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주 명언 : 건강한 사회의 진정한 정의를 상기해 봅니다.◈ [금주 명언] - 有義者는 不可欺以利요, 有勇者는 不可劫以懼니라.◆ [독음] - 유의자 불가기이리, 유용자 불가겁이구.◆ [한자] - 있을 유/ 옳을 의/ 놈 자/ 아니 불/ 가할 가/ 속일 기/ 써 이/ 이익 리// 있을 유/ 용감할 용/ 놈 자/ 아니 불/ 가할 가/ 겁낼 겁/ 써 이/ 두려울 구▶ [출전] - 『회남자(淮南子)』<무칭훈(繆稱訓)> ◈ [해석] - 의를 지닌 사람은 이득으로 속일 수 없고, 용기가 있는 사람은 두려움으로 겁을 줄 수 없다.. ▶ [어구풀이] ☞ 不可欺以利(불가기이리) : 이익으로 속일 수 없다는 뜻으로, 개인의 영달을 위한 아무리 커다란 이권(利權)으로도 참된 진리의 가치인 정의(正義)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의미.☞ 不可劫以懼(불가겁이구) : 두려움으로 위협할 수 없다는 뜻으로, 아무리 강한 강압과 고통을 동반하더라도 참된 용기를 꺽을 수 없다는 의미▣ [해설] - 우리가 목도(目睹)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들은 아름답고 건강한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세상이 있기에 그래도 밝은 희망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만연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병폐들을 접하면 진정 우리가 추구하는 건강한 사회의 건전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제에 대해 더욱 많은 노력과 확산이 필요하지 않는가 합니다.우리는 교과서적으로 정의 내리고 내세우는 정의의 이름과 생활 속에서 왜곡되어 저급(低級)하게 부딪히는 실상이 너무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다 그런거지 뭐!', '똑바로만 살 수 있냐?', '적당히 해.' 등 우리가 생활에서 접하는 일상의 언어들 속에서도 바른 가치를 바탕으로 한 정의가 올바로 정립된 사회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가치 지향적인 표현들이라 볼 수 없는 말들을 많이 접하고 있는 것입니다.어느 시대, 어느 계층이나 그 구조의 저변에 공고하게 다져져 있어야 하는 최소한의 가치가 존재해야 합니다. 곧 사회의 건강함을 바로 재는 척도가 되는 것이 사회 구성원의 바탕에 내재된 기본적인 정의(正義)의 가치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쉽게만, 너무 빨리만, 너무 자기만을 위하는 그런 세상, 그런 사회라면 반드시 정의가 승리한다는 진리마저도 왜곡된 모습으로 그 줄기가 뻗어나갈 것입니다. 함께 나눌 수 있고, 서로를 배려해 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넘치는 그런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운 세상일 것입니다. 소수의 권력과 부만을 추종하는 특별한 계층이 이 사회의 주류고 보수라 자처하면서 자신들이 이 사회, 이 국가를 이끌어간다는 왜곡된 가치에 당당하게 맞서 깨뜨리고 모두가 함께 나누고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그런 용기를 지닌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참된 용기를 지닌 아름다운 사람일 것입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함께 단련되어 그러한 연마 끝에 얻어진 복이 오래가는 것이고, 의심과 믿음이 서로 교착되어 그러한 각고 끝에 얻어진 지식이라야 진실한 것이 된다."[ " 一苦一樂 相磨練 練極而成福者 其福是久, 一疑一信 相參勘 勘極而成知者 其知是眞." 『菜根譚』]그렇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아름다운 세상은 건강한 사회의 건전한 가치관으로 단련된 아름다운 사람들이 서로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세상일 것입니다. 함께 참된 정의와 용기가 넘치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감사합니다.
