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과 땅과 하늘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자연이다. 해와 달로 인해 하루의 낮과 밤, 일 년의 사계절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다, 햇볕이나 달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물론 공기나 물이나 불이 없이는 인간은 살 수 없다. 인간의 삶의 터전인 땅은 산과 들, 강과 바다 등의 자연환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듯 인간과 자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적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에 대한 동서양의 인식과 세계관은 확연히 다르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의 자연관은 서구의 자연관을 토대로 하고 있다. 서구의 자연관은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거나 지배한다는 생각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인간이 자연을 탐험하여 개척하고 개발해 온 역사 자체를 인류문명과 역사의 발전이라고 보고 있다.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보는 이러한 자연관은 서구의 세계관과 철학에 반영되어 있다.
반면에 동양의 자연관은 자연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두자는 입장이며, 자연과 인간은 함께 어울려 조화롭게 살아가는 존재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관이다. 중국에서 발달한 도교나 불교, 유교는 대표적인 자연친화적인 종교이며, 한국에서 발달한 풍수지리(風水地理)나 자연만물에 신(神)이 있다고 믿는 무속문화 또한 매우 자연친화적인 세계관이다.
이들 모두 자연을 인간의 정복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순응하며 같이 살아가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 하늘과 땅, 해와 달을 비롯해 인간주변의 모든 자연만물을 일컬어 대우주라고 칭하면, 자연만물의 하나인 인간 자체를 ‘소우주’라고 하는 인식도 동양의 자연관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사람의 몸인 인체를 우주자연의 축소판인 ‘작은 자연’으로 바라보는 자연친화적인 세계관이다.
만물과 현상에는 법칙과 질서가 있어
동양철학의 사상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음부경(陰符經)?에 ‘宇宙在乎手, 萬化生乎身(우주가 다 내 손안에 있으며 만 가지 변화가 내 몸에서 나오느니라)’이나, 공자가 ?주역?에서 ‘근취저신(近取諸物) 원취저물(遠取諸物)’이라며 가까이는 자기 몸에서부터 멀리는 자연만물에서 이치를 취득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과 현상에는 일정한 법칙과 질서가 있다. 이 법칙과 질서는 순환반복을 거듭하며 진화발전하고 있다. 만약에 법칙과 질서가 없다면 혼란과 혼돈 속에 자연만물 자체가 파괴되어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동양철학에서는 이 법칙과 질서를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이치(理致)라고 한다. 하늘과 땅, 낮과 밤, 사계절의 변화, 생물의 생사(生死) 등 자연만물의 생성, 성장, 소멸 등의 현상을 비롯해 인간의 생활에는 반드시 음양오행의 이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음양의 天變地化 陽變陰化
공자는 ?周易? 계사전에서 ‘在天成象(재천성상), 在地成形(재지성형), 變化見矣(변화현의)’ 곧 하늘에서는 象을 이루고, 땅에서는 形을 이루는데서 변화가 드러나니라고 하였다. 하늘의 일월과 별의 생성작용을 ‘變’이라 하고 땅의 생장수장(生長收藏) 작용을 ‘化’라고 하였다. 이를 ‘天變地化’라 한다. 또한 陽이 주축으로 작용하는 과정은 ‘變’이고, 陰이 주축으로 작용하는 과정을 ‘化’라 하였는데 이를 ‘陽變陰化’라 한다. ‘化’는 음양의 진퇴(進退) 속에 다시 ‘變’을 낳고, ‘變’은 다시 ‘化’를 낳으며 끝없이 순환하니, 만물의 생성법도가 모두 음양변화에 있다. 오전이 해가 떠올라 남중하여 올라가는 陽變의 과정이라면 오후는 서쪽으로 해가 들어가는 陰化의 과정이 되고, 봄과 여름이 싹터서 자라나는 陽變의 계절이라면 가을과 겨울은 숙성하여 갈무리하는 陰化의 계절이다. |
師
음양오행 사상은 간략히 말해 우주자연의 만물과 현상에는 陰과 陽, 그리고 水․火․木․金․土라는 형질(形質)들의 결합과 대립을 통한 상생과 상극작용이 있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음양오행의 상생과 상극작용이 순환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만물의 생성과 성장, 그리고 소멸이라는 변화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음양오행의 이치를 상징적으로 잘 나타낸 것이 손바닥이다. 손바닥의 앞과 뒤를 음과 양이라고 보면 다섯 손가락은 오행을 나타낸다. ?음부경(陰符經)?에서 ‘宇宙在乎手(우주가 다 내 손안에 있다)’라고 한 것은 손바닥에 담겨있는 음양오행 이치가 곧 우주의 이치라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동양의 자연관의 핵심을 이루는 음양오행은 정치․경제․문화 등을 비롯해 사회 모든 분야의 기준이 되었고 아울러 동양철학의 핵심사상이 되었다. 동양이 예로부터 자연현상에 대한 관찰이 뛰어나 천문지리가 발달하고, 자연현상의 법칙과 질서에 의거하여 세상을 바라보게 된 배경이다.
