也山大學錯簡攷正敍記 / 해설
[다음 해설은 대산 김석진 선생의 『대산대학강의』(한길사, 2000년)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 家苑 註]
‘착(錯)’은 어긋남을 말하고 ‘간(簡)’은 책을 말한다. 옛날에는 대나무를 쪼개서 거기에다 글씨를 썼기 때문에 책을 일러 簡이라 했는데, 『대학』이라는 책이 이제 이리저리 섞이고 뒤바뀌어서 순서가 어긋났으므로 지금까지도 ‘착간대학(錯簡大學)’, 즉 대학의 글 순서가 착간되어 있다고 학자들은 얘기한다. ‘대학착간고정서기’는 착간된 『대학』을 고정하는 데 대한 서문을 펴서 기록하였다는 뜻이다.
주자가 『대학』의 착간을 고정했지만 그 서문에 “후세의 군자를 기다린다(俟後之君子)”라고 하여, 당신이 완전하게 해놓지 못한 것을 바로잡을 후세의 군자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이후로 중국에서는 『대학』의 착간을 바로잡으려는 분들이 많았고 우리나라에서도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을 비롯하여 여러 분이 착간대학을 연구하였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최종판이라 할 수 있는 이 야산 선생의 『대학착간고정』을 보면 그 이상은 더 누가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데, 선생은 이 서문에서 스스로의 업적을 겸손이 사양하시고 그 공을 정자와 주자 등 선유분들께 돌리셨다.
야산 선생의 착간고정본에는 주자의 장구본 전문에 있는 본말장(제4장)과 보궐장(격물치지장을 보궐한 제5장)이라는 것이 없다. 원래의 본문 속에서 격물치지에 대한 내용을 다 찾아내어 각각 격물장과 치지장으로 분류해 놓았다. 원문을 죽 살펴보면 착간고정본은 차례가 좀 바뀌었을 뿐이지 『대학』원문의 글과 그 내용은 똑같다.
특기할 점은 대학의 도인 삼강령에서 정자와 주자는 親民을 新民으로 고쳐야 한다고 보았지만 야산 선생께서는 그 글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그대로 의미가 다 부여되는데 뭣하러 바꾸느냐, 사실은 친하여야 新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親而新이라’, 즉 백성들과 친하고 보면 백성들을 또 새롭게 깨우쳐줄 수 있다, 친하지 않고 백성을 멀리하면서 어떻게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느냐는 얘기이다. 그래서 신민을 그대로 친민이라고 읽어야 하고 또 전문 제2장의 명칭을 신민장이라 하지 않고 친민장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대학』의 착간을 고정하면서 지은 머리글(서문)이 다음과 같다.
夫大學之書는 先儒之說이 明白且盡하니 何敢加疊이리오마는 然而有曰 錯簡云이라 故로 寓格所致에 有此攷正之道하니 雖於道統之傳에 不敢妄議나 其於孔門傳受之法과 先儒俟後之方엔 不可黙閉라 故로 略記如左하노라 무릇 대학의 글은 이전 유학자들의 설명이 명백하고 또한 극진한데 어찌 감히 덧붙이겠는가? 그러나 착간되었다는 말이 있기에 생각해보고 깨우친 바 있어 이러한 고정을 하게 되었으니, 비록 도통의 전함에 대해 감히 망녕되이 의논할 수 없으나 공문에 전수된 법도와 선유가 후인을 기다린 뜻을 생각하면 가히 침묵할 수만은 없어서 간략히 다음과 같이 글을 적는다.
