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스크랩] 조기(趙岐)의 맹자제사(孟子題辭)

ria530 2012. 6. 13. 12:39

 

孟 子 題 辭

 

필자 : 趙岐(109~201, 후한, 이름은 嘉, 字는 邠卿)

 

 

[해설]

조기는 나이 50까지 지방관으로 근무하였는데, 從兄과 함께 당시 권세가였던 당형(唐衡)의 형인 현(玹)의 부덕함을 탄핵 비판한 일이 있었다. 158년에 당현이 수도의 장관인 경조윤(京兆尹)이 되자 조기는 화가 닥쳐올까 두려워 조카를 데리고 도피하였으나, 가족과 친척들은 모두 몰살당했다.

 

이에 조기는 이름을 고치고 떡을 팔며 사방으로 떠돌아다녔다. 어느 날 지금의 산동성 안구현(安丘縣)에 사는 20대 청년이었던 손숭(孫嵩)이 조기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아보고 자기 집에 이중벽을 만들어 당가 일문이 멸망할 때까지 그 속에 숨어 살게 하였다.

 

조기는 복벽(複壁) 속에서 액둔가(戹屯歌) 23장을 지었고, 맹자장구 14권 역시 이때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현 일족이 망한 뒤에 조기는 사면되어 병주사사(幷州刺史)로 발탁되었으나 다시 당고(黨錮 = 黨錮之禍 : 중국 후한의 환제·영제 때에 환관들이 정권을 장악하여 국사를 마음대로 하자 진번(陳蕃)·이응(李膺) 등의 학자와 태학생들이 환관들을 탄핵하였으나, 도리어 환관들이 이들을 종신 금고에 처하여 벼슬길을 막아 버린 일)로 10여년을 고생했다.

 

군웅이 할거하던 후한 초기까지 조기는 한 왕실을 받들었으며 태상경(太常卿)까지 지내고 90여세의 장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 孟子題辭者 所以題號孟子之書로 本末指義와 文辭之表也라

맹자제사는 (써한 바)『맹자』라고 부르는 책의 본말의 뜻과 글을 밝힌 표제라.

 

▲ 孟은 姓也오 子者는 男子之通稱也라 此書는 孟子之所作也라 故로 總謂之孟子라 其篇目則各自有名이라

맹은 성이고, 자(子)는 남자의 통칭이라. 이 책은 맹자가 지은 것이라. 이에 맹자라 통틀어 이름이라. 그 편목에는 각각 스스로의 이름이 있느니라.

 

▲ 孟子는 鄒人也니 名은 軻요 字則未聞也라 鄒는 本春秋邾子之國이나 至孟子時하야 改曰鄒矣라 國近魯하야 後爲魯所幷하니라 又言邾爲楚所幷이오 非魯也라 今鄒縣이 是也라

맹자는 추(鄒)나라 사람이니, 이름은 가(軻)이고, 자(字)는 알려져 있지 않느니라. 추는 본래 『춘추』에는 주자(邾子)의 나라이나 맹자 때에 이르러서 고쳐 가로대 추나라라 하니라. 나라가 노나라 가까이에 있다가 뒷날 노나라로 합병하는 바가 되었느니라. 또는 주(邾)나라는 초(楚)나라가 합병하여 노나라는 아니라고 말하니라. 지금의 추현(鄒縣)이 이것이라.

 

▲ 或曰 孟子 魯公族孟孫之後라 故로 孟子 仕於齊라가 喪母而歸葬於魯也니라 三桓子孫이 旣以衰微하야 分適他國하니라

혹자가 가로대 맹자는 노나라 공족인 맹손의 후손이라 하니라. 이에 맹자가 제나라에서 벼슬하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노나라에 돌아가 장례를 치렀느니라. 삼환의 자손이 이미 (써) 쇠미하여 다른 나라로 나뉘어 갔느니라.

 

▲ 孟子 生有淑質이러니 夙喪其父하야 幼被慈母三遷之敎하니라 長師孔子之孫子思하야 治儒術之道하니 通五經하고 尤長於詩書라

맹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맑은 기질이 있었더니 일찍이 그 아비를 여의어 어려서 어머니가 자식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갔다는(孟母三遷之敎) 가르침의 은혜를 입었느니라. 커서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를 스승으로 섬겨 유가의 학술의 도를 다스리니 오경에 통하고 더욱 자라서는 『시경』과 『서경』에 통했음이라.

