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장> 孟子ㅣ 曰人皆有所不忍하니 達之於其所忍이면 仁也ㅣ오 人皆有所不爲하니 達之於其所爲면 義也ㅣ니라 맹자 가라사대 사람이 다 참지 못하는 바를 두나니 그 참는 바에 다다르면 인이오, 사람이 다 하지 아니하는 바를 두나니 그 하는 바에 다다르면 의니라. 惻隱羞惡之心은 人皆有之故로 莫不有所不忍不爲하니 此는 仁義之端也ㅣ라 然이나 以氣質之偏과 物欲之蔽로 則於他事에 或有不能者하니 但推所能하야 達之於所不能이면 則無非仁義矣니라 측은과 수오의 마음은 사람이 다 두는 바인 고로 참지 못하고 하지 못하는 바가 있지 아니함이 없으니 이는 인의의 실마리라. 그러나 기질의 치우침과 물욕의 가리움으로써 다른 일에 혹 능하지 못함이 있으니 다만 능한 바를 미루어 능하지 못하는 바에 다다른다면 인의가 아님이 없느니라. 人能充無欲害人之心이면 而仁을 不可勝用也ㅣ며 人能充無穿踰之心이면 而義를 不可勝用也ㅣ니라 사람이 능히 다른 사람을 해하지 말고자 하는 마음을 채운다면 인을 가히 이기어 쓰지 못하며, 사람이 능히 뚫고 넘어감이 없는 마음을 채운다면 의를 가히 이기어 쓰지 못하니라. 充은 滿也ㅣ라 穿은 穿穴이오 踰는 踰牆이니 皆爲盜之事也ㅣ라 能推所不忍하야 以達於所忍이면 則能滿其無欲害人之心而無不仁矣요 能推其所不爲하야 以達於所爲면 則能滿其無穿踰之心而無不義矣니라 충은 가득 참이라. 천은 구멍을 뚫음이오, 유는 담장을 넘음이니 다 도둑질하는 일을 위함이라. 능히 참지 못하는 바를 미루어 써 참는 바에 다다르면 능히 그 다른 사람을 해하지 말아야 하는 마음을 채워서 인하지 아니함이 없고, 능히 그 하지 못하는 바를 미루어서 써 하는 바에 다다르면 능히 그 뚫고 넘지 않는 마음을 채워서 의롭지 아니함이 없느니라. 人能充無受爾汝之實이면 無所往而不爲義也ㅣ니라 사람이 능히 너를 받지 않으려는 실제를 채우면 가는 바에 의 아님이 없으리니라. 此는 申說上文에 充無穿踰之心之意也ㅣ라 蓋爾汝는 人所輕賤之稱이니 人雖或有所貪昧隱忍而甘受之者라 然이나 其中心에 必有慚忿而不肯受之之實하니 人能卽此而推之하야 使其充滿하야 無所虧缺이면 則無適而非義矣니라 이는 위 글에 뚫고 넘지 말아야 하는 마음을 채운다는 뜻을 거듭 설명함이라. 대개 이여는 사람들이 경시하고 천시하는 바의 호칭이니 사람들이 비록 혹 탐하고 어둡고 숨기고 참는 바가 있어 달게 받는 자가 있느니라. 그러나 그 마음속에 반드시 부끄럽고 분하여 즐겨 받지 않으려는 실제가 있으니 사람들이 능히 이에 나아가 미루어서 하여금 그 가득 채워서 이지러지고 빠지는 바가 없으면 가는 곳마다 의가 아님이 없느니라. 士ㅣ 未可以言而言이면 是는 以言餂之也ㅣ오 可以言而不言이면 是는 以不言餂之也ㅣ니 是皆穿踰之類也ㅣ니라 선비가 가히 써 말하지 말아야 함에도 말하면 이는 말로써 핥아먹는 것이오, 가히 써 말해야 함에도 말하지 아니하면 이는 말하지 아니함으로써 핥아먹는 것이니 이는 다 천유의 유이니라.
