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禹謨11章> 帝曰皐陶아 惟玆臣庶ㅣ 罔或干予正은 汝作士ㅣ라 明于五刑하야 以弼五敎하야 期于予治니 刑期于無刑하야 民協于中이 時乃功이니 懋哉어다 순임금 가라사대, 고요여. 오직 이 신하와 백성들이 혹 나의 정사를 범함이 없는 것은 그대가 사사인지라 오형을 밝혀서 오교를 도와 나의 다스림을 기약(이루도록) 하였으니, 형벌은(형벌을 쓰되) 형벌이 없음을 기약하여 백성들이 중도에서 화합이 이에 그대 공이니 힘쓸지어다. 干은 犯이오 正은 政이오 弼은 輔也라 聖人之治는 以德爲化民之本하고 而刑特以輔其所不及而已라 期者는 先事取必之謂라 舜이 言惟此臣庶가 無或有干犯我之政者는 以爾爲士師之官하여 能明五刑하여 以輔五品之敎而期我以至於治니 其始엔 雖不免於用刑이나 而實所以期至於無刑之地라 故로 民亦皆能協於中道하여 初無有過不及之差하니 則刑果無所施矣니 凡此皆汝之功也라하시니라 懋는 勉也니 蓋不聽禹之讓하시고 而稱皐陶之美하여 以勸勉之也시니라 간(干)은 범함이고, 정(正)은 정사이고, 필(弼)은 도움이라. 성인의 다스림은 덕으로써 백성들을 교화하는 근본으로 삼고, 형벌은 다만 그 미치지 못하는 곳을 도울 뿐이니라. 기약한다는 것은 일에 앞서 반드시 한다는 것을 취하여 이룸이라. 순임금이 말씀하시기를 ‘오직 이 신하들과 백성들이 혹시라도 나의 정사를 범하는 자가 있지 않은 것은 그대가 사사의 관리가 되어 능히 오형을 밝혀서 오품의 가르침을 도움으로써 나를 다스림에 이르도록 기약하였으니, 그 처음에는 비록 형벌 씀을 면하지 못했으나 실로 형벌이 없는 경지에 이름을 기약하게 된 것이라. 그러므로 백성들 또한 모두가 중도에서 화합하여 비로소 과불급의 어긋남이 있지 않으니 곧 형벌이 과연 베풀어지는 바가 없으니 무릇 이것은 모두가 그대의 공이라’하시니라. 무(懋)는 힘씀이니 대개 우의 사양함을 듣지 아니하시고, 고요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여 권면케 하심이라.
<大禹謨12章> 皐陶曰帝德이 罔愆하사 臨下以簡하시고 御衆以寬하시며 罰弗及嗣하시고 賞延于世하시며 宥過無大하시고 刑故無小하시며 罪疑란 惟輕하시고 功疑란 惟重하시며 與其殺無辜론 寧失不經이라하사 好生之德이 洽于民心이라 玆用不犯于有司ㅣ니이다 고요 가로대 임금의 덕이 허물이 없으셔서 아래로 임함에 간략함으로써 하시고 무리들을 다스림에 너그러움으로써 하시며, 죄는 자손들에게 미치지 않게 하시고, 상은 세대로 이어지게 하시며, 과실은 크게 여기지 않고 용서하시고, 고의는 작게 여기지 않고 형벌하시며, 죄가 의심스러운 것은 오직 가볍게 하시고, 공의 의심스러운 것은 중하게 하시며, 그 죄 없는 사람을 죽일진댄 차라리 법도에 따르지 않는 실수를 하겠다 하시어 살리기를(삶을) 좋아하는 덕이 민심에 무젖어 들어가는지라 이로써 유사를 범하지(관리들을 거스르지) 않나이다. 愆은 過也라 簡者는 不煩之謂라 上煩密이면 則下無所容이오 御者急促 則衆擾亂이라 嗣世는 皆謂子孫이나 然嗣親而世疎也라 延은 遠及也라 父子罪는 不相及하고 而賞則遠延于世하니 其善善長而惡惡短은 如此라 過者는 不識而誤犯也요 故者는 知之而故犯也라 過誤所犯은 雖大라도 必宥하고 不忌故犯은 雖小라도 必刑하니 卽上篇所謂眚災肆赦와 怙終賊刑者也라 罪已定矣로대 而於法之中에 有疑其可重可輕者면 則從輕以罰之하고 功已定矣로대 而於法之中에 有疑其可輕可重者면 則從重以賞之니라 건(愆)은 허물이라. 간(簡)은 번거롭지 않음을 이름이라. 윗사람이 번거롭고 주밀하면 아랫사람이 용납될 바가 없고, 다스리는 자가 급하게 재촉하면 무리들이 어지러워짐이라. 사(嗣)와 세(世)는 다 자손을 이르나 사(嗣)는 친하고, 세(世)는 소원함이라. 연(延)은 멀리까지 미침이라. 부자의 죄는 서로 미치지 아니하고, 상은 곧 멀리 후세에까지 미치니, 그 선을 선하다고 함은 길고, 그 악을 미워함이 짧음은 이와 같으니라. 과실이라는 것은 알지 못하고 잘못 범한 것이고, 고의라는 것은 알면서 고의로 범함이라. 과오로 범한 것은 비록 크더라도 반드시 용서하고, 꺼리지 않고 고의로 범한 것은 비록 작더라도 반드시 형벌하니 곧 윗편에서(순전 11장) 이른바 ‘실수로 저지른 잘못과 재난으로 지은 죄는 풀어놓고, 믿고 재범하는 자는 죽이는 형벌로 한다’는 것이라. 죄가 이미 정해졌으나 법 가운데에 그 무거울까 가벼울까가 의심되면 가벼운 쪽을 따라 벌하고, 공이 이미 정해졌으나 법 가운데에 그 가벼울까 무거울까가 의심되면 무거운 쪽을 따라서 상을 주느니라. 