 

▲ 周衰之末에 戰國縱橫하야 用兵爭强하야 以相侵奪이라 當世取士에 務先權謀로 以爲上賢하니 先王大道는 陵遲墮廢하고 異端이 並起라 若楊朱墨翟放蕩之言으로 以干時惑衆者ㅣ 非一이러라

주(周)나라가 쇠미한 말기에 전국이 합종연횡하여 무력을 써서 강함을 다투어 (써) 서로 침탈하니라. 당세에 선비를 모음에 권모(술수)를 우선적으로 힘쓰는 것으로써 최고 좋은 것으로 삼으니, 선왕의 큰 道는 업신여겨져 추락하여 폐기되고 이단이 (아울러) 일어났음이라. 양주, 묵적같은 이의 방탕한 말로써 때를 주장하고(干時君 : 당시 인군에게 자신의 주장을 채택하고 등용하도록 요구하는 일) 무리를 현혹하는 자가 하나가 아니더라.

 

▲ 孟子 閔悼堯舜湯文周孔之業이 將遂湮微하야 正塗壅底하고 仁義荒怠하고 佞僞馳騁하고 紅紫亂朱라

맹자가 (유가에서 성인으로 모시는) 요순임금과 탕임금과 문왕과 주공의 업적이 장차 마침내 막히고 쇠미해져 바른 길이 막히고, 인의가 버려지고, 아첨과 거짓이 날뛰어, (이에) (방계의 색인) 홍(紅)색과 자(紫)색이 (정통의 색인) 주(朱)색을 어지럽힐 것을 근심하고 슬퍼했느니라.

 

▲ 於是에 則慕仲尼周流憂世하고 遂以儒道로 遊於諸侯하야 思濟斯民이라 然이나 由不肯枉尺直尋으로 時君咸謂之迂闊於事하야 終莫能聽納其說이라

(迂 : 멀 우,어두울 오 濶 : 크고 멀 활, 여기서 迂闊(오활)은 어둡고 멀다의 뜻으로 쓰임)

이에 (맹자는) 세상을 근심하여 두루 떠돌아다니신(철환주유) 공자를 본받아 (마침내) 유학의 도로써 제후에게 유세하여 이 백성들을 구제하려 생각했느니라.

그러나 왕척직심(枉尺直尋 : 한 자를 구부려 여덟 자를 편다는 뜻이나 작은 것을 희생하여 큰 것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불의를 묵인하고 합리화하는 행태를 의미함 : 등문공하편 제1장)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기에 당시 인군이 다 (맹자를)(세상물정)에 어둡다고 말하고는 (마침내) (능히) (맹자의) 유세를 받아들이지 않았느니라.

 

▲ 孟子 亦自知遭蒼姬之訖錄하고 値炎劉之未奮하야 進不得佐興唐虞雍熙之和하고 退不能信三代之餘風하야 恥沒世而無聞焉이라 是故로 垂憲言하야 以詒後人하니라 (信 : 伸 펼 신, 訖 : 마칠 흘, 詒 : 주다. 전할 이)

맹자가 또한 스스로 주(周)나라(주나라는 오행중 木의 德에 속한다하여 주나라 왕실의 성인 姬에 동방목의 색인 蒼을 붙여, 주나라를 蒼姬라 부른다.)가 끝날 때(訖錄 : 역사 기록이 끝남. 통치가 끝남)를 알고, 한나라(炎劉)가 일어나기 전에 살아, 나아가서는 당우(요순임금 시대)의 즐겁고 밝았던 화평치세를 일으킴을 돕지 못하고, 물러나서는 능히 삼대(하.은.주나라)의 여풍(모범이 되는 풍속)을 펼 수 없어서 몰세(세상이 타락한) 후에 (성인의 도가) 들림이 없을까를 부끄러워했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법칙이 되는 말을 드리워서 (써) 후세 사람들에게 전했느니라.