92주 명언 : 진정한 자기 성찰의 과정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참여의 길입니다..◈ [금주 명언] - 知人者는 智요, 自知者는 明이니라.◆ [독음] - 지인자 지, 자지자 명.◆ [한자] - 알 지/ 사람 인/ 놈 자/ 지혜 지// 스스로 자/ 알 지/ 놈 자/ 밝을 명▶ [출전] - 『노자(老子)』<33장> ◈ [해석] -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명철하다.. ▶ [어구풀이] ☞ 知人者 智(지인자 지) :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다는 뜻으로, 일반적인 세속의 정의로도 남을 잘 아는 것은 세상을 잘 살아가는 지혜의 척도로 고금(古今)을 막론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노자는 남을 잘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잘 아는 것이 더 중하다는 점을 계속해서 역설하고 있습니다.☞ 自知者 明(자지자 명) : 자신을 아는 사람은 명철하다는 뜻으로, 진리의 세계에 도달하는 첩경은 진정으로 자신을 알고 자신을 이기는 길이라는 세속적의 상식을 뛰어넘는 노자 사상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명구(名句)입니다.▣ [해설] -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한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격언이 단지 결과론적 완성 논리로만 적용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단상은 사람들의 처세의 가치가 일의 진행 과정에 대한 논의와 절차를 도외시하고 무조건 결과만을 추종하는 왜곡된 사회 모순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노자(老子)는 이렇게 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이지만, 나를 이기는 사람은 진정한 강자다. 자기 분수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자이고, 힘써 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뜻을 이룬다.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知足者富 强行者有志]"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실된 삶의 자세로 다양한 가치체계를 설정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속적인 가치만이 넘치는 세상은 너무도 각박하고 아름답지 못한 세상일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내일의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삶의 가치가 단순히 남을 이기는 방법만이 아니라 자신을 이길 수 있는 그런 무욕의 가치가 자신이 타인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만드는 시발점이 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아울러 천착하지 말아야 할 것은 노장(老莊)이 말하는 진리는 모든 것을 초월하고 극복한 것이기에 모두가 허무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으로 인식해서는 진정한 가치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강한 실천적 자세가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자신을 깊이 관찰하고 내면적인 구도(求道)의 길을 찾는 것이 곧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참된 가치의 실천적 자세일 것이고, 그것이 결국 노장이 갈파했던 참된 무위자연의 도에 돌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합니다.현대 사회의 병폐들을 치유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금주의 명언을 통해서 제시하고 합니다.자신에 대한 성찰의 과정을 끊임없는 사회 개혁과 참된 가치 전도의 실천적 방법으로 옮겨나가야 한다는 것을 제시합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더 아름답게 여기고 나눌 수 있는 그런 사회 그런 세상의 가치가 넘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감사합니다.
93주 명언 : 겸손과 아량과 포용과 사랑을 말합니다..◈ [금주 명언] - 泰山은 不讓土壤하고, 河海는 不擇細流니라.◆ [독음] - 태산 불양토양, 하해 불택세류.◆ [한자] - 클 태/ 산 산/ 아니 불/ 사양할 양/ 흙 토 / 흙 양// 물 하/ 바다 해/ 아니 불/ 가릴 택/ 가늘 세/ 흐를 류▶ [출전] - 『十八史略(십팔사략)』,『戰國策(전국책)』, 『古文眞寶(고문진보)』등◈ [해석] -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가는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 [어구풀이] ☞ 泰山 不讓土壤(태산 불양토양) : 태산은 흙덩이를 사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최고의 태산이라 하더라도 작은 한 줌의 흙들이 모두 모여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도량이 넓은 사람이라야 모두를 포용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河海 不擇細流(하해 불택세류) : 강과 바다는 가늘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강과 바다가 큰 물줄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작은 시냇물들이 모이고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듯이, 역시 넓고 큰마음과 사고를 가진 사람은 모두를 포용하고 아우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해설] -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비춰보면 흔히들 타인에 대한 배려도 인색한 것이 우리 사회인데, 모두를 포용하고 수렴해서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사람이 넓은 아량으로 포용하는 모습을 접하면 다시금 반성과 함께 그 아름다운 사랑과 아량은 받는 것이 아닌 내가 타인에가 베풀 때 그 가치를 배가시킬 수 있다는 점을 되새기도 됩니다.여러 고전에 등장하는 금주의 명언은 시대와 철학과 이념을 넘어 모두에게 수용되고 적용되어 다시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구절 속에 내포된 아량과 포용의 가치가 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전 속에서도 속담으로 인용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무수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아름다운 가치를 되새기고 실천할 수 있는 그런 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인색하고 이기적이기만 하지만, 그러한 우리 사회의 인간 군상들에게 타인에 대한 사랑의 위대한 힘은 시공을 초월한 불변의 진리이자, 가치라는 것을 일깨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타인의 잘못을 미워할 줄 알 때 정의(正義)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맹자(孟子)의 말이 아니더라도 불의(不義)를 불의라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가 우리 모두의 언행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건강한 사회의 모습을 보았으면 합니다.모두가 실천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이것을 말입니다."복(福)이란 청렴하고 검소한 데서 생겨나고, 덕이란 자신을 낮추고 물러설 줄 아는 데서 생겨난다. " [ 福生於淸儉 德生於卑退. 『韓非子』]감사합니다.
