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集傳序 해설
慶元己未冬에 先生文公이 令沈으로 作書集傳하시고 明年에 先生이 歿커시늘 又十年에 始克成篇하니 總若干萬言이라 嗚呼라 書豈易言哉리오 二帝三王의 治天下之大經大法이 皆載此書하니 而淺見薄識이 豈足以盡發蘊奧리오 且生於數千載之下하여 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하니 亦已難矣라 경원(남송 寧綜의 연호) 기미년(1199년) 겨울에 문공(주자의 시호)선생이 (나) 침으로 하여금 『서경』집전을 짓게 하시고 이듬해에 선생이 돌아가시거늘 또 10년 만에 비로소 책을 완성하니 모두 만 글자 정도라. 아아, 『서경』을 어찌 쉽게 말하리오. 2제(堯 ․ 舜)와 3왕(夏禹氏 ․ 商湯 ․ 周武王)의 천하를 다스린 큰 벼리와 큰 법이 모두 이 책에 실려 있으니, 식견이 얕고, 지식이 얄팍한 자가 어찌 족히 깊은 뜻을 바 발표하리오. 또한 수천 년 뒤에 태어나 수천 년 전의 것을 익혀서 밝히려 하니 또한 이미 어려운지라.
[해설] 慶元은 남송 영종(寧宗, 1168년 ~ 1224년)의 연호. 휘는 조확(趙擴). 1194년 3대 황제인 광종은 재상 조여우(趙汝愚), 한탁주(韓侂胄)등에 의해 퇴위당하고 제4대 황제로 영종(재위 1195년 ~ 1225년)을 옹립하였다. 한탁주는 이 공적으로 더욱 많은 권력을 거머쥐려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반대세력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에 들어갔다. 1195년(경원 원년) 조여우는 재상직에서 물러났고, 경원 3년에는 조여우편에 섰던 주필대(周必大), 유정(留正), 왕난(王藺), 주희(朱熹, 1130 ~ 1200), 팽귀년(彭龜年)등 59명이 금고(禁錮)에 처해졌다. 그 다음 해에는 주희의 주자학(朱子學, 당시에는 道學이라고 불렸다)도 거짓 학문이라고 탄압받았는데 이를 경원위학의 금(慶元僞學之禁)이라 부르고, 당시 일련의 정치적 사건을 경원의 당금(慶元之黨禁)이라 부른다. 당시 주자는 유학의 핵심사상인 性善을 理로 보고, 선한 본성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것은 氣의 작용이라고 해석하여 유학을 性理學으로 이끌어내 주자학의 체계를 세웠다. 하지만 말년에 한탁주의 미움을 받아 그의 학문은 僞學이라 하여 많은 박해를 받았고 解禁되기 전에 죽었다. 유학경전의 사서삼경체계를 세우고 이 경전들에 집주를 달았지만 『서경』은 시대상황의 어려움 속에서 끝까지 손을 볼 수 없었던 듯하다. 그리하여 제자인 채침(蔡沈)에게 『서경』집주 작업을 맡기고 눈을 감는다.
然이나 二帝三王之治는 本於道하고 二帝三王之道는 本於心하니 得其心則道與治를 固可得而言矣리라 何者오 精一執中은 堯舜禹相授之心法也요 建中建極은 商湯周武相傳之心法也라 曰德曰仁曰敬曰誠은 言雖殊而理則一이니 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라 至於言天則嚴其心之所自出이오 言民則謹其心之所由施니 禮樂敎化는 心之發也요 典章文物은 心之著也요 家齊國治而天下平은 心之推也니 心之德이 其盛矣乎인저 그러나 2제3왕의 정치는 도에 근본하고, 2제3왕의 도는 마음에 근본하니, 그 마음을 얻으면 도와 정치를 진실로 가히 얻어 말할 수 있으리라. 어째서인고? 정미롭고 한결같이 중을 잡으라 한 것은 요와 순과 우임금이 서로 전한 심법이고, 중을 세우고 극을 세우라 한 것은 상나라 탕 임금과 주나라 무왕이 서로 전한 심법이라. 덕이라 하고, 인이라 하고, 경이라 하고, 성이라 한 것은 말은 비록 다르지만 이치인즉 하나이니 이 마음의 묘함을 밝히는 바가 아님이 없음이라. 하늘을 말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그 마음의 소자출(마음이 움직여 나오는 근원)을 엄하게 하고, 백성을 말하는 데에서는 그 마음이 말미암아 베푸는 바를 삼가니 예악과 교화는 마음의 발함이오, 법도와 문물은 마음의 드러남이고, 집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치하는 것은 마음의 미룸이니, 마음의 덕이 그 성대하도다.