음양오행은 동양의 자연관이자 세계관
기독교문화권인 서구인들의 우주관이 ?성경?의 천지창조 신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면 한문문화권인 중국인과 동이족의 세계관은 복희씨가 발견한 ‘하도(河圖)’의 음양오행 사상을 토대로 하고 있다. 복희씨가 ‘하도’에 근거하여 창제한 ‘괘(卦)’와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易(역)’은 동양의 세계관을 가장 잘 집약하고 있는 문헌이다. ‘역(易)’의 핵심사상이 음양오행이다. 특히 단군과 동이족의 후예인 한민족은 음양오행에 따른 문화와 생활에 있어 오히려 중국보다 뿌리가 깊다. 말과 글은 물론이요, 천문, 지리, 음식, 주거, 의복, 의학, 음악 등 어느 하나 음양오행과 관련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로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까지 한 한글이야말로 대표적으로 음양오행의 이치에 의해 만들어졌다. 인간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달력의 일주일을 나타내는 ‘日月火水木金土’ 는 음양오행 그대로이다. 이는 우리나라만이 사용하고 있다. 한민족만의 고유한 민속놀이 기구인 윷 역시 모양 자체가 음양오행에서 나온 것이다. 동양의학(한의학)의 바이블이라고 하는 ?황제내경?도 음양오행에 의거한 책이다.
과학기술을 토대로 한 서구의 물질문명이 동양의 정신문명을 압도하면서부터 음양오행 사상이 학문적으로 활용되고 있지 않지만 생활 곳곳에는 여전히 음양오행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음양오행 이치를 최초로 종합적으로 담아낸 동양철학이 역(易)이고, ?황제내경?을 비롯한 이후의 모든 문헌이 역(易)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易)은 동양철학의 최고봉을 차지하고 있다. 서구문화의 정신적 뿌리와 토대가 ?성경?(Bible:바이블)이라면, 동양문화의 정신적 바탕은 역(易)이라 할 수 있다.
동양문화의 정신적 바탕인 易
우주자연만물의 생성, 성장, 소멸 등의 현상을 비롯해 인간의 생활에는 반드시 이치(理致)가 있다고 했다. 현존하는 각종의 종교와 교리, 철학, 학문 등은 인류가 그 이치를 밝히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서구의 기독교 문화권은 성경에서, 이슬람교는 코란에서 그 이치를 찾았다면, 한문문화권은 음양오행에서 그 이치를 찾은 셈이다.
그러면 음양오행이 작동하는 대상인 우주는 무엇을 뜻하는가? 우주라는 말에는 자연만물을 상징하고 포괄하는 의미가 있다. 우주(宇宙)에 대한 문헌의 정의를 보면 ‘上下四方曰 宇 , 往來古今曰 宙’라고 나온다. 우(宇)는 동서남북과 상하좌우의 공간을 의미하고 주(宙)는 오고 가는 세월의 시간을 뜻한다. 동양에서는 서양과 달리 우주(宇宙)가 단순히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日月五嶽圖(일월오악도)
<일월오악도는 해와 달, 다섯 산봉우리, 소나무, 조수(潮水) 등을 그려 넣은 그림으로 임금의 용상(龍床) 뒤를 장식한다. 『주역』에 담긴 음양이치와 『서경』홍범에 담긴 오행의 이치에 의거해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해, 달, 산, 소나무, 물 등은 천계(天界), 지계(地界), 만물계(萬物界) 즉 天地人 三才를 표상하며 영구한 생명력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병풍, 액자, 벽장문짝 등에 많이 사용되는 주제이다.>
인간을 비롯한 자연만물은 우주(宇宙)라는 시간과 공간에 있는 존재로서 이 시간과 공간의 법칙과 질서를 벗어날 수 없다. 시간과 공간 속의 존재이며 동시에 그 속에서 변화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時空)은 삼라만상이 생장소멸의 역사를 이뤄나가는 근본 바탕이라 할 수 있다.
음양오행은 순환반복과 변화의 이치
쉬운 예로 사람은 연월일시에 맞춰 생활한다. 낮이 되면 활동을 하고 밤이 되면 잠을 자거나, 더운 여름엔 가볍게 입고 추운 겨울엔 불을 지펴 난방을 하는 것이나 태어나고, 살고 죽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자연법칙은 순환반복하면서 앞으로 진행되어 나가고 있다. 이렇듯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지는 자연만물의 현상에는 일정한 법칙과 질서가 있으며,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에 근거해서 이 理致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 이치가 곧 동양의 자연관이요 인생관이요 세계관인 것이다.
한문문화권에서 지금도 달력이나 운세(運勢)의 기준으로 쓰이는 60干支(간지) 또한 음양오행에서 기원하고 있다. 간지에서 陽을 대표하는 하늘의 운행을 天干이라 하고, 陰을 대표하는 땅의 운행을 地支라고 한다. 천간과 지지는 10干과 12支로,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와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말한다. 10개의 天干과 12개의 地支를 상호 배합해서 나온 것이 60간지이다. 이렇듯 한문문화권의 역사와 문화, 가치관을 이해하기 위해선 반드시 음양오행을 알아야 하며 음양오행을 알기 위해선 ‘易’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태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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