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스크랩] 제3권 商書 제14편 說命下(열명하) 1장~5장 해설

ria530 2012. 6. 19. 10:06

第三卷 商書

第十四篇 說命下


<說命下1章>
王曰來汝說아 台小子ㅣ 舊學于甘盤하더니 旣乃遯于荒野하며 入宅于河하며 自河徂亳하야 曁厥終하야 罔顯호라
왕이 가라사대, 오너라, 그대 열이여! 나 소자는 옛날에 감반에게 배웠다가 이윽고 황야로 물러갔으며, 하수에 들어가 살며, 하수에서 박으로 가서 그 끝내 밝아지지 못하였노라.

甘盤은 臣名이니 君奭에 言在武丁時則有若甘盤이라 遯은 退也라 高宗 言我小子舊學於甘盤이러니 已而退于荒野하고 後又入居于河하며 自河徂亳하여 遷徙不常이라하여 歷敍其廢學之因하고 而歎其學終無所顯明也라 無逸에 言高宗이 舊勞于外하여 爰曁小人이라하니 與此相應이라 國語에 亦謂武丁이 入于河하고 自河徂亳이라하고 唐孔氏曰高宗이 爲王子時에 其父小乙이 欲其知民之艱苦라 故로 使居民間也라하니라 蘇氏謂甘盤이 遯于荒野는 以台小子語脈으로 推之컨대 非是니라

감반(甘盤)은 신하의 이름이니 (「周書」) 군상편에 말하기를, 무정 때에 감반과 같은 이가 있었다 하니라. 둔(遯)은 물러감이라. 고종이 말하기를 나 소자가 옛날에 감반에게서 배웠는데 그만두고 황야로 물러가고 뒤에 또 하수로 들어가 거처했으며 하수로부터 박으로 가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일정하지 않았다고 하여 그 배움을 폐한 원인을 차례대로 서술하고 그 배움이 끝내 밝게 드러난 바가 없음을 탄식함이라. (「周書」) 무일편에 말하기를, 고종이 옛날에 바깥에서 일하여 이에 소인들과 함께 했다하니, 이와 더불어 서로 응하니라. 『국어』 (楚語上편)에 또한 무정이 하수로 들어가고 하수로부터 박으로 갔다하고, 당나라 공씨는 고종이 왕자일 때에 그 아버지인 소을이 그 백성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알게 하고자 하였으므로 민간에서 거처하게 하였다 하니라. 소씨가 이르기를 감반이 황야에 은둔했다는 것은 ‘나 소자’라는 어맥으로써 미루건대 옳지 않느니라.

<說命下2章>
爾惟訓于朕志하야 若作酒醴어든 爾惟麴糵이며 若作和羹이어든 爾惟鹽梅라 爾交脩予하야 罔予棄하라 予惟克邁乃訓호리라
그대가 나의 뜻을 가르쳐 만약 술과 단술을 만들거든 그대는 누룩과 엿기름이며, 만약 맛좋은 고깃국을 만들거든 그대는 소금에 절인 매실이라. 그대는 오고가며 나를 닦아서 나를 버리지 말라. 내 능히 그대의 가르침을 행하리라.

麴 누룩 국 糵 누룩 얼, 싹틀 얼

[참조] 鹽梅(염매)
鹽梅는 익어서 떨어질 무렵의 매실(황매)을 소금에 절여 두었다가 설사나 곽란 등이 일어났을 때 먹거나 위의 내용처럼 국의 간을 맞출 때 썼던 것으로 보인다. 위의 내용에 의거해 鹽梅는 음식의 간을 알맞게 맞춘다는 뜻으로 쓰이거나 신하가 임금을 도와서 정사를 바르게 하도록 했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흔히 청매의 신맛을 생각해 청매의 신맛과 소금의 짠맛이 어우러져 국의 간을 맞춘다고 해석하나 이는 여름철의 오이냉국이 아닌 이상 일반 고깃국에 쓰기는 어렵다. 鹽梅에 쓰이는 매실은 청매가 아닌 노랗게 익은 매실로 신맛보다 단맛이 강하므로, 신맛이 도는 단맛의 황매에 소금을 넣어 절여둔 염매를 국에 넣어 오행의 맛을 조화롭게 하여 맛좋게 하였다는 뜻이다.
위에서 맛좋은 국이라는 和羹의 羹은 고깃국을 말한다. 『爾雅』釋器편에서 肉謂之羹이라 하여 註에서는 고깃국(肉臛也)이라 하였고, 疏에서는 고기로 만든 고깃국을 갱이라(肉之所作臛名羹)라고 하였다. 흔히 채소가 있는 국을 갱(羹)이라 하고, 채소가 없는 고깃국을 학(臛)이라 하는데, 羹의 글자를 보면 옛날에는 염소(羔)나 큰 양(美, 大羊)을 잡아서 국을 끓여 먹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鹽梅는 고깃국의 누린 맛을 없애면서 동시에 간을 맞추기 위해 넣은 것인데, 오행상 누런색이면서 달고 시고 짠맛의 鹽梅는 土木水에 해당하고 염소(羔, 염소는 잡은 뒤 털을 불에 그으려 태우기에 탄내가 많음)는 火, 羊은 金에 속하므로 염매를 넣어 간을 맞춘 和羹이란 오행의 맛과 기운이 두루 조화를 이룬 맛좋은 고깃국을 말함을 알 수 있다.

