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滕文公章句上 제3장> 滕文公이 問爲國하신대 등문공이 나라함을 물으신대 文公이 以禮聘孟子故로 孟子ㅣ 至滕에 而文公이 問之라 문공이 예로써 맹자를 초빙한 고로 맹자가 등나라에 이르심에 문공이 물으니라 孟子ㅣ 曰民事는 不可緩也ㅣ니 詩云晝爾于茅ㅣ오 宵爾索綯하야 亟其乘屋이오사 其始播百穀이라 하니이다 맹자 가라사대 백성의 일(농사)은 가히 느슨하게 못할 지니 시에 이르되 낮에는 네 가서 띠를 취해오고 밤에는 네 새끼를 꼬아서 빨리 그 지붕에 올라가고사 그 비로소 백곡을 파종한다 하니이다
緩 : 느릴 완 宵 : 밤 소 索 : 새끼 꼴 색 綯 : 새끼 꼴 도 亟 : 빠를 극 屋 : 지붕 옥
[본문 해설] 등문공이 맹자를 초빙하여 정치하는 법을 묻자 맹자는 선급(先急)히 해야 할 일로 민사를 얘기했다. 민사의 첫째는 농사로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며 시경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해 답변했다. 곧 낮에는 산에 가서 띠풀을 따오고 밤에는 새끼를 꼬아서 빨리 지붕을 헤어야 봄이 오면 비로소 백곡을 파종할 수 있다는 말로 잠시도 게을리 하면 아니 됨을 경계했다. 民事는 謂農事라 詩는 豳風七月之篇이라 于는 往取也ㅣ라 綯는 絞也ㅣ라 亟은 急也ㅣ라 乘은 升也ㅣ라 播는 布也ㅣ라 言農事之重하니 人君이 不可以爲緩而忽之라 故로 引詩하야 言治屋之急如此者는 蓋以來春에 將復始播百穀하야 而不暇爲此也ㅣ니라 민사는 농사를 말함이라. 시는 빈풍 칠월 편이라. 우는 가서 취함이라. 도는 새끼 꼼이라. 극은 급함이라. 승은 오름이라. 파는 폄이라. 농사가 중하니 인군이 가히 써 느슨하게 여겨 경솔하게 여기지 못함을 말함이라. 그러므로 시경을 인용하여 지붕 다스림의 급함이 이와 같은 것은 대개 써 오는 봄에 장차 다시 비로소 백곡을 파종해서 이를 할 여가를 얻지 못함을 말함이라. 民之爲道也ㅣ 有恒産者는 有恒心이오 無恒産者는 無恒心이니 苟無恒心이면 放辟邪侈를 無不爲已니 及陷乎罪然後에 從而刑之면 是는 罔民也ㅣ니 焉有仁人이 在位하야 罔民을 而可爲也ㅣ리오 是故로 賢君이 必恭儉하야 禮下하며 取於民이 有制니이다 백성이 도를 함이 항상 생산함이 있는 자는 항상 마음이 있고 항상 생산함이 없는 자는 항상 마음에는 없으니 진실로 항상한 마음이 없으면 방탕하고 편벽되고 간사하고 사치함을 하지 않음이 없을지니 죄에 빠지는 데 미친 연후에 따라서 형벌을 하면 이는 백성을 그물질함(속임)이니 어찌 어진 사람이 있어 위에 있어서 백성 그물질함을 가히 하리오. 이런 고로 어진 인군이 반드시 공손하고 검소하여 아래를 예우하며 백성에게 취함이 제한이 있나니이다. 恭則能以禮接下하고 儉則能取民以制니라 공손한즉 능히 예로써 아래를 대접하고 검소한즉 능히 백성을 취하는데 제한으로써 하느니라. 陽虎ㅣ 曰爲富ㅣ면 不仁矣오 爲仁이면 不富矣라 하니이다 양호 가로대 부를 하면 어질지 못하고 인을 하면 부하지 못한다 하니이다.