疊 : 쌓을 첩 寓 : 부칠 우 格 : 이를 격 攷 : 상고할 고(考의 古字)
[강의] 착간(錯簡)은 원래 내용과 다르게 순서가 뒤섞인 글을 말하고 고정(攷正)은 고찰하여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우격소치(寓格所致)는 『대학』의 글에다가 격(格 : 뜻과 마음)을 부치고 앎에 이른 바로서, 사물에 대해 궁리하여 이치를 깨달음, 즉 格物하고 致知함을 가리킨다. 孔門의 전수는 곧 공자 이후 유학의 道統을 말한다. 본래 유학의 연원도통은 堯 ․ 舜 ․ 禹 ․ 湯 ․ 文 ․ 武 ․ 周 ․ 孔으로 전승되어 내려왔는데, 공자는 멀리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를 祖宗으로 삼아 전술하고 가까이로는 문왕과 무왕의 도를 본받아서 儒道를 완성하였다. 그 이후 공자의 도통은 그 문하의 증자와 그의 제자이며 공자의 손자인 자사로 계승되어 유학의 체계가 수립되었다. 유학 경전의 최고봉은 공자가 말년에 십익(十翼)을 달아 찬술한 『주역』인데, 『주역』의 작은 두 날개가 되는 글이 바로 증자의 『대학』과 자사의 『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역』의 핵심 사상과 근본 요체는 大同中正인데 이를 표방하여 증자와 자사가 서명을 『대학』이라 이름 짓고, 자사가 『중용』으로 이름지은 것이다. 공자의 도가 증자와 자사에게로 전승되는 근거를 이러한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공자의 수제자인 증자에게서 공부한 자사의 도는 자사의 문인을 통해서 사숙(私淑)한 맹자로 이어진다. 그 이후로 孔門의 도맥이 천여 년간 끊기었다가 송대(宋代)의 주렴계(周濂溪), 장횡거(張橫渠), 소강절(邵康節),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주회암(周晦庵) 등의 유학자들에 의해 다시 중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정이천 선생은 주역에 『전(傳)』을 붙여 역도(易道)의 義理를 세우고 『예기(禮記)』 속에 들어 있던 대학과 중용편을 독립시켜 유학 경전의 철학적 기초를 바로 세워서 옛 성인의 도를 후학에 연결해주는 다리를 닦아놓았다. 정자를 사숙한 주자 또한 『주역』에다 복서(卜筮)에 바탕한 『본의(本義)』를 달아 역리(易理)의 상수(象數)를 밝히고 『대학』과 『중용』의 장구(章句)를 지어 성리학(性理學)을 토대로 한 이른바 정주학(程朱學)의 시대를 열어 놓았다. 『대학』은 그 글의 순서가 뒤섞인 상태였기에 정자가 이를 처음 착간이 있다 하여 글의 순서를 나름대로 고정하였으며, 주자 또한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지어 『대학』의 착간을 고정하였다. 주자의 『대학장구』 서문 말미에는 ‘사후지군자(俟後之君子)’라 하였는데 앞 사람이 다 못한 일의 마무리를 뒷사람이 나와서 해주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或問曰 大學之書는 於宋朝에 先儒頗多正錯이로대 猶有補闕이어늘 而今吾子ㅣ 訂定이 極詳하니 然則吾子ㅣ 過程朱ㅣ 遠矣샷다 曰惡ㅣ라 是何言也ㅣ오 不揣本而齊末이면 寸木이 可使高於岑樓라 譬之藏物於十階梯之上컨댄 程朱子는 已造九階段而予ㅣ 賴此着力하야 僅得一階하니 則惡得有其一하야 以慢其九在리오 是皆推之於先儒末餘之力也ㅣ니라 혹자(어떤 이)가 묻기를 “대학의 글은 송나라 때에 선유가 많이 착간을 바로잡았는데도 오히려 보충하고 빼야 할 것이 남아 있거늘, 이제 우리 선생께서 정정하신 글이 지극히 자세하니 우리 선생께서 정자와 주자보다도 훨씬 앞서셨습니다.”말하기를 “아니다. 이 무슨 말인가? 근본을 헤아리지 못하고서 끝만을 견주면 한 치 나무를 가지고 묏부리보다도 높다고 할 수 있으니, 물건을 열 계단의 사닥다리 위에 숨겨둔 데 비유한다면, 정자와 주자께서 이미 아홉 계단을 만드시고 내가 이에 힘입어 겨우 한 계단을 얻은 데 불과하니 어찌 그 하나를 얻었다고 해서 그 아홉을 무시하랴!” 이 착간고정은 선유께서 끝까지 행하신 여력에 의해 추진된 것이다.
