示衆〈13-9〉
≪주해≫
* 1) 몽환반자(夢幻伴子) : 꿈이나 환상에 의지한 것과 같은 허망한 육신.
* 2) 무상(無常) : 여기서는 죽음을 뜻함.
* 3) 멱취일구반끽(覓取一口飯喫) 운운 : 한 그릇의 밥을 찾아먹거나 옷을 주워입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뜻. 취(取)는 분소의(糞掃衣)의 뜻. 즉 승복(僧服).
* 4) 사종무상경(四種無相境) : 일념(一念) 중에 4상(四相 : 地水火風)을 초월한 세계에 들어감. (〈13-10〉참조).
* 5) 파박(擺撲) : 팔려서 끌려다님. 혹란(惑亂)이라는 뜻.
〈13-10〉
≪주해≫
* 1) 이일념심의(儞一念心疑) 운운 :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상(四相)을 의(疑)․애(愛)․진(嗔)․희(喜)의 네 가지 정념(情念)에 비유한 것. 나가르쥬나(Nagarjunā)의 《대지도론(大智度論)》18에는,「지(地)는 견중(堅重)의 상(相), (水)는 냉습(冷濕)의 상, 화(火)는 열조(熱照)의 상, 풍(風)은 경동(輕動)의 상」이라고 되어 있다.
* 2) 불피경전(不被境轉) 운운 : 경(境)은 대상(對象). 외부의 경계에 이끌림을 당하지 않음.
* 3) 동용서몰(東涌西沒) 운운 : 경계를 자재하게 사용하는 것을 육종진동(六種震動)과 십팔신변(十八神變)의 표현을 빌어서 설명한 것. 이려한 구절은《증일아함(增一阿含)》50,《대반야경(大般若經)》322, 404, 《마하반야바라밀경》2, 《오분율(五分律)》3에도 보인다.
〈13-11〉
≪주해≫
* 1) 오대산(五臺山) : 중국 산서성(山西省)이 있다. 당대(唐代)라는 화엄사상의 유행에 따라《화엄경》에서 설해있는 문수 보살의 영장(靈場)이 이 산의 동북방 청량산(淸涼山)에 있다는 성지신앙(聖地信仰)이 있었다.
* 2) 시종불이(始終不異) 운운 : 여러 가지 움직임이 결코 분열된 지혜가 아니라는 뜻. 시종(始終)은 시간적인 전후(前後)와 같다. 본래적인 것〔性〕과 현실적인 것〔相〕의 관계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
* 3) 관음삼매(觀音三昩) : 자비를 대표하는 관세음보살의 삼매. 돈황사경(敦煌寫經) 가운데《관음삼매경(觀音三昩經)》이 있으며, 마끼다 아끼료(牧田諦亮) 씨의《六朝古逸觀世音應驗記硏究》에 상세하다.
* 4) 호위주반(互爲主伴) 운운 : 문수․보현․관음의 세 보살이 서로 주인이 되기도 하고 손님이 되기도 하여 동시에 출현한다는 말. 이 설(說)은《화엄합론(華嚴合論)》5에 상세하여, 《조당집》25의 오관산(五冠山) 순지(順之)의 장(章)을 보라.
* 5) 시호간교(始好看敎) : 경(經)과 논(論)을 볼 자격이 생김. 임제는 후에〈14- 5〉에서 간경간교(看經看敎)는 바로 업을 짓는 것이며, 간경의 눈을 갖추지 못하고 경을 읽는 것은 무의미함을 강하게 주장한다. 이 설은《백장광록》,《전등록》6에도 보인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는 곳마다 진리의 땅이 되게 하라〔隨處作主 立處皆眞〕는 임제의 법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구절에 담긴 뜻은 앞에서의 법어에서도 밝혀지고 있지만 어떠한 대상(對象)에 규제됨이 없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그대로 진실이라는 것이다. 입처(立處)란「진정한 자유정신을 깨달아 얻게 되면 다시는 명칭과 형상의 굴레에 구속되지 않는다〔把得便用 更不著名字〕」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뒤에 나오는「전체작용(全體作用)」고 같은 뜻을 가리킨다. 임제 선사상의 특색은 이 한 구절에 표현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다. 이 구절에 내포되어 있는 사상은 실로 위진(魏晋) 이래 중국의 대승불교가 추구해 온 기본적 테마였다. 임제는 그것을 독자적인 발전의 정점(頂點)에 세우고 있는 것이다.「수처작주 입처개진」은 승조(僧肇)의《부진공론(不眞空論)》의 말미에서도 보이며, 마조(馬祖)의 어록을 거쳐 임제에게 계승되고 있다.《부진공론》을 배경으로 하는「촉사이진(觸事而眞)」의 사상은 수당제종(隨唐諸宗) 성립을 이끄는 근본동기인 것이다. 임제의 주장은 중국 대승불교의 흐름 위에 위치하지만 독특한 개성을 발현하고 있다. 평상무사(平常無事), 아시송뇨(屙屎送尿), 착의끽반(著衣喫飯)은 모두 일상의 목전에서 현용(現用)하는 것이지만, 단순히 일상성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성의 거부는 사실 가장 형이상학적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임제의 선배 격인 대주혜해(大珠慧海)의《제방문인참문어록(諸方門人參問語錄)》을 보자.