94주 명언 : 정의로운 사회 가치는 자신의 反省과 日新하는 작은 실천 자세로부터...◈ [금주 명언] - 以勢交者勢傾則絶하고, 以利交者利窮則散이니라.◆ [독음] - 이세교자 세경즉절, 이리교자 이궁즉산.◆ [한자] - 써 이/ 세력 세/ 사귈 교/ 놈 자/ 세력 세/ 기울 경/ 곧 즉/ 끊을 절// 써 이/ 이익 리/ 사귈 교/ 놈 자/ 이익 리/ 다할 궁/ 곧 즉/ 흩어질 산▶ [출전] - 『顔氏家訓(안씨가훈)』,『文中子(문중자)』등◈ [해석] - 세력으로 사귄 사람은 세력이 기울면 끊어지고, 이익으로 사귄 사람은 이익이 다하면 흩어진다..▶ [어구풀이] ☞ 以勢交者勢傾則絶(이세교자 세경즉절) : 권세를 위해 사귀는 사람은 권세가 기울면 끊어진다는 뜻으로,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의 그늘 밑에서 권세에 빌붙던 사람들은 권세가 사라지면 또 다시 다른 권세를 찾아가면서 이전의 관계를 냉정하게 잘라버리는 소인배들의 행태를 의미합니다.☞ 以利交者利窮則散(이리교자 이궁즉산) : 이익을 위해 사귀는 사람은 이익이 다하면 흩어진다는 뜻으로, 잇속만을 차지하는데 혈안이 된 사람들은 이익이 몰리는 곳으로 휩쓸려 다녀 야박하고 삭막한 풍토를 만들어 버린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해설] - 타인을 배려하며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의 함께 하는 삶이 아름답고, 그런 마음들이 모여 서로 어우러지는 건강한 공동체 사회를 이루어야 한다는 당위론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현실 사회의 모습은 건전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성취하며 발전해 나가는 모습보다는 허망한 부와 권력을 쫓는 건강하지 못한 모습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됩니다. 물론 음덕(陰德)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직도 많기에 우리 사회가 희망을 말할 수 있고 어두운 단면들도 치유된다고는 할 것입니다.재차 강조하더라도 마음에 되새기기에 충분하지 못한 것이 금주의 명언일 것입니다. 권력과 이익만을 추종하며 매몰된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가는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다 명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잘못을 잘못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더욱이 그 잘못을 바로 고칠 줄 모르는 것입니다.'허물이 있으면서도 고치지 않는 것이 바로 허물[子曰 過而不改 是謂過矣]'이라고 합니다. 철저한 자기 반성(反省)의 과정을 겪고, 항상 새롭게 일신(日新)하려는 곧고 바른 마음과 정신이 자신의 가치관으로 정립될 때, 진정한 정의(正義)의 이름이 바로 설 것이고, 또한 그러한 바탕에서 실천으로 옮겨지는 행동은 강한 신념(信念)으로 무장한 사회 정의의 바른 변혁(變革)의 모습으로 비춰질 것입니다.당장 작은 이익을 위해 양심(良心)을 저버리는 무책임한 생각과 행동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으로 변질된다는 자각(自覺)만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변하기를 소망합니다.감사합니다.