餂 : 낚을 첨, 핥아먹을 첨 餂은 探取之也ㅣ라 今人이 以舌取物曰餂이라 하니 卽此意也ㅣ라 便佞과 隱黙은 皆有意探取於人이니 是亦穿踰之類라 然이나 其事隱微하야 人所忽易이라 故로 特擧以見例하야 明必推無穿踰之心하야 達於此而悉去之然後에 爲能充其無穿踰之心也ㅣ라 첨은 찾아서 취함이라. 이제 사람이 혀로써 물건을 취함을 일러 첨이라 하니 바로 이 뜻이라. 아첨하는 말과 침묵을 지킴은 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찾고 취하는 뜻이 있으니 이 또한 천유의 종류라. 그러나 그 일이 은미하여 사람들이 소홀하기가 쉬우니라. 그러므로 특별히 들어서 예를 보여 반드시 천유함이 없는 마음을 미루어 이에 다다라서 다 없앤 연후에 능히 그 천유함이 없는 마음을 채우게 됨을 밝힘이라.
便 : 잘할 편
<제32장> 孟子ㅣ 曰言近而指遠者는 善言也ㅣ오 守約而施博者는 善道也ㅣ니 君子之言也는 不下帶而道ㅣ 存焉이니라 맹자 가라사대 말이 가까우면서도 가리킴이 먼 것은 선한 말이요, 지킴이 간략하면서도 베풂이 넓은 것은 선한 도이니 군자의 말은 띠를 내려가지 아니하여도 도가 있느니라. 古人은 視不下於帶則帶之上은 乃目前常見至近之處也ㅣ라 擧目前之近事而至理存焉하니 所以爲言近而指遠也ㅣ니라 옛 사람은 시선이 띠보다 아래하지 아니한즉 띠의 위는 이에 눈앞에서 항상 보는 지극히 가까운 곳이라. 눈앞의 가까운 일을 들어서 지극한 이치가 있으니 써 가까움을 말하며 먼 곳을 가리킴이 되는 바이라.
[앞주 해설] 視不下於帶則帶之上은 시선을 두는 예의를 말한 것으로『예기』곡례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天子를 視하되 不上於袷하며 不下於帶하고 國君에는 綏視하고 大夫에는 衡視하고 士에는 視五步니라 凡視ㅣ 上於面則敖하고 下於帶則憂며 傾則姦이니라"(천자를 보되 깃보다 위는 아니되며 띠보다 아래도 아니되고, 나라 인군에는 그 얼굴 아래에서 옷깃 위 사이를 보고, 대부에는 정면으로 바로보고, 사는 다섯 걸음 거리까지 시선을 움직이며 보아도 되니라. 무릇 시선이 얼굴보다 위면 거만하고, 띠보다 아래면 근심스러우며, 곁눈질하면 간사하니라)
袷 : 동구래깃 겁, 옷깃 겁 綏視(타시) : 얼굴로부터 아래로 봄. 綏는 여기서는 ‘드리울 타’로 妥(떨어질 타), 下의 뜻 君子之守는 修其身而天下ㅣ 平이니라 군자의 지킴은 그 몸을 닦음에 천하가 평하나니라. 此는 所謂守約而施博也ㅣ라 이는 이른바 지킴이 간략하면서도 넓게 베풂이라. 人病은 舍其田而芸人之田이니 所求於人者ㅣ 重이오 而所以自任者ㅣ 輕이니라 사람의 병은 그 밭을 버리고 남의 밭을 김맴이니 다른 사람에게서 구하는 바가 중하고 써 스스로 맡는 바가 가벼우니라. 此는 言不守約而務博施之病이라 이는 지킴이 간략하지 않으면서 넓게 베푸는데 힘쓰는 병을 말함이라.