「원 율사(律師)가 와서 물었다.〈화상께서는 도(道)를 닦는 데 노력하시는지요?〉스님께서 이르기를,〈그럼 힘쓰고말고.〉〈어떤 노력을 하십니까?〉〈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곤하면 곧 쉬지.〉율사가 이르되,〈그것은 수도자가 아니더라도 세상사람들이 다 하고 있는 일이 아닙니까? 어찌 그것을 노력한다고 하십니까?〉하였다. 스님께서 이르시되,〈그렇지 않네〉하였다.〈어찌 그렇지 않습니까?〉〈세상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도 밥을 기꺼이 먹지 못하고 생각이 백 가지로 달리고, 잠을 잘 때도 기꺼이 자지 못하고 천 가지 계교(計校)를 놓지 못하니 나와는 같지 않은 것일세.〉이에 원 율사는 입을 다물었다.」
가장 평범한 현실에 충실한다는 것은 당연한 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종래의 습기(習氣), 오무간의 업을 순간에 해탈의 바다로 전환시켜 버릴 만큼의 근원적인 깨달음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현대의 천박한 현실주의적 일상성과는 전혀 다르다.
임제는 불마(佛魔)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진(眞)은 위(僞)에 대한, 속(俗)에 대한 언어이다. 진정(眞正), 즉진(即眞), 입처개진(立處皆眞), 그리고 참된 출가. 임제는 확실히 진(眞)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고 있다. 당시 세간에는 위(僞)와 속(俗)이 횡행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의 설법은 당시의 위와 속에 대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진(眞)의 작용은 대기대용(大機大用), 전체작용(全體作用), 처처진진(處處眞眞)을 요한다. 참된 출가란 날마다 황금 만냥을 쓰는 것과 같은 값진 것이다.
「즉금의 현재, 눈앞에서 또렷이 홀로 밝아 역력하게 설법을 듣는 사람〔即今目前孤明歷歷地聽法底人〕은 수처(隨處)에 주(主)가 되는 까닭에 어디에도 걸림이 없다. 수처작주란 나아가 수처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수처에 고정되어 버린다면 이미 작주(作主)는 타인의 것이며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을 임제는 수처청정(隨處淸淨)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깨달음의 빛살이 시방을 꿰뚫는 것이며, 만법(萬法)이 일여(一如)한 것이다.
《전등록》11 앙산(仰散)의 장(章)을 보자.
「상공(相公)의 정우(鄭愚)가 물었다.〈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들 때는 어떠합니까?〉대사가 불자(拂子)를 번쩍 세우니, 상공이 말했다.〈입(入)자를 필요치 않아도 되겠습니다. 〉〈입(入)자 하나가 상공을 위한 일도 없소.〉」
여기서 입(入)이라고 하는 글자는 번뇌보다도 열반에 중점을 두었을 때 필요한 것이다. 입(入)의 입장이 필요치 않은 것은 바로 열반에도 기울어지지 않았을 때이다. 번뇌가 그대로 열반이라면 입(入)자는 필요치 않은 것이다. 그러나 입(入)의 일자가 필요치 않다면 번뇌와 열반을 직접 일체(一體)로 보는 고정관념을 남기게 되기 쉽다. 오히려 입(入)자의 일자는 열반을 물리치고 번뇌에 들어가 활동한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임제가 말하는 진정한 견해는 진속(眞俗)․범성(凡聖)․염정(染淨)의 세계에 들어가 진속․범성․염정을 판단하고 물리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입(入)의 일자는 어떠한 사실의 고정화(固定化)도 타파하는 임제설법의 특색을 나타내는 것이다.
