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이야기-<삼국사기>에서
작자 '김부식(金富軾).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계에 진출. 귀족 관료로 화려한 일생을 보냈다. 고문의 제1인자로 문집 20 권을 남겼다. 1145년에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완성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신라, 고구려, 백제의 왕실을 중심으로 기록한 우리 나라 최고(最古)의 기전체 역사책이다.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의 사람이었다. 생김새는 우스꽝스러웠지만 마음씨는 곱고 착한 사람이었다. 집이 가난하여 언제나 밥을 빌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다 떨어진 옷에 해진 신발을 신고 길거리를 오고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바보 온달」이라 불렀다. 그 즈음 평강왕에게는울기를 잘하는 어린 공주가 있었다. 어느 날 왕은 장난 삼아 공주에게 말했다.
나중에 커서도 사대부의 아내는 될 수 없을 터인즉,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 보네야 하겠다." 어느덧 공주의 나이 16세가 되어, 왕은 공주를 상부 고씨에게 시집 보내려 하였다. 그러자 공주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제 와서 무엇 때문에 다른 말씀을 하십니까? 보잘 것없는 백성들도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데, 하물며 아버님은 이 나라의 가장 높으신 임금님이신데 어찌하여 두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 임금님께서 내리신 명은 잘못된 분부이시오니, 황송하오나 소녀는 아버님의 명령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왕은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너는 이제부터 내 딸로 같이 살 수 없으니 네 갈데로 가 버려라." 공주는 값이 나가는 팔찌 수십 개를 팔목에 걸고, 혼자서 궁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온달의 집을 묻고 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먼저 눈먼 늙은 어머니를 뵙고 절을 하면서 온달이 있는 곳을 물었다. 그러자 온달의 어머니는 말했다. "내 아들은 가난하고 누추해서 귀한 사람이 가까이 할 사람이 못 됩니다. 지금 당신에게서 풍기는 향기를 맡으니, 보통 사람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당신의 손은 비단같이 부드럽고 매끄러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 틀림없는 것 같은데, 누가 속임수를 써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소? 내 아들은 배가 고파서 참지 못하고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산에 갔습니다. 공주는 한참 기다려도 온달이 돌아오지 않으므로, 집밖으로 나와 산 아래로 갔다. 그제야 온달이 느릅나무 껍질을 짊어지고 오는 것이 보였다. 공주는 온달에게 마음속의 생각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러나 온달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이곳은 어린 여자가 살 곳이 아닙니다. 이건 분명히 사람이 아니고 여우나 귀신일 것이니, 나를 쫓아오지 마시오." 온달은 퉁명스럽게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공주는 혼자서 온달의 집으로 가서, 사립문 밑에서 밤을 새웠다. 이튿날 아침에 문을 열자 다시 집안으로 들어간 공주는, 온달과 그 어머니에게 그 동안의 사연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온달은 공주의 말을 듣고도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내 자식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신분이 천한데, 어떻게 귀인의 배필이 될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공주는 온달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옷을 기워 같이 입었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마음만 같다면, 부자가 되고 신분이 귀하게 된 후에 함께 살아야 된다는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공주는 온달의 아내가 되었다. 곧 공주는 가지고 온 금팔찌를 팔아서 밭과 집 · 노비와 소 · 말과 기물 등을 사서, 사용할 수있는 모든 자재들을 두루 갖추었다. 그리고 온달에게 처음 말을 살 때의 주의할 점을 일러주었다. "저잣거리의 장삿군들이 파는 말을 사지 마시고, 한때는 국마였지만 병들고 수척하여 내다 팔게 된 것을 고르십시오."온달은 공주의 말대로 버려진 말을 사가지고 왔다. 공주가 정성 들여 그 말을 기르니 하루가 다르게 살이 찌고 씩씩해졌다. 고구려에서는 매년 3월 3일이 되면 낙랑의 언덕에 모여 사냥을 하였는데, 그날 잡은 산돼지와 사슴들을 가지고, 하늘산천의 신에 제사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그 날이 되어 왕이 사냥을 하러 나가자, 여러 신하들과 오부의 군사들이 뒤를 따랐다. 온달도 기른 말을 타고 번개처럼 앞장서서 많은 짐승들을 잡았다. 왕은 온달을 불러 그 이름을 물어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나라의 무제가 군사를 이끌고 요동으로 쳐들어 왔다. 왕은 친히 병력을 이끌고, 배산의 들에서 적에 대항하여 싸웠다. 이 때 온달은 맨 앞에서 용감히 싸워, 수십 명의 적의 머리를 베었다. 모든 군사틀이 이것을 보고 힘을 얻어 싸움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사람들은 이 싸움에서 제일 가는 공로자로 온달을 내세웠다. 왕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이후로 온달에 대한 왕의 사랑은 더욱 두터워지고, 그의 위엄과 권세도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갔다. 세월이 흘러 앙강왕이 왕위에 오르자, 온달은 왕에게 아뢰었다. "신라가 우리 고구려의 한강 북쪽 땅을 빼앗아 신라의 군현으로 만틀어, 백성틀이 이를 통탄하고 한스럽게 생각하며, 한시도 부모의 나라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원하옵건대, 저를 어리석다 여기지 마시고 군사를 주신다면, 용감히 싸워 반드시 고구려의 땅을 찾아오겠습니다." 왕은 온달의 요청을 허락하였다. 온달은 싸움터에 나가기 전에 굳은 맹세를 하였다. "내가 계림현과 죽령의 서쪽 땅을 우리 고구려의 땅으로 회복하지 못하면 돌 아오지 않을 것입니다."온날은 싸움터로 나아가 신라 군사와 아차성 밑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길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런데, 병사들이 장사를 지내려고 하였으나, 관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평강 공주가 싸움터로 달려가 관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살고 죽는 것은 오직 하늘의 뜻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으니 이젠 고향으로 돌아가십시오." 마침내 온달의 관이 움직여 장사를 지냈다. 왕은 이 소식을 듣고 몹시 슬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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