二帝三王은 存此心者也요 夏桀商受는 亡此心者也요 太甲成王은 困而存此心者也라 存則治하고 亡則亂하나니 治亂之分이 顧其心之存不存如何耳라 後世人主가 有志於二帝三王之治인댄 不可不求其道요 有志於二帝三王之道인댄 不可不求其心이니 求心之要舍是書면 何以哉리오 2제3왕은 이 마음을 보존한 자이고, 하나라 걸과 상나라 수(紂王)는 이 마음을 잃은 자이고, 태갑과 성왕은 어렵게 이 마음을 보존한 자이라. 보존하면 다스려지고 잃으면 어지러워지나니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짐의 나뉨이 그 마음을 보존하느냐 보존하지 못하느냐의 여하에 있음을 돌아보아야 하니라. 후세의 임금이 2제3왕의 다스림에 뜻을 둔다면 가히 그 도를 구하지 않지 못하고, 2제3왕의 도에 뜻을 둔다면 가히 그 마음을 구하지 않지 못하니 마음의 요체를 구하면서 이 글을 버린다면 무엇으로써 하리오.
沈이 自受讀以來로 沈潛其義하고 參考衆說하여 融會貫通에 廼敢折衷하니 微辭奧旨는 多述舊聞이오 二典禹謨는 先生이 蓋嘗是正하사 手澤尙新이로다 嗚呼惜哉라 集傳은 本先生所命이라 故로 凡引用師說을 不復識別하고 四代之書를 分爲六卷하니 文以時異나 治以道同이라 聖人之心見於書는 猶化工之妙著於物하니 非精深이면 不能識也라 (나) 침이 받아서 읽은 이래로 그 뜻에 깊이 잠기고 여러 설을 참고하여 융화 관통함에 이에 감히 절충하니 은미한 말과 깊은 뜻은 대부분이 옛날에 들은 것을 기술하고, 2전(요전편, 순전편)과 우모(대우모편)는 선생(주자)이 일찍이 바로잡으셔서 손때가 아직도 새롭도다. 아아, 슬프도다. 집전은 본래 선생이 명한 바이라. 그러므로 무릇 인용한 스승의 말씀을 다시 구별하여 기록하지 아니하고, 4대(요순시대,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의 글을 나누어 6권(제1권 虞書 5편, 제2권 夏書 4편, 제3권 商書 17편, 제4권 周書 13편, 제5권 周書 8편, 제6권 周書 11편)으로 하였으니, 글은 때에 따라 다르나 다스림은 도가 같기 때문이라. 성인의 마음이 글에 나타난 것은 화공(천지조화의 이뤄냄)의 묘함이 물건에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 정미롭고 깊은 자가 아니면 능히 알지 못하니라. 識 : 앞 글자는 ‘기록할 지’. 뒤의 글자는 ‘알 식’
是傳也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心엔 雖未必能造其微어니와 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書엔 因是訓詁면 亦可得其指意之大略矣리라 이 전함이 요 ․ 순 ․ 우임금 ․ 탕임금 ․ 문왕 ․ 무왕 ․ 주공의 마음에는 비록 반드시 그 은미한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거니와 요 ․ 순 ․ 우임금 ․ 탕임금 ․ 문왕 ․ 무왕 ․ 주공의 글에는 이 훈고(주석)를 따른다면 또한 가히 그 가르치는 뜻의 대략을 얻으리라.
嘉靖己巳三月旣望에 武夷蔡沈은 序하노라 가정(남송 寧宗 15년) 기사년(1209년) 삼월 보름날에 무이 채침은 쓰노라.
* 아래도표는 堯임금의 唐나라와 舜임금의 虞나라, 禹임금의 夏나라, 湯임금의 商나라(殷나라), 文王 武王의 周나라 계보도입니다. 『서경』을 공부하는 동안 필요한 자료이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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