95주 명언 : 진정한 師道란 바른 삶의 가치를 일깨우고 북돋는 것임을 재론합니다..◈ [금주 명언] - 無貴無賤하며 無長無少니, 道之所存이 師之所存也니라.◆ [독음] - 무귀무천 무장무소, 도지소존 사지소존야.◆ [한자] - 없을 무/ 귀할 귀 /없을 무/ 천할 천/ 없을 무/ 길 장/ 없을 무/ 적을 소/ 도리 도/ 어조사 지/ 바 소/ 있을 존/ 스승 사/ 어조사 지/ 있을 존/ 어조사 야▶ [출전] - 『古文眞寶(고문진보)』〈師說(사설)〉◈ [해석] - 귀(貴)함도 없고 천(賤)함도 없으며, 나이 많은 것도 없고 적은 것도 없다. 도가 있는 곳이 스승이 있는 곳이다..▶ [어구풀이] ☞ 無貴無賤無長無少(무귀무천 무장무소) : 빈부귀천(貧富貴賤)과 남녀노소(男女老少) 등 모든 인위적인 조건들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으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바른 도리(道理)를 삶의 스승으로 삼는 전제에서는 아무런 인위적 조건들이 상관이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道之所存 師之所存也(도지소존 사지소존야) : 도가 있는 곳에 스승이 있다는 뜻으로, 작금의 피폐한 사도(師道)의 가치를 개선하는 관건은 진정한 인간의 바른 도리를 확인하고 진작할 수 있는 가치를 정립하고 그것으로부터 확산되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근본적인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해설] -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을 전후해 언론매체에서는 제자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스승의 모습을 클로우즈업하고 사제간의 정을 바로 정립해야 한다는 기사를 접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더 없이 각박해지고 상막해지고 있는 교육 풍토와 문제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교육에 대한 이론과 정책을 역설하고 열띤 토론을 벌일 때 항상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표현으로 포장하는 모습을 많이 접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에게는 지금도 냉엄한 경쟁 논리를 바탕으로 오로지 학력과 일류만을 추종하고 지향하는 좁은 공간 속으로 몰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일류라는 괴물만을 추앙하는 학벌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닌 현실은 결국 강한 경쟁력으로 좁은 공간을 뚫고 나온 소수의 아이들에게는 많은 주목과 혜택으로 큰 대가를 부여하지만, 정작 좁은 공간을 뚫지 못한 다수의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눈길이나 배려가 전무(全無)한 실정이라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만 잘 살면 그만이고,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그래서 일신(一身)의 출세와 영달(榮達)만을 쫓아가는 이기적 인간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금주의 명언을 쓴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韓愈) 역시 이렇게 말을 이어갑니다." 옛날의 성인은 보통사람들보다 뛰어나기가 엄청났음에도 오히려 또한 스승을 좇아 물었건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인보다 부족함이 또한 큼에도 불구하고 스승에서 배우기를 부끄러이 여긴다. 이렇기 때문에 성인이 더욱 성인다워질수록, 우인(愚人)은 더욱 더 어리석어진다. " [ 古之聖人 其出人也 遠矣 猶且從師而問焉. 今之衆人 其下聖人也 亦遠矣 而恥學於師. 是故 聖益聖 愚益愚. ]또한 민주시민으로서 자주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단순하게 교육 문제를 개선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듯이, 난맥(亂脈)을 보이는 교육 문제 역시 민주주의의 정착과 복지 등 사회 전체가 소외층 등 약자의 입장을 더 많이 생각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회 구조와 의식 구조가 정착될 때 교육 현실도 완화되고 개선될 수 있을 것입니다나만이 아닌 남을 배려하고 도와줄 수 있는 세상,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먼저 생각해 주는 세상,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 힘을 모으며 노력하는 바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걸어가야 할 당당한 이 땅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다소 원론적인 표현이라 하더라도 바른 가치와 냉철한 논리로 건전한 가치관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사회 전반의 건강한 가치 체계가 바로 잡힐 수 있는 첩경이라는 점을 재차 부연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참스승의 자세 역시 그런 바른 삶의 가치를 일깨우고 북돋울 수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96주 명언 : 권위와 차별을 넘어 화합과 융화의 가치를 위하여...◈ [금주 명언] - 禍兮福之所倚요 福兮禍之所伏이라.