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逸8章> 周公曰嗚呼ㅣ라 厥亦惟我周엣 太王王季ㅣ 克自抑畏하시니이다 주공이 가로대, 아아! 그 또한 우리 주나라의 태왕과 왕계가 능히 스스로 조심하고 두려워하셨나이다. 商은 猶異世也라 故로 又卽我周先王告之시니라 言太王王季가 能自謙抑謹畏者는 蓋將論文王之無逸이라 故로 先述其源流之深長也라 大抵抑畏者는 無逸之本이니 縱肆怠荒은 皆矜誇無忌憚者之爲라 故로 下文에 言文王曰柔曰恭曰不敢하니 皆原太王王季抑畏之心을 發之耳라 상나라는 오히려 다른 세대이므로 또한 우리 주나라 선왕에게 나아가 고하셨음이라. 말하기를 태왕과 왕계가 능히 스스로를 겸손히 누르고 삼가 두려워한 것은 대개 장차 문왕의 안일하지 않음을 논하려고 하였으므로 먼저 그 원류의 깊고 긺을 전술함이라. 대저 조심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은 안일하지 않음의 근본이니 방종하고 방자하고 게으르고 거칠음은 다 뽐내고 자랑하면서 거리낌이 없는 자의 행위라. 그러므로 아래 문장에 문왕을 말하면서 부드럽다 하고 공손하다 하고 감히 하지 않는다 했느니, 다 태왕과 왕계의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근원하여 발표함이라.
<無逸9章> 文王이 卑服으로 卽康功田功하시니이다 문왕이 낮은 옷차림으로 편안히 해주는 일과 밭일에 나아가셨나이다. 卑服은 猶禹所謂惡衣服也라 康功은 安民之功이오 田功은 養民之功이라 言文王이 於衣服之奉에 所性不存하고 而專意於安養斯民也라 卑服은 蓋擧一端而言이니 宮室飮食自奉之薄을 皆可類推니라 비복(卑服)은 우임금의 이른바 나쁜 의복과 같음이라. 강공(康功)은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공이고, 전공(田功)은 백성들을 길러주는 공이라. 말하기를 문왕이 의복을 받듦에 성품(마음)을 둔 바가 있지 않고 오로지 이 백성들을 편안히 기르는 데에 뜻을 두었음이라.
<無逸10章> 徽柔懿恭하사 懷保小民하시며 惠鮮鰥寡하사 自朝로 至于日中昃히 不遑暇食하사 用咸和萬民하시니이다 아름답게 부드러우시며 훌륭하게 공손하시어 소민들을 품어서 보호하시며, 홀아비와 과부들을 은혜롭게 하여 생기있게 하시어 아침부터 한낮을 지나 해가 기울 때까지 한가롭게 먹을 겨를 함이 없으시어 이로써 만민들을 다 화평케 하셨나이이다. 徽懿은 皆美也라 昃은 日昳也라 柔謂之徽면 則非柔懦之柔요 恭謂之懿면 則非足恭之恭이라 文王이 有柔恭之德而極其徽懿之盛하사 和易近民하여 於小民則懷保之하시며 於鰥寡則惠鮮之하시니라 惠鮮云者는 鰥寡之人은 垂首喪氣어늘 賚予賙給之하여 使之有生意也라 自朝至于日之中하고 自中至于日之昃히 一食之頃을 有不遑暇하사 欲咸和萬民하여 使無一不得其所也라 文王은 心在乎民하사 自不知其勤勞如此하시니 豈秦始皇衡石程書와 隋文帝衛士傳餐으로 代有司之任者之爲哉아 立政에 言罔攸兼于庶言庶獄庶愼이라하니 則文王은 又若無所事事者라 不讀無逸이면 則無以知文王之勤이오 不讀立政이면 則無以知文王之逸이니 合二書觀之면 則文王之所從事를 可知矣라 휘(徽)와 의(懿)는 다 아름다움이라. 측(昃)은 해가 기울어짐이라. 부드러움을 아름답다고 하면 유약한 부드러움이 아니고, 공손함을 훌륭하다고 하면 지나친 공손의 공손함이 아니니라. 문왕이 부드럽고 공손한 덕이 있으면서 그 아름답고 훌륭함의 성함을 지극히 하시어 온화함과 쉬움으로 백성들을 가까이 하여 소민들에 대하여는 곧 품어 보호해주시며 홀아비와 과부에 대하여는 곧 은혜롭게 하여 생기있게 하셨느니라. 혜선(惠善)이라고 이른 것은 홀아비와 과부들은 고개를 숙이고 기운을 잃었거늘 하사품을 주고 구휼하여 살 뜻을 두게 하였음이라. 