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 梁惠王은 魏侯罃也니 都大梁하야 僭稱王이라. 諡曰惠라. 史記 惠王三十五年에 卑禮厚幣하야 以招賢者할새 而孟軻(읽을 때는 ‘맹모’라 한다) 至梁하시니라.
양혜왕은 위나라 제후인 영(罃)이니 대량에 도읍해서 참람하게 왕이라 일컬었으며 시호는 혜라고 한다. (사마천의)『사기』(魏世家)에 ‘혜왕이 (재위) 35년에 예를 낮추고 폐백을 두터이 해서 (써) 賢者를 초청하니 (이에) 맹자께서 양나라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孟軻는 聖賢의 이름으로 입에 올리기를 꺼려(諱 :꺼릴 휘) 옛적에는 ‘맹모’로 읽었다.
王曰 叟不遠千里而來하시니 亦將有以利吾國乎잇가
왕이 가로대 ‘노인께서 천리를 멀지 않다고 오시니 (또한 노인께서도) 장차 (써)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 |
▲ 叟는 長老之稱이라. 王所謂利는 蓋富國彊兵之類라.
수(叟)는 나이가 많은 노인에 대한 칭호이다. 왕이 ‘利’를 일컬은 바는 대개 부국강병과 같은 종류를 말함이다.
▲ 惠王이 溺於功利之習하고 乃問孟子曰 齒德惟叟하야 寡人素所仰慕也니 今自鄒至梁하야 不憚千里之遠而來亦將有富國强兵之策而可以利益吾國乎잇가
(양)혜왕이 이익을 탐하는 습성에 빠져 이에 (양혜왕이) 맹자에게 “나이가 많고 덕이 크신 (오직) 노인이신대 과인이 본디 앙모하던 바이니, 이제 (그대가) 추나라로부터 양나라에 이르러 천리의 먼길을 꺼리지 않고 왔으니 (또한) 장차 (그대가) 부국강병의 책략이 있어 (가히 써) 내 나라를 이익되게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孟子對曰 王은 何必曰利잇고 亦有仁義而已矣니이다
맹자 대답하여 “왕은 어찌 반드시 ‘利’만을 말합니까? 또한 (오직) 仁義가 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하였다. |
▲ 仁者는 心之德이오 愛之理며 義者는 心之制며 事之宜也라. 此二句는 乃一章之大指니 下文에 乃詳言之하니 後多放此하노라.
仁이라는 것은 마음의 덕이요 사랑의 이치이며, 義라는 것은 마음의 지음이며 일의 마땅함이다. 이 두 구절은 (이에) 하나의 장(양혜왕장)의 큰 가르침인데 (이에) 아래 글에 자세히 말했으니 뒤의 글에서도 이를 본받은 것이 많다.
[해설]
仁이 體라면 義는 用이다. (『주역』에 나오는) 하늘의 四德인 원형이정(元亨利貞)과 (공자의) 인륜의 四德인 인의예지(仁義禮智)에 비유하면, 仁은 봄이요 義는 가을에 해당된다.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결실을 거두듯이, 사람은 仁 곧 마음의 덕과 사랑의 이치를 중심으로 삼아, 義 곧 마음을 지어서 일을 마땅하게 하는 행동을 통해 仁을 바깥으로 드러낸다. |
王曰何以利吾國고 하시면 大夫曰 何以利吾家오 하며 士庶人이 曰何以利吾身고 하야 上下 交征利면 而國이 危矣리이다. 萬乘之國애 弑其君者는 必千乘之家이오 千乘之國애 弑其君者는 必百乘之家니 萬取千焉하며 千取百焉이 不爲不多矣언마는 苟爲後義而先利면 不奪하야난 不饜이니이다.
왕이 가로대 “어찌 (써) 내 나라를 이롭게 할꼬” 하시면 대부는 가로대 “어찌 (써) 내 집을 이롭게 할꼬” 하며, 선비와 백성들은 가로대 “어찌 (써) 내 몸을 이롭게 할꼬” 할 것이니, 위아래가 서로 利를 취하면 나라가 위태하리이다.
