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舜典27章 : 三考黜陟에 庶績咸熙하다> 三載에 考績하시고 三考에 黜陟幽明하신대 庶績이 咸熙하더니 分北三苗하시다 삼년마다 일을 살피시고, 세 번 살피심에 어두운 자와 밝은 자를 내치고 올려주시니 모든 공적이 다 빛나더니 삼묘족을 나누어 등져가게 하시다.
北 : 북녘 북, 여기서는 ‘등질 배, 도망갈 배’ 考는 核實也라 三考는 九載也니 九載則人之賢否와 事之得失을 可見라 於是에 陟其明而黜其幽하여 賞罰明信하면 人人力於事功하니 此所以庶績咸熙也라 北은 猶背也니 其善者는 留하고 其不善者는 竄徙之하여 使分背而去也라 此는 言舜命二十二人之後에 立此考績黜陟之法하여 以時擧行하고 而卒言其效如此也라 按三苗見於經者는 如典으로 謨益稷禹貢呂刑에 詳矣라 蓋其負固不服하여 乍臣乍叛에 舜攝位而竄逐之하시고 禹治水之時에 三危已宅이나 而舊都는 猶頑不卽工이오 禹攝位之後에 帝命徂征이나 而猶逆命이라가 及禹班師而後에 來格하니 於是에 乃得考其善惡하여 而分北之也라 呂刑之言遏絶은 則通其本末而言이니 不可以先後論也라 고(考)는 확실한 사실이라. 삼고(三考)는 9년이니 9년이면 사람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과 일의 얻고 잃음을 가히 알 수 있음이라. 이에 그 밝은이를 올려주고 그 어두운 이를 내쳐서 상벌을 분명하고 미덥게 하면 사람마다 일의 공에 힘쓰니 이것이 모든 공적을 다 빛나게 하는 바이라. ‘북녘 북’은 ‘등질 배’와 같으니 그 선한 자는 머무르게 하고, 그 불선한 자는 내쳐서 나누어 등져 가게 함이라. 이것은 순임금이 22인에게 명한 뒤에 이 공적을 살펴 출척의 법을 세워서 때로써 거행함을 말하고 마침내 그 효험이 이와 같음을 말함이라. 상고해보건대 삼묘가 경(『서경』)에 나타나는 것은 전(순전)처럼 모(大禹謨, 皐陶謨)와 익직과 우공과 여형에 자세하니라. 대개 그 단단함을 믿고 복종하지 아니하여 잠깐 신하였다가 갑자기 배반함에 순이 섭위하여 내쫓으시고, 우가 치수할 때에 삼위가 이미 거처하였으나 옛 도읍지에서는 오히려 완악하여 일에 나아가지 않고, 우가 섭위한 뒤에 순임금이 명하여 가서 치도록 하였으나 오히려 명에 맞서다가 우가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온 뒤에 와서 이르렀으니, 이에 그 선악을 살펴서 나누어 등져가게 함이라. 여형편에 알절(멸망시킴)이라고 말함은 곧 그 본말을 통틀어 말함이니, 선후로써 논할 수는 없음이라.
<舜典28章 : 陟方乃死하시다> 舜生三十이라 徵庸하시고 三十이라 在位하사 五十載에 陟方乃死하시니라 순이 태어난 지 30년이라 불리어 쓰이시고, 삼십년이라 섭위하셔서 50년 만에 척방하여 이에 돌아가셨느니라. 徵은 召也라 陟方은 猶言升遐也라 韓子曰 竹書紀年에 帝王之沒을 皆曰陟이라하니 陟은 昇也니 謂昇天也라 書曰 殷禮陟配天이라하니 言以道終하여 其德恊天也라 故로 書에 紀舜之沒云陟하고 其下에 言方乃死者는 所以釋陟爲死也라 地之勢는 東南下하니 如言舜巡守而死면 宜言下方이오 不得言陟方也라하니 按此得之컨대 但不當以陟爲句絶耳라 方은 猶雲徂乎方之方이니 陟方乃死는 猶言徂(殂)落而死也라 舜生三十年에 堯方召用하여 歷試三年하고 居攝二十八年하니 通三十年에 乃卽帝位하시고 又五十年而崩하시니 蓋於篇末에 總敍其始終也라 史記에 言舜巡守라가 崩于蒼梧之野라하고 孟子言舜卒於鳴條라하시니 未知孰是라 今零陵九疑에 有舜塚云이라 징(徵)은 부름이라. 척방은 승하했다는 말과 같음이라. 한자(韓愈)가 말하기를 『죽서기년』(夏殷周를 거쳐 魏나라 襄王, 재위 BC 334∼BC 319년까지를 편년체로 엮은 역사서. 279년 河南省 汲縣 위의 양왕릉에서 출토된 것으로 죽간에 쓰였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출토된 지명을 따서 『汲塚紀年』이라고도 함)에 제왕의 죽음을 다 척(陟)이라 하니, 척은 오름이니 하늘에 오름(승천)을 이름이라. 『서경』(周書 君奭편)에 이르기를, 성대한 예로 올라가 하늘에 짝한다 하니, 도로써 마쳐서 그 덕이 하늘에 합함으로 『서경』에 순의 죽음을 기록하기를 陟이라 이르고, 그 아래에 方乃死라고 말한 것은 陟이 죽음이 됨을 해석한 것이라. 땅의 형세는 동남쪽이 낮으니 순이 순수하시다가 돌아가셨음을 말한다면 마땅히 下方이라고 말할 것이고, 陟方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라고 하니 이를 얻어서 상고해보건대 다만 陟으로써 글귀를 끊는 것은 마땅하지 못하니라. 방은 구름이 사방으로 간다(『楊子法言』7권에 가운데, “雷震乎天하고 風薄乎山하며 雲徂乎方하고 雨流乎淵하니 其事矣乎아”에서 나오는 글귀)는 方과 같으니, 陟方乃死는 殂落하여(요임금의 죽음을 표현한 순전 13장의 말) 죽으셨다는 말과 같음이라. 순이 태어나신지 30년 만에 요임금이 바야흐로 불러 등용하여 3년을 차례로 시험하시고 28년을 섭위하시니 통틀어 30년에 이에 제위에 오르시고 또 50년에 붕하셨으니 대개 편의 끝에 다 그 시종을 서술함이라. 『사기』(五帝本紀)에서는 순이 순수하다가 창오의 들판에서 붕하셨다 하고, 맹자는 순이 명조에서 돌아가셨다(『맹자』이루장 하편 제1장) 하니 누가 옳은지는 알지 못하노라. 지금은 영릉의 구의산에 순의 무덤이 있다고 이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