◆ [독음] -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한자] - 화 화/ 어조사 혜/ 복 복/ 어조사 지/ 바 소/ 의지할 의// 복 복/ 어조사 혜/ 화 화/ 오조사 지/ 바 소/ 엎드릴 복▶ [출전] - 『老子(노자)』<58장> ◈ [해석] - 화는 복의 의지해 있는 곳이고, 복은 화가 엎드려 있는 곳이다.. ▶ [어구풀이] ☞ 禍兮福之所倚(화혜복지소의) : 재앙이라는 것은 행복이 기대고 있는 것이라는 뜻으로, 결국 화와 복은 서로 공존하고 있고, 그러한 운행 상황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노자의 주장은 사람들과 이 세상이 이러한 행복과 재앙은 서로 상대적이라는 진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한쪽 방향으로만 집착하고 있는 혼돈의 상황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福兮禍之所伏(복혜화지소복) : 역시 행복이라는 것도 재앙이 엎드려 있는 것이라는 뜻으로, 고정불변의 현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욕심과 고집으로 점철된 타락한 가치를 일깨우기 위한 반복적 구절입니다.▣ [해설] - 우리 사회의 면모들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판단과 인식의 오류에 빠지는 일이 많습니다. 바로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고 말하면서 배금(拜金)과 사행(射倖)에 물들고, 정의(正義)와 불의(不義)를 말하면서 양비(兩非)와 양시론(兩是論)에 익숙해지고, 합리주의와 개인주의를 말하면서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의 이기주의에 빠지는 것을 흔하게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노자(老子)의 표현대로 명리(名利)만을 좇고 권위와 아집에 사로잡힌 찰찰연(察察然)한 정치로 인해 사람들은 무위(無爲)와 무욕(無慾)의 순박함을 잃고 교만과 인욕(人慾)에 사로잡힌 결결연(缺缺然)한 타락한 가치에 물들게 된다[ 其政察察 其民缺缺 (老子 同章)]는 것은 익히 들어 식상(食傷)할 정도입니다.우리는 이러한 현상에 익숙해져 가면서 점차 간과하고 무뎌지는 것이 있습니다. 현실 속에 깊숙하게 잠긴 상태에서 왜곡된 현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세태, 불의를 지적해도 무조건적 반대 논리로 인해 판단을 흐리게 하는 곡해(曲解), 왜곡되고 모순된 가치에 너무 길들여진 사람들의 인식 등이 우리 사회가 보다 공평(公平)하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나가려는 길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왜곡되고 모순된 사회현상에 대해 강한 비판과 함께 정화(淨化)의 실천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건강하고 건전한 가치관을 정립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집과 집착으로 점철된 인욕(人慾)의 행태(行態)가 아닌 화합과 공존의 가치로 무장한 신념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그것은 금주의 명언이 결론 맺고 있는 주장과도 연결될 수 있기에 보다 깊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함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나는 바르고 방정(方正)하나 그것으로 남을 잘라내 그것에 맞추려고 하지 않고, 나는 청렴하고 염결(廉潔)하나 그것으로 남을 깎아내 그것에 맞추려고 하지 않고, 나는 곧고 반듯하나 그것으로 교만하여 남에게 뚫고 나아가려 하지 않고 나의 참된 예지(叡智)의 빛은 빛나고 그 빛을 밖으로 내비치지 않는다. [ 方而不割 廉而不귀(歲+刀) 直而不肆 光而不耀 (老子 同章)] "우리가 나가야할 아름다운 세상은 분명 정복과 지배가 아닌 평화와 공생, 권위와 복종이 아닌 공조와 화합, 등급과 차별이 아닌 평등과 공유, 우월(優越)과 열등이 아닌 평준과 공존의 가치가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쌓아나가는 그런 세상임이 자명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97주 명언 : 보다 나은 사회 개선과 적극적 참여의 자세를 위해...◈ [금주 명언] - 與善人居면 如入芝蘭之室이요, 與不善人居면 如入鮑魚之肆이라.◆ [독음] - 여선인거 여입지란지실, 여불선인거 여입포어지사.◆ [한자] - 더불 여/ 착할 선/ 사람 인/ 거할 거/ 같을 여/ 들어갈 입/ 지초 지/ 난초 난/ 어조사 지/ 집 실// 더불 여/ 아니 불/ 착할 선/ 사람 인/ 거할 거/ 같을 여/ 들어갈 입/ 절인고기 포/ 물고기 어/ 어조사 지/ 방자할 사▶ [출전] - 『孔子家語(공자가어)』 / 『明心寶鑑(명심보감)』[交友篇(교우편)] 등 ◈ [해석] - 선한 사람과 더불어 지내면 마치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고, 선하지 않은 사람과 지내면 마치 절인 생선 가게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다. ▶ [어구풀이] ☞ 與善人居如入芝蘭之室(여선인거 여입지란지실) : 선한 사람과 함께 지내면 마치 향기로운 지초나 난초가 가득한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향기가 밴다는 뜻으로, 착한 사람과 교우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화되어 자신도 착하게 된다는 의미로 교우(交友)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 與不善人居如入鮑魚之肆(여불선인거 여입포어지사) : 선하지 않은 사람과 지내면 마치 비린내 나는 어물전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냄새가 밴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과 교우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받아 자신도 나쁜 행동을 하게 된다는 의미로 역시 교제(交際)의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해설] - 우리는 사회 생활을 영위하면서 타인과의 관계, 곧 유년시절의 교우로부터 사회 생활 속의 이해타산에 얽힌 관계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관계의 연속 속에서 삶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귤화위지(橘化爲枳)나 마중지봉(麻中之蓬)처럼 환경 영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 속에서나, 금란지교(金蘭之交) 등의 우정의 소중함을 다룬 고사들에서도 항상 좋은 환경과 선한 사람들과의 교우와 교제를 강조합니다. 