[본문 해설] 양호는 『논어』에 양화(陽貨)라고 나오는 인물이다. 노나라 계씨의 가신으로 후에는 계환자(季桓子)를 유폐(幽閉)하고 국정을 전횡한 포악무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 공자를 자기 아래에 두고 부리려 공자를 만나려 했으나 공자는 만나주지 않았다. 그러자 양화가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선물로 보내주었다. 당시 예법은 선물을 받으면 답례로 선물을 보내주는 것이 통례인지라 공자는 양화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답례를 가다가 도중에 그를 만났다. 양화가 “來하라 予與爾言호리라 懷其寶而迷其邦을 可謂仁乎아(오시오, 내 그대와 더불어 이야기호리다. 그 보배를 품고 그 나라를 혼미하게 함을 가히 인이라 하오이까)”하면서 공자에게 같이 일하자고 하였으나 공자는 단호히 “不可”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양화는 다시 “日月逝矣노니 歲不我與니이다(일월은 가노니 해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오이다)”하자 더 이상 대꾸할 가치도 없고 시간 끌 필요도 없다고 판단한 공자는 “諾이라 吾將仕矣호리라(그러리라. 내 장차 나아가 일하리이다)”하면서 얼른 자리를 피하였다. 陽虎는 陽貨니 魯季氏家臣也ㅣ라 天理人欲이 不容並立하니 虎之言此는 恐爲仁之害於富也ㅣ오 孟子ㅣ 引之는 恐爲富之害於仁也ㅣ니 君子小人이 每相反而已矣라 양호는 양화는 노나라 계씨 가신이라. 천리와 인욕이 아울러 섬을 용납하지 못하니 호가 이를 말한 것은 인이 부에 해가 됨을 두려워함이오, 맹자가 이를 이끄심은 부가 인에 해가 됨을 두려워함이니 군자와 소인이 매양 상반될 따름이니라. 夏后氏는 五十而貢하고 殷人은 七十而助하고 周人은 百畝而徹하니 其實은 皆什一也ㅣ니 徹者는 徹也ㅣ오 助者는 藉也ㅣ니이다 하후씨는 오십에 공법을 하고 은인은 칠십에 조법을 하고 주인은 백무에 철법을 하니 그 실은 다 십분의 일이니 철은 통함이오 조는 돕는 것이니이다. 此以下는 乃言制民常産과 與其取之之制也ㅣ라 夏時에 一夫ㅣ 受田五十畝하고 而每夫ㅣ 計其五畝之入以爲貢이러니 商人이 始爲井田之制하야 以六百三十畝之地로 畫爲九區하니 區는 七十畝라 中爲公田하고 其外八家ㅣ 各受一區하야 但借其力하야 以助耕公田하고 而不復稅其私田이라 周時에 一夫ㅣ 受田百畝하니 鄕遂는 用貢法하야 十夫ㅣ 有溝하고 都鄙는 用助法하야 八家同井하야 耕則通力而作하고 收則計畝而分故로 謂之徹이라 其實皆什一者는 貢法은 皆以十分之一로 爲常數요 惟助法은 乃是九一而商制는 不可考요 周制則公田百畝中에 以二十畝로 爲廬舍하야 一夫所耕公田이 實計十畝니 通私田百畝면 爲十一分而取其一하니 蓋又輕於十一矣라 竊料商制컨댄 亦當似此하야 而以十四畝로 爲廬舍하야 一夫ㅣ 實耕公田七畝하니 是亦不過十一也ㅣ라 徹은 通也ㅣ며 均也ㅣ요 藉는 借也ㅣ라 이로써 아래는 이에 백성에게 떳떳한 생산을 제도하고 다못 그 취하는 제도를 말함이라. 