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四篇 召誥 左傳에 曰武王克商하고 遷九鼎于洛邑이라하고 史記에 載武王言호대 我南望三途하고 北望嶽鄙하며 顧詹有河하고 粵詹洛伊하며 毋遠天室이라하시고 營周居于洛邑而後去라하니 則宅洛者는 武王之志를 周公成王이 成之하고 召公이 實先經理之라 洛邑旣成에 成王始政하고 召公이 因周公之歸하여 作書致告하여 達之於王하니라 其書는 拳拳於歷年之久近하고 反覆乎夏商之廢興하니 究其歸하면 則以諴小民으로 爲祈天命之本하고 以疾敬德으로 爲諴小民之本하여 一篇之中에 屢致意焉하니 古之大臣이 其爲國家長遠慮가 蓋如此라 以召公之書라하여 因以召誥名篇하니라 今文古文에 皆有하니라 『춘추좌전』(桓公二年, 봄)에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고, 구정을 낙읍으로 옮겼다”하고, 『사기』(周本紀)에 무왕의 말씀을 실었는데, “내가 남쪽으로 삼도산을 바라보고 북쪽으로 악비를 바라보며 황하를 돌아보고, 그리고 낙수와 이수를 바라보며 천실을 멀리 하지 말라 하시고, 주나라를 낙읍에 두고 경영하신 후에 떠나셨다”하니, 낙에 거처했다는 것은 무왕의 뜻을 주공과 성왕이 이루고 소공이 실지로 먼저 경영하여 다스렸음이라. 낙읍이 이미 완성됨에 성왕이 비로소 정사를 하고 소공이 주공의 돌아감으로 인하여 글을 지어 알려서 왕에게 이르게 함이라. 이 글은 (왕조가 누린) 지나온 햇수가 오래되고 가까움을 정성스럽게 간직하고 하나라와 상나라의 쇠함과 일어남을 반복하였으니 그 돌아감을 연구한다면 작은 백성들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으로써 천명을 비는 근본으로 삼고, 공경하는 덕을 빨리하는 것으로써 소민을 정성스럽게 하는 근본으로 삼아서 한 편의 가운데에 자주 뜻을 지극히 하였으니 옛날의 대신이 그 국가를 위하여 멀리 생각함이 대개 이와 같으니라. 소공의 글이라고 하여 이로 인하여 소고로 편을 이름하였느니라. 금문과 고문에 다 있느니라.
粤 어조사 월, 이에 월 諴 화할 함, 정성 함
<召誥1章> 惟二月旣望越六日乙未에 王이 朝步自周하사 則至于豐하시다 2월 기망일을 6일 건넌 을미일에 왕이 아침에 걸음을 주나라로부터 하시어 풍에 이르시다. 日月相望을 謂之望이니 旣望은 十六日也라 乙未는 二十一日也라 周는 鎬京也니 去豐二十五里니 文武廟在焉이라 成王至豐하사 以宅洛之事로 告廟也라 해와 달이 서로 봄을 망이라 하니, 기망은 16일이라. 을미는 21일이라. 주는 호경이니, 풍과의 거리가 25리니, 문왕과 무왕의 사당이 있음이라. 성왕이 풍에 이르시어 낙에 거처하는 일로써 사당에 고함이라.
<召誥2章> 惟太保ㅣ 先周公相宅하야 越若來三月惟丙午朏ㅅ 越三日戊申에 太保ㅣ 朝至于洛하야 卜宅하니 厥旣得卜하야 則經營하니라 태보가 주공보다 먼저 집터를 보고서 그 다음달 삼월 병오일 초사흘의 3일을 건넌 무신일에 태보가 아침에 낙에 이르러 집터를 점치니 그 이미 점을 얻어 경영하니라. 成王在豐할새 使召公先周公行하여 相視洛邑이라 越若來는 古語辭라 言召公이 於豐에 迤邐而來也라 朏는 孟康曰月出也니 三日明生之名이라하니라 戊申은 三月五日也라 卜宅者는 用龜卜宅都之地니 旣得吉卜하여 則經營規度其城郭宗廟郊社朝市之位라 성왕이 풍에 있을 때에 소공으로 하여금 주공보다 먼저 가서 낙읍을 보게 함이라. 월약래(越若來)는 옛날의 어조사라. 소공이 풍에 갔다가 옴을 말함이라. 비(朏)는 맹강이 말하기를 달이 나옴이니, 삼일에 밝음이 나오는 것을 이름한 것이라 하니라. 무신(戊申)은 삼월 오일이라. 복택(卜宅)은 거북으로써 도읍지를 점친 것이니 이미 길한 점을 얻어서 곧 그 성곽과 종묘, 교사, 조정, 시정의 터를 헤아려서 경영함이라.
