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舜典5章 : 七政을 정비하다>
在璿璣玉衡하사 以齊七政하시다 선기옥형을 살펴서 칠정을 가지런히 하시다.
在는 察也라 美珠를 謂之璿이오 璣는 機也니 以璿飾璣은 所以象天體之轉運也라 衡은 橫也니 謂衡簫也라 以玉爲管하여 橫而設之하고 所以窺璣而齊七政之運行이니 猶今之渾天儀也라 七政은 日月五星也니 七者가 運行於天에 有遲有速하며 有順有逆하니 猶人君之有政事也라 此는 言舜初攝位하여 整理庶務하시고 首察璣衡하여 以齊七政하시니 蓋曆象授時는 所當先也라 재(在)는 살핌이라. 아름다운 붉은 구슬을 선(璿)이라 이르고, 기(璣)는 기틀이니, 구슬로 璣를 장식한 것은 천체가 빙글빙글 도는 것을 본뜬 것이라. 형(衡)은 가로이니 가로진 퉁소를 이름이라. 옥으로 대롱을 만들어 가로로 설치하고 璣를 살펴서 칠정의 운행을 정리하였으니 지금의 혼천의와 같음이라. 칠정은 해와 달과 다섯 개의 별(水火木金土)이니, 일곱 개가 하늘을 운행함에 느리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며 순하기도 하고 역하기도 하니 임금이 정사를 두는 것과 같음이라. 이것은 순임금이 처음 제위를 섭정할 때에 모든 업무를 정리하시고, 먼저 선기옥형을 살펴서 칠정을 가지런히 하시니 대개 曆象授時는 마땅히 먼저 하는 바이라.
○按渾天儀者컨대 天文志에 云言天體者는 三家니 一曰周髀요 二曰宣夜요 三曰渾天이라 宣夜는 絶無師說하니 不知其狀如何라 周髀之術은 以爲天似覆盆하니 蓋以斗極爲中하니 中高而四邊下라 日月이 傍行遶之하니 日近而見之면 爲晝요 日遠而不見이면 爲夜라하니 蔡邕이 以爲考驗天象하고 多所違失이라하니라 혼천의를 살펴보건대 (『晋書』) 「천문지」에 이르기를 천체를 말한 것은 세 가지 설이 있으니, 하나는 주비(『周髀算經』)이고, 두 번째는 선야이고, 세 번째는 혼천이라. 선야는 끊어져 스승의 설명이 없으니 그 모양이 어떠한지 알지 못함이라[앞서 東晋 때의 천문학자인 虞喜( 281~356)는 고대의 선야설을 계승 발전시켜 “宣은 明也오 夜는 幽也니 幽明之數는 其述兼之라 故曰宣夜라”하였다. 조선시대 학자인 李瀷의 『星湖僿說』 談天편에도 간략히 정리되어 있음]. 주비의 방법(요전 8장에서 閏月定時成歲圖 해설 참조)은 하늘이 동이를 엎어놓은 것과 같다고 했으니 대개 북극으로써 중앙을 삼았으니 가운데가 높고 사방의 가장자리는 낮음이라. 해와 달이 옆으로 운행하며 도니 해가 가까워져 보이면 낮이 되고, 해가 멀어져 보이지 않으면 밤이 된다 하니, 채옹이 하늘의 상을 실제로 살펴보고 말하기를 어긋나고 잘못된 것이 많다고 하니라.
