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스크랩] 제2권 夏書 제1편 禹貢 71장~78장 해설(雍州)

ria530 2012. 6. 18. 09:59

<禹貢71章>
黑水西河에 惟雍州라
흑수와 서하에 옹주라.

雍州之域은 西據黑水하고 東距西河하니 謂之西河者는 主冀都而言也라

옹주의 지역은 서쪽으로는 흑수에 의거하고, 동쪽으로는 서하에 이르니 서하라고 이른 것은 기주의 도읍지를 주로 하여 말함이라.

<禹貢72章>
弱水ㅣ 旣西하며
약수가 이미 서쪽으로 흐르며,

柳宗元이 曰西海之山에 有水焉하니 散渙無力하여 不能負芥하여 投之則委靡墊沒하여 及底而後止라 故로 名曰弱이라 旣西者는 導之西流也라 地志에 云在張掖郡刪丹縣이라하고 薛氏 曰弱水는 出吐谷渾界窮石山하여 自刪丹西로 至合黎山하여 與張掖縣河合이라하니라 又按通鑑컨대 魏太武가 擊柔然할새 至栗水하여 西行至菟園水하여 分軍收討하고 又循弱水하여 西行至涿邪山이라하니 則弱水는 在菟園水之西와 涿邪山之東矣라 北史에 載太武가 至菟園水하여 分軍搜討하여 東至瀚海하고 西接張掖水하고 北度燕然山이라하니 與通鑑小異라 豈瀚海張掖水가 於弱水에 爲近乎아 程氏가 據西域傳하여 以弱水爲在條支라하여 援引甚悉이라 然이나 長安西行一萬二千二百里하고 又百餘日에 方至條支라 其去雍州가 如此之遠하니 禹豈應窮荒而導其流也哉아 其說非是니라

유원종이 가로대 서해의 산에 물이 있으니 흩어져 힘이 없어서 티끌도 짊어질(띄울) 수 없어서 티끌을 던지면 쓰러져 빠져서 밑바닥에 닿은 뒤에나 그치니라. 그러므로 이름하여 약수라 하니라. 기서(旣西)는 인도하여 서쪽으로 흐름이라. 『지리지』에 이르기를 장액군 산단현에 있다하고, 설씨 가로대 약수는 토곡혼의 경계인 궁석산에서 나와 산단의 서쪽으로부터 합려산에 이르러 장액현의 하수와 더불어 합한다 하니라. 또 『자치통감』을 살펴보건대 위나라 태무(生沒 408-452, 在位 423-452)﹚가 유연을 칠 때에 율수에 이르러 서쪽으로 가서 토원수에 이르러 군사를 나누어 토벌하고, 또 약수를 따라 서쪽으로 가서 탁야산에 이른다 하니, 곧 약수는 토원수의 서쪽과 탁야산의 동쪽에 있음이라. 『북사』(唐의 李延壽가 편찬한 紀傳體의 史書로, 北魏 ․ 西魏 ․ 東魏 ․ 北周 ․ 北齊 ․ 隋 등 南北朝時代 北朝의 여섯 왕조의 역사를 기술한 중국 25史 가운데 하나. 94卷은 列傳으로 高句麗, 百濟, 新羅, 勿吉, 契丹, 流求, 倭 등에 대해 기술하고 있어 한반도와 동아시아 역사의 중요한 史料로도 쓰임)에는 태무가 토원수에 이르러 군사를 나누어 토벌하여 동쪽으로 한해에 이르고, 서쪽으로 장액수에 접하고, 북쪽으로 연연산을 건넜다고 기록하였으니, 『통감』과 더불어 조금 다르니라. 어찌 한해와 장액수가 약수에 가까우랴! 정씨가 『후한서』「서역전」을 근거하여 약수가 조지에 있다고 하여 인용한 것이 매우 자세하니라. 그러나 장안은 서쪽으로 1만 2천 2백리를 가고, 또 백여 일에야 바야흐로 조지에 이르니라. 그 옹주와의 거리가 이와 같이 머니, 우임금이 어찌 궁벽한 변방까지 응하여 그 흐름을 인도하였겠는가! 그 설명이 옳지 않느니라.

墊 빠질 점 涿 방울져 떨어질 탁, 문지를 탁 邪 간사할 사, 여기서는 ‘땅이름 야’ 度 건널 도

<禹貢73章>
涇이 屬渭汭하며
경수가 위수와 예수에 속하며,

涇渭汭는 三水名이라 涇水는 地志에 出安定郡涇陽縣西라하니 今原州百泉縣?頭山也요 東南至馮翊陽陵縣入渭라하니 今永興軍高陵縣也라 渭水는 地志에 出隴西郡首陽縣西南이라하니 今渭州渭源縣鳥鼠山西北南谷山也요 東至京兆船司空縣入河라하니 今華州華陰縣也라 汭水는 地志에 作芮하니 扶豊汧縣弦蒲藪에 芮水出其西北하여 東入涇이라하니 今隴州汧源縣弦蒲藪에 有汭水焉이라 周職方에 雍州其川涇汭라하고 詩에 曰汭鞠之卽이라하니 皆謂是也라 屬은 連屬也니 涇水는 連屬渭汭二水也라