만승의 나라에 그 인군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천승의 (諸侯)가문이요, 천승의 나라에 그 인군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백승의 (大夫)가문이니, 만이 천을 취하며 천이 백을 취함이, 많지 않음이 아니건마는 진실로 義를 뒤에 하고 利를 먼저 하면 뺏지 아니하고는 (만)족하지 아니하니이다
(交 ; 서로 교 征 : (세금을) 취할 정 弑 : 죽일 시 饜 : 족할 염, 물릴 염) |
▲ 此는 言求利之害하야 以明上文을 何必曰利之意也라. 征은 取也니 上取乎下하고 下取乎上이라. 故로 曰交征이라. 國危는 謂將有弑奪之禍라
이는 利를 구하는 해로움을 말해서 (써) 앞글의 ‘何必曰利’라는 뜻을 밝혔다. 정(征)은 취함이니 위에서 아래를 취하고 아래에서 위를 취하는 것이다. 이에 ‘서로 뺏는 다’고 말했다. 나라가 위태로와진다는 것은 (장차) (군주를) 시해하고 찬탈하는 화가 있음을 일컫는다.
▲ 乘은 車數也라. 萬乘之國者는 天子畿內에 地方千里니 出車萬乘이오 千乘之家者는 天子之公卿으로 采地方百里니 出車千乘也라. 千乘之國은 諸侯之國이오 百乘之家는 諸侯之大夫也라.
승(乘)은 수레의 수이다. 만승의 나라라는 것은 천자가 도읍한 안에서 사방으로 천리니 (천자가 나갈 때) 수레 만승이 나간다. 천승의 가문이라는 것은 천자의 공과 경으로 사방으로 백리를 캐먹으니(흔히 ‘采邑百里’라 한다) 수레 천승이 나간다. 천승의 나라는 제후의 나라요, 백승의 가문은 제후의 대부이다.
<해설>
乘 車數也 : 수레는 전쟁에 쓰는 兵車를 가리키는 바, 병거 한 대에는 甲士 병력이 3명, 보병이 72명, 보급병력이 25명 , 군마 4마리가 따른다. |
▲ 弑는 下殺上也라. 饜은 足也니 言臣之於君에 每十分而取其一分이라도 亦已多矣어늘 若又以義爲後하고 而以利爲先이면 則不弑其君하야 而盡奪之하야늘 其心이 未肯以爲足也라.
시(弑)는 아래가 위를 죽임이오. 염(饜)은 만족함이라. 이는 신하가 인군한테 매양 십분의 일만을 취할지라도 (또한) 이미 많거늘 만약 (또) 義로써 뒷전을 삼고 利를 우선으로 삼으면 (즉) (그) 인군을 시해하여 다 빼앗지 아니하고는 그 마음이 기꺼이 (써) 만족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未有仁而遺其親者也며 未有義而後其君者也니이다
어질고서 그 어버이를 버릴 자 있지 아니하며, 의롭고서 그 인군을 뒤에 할 자 있지 않습니다. |
<해설>
맹자는 윗글에서 仁은 血肉之親 곧 그 어버이를 잘 섬기는 德이며, 義는 인군을 충성으로 섬기는 德으로 보고 있다. 이에 맹자는 仁義는 百行之本으로 仁義가 있으면 나라 다스리는 일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
▲ 此는 言仁義 未嘗不利하야 以明上文에 亦有仁義而已之意也라. 遺는 猶棄也오 後는 不急也라. 言仁者는 必愛其親하며 義者는 必急其君이라. 故로 人君이 躬行仁義하고 而無求利之心이면 則其下化之하야 自親戴於己也라. (戴 : 짊어질 대)
이는 仁義가 (일찍이) 이롭지 아니치 않음을 말해서 (써) 앞글의 ‘亦有仁義而已’라는 뜻을 밝혔음을 말하고 있다. 유(遺)는 ‘버릴 기(棄)’와 같고 후(後)는 급하지 않음이다. 어진 자는 반드시 그 어버이를 사랑하며 의로운 자는 반드시 그 인군을 급하게(우선으로) 여김을 말한다. 이에 인군이 몸소 인의를 행하고 利를 구하는 마음이 없으면 (곧) (그) 아래 사람이 교화되어 스스로 친애(親愛)함을 몸에 지니게 된다.
