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스크랩] 제2권 夏書 제1편 禹貢 79장~83장 해설(雍州)

ria530 2012. 6. 18. 09:58

<禹貢79章>
厥土는 惟黃壤이니
그 토질은 누런 흙이니,

黃者는 土之正色이라 林氏 曰物得其常性者 最貴하니 雍州之土는 黃壤이라 故로 其田이 非他州所及이라

누른 것은 흙의 정색이라. 임씨 가로대 물건이 그 떳떳한 성품을 얻은 것이 가장 귀하니 옹주의 토질은 누런 흙이라. 그러므로 그 밭이 다른 주가 미칠 바가 아니니라.

<禹貢80章>
厥田은 惟上에 上이오 厥賦는 中에 下ㅣ오
그 전세는 상에 상이고, 그 부세는 중에 하이고,

田은 第一等이로되 而賦 第六等者는 地狹而人功少也일새라

전세는 제1등이지만 부세가 제6등인 것은 땅이 좁고 사람의 공이 적기 때문이라.

<禹貢81章>
厥貢은 惟球琳琅玕이로다
그 공물은 구림과 낭간이로다.

琳 푸른 옥 림 琅 옥 이름 랑, 구슬 비슷한 아름다운 돌, 푸른 산호 玕 옥돌 간

球琳은 美玉也요 琅玕은 石之似珠者라 爾雅에 曰西北之美者는 有昆侖虛之球琳琅玕이라하니라 今南海有靑琅玕하니 珊瑚屬也라

구림(球琳)은 아름다운 옥이고, 낭간(琅玕)은 돌이 구슬과 비슷한 것이라. 『이아』에 서북의 아름다운 것은 곤륜허의 구림과 낭간이라 하니라. 이제 남해에 푸른 낭간이 있으니 산호 붙이라.

<禹貢82章>
浮于積石하야 至于龍門西河하야 會于渭汭하나니라
적석에 띄워 용문의 서하에 이르러 위수와 예수에 모이니라.

積石은 地志에 在金城郡河關縣西南羌中이라하니 今鄯州龍支縣界也라 龍門山은 地志에 在馮翊夏陽縣이라하니 今河中府龍門縣也라 西河는 冀之西河也라 雍之貢道有二하니 其東北境은 則自積石至于西河요 其西南境은 則會于渭汭니라 言渭汭하고 不言河者는 蒙梁州之文也일새라 他州貢賦는 亦當不止一道니 發此例하여 以互見耳라 ○按邢恕奏乞컨대 下熙河路하여 打造船五百隻하여 於黃河에 順流放下하여 至會州西小河內藏하여 放熙河路라한대 漕使李復이 奏하기를 竊知邢恕欲用此船하여 載兵順流而下去하여 取興州하니 契勘會州之西小河醎水는 其闊不及一丈이오 深止於一二尺하니 豈能藏船이리잇고 黃河過會州하여 入韋精山이면 石峽嶮窄하여 自上垂流直下에 高數十丈이니 船豈可過리잇고 至西安州之東하여는 大河分爲六七道하여 散流渭之南山하되 逆流數十里라가 方再合하니 逆溜는 水淺灘磧하여 不勝舟載니이다 此聲若出이면 必爲夏國侮笑리이다하니 事遂寢이라 邢恕之策이 如李復之言이면 可謂謬矣라 然이나 此言貢賦之路에 亦曰浮于積石하여 至于龍門西河라하니 則古來此處河道가 固通舟楫矣어늘 而復之言이 乃如此는 何也오 姑錄之하여 以備參考云이라