경위예는 세 물의 이름이라. 경수는 『지리지』에 안정군 경양현의 서쪽에서 나온다 하니 지금의 원주 백천현 견두산이고, 동남쪽은 풍익의 양릉현에 이르러 위수로 들어간다 하니 지금의 영흥군 고릉현이라. 위수는 『지리지』에 농서군 수양현의 서남쪽에서 나온다 하니 지금의 위주 위원현 조서산의 서북쪽 남곡산이고, 동쪽은 경조 선사공현에 이르러 하수로 들어간다 하니, 지금의 화주 화음현이라. 예수는 『지리지』에 芮로 지었으니 부풍군 견현 현포수에 예수(芮水)가 그 서북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경수에 들어간다 하니 지금의 농수 견원현 현포수에 예수(汭水)가 있음이라. 『일주서』「직방직」에 옹주는 그 내가 경수와 예수라 하고, 『시경』(大雅 生民之什 제6편 公劉)에 “예수의 물가에 나아가 산다(芮鞫之卽)” 하니 다 이를 이름이라. 속(屬)은 연속이니, 경수는 위수와 예수의 두 물에 이어져 있음이라.

鞠 국문할 국으로 여기서는 ‘鞫’의 의미로 물가의 굽어 들어간 곳을 말함.

<禹貢74章>
漆沮ㅣ 旣從하며
칠수와 저수가 이미 따르며,

漆沮는 二水名이라 漆水는 寰宇記에 自耀州同官縣東北界來하여 經華原縣하여 合沮水라하니라 沮水는 地志에 出北地郡直路縣東이라하니 今坊州宜君縣西北境也라 寰宇記에 沮水自坊州昇平縣北子午嶺出하니 俗號子午水요 下合楡谷慈馬等川하여 遂爲沮水하며 至耀州華原縣하여 合漆水하고 至同州朝邑縣東南하여 入渭라하니라 二水相敵이라 故로 竝言之하니라 旣從者는 從於渭也라 又按地志컨대 謂漆水出扶風縣이라하니 鼂氏 曰此는 豳之漆也라하고 水經에 漆水는 出扶風杜陽縣이라하니 程氏 曰杜陽은 今岐山普潤縣之地라하니 亦漢漆縣之境이라 其水入渭在灃水之上하여 與經序渭水節次로 不合하니 非禹貢之漆水也라

칠저(漆沮)는 두 물 이름이라. 칠수는 『환우기』에 광주 동관현 동북쪽 경계에서부터 와서 화원현을 경유하여 저수와 합하다 하니라. 저수는 『지리지』에 북지군 직로현 동쪽에서 나온다 하니, 지금의 방주 의군현 서북쪽 경계라. 『환우기』에 저수는 방주 승평현 북쪽 자오령에서부터 나오니 속칭 자오수라 하고, 아래로 유곡과 자마 등의 내와 합하여 마침내 저수가 되며, 요주 화원현에 이르러 칠수와 합하고, 동주 조읍현의 동남쪽에 이르러 위수에 들어간다 하니라. 두 물은 서로 대등하므로 아울러서 말함이라. 이미 따른다는 것은 위수를 따름이라. 또한 『지리지』를 살펴보건대 칠수는 부풍현에서 나온다 하니 조씨 가로대 이것은 빈땅의 칠수라 하고, 『수경』에 칠수는 부풍 두양현에서 나온다 하니, 조씨 가로대 두양은 지금의 기산 보윤현의 땅이라 하니, 또한 한나라 때의 칠현의 경계라. 그 물이 위수로 들어가는 것은 풍수의 위에 있어서 경문에 위수의 절차[經過]를 차례한 것과는 합하지 아니하니 우공의 칠수가 아니니라.

<禹貢75章>
灃水攸同이로다
풍수가 함께 하는 바이로다.

灃水는 地志에 作酆하니 出扶風鄠縣終南山하니 今永興軍鄠縣山也라 東至咸陽縣入渭라 同者는 同於渭也라 渭水는 自鳥鼠而東灃水는 南注之하고 涇水는 北注之하며 漆沮는 東北注之하니 曰屬曰從曰同은 皆主渭而言也라

풍수는 『지리지』에 酆으로 지었으니, 부풍 호현의 종남산에서 나오니, 지금의 영흥군 호현산이라. 동쪽은 함양현에 이르러 위수로 들어감이라. 동(同)은 위수와 함께 함이라. 위수는 조서산으로부터 하고 동쪽의 풍수는 남쪽으로 물대고, 경수는 북쪽으로 물대며, 칠수와 저수는 동북쪽으로 물대니, 속한다 하고, 따른다 하고, 함께한다고 하는 것은 다 위수를 주로 하여 말함이라.

