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卷 周書 第三十篇 文侯之命 幽王이 爲犬戎所殺한대 晉文侯與鄭武公으로 迎太子宜臼하여 立之하니 是爲平王이라 遷於東都하고 平王이 以文侯爲方伯하고 賜以秬鬯弓矢할새 作策書命之하니 史錄爲篇하니라 今文古文에 皆有하니라 유왕이 견융에게 살해당하자 진문후가 정무공과 더불어 태자 의구를 맞이하여 세우니 이가 평왕이 되니라. 동도로 옮기고 평왕이 문후로써 방백을 삼고 검은 기장으로 담은 울창주와 활과 화살을 하사할 때 책서를 지어 명하니, 사관이 기록하여 편을 삼았음이라. 금문과 고문에 다 있느니라. <文侯之命1章> 王若曰父義和아 丕顯文武ㅣ 克愼明德하사 昭升于上하며 敷聞在下하신대 惟時上帝ㅣ 集厥命于文王이어시늘 亦惟先正이 克左右하야 昭事厥辟하야 越小大謀猷에 罔不率從이라 肆先祖ㅣ 懷在位하시니라 왕이 이와 같이 가라사대 의화 아저씨여. 크게 드러나신 문왕과 무왕이 능히 밝은 덕을 삼가시어 밝게 위에 오르셨으며 널리 아래에 들리셨으니 이에 상제께서 문왕에게 그 명을 모으셨거늘 또한 선정들이 능히 도와서 그 임금을 밝게 섬겨 작고 큰 계책에 따르지 않음이 없었는지라 이 선조들이 편안히 재위하셨느니라. 同姓故로 稱父라 文侯는 名仇요 義和는 其字니 不名者는 尊之也라 丕顯者는 言其德之所成이오 克謹者는 言其德之所修요 昭升敷聞은 言其德之所至也라 文武之德이 如此라 故로 上帝集厥命於文王하고 亦惟爾祖父 能左右하여 昭事其君하여 於小大謀猷에 無敢背違라 故로 先王得安在位하니라 동성이므로 아저씨라고 부름이라. 문후는 이름이 구(仇)요, 의화(義和)는 그 자니 이름을 부르지 않은 것은 높임이라. 크게 드러났다는 것은 그 덕은 이룬 바를 말함이고, 능히 삼갔다는 것은 그 덕의 닦은 바를 말함이고, 밝게 오르고 널리 들렸다는 것은 그 덕의 이른 바를 말함이라. 문무의 덕이 이와 같으므로 상제께서 그 명을 문왕에게 모으셨고, 또한 당신의 조부들이 능히 도와서 그 임금을 밝게 섬겨 작고 큰 계책에 감히 배반하고 어김이 없었으므로 선왕들이 편안히 재위하였느니라. <文侯之命2章> 嗚呼ㅣ라 閔予小子는 嗣造天丕愆하야 殄資澤于下民이라 侵戎我國家ㅣ 純커늘 卽我御事ㅣ 罔或耆壽俊이 在厥服하며 予則罔克호라 曰惟祖惟父ㅣ 其伊恤朕躬고 嗚呼ㅣ라 有績予一人이면 永綏在位하리라 아아, 불쌍한 나 소자는 계승함에 하늘에 큰 허물을 지어서 재물과 은택을 아래 백성들에게 끊기게 한지라 융이 우리나라를 침범함이 크거늘 곧 나의 어사들이 혹 노성하고 준걸스러운 자들이 그 관직에 있지 않았으며, 나도 능치 못했노라. 가라사대 조부들이 그 누가 나의 몸을 불쌍히 여길꼬? 아아, 나 한 사람에게 공을 두면 길이 편안히 재위하리라. 歎而自痛傷也라 閔은 憐也라 嗣造天丕愆者는 嗣位之初에 爲天所大譴하여 父死國敗也라 殄은 絶이오 純은 大也라 絶其資用惠澤於下民하여 本旣先撥이라 故로 戎狄侵陵하여 爲我國家之害甚大어늘 今我御事之臣이 無有老成俊傑 在厥官者하며 而我小子도 又才劣無能하니 其何以濟難고 又言諸侯在我祖父之列者 其誰能恤我乎아 又歎息言有能致功予一人하면 則可永安厥位矣라 蓋悲國之無人하여 無有如上文先正之昭事而先王得安在位也라 탄식하면서 스스로 마음 아파함이라. 민(閔)은 슬퍼함이라. 