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篇 金縢 武王有疾하시니 周公이 以王室未安하고 殷民未服하여 根本易搖라 故로 請命三王하여 欲以身代武王之死어시늘 史錄其冊祝之文하고 幷敍其事之始末하여 合爲一篇이라 以其藏於金縢之匱일새 編書者가 因以金縢名篇이라 今文古文皆有하니라 ○唐孔氏曰發首로 至王季文王은 史敍將告神之事也요 史乃冊祝으로 至屛壁與珪는 記告神之辭요 自乃卜으로 至乃瘳는 記卜吉及王病瘳之事也요 自武王旣喪已下는 記周公流言居東하고 及成王迎歸之事也라 무왕이 병이 있으시니 주공이 이로써 왕실이 편안하지 못하고 은나라 백성들이 복종하지 아니하여 근본이 쉽게 흔들릴 것이라고 여겼으므로 세 왕에게 명을 청하여 자신으로써 무왕의 죽음을 대신하고자 하였거늘 사관이 주문을 적은 책을 기록하고 아울러 그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술하여 합해서 한 편으로 지었음이라. 쇠줄로 묶은 궤에 보관하였기 때문에 글을 편찬한 자가 금등으로 편을 이름하였음이라. 금문과 고문에 다 있느니라. ○당나라 공씨가 가로대 머리장부터 왕계문왕(4장)까지는 사관이 장차 신에게 고하려는 일을 기록했고, 사관이 이에 史乃冊祝(5장)부터 屛壁與珪(8장)까지는 신에게 고한 말을 기록하였고, 乃卜(9장)부터 乃瘳(11장)까지는 점괘의 길함과 왕의 병이 나은 일을 기록하였고, 武王旣喪으로부터 이하는 주공이 유언으로 동쪽에 거하고 성왕이 맞이해 돌아온 일에 이르기까지를 기록했음이라.
縢 봉할 등, 묶을 등, 끈 등
<金縢1章> 旣克商二年에 王이 有疾하사 弗豫하시다 이미 상나라를 이긴 지 2년에 왕이 병이 있으시어 기뻐하지 못하시다. 記年은 見其克商之未久也라 弗豫는 不悅豫也라 해를 기록함은 상나라를 이긴 것이 오래지 않았음을 나타냄이라. 불예(弗豫)는 기쁘지 않음이라.
<金縢2章> 二公曰我其爲王하야 穆卜호리라 두 공이 말하기를 우리가 그 왕을 위하여 공경히 점을 치리라. 二公은 太公召公也라 李氏曰 穆者는 敬而有和意니 穆卜은 猶言共卜也라 愚謂古者에 國有大事하여 卜則公卿百執事가 皆在誠一而和同하여 以聽卜筮라 故로 名其卜曰穆卜이니 下文에 成王이 因風雷之變하여 王與大夫盡弁하고 啓金縢之書以卜者是也라 先儒專以穆爲敬이라하니 而於所謂其勿穆卜에 則義不通矣라 이공(二公)은 태공과 소공이라. 이씨 가로대 목(穆)은 공경스러우면서도 화하는 뜻이 있으니 목복(穆卜)은 함께(공경히) 점을 친다는 말과 같음이라. 내가 보기에 옛날에 나라가 대사가 있어서 점을 치면 공경과 모든 집사가 다 진실로 한결같이 조화롭게 함께 하여 거북점과 시초점을 들었음이라. 그러므로 그 점을 이름하여 목복이라 했으니, 아래 문장에 성왕이 바람과 우레의 변고로 인하여 왕과 대부가 다 고깔을 쓰고 금등의 글을 열고서 점쳤다는 것이 이것이라. 선유들은 오로지 목(穆)을 공경이 된다고 했으니, 이른바 목복을 하지 말라는 것과는 곧 뜻이 통하지 않느니라.
<金縢3章> 周公曰未可以戚我先王이라하시고 주공이 가로되 가히 우리 선왕을 걱정스럽게 하지 말라 하시고, 戚은 憂惱之意라 未可以武王之疾로 而憂惱我先王也니 蓋卻二公之卜이라 척(戚)은 근심하고 번뇌하는 뜻이라. 무왕의 병으로써 가히 우리 선왕을 걱정스럽게 하지 말라는 것이니 대개 두 공이 점치는 것을 물리침이라.
<金縢4章> 公이 乃自以爲功하사 爲三壇호대 同墠하고 爲壇於南方호대 北面하고 周公立焉하사 植璧秉珪하사 乃告太王王季文王하시다 공이 이에 스스로 일로 삼으시어 세 단을 만들되 터를 같이 하고 남방에 단을 만들되 북면하고 주공이 서서 벽(둥근 옥)을 놓고 규(홀)을 잡으시고 태왕과 왕계와 문왕에게 고하셨다. 功은 事也라 築土曰壇이오 除地曰墠이라 三壇은 三王之位니 皆南向하고 三壇之南에 別爲一壇하되 北向하니 周公所立之地也라 植는 置也라 圭璧은 所以禮神이니 詩言圭璧旣卒이라하고 周禮에 祼圭以祀先王이라하니라 周公이 卻二公之卜하고 而乃自以爲功者는 蓋二公不過卜武王之安否爾니 而周公이 愛兄之切하고 危國之至하여 忠誠懇懇於祖父之前이 如下文所云者有不得盡焉하니 此其所以自以爲功也라 又二公穆卜이면 則必禱於宗廟하여 用朝廷卜筮之禮하리니 如此則上下喧騰하여 而人心搖動이라 故로 周公不於宗廟하고 而特爲壇墠하여 以自禱也라 공(功)은 일이라. 흙을 쌓는 것을 단(壇)이라 이르고, 땅을 소제하는 것을 선(墠)이라 하니라. 세 단은 세 왕의 자리이니 다 남쪽을 향하고, 세 단의 남쪽에 별도로 한 단을 만들되, 북쪽을 향하니 주공이 서는 곳의 자리라. 치(植)는 둠이라. 규(圭=珪)와 벽은 신에게 예를 드리는 바이니 『시경』 (大雅 蕩之什 제4편 雲漢)에 “규벽을 이미 다 올렸다” 하고, 『주례』에 “강신함에 규로써 하고 선왕에게 제사를 지냈다” 하니라. 주공이 두 공의 점을 물리치고 이에 스스로 일로 삼은 것은 대개 두 공이 무왕의 안부를 점치는 데에 불과할 뿐이니, 주공이 형을 사랑함이 간절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여김이 지극하여 조부의 앞에서 충성되고 간절함이 아래 문장에서 이른 바와 같이 다하지 못함이 있으니, 이것이 그 스스로 일로 삼은 까닭이라. 또한 두 공이 공경히 점치면 반드시 종묘에 기도하여 조정의 복서의 예를 쓰리니 이와 같이 한다면 상하가 떠들썩하여 인심이 동요되므로 주공이 종묘에서 하지 않고, 특별이 단을 세우고 터를 닦아서 스스로 기도한 까닭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