 

▲ 仲尼有云에 我欲託之空言이나 不如載之行事之深切著明也라 於是에 退而論集所與高第弟子公孫丑萬章之徒로 難疑答問하고 又自撰其法度之言하야 著書七篇하니 二百六十章, 三萬四千六百八十五字라

공자께서 ‘나는 공언(空言 : 관직이 없었기에 말대로 실행할 수 없다는 뜻)에 의지하고자 했으나 (실제) 일을 행함의 매우 간절하고 분명함을 실은 것만 같지 못하니라’는 말씀이 있었느니라. 이에 (맹자가) 물러가 뛰어난 제자인 공손추와 만장 등의 무리들과 더불어 어렵고 의심하는 것을 묻고 대답한 것을 의논하여 모으고, 또한 스스로 그 법도가 되는 말을 지어서 일곱 편을 저술하니, 260장, 3만 4천 685자라.

 

▲ 包羅天地하고 揆敍萬類하고 仁義道德과 性命禍福이 粲然靡所不載라

천지를 망라하고 만물의 종류를 헤아려 서술하고, 仁義 도덕과 (하늘이 주신) 성품과 천명 그리고 禍와 복이 (모두) 찬연하게 실려있지 않은 바가 없음이라.

 

▲ 帝王公侯遵之면 則可以致隆平하고 頌淸廟하며 卿大夫士蹈之면 則可以尊君父하고 立忠信하며 守志厲操者 儀之면 則可以崇高節하고 抗浮雲이리라

◂제왕과 공후가 이를 따른다면 (가히 써) 융성하고 태평에 이르고 종묘에서 맑게 칭송되며,

◂경대부와 선비가 이를 밟아 나간다면(실천한다면) (가히 써) 임금과 아비를 높이고 충신을 세울 수 있으며,

◂뜻을 지키고 절조를 근심하는 자가 이를 본받는다면 (가히 써) 높은 절개를 숭상하고 부운(의롭지 못하게 얻게 되는 권세)에 항거하리라.

 

▲ 有風人之託物과 二雅之正言이라 可謂直而不倨하고 曲而不屈이니 命世亞聖之大才者也라

『시경』국풍의 시인이 사물에 견준 것과『시경』대아와 소아의 바른 말이 있음이라. 가히 곧으면서도 거만하지 아니하고 곡진하면서도 굽히지 않았으니 하늘의 命을 받은 亞聖이라는 성인 다음가는 위대한 인물이라 일컫느니라.

 

▲ 孔子 自衛反魯然後에 樂正하고 雅頌이 各得其所라 乃刪詩定書하고 繫周易하고 作春秋라

공자가 위나라로부터 노나라에 돌아온 연후에 악경을 정리하고 『시경』의 아와 송이 각각 그 자리를 얻었음이라. 이에 시를 깎고(시경을 편찬하고) 『서경』을 정리하고(짓고), 『역경』에 해설을 (매)달고 『춘추』를 지었느니라.

 

▲ 孟子 退自齊梁하야 述堯舜之道而著作焉하니 此는 大賢이 擬聖人而作者也라 七十子之疇 會集夫子所言하야 以爲論語라 論語者 五經之錧鎋이오 六藝之喉衿也라 孟子之書는 則而象之라

맹자가 제나라와 양나라로부터 물러나 요순임금의 道를 풀이하여 지었으니, 이는 위대한 현인이 성인을 본받아 지은 것이라. 70제자의 무리들이 공자의 말씀하신 바를 모아서 (써) 『논어』라 했느니라. 『논어』라는 것은 오경의 관할[關鍵]이고, 육예(禮.樂.射.御.書.數)의 후금(목구멍과 옷깃 : 곧 요긴한 부분으로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부분이자, 속을 마무리하는 본령)이라. 맹자의 책은 그것을 본받았느니라.