心之所之를 謂之志라 邁는 行也라 范氏曰酒非麴糵이면 不成이오 羹非鹽梅면 不和며 人君이 雖有美質이나 必得賢人輔導라야 乃能成德이라 作酒者는 麴多則太苦하고 糵多則太甘하니 麴糵得中然後에 成酒하며 作羹者는 鹽過則鹹하고 梅過則酸하니 鹽梅得中然後에 成羹이라 臣之於君에 當以柔濟剛하고 可濟否하여 左右規正하여 以成其德이라 故로 曰爾交脩予하여 爾無我棄하라 我能行爾之言也라하니라 孔氏曰交者는 非一之義라

마음이 가는 바를 지(志)라 하니라. 매(邁)는 행함이라. 범씨 가로대 술은 누룩과 엿기름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고, 국은 소금에 절인 매실이 아니면 화하지 못하며, 임금이 비록 아름다운 바탕이 있으나 반드시 현인의 도움과 인도를 얻어야 이에 덕을 이룰 수 있음이라. 술을 빚는 자는 누룩이 많으면 매우 쓰고, 엿기름이 많으면 매우 다니 누룩과 엿기름이 중을 얻은 뒤에야 술이 빚어지며, 국을 끓이는 자는 소금이 많으면 짜고, 매실이 많으면 시니 소금과 매실이 중을 얻은 뒤에야 국이 되니라. 신하는 임금에게 마땅히 부드러움으로써 강함을 구제하고 가함으로써 비색함을 구제하여 좌우에서 돕고 바로잡아 그 덕을 이루게 함이라. 그러므로 그대가 오고가며 나를 닦아서 그대가 나를 버림이 없도록 하라. 내 능히 그대의 말을 행한다 하니라. 공씨 가로대 교(交)라는 것은 한번이 아니라는 뜻이라.

<說命下3章>
說曰王아 人을 求多聞은 時惟建事ㅣ니 學于古訓하야사 乃有獲하리니 事不師古하고 以克永世는 匪說의 攸聞이로소이다
부열이 가로대 임금이시여, 사람을 들음이 많은 이를 구함은 이에 일을 세우려 함이니 옛 가르침을 배워야 얻음이 있으리니, 일을 옛 것을 본받지 아니하고 능히 세대를 영구히 한 이는 열이 들은 바가 아니로소이다.

求多聞者는 資之人이오 學古訓者는 反之己라 古訓者는 古先聖王之訓으로 載脩身治天下之道니 二典三謨之類가 是也라 說이 稱王而告之曰人求多聞者는 是惟立事라 然이나 必學古訓하여 深識義理然後에 有得이니 不師古訓하고 而能長治久安者는 非說所聞이라하니 甚言無此理也라 ○林氏曰傅說이 稱王而告之는 與禹稱舜曰帝光天之下로 文勢正同하니라

많이 들은 이를 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 힘입음이고, 옛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자신에게 돌이킴이라. 옛 가르침이라는 것은 옛날의 앞선 성왕의 가르침으로 몸을 닦고 천하를 다스리는 도를 기록한 것이니 2전(堯典, 舜典)과 3모(大禹謨, 皐陶謨, 益稷)가 이것이라. 부열이 왕을 부르면서 고하여 가로대 사람이 들음이 많은 이를 구하는 것은 이에 일을 세우는 것이라. 그러나 반드시 옛 가르침을 배워서 깊이 의리를 안 뒤에야 얻음이 있으니, 옛 가르침을 본받지 아니하고 능히 오래도록 다스리고 길이 편안한 자는 열이 들은 바가 아니라고 하니 이러한 이치가 없음을 심히 말함이라. ○임씨 가로대 부열이 왕을 부르면서 알려준 것은 우가 순을 일컬으면서 가로대 ‘임금께서 하늘 아래에 빛나시어(益稷7장)’와 더불어 문세가 바로 같으니라.

<說命下4章>
惟學은 遜志니 務時敏하면 厥脩ㅣ 乃來하리니 允懷于玆하면 道積于厥躬하리이다
배움은 뜻을 겸손히 할지니 힘써서 때로 민첩하게 하면 그 닦음이 오리니 미덥게 하여 이를 생각하면 도가 그 몸에 쌓이리이다.

