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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청정경(淸 淨 經)

ria530 2012. 6. 30. 19:48

 

老君曰大道無形 生育天地 大道無情 運行日月 大道無名 長養萬物 吾不知其名 强名曰道 夫道者 有淸有濁 有動有靜 天淸地濁 天動地靜 男淸女濁 男動女靜 降本流末而生萬物 淸者濁之源 動者靜之基 人能常淸靜 天地悉皆歸 夫人神好淸而心擾之 人心好靜而欲牽之 常能遣其欲而心自靜 澄其心而神自淸 自然六欲不生 三毒消滅 所以不能者 爲心未澄 欲未遣也 能遣之者 內觀其心 心無其心 外觀其形 形無其形 遠觀其物 物無其物 三者旣悟 惟見於空 觀空以空 空無所空 所空旣無 無無亦無 無無旣無 湛然常寂 寂無所寂 欲豈能生 欲旣不生 卽是眞靜 眞應物 眞常得性 常應常靜 常淸靜矣 如此淸靜 漸入眞道 旣入眞道 名爲得道 雖名得道 實無所得 爲化衆生 名爲得道 能悟之者 可傳聖道 老君曰 上士無爭 下士好爭 上德不德 下德執德 執著之者 不名道德 衆生所以不得眞道者 爲有妄心 旣有妄心 卽驚其神 旣驚其神 卽著萬物 旣著萬物 卽生貪求 旣生貪求 卽是煩惱 煩惱妄想 憂苦身心 便遭濁辱 流浪生死 常沈苦海 永失眞道 眞常之道 悟者自得 得悟道者 常淸靜矣

 

 

[해설]

[淸淨經은 노자가 說한 경전으로 중국 삼국시대 吳(오)나라의 道士(도사)였던 葛玄(164~244)의 著書에 실려 있다. 갈현은 『抱樸子』와 『神仙傳』의 著者로 유명한 葛洪(東晋시대 煉丹術師)의 증조부이다. 淸淨經은 오늘날 丹學의 경전으로 암송되고 있는데, 道의 本質的 측면에서 『주역』의 이치와 매우 깊이 연관되기에 소개한다. - 家苑 註]

 

(太上)老君曰大道는 無形이나 生育天地하고 大道는 無情이나 運行日月하고 大道는 無名이나 長養萬物하나니 吾不知其名이나 强名曰道라

노자 가라사대 대도는 형상이 없으나 천지를 낳아 기르며 대도는 감정이 없으나 해와 달을 운행케 하고 대도는 이름이 없으나 만물을 자라고 길러내게 하나니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나 억지로 이름을 붙인다면 도라 하노라.

 

夫道者는 有淸有濁하고 有動有靜하며 天淸地濁하고 天動地靜하며 男淸女濁하고 男動女靜하나니 降本流末而生萬物하니라 淸者는 濁之源이고 動者는 靜之基니 人能常淸靜이면 天地悉皆歸라

무릇 도라는 것은 맑음도 있으며 흐림도 있고, 움직임도 있고 고요함도 있으며, 하늘은 맑으며 땅은 탁하고, 하늘은 움직이고 땅은 고요하며, 남자는 맑고 여자는 흐리며, 남자는 움직이고 여자는 고요하나니, 뿌리를 내리고 끝을 흐르게 하여 만물을 생성하게 하니라. 맑은 것은 흐림의 근원이고, 움직이는 것은 고요함의 터이니, 사람이 능히 항상 맑고 고요하면 천지가 모두 다 돌아가니라.

 

夫人神은 好淸이나 而心擾之하고 人心은 好靜이나 而欲牽之니 常能遣其欲하면 而心自靜하고 澄其心하면 而神自淸하여 自然六欲이 不生하고 三毒이 消滅하리라 所以不能者는 爲心未澄하고 欲未遣也일새라

