살폈다. 주나라 군주가 (예물인) 옥을 잡아 올림에 너무 높게 하여 얼굴이 너무 들렸고, 공(노나라 정공)은 옥을 받음에 너무 낮게 하여 얼굴이 너무 숙여졌다. 자공이 이것을 보고는 ‘예의를 차리는 거동을 보아서는 두 군주는 모두 곧 돌아가실 것이다. 예의는 사람이 죽고 살고, 나라가 보존되고 망하는 기본인 것이다. 손발을 좌우로 내고, 몸을 돌리며, 앞으로 나가고 뒤로 물러서고, 위를 쳐다보고 아래를 굽어보는 것으로 곧 죽을 것인가 오래 살 것인가를 알아보고, 조정에서의 거동, 제사지내는 태도, 服喪하는 자세, 軍事에서의 행동으로 나라를 지킬 것인가 망칠 것인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정월달에 서로 우호를 위하여 만나, 다 법도를 지키지 못했으니 마음은 이미 잃고 있는 것이다. 좋은 일에 근본을 지키지 못했는데 어찌 오래 살 수가 있으랴. 물건을 높이 들어 온몸이 위로 올라가는 것은 교만함을 나타냄이고, 몸을 낮추어 아래로 굽힘은 기운이 빠졌음을 나타냄이다. 교만 부림은 난리를 일으키기 쉽고, 기운이 빠졌음은 병 들기 쉬운 것이다. 군(정공)이 주인이 되니, 먼저 돌아가실 것이다(十五年春에 邾隱公來朝라 子貢觀焉에 邾子執玉高하여 其容仰하고 公受玉卑하여 其用俯라. 子貢曰 以禮觀之면 二君子皆有死亡焉하리라 夫禮死生存亡之體也라 將左右周旋進退俯仰於是乎取之하고 朝祀喪戎於是乎觀之라. 今正月相朝하여 而皆不度하니 心已亡矣라 嘉事不體어늘 何以能久아 高仰驕也요 卑俯替也라 驕近亂하고 替近疾이라 君爲主에 其先亡乎인저)”는 내용인데, 그해 정공이 죽고, 애공 7년에 노나라가 주나라를 치니, 두 임금이 모두 죽게 되어 자공이 예견한 것이 딱 맞게 되었다는 말이다. 몸가짐, 곧 四體의 모습을 보고 앞날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짐을 살필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성이 지극하고 마음과 눈 사이에 한 터럭의 사사로움이나 거짓됨이 없이 깨끗하여야 가능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