<禹貢76章>
荊岐에 旣旅하시고 終南惇物로 至于鳥鼠하시며
형산과 기산에 이미 제사를 지내시고, 종남산과 돈물산으로부터 조서산에 이르시며,

荊岐는 二山名이라 荊山은 卽北條之荊이라 地志에 在馮翊懷德縣南이라하니 今耀州富平縣掘陵原也라 岐山은 地志에 在扶風美陽縣西北이라하니 今鳳翔府岐山縣東北十里也라 終南惇物鳥鼠는 亦皆山名이라 終南은 地志에 古文은 以太一山爲終南山하니 在扶風武功縣이라하니 今永興軍萬年縣南五十里也라 惇物은 地志에 古文은 以垂山爲惇物하니 在扶風武功縣하니 今永興軍武功縣也라 鳥鼠는 地志에 在隴西郡首陽縣西南이라하니 今渭州渭源縣西也니 俗呼爲靑雀山이라 擧三山而不言所治者는 蒙上旣旅之文也일새라

형기(荊岐)는 두 산의 이름이라. 형산은 곧 북조의 형산이라. 『지리지』에 풍익 회덕현 남쪽에 있다하니 지금의 요주 부평현 굴릉원이라. 기산은 『지리지』에 부풍 미양현의 서북쪽에 있다하니, 지금의 봉상부 기산현 동북쪽 십 리라. 종남과 돈물과 조서는 또한 다 산 이름이라. 종남은 『지리지』에 고문에서는 태일산으로써 종남산이 되니 부풍 무공현에 있다하니 지금의 영흥군 만년현 남쪽 오십 리라. 돈물은 『지리지』에 고문에서는 수산으로써 돈물이 되니 부풍 무공현에 있다하니, 지금의 영흥군 무공현이라. 조서는 『지리지』에 농서군 수양현 서남쪽에 있다하니 지금의 위주 위원현 서쪽이니 속칭 청작산이 됨이라. 세 산을 들면서 다스린 바를 말하지 않은 것은 위에서 이미 산제사의 글을 받았기 때문이라(禹貢 65장).

<禹貢77章>
原隰에 底績하사 至于豬野하시다
평원과 습지에 공적을 이루시어 저야에 이르시다.

廣平曰原이오 下濕曰隰이니 詩曰度其隰原이 卽指此也라 鄭氏 曰其地在豳이라하니 今邠州也라 豬野는 地志에 云武威縣東北有休屠澤하니 古今에 以爲豬野라하니 今凉州姑臧縣也라 治水成功은 自高而下라 故로 先言山하고 次原隰하고 次陂澤也라

넓고 평평함을 원(原)이라 하고, 아래로 습한 것을 습(隰)이라 하니 『시경』(大雅 生民之什 제6편 公劉章)에 가로대 탁기습원(度其隰原, 그 습지와 평원을 헤아린다)이 곧 이것을 가리킴이라. 정씨 가로대 그 지역이 빈(豳)땅에 있다하니, 지금의 빈주(邠州)라. 저야는 『지리지』에 무위현 동북쪽에 휴도택이 있으니, 고문에서는 저야라 하니, 지금의 양주 고장현이라. 물을 다스려 공을 이룸은 높은 곳으로부터 내려오므로 먼저 산을 말하고, 다음으로는 평원과 습지를 말하고, 다음으로는 방죽과 못이라.

<禹貢78章>
三危ㅣ 旣宅하니 三苗ㅣ 丕敍하도다
삼위가 이미 자리를 잡으니 삼묘가 크게 펴졌도다.

三危는 卽舜竄三苗之地니 或以爲燉煌이라하니 未詳其地라 三苗之竄은 在洪水未平之前이러니 及是三危已旣可居하니 三苗於是大有功舒라 今按舜竄三苗컨대 以其惡之尤甚者遷之하고 而立其次者於舊都러니 今旣竄者는 已丕舒로되 而居於舊都者는 尙桀驁不服이라 蓋三苗舊都는 山川險阻하니 氣習使然이라 今湖南猺洞에 時猶竊發하여 俘而詢之하면 多爲猫姓하니 豈其遺種歟아

삼위는 곧 순임금이 삼묘를 귀양 보낸 땅이니(舜典 12章 참조) 혹자는 돈황이 된다 하니 그 지역이 자세하지 못하니라. 삼묘의 귀양은 홍수가 평정되기 전의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삼위에 이미 거처할 수 있으니 삼묘가 이에 크게 공을 폄이 있음이라. 이제 순임금이 삼묘를 귀양 보낸 것을 살펴보건대 그 악함이 더욱 심한 자는 옮겨가게 하고, 그 다음인 자는 옛 도읍지에 세웠더니, 이제 이미 귀양 보낸 자는 이미 크게 펴졌으나 옛 도읍지에 거처하는 자는 오히려 사나워져 복종하지 않으니라. 대개 삼묘의 옛 도읍지는 산천이 험조하니, 풍기와 습성이 그렇게 됨이라. 이제 호남의 요동에 때로 지금도 역시 도둑이 일어나서 사로잡아 물어보면 대부분 묘성이라 하니 어찌 그 유종인가!

猺 개 이름 요, 兩廣 湖南 雲南 지역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함 俘 사로잡을 부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溫故知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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