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스크랩] 盡心章句下 제37장 해설

ria530 2012. 6. 13. 12:39
<제37장>

萬章이 問曰孔子ㅣ 在陳하사 曰盍歸乎來리오 吾黨之士ㅣ 狂簡하야 進取호대 不忘其初ㅣ라 하시니 孔子ㅣ 在陳하사 何思魯之狂士ㅣ시니잇고

만장이 물어 가로대 공자가 진나라에 계시사(계시면서) 가라사대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내 당의 선비가 과격하고 단순하여 진취적이되 그 처음을 잊지 않노라 하시니, 공자가 진나라에 계시사 어찌 노나라의 과격한 선비를 생각하시니잇고?

盍은 何不也ㅣ라 狂簡은 謂志大而略於事라 進取는 謂求望高遠이오 不忘其初는 謂不能改其舊也ㅣ라 此語는 與論語小異하니라

합은 ‘어찌 못하랴’이라. 광간은 뜻은 크나 일에 생략함을 이름이라. 진취는 높고 먼 것을 구하고 바람을 이름이오, 불망기초는 그 옛 것을 능히 고치지 못함을 이름이라. 이 말은 『논어』와는 조금 다르니라.

[앞주 해설]
위 대문에 대하여 주자가 『논어』와는 조금 다르다고 한 것은 『논어』公冶長에 다음과 같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子ㅣ 在陳하사 曰歸與歸與인저 吾黨之小子ㅣ 狂簡하야 斐然成章이오 不知所以裁之로다.”(공자가 진나라에 계시사 가라사대 돌아갈진저, 돌아갈진저. 우리 당의 소자들이 과격하고 단순하여 빛나게 문장을 이루었을 뿐이오, 써 마름질하는 바는 아지 못하도다.)

孟子ㅣ 曰孔子ㅣ 不得中道而與之ㄴ댄 必也狂獧乎저 狂者는 進取오 獧者는 有所不爲也ㅣ라 하시니 孔子ㅣ 豈不欲中道哉시리오마는 不可必得故로 思其次也ㅣ시니라

맹자 가라사대 공자가 중도(의 인물)를 얻어 더불지 못할진댄 반드시 과격하고 성급한 자일진저. 광자는 진취적이오, 견자는 하지 않는 바가 있음이라 하시니 공자가 어찌 중도하고자 아니하시리오마는 가히 반드시 얻지 못한 고로 그 다음을 생각하시니라.

獧 : 성급할 견

不得中道로 至有所不爲는 據論語컨대 亦孔子之言이니 然則孔子字下에 當有曰字라 論語에 道作行하고 獧作狷하니라 有所不爲者는 知耻自好하야 不爲不善之人也ㅣ라 孔子ㅣ 豈不欲中道以下는 孟子言也ㅣ라

‘不得中道’로부터 ‘有所不爲’까지는 『논어』를 근거해보건대 또한 공자의 말씀이니(『논어』子路편), 그러하다면 공자라는 글자 아래에 마땅히 曰자가 있어야 하니라. 『논어』에 ‘道’는 ‘行’으로 지었고, ‘獧’은 ‘狷’으로 지었느니라. 하지 않는 바가 있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알아 스스로 좋아하여 불선을 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라. '孔子ㅣ 豈不欲中道' 이하는 맹자의 말씀이라.

敢問何如ㅣ라아 斯可謂狂矣니잇고

감히 묻잡노니 어찌 하여야 이에 가히 과격하다 이르니잇고?

萬章問이라

만장이 물음이라.

曰與琴張曾晳牧皮者ㅣ 孔子之所謂狂矣니라

가라사대 더불어 금장과 증석과 목피같은 자가 공자의 이른바 과격함이니라.

琴張은 名牢요 字子張이라 子桑戶死에 琴張이 臨其喪而歌하니 事見莊子하니 雖未必盡이라 然이나 要必有近似者라 曾晳은 見前篇하니라 季武子死에 曾晳이 倚其門而歌하니 事見壇弓이오 又言志異乎三子者之撰이라 하니 事見論語하니라 牧皮는 未詳이라

금장은 이름이 뇌요, 자는 자장이라. 자상호가 죽음에 금장이 그 상에 임해서 노래하니 일이 『장자』(大宗師)에 나타나니 비록 반드시 다하지 못함이라. 그러나 요컨대 반드시 비슷한 점이 있느니라. 증석은 전편(離婁章句上 제19장)에 나타나니라. 계무자가 죽거늘 증석이 그 문에 기대어 노래부르니 일이 『예기』 단궁(하편)에 나타남이오, 또한 말하기를 뜻이 세 사람이 가진 것과 다르다 하니 일이 『논어』(先進편)에 나타나니라. 목피는 자세하지 않느니라.