 

▲ 衛靈公이 問陳於孔子할새 孔子答以俎豆하고 梁惠王이 問利國할새 孟子對以仁義하며 宋桓魋欲害孔子할새 孔子 稱天生德於予하고 魯臧倉이 毁鬲孟子할새 孟子曰 臧氏之子 焉能使予不遇哉아 하니 旨意合同이라 若此者 衆이라

◄ 위령공이 공자에게 진법을 물었을 때 공자가 조두(의 예법)로써 답하시고

(『논어』 위령공편 제1장),

◄ 양혜왕이 나라의 이로움을 물었을 때 맹자가 仁義(의 王道)로써 대답했으며

(『맹자』 양혜왕 상편 제1장),

◄ 송의 환퇴가 공자를 해치려고 할 때 공자가 하늘이 나에게 덕을 냈다고 말하고(『논어』 술이편 제22장),

◄ 노나라 장창이 맹자를 훼방하고 이간질하려고 할 때 맹자가 장씨의 자식이 어찌 나로 하여금 (임금을)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는가 하니

(『맹자』 양혜왕 하편 제16장),

뜻이 하나로 합하니라. 이와 같은 것이 많으니라.

 

▲ 又有外書四篇하니 性善辯文說孝經爲政이라 其文이 不能弘深하고 不與內篇相似라 似非孟子本眞이오 後世依放而託之者也라

또한 외서 네 편이 있으니 성선변과 문설과 효경과 위정이라. 그 글이 크고 깊지 못하고 내편과 더불어 서로 같지 못하니라. 맹자의 본뜻과 같지 않고 후세에 모방하여 붙인 것이라.

 

▲ 孟子 旣沒之後에 大道遂絀하고 逮至亡秦하야 焚滅經術하고 坑戮儒生하니 孟子徒黨이 盡矣라 其書는 號爲諸子라 故로 篇籍이 得不泯絶이라

맹자가 (이미) 돌아가신 후에 큰 道가 마침내 버림받고, (멸망한) 진(秦)나라에 이르러 마침내 경전을 태워 없애고, 유생을 생매장하여 죽였으니 맹자를 따르는 무리가 없어졌음이라. (다만) 그 책은 부르기를 제자(諸子)라 하였기에 서적이 없어지지 않았느니라.

 

▲ 漢興하야 除秦虐禁하고 開延道德이라 孝文皇帝欲廣遊學之路하사 論語孝經孟子爾雅를 皆置博士라 後罷傳記博士하고 獨立五經而已나 訖今諸經通義에 得引孟子以明事면 謂之博文이라

한나라가 일어나 진나라의 포악한 금령을 해제하고 도덕(유가의 학문)을 열어 끌어 들였느니라. 효문제가 배움의 길을 넓혀주고자 『논어』『효경』『맹자』『이아』에 다 박사를 두었느니라. 뒤에 그 박사들을 폐지하고 오직 오경에만 두었을 뿐이나 지금까지도 여러 경서의 뜻을 통하는 데에 맹자를 인용하여서 (써) 일(古事)을 밝히면 이를 일러 글에 박식하다라고 하니라.

 

▲ 孟子 長於譬喩하고 辭不迫切이나 而意以獨至라 其言에 曰 說詩者는 不以文害辭하며 不以辭害志오 以意逆志라야 是得之矣라

맹자는 비유하는 데에 뛰어나고 말이 박절하지 않으나 뜻은 독특하게 이르니라. 그 말에 시를 해설하는 자는 文으로써 말을 해치지 말며 말로써 뜻을 해치지 말고, ( 읽는 자의) 뜻으로써 (지은이의) 의지를 맞이하여야 (이) 그것을 얻음이라(맹자 만장상편 제4장)하였느니라.

 

▲ 斯言은 殆欲使後人으로 深求其意하야 以解其文이오 不但施於說詩也라 今諸解者 往往摭取而說之나 其說이 又多乖異不同이라 孟子以來로 五百餘載에 傳之者亦已衆多라

이 말은 자못 후세 사람으로 하여금 그 뜻을 깊이 구하여서 (써) (그) 글을 풀이하도록 하는 것이지 (다만) 시를 해설하는 데에 베푼(적용하라는) 것은 아니니라. 이제 해설자들이 왕왕 (부분적으로) 취하여 이를 해설하고 있으나, 그 해설이 또한 많이 어그러지고 달라 같지 않느니라. 맹자 이래로 오백여년에 전하는 자가 또한 이미 많으니라.