『명심보감』에서는 다시 교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이어집니다.. "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면 마치 안개 속을 가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은 젖지 않더라도 간혹 물기가 배어들 것이고, 무식한 사람과 함께 가면 마치 변소에 앉아 있는 것 같아서 비록 옷은 더럽혀지지 않더라도 종종 나쁜 냄새가 난다. "[ 與好學人同行 如霧中行 雖不濕衣 時時有潤. 與無識人同行 如厠中坐 雖不汚衣 時時聞臭. 《明心寶鑑》 ]하지만 이와 같은 일방적인 가치지향 교제관만으로는 보다 더 나은 사회 개선이나 발전에는 다소 미흡한 점도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지금은 금주의 명언이 담고있는 가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는 시대라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고 외치면서 독야청청(獨也靑靑) 내 몸 더럽혀지지 않으면 된다고 했지만, 그러한 주장은 결국 무관심의 방관과 방임의 결과를 낳아왔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백로가 가서 까마귀판을 바꿀 수 있는 참여의 자세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과거 재래식 변소는 집안에서도 외진 후미에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지금의 화장실은 새로운 사색과 창조의 공간이라는 찬미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변했습니다. 냄새가 난다고 멀리하는 자세보다는 냄새가 나지 않도록 직접 참여해서 고치고 바꾸는 자세가 오히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근자의 적극적 시민 참여 운동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대안으로 정착되고 있습니다. 작은 시민의 힘이 모여 새로운 시대와 역사를 건설하고 만들 수 있다는 지극히 희망적인 가치가 올바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보다 높은 도덕성과 개혁적인 가치 형성을 위해 함께 참여하시지 않으시렵니까? 감사합니다..
98주 명언 : 건강한 사고와 원칙이 중심 되는 바른 삶의 가치를 고대합니다..◈ [금주 명언] - 爾以玉爲寶나, 我以不貪爲寶니라.◆ [독음] - 이이옥위보, 아이불탐위보.◆ [한자] - 너 이/ 써 이/ 구슬 옥/ 여길 위/ 보배 보// 나 아/ 써 이/ 아니 불/ 탐낼 탐/ 여길 위/ 보배 보▶ [출전] - 『春秋左傳(춘추좌전)』〈襄公篇(양공편)〉◈ [해석] - 너는 옥으로 보배를 삼았으나, 나는 탐내지 않음을 보배로 삼았다..▶ [어구풀이] ☞ 爾以玉爲寶(이이옥위보) : 너는 옥으로 보배를 삼았다는 뜻으로, 물질에 우선 가치를 둔 세속적인 삶의 자세를 그대로 표현한 내용입니다.☞ 我以不貪爲寶(아이불탐위보) : 나는 탐욕스럽지 않음을 보배로 삼는다는 뜻으로, 청렴함과 정신 가치를 우선시하는 가치 지향적인 삶의 자세를 표현한 내용입니다.▣ [해설] - 물질만능, 황금만능의 시대 속에서 배금주의(拜金主義)에 몰입된 현대인들의 왜곡된 가치관과 모순된 사회 가치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물질 우선의 황폐한 가치관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건강한 정신적 가치와 건전한 청렴성을 빛낸 여러 인물들에 대한 귀감을 통해 자신의 탐욕을 제어하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일은 역시 언제나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見金如石(견금여석)"을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서 띠에 글로 써서 가슴에 두르고 다녔다는 여말(麗末)의 명장 최영(崔瑩)의 청렴성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대표적인 일화입니다. 물론 최영 장군이 그러한 청렴한 가치관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뛰어남이라고 하기보다는 최영으로 하여금 그러한 건강한 가치관을 지닐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이끌고 가르친 최영 장군의 아버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개인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어린 시기의 주변의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것입니다.금주의 명언의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송나라 사람이 옥을 얻어, 사성벼슬의 자한에게 바쳤으나, 자한이 받지 않았다. 옥을 바치는 사람이 말하기를, "그것을 옥 감정자에게 보여주니 보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치는 것입니다."고 하자, 자한이 말하기를, "나는 탐하지 않는 마음을 보배로 삼고, 그대는 옥을 보배로 여긴다. 만약 그것을 나에게 주면, 둘 다 보물을 잃게 되는 것이다. 각자 그 보물을 소유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 宋人 得玉 獻諸司城子旱, 子旱不受. 獻玉者曰 以示玉人 玉人以爲寶 故獻之. 子旱曰 我以不貪爲寶 爾以玉爲寶. 若以與我 皆喪寶也. 不若人有其寶. 