撰 : 지을 찬, 여기서는 ‘가질 선’

何以謂之狂也ㅣ니잇고

어찌 써 과격하다 이르니잇고?

萬章問이라

만장이 물음이라.

曰其志嘐嘐然曰古之人古之人이여호대 夷考其行而不掩焉者也ㅣ니라

가라사대 그 뜻이 크고 커서 말하기를 옛 사람이여, 옛 사람이여 하되 평소에 그 행함을 살펴보면 (행함이 말을) 가리지 못하는 자이니라

嘐 : 닭 울 교, 여기서는 ‘큰소리칠 효’ 夷 : 평소 이

嘐嘐는 志大言大也ㅣ라 重言古之人은 見其動輒稱之요 不一稱而已也ㅣ라 夷는 平也ㅣ라 掩은 覆也ㅣ라 言平考其行이면 則不能覆其言也ㅣ라 程子ㅣ 曰曾晳이 言志而夫子與之하시니 蓋與聖人之志同하니 便是堯舜氣象也ㅣ라 特行有不掩焉耳니 此所謂狂也ㅣ라

효효는 뜻이 크고 말이 큼이라. 옛 사람을 거듭 말함은 그 번번이 칭함이오 한번을 칭할 뿐이 아님을 나타냄이라. 이는 편안함이라. 엄은 덮음이라. 평소에 그 행함을 살펴보면 능히 그 말을 덮지 못함을 말함이라. 정자 가라사대 증석이 뜻을 말함에 부자께서 허락하시니 대개 더불어 성인의 뜻과 같으니 바야흐로 요순의 기상이라. 특히 행함에 가리지 못함이 있을 뿐이니 이 이른바 과격하다 하니라.

輒 : 문득 첩, 갑자기 첩 動輒 : 번번이, 언제나

狂者를 又不可得이어든 欲得不屑不潔之士而與之하시니 是ㅣ 獧也ㅣ니 是ㅣ 又其次也ㅣ니라

狂者를 또한 가히 얻지 못하거든 불결함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선비를 얻어 더불고자 하시니 이는 성급함(성급한 자)이니 이 또한 그 다음이니라.

屑 : 달갑게 여길 설

此는 因上文所引하야 遂解所以思得獧者之意라 狂은 有志者也ㅣ오 獧은 有守者也ㅣ니 有志者는 能進於道하고 有守者는 不失其身이라 屑은 潔也ㅣ라

이는 위 글에 인용한 바로 인하여, 마침내 써 견자를 얻을 생각을 하신 바의 뜻을 해석함이라. 광은 뜻이 있는 자요, 견은 지킨이 있는 자이니, 뜻이 있는 자는 도에 능히 나아가고 지킴이 있는 자는 그 몸을 잃지 않느니라. 설은 깨끗함이라.

孔子ㅣ 曰過我門而不入我室이라도 我不憾焉者는 其惟鄕原乎저 鄕原은 德之賊也ㅣ라 하시니 曰何如ㅣ라아 斯可謂之鄕原矣니잇고

공자 가라사대 내 문을 지나면서 내 집에 들어오지 아니하더라도 내 서운해 하지 않는 자는 그 오직 향원인저. 향원은 덕의 도적이라 하시니. 가로대 어찌하여야 이 가히 향원이라 이르니잇고?

鄕原은 非有識者라 原은 與愿同이라 荀子ㅣ 原慤字를 皆讀作愿하니 謂謹愿之人也ㅣ라 故로 鄕里所謂愿人을 謂之鄕原이라 孔子ㅣ 以其似德而非德故로 以爲德之賊이라 하시니 過門不入而不恨之는 以其不見親就로 爲幸이니 深惡而痛絶之也ㅣ라 萬章이 又引孔子之言而問也ㅣ라

향원은 유식한 자가 아니라. 원은 愿과 더불어 같으니라. 순자가 原慤이란 글자를 다 원으로 읽으니, 삼가고 공손한 사람을 이름이라. 그러므로 향리의 이른바 공손한 사람을 향원이라 이르니라. 공자가 그 비슷한 덕으로써 덕하지 아니하는 까닭으로 써 덕의 적이 된다 하시니, 문을 지나면서 들어오지 아니하여도 한하지 않는 것은 써 그 친히 찾아와 보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김이니, 깊이 미워하고 통렬히 끊음이라. 만장이 또한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물음이라.