하나라때에 한 지아비가 오십 묘를 받고 지아비마다 그 오묘에 들어가는 것으로써 계산하여 공법을 삼더니, 상나라 사람이 비로서 정전의 제도를 만들어서 육백삼십 묘의 땅으로써 그어서 아홉 구역으로 하니, 구는 칠십 묘라. 가운데는 공전으로 하고 그 밖의 여덟 집은 각각 한 구역씩 주어서 다만 그 힘을 빌려서 써 공전을 도와 갈게 하고 다시는 그 사전에서 세금을 취하지 않음이라. 주나라 때에는 한 지아비가 백 묘를 받으니, 향과 수에는 공법을 써서 열 지아비에 도랑을 내고, 도비는 조법을 써서 여덟 집이 정을 같이해서 경작한즉 힘(노동력)을 통해서 짓고 수확한즉 이랑을 계산해서 나눈 고로 ‘철’이라 하니라. 그 실은 다 십분의 일이라는 것은 공법은 다 십분의 일로써 상수를 삼고 오직 조법은 이에 구분의 일로 하고 상나라 제도는 가히 상고하지 못하고 주나라 제도인즉 공전 백 묘 가운데에 이십 묘로써 여막을 만들어 한 지아비 가는 바의 공전이 실제는 십 묘로 계산함이니 사전 백 묘를 통하면 십일 분하여 그 하나를 취하니 대개 또한 십분의 일보다 가벼움이라. 그윽히 상나라 제도를 헤아리건데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 십사 묘로써 여막을 만들어 한 지아비가 실제로 공전 7묘를 가니 이 또한 십일 분의 일에 지나지 않음이라. 철은 통함이며 고름이요, 자는 빌림이라.
[참조] 도읍지(都邑地, 곧 王城)에서 백 리(近郊 50리, 遠郊 1백리)까지를 鄕, 백 리에서 2백 리까지의 사이를 遂라 하는데 周나라와 漢나라 때의 행정구역 제도이다. 주나라 때의 제도를 보면 五家를 鄰, 五鄰을 里, 四里를 酇(찬), 五酇을 鄙, 五鄙를 縣, 五縣을 遂라 하였다. 『漢書』에는 다음과 같이 나왔다. “五家爲鄰 五鄰爲里 四里爲族 五族爲黨 五黨爲州 五州爲鄕”이라 하였으니 1鄕은 12,500戶이다. 鄕遂라 함은 6향과 6수를 기본단위로 하여 6수는 遂人이, 6향은 대사도(大司徒)가 관장하였다. 따라서 6향이라 하면 75,000호이고, 6수라 하면 12,500호이다. 鄙(마을 비, 食邑 비, 以八則治都鄙)는 5백호가 사는 소읍을 말한다. 龍子ㅣ 曰治地는 莫善於助ㅣ오 莫不善於貢이니 貢者는 校數歲之中하야 以爲常하나니 樂歲에 粒米狼戾하야 多取之而不爲虐이라도 則寡取之하고 凶年에 糞其田而不足이어늘 則必取盈焉하나니 爲民父母ㅣ라 使民으로 盻盻然將終歲勤動하야 不得以養其父母하고 又稱貸而益之하야 使老稚로 轉乎丘壑이면 惡在其爲民父母也ㅣ리오 하니이다 용자 가로대 땅을 다스림(백성에게 농사짓게 하는 것)은 조법보다 좋은 것이 없음이오 공법보다 선하지 않음이 없으니 공법이라는 것은 두어해의 중간을 비교해서 써 상법으로 삼나니 즐거운 해에는 쌀낟이 흩어져 있어 많이 취해도 포악함이 되지 않더라도 곧 적게 취하는 것이고, 흉년에 그 밭을 북돋아주어도 족하지 않거늘 곧 반드시 채워서 취하나니 백성의 부모가 되니라. 백성으로 하여금 흘겨보면서 장차 일년 내내 부지런히 움직여도 얻어써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고 또 꿔준 것을 맞춰서 더하니 늙고 어린이로 하여금 언덕과 구덩이에서 뒹굴게 하면 어찌 그 백성의 부모됨이 있으리오 하니이다.
