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스크랩] 주역과 천자문의 첫 글자 ‘天’

ria530 2012. 6. 16. 10:57

 

한글전용정책이 실시되어 공식적으로 한자가 쓰이지 않거나, 신문지상에서 한자가 사라지거나, 학교에서 한문교과목이 없어진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도로 한문교육을 시켜왔다. 한문교육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교재가 ?천자문(千字文)?이다. ?천자문?은 초학자가 배우는 글이라고는 하지만 서구적 교육과정에 익숙한 사람들이 접하기에는 결코 쉬운 글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학교에 들어가 처음 배우는 교과서를 보면 아버지, 어머니, 바둑이 등으로 시작하고 영어 교과서의 경우도 a girl, a boy, an apple 등부터 익힌다.

 

하지만 ?천자문?은 ‘하늘 천(天)’부터 시작한다. 그것도 ?주역?에서 인용한 글귀로 시작한다. ?천자문?에 등장하는 글귀들의 출처가 ?주역?과 ?서경? ?시경? 등을 비롯한 여러 경전이고, 내용에 있어서도 천문과 지리, 역사, 철학, 문학, 생활문화, 정치 등 모든 분야를 두루 망라하고 있다. 더욱이 첫 글자인 ‘天’이라는 글자를 훈과 음을 붙여 ‘하늘 천’이라고 외우고 쓴다고 다 공부한 것은 아니다.

 

그 속에 내포한 이치까지를 깨달아야 천지현황(天地玄黃)이라는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뜻글자의 생성과 전개 발전을 이해하기 위해 ‘하늘 천(天)’이란 글자를 살펴보자.

 

첫째, 공간 개념으로서의 하늘

‘天’의 ‘大’위에 있는 ‘ㅡ’은 음양 부호에서 양(陽) 부호(−)를 의미한다. 天이라는 글자 자체를 만들 때에 ?주역?의 원리인 陽의 개념을 적용했다는 의미이다. 양은 곧 하늘로, 땅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하늘은 머리 위를 덮고 있는 형상이기에 ㅡ로 표현했다.

 

그래서 하늘을 ‘天蓋(천개)’ 곧 하늘 뚜껑, 하늘 지붕이라고도 한다. 또한 땅 위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 하늘은 끝없이 이어진 모습이며, 전체를 아우르는 형상이다. 또한 세상 만물 중에 가장 으뜸(一)이며, 가장 먼저 나온 존재라고 보았다. 이러한 모든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양부호(ㅡ)이고 숫자인 一(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天의 뜻을 다시 보면, 一 + 大 로 이루어진 天에는 하늘이 둘이 아닌 하나이며, 세상에서 제일 ‘크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크기에 ?주역? 건괘에서 ‘大哉라 乾元이여 萬物이 資始하나니’라고 하였다.

 

둘째, 시간 개념으로서의 하늘

‘天’은 하늘의 해(日)와 달(月)이 오고 가며 낮과 밤이 하루를 이루고, 하루하루가 쌓여 한 달을 낳고, 12달이 모여 일 년이 되고 해를 거듭하면서 세월이 되는 시간의 이치를 담고 있다. 선천(先天)과 중천(中天), 후천(後天)이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늘(天)은 과거, 현재, 미래를 담고 있는 시간적 개념을 담고 있다.

 

셋째,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개념으로서의 하늘

‘天’의 大는 因(인:비롯하다, 기인하다)이라는 글자의 口(입 구)속의 大와 같은 의미이다. 因의 大는 동양철학의 핵심사상인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의미한다. 하늘이 하늘 하나만 갖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하늘은 상대가 되는 땅을 만나야 되고, 만나서 음양의 기운이 통해야 만물을 낳을 수 있다. 즉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가 가장 크기에 삼재를 ‘大’로 표상했다.

 

또한 만물은 땅(口는 단순히 입 모양을 나타내 쓸 뿐만 아니라 하늘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方正한 땅의 모습을 상징한다)에서 나오기 때문에 因이라는 글자가 ‘비롯하다, 기인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삼라만상인 천지인(天地人)을 표상하는 ‘大’를 ‘ㅡ(하늘)’이 덮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 바로 ‘天’이다.

 

또 음양의 부호로 살펴보더라도 맨 위의 一은 천개(天蓋)의 하늘이고, 아래 一은 두 번째 나온 땅을 의미하고, 人은 바로 사람이다. 하늘이 땅과 사람을 다 품고 있다는 뜻이다. 곧 하늘(天)은 삼라만상의 으뜸이고 삼라만상을 다 덮어서 품고 보호해준다는 조물주 ‘하느님’을 나타낸다.

 

넷째, 상대적 개념으로서의 하늘

하늘은 하늘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하늘 천(天)’을 제대로 알려면 상대적 개념의 음인 ‘땅 지(地)’를 알아야 하며,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서의 하늘이 ‘天’이라면 보이지 않는 이치를 담은 ‘하늘 건(乾)’의 개념까지 알아야 한다. 뜻글자는 소리글자와 달리 음과 양의 상호관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이러한 음양의 변화 이치를 해설해 놓은 철학이 바로 ?주역?의 십익전(十翼傳)이다.

 

다섯째, 형이상적인 개념으로서의 하늘

天이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을 나타낸 것이라면, 위에서 말한 네 가지 내용을 모두 담고 있는 추상적이며 형이상(形而上)적인 개념으로서의 하늘을 말할 때에는 ‘乾’이라 쓴다. 地라고 하는 땅을 坤이라고 쓰는 이치와 같다.

 

이렇듯 ?천자문?의 첫 글자인 天이라는 한자는 단순한 한 개의 글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天이라는 글자의 형성과정이나 출처가 ?주역?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에 ?천자문?을 공부하려면 배경이 되는 주역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이다. 그러니 하늘 ‘天’이라는 글자의 훈과 음을 외웠다고 해서 天을 알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천자문?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溫故知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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