愿 : 공손할 원 慤 : 성실할 각

曰何以是嘐嘐也하야 言不顧行하며 行不顧言이오 則曰古之人古之人이여 하며 行何爲踽踽涼涼이리오 生斯世也ㅣ라 爲斯世也하야 善斯可矣라 하야 閹然媚於世也者ㅣ 是鄕原也ㅣ니라

가라사대 어찌 써 이리 크고 커서 말이 행함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행함이 말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곧 가로대 옛 사람이여 옛 사람이여 하며 행함은 어찌 외롭고 쓸쓸하게 하리오. 이 세상에 태어난 지라. 이 세상을 위하여 착하게 함이 이 가하다 하여 슬그머니 세상에 아첨하는 자가 이 향원이니라.

踽 : 홀로 갈 우. 홀로 가는 모양 閹 : 고자 엄, 환관 엄, 여기서는 ‘숨길 엄’ 媚 : 아첨할 미

踽踽는 獨行不進之貌라 凉凉은 薄也ㅣ니 不見親厚於人也ㅣ라 鄕原이 譏狂者曰何用如此嘐嘐然하야 行不掩其言하고 而徒每事에 必稱古人邪아 하며 又譏狷者曰何必如此踽踽凉凉하야 無所親厚哉아 人旣生於此世면 則但當爲此世之人하야 使當世之人으로 皆以爲善則可矣라 하니 此ㅣ 鄕原之志也ㅣ라 閹은 如奄人之奄이니 閉藏之意也ㅣ라 媚는 求悅於人也ㅣ라 孟子ㅣ 言此ㅣ 深自閉藏하야 以求親媚於世하니 是ㅣ 鄕原之行也ㅣ라

우우는 홀로 가서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이라. 량량은 박함이니 다른 사람에게 친하고 후함을 받지 못함이라. 향원이 광자를 나무라며 가로대 어찌 써 이와 같이 크고 커서 행함이 그 말을 가리지 못하고, 한갓 매사에 반드시 옛 사람을 칭하는고 하며, 또 광자를 나무라며 가로대 어찌 꼭 이와 같이 외롭고 쓸쓸하여 친후한 바가 없는가. 사람이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다만 마땅히 이 세상의 사람이 되어 당세의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가 써 선하게 하면 가하다 하니 이는 향원의 뜻이라. 엄은 엄인(內侍)의 엄과 같으니 닫고 감추는 뜻이라. 미는 다른 사람에게서 기쁨을 구함이라. 맹자가 이것은 깊이 스스로 닫고 감추어 써 세상에 친하고 아첨하기를 구하니 이것이 향원의 행함이라고 말씀하심이라.

譏 : 나무랄 기

萬章이 曰一鄕이 皆稱原人焉이면 無所往而不爲原人이어늘 孔子ㅣ 以爲德之賊은 何哉잇고

만장이 말하기를 한 고을이 모두 원인이라 칭하면 가는 곳마다 원인이 되지 아니함이 없거늘 공자가 써 덕의 적이 됨은 어찌잇고.

原은 亦謹厚之稱이어늘 而孔子ㅣ 以爲德之賊故로 萬章이 疑之하니라

원은 또한 근후함의 일컬음이거늘 공자가 써 덕의 적이라 하는 고로 만장이 의심하니라.

曰非之無擧也ㅣ오 刺之無刺也하야 同乎流俗하며 合乎汙世하야 居之似忠信하며 行之似廉潔하야 衆皆悅之어든 自以爲是而不可與入堯舜之道ㅣ니 故로 曰德之賊也ㅣ라 하시니라

가라사대 비난하려 하여도 들 것이 없고 풍자하려 하여도 풍자할 것이 없어 유속에 같이하며, 더러운 세상에 합하여 거함에 충신과 비슷하게 하며, 행함에 청렴결백한 듯이 하여 많은 이들이 다 좋아하거든, 스스로 써 옳다 하되 가히 더불어 요순의 도에 들어가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가라사대 덕의 적이라 하시니라.

刺 : 찌를 자, 풍자할 자

呂侍講이 曰言此等之人은 欲非之則無可擧요 欲刺之則無可刺也ㅣ라 流俗者는 風俗頹靡가 如水之下流하야 衆莫不然也ㅣ라 汙는 濁也ㅣ라 非忠信而似忠信하고 非廉潔而似廉潔이라

여시강이 가로대 이러한 등급의 사람은 비난하고자 하면 가히 들 것이 없고 풍자하려 하면 가히 풍자할 것이 없음을 말씀함이라. 유속이라는 것은 풍속의 무너짐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 같이 모든 사람이 그러하지 아니함이 없음이라. 오는 흐림이라. 충신이 아니면서 충신인 듯하고 청렴결백하지 않으면서 청렴결백한 듯함이라.