盻 : 흘겨볼 예(혜) 龍子는 古賢人이라 狼戾는 猶狼藉니 言多也ㅣ라 糞은 壅也ㅣ라 盈은 滿也ㅣ라 盻는 恨視也ㅣ라 勤動은 勞苦也ㅣ라 稱은 擧也ㅣ라 貸는 借也ㅣ니 取物於人而出息以償之也ㅣ라 益之는 以足取盈之數也ㅣ라 稚는 幼子也ㅣ라 용자는 옛 어진 사람이라. 낭려는 낭자와 같으니 많음을 말함이라. 분은 막음(틈이 없이 막는 것이니 보충해줌을 뜻함)이라. 영은 가득함이라. 예는 한스럽게 봄이라. 근동은 노고라. 칭은 다(맞춤)라. 대는 꿔줌이니 남에게 물건을 취해서 이식을 내서 써 갚음이라. 익은 채워서 취하는 수를 충족함이라. 치는 어린 아이라. 夫世祿은 滕이 固行之矣니이다 무릇 세록은 등나라가 본디(진실로) 행하니이다 孟子ㅣ 嘗言文王治岐에 耕者를 九一하고 仕者를 世祿이라 하시니 二者는 王政之本也ㅣ라 今世祿은 滕已行之로대 惟助法을 未行故로 取於民者ㅣ 無制耳니라 蓋世祿者는 授之土田하야 使之食其公田之入이니 實與助法으로 相爲表裏하니 所以使君子小人으로 各有定業하야 而上下相安者也ㅣ라 故로 下文에 遂言助法하시니라 맹자가 일찍이 문왕이 기산을 다스릴 적에 경자를 구분의 일로 하고 벼슬하는 자를 세대로 녹을 주었다 말씀하셨으니 이 두 가지는 왕정의 근본이라. 이제 세록은 등나라가 이미 행하되 오직 조법을 아직 행하지 못한 고로 백성에게서 취함이 제한이 없느니라. 대개 세록이라는 것은 토전을 주어서 하여금 그 공전에 들어가는 것을 먹게 함이니 실은 조법과 더불어 서로 표리가 되니 써한 바 군자(벼슬하는 사람)와 소인(농사짓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정한 업이 있게 하여 위와 아래가 서로 편안함이라. 그러므로 아래 글에 드디어 조법을 말씀하시니라. 詩云雨我公田하야 遂及我私ㅣ라 하니 惟助애 爲有公田하니 由此觀之컨댄 雖周ㅣ나 亦助也ㅣ로소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우리 공전에 비가 내려서 드디어 우리 사전에게 미친다 하니 오직 조법에 공전이 있으니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비록 주나라나 또한 조법이로소이다 詩는 小雅大田之篇이라 雨는 降雨也ㅣ라 言願天이 雨於公田하야 而遂及私田이라 하니 先公而後私也ㅣ라 當時助法이 盡廢하고 典籍이 不存이로대 惟有此詩하니 可見周亦用助故로 引之也ㅣ시니라 시는 소아 대전편이라. 우는 비가 내림이라. 말하되 원컨댄 하늘이 공전에 비가 내려서 드디어 사전에 미친다 하니 공을 먼저 하고 사를 뒤에 함이라. 당시 조법이 다 폐하고 전적이 존하지 않음이로대 오직 이 시가 있으니 가히 주나라도 조법 썼음을 보는 고로 이끌음이시니라. 設爲庠序學校하야 以敎之하니 庠者는 養也ㅣ오 校者는 敎也ㅣ오 序者는 射也ㅣ라 夏曰校ㅣ오 殷曰序ㅣ오 周曰庠이오 學則三代共之하니 皆所以明人倫也ㅣ라 人倫이 明於上이면 小民이 親於下ㅣ니이다 상과 서와 학교를 설치하여 써 가르치니 상이라는 것은 양로함이오 교라는 것은 교육함이오 서라는 것은 활 쏨이라. 