임제는〈13-10〉에서 사종무상(四種無相)의 경지를 설명하면서, 입처(立處)의 진(眞)을 실현하는 일념심(一念心)을 분석한다. 사종무상경(四種無相境)이란 우리들의 신체를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가 일념심에 응결되어 있으나 그 본래는 형상이 없는〔無相〕것이라는 설명이다. 지수화풍을 일념심의 의(疑)․애(愛)․진(瞋)․희(喜)에 비유한 사고(思考)는 매우 중국적이다. 이러한 해설은 송대(宋代) 신유가의 큰 환영을 받았던 해석이기도 하다. 이 사종무상의 설명은 사실 그 일부가 보리달마의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의 제 2, 수연행(隨緣行)에 보이는 내용이다.
「우리는 모든 중생이 업보(業報)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진정한 자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고락애환(苦樂哀歡)의 혼방(混紡)은 인연에 의해 방적된다. 따라서 만일 내가 재물이나 명예, 그리고 다른 좋은 것들로 보상받는다면 그것은 운명적으로 이승〔此生〕에서 응보되어져야만 하는, 자신이 전생에 행한 행위의 결과임을 마땅히 깨달아야만 한다. 그러나 업의 시효가 다 되면 재물이나 명예, 그리고 다른 좋은 것들로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것을 얻었다고 의기양양해 할 이유가 있을까? 그러므로 삶의 변화무쌍한 조건들과 형편에 따라 득실(得失)이 자연적 경로를 따라가도록 내버려 둘 일이다.」
삶의 변화무쌍한 조건들과 형편에 적응하는 규범, 곧 수연행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달마의 수연행이 진여(眞如)의 수연성(隨緣性)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비해 임제는 사종무상경의 분석을 통해 법계연기(法界緣起)의 전체성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임제는 문수․보현․관음의 주반무애(主伴無碍)의 활동을 모두 일심(一心)의 작용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14-1〉
≪주해≫
* 1) 자신(自信) : 《마조어록》에서는,「그대들의 마음이 바로 부처이며, 이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스스로 굳게 믿으라」고 설해지고 있다. 선(禪)의 신(信)에 관해서는〈1-5〉의 신불급(信不及)을 참고로 한 것.
* 2) 총상타한진경( 總上他閑塵境) 운운 : 이 구절은 위의,「차요자신막향외멱(且要自信莫向外覓)」의 반대라는 입장을 표현한 것.「총(總)」,「개(皆)」도 글의 뜻을 강하게 하는 말. 한진경(閑塵境)은〈14-40〉의 한명구(閑名句),〈10-6〉의 한기경(閑機境)과 같다. 고인(古人)이 방편으로 설한 언구와 행동에 집착하는 것.
* 3) 교적(敎迹) : 교의(敎義)․교조(敎條).《조론(肇論)》에서는,「중생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각각 다르므로 교적(敎迹)도 여러 가지로 다른 것이다〔群情不同, 故敎迹有異耳〕라고 되어 있다.
* 4) 염기(拈起) : 잡아일으켜서. 꺼내들고.
* 5) 은현중출(隱顯中出) : 표리양의(表裏兩義)를 포함하여 분명히 단(段)을 나타낸다는 것. 은현(隱顯)은 화엄(華嚴)의 용어이기도 하지만 도가(道家)의《장자》에서도 쓰인다.《보림전(寶林傳)》3의 11조 부나야사(富那夜奢)나, 12조 마명(馬鳴)의 전법게(傳法偈)에도 보이는 선(禪)의 언어이기도 하다.
* 6) 지마(祗麽) : 오로지, 지마(只麽)라고도 쓴다.
* 7) 논주론적(論主論賊) 운운 : 세간의 화제에 몰두하는 것. 희론(戱論) 주(主)자를《천성광등록》11에서는 왕(王)자로 쓰고 있는데, 다른 곳의 출처에 근거해 보아도 아마 왕(王)자가 맞을 것이다. 비구들에게 왕사(王事), 적사(賊事), 성(性), 의술(醫術)에 대한 이야기를 경계하는 설법은《대반야경》327, 《불임열반기법주경(佛臨涅槃記法住經)》,《대보적경(大寶積經)》2, 《대비로자나성불경소(大毘盧遮那成佛經疏)》18에서도 보인다.
* 8) 산승차간(山僧此間) 운운 :「나는 여기서 승속의 구별을 문제삼지 않겠다」는 뜻. 차간(此間)은 「여기서」라는 말.
* 9) 단유래자(但有來者) 운운 : 단유(但有)는 속어, 「대체」, 「대략」,「전부」의 뜻.
〈14-2〉
≪주해≫
* 1) 각견승경저인(却見乘境底人) 운운 : 각견(却見)은 아래의 구절을 강조하는 표현. 승경저인(乘境底人)은 적극적으로 경계(境界)나 명구(名句)를 사용하는 사람.