頹 : 무너질 퇴

孔子ㅣ 曰惡似而非者하노니 惡莠는 恐其亂苗也ㅣ오 惡佞은 恐其亂義也ㅣ오 惡利口는 恐其亂信也ㅣ오 惡鄭聲은 恐其亂樂也ㅣ오 惡紫는 恐其亂朱也ㅣ오 惡鄕原은 恐其亂德也ㅣ라 하시니라

공자 가라사대 같으면서 아닌 자를 미워하노니 가라지를 미워함은 그 싹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오, 아첨함을 미워함은 그 의를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오, 말 많음을 미워함은 그 믿음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오, 정나라 음악을 미워함은 그 음악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오, 보라색을 미워함은 그 붉음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오, 향원을 미워함은 그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라 하시니라.

莠 : 가라지 유. 밭에 난 강아지풀. 禾穀을 해치는 풀이므로 轉하여 유해 또는 추악의 비유로 쓰임 佞 : (말)재주 있을 녕, 아첨할 녕

孟子ㅣ 又引孔子之言以明之하시니라 莠는 似苗之草也ㅣ라 佞은 才智之稱이니 其言이 似義而非義也ㅣ라 利口는 多言而不實者也ㅣ라 鄭聲은 淫樂也오 樂은 正樂也ㅣ라 紫는 間色이오 朱는 正色也ㅣ라 鄕原은 不狂不獧하야 人皆以爲善하니 有似乎中道而實非也ㅣ라 故로 恐其亂德이라

맹자가 또한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써 밝히셨느니라. 유는 (곡식의) 싹과 비슷한 풀이라. 녕은 재주와 지혜를 일컬음이니 그 말이 의로운 듯하나 의가 아니니라. 이구는 말만 많고 알맹이가 없는 것이라. 정성은 음란한 음악이오, 악은 바른 음악이라. 자는 간색이오, 주는 정색이라. 향원은 과격하지도 않고 성급하지도 않아 사람들이 다 써 선하다 하니 중도에 비슷하면서도 알맹이는 아니니라. 그러므로 그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라.

君子ㅣ 反經而已矣니 經正則庶民이 興하고 庶民이 興이면 斯無邪慝矣리라

군자는 상도(常道)를 돌이킬 뿐이니 상도가 바르다면 서민이 일어나고 서민이 일어나면 이에 사특함이 없으리라.

反은 復也ㅣ라 經은 常也ㅣ니 萬世不易之常道也ㅣ라 興은 興起於善也ㅣ라 邪慝은 如鄕原之屬이 是也ㅣ라 世衰道微하야 大經이 不正故로 人人得爲異說하야 以濟其私하야 而邪慝이 幷起하니 不可勝正이라 君子於此에 亦復其常道而已니 常道旣復이면 則民興於善하야 而是非明白하야 無所回互하야 雖有邪慝이나 不足以惑之矣니라 ○尹氏 曰君子ㅣ 取夫狂狷者는 蓋以狂者는 志大而可與進道요 狷者는 有所不爲하야 而可與有爲也ㅣ라 所惡於鄕原而欲痛絶之者는 爲其似是而非하야 惑人之深也ㅣ니 絶之之術은 無他焉이라 亦曰反經而已矣니라

반은 회복함이라. 경은 떳떳함이니 만세 불역의 상도라. 흥은 선에 일어남이라. 사특은 향원과 같은 등속이 이것이라. 세상이 쇠하고 도가 미미하여 대경이 바루어지지 못한 고로 사람마다 시러곰 다른 말을 하여 써 그 사욕을 이루어 사특이 아울러 일어나니 가히 이기어 바루어지지 못하니라. 군자가 이에 또한 그 상도를 회복할 뿐이니 상도가 이미 회복되었으면 백성이 선에 일어나 시비가 명백하여 서로 도는 바(감추고 숨기는 바)가 없어 비록 사특함이 있으나 족히 써 혹하게 하지 못하니라. ○윤씨 가로대 군자가 무릇 과격하고 성급한 자를 취함은 대개 써 과격한 자는 뜻이 커서 가히 더불어 도를 나아가고, 성급한 자는 하지 아니하는 바가 있어서 가히 더불어 하옴이 있음이라. 향원을 미워하여 통렬히 끊고자 하는 바는 그 옳은 것 같으면서도 그릇되어 사람을 혹함이 깊으니 끊는 기술이 다른 것이 없느니라. 또한 가로대 상도를 돌이킬 뿐이니라.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家苑 이윤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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