渾天說에 曰天之形狀은 似鳥卵하니 地居其中하고 天包地外하여 猶卵之裹黃하고 圓如彈丸이라 故로 曰渾天이라하니 言其形體가 渾渾然也라 其術은 以爲天은 半覆地上하고 半在地下하니 其天이 居地上見者는 一百八十二度半强이오 地下亦然이라 北極은 出地上이 三十六度요 南極은 入地下이 亦三十六度이고 而嵩高는 正當天之中이라 極南五十五度는 當嵩高之上하고 又其南十二度는 爲夏至之日道요 又其南二十四度는 爲春秋分之日道요 又其南二十四度는 爲冬至之日道니 南下去地三十一度而已면 是夏至日이며 北去極六十七度요 春秋分은 去極九十一度요 冬至는 去極一百一十五度니 此其大率也라 혼천설에 말하기를 하늘의 형상은 새 알과 비슷하니, 땅이 그 가운데에 있고 하늘은 땅 바깥을 싸서 마치 알이 노른자를 싸고 있는 것과 같고 둥글기는 탄환과 같음이라. 그러므로 혼천(渾天)이라 하니 그 형체가 둥글며 섞인 듯하다는 말이라. 그 방법은 하늘은 반쯤 땅 위를 덮고 반쯤 땅 아래에 있으니 그 하늘이 땅 위에 거처하듯이 보이는 것은 182와 반이 넘고, 땅 아래 또한 그러함이라. 북극은 땅 위로 나온 것이 36도이고, 남극은 땅 아래로 들어간 것이 또한 36도이고 가장 높은 곳은 바로 하늘의 가운데에 해당함이라. 극남의 55도는 가장 높은 곳에 해당하고, 또한 그 남쪽의 12도는 하지 때 해가 다니는 길이 되고, 또 그 남쪽의 24도는 춘분과 추분 때 해가 다니는 길이 되고, 또 남쪽의 24도는 동지 때 해가 다니는 길이 되니, 남쪽 아래로 땅과의 거리가 31도일뿐이면 이는 하짓날이며, 북쪽으로 극과의 거리가 67도이고, 춘분과 추분 때는 극과의 거리가 91도이고, 동지 때는 극과의 거리가 115도이니 이것이 그 대체이라.
裹 : 쌀 과
其南北極이 持其兩端이면 其天與日月星宿가 斜而廻轉하니 此는 必古有其法이언마는 遭秦而滅이러니 至漢武帝時하여 落下閎이 始經營之하고 鮮于妄人이 又量度之하고 至宣帝時하여 耿壽昌이 始鑄銅而爲之象하고 宋錢樂이 又鑄銅作渾天儀하니 衡은 長八尺이오 孔은 徑一寸이오 璣는 徑八尺이오 圓周는 二丈五尺强이라 轉而望之하여 以知日月星辰之所在하니 卽璿璣玉衡之遺法也라 그 남북극이 그 양 끝을 잡으면 그 하늘과 해와 달과 별들이 기울어져 회전(* 廻에는 公轉의 의미와 轉에는 自轉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自轉과 公轉을 하면서 운행된다는 의미)하니 이는 반드시 옛날에 그 법이 있었을 것이지만 진(秦)나라를 만나 없어졌더니, 한나라 무제 때에 이르러 낙하굉(落下閎)이 처음으로 경영하였고, 선우망인(鮮于妄人)이 또한 측정하였고, 선제 때에 이르러 경수창(耿壽昌)이 비로소 동으로 주조하여 모양을 만들고, 송전락(宋錢樂)이 또한 동으로 주조하여 혼천의를 만드니, 가로는 길이가 여덟 자이고, 구멍은 지름이 일 촌이고, 기틀은 지름이 여덟 자이고, 원주는 두 길 다섯 자가 넘음이라. 빙글빙글 돌면서 바라보게 하여 일월성신이 있는 곳을 알았으니 곧 선기옥형의 유법이라.