하나라는 교라 이르고 은나라는 서라 이르고 주나라는 상이라 이름이오, 학인즉 삼대가 같이 하니 다 써 인륜을 밝히는 바이라. 인륜이 위에서 밝으면 소민이 아래에서 친하니이다. 庠은 以養老爲義요 校는 以敎民爲義요 序는 以習射爲義니 皆鄕學也ㅣ라 學은 國學也ㅣ라 共之는 無異名也ㅣ라 倫은 序也ㅣ니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이니 此는 人之大倫也ㅣ라 庠序學校는 皆以明此而已니라 상은 양로로써 의를 삼고, 교는 백성 가르침으로써 의를 삼고, 서는 활 익힘을 의로 삼으니 다 향학이라. 학은 국학(오늘날의 대학)이라. 한가지로 함은 이름이 다르지 않음이라. 륜은 질서니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이니 차는 사람의 큰 윤리라. 성서학교는 다 써 이를 밝힐 따름이라. 有王者ㅣ 起면 必來取法하리니 是爲王者師也ㅣ니이다 왕자가 있어 일어나면 반드시 와서 법을 취하리니 이는 왕자의 스승이 됨이니이다. 滕國이 褊小하야 雖行仁政이라도 未必能興王業이라 然이나 爲王者師면 則雖不有天下라도 而其澤이 亦足以及天下矣리니 聖賢至公無我之心을 於此可見이로다 등나라가 편소하여 비록 인정을 행하더라도 반드시 능히 왕업을 일으키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왕자의 스승이 되면 곧 비록 천하를 두지 못하더라도 그 혜택이 또한 족히 써 천하에 미치리니 성현의 지극히 공변되고 무아의 마음을 이에 가히 보리로다
褊 : 좁을 편 詩云周雖舊邦이나 其命維新이라 하니 文王之謂也ㅣ니 子ㅣ 力行之하시면 亦以新子之國하시리이다 시경에 이르되 주나라가 비록 옛 나라이나 그 명이 새롭다 하니 문왕의 이름이니 자가 힘써 행하시면 또한 써 자의 나라를 새롭게 하시리이다. 詩는 大雅文王之篇이라 言周雖后稷以來로 舊爲諸侯나 其受天命而有天下는 則自文王始也ㅣ라 子는 指文公이니 諸侯未踰年之稱也ㅣ라 시는 대아 문왕편이라. 말하되 주나라가 비록 후직으로써 옴으로 옛 제후가 되나 그 하늘의 명을 받아서 천하를 둠은 곧 문왕으로부터 비로소함이라. 자는 문공을 가르침이니 제후가 나이를 넘지 않음(나보다 나이가 훨씬 아래인 사람)을 일컬음이라. 使畢戰으로 問井地하신대 孟子ㅣ 曰子之君이 將行仁政하야 選擇而使子하시니 子必勉之어다 夫仁政은 必自經界始니 經界ㅣ 不正이면 井地ㅣ 不均하며 穀祿이 不平하리니 是故로 暴君汙吏는 必慢其經界하나니 經界ㅣ 旣正이면 分田制祿은 可坐而定也ㅣ니라 필전으로 하여금 정지를 물으신대, 맹자 가라사대 자의 인군이 장차 인정을 행해서 선택하여 자를 부리시니 자 반드시 힘쓸지어다. 무릇 인정은 반드시 경계로부터 비로소하나니 경계가 바르지 못하면 정지가 고르지 못하며 곡록이 불평하리니 이런 고로 폭군 오리는 반드시 그 경계를 게을리 하나니 경계가 이미 바르면 밭을 나누고 녹을 짓는 것은 가히 앉아서 정할 것이니라. 