아침부터 한낮에 이르고, 한낮으로부터 해가 기울 때까지 한식경(一食頃, 밥 한 번 먹을 시간)을 겨를 함이 없으시어 다 만민을 화평하게 하여 한 사람이라도 그 곳을 얻지 못함이 없게 하고자 하였음이라. 문왕은 마음을 백성에게 두시어 스스로 그 부지런히 힘씀이 이와 같음을 알지 못하셨으니 어찌 진시황의 형석정서(衡石程書, 하루에 처리해야 할 문서들을 정해놓고 그만큼의 문서만 저울에 달아 결재했던 일)와 수문제의 위사전찬(衛士傳餐, 회의하다가 길어져 식사 때를 놓치면 호위병들에게 밥을 날라다 먹었던 일)으로 유사들의 일을 대신한 자의 행위이랴? 입정편(13장)에 말하기를 호령과 옥사와 경계할 일들을 겸하신 바가 없다고 했으니 곧 문왕은 또한 일삼은 바가 없는 것 같으니라. 무일편을 읽지 않는다면 문왕의 부지런함을 알지 못하고, 입정편을 읽지 않는다면 문왕의 편안함을 알지 못하니 이 두 글을 합하여 본다면 문왕이 종사한 바를 알 수 있느니라.
足 지나칠 주
<無逸11章> 文王이 不敢盤于遊田하야 以庶邦惟正之供하시니 文王受命이 惟中身이러시니 厥享國이 五十年이시니이다 문왕이 감히 유람과 사냥에 맴돌지 아니하여 여러 나라의 바른(정해진) 공물로써만 하시니, 문왕의 명을 받으심이 중년이시더니 그 나라 누림이 오십 년이셨나이다. 遊田은 國有常制하니 文王이 不敢盤遊無度하여 上不濫費라 故로 下無過取하여 而能以庶邦惟正之供하여 於常貢正數之外에 無橫歛也라 言庶邦則民可知라 文王爲西伯하여 所統庶邦이 皆有常供하니 春秋에 貢於覇主者를 班班可見하고 至唐猶有送使之制하니 則諸侯之供方伯은 舊矣니라 受命은 言爲諸侯也라 中身者는 漢孔氏曰文王九十七而終하시니 卽位時年四十七이라하니 言中身은 擧全數也라 上文의 崇素儉, 恤孤獨, 勤政事, 戒遊佚이 皆文王無逸之實이라 故로 其享國이 有歷年之永이라 유람과 사냥에는 국가에 떳떳한 제도가 있으니 문왕이 감히 유람에 맴돌고 법도가 없이 하지 아니하여 위로 함부로 낭비하지 아니했음이라(遊田은 遊覽과 觀覽의 뜻으로 곧 『주역』 風地觀괘의 省方觀民 設敎에 해당하는 것이다. 『맹자』梁惠王下편 제4장을 보면 천자가 제후에게 가는 것을 巡狩라 하는데 봄과 가을로 순수에 나서 살피는 것은 심고 거둠에 부족한 것을 돕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정해진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즐기는 것만을 일삼는다면 流連荒亡이 된다고 하였으니, 위에서 문왕은 정해진 법도 내에서 遊田을 하였지 한갓 즐기기 위해 遊田에 맴돌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래로 지나치게 취함이 없어서 능히 여러 나라가 오직 정해진 공물로써만 하여 떳떳한 공물의 바른 숫자 외에는 곁으로 거둠이 없었음이라. 여러 나라라면 백성들을 알 수 있음을 말함이라. 문왕이 서쪽의 으뜸 제후가 되어서 여러 나라를 통솔하는 바에 다 떳떳한 공물을 두었으니 『춘추』에 패주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을 줄줄이 볼 수 있고, 당나라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사신을 보내는 제도가 있었으니, 곧 제후들이 방백에게 공물을 바친 것은 오래되었느니라. 명을 받음은 베후가 되었다는 말이라. 중신이라는 것은 한나라 공씨가 말하기를 문왕이 97세에 마치셨으니, 즉위한 때의 나이는 47이라 하니 온전히 수를 들었음을 말함이라. 윗글의 검소함을 숭상하고 고아와 독거노인을 긍휼히 여기고 정사를 부지런히 하고 안일하게 놂을 경계한 것은 다 문왕의 안일하지 않았음의 실제라. 그러므로 그 나라를 누림이 여러 해를 지나 오래함이 있었음이라.