歷代以來로 其法漸密하니라 本朝因之하여 爲儀三重하니 其在外者를 曰六合儀라하니 平置黑單環上에 刻十二辰八干四隅하여 在地之位하고 以準地面而定四方하고 側立黑雙環背에는 刻去極度數하고 以中分天脊하여 直跨地平하여 使其半入地下而結於其子午하여 以爲天經하고 斜倚赤單環背에는 刻赤道度數하고 以平分天腹하여 橫繞天經하여 亦使半出地上하고 半入地下而結於其卯酉하여 以爲天緯하여 三環이 表裏相結不動하니 其天經之環은 則南北二極이 皆爲圓軸이라 虛中而內向하여 以挈三辰四遊之環하여 以其上下四方을 於是에 可考라 故로 曰六合이라 역대 이래로 그 법이 점차 치밀해졌음이라. 본조(宋나라)에 그것으로 인하여 삼중의 모양을 만들었으니 그 바깥에 있는 것을 육합의(사방과 상하를 나타낸 모양)라 하니, 평평하게 설치한 흑단환(검은색의 홑고리, 곧 地平環) 위에 12신과 8간과 4우를 새겨서 땅의 방위를 두고 이로써 지면과 나란히 하여서 사방을 정하고, 비스듬히 세운 흑쌍환(검은색은 쌍고리, 곧 子午環)의 등에는 극과의 거리 도수를 새기고 하늘의 등마루를 가운데로 나누어 곧바로 땅의 평평한 곳(地平)을 넘어서 그 반이 땅 아래로 들어가게 하여 그 자오(子午, 곧 북극과 남극, 子는 正北쪽으로 동지점이고, 午는 정남쪽으로 하지점)와 연결하여 이로써 하늘의 날줄(天經)을 삼고, 비스듬히 기울어진 적단환(붉은색의 홑고리, 곧 赤道環)의 등에는 적도의 도수를 새기고, 하늘의 배를 평평하게 나누어서 가로로 천경(天經)을 돌아 또한 반은 땅 위로 나오게 하고 반은 땅 아래로 들어가게 하여 그 묘유(卯는 正東쪽으로 춘분점, 酉는 正西쪽으로 추분점)와 연결하여 이로써 하늘의 씨줄(天緯)을 삼아서 세 고리(흑단환-地平環, 흑쌍환-子午環, 적단환-赤道環)가 겉과 속이 서로 연결되어 움직이지 못하니, 그 천경의 고리는 곧 남북의 두 극이 다 원의 축이 됨이라. 가운데가 비고 안으로 향하여 이로써 삼진의(三辰儀)와 사유의(四遊儀)의 고리를 거느려서 이로써 그 상하 사방을 이에 살필 수 있음이라. 그러므로 육합이라 하니라.
挈 : 손에 들 설, 거느릴 설
[참조] 十二辰 ․ 八干 ․ 四隅는 24方位이자 24節氣 十二辰 ․ 八干 ․ 四隅는 24방위를 나타낸다. 12신은 하루와 일 년의 12때, 그리고 12방위를 12地支로 나타내므로 12辰으로 표현하였고, 8간은 天干인 十干에서 취한 것으로 中央土에 해당하는 戊와 己를 뺀 나머지 8간으로 동서남북 방향을 표현한 것이고, 4우는 곧 四維로 주역 괘명인 艮 ․ 巽 ․ 坤 ․ 乾으로 동북 ․ 동남 ․ 서남 ․ 서북방을 나타낸 것이다. 24방위는 곧 농사 때를 나타내는 24절기와 연결되므로 옛날부터 매우 중시되는 개념이다.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림] 24方位節氣圖
次其內를 曰三辰儀이라하니 側立黑雙環에 亦刻去極度數하여 外貫天經之軸하고 內挈黃赤二道하니 其赤道則爲赤單環이니 外依天緯하되 亦刻宿度而結於黑雙環之卯酉하고 其黃道則爲黃單環이니 亦刻宿度而又斜倚於赤道之腹하여 以交結於卯酉하고 而半入其內하여 以爲春分後之日軌하고 半出其外하여 以爲秋分後之日軌라 又爲白單環하여 以承其交하여 使不傾墊하고 下設機輪하여 以水激之하여 使其日夜隨天하여 東西運轉하여 以象天行하니 以其日月星辰을 於是에 可考라 故로 曰三辰이라 다음으로 그 안을 삼진의(三辰儀)라 하니, 비스듬히 세운 흑쌍환에 또한 극과의 거리 도수를 새겨서 바깥으로 천경의 축을 뚫고, 안으로는 황적의 2도(黃道와 赤道)를 거느리니, 그 적도는 곧 적단환으로 만들었으니 바깥으로 천위에 의지하되 또한 별자리(28宿)의 도수를 새기고 흑쌍환의 묘유(卯酉, 곧 東西)에 연결하고, 그 황도는 곧 황단환으로 만들었으니 또한 별자리의 각도를 새겨서 또한 비스듬히 적도의 배에 의지하여 묘유에 교차하여 연결하고, 반쯤 그 안쪽으로 들어가서 춘분 뒤의 일궤(해의 궤도)를 삼고, 반쯤 그 바깥으로 나가서 추분 후의 일궤를 삼았음이라. 또한 백단환을 만들어 그 교차점을 이어서 기울어지거나 빠지지 않게 하고, 아래로 틀에 바퀴를 설치하여 물을 떨어뜨려서 그 밤낮으로 하늘을 따라서 동서로 돌게 하여 하늘의 운행을 본떴으니 이로써 그 일월성신을 이에 가히 살필 수 있으므로 삼진이라 하니라.