遜은 謙抑也요 務는 專力也요 時敏者는 無時而不敏也라 遜其志하여 如有所不能하고 敏於學하여 如有所不及하여 虛以受人하고 勤以勵己면 則其所脩如泉始達하여 源源乎其來矣리라 玆는 此也니 篤信而深念乎此하면 則道積於身하여 不可以一二計矣라 夫脩之來하고 來之積하여 其學之得於己者如此니라

손(遜)은 겸손히 굽힘이고, 무(務)은 온전히 힘씀이고, 때로 민첩하다는 것은 때로 민첩하지 않음이 없음이라. 그 뜻을 겸손히 하여 마치 능치 못한 바가 있는 것처럼 하고, 배움에 민첩하여 마치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처럼(『논어』태백편 제17장, “子曰學如不及, 猶恐失之”)하여 비움으로써 사람을 받아들이고(『주역』澤山咸卦, “象曰山上有澤, 咸, 君子, 以虛受人”) 부지런함으로써 스스로를 힘쓴다면 그 닦는 바가 마치 샘이 비로소 나와서 그 옴에 끊임이 없으리라(『맹자』만장상편 제3장 “源源而來”). 자(玆)는 이것이니 돈독히 믿으면서 이를 깊이 생각하면 도가 몸에 쌓여 한두 가지로 계산할 수 없음이라. 무릇 닦음이 오고 옴이 쌓여 그 배움을 몸에 얻어짐이 이와 같으니라.

<說命下5章>
惟斅는 學半이니 念終始를 典于學하면 厥德脩를 罔覺하리이다
가르침은 배움의 반이니 생각의 마치고 시작함을 배움에서 법 삼는다면 그 덕이 닦여짐을 깨닫지 못하리이다(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덕이 닦여지리이다).

[참조]敎學相長(교학상장)
“惟斅는 學半”을 『예기』에서 學記편에서 敎學相長의 관계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雖有嘉肴나 弗食이면 不知其旨也요 雖有至道나 弗學이면 不知其善也라 故로 學然後에 知不足하고 敎然後에 知困하니 知不足然後에야 能自反也하고 知困然後에야 能自強也이라 故로 曰敎學相長也라

비록 맛있는 안주가 있으나, 먹지 아니하고는 그 맛을 알지 못하고, 비록 지극한 도가 있으나 배우지 아니하면 그 선을 알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배운 뒤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뒤에 곤함을 아니, 부족함을 안 뒤에야 능히 스스로 돌이킬 수 있고, 곤함을 안 뒤에야 능히 스스로 강해지니라. 그러므로 가르침과 배움은 서로를 자라게 하니라.

斅는 敎也니 言敎人은 居學之半이라 蓋道積厥躬者는 體之立이오 斅學于人者는 用之行이니 兼體用合內外而後에 聖學可全也니라 始之自學도 學也오 終之敎人도 亦學也니 一念終始를 常在於學하여 無少間斷이면 則德之所脩有不知其然而然者矣리라 或曰受敎亦曰斅니 斅於爲學之道에 半之요 半須自得이라하니 此說은 極爲新巧로되 但古人論學에 語皆平正的實하며 此章句數非一不應中間一語한대 獨爾巧險하니 此는 蓋後世釋敎機權而誤以論聖賢之學也라
효(斅)는 가르침이니 사람을 가르침은 배움의 반을 차지함이라. 대개 도가 그 몸에 쌓인다는 것은 체의 섬이고, 배운 것을 남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용의 행함이니, 체용을 겸하고 내외에 합한 뒤에 성학이 가히 온전하니라. 처음에 스스로 배움도 배움이고, 마침내 남을 가르침도 배움이니, 한 가지 생각의 종시를 항상 배움에 두어 조금이라도 사이에 끊어짐이 없다면 덕의 닦여지는 바가 그런 줄을 알지 못하면서 그러해짐이 있으리라. 어떤 이는 말하기를 가르침을 받는 것을 또한 효(斅)라 하니, 가르침을 받는 것은 배움의 도에서 반이 되고, (나머지) 반은 모름지기 스스로 얻음이라 하니, 이 말은 지극히 새롭고 공교하되, 다만 옛 사람이 배움을 논함에 말이 다 평이하고 바르면서도 분명하고 실제가 있으며, 이 장의 구절이 하나라도 중간의 한 마디 말과 응하지 않음이 없음을 헤아릴 수 있는데, 유독 공교롭고 험하니, 이는 대개 후세에 가르침을 기교와 방편으로 해석하고 잘못 성현의 학문을 논했기 때문이라.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法故創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