[참조] ‘堯舜性者也 湯武反之也’는 정확히는 ‘堯舜性之者也 湯武反之者也’라고 써야 하는데 앞에서는 ‘之’를 빼고 뒤에서는 ‘者’를 뺐는데, 이러한 문체를 ‘互丈’이라 한다. 性者는 得全於天하고 無所汚壞하야 不假修爲하니 聖之至也ㅣ오 反之者는 修爲以復其性하야 而至於聖人也ㅣ라 程子ㅣ 曰性之反之는 古未有此語러니 蓋自孟子發之하시니라 呂氏 曰無意而安行은 性也ㅣ오 有意利行而至於無意는 復性者也ㅣ라 堯舜은 不失其性이오 湯武는 善反其性이니 及其成功則一也ㅣ니라 성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온전함을 얻고 더럽히거나 무너짐이 없어서 닦고 함을 빌리지 아니하니 성인의 지극함이오, 돌이킨다는 것은 닦고 하여서 써 그 성을 회복하여 성인에 이르름이라. 정자(明道) 가라사대 ‘性之’와 ‘反之’는 옛날에 이러한 말이 있지 않더니 대개 맹자로부터 발명하심이라. 여씨(呂大臨) 가로대 뜻(의도)이 없이 편안히 행함은 성이오, 뜻이 있어 이롭게 행하여 뜻이 없음에 이르름은 성을 회복함이라. 요순은 그 성을 잃지 아니했고, 탕무는 그 성을 잘 돌이켰으니 그 성공에 미쳐서는 하나이니라. 動容周旋이 中禮者는 盛德之至也ㅣ니 哭死而哀ㅣ 非爲生者也ㅣ며 經德不回ㅣ 非以干祿也ㅣ며 言語必信이 非以正行也ㅣ니라 동용과 주선이 예에 맞는 것은 성대한 덕의 지극함이니 죽음을 곡하여 슬퍼함이 산 자를 위해서가 아니며, 떳떳한 덕을 굽히지 아니함이 써 녹을 구함이 아니며, 언어를 반드시 신실하게 함이 써 행함을 바르게 함이 아니니라.
動容 : ①동작과 용의(容儀 : 예의에 맞는 起居動作) ②안색이 변함. 여기서는 ①의 뜻 周旋 : ①빙빙 돎. 왔다갔다 함 ②起居動作 ③뒤쫓아 감. 서로 쫓고 쫓김 ④돌보아 줌. 여서는 ②의 뜻 經德 : ①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 ②도덕을 꿋꿋이 지켜 변하지 아니함 細微曲折이 無不中禮는 乃其盛德之至니 自然而中이오 而非有意於中也ㅣ라 經은 常也ㅣ라 回는 曲也ㅣ라 三者ㅣ 亦皆自然而然이니 非有意而爲之也ㅣ라 皆聖人之事니 性之之德也ㅣ라 세미하고 곡절함이 예에 맞지 아니함이 없음은 이에 그 성대한 덕의 지극함이니 자연히 맞음이오, 맞춤에 뜻을 두었음이 아니라. 경은 떳떳함이라. 회는 굽음이라. 세 가지는 또한 다 자연히 그러함이니 뜻을 두고 그를 위함이 아니라. 다 성인의 일이니 성 그대로의 덕이라. 君子는 行法하야 以俟命而已矣니라 군자는 법을 행하여 써 명을 기다릴 뿐이니라. 法者는 天理之當然者也ㅣ라 君子行之하고 而吉凶禍福을 有所不計하니 蓋雖未至於自然而已나 非有所爲而爲矣라 此는 反之之事니 董子所謂正其義하고 不謀其利하며 明其道하고 不計其功이 正此意也ㅣ니라 ○程子ㅣ 曰動容周旋이 中禮者는 盛德之至요 行法以俟命者는 朝聞道면 夕死라도 可矣之意也ㅣ라 呂氏 曰法由此立하고 命由此出은 聖人也ㅣ오 行法以俟命은 君子也ㅣ니 聖人은 性之요 君子는 所以復其性也ㅣ라 법이라는 것은 천리의 당연한 것이라. 군자가 행하고 길흉화복을 계산하지 않는 바가 있으니 대개 비록 자연함에 이르지 못하고 그치나 위하는 바가 있어서 함이 아니라. 이는 돌이키는 일이니 동중서(董仲舒)가 이른바 그 의를 바르게 하고 그 이익을 꾀하지 아니하며 그 도를 밝히고 그 공을 계산하지 아니함이 바로 이 뜻이니라. ○정자 가라사대 동용주선이 예에 맞는다는 것은 성대한 덕의 지극함이오, 법을 행하여 써 명을 기다리는 것은 ‘아침에 도를 들으며 저녁에 죽더라도 가하다’(『논어』里仁편 제8장)는 뜻이라. 여씨 가로대 법이 이에서 말미암아 세워지고 명이 이에서 말미암아 나옴은 성인이오, 법을 행하여 써 명을 기다림은 군자이니 성인은 성 그대로이고, 군자는 써 그 성을 회복하는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