頗 : 자못 파 錯 : 어긋날 착 闕 : 빠질 궐 訂 : 바로잡을 정 惡 : 그릇될 오 揣 : 잴 췌 岑 : 묏부리 잠 樓 : 다락 루 階 : 섬돌 계 梯 : 사다리 제 惡 : 어찌 오
[강의] 대학에 대해 어떤 사람이 묻자, 이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서문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첫 번째 질문이 “『대학』의 글은 송나라의 정명도 ․ 정이천 ․ 주회암 선생을 비롯한 많은 선유들이 착간을 바로잡았는데도 오히려 보궐(빠진 것을 보충함, 주자의 補闕章)할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선생이 『대학』을 정정한 착간고정본이 지극히 상세한 것을 보면 정자와 주자의 공보다도 야산 선생의 공이 훨씬 나은 것이 아닌가?”하고 여쭙자 야산 선생이 『맹자』에 나오는 글을 인용(告子章句 하편에 “不揣其本而齊其末이면 方寸之木을 可使高於岑樓니라”란 구절이다.)하여 그렇지 않은 연유에 대해 답하시를 “한 마디의 나무 막대기가 더 높아 보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나무가 산보다 높을 수 있겠는가? 그 근본을 잃어버리고서 결과(끄트머리)만 가지고 따진다면, 마치 산꼭대기에 한 마디의 나무막대기를 올려놓고 그것이 산(岑樓 : 묏봉우리와 높직한 다락)보다 더 높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물건을 열 층 사닥다리 위에 감추었다고 비유해보면 정자와 주자는 이미 아홉 층의 단계를 만드신 것이고, 나는 이것(정자와 주자가 이미 만들어놓은 아홉 계단)에 힘입어서 겨우 그 위에다 한 계단을 올려 놓았을 뿐이다. 어찌 한 계단을 얻었다고 해서 감히 그 아홉 계단에 대하여 자만할 수 있겠는가? 내가 착간고정을 한 것은 모두 선유가 끝까지 노력한 바탕에 힘입어서 겨우 이룬 것일 뿐이다”고 하셨다.
又問 格物章內에 以本爲主는 何也ㅣ오 曰夫物은 自外來者也ㅣ니 格而至於知者는 在吾心意誠正如何而修身然後에 可以立本이라 故로 壹是皆以修身爲本이라 하니 若非修身이면 則心意无所主而家國天下도 亦无所由也ㅣ니라 또 묻기를 “격물장 안에 本으로써 주장을 삼음은 어째서입니까?” 답하시되 “무릇 物은 밖으로부터 온 것이요 格하여 앎에 이르는 것은 내 마음과 뜻이 정성하고 바른가의 여하에 달려 있으니, 몸을 닦은 뒤에라야 근본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결같이 모두 몸을 닦음으로써 근본을 삼는다’고 하였으니 만일 몸을 닦지 아니한다면 마음과 뜻이 주장할 바가 없어서 집안과 나라 그리고 천하도 연유할 바가 없게 된다.”
[강의] 또 “격물장 안에 근본으로써 주장을 삼는(以本爲主) 것은 어째서입니까?”하고 여쭙자, 다음과 같이 답하셨다. “무릇 물건이라는 것은 밖으로부터 내게 온다. 내가 물건에 格해서 그 물건이 나에게 와 앎에 이르게 되는 것은 내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히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성의정심으로써 몸을 완전히 닦은 뒤에야 그 근본을 세웠다고 할 수 있으니, 이른바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수신으로써 근본을 삼는다’고 한 것이다. 수신이 되지 아니하면 안으로는 그 마음과 뜻이 주장할 곳이 없게 되고, 또 밖으로는 집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치하는, 말미암을 곳이 없게 된다. 이는 근본이 서야만 가지가 생기는 이치이다. 格(격물)은 곧 致(치지)의 근본이고, 그 致(치지)는 곧 誠(성의)의 근본이 되는데, 근본이 완전히 세워지는 것은 이 몸에 이르러서이다. 이렇게 몸에 이르러서야 근본이 세워지기에 身外无物, 즉 몸 밖에 물건이 없는 것이다.”
