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니 특히 올로 있는 저녁 시간이 되면 거의 완전히 '본색'을 드러내어 그 무엇도 하기 싫어하고 귀찮아 하면서 멍청히 아랫목에 앉아 다만 지겨워만 하고있기가 일쑤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엔가부터는 그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문득 눈에 띈 생라면을 부숴먹기 시작했다. 아하 그렇게 시작된 지리산에서의 나의 생라면부숴먹기는 라면 한박스가 바닥이 나도록 매일 밤 계속되었는데 처음엔 그저 생라면만 부숴먹다가 나중엔 더 맛있게 먹으려고 스프를 조금씩 뿌려가며 먹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버너불에 살짝 구운 다음 그 위에 스프를 뿌려먹으니 더욱 맛있는 것 같아 한꺼번에 두 개씩 먹기도 했다.
아! 생라면을 부숴먹어본 사람은 알리라, 몇 입깨물지 않아 곧 입안이 헌다는것을! 그런데도 나의 생라면 부숴먹기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는데 무엇보다도 가슴 아프고 슬픈 것은 그런중에도 유독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나는 또다시 용맹정진하는 수행자로 표변(豹變)하여 생라면을 부숴먹기는 커녕 그 시간 내내 공부하고 정진한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그 사람 앞에서 끝없이 끊임없이 지껄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직 생라면 냄새가 채 가시지도 않은그 입으로 말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아주 가끔씩은 이런저런 볼일 때문에 대구로 나왔었는데, 그럴 때면 으레 예의 그 자기방기적(自己放棄的)인 게으름과 권태가 발동하여 무슨 특별한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괜스레 시내 중심가로 나가 할일없이 거리를 배회하곤 했다.그러다가는 또 달리 할 일도없고 해서 남의 눈을 피해가며 야한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3류 영화관을 곧 잘 찾곤했다. 하!그런데 이때의 나의 모습을 볼라치면 마치 007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과 민첩함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래도 나의 마음 속에는 내가 진리를 얻기 위해 속세을 떠난 수행자라는 의식--이것은 특히 남들을 만나기만하면 내단한 자부심과 허영심으로 더욱 강화되고 미화되었다--이 무슨 자랑처럼 각인되어 있었기에 문득 야한 형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그 순간부터는 혹여라도 나를 아는 사람에게 들킬까봐 가슴 졸이며 온 사방을 두리번거리게 되었던 것이다.그것은 영화관이 가까워 올수록 강도를 더해가 때로는정말이지 총을 든 007처럼 벽에 등을 착 붙인채 주위를 살피기도 하고, 또 때로는 우연히 아는 사람과 마주치게 되면 이번에는 그냥 그곳을 지나가던 중인것처럼 짐짓 온 얼굴에 미소까지 머금은 채 태연하게 행동한다.
그러다가 이윽고 영화관 입구까지 다다르게 되면 이번엔 극도의 긴장감과 민첩함으로 재빨리 건물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는데, 오! 그 마지막 순간에 남의 눈에 들켜서는 안되지 않는가! 그렇게 영화관에 들어가서는 누구의 눈에도 뛸 염려가 없는 어두컴컴한 속에 앉아 회심의 미소마저 띄면서 야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마른 침을 꿀떡 삼키면서 눈이 벌겋도록 영화를 본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다시 밖으로 나올 때는 아까와는 반대로 재빨리 영화관을 빠져나오고, 그리곤 가급적 멀리 누가 보더라도 그런 저질의 영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들 것 같은 곳까지 빠른 걸음으로 가서는, 이번에는 꿈에서조차 영화를 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얼굴이 되어 다시 거리를 활보한다.
아하 그렇게 끝없이 끊임없이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온갖 거짓과 가식 속의 허망하고 헛헛한 삶을 살아가던 나도(남의 눈에 비친 나)나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해 눈뜨기 시작면서 조금씩 변해하고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이제는 그냥 다만 나는 나로서 살아가는 --I am who I am-- 아아 겉과 속이 같으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지! 그모든 방황이 끝난 이 삶이 얼마나 복되고 충만한지! 그리하여 말로서는 이루 다 형언될 수 없는 존재의 이 지복(至福)--우리 모두에게 이미 구족(具足)한 -- 을 나는 올올이 무두와 나누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찾는 인생의 국극의 '답'은 <추구>의 연장선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노력>으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완전하게 할 수 없다. 우리가 그리는 '완전'이란 실재(實在)하지 않는, 우리의 관념 속에만 있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답'은 뜻밖에도 '지금'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답'을 얻고서야 마침ㅁ내 <추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득<추구>를 그칠 때 내가 이미 처음부터 '답'이었음을 그제서야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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