王은 亦曰仁義而已矣시니 何必曰利잇고
왕께서는 (또한) 仁義만을 말하셔야만 할 따름이건만 하필 利를 말씀하십니까? |
▲ 重言之하야 以結上文兩節之意라.
거듭 말해서 앞글 두 구절의 뜻을 맺음이라.
▲ 此章은 言 仁義는 根於人心之固有니 天理之公也오 利心은 生於物我之相形이니 人欲之私也라. 循天理면 則不求利而自無不利요 徇人欲이면 則求利未得而害已隨之니 所謂毫釐之差가 千里之繆이라. 此는 孟子之書에 所以造端託始之深意니 學者 所宜精察而明辨也니라.
이 장은 仁義는 人心의 본래 있는 근본으로서 하늘의 마땅한 이치(天理)의 공변됨이고, 利心은 물건과 내가 서로 드러난 데서 나온 것이니 人欲의 사사로움을 말하고 있다. 천리를 따르면 (곧) 利를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롭지 않음이 없고 인욕을 따르면 (즉) 利를 구해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이미) 해로움이 따르니 이른바 호리의(털끝만한) 차이가 천리까지나 어긋남을 말한다. 이는 맹자의 글에 (써한 바) 造端託始(조단탁시)의 깊은 뜻이니 배우는 자는 마땅히 정밀하게 살펴고 밝게 분별해야 함을 뜻한다.
毫 : 터럭 호 釐 : 터럭 리 繆 : 어긋날 유, 얽을 무 託 : 의탁할 탁
<해설>
毫釐之差가 千里之繆(호리지차 천리지륙) : 처음의 작은 차이가 나중에 천리까지나 벌어진다는 뜻으로『예기』 經解 편에 나온다.
造端託始(조단탁시 : 실마리를 만들고는 그것으로써 다시 시작을 삼는다는 뜻으로 오늘날 첫페이지를 장식하다는 의미이다. |
▲ 太史公이 曰予讀孟子書라가 至梁惠王이 問何以利吾國하야는 未嘗不廢書而嘆也와라 曰嗟乎라. 利誠亂之始也로다 夫子 罕言利하사 常防其源也라. 故로 曰放於利而行多怨이라 하시니 自天子로 以至於庶人이 好利之弊何以異哉리오
태사공(司馬遷)이 말하기를 “내가 맹자의 글을 읽다가 ‘양혜왕이 묻기를 어찌 (써) 내 나라를 이롭게 할꼬’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책을 덮고는 탄식치 아니할 수 없었느니라” 하며 (또) 말하기를 “슬프도다, 利는 진실로 어지러움의 시작이로다. 공자께서 드물게 利를 말씀하신 것은 항상 그 (亂의) 근원을 막은 것이다. 이에 (공자께서) 가라사대 ‘利에 방종하여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논어』이인편 12장)’고 하셨으니 천자로부터 (써)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利를 좋아하는 폐단이 어찌 (써) 다르겠는가?” 고 하였다. (嗟 : 슬플 차 罕 : 드물 한 放 : 내칠 방 )
▲ 程子曰 君子 未嘗不欲利로대 但傳以利爲心이면 則有害요 有仁義면 則不求利而未嘗不利也라. 當是之時하야 天下之人으로 惟利是求하고 而不復知有仁義라. 故로 孟子 言仁義而不言利하사 所以拔本塞源하야 而求其弊하시니 此는 聖賢之心也라.
정자 가로대 “군자가 일찍이 利를 하고자 아니치 않지만 다만 오로지 利로써 마음을 삼으면 害가 있음이요 (오직) 仁義로써 마음을 두면 利를 구하지 않아도 (일찍이) 이롭지 않음이 있지 않느니라. 당시에 천하의 사람이 오직 利만을 구함이 옳다하고 다시 인의가 있음을 아지 못하니라. 이에 맹자께서 仁義를 말씀하고 利를 말씀하지 아니한 바 (써) (亂의)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아서 그 폐단을 구제하시니 이는 聖賢의 마음이라“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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