주자의 장구본에서는 전문 제4장을 본말장으로 놓고 제5장의 격물치지의 빠진 글을 보충해설하기 위해서 보궐장을 두었는데, 야산 선생의 대학착간고정본에서는 이와 달리 전문 제4장을 격물장으로 놓고 제5장을 치지장으로 두었다. 그런데 착간고정의 격물장에는 그 절목의 문장 속에 本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고 ‘수신위본(修身僞本)’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의 글 내용은 그 연유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다. 대개 物은 저 밖에 존재한다. 그런데 그 물을 올바로 인식하고 내재된 이치를 완전히 깨우쳐서 알려면(致知), 밖에 있는 물건에 내 자신이 나아가서(格物) 그 물건의 궁극적인 이치를 캐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물건의 이치를 알게 되면 이것은 곧 밖의 물건이 찾아와서 앎이 내게 이르는 것인데(物格以后致知), 그러려면 먼저 내 뜻과 마음을 성실히 하고 바르게 해서 몸을 닦지 않으면 안 된다. 성실한 뜻이 없고 바른 마음이 없는 못난 사람이 어떻게 사물을 제대로 관찰하여 그 깊은 이치를 터득하겠는가? 그것은 오직 자신의 정성과 바름 여하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해서 내 몸을 닦은 뒤에야 진실로 그 근본이 확립되어 물건이 내게 와 이르고 앎에 통달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身者는 萬事之本也ㅣ오 物者는 致知於吾身之本也ㅣ라 故로 曰 本立而道生이라 하니라 蓋格은 爲致之之本이요 致는 爲誠之之本이니 至於身而本立이라 故로 身外에 无物也ㅣ니라 몸은 만사의 근본이고 物은 내 몸에 근본하여 앎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이 서야 길이 생기니, 대개 格은 致의 근본이요 致는 誠의 근본이 된다. 몸에 이르러서야 근본이 세워지는 까닭에 몸 밖에 물건이 없는 것이다.
[강의] 몸이 없으면 안으로 뜻과 마음을 담는 그릇이 없는 것이고 밖으로 집과 나라와 천하도 연유할 근본이 없어지므로, 身이 만사의 근본이 된다. 한편 物은 곧 내 몸에 근본해서 그 물건에 대한 앎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물건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것은 이 몸이 있기 때문인데, 만일 몸이 없다면 모든 물건을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근본 주체가 없으므로 物의 존재 자체가 애당초 무의미해진다. 그러므로 『논어』에 말하기를 “근본이 섬에 도가 생한다(本立而道生)”고 하였다.
대개 格(물건에 이른다는 格物)은 앎을 이루는 치지의 근본이 되는 것이고 致(앎을 이룬다는 致知)는 뜻을 성실히 하는 성의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 誠은 나아가 마음을 바로하는 정심의 근본이고 그 正은 몸을 닦는 수신의 근본이 되는데, 이 몸에 이르러서야 그 근본이 완전히 세워지므로 身外无物, 즉 몸 밖에는 물건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내 몸이 만물의 주인공이 되고, 내 몸이 있고 난 다음에 물건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만물 중에 가장 신성한 존재로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인 내 몸에 이르러서야 물건 자체의 근본이 성립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몸은 만사의 근본이 된다. 물론 모든 물건이 내 몸 밖에 있기 때문에 내가 그 물건을 상대해서 앎을 이루고 격물치지를 하는 것인데, 근본을 따지고 보면 내 몸이 바로 근본이 되는 것이다. 만물의 근본이자 만사의 근본이 내 몸이므로 내가 있고 물건이 있는 것이다.
又問 經에 曰親民而傳에 作新하고 經條一節에 曰致知而二節에 作知至라 하야늘 今子釋註中에 舊本新民은 依經作親民하고 而致知則依舊는 何也ㅣ오 또한 묻기를 “경문에는 親民이라고 하였는데 전문에는 新(新民)으로 되어 있고, 경문의 팔조목 1절에는 致知라고 하였는데 2절에는 知至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 선생께서 풀이한 주(착간고정본) 가운데 옛 본(주자의 장구본)의 新民은 경문에 의거하여 親民이라 지었고 致知는 그대로 옛 본에 의거하였으니 어째서입니까?”