계승함에 하늘에 큰 허물을 지었다는 것은 자리를 계승한 처음에 하늘에 큰 꾸지람을 받아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라가 패하였음이라. 진(殄)은 끊김이고, 순(純)은 큼이라. 그 재물과 혜택이 아래 백성들에게 끊겨서 뿌리가 이미 먼저 뽑혔으므로 견융이 침릉하여 우리 나라의 해됨이 심히 큰데도 이제 나의 어사의 신하들이 노성하고 준걸스러운 자들이 그 관직에 있지 아니하여 나 소자 또한 재주가 용렬하고 능히 못하니 그 무엇으로써 어려움을 구제할꼬? 또 말하기를 나의 조부의 항렬에 있는 제후들이 그 누가 능히 나를 불쌍히 여기랴? 또 탄식하여 말하기를, 능히 나 한 사람에게 공을 이르게 함이 있다면 길이 그 자리를 편안히 하리라고 함이라. 대개 나라에 사람이 없어서 윗글에서처럼 선정이 밝게 섬겨서 선왕이 편안히 재위한 것과 같은 것이 없음을 슬퍼함이라. <文侯之命3章> 父義和아 汝克昭乃顯祖하야 汝肇刑文武하야 用會紹乃辟하야 追孝于前文人하라 汝多修扞我于艱호니 若汝는 予嘉ㅣ니라 의화 아저씨여, 당신은 능히 당신의 훌륭한 조상을 밝혀서 당신이 비로소 문무를 본받아 당신의 임금을 모으고 이어서 옛날의 문덕있는 이들을 따라 효도하라. 당신이 닦아서 나를 어려움에서 막아줌이 많았으니 당신과 같은 이는 내가 아름다이 여기니라. 顯祖와 文人은 皆謂唐叔이니 卽上文先正昭事厥辟者也라 後罔或耆壽俊在厥服이면 則刑文武之道絶矣리니 今刑文武는 自文侯始라 故로 曰肇刑文武라 會者는 合之而使不離요 紹者는 繼之而使不絶이라 前文人은 猶云前寧人이라 汝多所修完扞衛我于艱難하니 若汝之功은 我所嘉美也라 훌륭한 조상과 문덕 있는 사람은 다 당숙을 이름이니 곧 윗문장의 선정이 그 임금을 밝게 섬겼다는 것이라. 뒤에 혹 노성하고 준걸스러운 이가 그 관직에 있지 않다면 문무를 본받는 도가 끊어질 것이니, 이제 문무를 본받는 것은 문후로부터 시작함이라. 그러므로 비로소 문무를 본받았다고 함이라. 회(會)는 합하여 떠나지 않게 함이고, 소(紹)는 이어서 끊어지지 않게 함이라. 전문인(前文人)은 전영인(前寧人, 大誥편 10장)과 같음이라. 당신이 닦은 바가 나를 어려움에서 온전히 막고 지켜준 바가 많으니, 그대와 같은 공은 내가 아름답게 여기는 바라. <文侯之命4章> 王曰父義和아 其歸視爾師하야 寧爾邦하라 用?爾秬鬯一卣와 彤弓一과 彤矢百과 盧弓一과 盧矢百과 馬四匹하노니 父ㅣ 往哉하야 柔遠能邇하며 惠康小民하야 無荒寧하야 簡恤爾都하야 用成爾顯德하라 왕이 가라사대 의화 아저씨여, 그 돌아가 당신의 무리들을 살펴서 당신의 나라를 편안히 하라. 당신에게 검은 기장으로 담은 울창주 한 동이와 붉은 활 하나와 붉은 화살 백 개와 검은 활 한 개와 검은 화살 백 개와 말 네 필을 주노니, 아저씨는 가서 멀리 있는 자들을 달래고 가까운 이들을 능하게 하여 소민들을 은혜롭고 편안히 하여 지나치게 편히 말아 당신의 고을을 살피고 걱정하여 당신의 훌륭한 덕을 이루도록 하라. 