무릇 사람의 정신은 맑음을 좋아하나, 마음이 그것을 어지럽히고, 사람의 마음은 고요함을 좋아하나 욕심이 그것을 끌어당기나니, 항상 능히 그 욕심을 버린다면 마음이 스스로 고요해지고, 그 마음을 맑게 한다면 정신도 스스로 맑아져서 자연히 육욕(욕심의 뿌리가 되는 六根으로 眼 耳 鼻 舌 身 意를 말함)이 생겨나지 못하고 삼독(도교에서는 三尸라 하는데, 상시(上尸)는 좋은 마차와 말 그리고 의복을 좋아하며, 중시(中尸)는 오미(五味)와 음식을 좋아하며, 하시(下尸)는 색욕(色慾)을 좋아한다고 한다. 만약 삼시(三尸)가 제거되면 사람이 모두 잡념이 없고 배고프지 아니하며 오래 살고 죽지 아니한다. 삼시를 彭琚 彭質 彭矯라고도 한다. 불가에서는 貪瞋痴라 함)이 소멸하리라. 써한 바 능치 못한 자는 마음을 맑게 하지 못하고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

 

能遣之者는 內觀其心이나 心無其心하며 外觀其形이나 形無其形하며 遠觀其物이나 物無其物하니 三者旣悟면 惟見於空이라

능히 욕심을 버린 사람은, 안으로 그 마음을 들여다보나 마음에 그 마음이란 것이 없으며, 밖으로 그 형체를 살피나 형체에 그 형체란 것이 없으며, 멀리 그 물건을 바라보나 물건에 그 물건이란 것이 없으니 세 가지를 이미 깨달았으면 오직 空을 보리라.

 

觀空以空하니 空無所空하고 所空旣無하니 無無亦無하고 無無旣無하니 湛然常寂하고 寂無所寂이니 欲豈能生이리오 欲旣不生이라야 卽是眞靜이라 眞靜應物이면 眞常得性이니 常應常靜이라야 常淸靜矣리라

空을 空으로써 보니 空이 空인 바가 없고, 空인 바가 이미 없으니 無에 또한 無가 없고, 無에 이미 無가 없으니 맑은 듯 항상 고요하고, 고요함에 고요한 바가 없으니 욕심이 어찌 생겨나리오. 욕심이 이미 생기지 않아야 곧 이것이 진실로 고요함(眞靜)이라. 참된 고요함으로 사물에 응하면 진실로 항상 본성을 얻으니, 항상 응하면서 항상 고요하여야 항상 청정(淸靜)하리라.

 

如此淸靜이면 漸入眞道리니 旣入眞道를 名爲得道라 雖名得道나 實無所得이며 爲化衆生이라야 名爲得道니 能悟之者는 可傳聖道니라

이와 같이 청정하다면 점차 진실한 도(道)에 들어가리니 이미 진실한 도(道)에 들어감을 이름하여 도를 얻었다(得道)라 하니라. 비록 득도라 이름하지만 실제로 얻은 바는 없으며, 중생을 교화하여야 득도를 하였다 이름하니, 능히 그것을 깨닫는 자는 가히 성인의 도를 전할 수 있느니라.

 

老君曰 上士는 無爭이오 下士는 好爭이며 上德은 不德이오 下德은 執德이니 執著之者는 不名道德이니라

노자 가라사대 상사(뛰어난 선비)는 다툼이 없고, 하사(어리석은 선비)는 다툼을 좋아하며, 덕이 높은 이는 덕이 없다하고, 덕이 낮은 이는 덕을 잡으니, 집착하는 것은 도덕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衆生이 所以不得眞道者는 爲有妄心이니라 旣有妄心이면 卽驚其神하고 旣驚其神하면 卽著萬物하고 旣著萬物하면 卽生貪求하고 旣生貪求하면 卽是煩惱라 煩惱妄想이 憂苦身心하니 便遭濁辱하면 流浪生死하고 常沈苦海하여 永失眞道하리라

중생이 참 도를 얻지 못하는 까닭은 망녕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라. 이미 망녕된 마음이 있으면 곧 그 정신을 놀라게 하고, 이미 그 정신을 놀라게 했다면 곧 만물에 집착하고, 이미 만물에 집착했다면 곧 탐내고 구함이 생겨나고, 이미 탐구가 생겼다면 곧 이것이 번뇌라. 번뇌와 망상이 몸과 마음을 근심스럽고 수고롭게 하니(괴롭히니) 문득 흐려지고 욕됨을 만나게 되면 삶과 죽음을 흘러 다니게 되고, 항상 고통의 바다에 빠져서 영원히 진실한 도를 잃으리라.

 

眞常之道는 悟者自得이니 得悟道者는 常淸靜矣리라

참되고 항상하는 도는 깨달은 자만이 스스로 얻으니, 도를 깨달아 얻은 자는 항상 청정하리라.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法古創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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