辜는 罪요 經은 常也라 謂法可以殺, 可以無殺에 殺之則恐陷於非辜요 不殺之면 恐失於輕縱이니 二者는 皆非聖人至公至平之意로대 而殺不辜者는 尤聖人之所不忍也라 故로 與其殺之而害彼之生으론 寧姑全之而自受失刑之責하니 此其仁愛忠厚之至니 皆所謂好生之德也라 고(睾)는 죄이고, 경(經)은 상도라. 법으로 죽이는 것도 가하고, 죽이지 않는 것도 가하다고 할 때에 죽인다면 죄가 아닌 데에 빠질까가 두렵고, 죽이지 않는다면 가벼이 놓아주는 실수를 할까가 두려우니 두 가지는 다 성인의 지극히 공변되고 지극히 고른 뜻은 아니지만 죄없는 자를 죽이는 것은 더욱 성인이 차마하지 못하는 바이라. 그러므로 그 죽여서 저 삶을 해칠진댄 차라리 우선 온전케 하여 스스로 형벌을 잘못한 책임을 받으니 이는 그 인애와 충후함의 지극함이니 다 이른바 삶을 좋아하는 덕이라. 蓋聖人之法은 有盡而心則無窮이라 故로 其用刑行賞에 或有所疑면 則常屈法以申恩하여 而不使執法之意로 有以勝其好生之德하니 此其本心이 所以無所壅遏하여 而得行於常法之外라 及其流衍洋溢하며 漸涵浸漬하여 有以入于民心이면 則天下之人이 無不愛慕感悅하여 興起於善하여 而自不犯于有司也라 臯陶가 以舜美其功이라 故로 言此하여 以歸功於其上하니 蓋不敢當其褒美之意하여 而自謂己功也라 대개 성인의 법은 다하되 마음은 곧 끝이 없으므로 그 형벌을 쓰고 상을 줌에 혹시라도 의심하는 바가 있으면 항상 법을 굽혀 은혜를 펴서 법을 집행하는 뜻이 그 삶을 좋아하는 덕을 이기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이것은 그 본심이 막히는 바가 없어서 떳떳한 법의 바깥에서 행함을 얻음이라. 그 흘러 퍼져가고 넘치며 점점 무젖는 데에까지 미쳐서 백성들의 마음에 들어감이 있으면 천하의 사람들이 애모하고 감동하여 기뻐하지 않음이 없어서 선에서 일어나 스스로 유사를 범하지 않음이라. 고요가 순임금으로써 그 공을 아름다이 여겼으므로 이를 말하여 그 임금에게 공을 돌렸으니, 대개가 감히 그 기리고 아름다이 여기는 뜻을 스스로 자기 공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大禹謨13章> 帝曰俾予로 從欲以治하야 四方이 風動한대 惟乃之休ㅣ니라 순임금 가라사대 나로 하여금 하고자 하는 대로 다스려서 사방이 바람 따라 움직이듯 하니 오직 그대의 아름다움이니라.
[해설] 순임금이 여러 현신들과 특히 법 집행을 잘하는 고요의 도움에 힘입어 완성된 정사를 펼치니 이것이 곧 從欲以治이자 『논어』위정편 4장에서 말한 공자의 ‘從心所欲不踰矩’이다. 필자가 ‘휴비담론’과 『논어역해』를 통해 밝혔듯이 『논어』위정편 4장은 나이에 따른 수신의 단계를 말한 것이 아니라 정치의 완성 단계를 표현한 뜻이다. 『논어』위정편 4장을 간략하게 표현한다면 『서경』홍범구주에 나타난 五用十作인 15의 이치를 연구하여 50의 大衍으로 크게 펼쳐서 마침내 70으로 庚衍하는 것이 곧 ‘從欲以治하야 四方이 風動’하는 단계이며 정치가 실현해야 할 최고의 목표이기도 하다. 이것이 곧 『주역』57번째괘인 重風巽의 단전에서 말한 “隨風이 巽이니 君子 以하야 申命行事하나니라”의 의미이기도 하다. 사방이 바람 움직이듯 일어난다는 것은 『논어』안연편 19장의 내용과도 연결된다.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하여, “만약에 무도한 이를 죽여서 유도한데로 나아가게 하면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그대가 정사를 하는데 어찌 죽임을 쓰려는고. 그대가 선을 하고자 한다면 백성들이 선하리니 군자의 덕은 바람이오, 소인의 덕은 풀이라. 풀 위로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느니라(季康子 問政於孔子曰如殺無道하여 以就有道인댄 如何하니잇고 孔子 對曰子 爲政에 焉用殺이리오 子 欲善이면 而民이 善矣리니 君子之德은 風이오 小人之德은 草라 草上之風이면 必偃하나니라)”고 하였다. 民不犯法하여 而上不用刑者는 舜之所欲也라 汝能使我로 如所願欲以治하여 敎化四達이 如風鼓動하여 莫不靡然하니 是乃汝之美也라 舜又申言하사 以重歎美之시니라 백성들이 법을 범하지 아니하여 위에서 형벌을 쓰지 않는 것은 순이 하고자 하는 바라. 그대가 능히 나로 하여금 하고자 하는 바대로 다스려서 교화가 사방으로 이름이 마치 바람이 고동하여 쏠리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곧 그대의 아름다움이라. 순이 또한 말씀을 펴시어 거듭 탄미하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