<無逸12章> 周公曰嗚呼ㅣ라 繼自今으로 嗣王은 則其無淫于觀于逸于遊于田하사 以萬民惟正之供하소서 주공이 가로대 아아, 이제부터 이음으로 이어받으신 왕은 그 관람과 편안함과 유람과 사냥을 지나치게 함이 없으셨음을 본받으시어 만민의 바른 공물로써만 하소서. 則은 法也라 其는 指文王而言이라 淫은 過也라 言自今日以往으로 嗣王은 其法文王의 無過于觀逸遊田하사 以萬民惟正賦之供하소서하니라 上文에 言遊田而不言觀逸은 以大而包小也요 言庶邦而不言萬民은 以遠而見近也라 칙(則)은 본받음이라. 기(其)는 문왕을 가리켜 말함이라. 음(淫)은 지나침이라. 금일부터 이후로 이어받으신 왕은 그 문왕의 관람과 편안함과 유람과 사냥을 지나치게 함이 없으셨음을 본받으시어 만민의 바르게 부과한 공물로써만 하시라고 말함이라. 윗글에서 유람과 사냥을 말하면서 관람과 편안함을 말하지 않은 것은 큰 것으로써 하여 작은 것을 포함한 것이고, 여러 나라를 말하면서 만민을 말하지 않은 것은 먼 것으로써 하여 가까운 것을 나타냄이라.
<無逸13章> 無皇曰今日에 耽樂이라하소서 乃非民의 攸訓이며 非天의 攸若이라 時人이 丕則有愆하리니 無若殷王受之迷亂하사 酗于酒德哉하소서 한가롭게 오늘만 즐거움에 빠진다고 말하지 마소서. 이는 백성이 교훈 삼을 바가 아니며 하늘이 따를 바가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크게 허물을 본받으리니 은나라 왕인 수처럼 미혹되고 어지러워져 주덕에 빠지지 마소서. 無는 與毋通이오 皇은 與遑通이라 訓은 法이오 若은 順이오 則은 法也라 毋自寬暇하여 曰今日에 姑爲是耽樂也라하소서 一日耽樂은 固若未害나 然이나 下非民之所法이오 上非天之所順이라 時人이 大法其過逸之行하리니 猶商人化受而崇飮之類라 故로 繼之曰 毋若商王受之沈迷하여 酗于酒德哉하소서하니라 酗酒를 謂之德者는 德은 有凶有吉하니 韓子所謂道與德爲虛位 是也라 무(無)는 ‘말 무(毋)’로 통하고, 황(皇)은 ‘겨를 황(遑)’으로 통하니라. 훈(訓)은 본받음이고, 약(若)은 순히 따름이고, 칙(則)은 본받음이라. 스스로 느긋하고 한가롭게 오늘만 잠깐 이 즐거움에 빠진다고 말하지 마소서. 하루의 탐락은 진실로 해됨이 없는 것 같지만 그러나 아래로 백성들이 본받을 바가 아니고, 위로는 하늘이 순히 따를 바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크게 그 지나치게 안일한 행동을 본받으리니, 마치 상나라 사람들의 수처럼 되어 술 마시는 것을 숭상하게 되는 것과 같은 종류라. 그러므로 이어서 말하기를 ‘상나라 왕이 수처럼 미혹됨에 빠져 주덕에 빠지지 마소서’라고 말하였음이라. 술에 빠지는 것을 덕이라고 말한 것은 덕은 흉함이 있고 길함이 있으니, 한자(韓愈)가 이른바 도와 덕은 빈 자리가 된다는 것(『古文眞寶』가운데 韓愈가 쓴 「原道」라는 글 가운데에 있는 내용이다. “博愛之謂仁, 行而宜之之謂義, 由是而之焉之謂道, 足乎己無待於外之謂德, 仁與義, 爲定名, 道與德, 爲虛位. 故道有君子有小人, 而德有凶有吉”)이 이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