[강의] 삼강령을 말씀한 『대학』경문에서는 (백성을 친한다는) 친민을 말한 반면에 전문에서는 신민에 대한 문장들로 되어 있으며, 팔조목에 대한 경문의 제1절목에는 앎을 이룬다는 치지(致知)로써 말하고 제2절목에는 知至라고 하였다. 그런데 경문의 親民을 新民으로 풀이한 구본(장구본)의 입장과 달리 야산 선생의 착간고정본에서는 본래의 경문과 같이 친민 그대로 풀이하고, 또 致知와 知至에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장구본에서 풀이한 내용대로 풀이하고 있다. 즉 정자가 親을 “當作新이라”한 내용을 인용해서 친민을 마땅히 신민으로 고쳐야 한다고 한 주자의 장구본과는 다르게, 야산 선생께서 풀이한 착간고정본의 주에는 경문 내용 그대로 親民이라고 해놓았다(右는 傳之二章이니 釋親民하다). 또 팔조목의 치지에 대해서는 장구본의 풀이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 연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曰我之明德이 自親親而及於仁民則經之親民이 非誤也ㅣ며 蓋我之親愛而民이 見化於仁則當自新矣리니 傳에 作新도 可也ㅣ며 註之釋親은 依經也ㅣ니라 말하기를 “나의 밝은 덕이 친한 이를 친애함으로부터 백성을 사랑하는 데에 미치므로 경문의 親民이 그릇되지 않고, 대개 내가 친애하여 백성이 어진 데로 변화한다면 의당 자연히 새롭게 되니 전문에 新이라 지은 것도 맞다. 내가 주에 親으로 풀이한 것은 경문에 의지한 것이다.”
[강의] 먼저 나의 밝은 덕으로 백성을 친한 뒤에야 백성이 그 덕화에 힘입어 자연 새롭게 되므로 경문에는 선본(先本)인 친민, 전문에는 그 후말(後末)인 신민을 놓은 것이다. 친한 이(친척, 내 부모와 일가친척)를 친함으로부터 점차 나아가 백성을 사랑하는 데까지 미치게 되니 경문에 백성을 친한다고 한 親民이 잘못된 것이 아니며, 또 밝은 덕을 밝히어 백성을 친하고 사랑하면 윗사람의 그 친애하는 것을 백성들이 보고 자연 모두 교화를 받아 어질게 화하게 되어서 스스로 새로워지게 되니 전문에 새로운 백성이 되게 하라는 新民도 맞다. 親도 옳고 新도 옳다는 말이다. 이렇게 기왕에 다 맞는 표현이라면 경문에 있는 그대로 풀이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야산 선생께서는 경문에 의해서 친민으로 풀이한 것이다.
其曰致知而反曰知至者는 蓋我欲知之則謂致요 旣知則知自至矣리니 彼一節은 則知在格物之前이라 故로 曰先致요 二節은 則之在物格之後라 故로 曰至而註之釋致는 依舊ㅣ 可也니라 그 1절에 致知라 말하고 2절에 뒤집어 知至라고 말한 것은 대개 내가 알고자 하면 이를 致라 하고 이미 알면 앎이 자연히 이르리니(至), 저 앞의 1절은 知가 격물 앞에 있는 까닭에 ‘先致’(先致其知 致知在格物)라고 하였고 2절은 知가 물격 뒤에 있는 까닭에 ‘至’(物格而后 知至)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주(착간고정본)에서 致를 풀이한 것은 옛 본(장구본)에 의지함이 옳다.
[강의] 착간고정본의 경문은 삼강령 1절과 팔조목 2절로 되어 총 3절이다. 팔조목의 제 1절인 古之欲明 절목에는 “致知는 在格物이라”는 문구로 끝맺고 있고 제2절인 “物格而后에 知至하고”라는 문구로 시작하고 있다. 대개 내가 알고자 노력해서 이루는 것이 致이고 스스로 이르는 것이 至가 된다. 즉 致는 ‘이룰 치’로서 노력하여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의미하고 至는 ‘이를 지’로서 이미 정점에 이른 상태를 의미한다. 앞 절의 ‘致知在格物’은 앎을 이룸이 物을 格(궁구)함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서 格物하기 이전이므로 致知로써 표현한 것이고 뒷 절의 物格而后知至는 物이 格(도래)하여 이미 앎이 내 자신에게 이른다는 뜻으로서 物格한 이후이므로 知至로써 표현한 것이다.