적석은 『지리지』에 금성군 하관현 서남쪽 강중에 있다하니 지금의 선주 용지현의 경계라. 용문산은 『지리지』에 풍익 하양현에 있다하니 지금의 하중부 용문현이라. 서하는 기주의 서하라. 옹주의 공물 길이 둘이 있으니, 그 동북 지역은 적석으로부터 서하에 이르고, 그 서남 지역은 위수와 예수에서 모이니라. 위수와 예수를 말하고 하수를 말하지 않은 것은 양주의 문장(禹貢 70장)을 받았기 때문이라. 다른 주의 공물과 부세는 또한 당연히 하나의 길에 그치지 아니하니, 이 예를 발하여 서로 나타낸 것이라. ○형서(宋人, 1069年~1077年, 字 和叔. 鄭州陽武, 지금의 河南原陽人, 程顥에게 배우고, 司馬光과 呂公著 등과 交遊하였으며, 王安石의 變法에 반대. 蔡京의 심복이 되어 사마광 사후 사마광을 탄핵하고 『자치통감』을 금서로 두자 程顥는 ‘義理不能勝利慾之心’ 곧 의리가 이욕의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 까닭에 이와같이 되었다고 하였다. 훗날 禪에 심취하였다고 함. 이욕이 강하여 지조가 없는 소인이나 스승의 뜻을 따르지 않고 배역한 패륜아라는 의미로 자주 인용됨. 邢七이라고도 함)가 주청한 것을 살펴보건대 희하로에서 내려가 배 오백척을 만들어서 황하에 물결 따라 내려가도록 하여 회주의 서쪽 소하의 안쪽에 숨겼다가 희하로에 방출하라고 하였는데, 조사(뱃길을 담당하는 관리)인 이복이 아뢰기를, ‘그윽히 알았는데 형서가 이 배를 이용하여 군사를 싣고 물결을 따라 내려가 흥주를 취하려고 하오니, 살펴보건대 회주의 서쪽 소하의 짠물은 그 넓이가 한 길에 못 미치고, 깊이는 한두 척에 그치니 어찌 배를 숨겨놓을 수 있겠습니까? 황하가 회주를 넘어서 위정산에 들어가면 돌산의 골짜기가 험하고 좁아서 위로부터 물결이 곧바로 아래로 떨어짐에 높이가 수십 길이니 배가 어찌 지나갈 수 있겠습니까? 서안주의 동쪽에 이르러서는 대하가 나뉘어 예닐곱 개의 길이 되어 흩어져서 위수의 남산으로 흐르는데, 수십리를 역류하다가 바야흐로 다시 합하니, 역류하는 급류는 물이 얕고, 물속에는 모래가 쌓여, 배로 실어나르는 것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러한 소리가 만약에 나간다면 반드시 하나라에게 모욕과 웃음거리가 됩니다’ 하니, 일이 마침내 그치게 되었음이라. 형서의 계책이 이복의 말과 같다면 가히 잘못이라 할 만하니라. 그러나 이것은 공물과 부세의 길을 말함에 또한 적석에 띄워 용문의 서하에 이른다 하니, 예로부터 이곳 황하의 길이 진실로 배가 통했거늘 이복의 말이 이와 같은 것은 어째서인가. 잠깐 기록하여 참고하도록 대비하는 말이라.

契勘(계감) (어음이나 手票 같은 것을)맞대어 보아 진부(眞否)를 살핌 醎 짤 함, 鹹의 俗字 溜 여울 류, 급류 류 磧 서덜 적, 냇가나 강가의 돌이 많은 곳, 물 속에 모래가 모여서 된 섬, 삼각주

<禹貢83章>
織皮는 崐崙과 析支와 渠搜과홀 西戎이 卽敍하도다
모직과 가죽은 곤륜산과 석지와 거수이며, 서융이 펴져 나아갔도다.

崐崙은 卽河源所出이니 在臨羌이라 析支는 在河關西千餘里라 渠搜는 水經에 曰河自朔方東轉하여 經渠搜縣故城北이라하니 蓋近朔方之地也라 三國이 皆貢皮衣라 故로 以織皮冠之하고 皆西方戎落이라 故로 以西戎總之라 卽은 就也라 雍州水土旣平에 而餘功及於西戎이라 故로 附于末이라 ○蘇氏 曰靑徐揚三州는 皆萊夷淮夷島夷所篚요 此三國은 亦篚織皮어늘 但古語有顚倒詳略爾라 其文은 當在厥貢惟球琳琅玕之下, 浮于積石之上이니 簡編脫誤라 不可不正이라하니라 愚謂梁州亦篚織皮하니 恐蘇氏之說爲然이라

곤륜은 곧 하수의 근원이 나오는 곳이니 임강에 있음이라. 석지는 하관 서쪽 천여 리에 있음이라. 거수는 『수경』에 하수가 북쪽으로부터 동쪽으로 돌아서 거수현 옛 성의 북쪽을 경유한다하니, 대개가 삭방(북쪽)과 가까운 지역이라. 삼국이 다 가죽옷을 바쳤으므로 직피(織皮)로써 앞에 두었고, 모두가 서방의 융족 부락이므로 서융으로써 총괄함이라. 즉(卽)은 나아감이라. 오수의 수토가 이미 평정됨에 나머지 공이 서융에게 미치었으므로 끝에 부침이라. ○소씨 가로대 ‘청주 ․ 서주 ․ 양주의 세 주는 모두 내이와 회이와 도이가 폐백을 바치는 곳이고, 이 세 나라는 또한 모직과 가죽을 폐백으로 바치거늘 다만 옛말에는 전도되고 자세함이 생략됨이 있을 뿐이라. 그 글은 마땅히 ‘厥貢惟球琳琅玕’의 아래와 ‘浮于積石’의 위에 있어야 하니 죽간을 엮을 때에 잘못 빠졌으니 가히 바로잡지 아니할 수 없다’(곧 禹貢 83장의 글은 81장과 82장 사이에 두어야 한다는 뜻)고 함이라. 내가 이르건대 양주 또한 모직과 가죽을 폐백으로 바쳤으니, 아마도 소씨의 설이 그럴 듯하니라.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溫故知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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