《春秋左傳》]이렇게 진정 자한(子旱)이 무욕(無慾)의 정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확고한 가치관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척박한 이기적 사회 풍토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적 가치가 바로 자한이나 최영에게서 엿볼 수 있는 강한 신념(信念)인 것입니다.이런 생각들이 너무 현실적이지 못한 이상적인 가치라 하더라도, 그래도 주위를 돌아보고 남과 함께 생각하고, 더 나아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할 것입니다.눈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익에 배치되는 일은 생각하지도 행동하지도 않는다면, 우리 세상이 정말 아름다운 희망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감사합니다.
99주 명언 : 정당한 원칙이 바로 그런 아름다운 사회를 그려봅니다..◈ [금주 명언] - 天時不如地利요, 地利不如人和니라.◆ [독음] -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 [한자] - 하늘 천/ 띠 시/ 아니 불/ 같을 여/ 땅 지/ 이로울 리// 땅 지/ 이로울 리/ 아니 불/ 같을 여/ 사람 인/ 화합할 화▶ [출전] - 『孟子(맹자)』〈公孫丑章句下(공손추장구하)〉◈ [해석] - 하늘의 조건은 땅의 이로움만 못하고, 땅의 이로움은 사람들의 화합함만 못하다..▶ [어구풀이] ☞ 天時不如地利(천시불여지리) : 하늘이 내려준 유리한 조건도 지형적 이로움만 같지 못하다는 뜻으로, 맹자는 전쟁에 비유들어 작은 나라 작은 성(城)을 대군을 이끌고 가도 함락하지 못한다는 것은 완벽한 지형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와 같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음 구절의 인화(人和)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利利不如人和(지리불여인화) : 유리한 지리적 조건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인화단결(人和團結)만 못하다는 뜻으로, 구성원간의 강한 유대와 건강한 화합의 가치가 사회전반에 내재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리 완벽한 외형적 조건을 지니고 있더라도 그 사회, 그 국가는 흐트러지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해설] - 세계인의 축제라고 하는 월드컵대회 속에서 우리 국민들이 보여주고 있는 단합된 모습은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서로가 한마음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계기가 마련된 모습에서 그 힘과 가치는 분명히 운동경기라는 측면은 넘어섰다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그 월드컵의 화합과 단합의 가치가 건강한 국민적 가치체계로 정착되기에는 미흡하다는 주장들에 대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참여민주주의와 주민자치의 가치를 드높여야 할 지방자치선거가 불신과 냉소로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깊이 되새겨야 할 부분임을 확인합니다. 참여 없이는 변화도 없다는 진리가 무시되는 일이 없도록 모두가 다시 되새겨 보았으면 합니다. 바로 맹자가 말하는 인화단결(人和團結)의 가치 역시 진정한 사회 정의의 가치가 올바로 설 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위적인 강요와 외압적인 단결 요구는 그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기에 맹자는 진정한 인화(人和)의 가치를 이렇게 말합니다.백성을 영토 내에 있게 하기 위해서 국경선을 봉쇄할 필요는 없다. 나라의 방비를 굳게 하기 위해서 산, 계곡 같은 험준한 요새를 의지할 필요도 없다. 천하에 위세를 떨치기 위해 무서운 무기를 사용할 필요는 더욱더 없다. [ 域民不以封疆之界, 固國不以山谿之險, 威天下不以兵革之利. [ 《孟子》 [公孫丑章句下] ]우리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국민단합의 모습들이 단순히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맹목적이고 무가치적 단결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국민적 화합의 가치를 왜곡하고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올바른 변화와 변혁 속에서 건강하고 건전한 가치 지향적 사회 통합을 거부하고 피상적 외형에 안주하며 팽창과 과시만을 드러내면서 국가와 사회의 역경과 곤경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앞만 바라보면서 이끌고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고 했던 왜곡된 단합 요구가 이제는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근자에 모 방송사가 정정당당(正正堂堂)이라는 성어를 내세우면서 사회 여론을 유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과정의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나타난 결과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의 내용이 무시되는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 어느 정도라도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름다운 꼴찌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마음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감사합니다.