* 2) 아즉응청정경출(我卽應淸淨境出) : 여래(如來)의 신(身)으로서 제도할 자는 여래의 모습(자성청정의 경지)를 나타낸다는 뜻.《화엄경》38 십지품(十地品) 참조. 응(應)은 상응(相應)․감응(感應). 상대방의 바람에 맞추는 것.
* 3) 응물현형(應物現形) 운운 :《금광명경》제2권 사천왕품의 게(偈)에,「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마치 허공과 같다. 중생의 바람에 응하심이 물 위를 비추는 달과 같다」라는 구절이 실려 있다.
〈14-3〉
≪주해≫
* 1) 여법(如法) : 참답게 되고자 한다면.
* 2) 직수(直須) : 직(直)은「모름지기〔須〕」를 강조하는 말.
* 3) 위위수수지(萎萎隨隨地) : 기운이 없이 축 처진 모습. 나무나 풀이 시들어서 기운이 없는 것을 가리킴. 여기서는 인혹(人惑)을 받아 주체성이 없는 것.《전등록》14 약산(藥山)의 장(章)에는 도오(道悟)스님이 약산 스님에게「화상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하고 묻자「나는 뒤틀리고 여위었지만 그런 대로 살아왔네」라고 대답하는 구절이 실려 있다.
* 4) 사사지기(甃嗄之器) : 깨져서 소리나는 그릇.
* 5) 제호(醍醐) : 최상의 버터(butter).
* 6) 삼안국토(三眼國土) :〈14-4〉를 보라.
〈14-4〉
≪주해≫
* 1) 삼안국토(三眼國土) : 본래는《화엄경》입법계품에서 설해지는 선현비구(善現比丘)의 정토(淨土).《화엄합론(華嚴合論)》96에서는 법안(法眼)․지안(智眼)․혜안(慧眼)의 세 가지를 들고 있으나 해석자에 따라 설명이 일정하지 않다. 임제는 삼안(三眼)을 삼신(三身)으로 해석하고 있다.
* 2) 아공니입정묘국토(我共儞入淨妙國土) : 삼안국토는 달리 멀리서 구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그대들과 함께 있는 바로 이 곳이 삼안국토라는 뜻. 정묘(淨妙)는《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서 설해지는 정토의 이름. 청정의(淸淨衣)는 법신(法身)의 청정성(淸淨性)을 옷에 비유한 것. 이와 같은 발상은 조주(趙州)의「보리․열반․진여․불성은 모두가 몸에 걸친 의복」이라는 법문에서도 보인다.
* 3) 의변(依變) : 상대방의 입장에 따르는 변화.
* 4) 고인운(古人云) 운운 :〈10-4〉에 나오는 자은규기를 가리킨다.
* 5) 의통국토(依通國土) : 상대적인 이해의 영력을 벗어나지 못함. 진실이 아님.
* 6) 공권황엽(空拳黃葉)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한 방법.《열반경》영아행품(嬰兒行品),《대반야경》599에서도 보이는 이야기. 선어록《백장광록》,《전심법요》, 《조당집》16 남전(南泉)의 장(章)에도 보인다.
* 7) 심외무법(心外無法) 운운 :《능엄경》의 이야기.《완능록》에도 「심외무법만목청산(心外無法滿目靑山)」이라는 구절이 있다.
〈14-5〉
≪주해≫
* 1) 제방언도(諸方言道) : 종래에는 다음 구절과 이어서,「제방에서는 도(道)는 닦음이 있고 증함이 있다」라고 읽었으나 바르지 않다. 언도(言道)는「이르되」,「일러 말하기를」이라는 뜻.
* 2) 육도만행(六度萬行) : 불도수행(佛道修行)의 조건으로서의 육바라밀.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만행(萬行)은 대승보살이 닦는 모든 수행방편.
* 3) 개시조업(皆是造業) : 어떠한 인위적인 수행도 진실되지 않음. 모두 장애가 됨.
* 4) 위청정업(爲淸淨業) : 일반적으로 유루유위(有漏有爲)는 오염(汚染), 무루무위(無漏無爲)는 청정(淸淨)으로 해석되지만, 무사(無事)한 사람은 시비의 구별이나 조작이 없으므로 모든 행위가 그대로 청정하다는 뜻. 여기서 청정은 오염에 대한 상대적인 의미의 청정이 아니라 공(空)의 본성을 가리킨다.
* 5) 일반할독자(一般瞎禿子) : 심안(心眼)이 열리지 못한 불특정 다수의 수행자들.