竊惟此書中에 曰親而新하고 曰致而知者는 最有意味字處也ㅣ니라 若不親則民何以新이며 不致則知何以至리오 學者ㅣ 當深察其文理之所在하고 明辨其字義之所分然後에 漸見自得之智矣리라 余ㅣ 故로 曰大學之要는 在於新民而新民之要는 在於知之一智字而已라 하노라 그윽히 유념해보건대, 이 『대학』글 속에서 “친하여 새롭게 한다”와 “이르러 안다”고 한 것은 가장 의미가 담긴 곳이다. 친하지 않으면 백성이 어떻게 새로워지며 이루지(致) 아니하면 앎이 어떻게 이르겠는가. 배우는 자가 마땅히 그 문리가 있는 바를 깊이 살피고 그 글자가 나뉜 바를 밝게 가린 뒤에야 점차 스스로 얻는 지혜가 있게 됨을 볼 것이다. 나는 그러기에 『대학』의 긴요함은 新民에 있고 신민의 긴요함은 知라는 한 지혜로운 글자에 있을 뿐이라고 본다.
竊 : 그윽할 절 惟 : 생각 유, 오직 유
[강의] 야산 선생은 대학에서 가장 의미 깊은 곳이 삼강령의 親而新(친민으로 인해 신민을 이룸. 경문의 親民은 앞서는 본체, 전문의 新民은 뒤따르는 말용)과 팔조목의 致而知(致知로 인해 知至가 됨. 사물의 궁극적인 이치에 다다름에 따라 앎이 이름)에 대한 내용이라고 하였다. 백성을 잘 친애하면 백성이 따르고 그러다 보면 백성이 모두 다 개화되고 새로워져서 저절로 새로운 백성이 되니, 親해서 新하는 것이다. 또 내가 물건을 알고자 하면 앎에 이르도록 노력하여야 하고 그렇게 해서 앎을 이루게 되면 마침내 知를 체득하게 되니, 致해서 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을 배우는 자는 마땅히 깊이 그 문리의 있는 바를 살피고 그 글자 뜻의 나뉜 바를 밝게 분별한 뒤에야, 점점 스스로 지혜가 밝아지게 된다고 말씀하였다. 또 이르기를 “대학의 요점은 백성을 새롭게 하는 新民에 있고 그 백성을 새롭게 하는 신민의 요처는 앎 즉 知라고 지혜로운(智) 한 글자에 들어 있다”. 즉 내가 致知를 못하면(알지 못하면) 백성을 가르칠 수 없고 백성을 가르치지 못하면 新民(새로운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말씀이다. 글자상으로도 ‘친할 친(親)’에 바탕해서 ‘새 신(新)’이 나오고 ‘알 지(知)’에 바탕해서 ‘지혜 지(智)’가 나온다. 親하지 않고서는 新하지 못하고, 知를 얻지 못하고서는 智가 열리지 않는다. 결국 『대학』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新民인데, 그 신민이 이루어지려면 知를 체득하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春秋麟筆 二千四百三十八年 丁酉元旦에 後學易子 李達은 復하노라 춘추린필 2438년 음력 정유년 새아침(설)에 후학역자 이달은 기록하노라
麟 : 기린 린 復 : 사뢸 복
[강의] 공자(기원전 551, 庚戌年~기원전 479, 壬戌年)가 쓴 『춘추』는 노(魯)나라 은공(隱公)으로부터 애공(哀公)까지의 242년간(기원전 722, 己未年~기원전 481, 庚申年)의 역사를 기술한 글이다. 말년에 공자가 노나라 서쪽 들에서 기린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천명이 다했음을 탄식하시며 ‘서수획린(西狩獲麟)’이라는 글귀로 『춘추』를 마친 데에서 ‘춘추절필(春秋絶筆)’ 또는 ‘춘추린필(春秋麟筆)’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공자께서 『춘추』를 절필한 해인 경신년(庚申年 : 기원전 481년)을 춘추린필의 원년으로 삼는데, 『대학착간고정』이 완성된 춘추린필 2438년은 서기 1957년 정유년(丁酉年)으로서 선사께서 작고하시기 한 해 전이다.
야산 선생(1889~1958)께서 『대학착간고정』을 지은 후에 그 감회를 읊은 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乾坤開闔從方便이오 妙在其神甲在庚이라 綱領德之止於善이오 條目物乃及於平이라 건곤의 문을 여닫음은 방편을 따름이고 묘함은 그 신에 있고 갑(親)은 경(新)에 있음이라 강령은 명명덕으로부터 지어지선에 머물고 조목은 격물로부터 평천하까지 미침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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