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範9章> 五皇極은 皇이 建其有極이니 歛時五福하야 用敷錫厥庶民하면 惟時厥庶民이 于汝極에 錫汝保極하리라 다섯째인 황극은 임금이 그 극을 세움이니 이 오복을 거둬서 그 여러 백성들에게 펴서 주면 오직 이에 그 여러 백성들이 네 극에, 네 극을 보존함을 주리라.
皇은 君이오 建은 立也라 極은 猶北極之極이니 至極之義이오 標準之名이니 中立而四方之所取正焉者也라 言人君이 當盡人倫之至하니 語父子則極其親하여 而天下之爲父子者 於此取則焉하고 語夫婦則極其別하여 而天下之爲夫婦者 於此取則焉하고 語兄弟則極其愛하여 而天下之爲兄弟者 於此取則焉하여 以至一事一物之接과 一言一動之發에 無不極其義理之當然하여 而無一毫過不及之差면 則極建矣리라 極者는 福之本이오 福者는 極之效니 極之所建은 福之所集也라 人君集福於上은 非厚其身而已라 用敷其福하여 以與庶民하여 使人人觀感而化니 所謂敷錫也요 當時之民이 亦皆於君之極에 與之保守하여 不敢失墜하니 所謂錫保也라 言皇極을 君民所以相與者 如此也라 황(皇)은 임금이고, 건(建)은 세움이라. 극은 북극의 극과 같으니 지극하다는 뜻이고, 표준한 것을 이름이니, 가운데가 서면 사방이 취하여 바로잡는 것이라. 인군이 마땅히 인륜의 지극함을 다해야 하니, 부자를 말하면 그 친함을 다하여 천하의 부자된 자가 이에서 법칙을 취하고, 부부를 말하면 그 다름을 다하여 천하의 부부된 자가 이에서 법칙을 취하고, 형제를 말하면 그 사랑을 다하여 천하의 형제된 자가 이에서 법칙을 취하여 한 가지 일과 한 가지 물건을 접하고, 한 마디 말과 한 가지 행동을 발함에 이르러 그 의리의 당연함을 다하지 아니함이 없어서 한 터럭이라도 과불급의 차이가 없으면 극이 세워지리라. 극은 복의 근본이고, 복은 극의 효력이니 극이 세우는 바는 복이 모이는 바이라. 인군이 위에서 복을 모음은 그 몸을 두터이 할 뿐만 아니라, 그 복을 펴서 서민들에게 주어 사람마다 보고 느껴 화하게 하니 이른바 펴서 주는 것이고, 당시의 백성들 또한 다 임금의 극에 대하여 더불어 보존하고 지켜서 감히 실추시키지 아니하니 이른바 보존함을 준다는 것이라. 황극을 임금과 백성이 서로 준다는 것이 이와 같음을 말함이라.
<洪範10章> 凡厥庶民이 無有淫朋하며 人無有比德은 惟皇이 作極일새니라 무릇 그 서민이 음탕한 벗을 둠이 없으며, 사람들이 아첨하는 덕을 두지 않음은 오직 임금이 극을 지었기 때문이니라.
淫朋은 邪黨也라 人은 有位之人이라 比德은 私相比附也라 言庶民與有位之人이 而無淫朋比德者는 惟君爲之極하여 而使之有所取正耳일새니 重言君不可以不建極也라 음붕(淫朋)은 삿된 무리라. 인(人)은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 비덕(比德)은 사사롭게 서로 가깝게 붙음이라. 서민과 더불어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삿된 무리와 아첨하는 덕이 없다는 것은 오직 임금이 극을 지어서 하여금 취하여 바로잡는 바를 두었기 때문이니 임금이 가히 극을 세우지 않을 수 없음을 거듭 말함이라.
<洪範11章> 凡厥庶民이 有猷有爲有守를 汝則念之하며 不協于極이라도 不罹于咎ㅣ어든 皇則受之하라 而康而色하야 曰予攸好德이라커든 汝則錫之福하면 時人이 斯其惟皇之極하리라 무릇 그 서민이 꾀함이 있고, 하옴이 있고, 지킴이 있음을 그대는 곧 생각해야 하며, 극에 합하지 못하더라도 허물에 걸리지 않거든 임금은 곧 받아들여라. 낯빛을 편안히 하여 가로대 내가 좋아하는 바가 덕이라고 하거든 그대가 곧 복을 주면 이 사람이 이에 임금의 극을 하리라.