畢戰은 滕臣이니 文公이 因孟子之言하야 而使畢戰으로 主爲井地之事故로 又使之來問其詳也ㅣ라 井地는 卽井田也ㅣ라 經界는 謂治地分田하야 經畫其溝塗封植之界也ㅣ라 此法이 不脩則田無定分하야 而豪强이 得以兼幷이라 故로 井地有不均하며 賦無定法하야 而貪暴ㅣ 得以多取故로 穀祿이 有不平하니 此는 欲行仁政者之所以必從此始요 而暴君汙吏는 則必欲慢而廢之也ㅣ라 有以正之則分田制祿은 可不勞而定矣니라 필전은 등나라 신하로 문공이 맹자의 말씀을 인하여 필전으로 하여금 정지의 일을 맡긴 고로 또한 하여금 와서 그 자세함을 물으니라. 정지는 곧 정전이라. 경계는 이르되 땅을 다스리고 밭을 나눠서 그 도랑 내고 길 내고 봉하고 나무 심는 경계를 법대로 긋는 것이라. 이 법이 닦아지지 아니한즉 밭의 정하여 나뉨이 없어서, 잘나고 힘센 사람이 얻어서 써 아울러 겸하느니라. 그러므로 정지가 고르지 못하게 되며 부세가 정한 법이 없어서 탐포(탐내고 포악한 자)들이 얻어서 써 많이 취한 고로 곡록이 불평함이 있으니, 이는 인정을 행하는 자가 써 반드시 이를 좇아 비로소 함이오, 폭군 오리는 반드시 게을리 하여 폐하고자 함이라. 써 바름이 있은즉 밭을 나누고 녹을 정함은 가히 수고롭지 않아도 정해지니라. 夫滕이 壤地ㅣ 褊小하나 將爲君子焉이며 將爲野人焉이니 無君子ㅣ면 莫治野人이오 無野人이면 莫養君子ㅣ니라 무릇 등나라가 땅 덩어리가 좁고 작으나 장차 군자가 되며 장차 야인이 되리니 군자가 없으면 야인을 다스릴 수 없고 야인이 없으면 군자를 기를 수 없느니라. 言滕地雖小나 然이나 其間에 亦必有爲君子而仕者하며 亦必有爲野人而耕者하니 是以로 分田制祿之法을 不可偏廢也ㅣ니라 말하되 등나라 땅이 비록 작으나 그러나 그 사이에 또한 반드시 군자(정치하는 사람)가 되어 벼슬하는 자가 있으며 또한 반드시 야인(농사짓는 사람)이 되어 가는 자가 있으니 이로써 분전제록의 법을 가히 한쪽으로(편벽되게) 폐해서는 안되느니라. 請野애 九一而助하고 國中에 什一하야 使自賦하라 청컨대 들판에 구분의 일을 하여 조세하고 나라 가운데 십에 일을 하여 하여금 스스로 부세하라. 此는 分田制祿之常法이니 所以治野人하야 使養君子也ㅣ라 野는 郊外都鄙之地也ㅣ라 九一而助는 爲公田而行助法也라 國中은 郊門之內로 鄕遂之地也ㅣ라 田不井授로대 但爲溝洫하야 使什而自賦其一하니 蓋用貢法也ㅣ라 周所謂徹法者ㅣ 蓋如此하니 以此推之면 當時에 非惟助法不行하고 其貢이 亦不止什一矣라 이것은 분전제록의 떳떳한 법이니 써한 바 야인을 다스려 하여금 군자를 기름이라. 야는 들밖 도회지 변두리 땅이라. 구분의 일하여 조세함은 공전을 하여 조법을 행함이라. 국중은 교문의 안으로 향수의 땅이라. 밭에 정을 두지 아니하고(정전법을 시행하지 않고) 다만 구혁을 만들어 하여금 십하여 스스로 그 하나를 부세하나니 대개 공법을 씀이라. 주나라가 이른바 철법이란 것이 대개 이와 같으니 이로써 미루면 당시에 오직 조법을 행하지 않은 것 뿐만이 아니고 그 공법 또한 십분의 일에 그치지 아니했느니라.