墊 : 빠질 점
其最在內者를 曰四遊儀라하니 亦爲黑雙環하니 如三辰儀之制하여 以貫天經之軸하고 其環之內則兩面當中하되 各施直距하여 外指兩軸而當其要中之內面하고 又爲小窽하여 以受玉衡 要中之小軸하여 使衡으로 旣得隨環東西運轉하고 又可隨處南北低昻하여 以待占候者之仰窺焉하니 以其東西南北으로 無不周徧이라 故로 曰四遊라하니 此其法之大略也라 그 가장 안에 있는 것을 사유의(四遊儀)라 하니, 또한 흑쌍환으로 만들었으니 삼진의를 만든 것과 같아서 천경의 축에 꿰고 그 고리의 안쪽에는 곧 양면의 가운데를 만나게 하되 각각 직거(直距)를 베풀어서 바깥으로는 양 축을 가리키면서 안쪽의 허리 가운데를 만나게 하고, 또한 작은 구멍을 만들어서 옥형의 허리 가운데의 작은 축을 받게 하여 옥형으로 하여금 이미 고리를 따라 동서로 운전하게 하고 또 처한 곳을 따라 남북으로 내려가고 올라가게 하여 때를 점치는 자를 기다려서 우러러 엿보게 하였으니 동서남북으로써 두루 하지 아니함이 없으므로 사유라 하니, 이는 그 법의 대략이라.
窾 : 빌 관, 구멍 관 昻 : 오를 앙, 높을 앙
沈括曰 舊法規環은 一面刻周天度하고 一面加銀丁하니 蓋以夜候天에 晦不可目察이면 則以手切之也라하니 古人以璿飾璣도 疑亦爲此라 今大史局秘書省에 銅儀制極精緻하니 亦以銅丁爲之라 曆家之說에 又以北斗魁四星爲璣하고 杓三星爲衡하니 今詳經文簡質컨대 不應北斗二字라 乃用寓名은 恐未必然이나 姑存其說하여 以廣異聞이라 심괄(沈括, 1031~1095, 字는 存中, 號는 夢溪翁, 북송(北宋) 사람으로 司天監 곧 오늘날의 천문대장이 되어 천체관측법 ·曆法 등을 만듦)이 가로대 옛 법의 규환(規環)은 한 면에는 주천도수를 새기고 한 면에는 은정(은으로 만든 못)을 덧붙였으니, 대개 밤에 하늘을 측후(測候)함에 어두워서 눈으로 관찰할 수 없으면 손으로 바로잡는다 하니 옛날 사람들이 선(璿)으로 기(璣)를 꾸민 것도 아마도 또한 이러했던 듯하다. 이제 태사국(天文 · 曆數 · 測候 · 刻漏 등에 관한 일을 관장한 관청)과 비서성(祝文과 經籍 등을 맡아본 관청)에 동의(銅儀, 구리로 만든 혼천의)가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만들어져 있으니 또한 동정(銅丁)으로써 만들어졌음이라. 역가(曆家)의 설에 북두괴 4성을 기(璣, 북두칠성의 국자부분에 해당되는 곳으로 璇璣라고도 하는데, 첫째별은 하늘을 도는 축인 天樞星, 둘째별인 天璇星과 天璣星은 천체의 위치를 재는 天體儀, 넷째별은 하늘의 저울추인 天權星이라고 함)라 하고, 자루인 3성을 형(衡, 북두칠성의 자루부분으로 玉衡이라고도 하는데, 손잡이 첫째별은 玉衡星, 둘째별은 開陽星, 셋째별은 搖光星이라고 함)이라 하니, 이제 경문의 간략하고 질박한 내용을 자세히 보건대 북두의 두 글자(璣와 衡)와는 응하지 않음이라. 이에 이름을 붙여 쓴 것은 두렵건대 반드시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나, 짐짓 그 설을 두어서 다른 들음(異聞 곧 異見)을 넓히려는 것이라.
切 : 문지를 절, 바로잡을 절 魁 : 으뜸 괴, 클 괴 杓 : 자루 표
[그림] 璇璣玉衡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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