此는 言庶民也라 有猷는 有謀慮者요 有爲는 有施設者요 有守는 有操守者니 是三者는 君之所當念也라 念之者는 不忘之也니 帝念哉之念이라 不協于極은 未合於善也요 不罹于咎는 不陷於惡也라 未合於善하고 不陷於惡은 所謂中人也니 進之則可與爲善이오 棄之則流於惡이니 君之所當受也라 受之者는 不拒之也니 歸斯受之之受라 念之受之는 隨其才而輕重 以成就之也라 見於外而有安和之色하고 發於中而有好德之言이면 汝於是에 則錫之以福이면 而是人이 斯其惟皇之極矣라 福者는 爵祿之謂라 或曰錫福은 卽上文歛福錫民之福이니 非自外來也라하니 曰祿亦福也라 上文은 指福之全體而言이오 此則爲福之一端而發이니 苟謂非祿之福이면 則於下文于其無好德에 汝雖錫之福이라도 其作汝用咎에 爲不通矣라 이는 서민을 말함이라. 유유(有猷)은 지모(智謀)와 사려(思慮)가 있는 자이고, 유위(有爲)는 베풂이 있는 자이고, 유수(有守)는 지조(志操)를 지킴이 있는 자이니, 이 세 가지는 임금이 마땅히 생각해야 할 바이라. 생각한다는 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이니 ‘임금은 생각하소서(大禹謨7章)’의 생각함이라. 극에 합하지 못함은 선에 합하지 못함이고, 허물에 걸리지 아니함은 악에 빠지지 아니함이라. 선에 합하지 못하고, 악에 빠지지 아니함은 이른바 중인이니, 등용하면 가히 더불어 선을 하고, 버리면 악에 흐르니 임금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바이라. 받아들인다는 것은 막지 않는 것이니 ‘돌아오면 이에 받아들인다(『맹자』 盡心章 제26장, “孟子曰逃墨이면 必歸於楊이오 逃楊이면 必歸於儒니 歸커든 斯受之而已矣니라”)’는 받아들임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재주와 경중에 따라 나아가 이루게 함이라. 바깥으로 나타남에 편안하고 온화한 빛이 있고, 마음속에서 발함에 덕을 좋아하는 말이 있으면 그대가 이에 복으로써 주면, 이 사람이 이에 오직 임금의 극을 하리라. 복은 작록을 이름이라. 어떤 이는 말하기를 복을 준다는 것은 곧 윗글에 복을 거두어 백성들에게 준다는 복이니 바깥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하니 녹 또한 복이라고 하니라. 윗글은 복의 전체를 가리켜 말한 것이고, 여기서는 복의 일단을 가지고 발한 것이니, 진실로 녹의 복이 아니면 아래 글에 ‘그 덕을 좋아함이 없는 이에게 그대가 비록 복을 준다 하더라도 그대의 허물 씀이 되리라’고 한 것과는 통하지 않음이 되니라.
<洪範12章> 無虐煢獨하고 而畏高明하라 외로운 이를 학대하고 고명한 이를 두려워하지 말라.
煢獨은 庶民之至微者也요 高明은 有位之尊顯者也니 各指其甚者而言이라 庶民之至微者라도 有善則當勸勉之하고 有位之尊顯者라도 有不善則當懲戒之니라 此는 結上章而起下章之義라 경독(煢獨)은 서민의 지극히 미미한 자이고, 고명(高明)은 지위가 높으면서 현달한 자이니 각각 그 심한 것을 가리켜 말함이라. 서민 가운데 지극히 미미한 자라도 선함이 있으면 마땅히 권면해야 하고, 지위가 있는 고명한 자라도 불선함이 있으면 마땅히 징계해야 하니라. 이는 윗글을 맺고 아래 글을 일으키는 뜻이라.
<洪範13章> 人之有能有爲를 使羞其行하면 而邦이 其昌하리라 凡厥正人은 旣富ㅣ오사 方穀이니 汝弗能使有好于而家하면 時人이 斯其辜ㅣ리라 于其無好德에 汝雖錫之福이라도 其作汝用咎ㅣ리라 사람 가운데 능함이 있고 하옴이 있는 자를 그 행함에 나아가게 하면 그대 나라가 그 번창하리라. 무릇 그 정인은 이미 부유하여야 바야흐로 선할지니 그대가 능히 그대 집을 좋아함을 두지 못하게 한다면 이 사람이 이에 그 허물을 지으리라. 그 덕을 좋아함이 없는 이에게 그대가 비록 복을 주더라도 그대의 허물 씀이 되리라.