洫 : 봇도랑 혁 卿以下는 必有圭田하니 圭田은 五十畝ㅣ니라 경 이하는 반드시 규전이 있으니 규전은 오십묘이니라 此는 世祿常制之外에 又有圭田하니 所以厚君子也ㅣ라 圭는 潔也ㅣ니 所以奉祭祀也ㅣ라 不言世祿者는 滕已行之로대 但此未備耳라 이것은 세대로 녹을 주는 항상하는 법도 밖에 또한 규전이 있으니 써한 바 군자를 후하게 함이라. 규는 깨끗함이니 써한 바 제사를 받드니라. 세록을 말하지 않은 것은 등나라가 이미 행하고 있으되 다만 이것(규전 오십 묘)이 미비했기 때문이라. 餘夫는 二十五畝ㅣ니라 나머지 농부는 이십오 묘니라. 程子ㅣ 曰一夫는 上父母 下妻子하야 以五口八口爲率이니 受田百畝하고 如有弟면 是ㅣ 餘夫也ㅣ라 年十六에 別受田二十五하야 俟其壯而有室然後에 更受百畝之田이라 愚ㅣ 按此컨대 百畝常制之外에 又有餘夫之田하야 以厚野人也ㅣ라 정자 가라사대 한 지아비는 위로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 처자를 거느려서 써 다섯 식구나 여덟 식구를 거느림이니 백묘를 받고 만약에 아우가 있으면 이것이 여부니라. 나이가 열여섯이 되면 별도로 25묘를 받고 그 장성함을 기다려서 가정을 둔 연후에 다시 백묘의 받을 받느니라. 우가 이를 상고컨대 백묘의 떳떳한 법제 밖에 또한 여부의 밭을 두어서 써 야인을 후하게 함이라. 死徙에 無出鄕이니 鄕田同井이 出入애 相友하며 守望애 相助하며 疾病애 相扶持하면 則百姓이 親睦하리라 죽고 이사함에 시골을 떠남이 없으니 향전 동정이 나가고 들어옴에 서로 벗하며 도적을 예방함에 서로 도우며 서로 돕고 도우면 곧 백성이 친목하리라. 死는 謂葬也ㅣ라 徙는 謂徙其居也ㅣ라 同井者는 八家也ㅣ라 友는 猶伴也ㅣ라 守望은 防寇盜也ㅣ라 사는 장사지냄을 말함이라. 사는 그 거처를 옮김을 말함이라. 우물을 같이한다는 것은 여덟 집이라. 우는 짝과 같음이라. 수망은 도적을 지킴이라. 方里而井이니 井이 九百畝ㅣ니 其中이 爲公田이라 八家ㅣ 皆私百畝하야 同養公田하야 公事를 畢然後에 敢治私事ㅣ니 所以別野人也ㅣ니라 바야흐로 마을에 정을 그리니 정이 구백 묘이니 그 가운데가 공전이 되니라. 팔가가 다 사전 백묘를 받아 한 가지 공전을 길러서 공사를 다한 연후에 사전의 일을 감히 다스리니 야인을 분별하는 바이니라. 此는 詳言井田形體之制니 乃周之助法也ㅣ라 公田은 以爲君子之祿이오 而私田은 野人之所以受니 先公後私는 所以別君子野人之分也ㅣ라 不言君子하고 據野人而言은 省文耳이라 上言野及國中二法하고 此獨詳於治野者는 國中貢法은 當世已行이로대 但取之를 過於什一爾라 이것은 정전 형체의 제도를 상세히 말함이니 이에 주나라의 조법이라. 공전으로써 군자의 녹을 둠이오 사전은 농부들이 받는 바이니 선공후사는 써한 바 군자 야인의 나눔을 분별함이라. 군자를 말하지 않고 야인에 근거해서 말함은 글을 생략함이라. 위에는 야인과 및 국중의 두 법을 말하고 이에 홀로 야인 다스림을 상세히 한 것은 국중에 공법은 당시에 이미 행했으되 다만 취한 것을 십분의 일에 지나기 때문이라. 此其大略也ㅣ니 若夫潤澤之則在君與子矣니라 이것은 대략이니 만약 무릇 윤택하게 하는 것은 인군과 다못 그대에게 있느니라. 