迤 비스듬할 이, 비스듬히 갈 이 邐 이어질 리, 비스듬히 이어질
<召誥3章> 越三日庚戌에 太保ㅣ 乃以庶殷으로 攻位于洛汭하니 越五日甲寅에 位成하니라 삼일을 건넌 경술일(7일)에 태보가 거의 모든 은나라 사람들로써 낙수 물굽이 안쪽에서 터를 닦기 시작하니 5일을 건넌 갑인일(11일)에 터를 이루었느니라. 庶殷은 殷之衆庶也니 用庶殷者는 意是時에 殷民已遷于洛이라 故로 就役之也라 位成者는 左祖右社前朝後市之位成也라 서은(庶殷)은 은나라의 많은 사람들이니, 많은 은나라 사람들을 썼다는 것은 아마도 이때에 은나라 백성들이 이미 낙으로 옮긴 듯하므로 부역에 나가게 한 것이라. 터를 이뤘다는 것은 왼쪽에는 조상의 사당과 오른쪽에는 사직단, 앞에는 조정과 뒤에는 시장의 터를 이룸이라.
<召誥4章> 若翼日乙卯에 周公이 朝至于洛하사 則達觀于新邑營하시다 다음날인 을묘일(12일)에 주공이 아침에 낙에 이르시어 곧 경영할 새로운 도읍지를 두루 보시다. 周公이 至하사 則徧觀新邑所經營之位라 주공이 이르시어 곧 경영할 곳인 새로운 도읍지의 자리를 두루 봄이라.
<召誥5章> 越三日丁巳에 用牲于郊하시니 牛二러라 越翼日戊午에 乃社于新邑하시니 牛一羊一豕一이러라 삼일을 건넌 정사일(14일)에 교제에 희생을 쓰시니 소가 두 마리더라. 건넌 다음날인 무오일(15일)에 새 도읍에서 사제를 지내시니 소 한 마리와 양 한 마리와 돼지 한 마리더라. 郊는 祭天地也라 故로 用二牛라 社祭用太牢는 禮也라 皆告以營洛之事라 교(郊)는 하늘과 땅에 제를 지내므로 두 마리의 소를 씀이라. 사제는 태뢰(소, 양, 돼지)로써 함은 예이라. 다 낙을 경영하는 일로써 고함이라.
<召誥6章> 越七日甲子에 周公이 乃朝用書하사 命庶殷侯甸男邦伯하시다 칠일을 건넌 갑자일(21일)에 주공이 아침에 글을 써서 모든 은나라 사람들과 후와 전과 남의 방백에게 명하시다. 書는 役書也라 春秋傳에 曰士彌牟가 營成周할새 計丈數하고 揣高低하며 度厚薄하고 仞溝洫하며 物土方하고 議遠邇하며 量事期하고 計徒庸하며 慮材用하고 書餱糧하여 以令役於諸侯라하니 亦此意라 王氏曰邦伯者는 侯甸男服之邦伯也라 庶邦冢君이 咸在而獨命邦伯者는 公은 以書命邦伯하고 而邦伯은 以公命으로 命諸侯也라 서(書)는 부역하는 글이라. 『춘추좌전』(昭公 32년 겨울 11월)에 (晉나라의) 사미모가 성주를 경영할 때에 길이를 계산하고 높낮이를 재며 두텁고 얇음을 헤아리고 도랑과 봇도랑의 길이를 재며, 땅의 방위를 살피고 멀고 가까움을 의논하며 일의 시기를 헤아리고 인부들을 계산하고 쓸 재료들을 생각하고, 식량을 적어서 이로써 제후들에게 부역할 것을 명했다 하니 또한 이런 뜻이라. 왕씨가 말하기를 방백은 후복과 전복과 남복의 방백이라. 여러 나라의 총군이 다 있는데 다만 방백에게 명한 것은 주공은 방백에게 글로써 명하고 방백은 공의 명으로써 제후들에게 명함이라.
<召誥7章> 厥旣命殷庶하시니 庶殷이 丕作하니라 그 이미 은나라의 모든 이들에게 명하시니 모든 은나라 사람들이 크게 일어났느니라. 丕作者는 言皆趨事赴功也라 殷之頑民이 若未易役使者나 然이나 召公이 率以攻位而位成하고 周公이 用以書命而丕作하니 殷民之難化者도 猶且如此하니 則其悅以使民을 可知也라 크게 일어났다는 것은 다 일에 달려 나가고 공에 나아감을 말함이라. 은나라의 완악한 백성들이 쉽게 부릴 것 같지 않았으나 그러나 소공이 거느려서 터를 다스리고 터를 이루고, 주공이 글로써 명하여 크게 일어났으니 은나라의 교화시키기 어려운 자도 오히려 또한 이와 같았으니 그 기뻐함으로써 백성들을 부렸음을 알 수 있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