 

▲ 余生西京하니 世尋丕祚 有自來矣라 少蒙義方하고 訓涉典文이라 知命之際에 嬰戚於天하야 遘屯離蹇이라 詭姓遁身하야 經營八紘之內 十有餘年이라 心勦形瘵하니 何勤如焉이리오

내가 서경에서 태어났으니 세대로 큰 벼슬을 이은 지가 오래이라. 어려서는 올바른 법도를 깨우치고 전문(경전의 글)을 배웠음이라. 천명을 알 즈음에(나이 오십에) 하늘로부터 슬픈 일을 당하여 매우 어려움에 직면하였노라. 성명을 바꾸고 몸을 숨겨서 온세상(八紘)을 헤매고 다닌 것이 십여년이라. 마음은 괴롭고 꼴은 지치고 병드니(심초형채) 무슨 괴로움이 이와 같으리오.

<尋(심) : 繹의 잇다의 뜻 祚(조) : 位의 뜻 涉 : 들어갈 섭 嬰(영) : 繞의 얽히다 뜻 戚 : 슬플 척 遘 : 마날 구 離 : 걸릴 리 屯과 蹇은 주역의 괘명으로서 환란을 뜻함 詭 : 속일 궤 八紘(=八極 : 끝에서 끝까지) 勤 : 苦의 괴롭다는 뜻>

 

▲ 嘗息肩弛擔於海岱之間할새 或有溫故知新雅德君子하야 矜我劬瘁하고 睠我皓首하며 訪論稽古하고 慰以大道라 余困吝之中에 精神遐漂하야 靡所濟集이나 聊欲系志於翰墨하니 得以亂思遺老也라

일찍이 해대지간(北海郡과 태산 사이, 즉 조기를 구해준 손숭이 살던 安丘를 말함)에서 짐을 풀어놓고 어깨를 쉴 때에, 문득 온고지신하는 아름다운 덕을 가진 군자가 있어서 나의 구췌(심히 애씀)를 불쌍히 여기고 나의 백발머리를 돌아보며 방론계고(찾아서 따지고 옛 일을 상고함, 즉 학문을 토론함)하고 大道로써 위로했느니라. 내가 매우 어려운 속에서 정신이 멀리 떠돌아다녀서 가지런히 집중되지 않았으나 글 쓰는 데 뜻을 매어 두고자 원하니 생각을 다스리고 늙음을 잃어버리게 되었노라.

<擔 : 짊어질 담 劬(구),瘁(췌) : 애쓰다 睠 : 돌아볼 권 困(곤),吝(인) : 주역에서 어려운 처지를 뜻함 翰墨 : 붓과 먹으로 끌쓰기를 뜻함 亂 : 다스릴 난 遺(亡) : 잊어버림 >

 

▲ 惟六籍之學은 先覺之士 釋而辯之者 旣已詳矣라 儒家엔 惟有孟子 閎遠微妙하고 縕奧難見하니 宜在條理之科라 於是에 乃述己所聞하고 證以經傳하야 爲之章句하고 具載本文이라 章別其旨하고 分爲上下하니 凡十四卷이라

오직 육경(시.서.역. 예기.악기.춘추)의 학문은 먼저 깨우친 선비가 풀이하고 분별해놓은 것이 이미 상세하니라. 유가에서는 오직 『맹자』만이 크고 심원하며 미묘하고 온오하여 보기 어려우니 마땅히 조리해야 할 과정이 있느니라. 이에 내가 들은 바를 기술하고 경전으로써 증명하여 장구(주석)를 짓고 모두 본문에 실었느니라. 장마다 그 뜻을 별도로 쓰고, (장마다) 상하로 나누어 두니 무릇 14권이라.

( 閎 : 넓을 굉 縕奧(온오) : 이치가 깊고 오묘하다는 뜻)

 

▲ 究而言之면 不敢以當達者요 施於新學이면 可以寤疑辯惑이리라 愚亦未能審於是非니 後之明者 見其違闕하야 儻改而正諸면 不亦宜乎아

궁극적으로 말한다면 감히 통달한 사람들에게는 마땅하지 않고 초학자들에게 베풀면 (가히 써) 의심스러움을 깨우치고 미혹됨을 분별하리라. 어리석은 나 또한 (이 책의) 옳고 그름을 능히 살필 수 없으니 후세의 밝은 자가 그 틀리고 빠짐 것을 보아서 만약에 고쳐서 바로잡아 준다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儻 : 만약 당)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法古創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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