井田之法은 諸侯ㅣ 皆去其籍하니 此特其大略而已라 潤澤은 謂因時制宜하야 使合於人情하고 宜於土俗하야 而不失乎先王之意也ㅣ라 ○呂氏 曰子張子ㅣ 慨然有意三代之治하고 論治人先務ㅣ 未始不以經界爲急이니 講求法制하야 粲然備具하니 要之컨대 可以行於今이라 如有用我者면 據而措之耳라 하고 嘗曰仁政은 必自經界始하나니 貧富不均하며 敎養無法이면 雖欲言治나 皆苟而已라 世之病難行者는 未始不以亟奪富人之田으로 爲辭라 然이나 玆法之行을 悅之者衆하니 苟處之有術이면 期以數年에 不刑一人而可復이오 所病者는 特上之未行耳라 乃言曰縱不能行之天下라도 猶可驗之一鄕이니 方與學者로 議古之法하고 買田一方하야 畫爲數井하고 上不失公家之賦役하며 退以其私하고 正經界 分宅里하고 立斂法하고 廣儲蓄하고 興學校하며 成禮俗하고 救菑恤患하고 厚本抑末하야 足以推先王之遺法하며 明當今之可行이라 하더니 有志未就而卒하니라 ○愚는 按喪禮經界兩章컨대 見孟子之學識其大者니 是以로 雖當禮法廢壞之後에 制度節文이 不可復考나 而能因略以致詳하고 推舊而爲新하야 不屑屑於旣往之迹하고 而能合乎先王之意니 眞可謂命世亞聖之才矣로다 정전의 법은 제후가 다 그 문서를 없앴으니 이는 특히 그 대략일 뿐이라. 윤택은 때로 인하여 제도를 마땅히 하여 인정에 합하고 토속에 마땅하게 하여 선왕의 뜻을 잃지 않음을 이름이라. ○여씨 가로대 자장자(장횡거 선생)가 개연히 삼대의 다스림에 뜻을 두고, 사람을 다스림에 먼저 힘을 써야할 일을 논하는데, 비로소 경계로써 급함을 삼지 않음이 없으니 법제를 강구하여 찬연히 구비하니 요컨대 가히 써 지금 이 세상에 행할 만하니라. 만약 나를 쓰는 자가 있다면 (이를) 들어다 둘 것이라 하고, 일찍이 가로대 어진 정사는 반드시 경계로부터 비롯하나니 빈부가 고르지 못하고 교양이 법도가 없으면 비록 다스린다고 말하고자 하나 다 구차할 뿐이라. 세상에 행하기 어려움을 병되이 여기는 자는 비로소 급히 부자의 밭을 빼앗지 아니치 못하므로 사양을 함이라. 그러나 이 법이 행해짐을 기뻐하는 자 많나니 진실로 처함에 기술적으로 하면 수년에 한 사람이라도 형벌하지 않고도 가히 회복할 것이고 병되이 여기는 자는 특히 위에서 행하지 못함이라. 이에 또 말하여 가로대 비록 능히 천하에 행하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가히 한 시골만이라도 경험삼아 해보아야 바야흐로 배우는 자로 하여금 이에 법을 의논하고 한 지방의 밭을 사서 그어 두어 정을 만들어 위에는 공가의 부역을 잃지 아니하고 물러가서 써 그 사사로움에 경계를 바로하고 택리를 나눠주고 거두는 법을 세우고 널리 저축을 하고 학교를 흥하게 하고 예속을 이루며 재앙과 근심을 구해주고 근본을 후하게 하고 끝을 눌러야 족히 써 선왕의 유법을 미루며, 당시에 가히 행함을 잘 밝힌다더니 뜻을 행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느니라. ○ 우가 상례와 경계 두 장을 상고컨대 맹자 학식의 그 큼을 볼 수 있느니라. 이로써 비록 예법이 폐하고 무너진 뒤에 제도 절문이 다시 상고하지 못하게 되었으나 능히 간략함을 인해서 써 자세함을 이르고 옛 것을 미루어 새로움을 만들어 이미 지나간 자취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능히 선왕의 뜻에 합했으니 진실로 가히 명세아성(이 세상에 큰 명을 타고난 공자 다음가는 성인)의 재질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