此는 言有位者也라 有能은 有才智者라 羞는 進也니 使進其行이면 則官使者 皆賢才而邦國昌盛矣리라 正人者는 在官之人이니 如康誥所謂惟厥正人者라 富는 祿之也요 穀은 善也라 在官之人은 有祿可仰然後에 可責其爲善하니 廩祿不繼하고 衣食不給하여 不能使其和好于而家면 則是人은 將陷於罪戾矣리라 於其不好德之人에 而與之以祿이면 則爲汝用咎惡之人也라 此는 言祿以與賢하고 不可及惡德也라 必富之而後에 責其善者는 聖人設敎에 欲中人以上은 皆可能也라 이는 지위에 있는 자를 말함이라. 유능(有能)은 재주와 지혜가 있는 자라. 수(羞)는 나아감이니 그 행함에 나아가게 한다면 관리들이 모두 어질고 재주있는 자들이므로 나라가 번창하리라. 정인(正人)은 강고편에 이른바 그 정인이라고 한 것과 같으니라. 부(富)는 녹을 주는 것이고, 곡(穀)은 선함이라. 관직에 있는 사람은 녹이 가히 우러러볼만함이 있은 뒤에야 가히 그 선함을 꾸짖을 수 있으니 곳집의 녹이 이어지지 못하고 의식이 넉넉하지 못하여 능히 네 집에서 합하고 좋아함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 사람은 장차 죄에 빠지리라. 그 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녹으로서 주면 그대는 허물있고 악한 사람을 씀이 되리라. 이는 녹을 어진 사람에게 주고 가히 악덕한 이에게 미치어서는 아니됨을 말함이라. 반드시 부유하게 한 뒤에 그 선함을 꾸짖을 수 있다는 것은 성인이 가르침을 베풂에 중인 이상은 다 가능하게 하고자 하심이라.
<洪範14章> 無偏無陂하야 遵王之義하며 無有作好하야 遵王之道하며 無有作惡하야 遵王之路하라 無偏無黨하면 王道ㅣ 蕩蕩하며 無黨無偏하면 王道ㅣ 平平하며 無反無側하면 王道ㅣ 正直하리니 會其有極하야 歸其有極하리라 치우침이 없고 언덕짐이 없어 왕의 의를 따르며, 좋아함을 짓지 아니하여 도를 따르며, 미워함을 짓지 아니하여 왕의 길을 따르라. 편이 없으며 당이 없으면 왕도가 탕탕하며, 당이 없고 편이 없으면 왕도가 평평하며, 배반함도 없고 쏠림도 없으면 왕도가 정직하리니, 그 극에 모여 그 극에 돌아가리라.
偏은 不中也요 陂는 不平也라 作好作惡는 好惡를 加之意也라 黨은 不公也라 反은 倍常也요 側은 不正也라 偏陂好惡는 己私之生於心也라 偏黨反側은 己私之見於事也라 王之義, 王之道, 王之路는 皇極之所由行也라 蕩蕩은 廣遠也요 平平은 平易也요 正直은 不偏邪也라 皇極은 正大之體也라 遵義遵道遵路는 會其極也요 蕩蕩平平正直은 歸其極也라 會者는 合而來也요 歸者는 來而至也라 此章은 蓋詩之體니 所以使人吟詠하여 而得其情性者也라 夫歌詠以協其音하고 反復以致其意하며 戒之以私하여 而懲創其邪思하고 訓之以極하여 而感發其善性하여 諷詠之間에 恍然而悟하고 悠然而得하여 忘其傾斜狹小之念하고 達乎公平廣大之理하여 人欲消熄하고 天理流行하여 會極歸極이 有不知其所以然而然者라 其功用深切하니 與周禮大師에 敎以六詩者로 同一機而尤要者也라 後世此意不傳하니 皇極之道其不明於天下也는 宜哉로다 편(偏)은 가운데 하지 못함이고, 피(陂)는 평평하지 못함이라. 좋아함을 짓고 미워함을 짓는다는 것은 좋아하고 미워함을 더한 뜻이라. 당(黨)은 공변되지 못함이라. 반(反)은 떳떳함을 배반함이고, 측(側)은 바르지 못함이라. 기울어지고 언덕지고 좋아하고 미워함은 몸의 사사로움이 마음에서 생겨남이라. 치추치고 무리짓고 배반하고 쏠림은 몸의 사사로움이 일에 나타남이라. 