* 6) 좌선관행(坐禪觀行) 운운 : 번뇌에 대치(對治)되는 선(禪). 염루(念漏)는 번뇌를 뜻함. 이 구절은 원래 굴다(崛多) 삼장이, 북종파(北宗派)의 제자가 독좌간심(獨坐看心)하는 것을 비판하는 이야기에서 비롯된다.《조당집》3 굴다리 장(章)을 보자.
「육조(六祖)의 법을 이었다. 그는 인도 출신이다. 대원(大原)의 정양현(定襄縣) 역촌(曆村)까지 왔을 때, 신수(神秀) 대사의 제자가 초막을 모으고 홀로 앉아서 마음을 관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무엇을 하는가?〉승이 대답했다.〈고요함을 지켜봅니다〔看靜〕.〉〈지켜보는 이는 누구이며, 고요함이란 무엇인가?〉승이 얼른 일어나 예배하고 물었다.〈그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가르쳐 주옵소서.〉굴다 삼장(崛多三藏)이 말했다.〈왜 스스로를 지켜보지 않고, 스스로를 고요하게 하지 않는가〔何不自看 何不自靜〕?〉승이 대답이 없자 삼장께서는 그의 근성이 매우 둔한 것을 보고 물었다.〈그대의 스승은 누구인가?〉〈신수(神秀) 화상이십니다.〉〈그대의 스승은 이 법만을 가르치던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던가?〉〈저더러 그저 고요함만을 지켜보라 합니다.〉〈그것은 인도의 근기 낮은 외도(外道)들이 익히는 법이다. 이 땅은 선종(禪宗)인 줄 알았는데 사람들을 대단히 크게 그르치고 있구나!〉승이 물었다.〈스님의 스승은 누구이십니까?〉〈육조(六祖)이시니라.〉이어 다시 말씀하셨다.〈바른 법은 듣기 어려운 것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리로 가지 않는가?〉그 중은 삼장의 충고를 받자 바로 조계(曺溪)로 가서 육조를 뵙고 그간의 일을 자세히 말씀드리니 육조께서 말씀하셨다.〈굴다의 말이 옳다. 그대는 어찌하여 스스로를 지켜보지 않고 스스로를 고요하게 하지 않으면서 누구더러 그대를 고요하게 하라 하는가?〉그 중이 이 말씀에 크게 깨달았다.」
* 7) 염훤구정(厭喧求靜) : 보지(寶誌)의《십사과송(十四科頌)》의〈정란불이(靜亂不二)〉에서는「성문(聲聞)은 시끄러움을 피하고 고요함만을 구하니 마치 가루를 버리고 떡을 찾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 8) 조사(祖師) 운운 :「주심간정(住心看靜)」이하의 구절은 하택신회(荷澤神會 670~762)의 유명한 북종선(北宗禪) 비판의 구절.
* 9) 이약주심간정(儞若住心看靜) 운운 :《신회화상유집(神會和尙遺集)》,《남양화상단어(南陽和尙壇語)》에 보이는 구절.「주심간정」이하는 신회가 북종신수(北宗神秀) 계통의 선을 이 4구(句)로 요약하여 강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14-6〉
≪주해≫
* 1) 고부저일쌍안(辜負這一雙眼) : 본래 갖추어진 두 눈을 못 쓰게 버리고.
* 2) 냉금금지(冷噤噤地) : 추워서 벌벌 떨며 입을 다물고. 비하(卑下)를 나타낸다.
* 3) 시비천하(是非天下) : 천하의 노화상(老和尙)을 비판함.
* 4) 향역순중멱인(向逆順中覓人) : 표리양면(表裏兩面)에서 사람들을 단련시키는 모든 방법으로 사람들을 찾음.
* 5) 십이년중(十二年中) :《문수사리근본의궤경(文殊師利根本儀軌經)》제14권에는,「12년을 대년(大年)으로 한다」고 되어 있으며,《유마경》관중생품에는,「나는 12년 이래 여인의 상을 찾았으나 마침내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6) 신부자선사(新婦子禪師) : 시집 간 화상. 인혹(人惑)을 받아 주체성을 잃어버린 선승.
* 7) 자고선배(自古先輩) 운운 : 선구자는 항상 박해를 받아 왔다는 뜻.
* 8) 사자일후(師子一吼) 운운 : 사자가 한번 소리를 지르면 모든 동물이 기절한다는 이야기. 야간(野干)은 인도의 들개로서 이리의 일종. 이 말은《오분율(五分律)》3에 보이는 고사(故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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