師는 衆也라 黑黍曰秬니 釀以鬯草라 卣는 中尊也라 諸侯受錫命이면 當告其始祖라 故로 賜鬯也라 彤은 赤이오 盧는 黑也라 諸侯有大功에 賜弓矢하니 然後에 得專征伐이라 馬는 供武用이라 四匹曰乘이라 侯伯之賜는 無常하여 以功大小로 爲度也라 簡者는 簡閱其士요 恤者는 惠恤其民이라 都者는 國之都鄙也라 ○蘇氏曰予讀文侯篇하니 知東周之不復興也로라 宗周傾覆에 禍敗極矣니 平王이 宜若衛文公越勾踐然이어늘 今其書乃旋旋焉하여 與平康之世로 無異라 春秋傳에 曰厲王之禍에 諸侯釋位하여 以間王政이라가 宣王이 有志而後에 效官이라하니 讀文侯之命하고 知平王之無志也로라 愚按史記컨대 幽王娶於申하여 而生太子宜臼러니 後에 幽王이 嬖褒姒하여 廢申后去太子한대 申侯怒하여 與繒西夷犬戎으로 攻王而殺之하고 諸侯卽申侯而立故太子宜臼하니 是爲平王이라 平王은 以申侯立己으로 爲有德하여 而忘其弑父爲當誅하고 方將以復讐討賊之衆으로 而爲戍申戍許之擧하니 其忘親背義하여 得罪於天이 已甚矣니 何怪其委靡頹墮而不自振也哉아 然則是命也는 孔子以其猶能言文武之舊而存之歟아 抑亦以示戒於天下後世而存之歟아 사(師)는 무리라. 검은 기장을 거(秬)라 하니 울금초로 술을 빚느니라. 유(卣)는 중간 크기의 술통(中樽)이라. 제후가 명을 내려줌을 받으면 마땅히 그 시조에게 고하므로 울창주를 하사함이라. 동(彤)은 붉은 색이고, 로(盧)는 검은 색이라. 제후가 큰 공을 둠에 활과 화살을 하사하니 그런 뒤에 온전히 정벌함이라. 말은 군사용으로 이바지함이라. 네 필을 승(乘)이라 하니라. 후백의 하사는 일정함이 없어서 공의 크고 작음으로써 헤아림이라. 간(簡)은 그 관원들을 살피는 것이고, 휼(恤)은 그 백성들을 은혜롭게 구휼함이라. 도(都)는 나라의 도읍지와 시골이라. ○소씨 가로대 내가 문후편을 읽어보니 동주가 다시는 흥하지 못했음을 알겠노라. 종주가 기울어지고 엎어짐에 화와 패망이 다했으니 평왕이 마땅히 위나라 문공과 월나라 구천과 같이 해야 했거늘 이제 그 글이 이에 둥글고 둥글어 평강한 세상과 더불어 다름이 없음이라. 『춘추좌전』(昭公 26년 12월)에 이르기를, “여왕의 환란에 제후들이 자리를 버리고 왕정에 간섭했다가 선왕이 뜻을 둔 뒤에 관직을 바쳤다.” 하니 「文侯之命」을 읽고, 평왕이 뜻이 없음을 알았노라. 내가 『사기』(「周本紀」)를 살펴보건대, 유왕이 신나라에 장가를 들어 태자 의구를 나았는데 뒤에 유왕이 포사를 사랑하여 신후를 폐하고 태자를 버렸는데, 신후가 노하여 증나라와 서이인 견융족과 더불어 왕을 공격하여 죽이고, 제후들이 신후에게 나아가 옛 태자인 의구를 세웠으니 이가 평왕이라. 평왕은 신후가 자기를 제웠다는 것으로써 덕이 있다고 하여 그 아버지를 죽여 마땅히 베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바야흐로 장차 복수하고 적도를 토벌해야 할 무리들로써 신나라르 지키고 허나라를 지키도록 조처하였으니, 그 어버이를 잊고 의리를 배반하여 하늘에 죄를 얻음이 너무 심하였으니, 어찌 그 시들어 쓰러지고 쇠퇴하여 무너져서 스스로 떨치지 못함이 괴이하랴? 그렇다면 이 명은 공자가 그 오히려 능히 문무의 옛 것을 말한 것으로써 두려고 했음인가? 아니 또한 천하 후세에 경계함을 보이는 것으로써 두려고 한 것인가? | ||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法故創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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