100주 명언 : 겸손과 배려의 아름다운 미덕이 사회 정의의 가치로 자리잡기를 기원합니다..◈ [금주 명언] - 恭近於禮면 遠恥辱也니라.◆ [독음] - 공근어례 원치욕야.◆ [한자] - 공손할 공/ 가까울 근/ 어조사 아/ 예절 예// 멀 원/ 부끄러울 치/ 욕될 욕/ 어조사 야▶ [출전] - 『論語(논어)』〈學而篇(학이편)〉◈ [해석] - 공손함이 예절에 가까우면 부끄러움과 욕됨을 멀리할 수 있다..▶ [어구풀이] ☞ 恭近於禮(공근어례) : 공손함이 예절에 가깝다는 뜻으로, 비굴함이나 아첨하는 식의 무조건적 공손함을 경계하면서 상황과 절도와 맞고 상대에게 알맞은 예절에 일치할 수 있는 바른 공경심(恭敬心)이 바탕이 된 공손함을 의미합니다.☞ 遠恥辱也(원치욕야) : 부끄러움과 욕됨을 멀리한다는 뜻으로, 타인과의 바른 공경의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예절의 가치는 치욕(恥辱)을 멀리하는 기본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해설] -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와 겸손의 미덕이 아쉬운 우리 사회의 모습은 정(情)이 넘치는 공동체의 삶을 영위해온 우리 전통사회의 아름다운 양속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사회 정의(正義)가 불안전한 풍토 속에서 왜곡된 사회 모순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에서 그 문제의 심각함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른 예절의 가치가 변질된 현상으로 나타나는 양태는 쉽게 목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연(地緣)과 학연(學緣)이 능력과 재능보다 앞서는 우리사회의 왜곡된 병폐가 양산하는 수많은 폐해를 이루 나열할 수 없을 정도라는 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렇듯 아름다운 공동체의 전통 양속이 현대 사회의 가치관과 규범 체계에 올바로 계승되어 발전되지 못한 것은 과거 제국주의 일제의 강점으로 인한 역사단절이 가져다 준 전통의 단절과 함께 해방이후 서양 문물의 수용이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으로 이루어짐으로 인해 바른 사회 정의의 가치가 제자리를 잡지 못했던 우리 현대 역사의 아픈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남과 함께 공존하기보다는 맹목적으로 남을 앞서려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무조건 추호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천박한 심성(心性)들이 우리 사회를 건조하고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비굴함이나 아첨이 아닌 바른 예절의 이치에 기반을 둔 바른 양보와 겸양의 미덕은 사회 정의의 무한한 자산이 됩니다. 양보와 겸양의 덕목이 그 가치를 바로 얻을 때 우리 사회의 정의 역시 제자리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건강한 사회의 건전한 가치관은 구호나 슬로건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작은 행동과 실천이 모든 사회 정의와 가치체계의 밑거름이 되고 근간이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양보와 겸양의 미덕이 버려야할 인습 정도로 오해받고, 전통사회의 공동체가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와 상반된 가치로 잘못 인식되는 일은 없어야 함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과거의 것이 무조건 천대되고 서양 것이 무조건 대접받는 잘못된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신구의 조화와 동서의 융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전통사회의 아름다운 공동체 삶이 현대사회의 합리적 개인주의와 결합될 때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은 깊은 뿌리와 무성한 가지가 넓고 높게 뻗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근자의 월드컵 열풍 속에 우리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벽안(碧眼)의 감독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것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확인하고 인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편향된 아집과 왜곡된 가치를 일깨우는 방향으로 작용해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서구지향의 한 편린(片鱗)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의에 일치된 언약이라야 그 실천의 힘이 바른 자리를 얻을 수 있다[ 信近於義, 言可復也.《論語, 學而》]'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무엇보다 사회 정의(正義)가 우리 사회에 우선되어야 가치관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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