왕의 의와 왕의 도와 왕의 길은 황극이 말미암아 행하는 바이라. 탕탕(蕩蕩)은 넓고 멂이고, 평평(平平)은 평이함이고, 정직(正直)은 치우치고 삿되지 아니함이라. 황극은 바르고 큰 체라. 준의(遵義)와 준도(遵道)와 준로(遵路)는 그 극에 모임이고, 탕탕(蕩蕩)과 평평(平平)과 정직(正直)은 그 극에 돌아감이라. 모인다는 것은 합하여 오는 것이고, 돌아온다는 것은 와서 이름이라. 이 장은 대개 시의 체이니 사람들로 하여금 읊조려 노래하여 그 성정을 얻게 함이라. 무릇 노래하고 읊조려 그 음과 합하고 반복하여 그 뜻에 이르며, 사사로움을 경계하여 그 사특한 생각을 징창하고 극을 가르쳐 그 선한 성품을 느껴 발하게 하여 외우고 노래하는 사이에 황홀히 깨닫고 유연히 얻어서 그 기울어지고 협소한 생각을 잊고, 공평하고 광대한 이치에 이르러 인욕이 사그라져 없어지고 천리가 유행하여 그에 모이고 극에 돌아감이 그렇게 되는 바를 알지 못하여도 그렇게 되는 것이라. 그 공의 쓰임이 깊고도 간절하니, 『주례』(春官宗伯편)에 태사를 육시(風 ․ 雅 ․ 頌 ․ 興 ․ 比 ․ 賦)로써 가르치는 것과 더불어 한 가지 기틀로 같은데 더욱 중요한 것이라. 후세에 이런 뜻이 전하지 아니하니, 황극의 도가 그 천하에 밝혀지지 못함은 마땅하도다.
<洪範15章> 曰皇極之敷言이 是彛是訓이니 于帝其訓이시니라 가로대, 임금이 극으로 편 말이 이 떳떳하며 이 가르침이니, 상제께서 그 가르치신 것이니라.
曰은 起語辭라 敷言은 上文敷衍之言也라 言人君이 以極之理로 而反復推衍爲言者는 是天下之常理요 是天下之大訓이니 非君之訓也요 天之訓也라 蓋理出乎天하니 言純乎天이면 則天之言矣라 此는 贊敷言之妙如此라 왈(曰)은 말을 일으키는 말이라. 부언(敷言)은 윗글을 부연한 말이라. 임금이 극의 이치로써 반복하여 미루어 펼쳐서 말한 것은 이 천하의 떳떳한 이치이고, 이 천하의 큰 가르침이니 임금의 가르침이 아니고 하늘의 가르침이라. 대개 이치가 하늘에서 나왔으니 하늘에 순하면 곧 하늘의 말이라. 이는 부언의 묘함이 이와 같음을 칭찬함이라.
<洪範16章> 凡厥庶民이 極之敷言을 是訓是行하면 以近天子之光하야 曰天子ㅣ 作民父母하사 以爲天下王이라하리라 무릇 그 서민이 극의 펼친 말을 이에 가르치고 이에 행하면 천자의 빛에 가까워 이르되 ‘천자가 백성의 부모가 되어 이로써 천하의 왕이 될 것이라’ 하리라.
光者는 道德之光華也라 天子之於庶民에 性一而已니 庶民이 於極之敷言에 是訓是行이면 則可以近天子道德之光華也라 曰者는 民之辭也라 謂之父母者는 指其恩育而言이니 親之之意요 謂之王者는 指其君長而言이니 尊之之意라 言天子가 恩育君長乎我者 如此其至也라 言民而不言人者는 擧小以見大也라 광(光)은 도덕의 빛나고 빛남이라. 천자가 백성에 대하여 성품은 한 가지일 뿐이니 서민이 극의 펼친 말에 대하여 이에 가르치고 이에 행하면 가히 천자의 도덕의 빛남에 가까워지리라. 왈(曰)은 백성의 말이라. 부모라고 이른 것은 그 은혜롭게 기름을 가리켜 말함이니, 친하다는 뜻이고, 왕이라고 이른 것은 그 군장을 가리켜 말함이니 높인다는 뜻이라. 천자가 우리들을 은혜롭게 기르고 군자 노릇을 함이 이와 같이 그 지극하다고 말함이라. 백성을 말하면서 사람을 말하지 않은 것은 작은 것을 들어 큰 것을 나타냄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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